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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전라삼현육각보존회 전태준 회장

궁중·민간 아우른 전통음악 '삼현육각' 전승 앞장

▲ 전태준 명인

전주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자랑거리가 많다. 특히 국악의 본고장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청하 전태준(74세) 명인도 전주의 자랑으로 꼽힌다.

 

선생은 지난 2011년 전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라삼현육각(三絃六角)보존회’(제46호) 회장을 맡아 전라삼현육각 계승과 발전에 힘쓰고 있다.

 

선생은 풍남초등학교 밴드부에서 피리를 불면서 악기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전주동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신입생 환영식에서 연주를 한 전주농고 농촌예술반(종합예술단) 삼현육각 대금소리에 매료됐다. 전주농고 농촌예술반은 정형인·이기주 선생이 지도교사로 있었는데, 전국을 돌며 공연할 정도로 실력이 빼어났다. 선생이 입학할 당시에는 경무대(지금의 청와대)공연까지 다녀올 정도였다. 선생은 학교를 졸업하고도 농촌예술반과 함께 공연을 다닐정도로 연주에 푹 빠졌었다.

 

△ 당대 최고 국악인 스승으로 모셔

 

선생은 과수원을 하던 부모님 덕에 대금·단소 명인 전추산(본명:홍년) 선생을 독선생으로 집에 모셔 학습했으며, 신쾌동 명인 등이 함께 하던 전주풍류방을 다니면서 향제풍류를 익혔다.

 

학교선후배 인연으로 최낙선 명인에게 대금을 더 배웠으며, 전주에서 활동하던 김동준 명고에게 판소리 지도도 받았다. 이러한 공부를 바탕으로 나름의 대금산조 한바탕을 구성하게 됐고, 명무로 꼽히던 최선·금파 선생의 무용반주도 맡았다. 시나위와 합주, 독주 등 활동의 폭도 넓혔다.

 

전주농고에서 만난 정형인 명인은 선생의 예술길을 더욱 풍성하게 안내했다. 정형인 선생은 전통민속음악의 대가인 정자선 명인의 자제인데, 무용과 해금 대금 피리 등에 두루 능했고, 학생 지도도 열정적이었다. 또한 박귀희, 김소희 명창 등이 서울로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텄으며, 최승희 무용가가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올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여성국극단의 임춘앵 명인도 각별한 스승이다. 군대 제대 후 만난 명인을 선생은 평생 이모님으로 모셨는데, 서울무대에 진출하는 통로가 됐다. 시대를 풍미했던 국극단체인 진경단체, 햇님달님 단체 등과의 활동을 통해 음악의 폭을 넓히는 계기도 되었고, 대금 명인인 김동진 선생과 이생강 선생을 사사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다양한 인연과 꾸준한 공부로 1973년경 내로라하는 예술인만이 활동 할 수 있다던 삼청각예술단 초대단장을 맡아 민속음악계의 명인들과 함께 활동했으며, 1977년에 이생강 명인과 공동단장을 맡았다.

 

△전라삼현육각 재현위해 귀향

▲ 전라삼현육각 보존회 이수자들.

선생은 재주가 많았다. 짬짬이 서화에도 관심을 가져 1980년에는 한국서화대상전에서 특선을 했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선생이 다시 전주로 내려온 것은 1983년 문화재관리국의 전라삼현육각 재현요청때문이었다. 이듬해 6월 전라삼현육각 재현발표회가 열렸다.

 

전주에서 ‘청하 민속악 연구원’을 만들어 대금을 지도하는 등 국악보급에 앞장섰다. 1986년 전북도립국악원에 시간강사로 들어갔다가 2001년까지 도립국악원 교수로 활동했다.

 

도립국악원 근무 인연으로 맺어진 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단원들은 전부 삼현육각 이수자다. 조용안(장구)단장과 김인두(좌고) 지도위원, 이항윤(대금) 수석단원, 조용오(대금) 부수석단원, 박지중(피리) 상임단원, 조송대(피리) 상임단원, 이재관(피리) 상임단원, 고은현(해금) 상임단원 등이다.

 

△궁중·민간에서 연주된 대표음악

▲ 승무 공연에 맞춰 전라삼현육각 보존회 회원들이 삼현육각을 연주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전주에는 전라감영이 있어 의식행사가 많았던 탓에 삼현육각이 자주 연주되었다.

 

삼현육각은 피리2(목피리·곁피리), 대금1, 해금1, 장구1, 북1 등으로 구성된 연주를 말한다. 고려시대 이후 삼현육각 편성에 의한 음악은 궁중 연례악에서 주로 사용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각 지역 관아에도 이러한 편성의 연주단이 구성되었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민간에서도 연주됐다. 김홍도의 무악도(舞樂圖)를 보면 알 수 있다.

 

삼현육각편성이 민간화 되면서 인형극과 탈춤·가면극 등의 민속놀이 때에도 삼현육각은 필수적이고, 무당의 굿판에 연행되는 무당춤이나 무가의 반주에서도 삼현육각이 기본이다. 삼현육각은 양주별산대놀이와 봉산탈춤, 은률탈춤 등의 반주용으로도 쓰인다.

 

전라삼현육각은 농삼현육각과 민삼현육각이 있었다. 농삼현은 관아의 삼현육각으로 음계가 우조에 가깝고 주로 관아 행사와 무용반주에 사용되었으며, 민삼현은 민간의 삼현육각으로 계면조에 가깝고 주로 민간의 잔치행사에 사용됐다. 농삼현과 민삼현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시김새가 조금 다르다. 전주 삼현은 대금 피리 해금 장고 북이 있고, 무악에서는 단저(단소)도 곁들일 수 있다. 대금은 삼현대금을 쓰고, 피리는 대피리를 쓴다.

 

과거 행사에서 어떤 음악이 연주되었는지는 구체적인 자료가 전해지지 않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구전으로 전해지는 것을 1989년 6월 전북도립국악단 창단연주회에서 민(民)삼현육각이 연주됐고, 1997년 10월 전주시립국악단 창단연주회에서 농(弄)삼현육각이 복원됐다.

 

△ 전주지역 농삼현만 명맥 유지

 

삼현육각은 각 지방마다 연주됐을텐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곳은 드물다. 해주 삼현육각은 봉산탈춤 및 강령탈춤 반주에, 경기도 광주 삼현육각은 송파산대놀이 반주에 일부 쓰이지만 이들 삼현육각도 거상악과 행악에 쓰는 일이 없어 전승이 끊어질 처지에 있다.

 

서울삼현은 승무 공연으로 악사들이 항상 따르게 되었고, 영남지방에도 고장마다 삼현육각이 있었으나 통영의 북춤과 검무만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전승·보존되고 있다.

 

전남 고흥과 영광 삼현육각은 이미 전승이 끊어졌고, 전주의 전라삼현육각도 민간에서 하던 민삼현은 사라지고 공연용으로 하는 농삼현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선생은 전라삼현육각을 발전시키는 것이 꿈이다. 전라삼현육각보존회가 있지만 이수·전수체계가 허술해 아쉽다고 했다. 전통국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김정준 전북도립국악원 공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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