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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블루재스민] 블루는 억제·집중 심리 반영한 색

국가가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 가정폭력, 성폭력, 가사노동, 시집 갈등, 우울증 등. 여러 분야에서 자행되는 성적 차별…. 간통죄 폐지를 계기로 이들이 물위로 떠오르고 있다. 여성주의(Feminism) 차원에서다. 여성 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고 여성 해방을 목표로 하는 운동 또는 그 이론을 말함인데, 여성주의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었기에 정치적이란 표현을 쓴다. 그런데 정작 다수의 개인이 문제를 내면화하고 표출하지 않기에 공론화는 물론 치유의 기회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영화가 여성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아리게, 집요하게, 때로는 황당하게 상황을 만들어 충격요법을 쓰고 있다. 영화 <블루 재스민>의 주인공 ‘재스민’(케이트 블란쳇 분)은 복합적인 상황의 주인공이다. 뉴욕에 살면서 최상위층 생활을 하던 그녀는 남편 ‘할’(알렉 볼드윈 분)이 여러 여성과 외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추락하기 시작한다. FBI에 신고하고, 할은 교도소에 들어간다. 하나 뿐인 아들은 대학을 중퇴하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영화는 할이 남의 돈을 끌어들여 방만하게 사업을 확장 했다고 암시하지만, 초점은 바람을 피운데 맞춰있다. 중요한 것은 가정파탄의 원인은 남편이 제공했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아내가 감당한다는 것이다. 재스민은 어렸을 때 함께 입양되어 자란 여동생 ‘진저’(샐리 호킨스 분)를 찾아간다. 진저는 자신의 전 재산을 형부 할에게 맡겼다가 쫄딱 망하고 이혼한 후 2명의 아들과 살고 있다. 정말 억울한 것은 진저 지만 언니를 반갑게 맞이하고 옹색하지만 방 한 칸을 내준다. 영화는 두 사람의 대처방식을 비교하며 조명한다. 플래시 백 기법을 많이 사용하여 과거와 현재를 실감 나게 교차시키는 구성이 특이하다. 재스민은 뉴욕 시절의 호화로운 생활을 잊지 못하고 고급 일자리, 수준 있는 남자를 찾아 나선다. ‘드와이트’라는 외교관을 만나 자신을 속이고 결혼 약속까지 받아낸다. 새집을 장만하고 실내 장식을 하는데, 드와이트는 거치대가 있는 커다란 중고망원경을 가져다 창가에 비치한다. “이 망원경으로 달을 볼 거야.” 망원경 속의 달은 새로운 세상을 비추는 은유지 싶다. 밤이 찾아오면 꽃봉오리를 연다는 재스민 꽃은 달 그리고 여인 재스민의 은유인 것이고.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약혼반지를 하러 가던 날, 진저의 전 남편이 나타나 재스민의 과거를 고해바친다. 드와이트가 대로한다.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당연히 결혼은 못 하지요.” 길바닥에 내박차진 재스민은 그 길로 집 나간 아들을 찾아가는데 아들이 한 마디로 엄마를 거부한다. “아버지 생각할 때마다 당신이 더 싫었어요.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 급기야 재스민은 혼잣말을 되뇌고, 폐소공포증에다 신경쇠약까지 겹쳐 약이 없으면 꼼짝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에디슨 치료를 받는다.진저는 그런 삶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인다. 닥치는 대로 일하고, 남자도 조건 없이 만난다. 눈에 띄는 것은 언니가 원하는 음식, 술 등을 정성껏 챙 언니가 공부할 수 있도록 집안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영화제목 ‘블루 재스민’의 블루는 그녀가 전에 즐겨듣던 ‘블루문’이란 노래에서 가져온 듯하다. ‘푸른 달이여 당신은 외톨이로 서있는 나를 보셨습니까. 마음에 끝도 없고, 연인도 없는 나를….’ 급기야 재스민은 기억상실증에 걸리는데, 블루문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다며 가슴을 두드린다.진저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이 남자는 재스민을 몹시 싫어했음)재스민은 나도 좋은 사람(드와이트를 지칭)과 결혼한다며 집을 뛰쳐나간다. 샤워를 한 후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공원 벤치에 앉아 혼잣말을 되뇌는 재스민을 클로즈업하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의 냉정함으로 온몸에 한기가 든다. 감독은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일까. 남자 주인공은 감옥에 보내고(한 번도 비춰주지 않는다) 고통은 여자 주인공이 감내하도록 하는 것은 남자 관객은 재스민을 보고, 여자 관객은 할을 보라고 종용하는 것 같다. 그러나 관객은 자신의 내면을 보면서 계속 무엇인가를 끄집어내고 있었으리라.세상의 모든 절망, 우울, 분노, 불안을 끌어댄 영화 같다. 어떤 네티즌은 ‘감독의 냉소, 재스민의 독백, 관객의 탄식, 세상의 침묵이 버무려진 우울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라며 답답해했다. 그렇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라면 치유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색채학에서 블루는 ‘자신의 세계로 향하는 억제와 집중의 심리가 반영된 색’이라고 설명한다. 일본 ’나라 현 ‘에서 가로등을 파란색으로 하였더니 범죄율이 30%가 감소하였다고 한다. 블루를 온전하게 수용하고 억압을 배출하는 기회로 삼자.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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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13 23:02

