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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있는 국도 1호선 이야기

▲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
많은 사람이 오가는 명절 연휴의 도로가 여느 때와 달리 유독 특별한 것은, 저마다 사연을 품고 길을 떠나는 설렘과 고향에 대한 애틋함 덕분일 것이다. 이처럼 길 따라 새겨진 기억과 흔적은 우리 각자의 것만이 아닌 그 지역에 남겨진 향수이기도 하고 역사인 것이기도 하다.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박범신 작가의 소설로 쓰여지고 영화화된 것은, 그것이 단지 국토를 걸어 다니며 지도에 발자취를 새긴 주인공 김정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발길에 남겨진 길을 통해 우리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삶의 흔적에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김정호는 ‘길 위에는 신분도 없고 귀천도 없다. 다만 길을 가는 자만 있을 뿐’란 명대사를 남겼다.

 

그 수많은 사연을 남긴 우리의 길 가운데, 전라남도 목포로부터 전라북도 익산을 지나 천안, 서울, 평양을 거쳐 평안북도 신의주까지 한반도를 관통하는 국도 1호선은 유독 의미가 남다르다. 나라를 대표하는 ‘국도(國道)’ 중 ‘1호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부터 특별하다.

 

국도 1호선은 그 이름이 생겨나기 전부터 나라의 군사간선도로 및 무역로로 쓰이고 수도와 지방을 오가는 등 민족 중요 이동경로의 하나로 대한민국 서부 교통의 한 축을 지켜왔다. 국도 1호선의 이러한 발자취에는 삼남대로와 근대 신작로를 거쳐 온 우리 민족 개개인의 역사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지역의 양곡을 수도로 실어 나르던 겨레의 젖줄이자 반대로 일제강점기 수탈의 통로가 되었던 길이었다. 과거시험을 보러 지방의 선비들이 한양을 오가던 꿈의 길이었고, 춘향전에 이몽룡이 춘향을 만나러 한달음에 달렸을 사랑의 길이었으나, 한편으로 우암 송시열이 최후를 맞았던 정읍 수성동 은행나무 거리, 정약용·정약전 형제 등 역사의 위인들이 귀양을 떠나던 슬픔의 길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이방원이 왕자의 난에서 승리한 뒤 살려준 형 이방간이 전주 근교에 자리 잡자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왕족인 이방간을 향해 세 번의 예를 갖추었다는 데서 ‘삼례’란 지명을 갖게 한 길이었고, 같은 곳 삼례는 동학농민혁명 제2차 봉기의 집결지이기도 하였다. 이렇듯 삼남길을 주요 이동 통로로 사용하며 동학농민혁명군은 혁명을 꿈꾸었고, 이 길 따라 이송되었던 네덜란드인 하멜은 본국으로 돌아가 유럽에 한국을 최초로 소개하기도 하였다.

 

국도 1호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더하며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지난 7월 정읍과 장성간의 구간이 새로 정비가 되어 개통된 일이 대표적이다. 이는 국도 1호선의 교통여건을 개선하고 차도를 넓히기 위한 변화이기도 하지만,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사연과 지역의 풍광 등 일상의 도로문화 하나하나가 모여 새로운 문화적 유산의 밑거름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삼남대로로부터 이어져 온 국도 1호선의 유구한 역사와 도로가 품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길 이야기의 주체가 되어온 주민들과 행정기관 그리고 관련전문가의 공조에 의해 얼마든지 문화가도를 만들 수 있다. 길 주변 지역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도로문화로 활용할 때, 역사가 깃든 국도 1호선의 의미는 지난 과거의 것이 아닌 현재와 더불어 미래를 달리는 더 특별하고 귀한 자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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