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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30년 치세론중국에는 중앙당교라는 공산당 최고의 간부교육기관이 있다. 이곳은 공산당 고위 지도자를 양성하는 한편 당의 이념과 사상을 연구하며 통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는 국정 리더십의 요람이기도 하다.이 중앙당교의 직속 기관지인 학습시보(學習時報)는 올해 초 시진핑 30년 치세론을 소개하는 기사를 대대적으로 실어 눈길을 끌었다. 최근 해외에서 출간된 시진핑 시대:The Xi Jinping Era라는 관변 성향 저서의 일부를 발췌하는 형식으로 세 차례에 걸쳐 자세히 다룬 것이다.시진핑 30년 치세론은 시진핑의 주석 취임 후 꾸준히 인구에 회자되던 일종의 현대사 시대 구분론이다. 1949년 신중국 건국부터 2039년까지 90년간의 국가적 노정을 마오쩌둥, 덩샤오핑, 시진핑 세 정치 지도자를 중심으로 각각 30년씩, 총 3개 시기로 나눈 후, 향후 30년간의 시진핑 시대를 조망하고 있다.이 치세론에 따르면 중국은 앞으로 30년간 시진핑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그가 제시한 국가적 목표인 두 개의 100년을 실현하고 선진 강대국에 진입하게 된다고 한다. 타당성을 떠나 아직 첫 번째 임기조차 마치지 않은 현역 정치인의 영향력을 향후 30년으로 규정한 사관이 공산당 유력 매체에 소개되는 것은 그의 위상을 방증한다.실제로 전문가들은 중국의 권력 구조가 이미 기존의 분권형 집단지도체제에서 시진핑 1인 지배 체제로 전환됐으며, 그가 10년 집권이라는 기존 내규도 파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한계 다다른 사회주의 시장경제 모델정치적 장도(壯途)에 들어선 시진핑 앞에 산적한 국정 난제들은 그 해결이 만만치 않다. 중국은 이미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향한, 중진국의 함정(Middle Income Trap)을 고민하는 사회다. 사회 구조가 점차 고도화되는 현실을 반영하듯 총체적 통찰을 요구하는 정층설계(頂層設計)라는 정치적 용어가 중국 매체에 등장한 것도 그의 임기부터다.중국의 미래를 둘러싼 우려의 핵심은 결국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자체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다. 정부가 막대한 자본을 소유하고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자원을 관리, 배분하는 계획경제 체제는 빈곤 국가가 한정된 자원을 활용해 급속 성장하기엔 용이하지만, 성장이 지속되고 단순 경제가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비효율이라는 한계에 부딪힌다.중진국의 함정을 벗어나 선진 경제체제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자율에 기초한 창조와 혁신이 필요하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자유시장의 영역이다. 이 난제를 해결하려면 큰 틀에서 정치와 경제를 자유와 개방으로 이끌어가는 정책이 요구되지만, 이 경우 공산당은 시장 통제력을 크게 상실하게 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도 체제 개혁과 관련한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으나 2008년도 세계 금융위기를 전후해 공산당 수뇌부가 다른 판단을 내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미국의 대표적인 중국통인 데이비드 샴보 교수는 올해 초 출간한 중국의 미래(Chinas Future)라는 저서에서 중국이 당면한 문제 해결엔 정치 개혁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정치 체제는 신 전체주의, 강성 권위주의, 연성 권위주의, 준 민주주의이며 싱가포르 타입의 준 민주주의 체제가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 성공적인 개혁을 달성할 수 있는 길이지만 신 전체주의는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현재 중국 경제의 기둥인 국유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대량의 실업자 발생을 우려하는 정부에 의해 매우 더디게 실행되고 있다. 과거 고속 경제성장을 견인했던 제조업, 건설, 부동산 분야의 과도한 투자는 이제 과잉생산으로 변질, 경제 개혁의 대표적인 장애 요소로 꼽히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나 징진지(京津冀) 같은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는 거대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의 이면에도 이 공급과잉 해소라는 전략이 투사돼 있어 거품경제를 가속화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된다.몸집이 커진 중국 경제의 문제는 단순히 국내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9월 초 항저우에서 열린 G20 회의의 주요 안건 중 하나는 중국의 철강 덤핑 수출 문제였다. 중국이 과잉생산과 경기둔화의 여파로 남는 철강을 원가 이하로 수출하자, 세계 철강업계가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이다. 중국의 과잉생산 문제는 보호무역주의 논란과 함께 세계 무역분쟁의 현안이다.△공산당 통치 연속성은 영구불변의 전제전 세계은행 총재 로버트 졸릭은 포스트 덩샤오핑 시대 30년을 맡은 시진핑의 최고 임무는 중국 공산당 통치 체제를 보위하는 것이며, 경제 개혁을 포함한 모든 정책은 오직 그 틀 안에서 시행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역대 중국 지도자들은 공산당 통치체제의 안녕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절대 원칙을 대변해왔다.돌이켜보면 지난 60여 년간 중국이 걸어온 정치적 노정의 저변엔 언제나 공산당 통치라는 불변의 전제가 있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사상 초유의 체제실험도 결국 그 원칙 안에서 구현된 것이다.이 정치적 관성이 다시 한 번 시대정신과 조응해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 수 있을지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이제 중국의 성공과 실패는 두 개의 100년과 세 개의 30년을 책임진 시진핑의 리더십에 달렸다.
2002년 KBS는 베트남과 인접한 중국 대륙의 남서쪽 끝자락의 오지에 한국 전주와 지명풍습이 유사한 곳이 있다는 다소 흥미로운 내용의 다큐멘터리 중국에도 전주가 있다를 방영했다. 그곳은 중국 광시성(廣西省) 취안저우(全州)였다. 그후 한중 전주의 유사성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고 지명 외에도 유사점이 적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 양 도시는 2010년 우호교류 의향서 전달을 시작으로 각 대표단이 서로 꾸준히 왕래하는등 활발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이 앞선 한자식 명칭2011년 전주시는 양 도시 간의 역사적 연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전문 조사단을 꾸려 연구에 나섰지만, 결과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동안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됐던 백제계 유민과의 연관성은 희박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서로 일치되는 지명들은 모두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으로 일단락됐다.한국 삼국고대사 분야에 활발한 연구활동을 보이고 있는 산시(陝西)사범대학 바이건싱(拜根興52) 교수 역시 한중 전주의 유사성 및 백제사 학술 연구에 대한 견해를 묻는 본보 기자에게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살아온 양국에 동일한 지명이 존재하는 것 자체는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라면서 학술 연구란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고 객관적 태도를 유지해야 하며, 관련 근거가 부족해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굳이 무리해서 설명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답변했다.