[23. 행복한 사전(辭典)] 단어는 생성·소멸, 살아있는 동안 의미 변하기도

한 학생이 질문한다. “정서(情緖)란 무엇입니까?” 교수가 답한다. “1884년에 미국 심리학의 창시자인 William James는 ‘정서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을 썼다. 그런데 100년이 지난 후에도 심리학자들은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다른 몇몇 중요한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정서는 정확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이것이 〈정서 심리학〉의 해설입니다. 물론 여러 학자의 의견이 있지만.”질문자는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이라는 우리말 사전의 풀이를 틀림없이 봤으리라. 몇 번을 봐도 집히는 게 없으니 질문했을 터.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다음 대목이다. ‘만약 아무도 묻지 않는다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런데 그것을 물어온 사람에게 설명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모른다.’의식은 오랫동안 그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정의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행복한 사전〉이라는 일본영화는 단어의 뜻을 어떻게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어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그것은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욕망이다. 세상은 극적으로 변화하면서 새로운 말과 개념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단어는 생겨나기도 소멸하기도 살아있는 동안 의미가 변하기도 하는데, 의미가 모호해서야 되겠느냐는 것. 영화는 대형 출판사 후미진 방에서 종이사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는 다섯 사람을 조명한다. 편집자 ‘마지메’(마츠다 류헤이 분)와 ‘마사시’(오다기리 조 분) 그리고 감수 역 ‘마츠모토’(카토 고 분)가 주역이다. 프로젝트명은 ‘대도해’(大渡海. 바다를 건너는 배라는 뜻)이다. 풀자면 ‘사전(辭典)은 너른 바다에 떠 있는 한 척의 배이고, 인간은 사전이라는 배로 바다를 건너고 자신의 마음을 적확히 표현해 줄 말을 찾는다’는 것. 21C형 새로운 사전 만들기 작업은 이렇게 닻을 올린다. 시기는 1995년. 핸드폰이 출시되고 인터넷시대가 활짝 열리는 상황에서 시도하는 종이사전 만들기 작업이다. 시대착오적 발상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리고, 돈도 되지 않고…. 회사 경영진은 계륵이 되어버린 이 사업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멤버 중 마사시는 아예 홍보팀으로 자리를 바꾼다.감수자가 구성원에게 ‘오른쪽’에 대한 뜻풀이를 해보라고 한다. ‘서쪽을 바라보고 섰을 때 북쪽’, ‘시계의 문자판 1시에서 5시까지 있는 쪽’, ‘숫자 10에서 0이 있는 쪽’ 등의 답이 나온다. 어떤 의견을 게재해야 할까. 우리 사전에는 ‘북쪽을 향했을 때 동쪽과 같은 쪽’이라고 되어있다. 마츠모토가 말한다. 우리의 일은 단어의 뜻을 풀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용례(用例)를 수집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용례를 수집하여 같이 싣도록 합시다.용례 수집을 위해 여학생들이 많이 찾는 패스트 푸드 점에 모인다. 한 학생이 ‘BL’ 이란 말을 꺼내자 모두가 깔깔거리며 웃는다. BL이라. Boys Love(동성애)라는 답을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수집 카드 용례 난에 이 내용이 기재된다. 일식 요리사인 마지메의 아내 ‘카구야’(미야자키 아오이 분)는 남편의 일을 존중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어느 날 그녀가 주방용 칼 만드는 곳으로 남편을 안내한다. ‘가스미’란 칼 앞에 선다. “이 칼은 강철과 연철을 붙여서 만드는데, 강철 부분이 날이 돼요. 그런데 강철과 연철의 경계가 안개 낀 듯 흐릿해서 가스미(안개)라는 이름이 붙었대요.” 안개를 가슴에 품고 온 마지메는 그날 밤 흰 물마루를 보다 물속 깊이 가라앉는 자신의 환영을 보게 된다. 깊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자기를 보면서 책무가 지독하게 무거움을 실감한다. 외무사원처럼 용례를 수집하고 마치 우리나라 독서실을 연상하게 하는 편집실 한쪽에서 수험생처럼 일하는 그의 모습이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마츠모토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사전 완성을 눈앞에 둔 시점이다. 임종 직전 그는 감사의 예를 갖춘다. ‘감사라는 단어 이상의 단어는 없는지 저 세상이 있다면 거기서 용례 채집을 해 볼 생각입니다.’ 일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이렇게 감사할 수 있다니…. 장례식 뒤 마지메는 마츠모토의 집 위로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바다와 마주한다. 잔잔한 바다, 자기 인생의 주제가 되어버린 바다 저 끝에서 흰 물마루가 솟고 옆으로 검은 배 한 척이 지나간다. 그가 목청껏 소리를 지를 것만 같다. 마치 영화 〈러브레터〉 여주인공이 설원에서 산정을 바라보며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외치던 것처럼. 그러나 그는 넓은 바다를 가슴에 품고 묵묵히 서있다.마지메 등 뒤로 15년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안개와 배와 사전이 자꾸 나타난다. 가슴이 먹먹하고 몸이 붕 뜬 것 같다. ‘영화적 고양’(Cinematic Elevation)이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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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2.27 23:02

22. 와일드(Wild) - "개인적 상처에서 튕겨 나오면 무엇이 될까요?"

5년여에 걸친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돌아오던 날, ‘황동규’님의 ‘미시령 큰바람’이란 시구(詩句)를 음미하며 길었던 여정을 되돌아보았다. ‘미시령에서 흔들렸다/풍경 전체가 바람 속에/바람이 되어 흔들리고/설악산이 흔들리고/내 등뼈가 흔들리고/나는 나를 놓칠까 봐/ 나를 품에 안고 마냥 허덕였다.’세파에 찌들고 몸도 아픈 내가 선택할 것이란 없었다. 나의 백두대간 종주는 도피처였는지 모른다. 극한상황에 온몸을 내맡기면 무엇이 달라지려나? 종주는 뜻밖의 과제를 안겨주었다. 온몸을 파고드는 고통과 외로움, 두려움까지 가세한 여정에서 나는 내면에 우주 쓰레기처럼 떠다니는 기억의 파편들과 만났다. 800km에 이르는 산길을 묵묵히 걷다 보니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고, 살면서 내가 서둘러 봉합해버린 아픔들과 만나게 된 것이다. <와일드>라는 영화를 보는데 미시령 바람 밭에 서 있는 내가 떠올랐다. 뭐지? 영화는 ‘세릴 스트레이드’란 여인이 쓴 《와일드》란 자전적 소설로 만들어졌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Pacific Crest Trail)을 완주한 여인의 이야기. 이 코스는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까지 장장 4,285km로 알려졌다. 당시 26세였던 여인은 죽음을 무릅쓰고 이 코스에 도전하였으며 94일 만에 성공을 거둔다. 도전의 목적이 ‘버리기 위함’이었다고 하는데, 따라가 보자.영화는 시작하면서 질문을 하나 던진다. “개인적 상처에서 튕겨 나오면 무엇이 될까요?” 부랑자가 되고 말 것이라며. 어떻게도 수습할 수 없는 파탄 난 삶 앞에서 다른 길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세릴의 엄마 ‘바비’(로라 던 분)는 주정뱅이 아빠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어린 남매를 등에 업고 도망치듯 집을 나온다. 밑바닥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지만,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런데 남매가 멋지게 성장한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나이 마흔다섯 살에 암으로 절명한다. 자기 전부랄 수 있는 엄마를 가슴에 묻은 세릴 스트레이드(리즈 위더스푼 분)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순식간에 무너져 버린다. 헤로인을 맞고, 아무 남자나 닥치는 대로 상대하고, 목적 없이 거리를 헤맨다. 어쩌다 한 남자를 만나는데, 행실이 탄로 나 이혼당한다. 그녀가 갈 길이 뻔해 보인다. 그런데 세릴이 뜻밖의 결정을 한다. PCT 종주에 나선 것이다. 극한의 도보여행지 라는 곳. 준비 과정에서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비척거리다 엎어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상처에서 튕겨 나온 현실을 방증 한다. 출발이다. “버틸 수 없으면 내려가자.” 주문을 외우며. 첫날을 용케 버틴다. 걸은 길은 고작 11km. 녹초가 된 몸을 텐트에 부린다. 잠이 올 리 없다. 뒤척이다 아침을 맞을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주변이 공포의 도가니다. 텐트 틈으로 야생동물 울음소리가 빨려 들어간다. 이어 거친 모레 바람이 들어가더니, 드넓은 평원의 온갖 두려움이 떼 지어 들어간다. 하늘에는 아름다운 별들의 향연이 펼쳐지지만 눈을 뜰 수 없다.이틀, 사흘…. 걸음 사이로 감미로운 곡 ‘엘 콘도 파사’가 흘러 들어간다. 노랫말의 의미가 깊다. ‘달팽이가 되기보다는 참새가 되고 싶어요. 못이 되기보다는 망치가 되고 싶어요. 길거리가 되기보다는 숲이 되고 싶어요.’ 차츰 걸음이 안정되고 두려움이 용기로 바뀐다. 반면 외로움은 더 커진다. 생각이 깊어진다. 기억이 몸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엄마 껴안고 잠들던 침대, 아빠의 주먹, 불량배가 된 남동생의 성난 얼굴…. 아픔은 남편 폴의 모습이 치솟을 때 최고조에 달한다. 임신하고 힘들어하던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 될 때는 몸부림을 친다.발톱이 빠지고, 살갗이 짓무르더니 터지기 시작한다. 배낭의 무게를 줄여야 한다. 짐을 버려야 한다. 급기야 트레일 안내서까지 버리고, 애지중지하는 책까지도 읽은 부분은 모두 찢어 불태운다. 새로운 발길에 장애가 되는 것은 모두 버려야 한다. 상처로 점철된 내면의 아픔도 이처럼 가차 없이 버려야 한다는 것이려니.여행이 끝날 무렵 한 소년을 만난다. 소년은 우리도 잘 아는 노래 ‘홍하의 골짜기’를 불러주고 홀연히 사라진다. 어쩌면 유산한 아이의 화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세릴이 맨땅에 엎드려 펑펑 운다. 서러움이 눈물로 흘러들어가 저 골짜기를 적실 것 같다. 산 그림자 드리워진 호수 위 ‘신의 다리’에 선다. 다리가 끝나는 곳에 표지판이 서 있다. STOP. 왜 END가 아닐까? 세릴은 말한다. ‘슬픔의 황야에 빠져 자신을 잃어버린 후에야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다.’ 산악인 엄홍길도 《8000m 의 희망과 고독》이란 책에서 말했다. ‘극한상황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말일 뿐, 거기서 움직인다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차츰 무의식 상태로 빠져드는 것.’이라고.상처는 고통을 통해 떠올리고 그 속에서 지워야 하는가 보다. 아무래도 나는 백두대간 남진(南進. 진부령에서 지리산)에 들어 더 걸어야 할 것 같다.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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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2.09 23:02

