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9 00:33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기획 chevron_right 전북명산, 회문산의 속살
일반기사

[전북명산, 회문산의 속살] ③핏빛어린 회문산 - 화해와 상생의 길

회문산 역사관
회문산 역사관

한국전쟁 시기 회문산권 민간인 희생자 수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집계된 자료는 없다. 다만 전북도의회가 1994년 ‘6.25양민 학살 진상실태조사’에서 현장조사와 국회, 국방부 자료 등을 통해 전북지역에서 3956명의 학살된 양민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역별로 1개 면(공음면)에서 576명이 집단 학살된 고창군(1418명)을 제외하고 순창군 (1028명), 임실군(928명)에서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것으로 집계했다. 정확한 수는 아니더라도 빨치산 전북사령부가 주둔했던 회문산권의 순창과 임실에서 피해가 컸음을 확인한 조사 결과다.

회문산권뿐 아니라 한국전쟁 전후 전국 곳곳에서 자행된 비무장 민간인들에 대한 집단 학살에 대한 진상은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2004년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가 발족되면서 그 진실이 조금씩 드러났다. 회문산권 민간인 피해가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도 진화위의 조사를 통해서다.

 

진실과화해위 진상 규명

회문산권 민간인 학살은 국군과 빨치산 양쪽에서 자행됨으로써 피해가 컸다. 특히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가 많았다. 진화위는 순창지역 민간인 피해와 관련해 ‘적대세력 사건’과 ‘민간인 희생사건으로’으로 구분해 사실 관계를 규명했다.

진화위에서 조사한 순창지역 적대세력 사건의 경우 1950년 7월말부터 이듬해 5월까지 총 43명이 희생된 것으로 확인 또는 추정됐다. 전북도의회 조사에서는 279명이 희생된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 차이는 진화위가 신청된 사건을 중심으로 조사했기 때문이다. 이들 희생자는 마을유지나 우익인사, 공직자, 군경 가족 등으로, 좌익과 빨치산에 의해 구타 또는 총살 등의 방법으로 학살당했다.

순창 주민들의 피해가 컸던 때는 국군이 빨치산 토벌을 위해 초토화 작전을 실시한(‘견벽청야’작전) 1951년 4, 5월이었다. 빨치산은 당시 구림·동계·복흥·쌍치 등 미수복지구 및 인근에서 주민들을 동원해 거점까지 식량을 운송하게 하고, 이 과정에서 우익인사들을 학살했다. 빨치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대부분 개별적으로 이뤄졌으나 구림면 운남리 방화천변에서 주민 40여명이 빨치산에 의해 총살당했다는 증언도 있다.

 

쌍치면 마을마다 10~30명씩 집단 학살

민간인 학살 현장
민간인 학살 현장

회문산권에서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은 보다 더 심각했다. 진화위는 1950년 11월부터 이듬해 말까지 국군과 경찰에 의해 공비토벌작전과 빨치산 거점 제거를 이유로 적법한 절차 없이 순창군 민간인 129명이 살해됐다고 밝혔다. 진화위는 이 숫자가 신청사건을 중심으로 조사한 것이며, 유족이 타 지역으로 떠났거나 일가족이 몰살된 경우도 많고, 아직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사건 신청을 하지 않은 사람도 많기 때문에 실제는 이를 훨씬 상회하는 수 백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았다.

사건 당시 군경은 민간인과 빨치산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빨치산에게 협력했다고 의심되는 주민들을 무차별하게 사살하여 작전상의 위험을 제거하고 공비토벌의 전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을 구사했으며, 그에 따라 많은 주민이 희생됐다고 진화위는 판단했다. 사실상 군사요원이 될 수 없고 정치사회 활동을 하지 않은 여성과 어린이, 노인이 절반 가까이 달했다. 조사 과정에서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 전원을 몰살하거나 민간인의 귀를 잘라 전과를 보고·과시하는 야만적 행위가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은 대부분 집단 학살로 나타났다. 순창읍 순화리와 남계리, 팔덕면 청계리 강천마을, 복흥면 답동리에서 각 30여명이 희생됐다. 특히 군경의 수복이 늦고 빨치산 출몰이 잦아 토벌작전이 오래 지속된 쌍치면 일대에서는 각 마을마다 10~30명씩 광범위하게 희생된 것으로 진화위는 판단했다.