하지만 전주시 조사보고서 말미에 지적된 것처럼 몇 가지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고려 충선왕이 이곳 중국 취안저우 상산사(湘山寺)에 보낸, 후의 가득한 하사품의 의미는 무엇인지, 또 대부분 중국에서 먼저 시작되는 중국식 지명의 선후관계와는 달리 전주는 드물게 한국에서 먼저 시작됐다는 점, 그리고 후백제 멸망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바로 중국에 취안저우라는 지명이 등장했다는 점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당시 조사단장이었던 조법종 우석대 교수(55역사교육과)는 현지 조사의 시간적 한계와 유적의 망실 등으로 조사활동에 아쉬움이 있었다고 전하며 해당 의문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있음을 밝혔다.설사 한중 전주의 유사점이 모두 우연의 일치라 해도 자신의 닮은꼴이 존재한다는 점은 여전히 당사자들에게 강한 흥미를 유발시킨다. 한국 전주와 베트남과 인접해 있는 중국 변방의 광서성에 속한 취안저우 사이엔 직선거리로만 2000㎞에 육박하는 공간적 장벽이 있다. 이 두 도시의 인연 속엔 어떤 우연과 필연이 내포돼 있는 것일까.△ 취안저우(全州)취안저우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중국 남쪽의 관광도시인 광시좡족자치구 구이린시(桂林市)에 속한 12개 현 가운데 하나다. 위치는 광시좡족자치구의 동북쪽이며 총면적은 4000㎢가 넘고 인구 82만 명으로 구이린시 예하의 12개 현 중 면적과 인구면에서 제일 큰 현급 도시다.기후는 구이린시와 비슷한 아열대 기후로 연평균 온도가 섭씨 17.7도 정도로 온화하고 따뜻하지만 늘 안개가 많고 습도가 높다. 쌀과 밀, 옥수수 등의 농업 생산지로 유명하며 옛부터 구이베이(桂北)의 곡창이라고 불렸다고 한다.광시성 지역문화연구단체의 부회장을 역임한 취안저우 출신의 유력일간지 편집장 쟝친후이(蔣欽揮54)에 따르면 취안저우의 지역문화 형성엔 고대로부터 지속되어온 외래인의 유입, 전진법사의 불교 포교, 역대 관료들의 행정, 교육중시 문화 등이 바탕이 됐다고 한다.이 지방의 역사를 기록한 <상산지(湘山志)>에는 서기 937~939년 사이 이곳을 다스리던 초왕 마희범이 정부에 상주를 올려 고승 전진(全眞)화상의 이름을 본따 본래 상원(湘源)이었던 이곳 지명을 전주(全州)로 개명한 기록이 나온다. 우리나라 전주가 신라 경덕왕 시기인 서기 757년 완산에서 개명했다는 사실과 비교해보면 둘 사이엔 180여년 정도의 시차가 있는 셈이다.현재 취안저우 곳곳은 중국의 여느 도시와 다를바 없이 도로와 건물을 신설하고 개축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난 촌락에선 여전히 소를 몰며 논밭을 갈고 산양 등을 방목하는 오지 촌민의 일상이 존재하는 곳이지만, 도시민은 취안저우의 생활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몇 년 전 이곳에도 첨단 고속철역이 신설돼 교통환경도 대폭 개선됐다.△ 금산사(金山寺)취안저우 금산사 유적지가 있는 곳은 취안저우 남서쪽 방향으로 12㎞ 떨어진 진산촌(金山村) 부근이다. 유적지는 그동안 이곳 촌민의 초등 교육시설로 사용되다 안전 우려 때문에 2005년 철거되었다고 한다. 철거 당시 그나마 남아있던 고건축물도 같이 해체돼 현재 금산사 경내엔 비석 하나와 절터의 위치만 짐작할 수 있는 기단 등의 흔적만 있다.취안저우 금산사는 관련 사료에 따르면 명나라 말기에 건축된 임제종 계열의 사찰이다. 학자들은 청나라 초기, 구체적으로는 강희에서 가경년간의 시기가 최고 번성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사찰은 또한 산시성 닝우현 문화관(山西省寧武縣文化館)에 보관되어 있는 만력장(萬歷藏)이라는 불교 대장경에 광서전주금산사상주(廣西全州金山寺常住)라는 표식이 남겨져있어 해당 대장경의 초기 보관장소로도 알려져 있다.금산사 유적지의 뒤켠엔 현재 쿤산(崑山)화상과 귀이(歸一)화상의 두 개의 부도탑이 남아있다. 유독 훼손이 심한 귀이화상의 부도탑엔 최근까지 주변을 파헤친 흔적이 있어 관리인에게 물었더니 2~3개월 전 도굴 시도로 당국에 신고했지만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문화재 도굴은 오늘날 중국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기린산(麒麟山)중국 기린산은 취안저우 중심 광장에서 남동쪽으로 10㎞ 정도 떨어진 오지 고원지대에 솟아있는 해발 600미터의 산이다.현지 취재 당시 토착민 역시 거주지 주변의 산 이름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위치 확인에 어려움을 겪던 중, 운좋게 이곳 토박이로 60여년 이상을 거주했다는 주민 탕(62) 씨를 만나 그의 안내로 정상까지 등정할 수 있었다. 그는 중국 광시 취안저우의 기린산은 바로 옆의 사자산과 한쌍을 이루고 있다며 사자가 기린을 잡아먹는다는 내용의 지역 전설도 소개했다.△ 상산사(湘山寺)상산사는 취안저우라는 지역명의 유래가 되는 전진화상이 서기 756년에 세운 불교 사찰이다. 원래 이름은 정토원(淨土院)이다. 남송 고종때 상산사로 개명했으며, 조정은 칙령을 내려 초나라 남쪽 제일의 사찰(楚南第一名刹)로 봉했다. 중국 역대 왕조들은 이 사찰을 매우 중시했다고 전한다.상산사에는 광시성에서 제일 오래된 불탑 중의 하나로 꼽히는 높이 26m, 직경 6.8m에 달하는 먀오밍탑(妙明塔)이 아직도 건재하다. 1944년 무렵 전란으로 사찰 내 유적이 대부분 화재로 소멸되었지만 이 탑만은 화를 피할수 있었다고 한다.<상산지(湘山志)>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 국왕이 이곳 상산사에 사신을 파견하여 6가지의 보물을 하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시기적으로는 고려 충선왕에 해당한다. 고려와 이 사찰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 규명은 추가적인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완산(完山)취안저우 도시 동남단 강가에 위치한 산. 완산은 취안저우 서쪽과 남쪽에서 흘러오는 세 물줄기가 북쪽을 향한 상강(湘江)으로 합쳐지는 곳에 홀로 우뚝 솟아있다. 원래 보위산(鉢盂山)으로 불리웠지만 명나라때 지방 수령 고린이 지금의 완산으로 개명했다. 완산 정상에는 최근에 지어진 레이공탑(雷公塔)이 있다.
중국 다롄시(大連市) 뤼순감옥은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조선의 항일 운동가들과 관련이 깊은 곳이다. 김월배(49) 다롄외국어대 교수의 도움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매장 추정지를 둘러보고 뤼순일본관동법원 유적지와 중국 관계자 인터뷰 등의 추가 취재를 진행했다.△뤼순감옥 박물관뤼순감옥에 입장하면 우측에 동관 입구가 보인다. 바로 옆은 안중근 의사 취의지(就義地:순국장소)이다. 이곳은 안의사가 1910년 순국할 당시 사용되던 뤼순감옥의 초기 형장이다. 나중에 형장이 다른 곳으로 이전되면서 세탁소로 쓰이다가 현재의 안중근 의사 취의지로 복원됐다.동관은 주로 정치범을 대상으로 하며, 방 한칸당 보통 10명 이상이 수용됐다고 한다. 죄수의 국적도 다양해서 모든 감방 벽에는 한중일 3개 국어로 쓰인 감방규칙이 걸려 있었다.안 의사는 수감 당시 일본 간수나 관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들의 요청으로 종종 휘호를 써주기도 했다.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2009년에 건립한 감옥내 추모관과 국제 전시관에서 그 당시 흔적들을 볼 수 있다. 뤼순 감옥에는 안 의사의 감방 외에도 단재 신채호 선생과 우당 이회영 선생이 수감당한 감방들이 특정돼 있다.뤼순감옥은 일본 운영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감옥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감옥내 면적 2만6000㎡였지만, 외부시설을 전부 합하면 총면적은 22만6000㎡에 달했다. 동시 수감가능 인원은 2000명이었다고 한다.한국인들의 뤼순감옥 방문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39년간 뤼순감옥 박물관에서 근무하며 안중근 의사에 관한 저술을 남기기도 했던 판마오중(藩茂忠62) 전 뤼순감옥 박물관 진열주임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의 뤼순감옥 방문이 해마다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며 정치인들과 학자들뿐 아니라 어린 학생들까지 이곳을 찾는 등 그들의 열정이 인상 깊다고 전했다. 