[21. '내일을 위한 시간'] 어제는 역사, 내일은 미스터리, 오늘은 선물이다

형제 감독 ‘다르덴’ 의 영화는 아프다. 아픔이 깊어 쓰리다. 몸을 바로 펴지 못하고 영화를 본다. <로제타>부터 그랬다. 영화는 막 수습기간이 끝난 열여덟 살 새내기 소녀를 공장에서 쫓아낸다. <더 차일드>에서는 20세도 안 된 커플이 아이를 낳고 아빠가 아이를 판다. <자전거 탄 소년>은 아빠가 초등생 아들을 버린다. 그 아들이 몸 모다 더 아끼는 자전거를 팔아 치우고 잠적한다. 최근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는 우울증으로 시달리다 몸을 겨우 추스르고 복직을 시도하는 30대 여성을 해직시킨다.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여호와의 승인이세요?” 의문이 인다. 왜 이렇게 영화가 고통스러워야 하는가. 왜 관객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영화를 봐야 하는가. 직면시키기 위해서다. 약자의 약한 부분에서 파편처럼 튀는 고통과 두려움을 직면시켜 어쩌려고? 직면해서 무뎌져야 자유로워지니까.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사람을 봐야 자기지각과 변화에 대한 동기를 증가시킬 수 있으니까. ‘M, 스캇 펙’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란 책을 통해 말한다. ‘영적으로 정신적인 성장은 오직 문제에 직면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정신적 성장을 자극하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과 도전적 태도를 격려해야 한다. 이는 마치 우리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일부러 문제를 내주고 풀어보도록 하는 것과 같다’라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고통은 가르침을 준다’고 했으며, 칼 융은 ‘노이로제(신경증)란 항상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회피한 결과다’ 고 했다. 우울증으로 휴직하고 치료를 받은 후 복직을 계획하고 있는 ‘산드라’(마리옹 코티야르 분)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경영난에 허덕이는 회사가 타개책의 하나로 투표를 실시했다. 산드라를 복직시키는 안과 직원 모두에게 각각 1000유로 씩 보너스를 지급하는 안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직원들은 보너스를 선택했다. 그런데 선동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제보가 있어 사장은 재투표를 명했고 다음 주 월요일로 날짜가 잡혔다는 것이다. 남은 시간은 이틀 낮, 하룻밤(영화의 원제임, Two days, One night)이다. 산드라는 반장과 자신을 제외한 직원 16명을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과반수, 즉 9명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복직을 할 수 있다. 확실한 표는 절친 ‘줄리엣’(캐서린 살레 분)의 것뿐이다.산드라는 주저앉고 만다. “못해, 못한다고.” 남편이 나선다. ‘어떻게든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 가족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안정제를 먹고 호별 방문을 시작한다. 한 동료가 말한다. “1년 치 가스와 전기요금이야. 나는 포기 못해.” 더 말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산드라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진다. “울지 마, 울면 안 돼.” 독하게 마음먹지만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어떤 이는 미안하다며 표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어떤 동료는 이렇게 말한다. “과반수가 지지하면 내겐 재앙이겠지만 그래도 그러길 바래.” 울먹이는 그 직원 어깨 뒤로 눈살을 잔뜩 찌푸린 아내가 꼼짝도 안 하고 서 있다.“나 집에 갈래.” 남편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몸부림치는 산드라의 눈에 차창 밖 풍경이 들어온다. “내가 재잘거리는 저 새라면 좋겠어” 남편이 말없이 싸안는다. 안정제 한 통을 다 먹고 응급실에 실려 가는 등 우여곡절을 거듭한 끝에 동료 16명과 접촉이 끝난다. 영화는 한 푼이 새로운 동료들의 솔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 같으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또 당신이 산드라 라면 몇 표나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재투표 결과 8:8이 나온다. 과반수 득표를 못 한 것이다. 사장이 선심을 쓴다. 직원들 보너스도 주고, 2개월 후 계약직 자리에 복직시켜 주겠노라고. 그러나 그 자리는 산드라에게 표를 준 외국인 동료가 재계약을 고대하는 하는 자리였다. “됐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산드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사를 나온다. 그녀가 줄곧 입고 다니던 오렌지 색 티셔츠에서 섬광이 번쩍인다. 우울증 완치를 알리는 하늘의 신호려니 싶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지독한 아픔과 직면하고 나니 얼얼하다. 어느 네티즌은 이렇게 말했다. ‘산드라에게 관객의 표가 있으니 그녀가 이긴 것이다’라고. 영화 보는 내내 의사결정의 중심에 당사자가 빠져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미국의 영원한 퍼스트레디라 불리는 ‘엘리노어 루스벨트’의 말이 떠오른다. “당신 마음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세요. 왜냐하면, 당신이 어느 쪽을 선택하든 비판받을 테니까요” “어제는 역사고, 내일은 미스터리이며, 오늘은 선물이랍니다”영화제목 내일에는 Tomorrow와 My job이란 뜻이 같이 담겨있다는데…. 미스터리 가득한 산드라의 내일을 위하여 힘찬 응원을 보낸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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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26 23:02

