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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가 만난 전북인물] 임동창 풍류 피아니스트 “전통음악이 갖고 있는 본성 ‘허튼가락’으로 재탄생시켰다고 자부”

180여개 지역 아리랑, 지역 정서 담은 지역에 보낸 선물
트로트 열풍 마지막 단말마, 조상이 남긴 민요가 진짜 우리의 딴따라

임동창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 풍류 피아니스트

아티스트 임동창씨(64)는 형식의 파괴자다. 일반의 생각을 뛰어넘는 창조적 예술로 판을 뒤흔들어왔다. 30대 때인 90년대 중반, 까까머리로 피아노를 연주하며 동시에 꽹과리와 징을 치고, 무대 위를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모습만으로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는 국악을 피아노로 풀어내는 작업으로 동서양 음악의 경계를 허무는 데 열심이었다. ‘피앗고’(피아노와 가야금을 합친 악기)를 개발해 자신의 연주 무대에 등장시킨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100대 피아노 콘서트와 완주 창포마을 할머니 다듬이 연주단의 예술감독을 맡는가 하면, 김덕수 사물놀이패에서부터 주현미·장사익·송창식 등 대중가수들과의 무대교류 역시 그의 예술적 지향점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2000년 EBS 교육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인 ‘우리가락 노랫가락’에 ‘임동창의 피아노 풍류방’을 열고, KBS 의 ‘K소리 악동’ 프로그램 총감독으로 활동하며 대중적 인지도도 높였다.

그런 그가 고향(군산) 전북에 온 것은 제자들과 함께 2008년 남원에 둥지를 틀면서다. 그러나 한동안 자신의 작업과 제자 교육에 치중한 나머지 지역 친화적 예술활동과는 거리가 있었다. 지역사회와의 소통은 2014년 완주 풍류마을을 맡은 후였다. 그는 완주 풍류마을에서 콘서트와 축제 등 울림이 있는 여러 기획으로 지역의 팬들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코로나19 속에 무대 예술이 셧다운 된 상황에서 그가 새로운 뭔가를 준비하고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를 평창 대관령 숙소에서 만났다. 평창 외출은 지인이 숙소를 내줘 그동안 해온 작업들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조만간 현 기거지인 완주 소양으로 돌아가 작업을 이어갈 것이란다.

 

-선생님 뒤에 따르는 이름이 참 많다. 풍류 피아니스트, 국악 피아니스트, 피아노 명인, 국악인, 작곡가 등등. 어떻게 불러주는 게 좋은가.

“기자나 PD, 국악인 등이 붙여준 이름들이다. 어떤 기자는 한국 10대 기인에 올리기도 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개의치 않는다. 다만 내 바탕은 작곡이다.”

-창작곡집도 여러 권 내셨고, 특히 ‘허튼가락’이라는 창작집은 선생님의 혼신이 담긴 역작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전국 지명을 붙인 ‘아리랑’시리즈가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다.

“노래책에 수록된 아리랑만 188곡이다. 전국 시군이 망라됐다. 완주군 읍면 아리랑을 따로 만들었는데 , 완주 풍류축제 때 각자 읍면 마다 아리랑을 부르게 해서 화음을 이루게 했더니 감동적이더라. 작년에는 아시아문화발전재단의 유튜브 프로젝트로 필리핀·러시아·일본·중국 등 8개 아리랑을 만들어 보급했다.”

-지역별 아리랑 작곡도 본인이 추구하는 작업의 일환인가.

“그건 아니다. 물론 아리랑 가락이 너무 좋다. 한국인 정서를 쉽게 표현한 노래가 아리랑이다. 유네스코 등재로 그 가치도 인정받았다. 그 많던 아리랑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다 사라져 아쉬웠고, 강의나 공연을 갔을 때 해당 지역의 정서를 담은 아리랑을 만들어 선물로 내놓은 것이 하나둘씩 쌓였다.”

-국민들이 잘 아는 대표 작품을 꼽는다면.

“대통령 취임식 축하송으로 사용된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전 제2건국위원회에서 주제곡으로 쓰겠다 해서 작곡했는데, 이 곡은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도 사용됐다.”

-본인의 활동이 한국음악에 어떻게 기여했다고 자평하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오만하다고 할 것이지만,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고 자부한다. 그것이 내가 만든 ‘허튼가락’이다. 허튼가락은 조상의 자식이다. 조상의 디엔에이가 거기에 다 들어있다. 다른 물질을 섞지 않고 그 요소만 갖고 있다. 부모 DNA 없는 걸 가져온 것이 아니기에 온고지신한 것이다. 한 음악이 아니라 한 장르다. 전혀 새로운 장르다. ”

-허튼가락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나.

“나 혼자만의 숙제였다. 2002년 화두가 풀리고, 풀린 화두로 2003년도 작업을 해서 탄생시켰다. 조상의 얼을 제대로 잇는, 조상이 남겨준 전통음악이 갖고 있는 정수·본성을 알아냈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피바디음악원에서 내 허튼가락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허튼가락이 알려지게 되면, 전 세계적으로 한국음악에 귀 기울이는 현상이 생길 것이다.”

-요즘 트로트 열풍이다. 트로트에 우리 음악의 DNA가 있지 않나.