 

생존자와 유가족 증언 생생

군경과 빨치산 양쪽의 경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회문산권 주민들로선 선택지가 없었던 게 당시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의 진화위 증언에서 알 수 있다.

“그때 군인에게 잡히면 죽는 줄 알았다. 피난을 가지 않으면 마을에 출몰하는 빨치산은 ‘반동’이라 했다. 살기 위해 피난을 안 갈 수 없었다. 군인은 피난 가는 사람을 빨치산측 사람으로 생각했다. 마을에서 젊은 사람만 보이기만 하면 죽였다. 교전과정에서 국군이 사망하는 경우가 생기면 군인들 눈빛이 달라져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람들을 죽이고 다녔다.” (민간인 20여명이 희생된 쌍치면 전암리 오류마을 황기봉 옹 진술).

“쌍치면 전 가옥을 소각했다. 토벌작전에서 빨치산과 민간인에 대한 구별이 어려워 마을에 남은 주민은 빨치산으로 간주했다. 정보장교나 하사관에 즉결권을 줘 살해한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았다.”(1951년 공비토벌작전에 참여했던 당시 국민방위군 특별소대장 증언)

“집을 그냥 두면 빨갱이들이 집에서 잠을 자고 활동을 하니까 그걸 막기 위해 집을 태워야 한다며 집집마다 돌아다니면 불을 질렀다. 그 때 우리 집에도 불을 질렀고 아버지가 물동이에 물을 따다 끼얹으며 불을 끄려하자 총을 쏴 죽였다”(쌍치면 용전리 양촌마을 오석기 옹 진술)

전주 방면에서 회문산으로 가는 통로인 임실군 덕치면 암치마을에서는 어처구니 없이 주민 모두가 학살됐다. 당시 10살이었던 이 마을 박한영씨(41년생)에 따르면 마을에 살던 점쟁이 집에 빨강 깃발이 꼽아져 있어 빨갱이 마을로 간주하고 국군이 주민 49명을 당산나무 아래서 총살했단다. 1950년 음력 동짓달 닷샛날이었다. 피난을 떠나 불행을 면한 그가 3년 뒤 마을로 돌아오니 20여호에 이르던 집이 모두 불에 탔더란다. 마을에 사는 희생자 유족 2명이 재출범한 2기 진화위에 뒤늦게 올 진실 규명을 요청한 상태다.

 

연좌제 묶여 오랫동안 고통 겪기도

빨치산에 의해서든, 군경에 의해서든 회문산권 민간인 희생은 전쟁이 나은 민족의 비극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살아난 생존자들과 희생자 유족들이 겪은 정신적 피해는 실로 컸다. 연좌제에 걸려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구림면에서 만난 한 증인은 다른 가족의 빨치산 연루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가 3번이나 군대에 자원입대했으며, 자신 역시 그 굴레를 벗기 위해 타 지역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했으나 공기업은 물론 대기업 취업조차 막혔다고 술회했다.

회문산권 희생자 유족들은 이렇게 속울음을 삼키며 70년 세월을 건너왔다. 다행스러운 것은 당시 역사를 두고 주민 모두가 피해자로 생각하기에 별다른 지역사회 갈등을 겪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회문산의 빨치산 역사는 여전히 어둠 속에 갇혀 있다. 2005년 회문산에서 열렸던‘남녘 통일 애국열사 추모제’에 학생들을 인솔하고 참석했던 임실지역 한 중학교 교사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뒤 대법원 재판거래 의혹까지 낳을 만큼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빨치산 사령부 재현 건물이 철거되고 ‘회문산 역사관’이 그 자리를 메꿨다. 회문산 일대에서 진행됐던 통일교육 연수나 학생 백일장도 자취를 감췄다. 회문산 역사관 한켠에 보일 듯 말 듯 자리한 빨치산 사령부 모형물과 양민희생자 위령탑, 비목공원만이 당시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회문산 빨치산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회문산 빨치산 관련 독립적인 학술대회 한 번 개최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역사관을 만들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회문산에서 활동했던 빨치산과 토벌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희생된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진실규명과 기억의 장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김원용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명산 # 회문산 # 전북명산 회문산의 속살 # 전북일보 기획
김원용 kimwy@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