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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의 막핀꽃

▲ 이승수 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어버이날 찾아간 요양병원 뜰에 지면패랭이꽃이 타는 듯 피었다. 꽃 잔디라 부르는 꽃이다. 요즈음 이곳저곳 편하게 피어있어 자주 보지만, 오늘 여기서 보니 유난히 화사하고 눈이 부시다. 지면(地面)으로 퍼지는 특성이 있고 패랭이꽃과 비슷하여 저 이름을 얻었단다. 꽃말이 희생이라는데……. 어쩌면 한 시절을 살라 희생하고 지금은 여기서 외로움과 싸우고 계신 어르신들과 운명이 비슷할까. 애잔한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향이 진동한다. 여기 계신 내 어머니의 젊음도 한때는 저와 같았겠지.

 

봄에 핀 화목이 가을에 또 피는 현상

 

알고 보니 꽃의 삶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와락 피었다 지는 것이 끝이 아니고, 저들 햇가지 나온 자리에서 하나둘 계속하여 가을까지 꽃을 피운다. 이를 막핀꽃이라 부른다. ‘봄에 핀 화목이 가을에 또 꽃을 피우는 현상.’을 말함이다. 맥문동과 개나리도 이와 같다. 이곳 어르신들도 막핀꽃처럼 한 시절을 다시 구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즈음 진달래, 철쭉, 벚꽃도 계절과 상관없이 자꾸 꽃을 피우는데…….

 

우리 영화 〈장수상회〉에는 ‘김성칠’이란 치매 어르신이 나온다. 아내의 얼굴과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중증 환자다. 어르신은 급기야 자기 이름까지 잊게 된다. 어느 가을날 아내 금님은 화단 돌 틈에서 막핀꽃을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뻐한다. 금님이 성칠과 나란히 앉아 소원을 빈다. 이 사람 저 꽃처럼 다시 활짝 웃게 해주세요. 이때 성칠이 떨리는 손으로 꽃을 쓰다듬는다. “혹시?” 그러나 성칠의 기억은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건강보험관리공단에 물으니 전라북도 요양시설과 요양병원 입소 인원이 3만여 명에 이른다. 이 어르신들, 다시금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실까. 반면에 세상은 이분들의 노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보호자들이 꼭 손님 같아요. 그리고요. 오자마자 금방 가요. 면회 안 오는 침상이 더 많아요…….” 한 요양보호사의 말이 양심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다.

 

얼마 전 이 요양병원 벽에 포스터가 하나 붙었다. 상단에 큰 글자로 ‘우리는 괜찮아요.’ 이렇게 씌어있다. 무슨 말인지 궁금해서 자세히 보니 아래쪽에 지게를 진 할아버지 그림이 보인다. 이 어르신 ‘안’자(字)를 짊어지고 힘겹게 걷고 있다. ‘안’자를 번쩍 들어다 문장을 다시 구성해보니 ‘우리는 안 괜찮아요.’가 된다.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어르신들의 날이 있다. 그런데 포스터는 저렇게 아프다고 말한다. 저 ‘안’자 지울 수 없을까? 꽃도 아쉬워 가을이면 다시 피는데, 하물며 사람의 여생에 꽃눈 형성의 기회가 안 주어진대서야. 지면패랭이꽃은 필요할 때마다 솔솔 부는 바람과 촉촉한 빗물이 찾아와 몸을 돌봐준다. 건조하기 짝이 없는 육신 구부린 채 외로움으로 떨고 계신 어르신에게는 누가 필요한 양분을 공급할까. 어느 치매 전문가의 말을 들으니 보호자들이 병상의 어르신 앞에 가까이 오지 않는 이유가 ‘의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쉬운 말이 어렵게 들린다.

 

어르신에게 "무엇을 해드릴까요?"

 

“메이 아이 헬프 유? (May I Help You?)” 이렇게 하면 어떨까? 아무 데서나 하지 말고 어르신 계신 곳에서 직접 “무엇을 해드릴까요?” 이렇게 여쭙는 것이다. 5월(May)이니까. 꽃이 무성한 5월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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