또 뤼순은 어느새 항일운동을 기리는 한국인들의 성지가 되었다고 평했다.△안중근 의사 매장 추정지일본 당국은 안 의사 사형 집행후 시신 인도를 거부했다. 당시 하얼빈 영사는 관동도독부에 안 의사 시신을 가족들에게 인도하지 말라는 전문을 보낸다. 유언에 따라 하얼빈에 조성될 안 의사 묘소가 조선 독립운동의 메카로 승화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안중근 뼈대찾기 운동본부 중국지회장이기도 한 김월배 교수의 도움으로 박물관에서 1.2km 남짓 떨어진 둥산포라고 불리우는 안 의사 유해 매장 추정지에 들렀다. 현재 보훈처가 발굴을 추진하고 있다.김 교수는 안 의사의 경우 좁은 나무통에 매장한 일반 사형수와는 달리, 넉넉한 침관(寢棺:반듯이 누운관)을 사용하는 등 몇가지 특징이 있다고 했다. 또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앞서 지표투과 레이더 같은 기초조사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또한 김 교수는 광복후 70년이 넘도록 아직도 안 의사님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시지 못하고 있다며 "일반 국민들께서도 단서가 될만한 관련 사료를 발견하신다면 서울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으로 꼭 보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뤼순관동법원 유적지뤼순감옥 박물관에서 남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뤼순관동법원 유적지가 있다.이곳의 정춘매(44여) 관리 주임은 뤼순관동법원도 항일 운동의 역사적 의의가 큰 곳이라며 관광객들이 뤼순감옥뿐 아니라 이 곳에도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안 의사는 이곳에서 2월 7일부터 2월 14일까지 총 8일동안 모두 6번의 공판에 출석했고 2월 14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후 안 의사가 항소를 하지않아 3월 26일 뤼순감옥에서 그대로 형이 집행된다. 안 의사는 원래 1층 지방법원에서 공판을 받아야 했지만 방청객이 너무 몰려 공판은 300명을 수용할수 있는 2층 고등법원실에서 진행됐다. 안 의사는 여섯 차례의 공판 과정을 통해 이토 히로부미 저격의 당위성과 동양 평화론을 역설했다. 2층 고등법원실에는 당시 재판정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동양 평화 염원 이뤄지길1909~1910년의 동아시아는 격동의 시대였다. 거대한 시대사적 변혁 앞에 적체된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속절없이 몰락해가고 있었다. 특히 조선은 위정자들의 무능과 체제 개혁의 실패로 국운이 그야말로 풍전등화였다. 동아시아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서구 열강의 틈에서 절치부심하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한반도 제국주의 패권의 기초를 착실히 닦고 있었다.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는 이런 서사적 흐름속에 등장했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한 국가와 민족의 존엄을 짓밟는 제국주의 침탈 행위에 대한 그 나름의 단죄였으나, 정작 그가 순국직전 뤼순 감옥에서 제창한 것은 한중일 삼국의 평화로운 공존을 염원하는 동양 평화였다.약육강식의 격동기에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염원하며, 인접 국가간의 분쟁에 대한 공통의 해법을 성실하게 모색하자는 그의 기본 사상은 지금도 강한 울림이 있다. 그의 생전 소망대로 언젠가 한중일 3국이 평화롭게 협력해 공존공영하는 그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30여년간 중국을 견인해온 경제성장의 엔진이 점차 식어가고 있다.지난해 10월 열린 제18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향후 5년간 중국 경제성장률의 마지노선을 6.5%로 제시했다고 한다. 회의 개최를 일주일 앞두고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3분기 GDP 증가율은 6.9%였다. 최근 중국 정부가 내놓는 통계의 신뢰성 논란에도 2015년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공식적으로는 7% 언저리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현재 중국의 전반적인 경제지표는 아직 양호한 편이다. 특히 외환보유고는 최근 위안화 절하여파로 약간의 자본 유출이 있었으나 작년 12월 현재 아직도 3조 5000억달러에 달한다.앞으로 중국은 경기침체와 과잉생산등을 해결하기 위해 3대 국가개발 사업(일대일로, 징진지, 창장경제벨트)을 추진함과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경제구조를 내수 소비형으로 재편하기 위해 구조개혁에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과잉 생산, 부동산 버블, 기업 생산성 저하, 과도한 부채 등은 중국이 향후 구조개혁에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다.△사회통제 강화지금 중국에서는 온라인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경우 최대 7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법이 지난해 11월부터 시행중이다. 또 개인이나 민간조직이 사사로이 날씨를 예보하는 행위에 대한 단속법도 실시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온라인에서 날씨를 예보하는 행위도 사안의 경중에 따라 최대 5만위안(한화 약 900만원)을 벌금으로 내야한다.현재 당국은 사회 전반에 걸쳐 사회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일체의 행위에 대한 검열 및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주요 대학가에서 쓰이는 교재와 수업에서도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사상에 대한 선전과 학습이 다시 강조된다. 경제성장률 하락에 따라 그동안 침잠해있던 사회불안 요소들이 심화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중국식의 제도적 장치들이다.△1인 체제 확립지난 3년간 시진핑 국가주석은 반부패 기치를 내세워 공무원뿐 아니라 각 계파 고위층에도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 최고지도부에 해당하는 상무위원급 인사조차도 부패혐의로 단죄하는 전례없는 파격까지 선보였다. 지난해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거행된 대열병식에서는 각 계파의 원로들을 모두 출연시킴으로서 리더십의 안정을 대외에 과시하며 국가권력의 핵심인 인민해방군에 대한 재편 공약을 발표했다. 올해부터는 인민해방군에 대한 전면적 개혁이 시작될 것이다.중국 전문가들은 시진핑의 권력은 이미 덩샤오핑을 능가한다고 보고 있다. 확실히 덩샤오핑 사후 20여년간 집단지도체제로 운용되어온 중국의 통치체제가 다시 1인 체제로 변모하는 양상이다. 과거 총리와 권력을 분점했던 전임자들과 달리 시진핑 주석앞의 리커창 총리의 존재감은 너무도 미미하다. 일설에는 리 총리가 지난해 6월의 증시공황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다음 회기때 물러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시진핑 1인 체제는 2017년의 제19대 인민대표회의를 거쳐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과감한 대외 정책중국은 현재 고속성장기에 축적했던 국력을 바탕으로 대외적으로 그 어느때보다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유라시아 교통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인 일대일로 추진,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 창설, 유럽연합 규모와 맞먹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CP) 주도 등의 경제적 행보와 더불어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주변국을 포함한 미국, 일본과의 잦은 군사적 마찰까지 중국의 굴기엔 거칠것이 없어보인다.