[20. '상의원'] 이대로 쭉 가야 하지 않겠는가

몇 년 전 절찬리에 상영한 드라마 〈선덕여왕〉은 명대사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중 두려움에 관한 ‘미실’의 대사는 백미다. “두려우냐, 두려움을 피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도망치는 것이고, 하나는 분노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탰다. “또 하나는 죽은 체하는 것이다.” 〈상의원〉이란 영화를 보는데 시종 미실의 대사가 귓전에 맴돌았다. 두려움도 진화하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상의원(尙衣院)이란 조선 시대 임금의 의복 등 왕실의 재물을 관리, 공급하는 일을 담당했던 관청을 말한다. 이곳의 우두머리인 ‘어침장’은 왕과 왕비를 친견할 수 있으며, 잘만하면 양반도 될 수 있었다고 하니 퍽 유별난 기구였던 것 같다. 영화는 3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옷을 지어온, 그래서 6개월만 있으면 양반이 될 어침장 ‘조돌석’(한석규 분)과 왕(유연석 분), 중전(박신혜 분) 그리고 천재 바느질꾼 ‘공진’(고수 분)을 조명한다. 시대적 배경은 우리 역사에서 ‘연닝군’(날 영조) 등극하는 때처럼 보인다. 왕이 당파싸움 와중에 즉위하는 것, 옹립세력인 대감들의 내정간섭이 심한 것 등이 전해지는 내용과 비슷하다. 회상 장면에서 이복형이 세자로 나오고 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승하하는 과정은 경종과 닮았다. 우여곡절 끝에 보위에 오르지만, 왕은 무엇 하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에 낙담한다. 이는 억압으로 나타나는데, 가장 심한 것이 중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중전은 세자 빈 후보 중 간택되지 않은 한 사람이었다. 선왕과 이복형은 이 처자를 선심 쓰듯 안겨주었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복형은 동생이 그토록 먹고 싶어 하는 소고기를 그릇 가득 씹어 뱉어놓고는 마지막 한 점을 건네며 먹으라고 했다. 결국, 중전과 소고기는 같은 성질의 것 일 수밖에. 왕은 “궁중에 이름 없는 풀 한 포기도 내 것이 없구나.”라며 탄식한다. 유일한 왕의 소유물이 있으니 의대(衣帶)가 그것이다. 조돌석이 만들어 준 것이다. 어느 날 대신들이 모사를 꾸민다. 중전을 밀어내고 병조판서의 여식을 그 자리에 넣고자 획책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 영의정이 있다. 영의정은 청나라가 왕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이때 난데없이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든 사람이 있으니 공진이란 청년이다. 내전에서 왕의 면복을 태우는 사고가 발생하는데, 급작스럽게 차출된 바느질쟁이 공진이 깔끔하게 수선을 마쳐 중전의 눈에 든다. 공진의 천재성이 그때부터 발현된다.진연(進宴) 날이 잡힌다.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잔치다. 청국이 왕의 등극을 윤허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병판은 이 자리에 딸을 올리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병판이 돌석에게 딸의 옷을 부탁하며 말한다. “이대로 쭉 가야 하지 않겠는가.” 돌석은 법도를 어 병판 딸의 옷을 짓기 시작한다.진연에 참석할 수 없는 처량한 중전 앞에 공진이 나타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치수를 직접 재야한다. 왕비의 몸에 손을 대야만 한다. 돌석은 공진에게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며 중단을 촉구한다. 진연이 열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전이 입장한다. 청국 사신들이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왕이 나가 중전을 맞이한다. 병판 여식의 초라한 모습과 왕의 번뜩이는 눈이 각각 클로즈업된다. 얼마 후 돌석의 손에서 공진의 기술을 모방한 용포가 만들어지는데, 옷에서 독침이 나온다. 용포는 공진이 짓고 영의정이 상납한 것으로 조작되어 있었다. 영의정 주변 인물과 공진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중전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진다. 강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왕, 이대로 쭉 가고 싶은 돌석….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맞이한 공진에게 영화는 오만 때문이라며 굳이 죄명을 밝힌다. 중전의 원성이 대전에 메아리친다. “내려놓지 못하는 전하나 포기하지 못하는 소첩이나…. 전하께서는 비겁하십니다.” 언젠가 손자병법을 읽는 중전에게 공진이 왜냐고 물은 적이 있다. 중전은 “사는 게 전쟁이니 피하는 게 상책이다.” 라고 답했다.영화는 조돌석의 대사 하나에 메시지를 결집한다. “바느질이란 다른 두 세상을 하나로 묶는 것인즉, 바늘이 들어갈 때는 자신의 혼을 집어넣고 나올 때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 다른 두 세상이란 말이 의미심장하다. 혼은 하나인데 펼쳐지는 세상은 둘이다. 이게 바로 우리 현실 아니던가. 살면서 지금처럼 쭉 가기 위해서는 이 경계를 제대로 넘나들어야 한다. 길을 바꾼다면 몰라도. 두려움, 너무 모르면 위험하고 너무 느끼면 가능성이 제한된다. 이를 이중의 위협이라고 하는데, 〈내 감정 사용법〉은 ‘앙드레 콩트’- ‘스퐁빌’과 같은 철학자들 말을 빌려 ‘용기가 아닌 신중함으로 맞서기’를 권한다. 여기서 신중함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과학이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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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12 23:02

