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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의 날’ 특별한 휴업

양희민 전주 동암고 학부모
양희민 전주 동암고 학부모

얼마 전 아들이 다니는 전주 동암고등학교에서 특별한 휴업일을 지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추석 명절을 앞둔 금요일 하루를 ‘벌초의 날’로 지정해서 학생들에게 가정체험학습을 준 것이다.

학교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효(孝)를 중시하는 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벌초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 것은 놀랍고도, 고마운 결정이었다. 그동안 아들의 학업을 이유로 선뜻 함께하자 권하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올해는 맘 편히 같이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날이 유난히 흐리던 금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벌초를 하러 갈 준비를 했다. 몇몇 사람들은 벌초를 형식적으로 생각하여 귀찮아하고, 혹은 전문 업체에 맡기곤 하지만, 나에게 벌초란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조상에 대한 예의이자, 조상을 가까이서 뵐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여 매년 정성껏 벌초를 해 왔다. 벌초를 하러 가기 위해 단단히 준비를 하고, 조금은 피곤해하는 아들과 함께 조상님들의 묘가 있는 선산으로 향하였다.

조상님을 뵈러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비로 인해 질척해진 땅은 내 발을 붙잡았고, 설 명절 이후 자르지 않은 풀들은 벽을 쌓아 나를 막아섰다. 더 자주 찾아뵙지 않은 것에 대한 조상님의 질책인 것 같아 조금은 죄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어렵사리 산소에 도착한 후 조상님들 앞에 서서 절을 두 번하고 벌초를 시작했다. 나는 낫으로 잔디를 깎았고, 아들은 나를 따라다니며 잘라진 풀들을 치웠다.

매년 벌초를 하지만 벌초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위험한 순간도 많았고, 힘들어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땀을 흘릴수록 깔끔해지는 선산의 모습과 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웃으며 나를 돕는 아들의 모습에 더욱 힘을 내서 벌초를 하였다.

벌초가 끝난 후 아들과 조상님 곁에 앉아 많은 대화를 나눴다. 예초기를 구매해 벌초를 하면 편하지 않겠냐는 아들의 말에 조상님들 앞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낼 수 없다고 답하고, 또 지극정성으로 묘소를 관리하다가 한(漢)나라의 천자가 되었다는 한(韓)씨 부부 이야기를 해주니 눈을 반짝이며 자기도 더욱 더 열심히 벌초를 하겠다고 말하는 아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들과 대화를 하며 ‘벌초’라는 단어가 아들 세대에게는 조금은 낮선 단어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 장례문화, 조상에 대한 인식 등이 많이 바뀐 탓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벌초’는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조상들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주는 단어이다. 또 아들과 함께 평생 같이 하고 싶은 일이다.

아들과 함께한 특별한 시간, 특별한 휴업 날에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고, 우리 부자(父子)에게 소중한 선물을 준 특별한 학교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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