대외적으로는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중국이지만, 대부분 국내문제와도 긴밀하게 맞물려있다. 중국판 마셜 플랜으로도 불리는 일대일로 사업의 경우, 순수한 외연 확장이 아닌 중국내 과잉생산과 건설 경기침체등의 내부문제 해결의 필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중국은 2014년부터 남중국해에 위치한 스프래틀리 군도에 인공섬을 조성하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남중국해는 전세계 해상 물동량의 1/3이 오가는 주요 항로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의 2010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석유 예상매장량만 230억 톤에 달하는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평균수심이 깊어 중국입장에서는 하이난다오에 위치한 해군 기지의 활용과도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각 국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남중국해 분쟁은 주변국들에게 향후 굴기하는 중국 패권주의의 구체적 모습을 가늠할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사회적 난제 해결돼야앞으로 중국은 경제구조의 질적 재편과 성장률 저하로 불거질 수많은 사회적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당독재하의 강력한 리더십과 고속성장기에 축적된 천문학적 자본이 현재 중국이 가진 통치력의 두 축이지만 여기에는 정치체제의 낙후와 극심한 빈부격차라는 이면이 공존한다. 자칫 문제가 체제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엄존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전환기의 기로에 선 중국이 과연 어떤 선택으로 무슨 미래를 그려갈 것인지 장담하기는 어렵다. 공산당의 집권을 최우선적 가치로 놓고 극단을 오가던 경직된 과거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편으로는 개혁개방을 기치로 30여년간 고속성장을 이룬 유연함도 경시할 수 없다.지금 중국은 서로 상반된 이념과 사상, 정치와 경제체제를 어지럽게 섞어놓은 미증유의 도상에 서 있다. 섣부른 비관과 낙관은 아직 조심스럽다. 그들의 향방이 한반도의 정세에 끼칠 영향을 고려한다면 좀 더 신중하고 냉정하게 중국의 전환시대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과거 중국의 위상을 소개할 때 앵거스 매디슨이라는 영국 경제 사학자를 빼놓을 수 없다. 세계사적 범위의 경제통계 연구의 권위자인 그는 기원년부터 산업혁명 시기까지 줄곧 세계 경제규모의 30% 내외를 점유해 온 거대 공동체로서 중국과 인도를 지목한다.중국이 인구 10억이 넘는 통일된 공동체로 30여년간 평균 10%에 가까운 급속한 경제 성장을 달성한 사실은 분명 역사적으로도 미증유의 사건이지만, 중국의 부상은 그들 본연의 위치를 되찾아 가고 있다는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중국 경제지난 3월 31일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는 취임 후 외신과의 첫 인터뷰를 가졌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즈의 아시아 지역 편집장 데이비드 필링(David Philling)은 인터뷰 말미에 중국 당국이 7%내외로 정한 목표 성장률과 경기 하강에 관한 다소 민감한 문제에 대해 질의했다.리 총리는 경기 하강의 압력이 존재하는건 사실이지만 취업률은 아직까지 별 문제가 없다며, 이미 GDP 총량이 10조 달러를 넘는 국가가 7% 성장률을 유지하는건 쉽지 않지만 연말에 발표될 결과로 평가하라는 말로 마무리하며 성장률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총리도 기자도 성장률에 유독 민감한 이유는 그것이 중국 경제가 역사적인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대표적인 신호이기 때문이다.중국이 과거 10%대의 성장률을 달성하던 시기의 경제정책의 핵심은 수출과 투자였지만 지금은 소비와 생산성 향상, 제도 개혁, 산업 고도화가 주된 축이다. 당국은 내수 진작에 필요한 가계 소득의 증가를 위해 노동자의 임금 인상도 기꺼이 감수하며 내수 성장을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임금 인상에 따른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혁과 산업 고도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7% 성장률은 바로 이런 경제구조의 질적 전환기(신창타이新常態)의 배경 하에 제시된 중속 성장률이다.전문가들은 최근 중국 지도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 정책도 내부 과잉생산설비의 해소, 신성장 동력 및 산업 고도화 모색, 저개발 지역의 인프라 확충, 4조 달러에 가까운 외환보유고의 적절한 운용처 등의 해결과도 맞닿아있다는 점에서 전환기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한다. 즉 시진핑 지도부의 경제 및 대외전략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정책이 바로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정책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최근 싸드와 연관되어 한국의 가입여부가 주목받았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역시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금융 플랫폼으로서의 기구다.△민족주의저명한 홍콩의 시사평론가 린허리(林和立)는 최근 자신의 저서 시진핑 시대에서의 중국 정치(Chinese Politics in the Era of Xi Jinping)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시진핑을 강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성향을 가진 공산당 지도자로 정의하며 그가 얘기하는 중국의 꿈 중 하나는 2049년까지 경제, 군사분야에서 미국과의 격차를 최대한 줄이는데 있다고 전망했다. 또한 시진핑은 중국이 2049년까지 남중국해를 포함한 아태 지역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감소시켜 적어도 아태 지역의 맹주가 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현재 베이징 당국은 금년 9월 3일 열리는 것으로 알려진 전승 70주년 기념 천안문 대열병 준비에 한창이다. 국무원은 이미 기념일 당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번 대열병은 횟수로 따지면 15차에 해당하지만 개혁개방 이후를 기준으로 1984년, 1999년, 2009년의 대열병에 이은 네번째 행사다.이번 대열병은 여러모로 눈길을 끈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국경절 35년을 기념하여 건국이래 최대 규모로 실시한 1984년의 대열병을 제외하면, 그간의 행사는 10년 단위로 치러졌던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전승 70주년을 기념한다는 것에서 명분도 과거와는 거리가 있다. 또한 모든 대열병의 거행 일자가 10월 1일 국경절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9월 3일이라는 날짜 역시 이례적이다.△반부패 운동지난 2014년 중국 당국은 본격적인 반부패 정책이 시작된 지난 2013년도 한 해 만에 약 18만명에 달하는 당원과 간부들이 처벌받았다고 밝혔다. 연초 중국 최고인민감찰원이 발행하는 지엔차르바오는 반부패 정책과 관련한 분석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는 성부급 이상의 고위 간부를 기준으로 18대 지도부 출범 이전과 이후의 부패사범 적발 건수를 비교하며 전자는 63년간 총 145명, 후자는 2년여간 68명으로 연간으로 환산하면 18대 이후의 적발건수가 무려 10배나 많다고 분석했다. 18대 시진핑 지도부 출범후 중국의 반부패 정책이 얼마만한 기세로 시행되었던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최근 반부패 운동에 대한 중국 고위층의 저항전선이 형성되었다는 분석이 나오고있다. 