[20. '꾸뻬씨의 행복여행'] 행복은 목적지가 아닌 그냥 존재하는 상태

요즈음 스크린 셀러(Screen seller. 영화를 뜻하는 스크린과 베스트셀러를 합친 신조어)가 대세다. 영화가 책이 되고 책이 영화가 되는 순환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 코너에 이 책들이 수북하다. 영화를 볼까? 책을 읽을까? 고민이다.<꾸뻬씨의 행복여행>도 그중 하나다. 책 봤는데…. <80일간의 세계 일주>, <버킷리스트>…. 아름다운 기억이 되살아나 영화를 보게 된다. 홀린 듯 두 시간을 보내고 나니 가슴이 뻐근하다. 또 한 세트를 이렇게 섭렵했구나! 그런데 하나 더 했다는 성취감 뒤로 씁쓸한 느낌이 밀려든다. 영화의 질문에 마땅한 답이 없기 때문이다.영화는 정신과 의사인 주인공 ‘헥터’(사이먼 페그 분)를 통해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의사이면서 예쁘고 능력 있는 애인 ‘클라라’(로자먼드 파이크 분)와 함께 잘살고 있으니 행복하다고 할 법도 한데, 그도 답을 갖지 못하고 있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그를 통해서 행복해지려 한다는 것도 그가 행복의 실체를 찾아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어릴 때부터《틴틴의 모험》이란 만화를 보고 전 세계를 돌면서 다양한 모험을 즐기는 꿈을 꾸어왔던 터인지라 그는 세상 사람들의 삶 속에 뛰어들어 행복을 확인하기로 한다.중국 상하이에서 만난 은행가 ‘에드워드’는 ‘돈이 행복’이라고 했다. 비행기 일등석을 고집하는 그는 산해진미에 최고급 호텔 등을 행복이라고 했다. 아프리카에 가서는 마약 밀매를 하는 ‘디에고’에게서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말을 듣는다. 부정한 방법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 홀로 떨어져 지내는 그는 외롭지 않게 지내는 것이 최고라 했다. 티베트 고원 산꼭대기 수도원의 승려는 ‘진정한 행복은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이라며 활짝 웃는다. 비행기에서 말기 암 환자를 돌봐주고 돌아갈 자리가 있는 자신이 행복한 것 아닌가 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마지막 여정은 LA다. 자신의 첫사랑이 있는 곳. 설렘으로 심리학자인 옛 애인 ‘아그네스’를 만난다. “과거는 그 자체일 뿐이야.” 라며 선을 긋는 그녀는 지금이 무척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그네스의 소개로 뇌파로 감정을 측정하는 자리에 앉는다. 담당 교수는 과거에 가장 좋았던, 또 나빴던 감정을 떠올리라고 주문한다. 반응이 나타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데, 클라라로부터 전화가 온다. 그리운 사람, 자신을 가장 아껴주는 사람…….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헥터는 아이처럼 눈물을 쏟아낸다. 뇌파가 최대로 활성화되어 측정용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머릿속이 온통 노란 색으로 물든다. 영화는 헥터가 여행하면서 깨달은 내용 16개 항을 리스트로 정리해서 보여준다. ‘많은 사람이 돈이나 지위를 행복이라 생각한다. 행복이 미래에 있다고 생각한다. 남과 비교하면 기분을 망친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고 그렇게 존재하는 상태이다.’등. ‘감춰진 욕구 때문에 망상에 사는 우리, 내면의 틴틴(아이)을 떠나보내라. 진정한 어른이 되어 행복을 구가하기 위해서 말이다. 행복은 일종의 부수적 효과다.’라는 메시지가 커다란 울림을 준다.<행복을 찾아서>의 주인공 ‘크리스 가드너’(윌 스미스 분)가 떠올랐다. 그는 행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행복이란 오직 추구만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평생 무슨 일을 하던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거기서 그는 행복(Happiness)의 스펠이 y가 아니고 i임을 강조한다. ‘네 것이 아니고 내 것인, 내가 찾는.’이란 뜻으로.우리가 가장 많이 구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단어 행복, 영화를 통해 보니 세상사람 모두가 추구하는 이상향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고 사용해 왔던가. 포장용으로, 기부용으로 써왔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가, 영화가 우리를 치유의 숲으로 안내한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내면의 스토리(I-Story)를 대안적 스토리(Alternative Story)로 바꾸면 그 속에서 자기최면과 자기 다짐이 일어난다. 이른바 리스토리텔링이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안에서 통찰과 일반화 그리고 객관화 반응이 생긴다. 그냥 지나치지 말고 이 기제를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활용해야 하겠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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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15 23:02

[19. '야간비행'] 친구가 없으면 이 세상은 끝이다

영화에서 한 화면에 한 명의 등장인물을 담은 장면을 싱글 숏 이라고 한다. 두 명은 투 숏, 세 명은 쓰리 숏, 전체를 담은 경우는 마스터 숏이 되겠다. 영화를 보다 보면 한 장면에 사람이 들어오고(프레임인) 나가기(프레임아웃)를 계속하는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를 놓치는 수가 있다. 지금 화면 안에 몇 명이 들어 있느냐 하는 것은 인물의 심리적 흐름을 탐색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영화 <은교>에는 ‘이적요’라는 원로시인, ‘서지우’ 라는 30대 소설가, 여고생 ‘은교’가 등장한다. 두드러진 것이 세대차이인데, 이 영화는 유난히 쓰리 숏을 많이 사용한다. 젊음과 늙음이 욕망 앞에서 어떻게 경합하는지 한 장면에서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야간비행>이란 우리 영화를 이런 관점에서 보았다. 영화는 네 명의 고등학생을 조명한다. ‘용주’(곽시양)는 편모슬하 어려운 여건에서도 꿋꿋하게 자라 서울대 진학이 가능한 수준의 학생으로 성장했다. ‘기웅’(이재준 분)은 아버지가 실직하고 행방불명되어 엄마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는데 주먹패거리 왕초 노릇을 하는 문제아다. ‘기택’(최준하 분)은 두 사람과 중학교 때부터 단짝인데, 어느 순간 왕따가 되어 패거리의 샌드백이 되고 있다. 조금 떨어져 ‘준우’(이익준 분)가 있다. 방치된 건물 꼭대기 층에 있는 ‘야간비행’이라는 게이바에서 가끔 이곳을 찾는 친구들과 동성애를 이야기하고, 불야성이 된 눈 아래 세상을 바라보며 처지를 한탄하는 아이다.학교 교실이 화면가득 채워진다. 한참 동안 비어있던 기웅의 자리에 주인이 앉는다. 화가 난 선생님이 책을 내려놓더니 모두에게 복창을 지시한다. “1 · 2 · 3등급은 통닭을 시키고, 4 · 5 · 6등급은 통닭을 지키고, 7 · 8 · 9등급은 통닭을 배달한다.” 입 따로 머리 따로 인 이들의 합창이 복도 끝에서 메아리 된다. 기웅의 탈선이 싫은 용주, 기웅 패거리의 주먹이 아픈 기택. 그러나 정말 상처가 깊은 아이는 이유 있는 반항아 기웅 아닐까. 그는 툭하면 아이들에게 경고한다. “가까이 오지 마라, 죽는다.”용주가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엄마와 마주 앉는다. 엄마가 실연하여 취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아들이 침묵을 깬다. “무슨 일 있어?” “너네 엄마가 또 채였다는 소식이다. 야! 사랑이 나란히 서서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그런 사기꾼 같은 말 믿지 마! 새끼야. 사랑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는 거야. 그리고 꽃이 봄에만 피냐? 가을에도 핀다고! 너는 세상사람 눈 꼬라지 신경 쓰는 병신으로 살지 마.” 용주는 차마 자기 외로움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일어난다. “등보이지 마! 내게 등보이지 말라고.” 용주의 하소연은 그런 것 이었다. 기웅은 이 말을 보기 좋게 묵살하듯 기택을 다리 밑 콘크리트 교각에 세워놓고 등을 사정없이 내갈긴다. 오토바이 타고 어둠을 헤치며 달리는 기웅의 뒷모습이 폐허처럼 검다. 그의 기착지는 항상 어두운 뒷골목이다. 맨바닥에 주저앉아 담배를 힘껏 빨아들인다. 명멸하는 담뱃불이 숨 쉬고 있음을 알려준다. ‘생텍쥐베리’는 그의 책 <야간비행>을 통해 말한다. ‘빛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어둠이다. 우리는 어둠이라는 삶의 터전에서 지상의 불빛과 하늘의 불빛을 발견한다. 지상의 불빛과 하늘의 불빛 모두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신호인 셈이다. 지상의 불빛이 일상적인 삶이라면 하늘의 불빛은 새로운 것을 개척하는 삶이다.’라고.기웅이 아버지를 찾아 화해하고 용주에게 돌아오지만, 기택의 반란(용주의 동성애를 부풀려 소문낸 것)을 무마시키려다 실패한다. 학교에서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다가 배신한 패거리에게 머리를 맞고 쓰러진다. 용주는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자퇴하고, 준우는 전학 가고, 기택은 어디론가 사라진다.아빠의 아픔이 또 엄마의 슬픔이 이들의 외로움 속에 고스란히 스며든 게 너무 안타깝다. 누가 이들에게 해법을 제시할 것인가. 사회라는 유기체 속에서 학교도 학생도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을.영화는 ‘친구가 없으면 이 세상은 끝’이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기웅 아빠, 용주엄마의 싱글 숏이 이를 증명한 셈이다. 이런 속에서 영화는 어둠을 헤치고 어디론가 부지런히 가고 있는 비행기를 상기시킨다. 불빛 깜박이며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유영하는 저 비행기는 외로움의 상징 같지만, 눈길을 비행기 위로 가져가 보면 다르다고 말한다. 하늘에는 별빛, 땅에는 불빛, 도착지에는 찬란한 여명이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나 황홀하겠느냐며….야간비행,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인생이다. 비행기에는 조종사만 타는 게 아니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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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01 23:02

