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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너그러워져야 한다

일본의 독일 조차지 산동반도의 강점과 함께

이규하 전북대 인문대 명예교수·서양사
이규하 전북대 인문대 명예교수·서양사

일찍이 로마의 대 웅변가·정치가·철학자·역사가였던 키케로는 역사를 인간교육의 전제로 여겼으며, ‘생(生)의 교사’(magister vitae)라고 했다. 아시아의 일우 산동반도(山東半島)에서 일어난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함께 일본을 비판하고자 한다.

비엔나대학교(1365년 개교) 유학시절에 만난 일본 유학생들, 일본인 교수, 런던에서 같이 영어연수를 했던 기숙사 룸메이트, 독일 연대사연구소에서 함께 연구한 도쿄대학 여교수, 하버드대학에서 마르크시즘 비판 강의를 함께 들었던 교토대학 교수 등은 선진 문화국가의 젠틀맨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인들이 사적으로는 매우 예의바르지만 국익과 관해서는 매우 이기적이라는 실례를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밝히고자 한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독일 제2제국 창설 후 전통적 자유무역 대신에 대외무역을 촉진시키고자 중국에서 해군기지와 조차지의 획득을 위해 적극 노력했으며, 마침내 자국의 2 선교사가 피살된 것을 호기로 칭다오(靑島)와 교주만(膠州灣)을 99년간 조차하였다. 이 무렵 일본은 노일전쟁의 승리로 남만주를 차지하고 세계 평균 경제성장의 2배를 달성하기도 했지만, 계층 간의 불평등의 증대, 원료수입의 필요성, 인구과잉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 건설과 착취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그간의 일·독 관계를 보면,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해 문호를 개방한 이래 독일의 지원을 얻어 신대륙건설, 의과대학 설립, 헌법제정, 역사학부를 창설했다.

이후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로 얻은 요동반도를 독일이 프랑스·러시아와 함께 중국에 반환토록 했다는 이유로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시 즉시 독일에 대해 등을 돌렸다. 이때 일본의 <아사히 신문> 을 비롯한 일본의 모든 신문에는 독일에 대한 분노와 복수의 포효가 시작되었고, 독일은 일순간에 음모국가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일본의 요미우리(讀賣) 신문은 8월 19일자의 기사에서 “전쟁 중에 있는 독일을 도와주는 대신 당황케 해서 미안하다. 그러나 1895년 독일이 일본에 준 고통과 그간 독일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깊이 반성해 볼 때 스스로 위안을 찾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독일이 일본의 이권을 침해한 적이 없고 피해를 주지 않은데 비해 일본의 요구가 너무나 과격하고 파렴치한 것이었다,

동맹국인 영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날 독일의 많은 지원에 대한 의리를 저버린 채 일본이 독일에 최후의 통첩을 보낸 데 이어 6만 명의 일본군이 4000명의 독일군을 공격하도록 하여 교주만과 청도를 즉각 점령하였다. 그 결과 일본은 독일에 의리를 저버린 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여 최대 수혜 국가가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과거의 부끄러운 행위를 뉘우치고 너그러운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이규하 전북대 인문대 명예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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