얼마전 시왕(시진핑과 왕치산의 약칭)이라고도 불리며 반부패 정책의 선봉에 서있는 왕치산(王岐山)기율위 서기는 역사의 종언의 저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를 비롯한 일본계 인사를 중난하이로 초청해 대담하는 자리에서 조직내 자기정화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아무도 가지않은 길돌을 더듬어 강을 건너다(摸着石河)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전인미답의 길에서 앞뒤를 살펴 신중하게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개혁개방 시기 덩샤오핑은 이를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흑묘백묘론과 더불어 실용주의 국가정책의 지침 중 하나로 삼았다.중국인들은 종종 정책으로서의 실용주의를 수식할 때 우디시엔(정해진 틀이나 한계가 없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여기엔 공산당 일당제를 견지한다는 전제 하에 실행되는 정책의 개방성과 함께 체제 안정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결연함이 담겨져있다. 개혁 개방과 천안문 사태, 남순 강화로 이어지는 덩의 시대사적 정체성도 이 우디시엔의 이해와 맞닿아 있다.시진핑을 위시한 현 18대 중국 지도부의 고민도 덩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 경제적으로 중대한 전환기에 들어선 시기에 중국의 꿈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적 가치가 다른 보편적 요소와 어떻게 균형을 이루고 구현될 것인지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어렵다.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모호성과 배타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14억의 거대 공동체를 이끌고 전인미답의 길을 가는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에게 덩샤오핑의 고뇌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경제대국으로 변모한 중국의 위상과 영향력은 한국의 ‘요우커(游客:중국 관광객)’ 특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전문가들은 요우커들이 일으키는 소비는 단순한 관광소득 차원을 넘어 향후 한국 내수를 이끌어갈 중요한 동력이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차이나 머니의 영향력이 앞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심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차신준 북경대학교 대학원 객좌교수는 한·중 관계의 미래는 인재 양성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또한 차 교수는‘새만금 한·중 경제협력단지’가 전북지역 경제를 비롯한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하고 구체적으로 조언했다.- 한·중간의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중국과의 경쟁은 결국 인재 전쟁으로 귀결될 것이다. 중국시장의 활용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자산은 인재다. 무엇보다도 중국에 특화된 실력있는 인재가 필요하다. 대중국 인식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중국에는 이제 일류가 들어와야 한다. 일류가 아니라면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 궁극적으로 인재 양성에 대중국 전략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새만금 얘기를 하지 않을수 없다. 지난해 한·중정상회담에서 새만금 한·중경협지구안에 중국이 합의하면서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새만금 개발에 중국 측의 참여와 협력은 분명 좋은 호재다. 명심해야 할 것은 진정성 있는 중국의 협력이나 투자는 국가 정책의 큰 틀에서 분리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질적 성과를 이끌어내고 싶다면 무엇보다 현재 중국의 정책부터 분석해야 한다. 또 중국 산업의 전체적인 흐름과 기업들의 동향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이뤄질 때 중국과 연계한 새만금 개발의 정확한 청사진을 그릴 수 있다. 정밀한 계획없이 막연하게 어떤 판만 만들어주면 중국 기업들이 알아서 투자할 것이고,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무슨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절대 금물이다. 중국 자본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명확한 비전과 구체적 계획없이 무작정 중국과 협조하면 길이 열린다라는 접근은 너무도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 자신이 주체가 되는 세밀한 프로세스를 구축하지 않는다면 결국 중국 측의 요구에 휘둘리게 된다.”- 새만금 사업은 여태껏 숱한 방향 수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구체적 개발 방향은 아직도 협의중이다.“그렇다면 더더욱 새만금 프로젝트의 성격을 정확히 규명하고 구체적이고 확실한 계획을 세우는게 일의 순서다. 중국 자본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대개의 중국 자본은 욕망의 평균치가 높으며 긴 안목을 가지고 있다. 만약 전라북도가 중국과 연계한 어떤 장구한 사업을 추진한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중국의 정책과 경제 동향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는 상설 연구팀의 조직이다. 중국이 어떤 정책을 발표한다면 구체적으로 무슨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전북이 추진하는 사업과 관련한 중국측 자료를 축적해놓고 전체적인 흐름을 수시로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중국 정책은 연속성이 있기에 요령만 파악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작업은 아니다. 과거 다롄시 투자 고문을 맡았었던 적이 있다. 투자유치를 위한 전시성 홍보 행사가 넘쳐났다. 적당히 양해각서(MOU) 형식의 협약만 받으면 그것이 실적으로 올라가는 구조라 내용 확인도 하지 않고 백지에 도장만 받아가서 나중에 문서를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대단한 행사같지만 이런 것들은 결국 아무런 실체도 없다. 실질적 내용 없는 전시성 홍보 행사는 아무 소득없이 오히려 중국 측에 주도권을 주고 끌려다니게 될 빌미만 제공하게 될 수도 있다.”- 새만금 한·중 경협지구 개발에 대한 구체적 조언을 한다면.“중국은 현재 큰 규모의 체제 변환을 시도하는 중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시기에 중국이 필요한 여러 기술들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추진하는 7가지 신성장 산업분야가 한국과 서로 겹쳐 경쟁이 예상되는 부문이 있지만 완전히 동일하진 않다. 구체적인 면을 연구한다면 분명 서로 보완관계가 되는 항목이 존재할 것이다. 앞으로 한국으로서는 그것을 찾아 중국과 협력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새만금 한·중경협지구를 미래 신성장 산업의 상호 협력단지로서 활용하는 것도 한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 양국이 서로 협력할 부분이 있다면 새만금이라는 한 장소에서 그것이 집중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신성장 산업이 어떤 것인지, 거기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연구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신성장 산업 협력단지가 조성되고, 향후 새만금이 한중 신성장 협력의 중심지역으로 부상한다는 구상이라면 분명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겉모양만 번드르르한 거창한 비전만으로 접근하는 건 아무 실리도 없다. 중요한 건 현실성 있는 내용이다. 