[18. '월플라워'] 삶 가장자리 서 있으면 특별한 것 볼 수 있어

월플라워(Wallflower)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파티에서 파트너가 없어서) 춤을 추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되어있다. 벽에 등을 대고 꽃무늬처럼 서 있는 사람, 남들 춤추는데 끼지 못하고 영혼 없는 눈으로 쳐다만 보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왜, 기왕 파티에 왔으면 열심히 춤을 춰야지 구경만 하고 있어?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보며 대충 성격 탓이라고, 내성적인 탓 이라고 말해왔다. 정말 그런가?미국영화 <월 플라워>는 한 마디로 아니라고 말한다.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자신의 인생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앞세우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규정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 라며. 영화는 결론적으로 ‘우리가 출발 지점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어디를 향해 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고 부연한다. 그곳이 무대든, 길이든, 각축장이든…. 수능 끝나고 밖으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과 함께 이 영화를 봤다. 이 학생들, 처음에는 “쩐다” 어쩌고 하면서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이더니 차츰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여러분이 세상을 대하는 양식이 어쩌면 평생 갈지 모른다는 말에 겁먹은 탓일까? 영화는 ‘찰리’(로건레먼 분)라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정체불명의 친구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진행된다. 일과 중 발생한 사건에다 자기 생각을 담아 정리하는 식이다. 학교에서 홈커밍(Homecoming)행사가 열린다. 찰리 혼자 벽에 붙어 남들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다. 월플라워다. 이 자리에 미친 듯이 춤을 추는 한 쌍의 남녀가 있으니 ‘샘’(엠마왓슨 분)과 ‘패트릭’(에즈라 밀러 분)남매다. 이복남매이면서 고등학교 3학년인 이들은 평소 모든 행동에 거침이 없다. F 학점을 받아도, 친구들이 비아냥거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 하고 싶은 것에 열중한다. 모범생인 찰리 측면에서 보면 이해가 안 가는 친구들이다.미식축구 경기장에서 이들 셋이 우연히 만난다. 남매는 이곳에서도 광적인 응원을 펼친다. 얼떨결에 찰리도 따라 하고 그러면서 그들은 의기투합하게 된다. 술 마시고, 잡담하고, 춤추고, 우르르 몰려다니고….어느 날 그들은 무개차를 타고 터널로 향한다. 차에서 벌떡 일어선 샘이 양손을 번쩍 치켜들고 몰아치는 바람을 헤치며 터널을 통과한다. “야! 저기 터널 끝에 다른 세상이 있다. 우리는 지금 세상 밖으로 나가고 있어.”찰리가 월플라워가 된 것은 어린 시절 이모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엄마보다 자기를 더 사랑해준 이모, 이모는 수시로 찰리의 몸을 쓰다듬곤 했다. 그런데 그것을 비밀로 하자고 했다. “싫어요.”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양가감정에 늘 시달려야 했다. 그 이모가 선물을 사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절명한 것이다. 자기 때문에 죽은 것이란 자책감은 강박감이 되고 급기야 대인기피증으로 이어진 것이다.샘 남매의 거침없는 행동거지는 찰리에게 커다란 모멘텀을 제공하게 된다. 알고 보니 샘은 어렸을 때 아빠의 직장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쓰라린 기억을 안고 있었고, 패트릭은 엄마의 이혼 등 성장기 충격으로 인해 반항아로 살고 있었다. 패트릭은 항상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아이’라고 표현했다. “불량품들의 섬에 온 것을 환영해.”남매의 찰리에 대한 언급은 이렇게 간명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변하기 마련이거든. 인생은 누구를 위해 멈춰주지 않아.” 남매가 몰려다니며 터득한 진리이자 행동철학이다. 찰리가 샘의 손을 덥석 잡으며 사랑을 고백한다. 알고 보니 샘도 찰리를 좋아하고 있었다. 이들이 다시 달려간 터널 주변에서는 여러 형태의 등(燈)이 녹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파랑과 노랑을 섞은 색, 파랑은 너무 흔해서 기피당한 색이고 노랑은 새로움과 흥분 그리고 놀라움을 변주하니 찰리의 어제와 오늘을 형상화한 색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찰리가 차에서 일어나 손을 높이 쳐들고 터널을 통과한다. 샘 때보다 훨씬 센 바람이 온 몸에 휘몰아친다. 바람 뒤에서 이모의 환영이 서서히 스러진다. “저는요 찰리가요. 홈커밍 파티에서 절대로 춤추러 안 나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가더라고요.” 영화를 같이 본 한 학생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벽에 기대고 있는 학생이여. 무엇이 두려운가. 왜 그렇게 서 있는가? 어린 시절의 충격 때문에, 가정형편 때문에, 공부를 못해서, 원래 못나서…? 변명만 할 것인가? 뒤를 돌아보자. 분명 자기 발목을 잡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 과감히 떨쳐 버리자.” ‘너 자신을 사랑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어.’라고 말하던 찰리도 생각을 바꿨다. 그의 말을 음미해 보자. “내가 비참하지 않다는 걸 안 순간 정말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영화는 질풍노도기를 지나는 청소년들에게 자유와 해방이 무엇인지 절절하게 말해준다. 그리고 등을 떠민다. “나가봐, 어서.”·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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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17 23:02

