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환경 전라북도 컬링팀의 현실,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
아이스하키·피겨 함께 훈련 받다보니 빙질이 컬링엔 악조건
머리카락 한올도 스톤 방향 좌우, 컬링 유망주 수도권 떠나
코치들 “축구로 치면 맨땅에서 연습, 후배들 모습 안쓰러”
“대통령님, 전라북도에 컬링장을 지어주세요!”
지난 9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자신을 전주에서 활동하는 ‘컬링선수’라고 소개한 한 고등학생의 글이 올라왔다. 그는 “전주 빙상경기장은 얼음 수평이 안 맞아서 컬링을 할 수 없다. 자세 훈련만 겨우 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청원 :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373606?navigation=petitions)
평창동계올림픽 컬링 종목에서 ‘팀 킴’이 은메달을 딴 시대에 훈련 환경의 열악함이 청와대에 까지 청원된 사연의 속사정을 전북지역 컬링선수들을 만나 들어봤다.
지난 15일 오전 6시 30분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화산체육관 빙상장. 중학생부터 30대까지 30여 명의 컬링 선수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간밤에 뭉친 근육을 풀었다.
가장 먼저 경기장 가장자리에 그물을 깔고 위에 올려 둔 스톤이 눈에 띈다. 이는 전날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훈련을 마친 선수들이 스톤을 차가운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두고 간 것이다. 실온에 보관된 스톤은 얼음을 녹게 해 경기장에 지장을 주고 다른 종목 선수들에게는 걸림돌이 된다.
전주 서곡중학교 오두원 컬링감독은 스톤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지난 1999년부터 컬링선수 생활을 하다가 현재는 대한컬링경기연맹에서 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오 감독은 “매주 금요일 저녁 8~10시, 토요일 아침 6~9시 전주 빙상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이후에는 아이스하키,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트 종목도 훈련이 진행된다”면서 “최대한 다른 종목과 겹치지 않는 시간대에 훈련하지만, 그래도 바닥의 상태는 스톤을 표적을 향해 미끄러뜨리는 ‘딜리버리’하기에 매우 악조건”이라고 말했다.
컬링 종목은 얼음 위 머리카락 한 올로도 스톤의 방향이 급변하는 만큼 빙질(氷質)이 중요하다. 시차를 두고 다른 종목이 함께 경기장을 쓰는 이곳은 섬세한 종목인 컬링에는 극악이다.
특히 쇼트트랙은 가장자리를 돌며 경사를 만든다. 연차가 쌓인 선수가 주로 중앙에서 훈련을 한다. 직접 시범을 보인 오 감독은 스톤을 딜리버리하면 경사가 진 왼쪽으로 방향이 휜다고 했다.
그는 타지로 떠나는 꿈나무도 많다고 했다. “전북에는 전주 서곡중(중등부), 전주여고, 사대부고(고등부), 일반부 등의 컬링팀이 있습니다. 꿈나무들이 대학부로 진학해서 선수로 이어져야 하는데, 성장판이 닫힌 느낌이랄까요.”
지난 2012년 전주대학교 체육학과에 컬링 특기로 입학한 김대석 고등부 일반부 코치(28)는 특기생 제도의 문제를 꼬집었다. 김 코치는 “현재 전북지역 대학교 체육학과에는 컬링 특기가 없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대회를 나가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니 결국 사라졌다”면서 “안타까운 건 컬링 유망주들이 대부분 수도권으로 진학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컬링 전용장을 보유한 지역은 서울 태릉과 의정부, 의성, 인천, 진천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서곡중은 컬링장과 유사한 아크릴 훈련장을 조성했다. 하지만 얼음이 아니어서 닦지를 못할뿐더러 단순히 스톤을 딜리버리하는 수준에 머무는 등 실제 경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정현철 전북대 사대부고 감독은 아직 희망은 있다고 했다. “지난 2009년 2월 전국 동계체전에서는 전주여고 선수들이 고등부에서 최강이었어요. 당시 현재 ‘팀 킴’ 선수들로 구성된 의성여고와 결승전에서 맞붙어 이겼습니다. 이들이 계속 선수로 실력을 갈고 닦았다면 올림픽에서 메달까지 따는 수준이었는데, 여력이 안 돼 모두 은퇴하고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도 제대로 된 지원만 있다면 국가대표 선수의 잠재력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북지역 컬링팀에도 ‘팀 킴’에 도전할 유망주들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 전북도청 소속 국가대표로 장춘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컬링 금메달을 딴 김지숙 코치는 이날 중등부 선수에게 “몸이 한쪽으로 휜다.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이 친구가 서툴기도 하지만, 바닥 자체가 기울어서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게 더 안타깝다”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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