기왕 중국과 협력하기로 했다면 정부 차원에서 중국 전문 연구조직을 발족해서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파악하고 꾸준히 중국 측과 접촉할 것을 조언하고 싶다. 중국인들은 이윤에 대한 본능을 유전적으로 타고난 사람들이다. 제안이 타당하다면 결국 움직일 것이다. 새만금 한·중 경협지구는 양국 정부가 참여와 협조를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진행하는 중요한 한·중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성공한다면 한·중관계에 있어서도 길이 남는 사례가 될 것이다. 부디 새만금 사업이 첫 단추를 잘 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끝〉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지 올해로 23년째다. 그간 양국은 정치적으로는 미온적 입장을 견지해왔으나, 경제적으로는 전략적 협력동반자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만큼 밀접한 관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한중 FTA의 타결로 이같은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현재 중국의 공식적인 GDP 규모는 10조 달러로 세계 2위에 해당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2014년 실질 구매력(PPP) 기준으로 중국은 세계 최대 경제국으로 부상했다고 추정했다. 최근 성장률 둔화로 약간 빛이 바랬으나, 1978년 개혁개방이 시작된 후 30년 동안 평균 10퍼센트 수준의 경이로운 성장율을 유지하며 고속 성장을 거듭한 결과다.이런 중국의 비상을 1980년대 후반부터 직접 목도한 중국 전문가가 있다. 차신준 북경대학교 대학원 객좌교수다. 중국 경제 현황을 듣고 전북경제 발전의 시사점을 얻고자 지난해 12월 25일 차 교수를 베이징 자택에서 만났다. 차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한중 수교가 벌써 20여년이 지났다. 한국 사회의 중국에 대한 이해도 그만큼 깊어졌다고 보는가.한국인들은 중국만큼은 스스로 잘 안다고 자부하는 분들이 많은것 같다. 문화적인 동질감과 소득격차에서 오는 우월감이 묘하게 겹쳐 그런 자신감을 만들어 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같은 경우는 중국과 26년간 관계를 맺고있지만 알면알수록 더 조심스러워진다. 몇 년전 한국 경영자 총협회에서 열린 연례포럼에 중국을 주제로 토론과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받은 느낌은 아직도 한국은 중국 사회를 너무 피상적이고 기성화된 틀에 맞춰 해석하려 한다는 것이다. 중국을 질적으로 깊이 이해하는 사람은 아직도 부족한게 현실이다. 숱한 한국 기업들이 중국 사업에서 고배를 마시는 주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중국인들과 어떤 사업을 추진하다보면 이들은 확실히 우리와 유전인자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수 있다. 한국인이 하나를 생각할 때 그들은 열가지의 복안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인이 어떤 분야에서 중국과 협력관계를 시작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걱정이 앞선다. 평소의 2~3배는 준비하고 대비해도 만만치 않은 것이 중국인과의 비즈니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최근 중국과 관련돼 부쩍 화제가 되는 단어가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 새로운 정상 상태)다. 중국이 새로운 체제로 들어섰음을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용어가 됐다. 현재 중국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것인가.중국은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위한 정리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제 낮은 성장률의 중속 성장 시기에 접어들었음을 대외에 공표하고 미래를 위해 경제 사회 구조를 전면적으로 개선하려는 작업에 착수했다. 지금까지 중국이 저임금을 중심으로 한 노동집약적 산업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이제는 내수 확대와 기술 개발, 새로운 성장 산업을 중심으로 체제 변환을 시도하고 있다. 시진핑의 이 개혁이 성공한다면 중국은 그간 이뤘던 경제적 성과를 마무리하고 한차원 높은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한국으로서는 산업 부문에서 중국과의 진짜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중국이 추진하는 신성장 산업의 상당 부분이 한국과 서로 겹친다. 이미 산업 각 부문에서 협력관계에서 경쟁관계로 바뀌는 추세로 들어섰다. 기술 격차도 거의 좁혀진 상황이다.- 오랜기간 끈기를 가지고 일관된 국가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중국의 정치인들을 보면 우리와 대비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중국은 냉전이 끝난 다음 국제 정치무대 속에 비서구 국가로 들어가서 독자적으로 세계 질서를 만들고 좌우할 수 있는 대열에 유일하게 합류한 나라다. 이런 나라를 다스리는 중국 정치인들은 기본적으로 고도의 정치 기술자들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한때의 반짝 인기에 영합해 국정의 중심으로 진입할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그 구조부터 다르다. 중국 공산당은 최고의 엘리트 간부 후보들을 뽑아 전국 각지로 파견해 말단에서부터 수십년동안 단련시킨다. 중앙의 간섭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변방으로 파견해 통치력을 가늠하기도 한다. 중국 정치인들은 이런 혹독한 검증과정을 통해 중앙 정치무대로 진입하는 것이다. 또 중국은 정책과 리더십의 연속성이 강한 나라다. 내부적으로는 어떤 알력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큰 단절과 마찰없이 이전 지도부의 공과를 물려받아 정책 집행의 속도와 효율성을 극대화 시킨다. 장구한 국가 비전과 정책이 지도부가 바뀐다고 다시 급조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하나.중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 맞다. 한중 수교 초창기 때도 그랬고 중국이 선진국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워낙 땅이 넓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의 단계가 서로 분화되어 각지에 공존해 있는 희귀한 나라다. 문화적으로도 이질감이 크지 않을뿐더러 거리도 가깝다. 전세계에서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진 나라가 한국이다. 중국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많다.● 차신준 교수는 한중 수교 준비 실무 역할, 특화된 중국 전문가 양성1959년 서울에서 출생한 차신준(車信俊) 북경대학교 대학원 객좌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차 교수는 1989년부터 남덕우 전 총리, 박성상 전 한국은행 총재 등을 도와 민간 학술교류 차원에서 한중수교를 준비하는 실무 작업에 참여하며 중국과의 인연을 시작했다.그 후 한국외국어대 교수, 미국 East West Center 연구원, 국제연합 유엔개발계획(UNDP) 연구원, 다롄(大連)시 인민정부 고문, 중국 시베이대학교(西北大學校)와 둥베이재경대학교(東北財經大學校) 경제연구소 초빙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중국 상하부의 다양한 면모를 접했다.최근에는 한국 경영자 총협회 중국지역 교육 총괄교수를 맡아 기업 단체 경영인들의 중국 이해를 돕기도 했다.차 교수는 또한 10년 전부터 BSE (Beijing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라는 학술 단체를 운영하며 한국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특화된 중국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한 그의 강의를 거쳐간 학생은 벌써 2000여명을 넘어섰다.