[17.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 살아있다는 것은 실감이다

27세 되던 1997년에 칸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받은 일본 국적의 촉망받는 여류감독, 그녀의 이름은 가와세 나오미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키워준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외톨이로 세상을 떠돌았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영화는 항상 우울하고 죽음에 대하여 지순(至順)하다. 자연히 그녀의 카메라는 치유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 영화마다 자연을 재료로 삼는 것은 순응성 때문 아닌가 싶다. 〈수자쿠〉, 〈사라소주〉등에는 고향 나라현의 아름다운 풍경이 담겼고, 〈너를 보내는 숲〉에는 어느 낯선 고장의 울창한 숲이 들어갔다. 어느 날 그녀가 바다로 눈을 돌린다. 거기서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라는 영화를 빚어낸다. 배경은 다르지만 여기서도 그녀는 육지의 풍경이나 숲에 대고 던지던 질문을 그대로 이어 던진다.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이죠?”사실 이에 대한 답은 ‘너를 보내는 숲’에서 내놓은 바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첫째 밥을 먹고 반찬을 먹는 것이다. 둘째 살아있는데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안 드는 것이다. 후자의 뜻이 아리송하다. 이는 위장이 아닌 마음의 문제로 비어있는 것을 말한다. 공(空)이 아닌 허(虛). 이를테면 사람이 서로 손을 잡을 때 느껴지는 에너지. 그것을 실감이라고 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실감이다.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 이 영화의 원제는 ‘두 번째 문’이다. 감독은 이 문에 대하여 ‘세상을 여는 장치다.’라고 말한다. ‘바다는 서핑과 하나, 여자는 남자와 하나, 무당은 신과 하나라며. 그리고 부연한다. 바닷속에 장시간 있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바다에 있는 생물들에게는 육지가 죽음이다.’ 카메라는 8월 대보름 축제가 한창인 ‘아마미’ 섬을 비춘다. 고등학생인 카이토(무라카미 니지로 분)가 산책하다가 바닷가에서 등에 용 문신을 한 건장한 남자의 시체를 발견한다. 섬이 발칵 뒤집힌다. 서핑, 낚시, 자살 등 추측이 난무한다. 이혼 후 이 섬에 정착한 엄마와 살기 위해 동경에서 온 어린 학생에게 바다는 무서운 곳으로 각인된다. 한편 여고생 쿄코(요시나가 준 분)는 무당을 하다가 암을 앓고 있는 엄마 이사의 상태가 좋지 않아 전전긍긍한다. 이 학생은 교복을 입은 채 바닷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 수영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랜다. 태풍 전야에 두 개의 사건이 발생한다. 하나는 쿄코의 엄마 이사가 신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특이하게도 이 자리에는 마을 사람 대부분이 참석하여 노래하고 춤을 추며 떠나는 엄마를 기쁘게 해준다. 또 하나는 엄마가 바람을 피웠다며 카이토가 엄마에게 들이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엄마는 말없이 자리를 떠나 버린다. 태풍이 불어 닥친다. 온 섬을 집어삼킬 듯한 기세다. 엄마는 필시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을 것이다. 불안에 떨던 카이토는 온 섬을 돌아다니며 엄마를 찾는다.소년과 소녀가 만난다. 멘붕 상태인 그들은 서로 몸을 밀착시킨다. 허허로움을 떨치자니, 실감하자니 더 달라붙을 수밖에 없다. 영화는 허둥대는 청춘을 향해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을 들려준다.“살면서 기쁨은요. 가슴에 손을 얹고 기분 좋은 것을 선택할 때 솟아난답니다.” 결국, 카이토는 엄마가 일하는 식당으로 달려가 품에 안긴다. 두 사람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여기서 영화는 카이토의 아빠도 등에 용 문신을 했다는 사실, 또 타투 작가란 사실까지 알려주지만, 엄마가 불륜을 저질렀는지, 또 처음 바닷가에서 발견된 시체가 엄마의 연인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엄마의 다른 문이라면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쿄코의 엄마가 죽음으로 다른 문을 열었던 것처럼….영화는 쿄코 아빠를 통해 바다의 실감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서핑은 먼 바다에서 생긴 파도의 마지막 부분을 받아들이는 거야. 사람의 정(情)도 이어지는 파도와 같지. 엄마에너지의 원천은 먼 바다에서 만들어진 물결과 같아. 아빠는 마지막까지 그 기운을 받고 살아온 거야.”바다가 무서워 얼씬도 하지 않던 소년은 소녀의 손을 잡고 그 속으로 들어간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청춘이 심해로 헤엄쳐 내려간다. 《인생수업》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시간과 죽음에 대하여 아주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흔히 탄생을 삶의 시작으로, 죽음을 삶의 끝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탄생과 죽음은 연속선상의 두 지점일 뿐입니다.’어쩌면 우리는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또 하나의 문을 열기 위해 버둥거리고 있는지 모른다. 바람 불고 파도치는 바다, 그 속‘심해’로 헤엄쳐 들어가야만 두 번째 문의 열쇠를 구할 수 있으리라. 인간에게서 그것은 심연(深淵)이고 무의식이지 싶다.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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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03 23:02

