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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명산, 회문산의 속살] ① 프롤로그 - 굴곡진 근·현대사 품은 산, 그 깊은 상흔을 다시 본다

구한말 당시 의병 활동 근거지…한국전쟁 땐 빨치산 저항 장소
아픔의 역사·애환 담고 있지만, 평범한 외관으로 인지도 낮아

산림청이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맞아 국내‘100대 명산’을 발표했다. 자치단체를 통해 추천받은 산과 산악회 및 산악 전문지가 추천하는 산, 인터넷 조사를 통해 선호도가 높은 산을 대상으로 했다. 산의 역사·문화성·접근성·선호도·규모·생태계 특성 등 5개 항목을 바탕으로 점수를 부여하여 선정했다. 전북의 산으로 지리산 덕유산 내장산 변산 대둔산 선운산 강천산 방장산 모악산 마이산 장안산 등 16개 산이 100대 명산에 포함됐다.

파란만장한 한국의 근현대사를 겪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평화로운 순창 회문산. 아픔의 땅으로, 종교의 성지로, 명당의 영산으로 천의 얼굴을 가진 회문산의 산줄기가 하늘 아래 고고하게 펼쳐져 있다. /사진=오세림 기자
파란만장한 한국의 근현대사를 겪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평화로운 순창 회문산. 아픔의 땅으로, 종교의 성지로, 명당의 영산으로 천의 얼굴을 가진 회문산의 산줄기가 하늘 아래 고고하게 펼쳐져 있다. /사진=오세림 기자

회문산은 전북 16개 산이나 포함된‘100대 명산’ 명단에도 올리지 못할 만큼 전국적인 인지도가 낮다. 기본적으로 산 규모와 절경 등 외형적인 부분에서 특별히 내세울 게 없어서다. 그러나 회문산은 근현대의 굴곡진 역사와 애환을 고스란히 담은 산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어느 산천인들 당대 사람들의 애환을 간직하지 않을까마는 회문산은 그 이상의 아픔과 상처를 묻고 있다. 본보가 회문산에 주목한 이유다.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전봉준·김개남 두 지도자가 회문산에서 혁명의 꿈을 접었고, 임병찬·양춘영을 중심으로 한 구한말 의병활동의 근거지가 회문산이었다. 또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전북도당 유격대 사령부가 자리 잡아 700여 빨치산들이 오랫동안 저항했던, 분단의 비극을 안고 있는 산이다. 이 정도 규모의 산 중에서 이리 파란만장한 한국 근현대사를 겪은 곳도 많지 않을 터다.

산 규모도 크지 않고, 험준하지도 않은 회문산이 왜 근현대사 사건의 중심에 있었을까. 기본 배경은 약자들이 숨기 좋은 지리적 위치와 지형에 있다. 회문산은 주봉인 회문봉(큰지붕, 837m)을 중심으로 장군봉·깃대봉 등 많은 연봉으로 둘러싸여 있다. 동서 8㎞, 남북 5㎞에 걸쳐 순창 구림면·쌍치면·복흥면, 임실 덕치면·강진면, 정읍 산내면이 연접해 있다. 국사봉 성미산 무직산 여분산 내장산 추월산 등 산봉우리들이 사방으로 첩첩이 옹위하고 있어 피신 및 은신처로 좋은 여건을 갖춘 것이다.

회문산이 근현대사의 여러 사건 중에서도 잘 알려진 것은 빨치산 활동무대로다. 빨치산 무대로 각인된 나머지 지역민들에게 회문산은 자긍심보다 오히려 외면하고 싶은 대상일 수 있다. 빨치산의 성격 여부를 떠나 빨치산과 군경에 의해 많은 양민 희생자가 발생했고, 지금도 온전히 털어내지 못한 상처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문산이 빨치산 무대로서만 역사성을 갖는 장소가 아니다. 회문산은 빨치산 활동 훨씬 이전부터 이 일대 주민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었다. 회문산에 얽힌 여러 설화들이 이를 말해준다. 오늘날 전국 최고를 자랑하는 순창고추장과 관련한 만일사 설화가 대표적이다. 고려 말 이성계 스승인 무학 대사가 조선 건국을 위해 만일사에서 1만 일 동안 기도할 때 이성계가 만일사로 가던 중 순창의 한 농가에 들러 고추장 맛에 반해 고추장을 진상토록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진위와 상관없이 오랫동안 명성을 이어온 순창고추장의 역사성을 풍성하게 해주는 설화다.

회문산은 예부터 명당자리가 많은 영산으로 풍수가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18세기 초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풍수가사 <회문산가> 에 회문산 24혈(穴)이 기록됐다. 그 중 ‘다섯 신선이 바둑판을 둘러싸고 있는 형상’(오선위기형)을 증산도 창시자인 강증산이 으뜸으로 꼽아 더욱 유명해지면서 지금도 풍수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회문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물론, 정상까지 곳곳에 수많은 무덤을 볼 수 있다. 그 폐해를 떠나 명당에 대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게 한다.

회문산 곳곳에 종교 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모악산을 어머니 산으로 여기는 증산도는 회문산을 아버지 산으로 여겨 도인들이 치성을 드린다. 인근 여분산은 한 때 50만 신도로 위세를 떨쳤던 갱정유도교의 발상지다. 천주교 전래 초기 박해를 받을 당시 교인들의 피난처가 회문산 자락 정읍 산내면 종성리였으며, 그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친동생 김난식과 조카 김현채의 무덤이 있다.

회문산을 말할 때 섬진강을 빼놓을 수 없다. 회문산 북쪽 산기슭의 물은 옥정호를 이루고, 남쪽 산기슭의 물은 구림천을 통해 섬진강 본류로 합해진다. 회문산을 휘어 감고 도는 섬진강 지천과 본류는 회문산을 자연경관적으로 더욱 돋보이게 한다.

속울음 지으며 견뎌온 아픔의 땅, 종교 성지, 명당의 영산, 섬진강을 뒷배로 한 독특한 경관…. 회문산은 이렇게 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떤 위치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회문산의 모습은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본보는 새 세상을 열고자 했던 열망의 근거지로, 이념 대립의 첨예한 현장으로, 지역민의 삶의 터전으로서 풍부한 역사문화적 자산을 품고 있는 회문산에 대해 재조명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기획은 10회에 걸쳐 격주로 게재할 예정이다.

연재 계획

-1회 프롤로그

- 2회 핏빛 어린 회문산-산이 기억하는 빨치산

- 3회 “ -화해와 상생의 길

-4회 동학농민혁명, 의병 활동 무대

-5회 종교의 성지

-6회 명당 자리가 있다?

-7회 전설과 설화, 그리고 오늘

-8회 문화예술 속에 담긴 회문산

-9회 회문산의 오늘-자연생태계, 시설물

-10회 회문산의 미래-지역 역사자원으로 활용 방안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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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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