“트로트는 엔가의 아류일 뿐이다. 나이든 사람들에게 향수를 달래주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단말마로 생각한다. 우리의 딴따라는 민요다. 그렇게 좋은 민요를 일본이 잘랐고, 그것을 이어가지 못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음악보다 좋은 게 없다. 흥을 돋우고 그 흥을 내서 사람을 동화시킨다. 어떤 흥이냐가 중요하다. 가요는 뽕이며 마약이다. 우리의 정악은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다. 민요는 깊게 어우러진다. 쑥대머리 한 대목만 하더라도 온몸과 마음을 다 써서 하니까 내 슬픔을 극도로 배가시켜 정화시킨다. 조상들은 우리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이런 기가 막힌 두 가지를 남겼다. 그런데 이것을 다 놓쳐버렸다.”

-코로나19 속에 예술인들도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무대 예술가로서 답답하지 않나.

“나에겐 오히려 행운이다. 코로나는 빨리 끝나야겠지만. 내 작업의 주가 작곡이고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다. 엊그제 임실공연이 취소됐다는 연락이 와서 너무 좋았다. 돈이 부족해도 산다. 어려서 남들 밥 먹듯이 굶고 살았기 때문에 먹고사는데 신경 쓰지 않는다.”

-경북 달성에서 매년 열리는 100대 피아노콘서트에 애정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달성군 사문진 나루터를 통해 유입됐다. 달성군이 군청사 개청 100년을 기념해 2012년부터 100대 피아노콘서트를 열어 피아노 공연의 메카를 만들었다. 바이엘부터 찬송가, 가요, 재즈. 전통 장단 등 모든 장르를 담아냈다. 하루 평균 4만명이 관람할 만큼 성공했다.”

-전북의 대표 음악축제인 세계소리문화축제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참여할 의향은 없으신지.

“사실 잘 모른다. 다만 손에 쥐는 게 없는 것 같다. 시민들이 즐기는 것도 좋지만 뭔가 누적된 자산이 있어야 한다. 소리축제에 참여해달라는 간접적 권유가 있었으나 뜻이 없었다. 완전히 맡겨줘야 하는 데, 그러려면 기존 시스템을 허물어야 한다. 100대 피아노도 첫 해부터 부르짖던 걸 못하고 있는 데 그게 가능하겠나.”

-전북 문화예술발전을 위해 힘을 보탤 수 있을 텐데.

“좋은 인연이 되고, 가치 있는 일이 있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할 것이지만 그게 참 어려운 것 같다.”

-앞으로 계획을 소개해달라.

“지금은 오로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내는데 몰두하고 있다. 나와 함께 해온 아이들이 창의적이면서 보람된 삶을 살아야지 않겠나. 평창에서의 작업도 그것이다. (아이들이)내년부터 정말 창조적으로 살 시기가 왔다. 허벌나게 준비하고 있다.

(어떤 작업인지 귀뜸해줄 수 있느냐는 물음에 깜짝 놀랄 만하다는 말로 더 이상 답변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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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동창과 아이들

평창 작업실을 찾았을 때 임동창 선생은 곧장 몇 명의 제자들을 불렀다. 그리고 공손하게 한국식 절을 하도록 했다. 무대에서 공연이나 평소 말에 거침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불리는 그이기에 제자들의 절 예법이 의아스러웠다.

이유를 설명했다. “부모는 생명이다. 자식 대신 죽을 수 있는 게 부모다. 끝없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서천 동강중 방과후 학교에서 지도하던 한 학생이 아버지를 경시하는 말에 충격을 받고 들려준 이야기란다.

부모만이 아닌, 왜 어른을 공경하느냐도 설파했다. “우리가 의심하지 않고 먹는 음식이 모두 옛날 선조들이 먹어본 음식이다. 선대가 만들고 경험해서 마음놓고 먹는 것 아니냐. 경험은 인생의 스승이다.”

절 예법이 미풍양속이며,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기본적인 자세라는 그의 생각에 아이들도 금세 공감했단다.

현재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에서 사숙하며 그와 동행하는 제자(그는 아이들이라고 부른다)는 12명. 10대부터 30대까지, 그림·사진·풍물 등 전공 분야도 다양하다. 서천에서부터 남원, 완주로 거처를 옮기며 함께 해온 제자들이다.

그는 허튼가락 정리로 마무리 숙제를 풀고서 아이들을 만나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나 이외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한 것도 아이들이다. 지금의 모든 활동도 아이들이 중심에 있단다. 풍류마을 위탁 관리를 접은 것도 아이들의 뜻을 받들어서다. 좋은 경험하고, 용돈 버는 것도 좋지만 창의적인 일은 아니라는데 전체 아이들이 뜻을 모았단다.

그는 자신과 관련된 중요한 이야기도 남 이야기처럼 했다. 2016년 프랑스 다큐멘터리 영화 거장인 레지스 게젤바시 감독이 임동창 아티스트를 통해 한국음악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가 중단된 ‘사건’이 있었다. 영화 ‘남과 여’‘러브스토리’등의 작곡자로 유명한 프랜시스 레이와 만남 장면부터 완주 풍류마을의 생활, 공연 활동 모습 등 90% 이상 촬영했던 게젤바시 감독이 별세하면서 유럽 전역에 상영할 계획이 멈춰섰다.

그런 만큼 아쉬움도 컸을 텐데 오히려 감독의 기일을 잊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제사를 모신단다. 아이들에게 인연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중단됐던 다큐멘터리는 현재 한국 감독이 맡아 거의 완성 단계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원용 사회·문화·교육·체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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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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