중국의 기업 자문업체인 허쥔컨설팅(和君創業)의 리쑤(李肅) 총재는 지난달 24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새만금은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며 한-중 경협단지와 관련해 이른 시일 내 확실한 실체가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새만금에 대한 중국 기업들의 동향은 어떤가.대다수 중국 기업들은 지난 9월 2일 500대 기업 고위급 포럼에서 새만금에 관한 자료를 처음 접했을 것이다. 그들은 현장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지금 중국 기업들 사이에서 제일 관심있는 주제가 바로 자유무역지구다. 현재 중국의 모든 기업들이 상하이(上海)와 첸하이(前海) 자유무역지구의 부지 확보를 위해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기업의 부지 확보는 조건이 상대적으로 까다롭다. 새만금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해외 자유무역지구다. 국내보다 더 좋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또한 해외 진출 기회를 모색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던 기업가들은 상당히 고무된 반응을 보였다.- 새만금에 중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새만금이 중국 기업의 투자유치를 위해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자본에 대한 규제 완화다. 중국은 지금 자본이 넘쳐나지만, 금융 당국은 이를 통제하기에 바쁘다. 중국은 국가 주도 경제체제의 특성상 금융부문에 현실과 유리된 억압적 요소들이 많이 작용하고 시장에는 이로 인한 모순이 존재한다. 현재 홍콩의 혼란은 새만금 금융지구의 발전 기회가 될 수 있다.- 금융 특구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면.첫째, 위안화에 대한 개방이다. 즉 이 특구지역에서는 위안화와 원화의 직거래, 그리고 다른 외화의 직거래를 허용하는 것이다. 둘째, 한국의 증권거래소를 새만금으로 옮겨 양국의 주식시장 통합 운영을 추진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한다. 지금 중국에서는 북방에 개설할 새로운 증권거래소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새만금의 증권거래소와 연계한다면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요컨대 한-중간의 후강통( )이다. 중국은 과거 독일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와도 이와 비슷한 구상을 했던 적이 있다. 셋째, 새만금내 외자기업 설립의 간편화 및 조세 혜택이다. 넷째, 금융관련 창업 특구지역의 설립이다. 마지막으로 스위스식 비밀주의 시스템 구축이다. 물론 범죄와 연루된 것으로 밝혀진 자금은 예외조항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제도를 보장한다면 중국 기업들은 새만금으로 그야말로 거대한 밀물처럼 밀려들 것이다. 저들 중 어떤 항목은 분명 민감한 요소가 있을 것이다. 큰 발전을 원한다면 그만큼 개방적이고 전향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는 중국의 관광산업 동향에 대해 말해달라.지난 9월 2일 충칭에서 열린 중국 500대 기업 고위급 포럼(中國500强企業高峰論壇)에서 새만금 사업과 더불어 한국 서비스 산업 진흥 계획이 소개됐다. 당시 나는 중국측 인사로서 평을 요청받아 여행 산업에 대한 내 견해를 밝힌바 있다. 중국 관광산업의 핵심은 소위 징관(景觀볼거리)을 만드는 것이다. 전국의 모든 도시들이 징관을 조성해 전세계 관광객이 방문토록 하는 것으로 대규모의 투자가 요구된다. 1992년 만리장성 주변 지역에 20여개의 징관 조성 계획이 진행됐는데 다 실패로 끝났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밍스산링(明十三陵)이라는 징관이 탄생한 것이다. 통상적으로 1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 등의 문화적 자원이 축적돼야 하나의 징관이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은 지난 30년간 이 징관을 만들기 위해 전세계 관광 산업의 본보기를 적용하며 수많은 시도 끝에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했다.- 중국 내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우시(無錫)에 있는 링산다포(靈山大佛)가 좋은 예다. 원래 이 곳은 황무지였다. 개발 당시 자본금이 부족해서 기부금을 조성해서 진행하기도 했다. 결국 2008년에 링산판궁(靈山梵宮)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전세계 관광객들이 이 징관을 보기 위해 우시를 방문한다. 징관을 만들어내면 다음 단계로 관광객들을 어떻게 일주일간 머물게 하여 소비를 일으킬지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건강, 교육, 교류등 모든 테마를 활용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주관광(移居旅遊) 단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이주 관광 사업에 성공한 곳이 있는가.미국의 플로리다 주는 1926년 부동산 시장이 붕괴하고 100만명 밖에 남지 않았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200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바로 이주관광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초창기에는 잠깐의 여가를 즐기기 위한 관광객들이 대부분였지만, 점차 은퇴자들이 노후를 위해 주택을 구매하고 이주를 시작했다. 그 후 별다른 공업기반 시설도 없었던 이 곳에 점차 고도의 기술 산업들이 자리잡았다. 미 항공우주국(NASA)등 항공 우주 산업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플로리다 주는 미국 전체 주를 통틀어 인구와 GDP가 각각 5위권 안에 드는 지역으로 성장했다. 이주관광객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플로리다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중국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 제주도를 빼놓을 수 없다. 중국 관광객들뿐 아니라 아예 주택을 구입해 거주하는 중국 이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이주 열풍이 제주도의 부동산 가격을 급속도로 상승시켜 최근에는 제주도 지방정부의 규제 움직임도 있었다. 크게 보면 중국 자본의 국내 유입에 대한 우려와도 맞닿아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최근 2년간 중국내 모든 지역은 서로 어떻게 하면 다른 지역의 인구를 끌어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일단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든 소비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제주도를 보면, 제주도는 관광에 대한 이해를 잘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지역의 발전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 땅을 구하고, 이주함으로써 시작된다. 만약 1000만 명의 중국 부유층이 제주도에 주택을 보유한다면 이에 따른 경제 성장은 필연적이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직업을 찾아 돈을 벌러가는 것이 아니라, 돈을 소비하러 가는 것이다. 관광지로 유명한 중국 남부의 하이난다오(海南島)는 오로지 겨울시즌에만 잠깐 관광객이 몰린다. 여름에는 텅 빈 곳이 된다. 하이난다오의 가장 큰 고민도 여기 있다. 한번 눈요기하고 가는 것은 관광의 가장 낮은 단계이며 단기 체류는 중간 단계다. 이주 관광으로 지속적인 소비시장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다. 한국은 앞으로 1000만에서 2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이주관광 수요에 대한 연구도 해야한다. 우리는 항구도시가 이주관광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이 이주관광객들은 내륙 여행지를 찾아가 또 다른 소비를 일으킬 것이다. 이주관광객들의 소비로 인한 현지의 경제적 쇼크를 우려한다면 그들의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일종의 특구을 만드는 수 밖에 없다. 외국인들은 특정한 구역에서만 물건을 구매할수 있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새만금 개발에 이런 폐쇄적인 마인드로 접근한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만금 사업과 관련해 덧붙일 조언은.아직 모든 것은 그야말로 머릿속의 구상에 불과하다. 새만금 내부는 아직 공사가 완료되지 않았다. 한-중 경협단지 부지도 확정된 것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의 논의는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른 시일 내에 좀 더 확실한 실체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끝〉
세계 무대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는 가운데 전북일보가 중국 현지 특파원의 눈과 귀를 통해 G2의 한 축인 중국 대륙의 위상과 현주소를 점검해 보는 연재물을 매달 한차례 정도 싣습니다. 첫 번째 기획 취재의 대상은 새만금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중국 기업자문업체인 허쥔컨설팅(허쥔촹예和君創業)의 리쑤(李肅) 총재입니다. 중국 최대 민간 싱크탱크를 움직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리쑤 총재는 지난달 13일 새만금 현장을 둘러본 뒤 송하진 도지사를 예방하고 새만금은 미래 동북아 물류와 첨단기업 허브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며 새만금의 미래 가치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본보 장서묵 중국 특파원이 중국 현지에서 리쑤 총재를 인터뷰한 내용을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중국 허쥔촹예의 리쑤 총재는 중국 본토에서 원로로 인정받는 저명한 기업 자문가중 한 명이다. 그는 개혁 개방 초창기인 1986년부터 베이징시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부소장직을 맡아 세계경제도보(世界經濟導報)와 연계한 연구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당시 중국에서 생소한 분야였던 기업 자문의 영역을 개척했다.2000년 리쑤는 인민대학 금융증권 연구소 집행소장이었던 왕밍푸(王明夫)와 허쥔촹예 연구자문회사(和君創業硏究咨詢有限公司)를 설립하고, 각 분야 유수의 기업들로부터 연구 자문을 의뢰받아 명성을 높였으며, 자문 업계의 원로답게 중국 경제와 산업 전반의 발전상에 대한 이해가 깊다. 특히 그는 지난 2002년 북한 김정일이 신의주 특구 개발 계획을 추진할 때, 특구 행정장관으로 임명된 양빈(楊斌)측 자문단으로도 참여한 경력이 있다.그와의 인터뷰는 허쥔촹예 측과 몇차례 조정을 거친후 최종적으로 지난달 24일 월요일 오후 3시 베이징시 차오양취(朝陽區)에 위치한 차이푸중신(財富中心)에서 약 1시간 30분간 진행됐다. 기자 일행을 맞이한 리 총재는 지난달 중순 한국 방문 일정과 지난 경과에 대해 간략히 언급했다. 그는 한국 방문에서 진행된 각계 인사들과의 교류로 새만금에 대한 한국의 높은 기대와 관심, 그리고 구체적인 사업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새만금 사업은 본질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경제개발을 목적으로 실시하는 대규모 개발 사업이다. 현재 전라북도는 한국에서 경제규모가 거의 최하위에 가까울 정도로 빈곤한 지역이다. 수십년간 갖은 난항을 겪던 새만금 사업은 이제 중국과 연계돼 전환점에 서있다. 이와 관련 전라북도가 참고할만한 사업 모델이 있는가.전라북도의 새만금은 30여년전 농업지구 확대를 목적으로 간척 개발이 시작됐으나 몇 차례 큰 수정을 거쳐 오늘날 복합산업단지 추진모델로 확정된 걸로 알고 있다. 기존 계획의 수정이나 지금 중국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려는 것도 결국 빈곤하고 낙후된 지역의 경제 활성화와 연관된 것이다. 나는 이 관점에서 30여 년전 중국 광둥성(廣東省)이 전라북도가 참고할 수 있는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최남단 변경에 위치한 광둥성은 개혁개방전만 하더라도 중국에서 굉장히 낙후된 지역이었다. 1979년 중국은 광둥성 내 면적이 2.14㎢정도 되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서커우(蛇口)지역을 일종의 개혁개방 시범지역으로 삼아 개발을 시작했다. 이 서커우 개발구의 급속한 성장으로 훗날 도시 기능과 공단 지구를 각각 확대 이전시켜 탄생하게 된 것이 바로 선전시와 동관(東莞)시다. 오늘날 연간 GDP 1조 달러에 달하는 광둥성 경제의 시초가 바로 이 서커우 개발구라고 할 수 있다.- 경제 발전에 치중하다보면 자연환경 훼손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는데.현재 서커우는 선전의 허우화위안(後花園정원)이라고 불린다. 선전시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힌다. 1980년대 후반 당시 관계자들에게 공업단지의 성장이 한계에 다다르는 시기를 고려해 서커우에 있는 서산(蛇山)과 구이산(龜山)의 경치와 환경은 절대 오염되어서는 안된다고 조언한 적이 있다. 현재 선전시의 고급 주택들은 이 지역에 형성되어 있다.- 서커우 발전상을 북한에서도 조언했다고 들었다.지난 2002년 북한 신의주 특구 관련 회담 당시 우리 대표단 일행이었던 챠오성리(喬勝利서커우 개발구 총경리 역임) 위원이 김정일과 나눴던 얘기도 바로 이 서커우의 발전상이었다. 광둥성 GDP는 1979년 개혁개방 시기와 비교해 당시 약 50배 가량 증가했다. 광둥성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서커우 개발구의 얘기를 들은 김정일은 신의주 특구도 그와 같이 만들 수 있겠다며 굉장히 흥분했었다.- 새만금 사업과 관련해 참고할만한 중국 내 또 다른 사업 모델은.새만금 사업은 상하이(上海) 푸동(浦東)지구의 개발상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상하이 푸동지구의 경제발전의 시작은 금융지구인 루지아줴이(陸家嘴)에서 시작했다. 개발 초기에 과감하게 부지를 매입하고 건축할 수 있는 주체는 그만한 자본을 보유한 금융기업이다. 때문에 개발 지구에서는 금융지구에서 제일 먼저 번영이 시작된다. 초기 3년 동안 루지아줴이의 발전속도는 정말 대단했다.- 새만금 사업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경제 협력과 관련해 본보기가 될만한 곳이 있는지 궁금하다.한국은 이미 중진국 수준의 국가다. 새만금에는 기존의 노동집약적 발전모델을 적용할 수 없다. 새만금은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야 한다. 지난 한국 방문 때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독일의 좋은 예가 있다. 옛날 동독에 구소련이 투자한 슈베린시의 파크힘 공항이다. 지금은 중국의 린더(林德)그룹이 인수했다. 여기서 첫 번째로 이루어졌던 것이 바로 사람과 화물, 화폐의 자유로운 출입이다. 현재 이런 이점을 활용한 유럽행 중국 관광객 유치와 면세점 건설을 진행 중이다. 기업들의 연구개발 지역으로의 활용도도 높다. 수준 높은 유럽의 연구 인력과 자원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만금 사업과 관련해 협력할 수 있는 중국 내 연구개발 단지는.중국에서 새만금과 합작을 하기에는 중관춘 과학기술단지(中關村科技園區)가 적합하다고 본다. 중관춘 과학기술단지는 기술개발에 목적이 있지 않다. 단지 안에 본부를 만들면 정부가 세제혜택을 주기에 기업들은 이를 위해 모든 수익을 본부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현재 그들은 과학 단지의 국제화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 중 첫째는 해외 연구개발 인사를 모셔오는 것이고, 둘째는 연구개발시설을 국외에 두는 것이다. 셋째는 외국기업과의 인수합병이다. 새만금과 중관춘 과학기술단지와의 협력이 잘 이루어진다면, 연구개발기지 활용을 넘어 중국기업의 본부 유치와 세계화의 전략적 거점으로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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