[16. '5일의 마중'] 기다림은 인류가 희망을 품고 사는 이유

우리 삶에서 기다림은 어떤 의미일까. 대상 부재의 불공평 속에서 수은등처럼 떨어야 하는 존재의 애달픔은 어느 모로 보나 여북하다. 타협의 여지가 없어 더 그렇다. 비켜 지나가는 세월에 하소연이라도 해야 할까. 어느 가수는 ‘무엇을 기다리나/ 무엇을 바라는가.’ 하며 비우기를 종용했고, 어떤 시인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라며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일각 여삼추(一刻 如三秋), 안절부절 못하고 애태우는 마음을 어찌하라고……. 기다림을 요리하는 데 있어 영화만큼 능수능란한 매체도 없는 것 같다. 영화는 세상의 수많은 기다림을, 또 과거· 현재· 미래의 그 많은 시간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재주가 있기에 빛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봄날은 간다>라는 영화는 매일 오후 기차역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치매 할머니를 조명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는 이 할머니의 마중은 기필코 할아버지를 만나야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어 모델링의 대상이 된다. 금방이라도 헛기침하며 나타나 손을 덥석 잡을 것 같은 남편 모습을 상상하며 관객은 숨을 죽인다. 시간의 불연속성, 그 비정함이 기다림의 범주에 포함되는 이유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영화 <5일의 마중>도 기다림이 주제다. 영화를 연출한 ‘장 예모’ 감독은 자신도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낯선 시골에서 시간의 단절을 경험했다며 ‘기다림은 인류가 희망을 품고 사는 이유’라고 말했다. 영화는 감독이 경험한 문화대혁명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대학교수인 ‘루엔스’(진 도명 분)와 중학교 교사인 ‘펑완위’(공리 분)는 슬하에 ‘단단’(장 예문 분)이라는 딸 하나를 둔 정 깊은 부부다. 이야기는 루엔스가 반 혁명분자로 몰려 투옥되면서 급물살을 탄다. 영화는 그가 옥살이한 20년이란 세월에 대하여 설명하지 않는다. 그 이전 행복했던 시절을 끌어다 현재 시점에 꿰매어 붙이고 20년을 봉합해 버린다.어느 날 루엔스가 탈옥을 단행한다. 체포조가 뒤따를 것이라 뻔히 알면서도 아내를 만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의 몸은 체념으로 가득하다. 혁명을 예찬하는 학교 발레 공연에서 주인공을 하고 싶어 안달하는 딸 단단의 신고로 부부는 상면도 못하고 헤어진다. 남편인 줄 뻔히 알면서도 잠긴 문을 열지 못한 펑완위의 찢어지는 마음을 누가 알 수 있으랴. 시간이 흘러 문화대혁명이 끝난다. 출옥한 루엔스가 집으로 돌아온다.(歸來, 영화의 원제) 그의 발길이 마치 유턴하는 차량처럼 보인다. 자리를 박차고 뱅글뱅글 돌더니 종종걸음을 놓는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집에는 ‘심인성 기억장애’로 기억 상실증을 앓고 있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루엔스를 알아보지 못한다. 남은 기억 세 가지는 딸애가 루엔스를 신고했다는 사실, 루엔스의 젊은 시절 모습, 5일에 도착한다는 루엔스의 편지내용 등이다. 그녀는 방문 위에 ‘문 잠그지 말 것’이라고 종이에 써 붙였다. 문을 열지 못했던 그날 이후 방문을 잠그지 않고 생활한 것이다. 아내와 자신이 각각 기다려온 20년은 아내의 기억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는 루엔스만의 기다림으로 전환된다. 의사는 ‘데자뷔’(처음 접하게 되는 사물이나 풍경 또는 사건인데도 예전에 보았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현상을 설명하며 심리치료를 권한다. 예컨대 같이했던 장소, 편지, 사진, 영화, 음악, 책 등을 활용하여 기억의 복원을 꾀하라는 것. 루엔스는 피아노 연주와 편지 읽어 주기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그의 피아노 연주는 편지 읽을 때 마다 배경음악으로 나와 춤춘다. 궤짝 안에 한가득 들어있는 저 편지가 20년을 지켜줬구나. 구구절절한 편지글이 피아노곡과 함께 객석에 빗물처럼 파고든다. 기다림은 단단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아이가 공연하는 극장객석은 의자 하나가 비어있다. 카메라는 끝내 나타나지 않을 엄마의 자리를 클로즈업한다. 홍위병이란 이름으로 혁명을 찬동하던 철부지 아이들 세상은 그렇게 오버랩 된다. 펑완위는 끝까지 루엔스를 알아보지 못한다. 지금도 그들은 매월 5일이 되면 어김없이 기차역으로 함께 나가 루엔스를 기다린다. 뫼비우스 띠처럼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와 어김없이 경적을 울리는 저 기차는 단절 없음의 상징 아닌지. 영화는 옥살이, 치매, 기억상실증까지도 생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망명 작가로 유명한 헝가리의 문호 ‘산도르 마라이’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가득 품고 언제나 모국어로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열정》이라는 작품에서 그는 빛처럼 강렬한 명구 하나를 선사한다. “우리 인간들은 살면서 부딪히는 중요한 문제들에 말이 아니라 삶으로, 전 생애로 대답한다.”라고.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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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20 23:02

[⑮ 산타바바라] 취하라! 술이든 詩든…그대 마음 내키는 대로

사파이어 빛 하늘이 깊어지는 가을이다. 양떼구름 토실토실 떠있는 저 하늘 아래로 길게 뻗은 길을 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마음이 일렁인다. 지평선 너머 소실점 이루는 곳에 내 꿈이 익고 있을 것만 같다.이런 설렘의 계절에는 영화 또한 로드무비가 제격이다. 길을 떠나면서 여러 사람과 사건을 만나게 되고, 그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길 위의 영화 말이다. 그동안 수많은 로드무비가 가을 속을 지나갔다. 내 인생에 끼어든 영화도 무수히 많다. 한 여인을 두고 삼형제가 사랑의 몸살을 앓는 〈가을의 전설〉. “이 길과 똑 같은 길은 없어! 세상의 길은 모두 다르니까.”라는 대사로 로드무비의 대명사가 된〈아이다호〉. 동경 뒷골목, 노란 은행잎 빼곡한 길에서 삶을 재조명하는 〈텐텐〉. 특히 킬러와 인질의 사랑을 그린 〈섬머타임 킬러〉 는 압권이다. 금발의 주인공이 오토바이를 타고 광란의 질주를 하는데, 억새풀 사이로 ‘Like a play‘라는 곡이 감미롭게 흘러 매혹적이다. 꼬깃꼬깃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이 영화들은 틈만 나면 재생되어 내 여린 감성을 자극하고 삶을 간섭한다.우리영화 〈산타 바바라〉는 일과 사랑이 뒤엉켜 풀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한 청춘남녀를 미국 서부 산타바라라로 떠나보낸다. 광고 전문사원(AE라고 부름)‘수경’(윤진서 분)은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다. 밤낮없이 일에 매달려 산다. 고객과 술 마시는 일도 잦아 다른 곳에 눈 돌릴 겨를이 없다. 일중독자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광고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영화음악감독인 ‘정우’(이상윤 분)라는 청년을 만나게 된다. 이 사람은 매사가 무사태평이다. 좋은 게 좋다는 주의. 선배가 사기치고 도망가는 바람에 채권자가 들이닥쳐 자신의 분신과 같은 기타를 들고 가버려 머릿속이 오직 기타 찾는 일로 가득 차 있다. 과음 하던 날, 정우가 횡설수설 하다가 탁자에 머리를 박고 잠들어 버린다. 들쳐 업고 바래다주는 과정에서 수경은 이 남자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가 재혼하여 미국에 산다는 것도. 자신도 언니와 이복인 것을…. 수경은 내색하지 않고 일에 열중한다. 녹음을 위하여 스튜디오가 있는 산타바바라로 함께 출장을 간다. 그곳에는 영화 〈사이드웨이〉에 나오는 유명한 와이너리(양조장)가 있고, 끝없이 펼쳐진 포도농장이 있으며, 맛있는 와인이 있다.LA에서 해안 도로를 타고 북서쪽으로 약 1시간 반 정도 올라가면 산타바바라다. 아름다운 석양, 온화한 기후, 스페인식 건축양식, 팝스타 ‘마이클잭슨’이 살았다는 네버랜드…. 나도 몇 년 전에 그곳에서 갔었는데, 바다로 길게 뻗은 부두가 인상적이었다. 기다란 부두 끝 바다와 맞닿은 자리에 서니 세상 시름이 다 녹는 것 같았다. 둘은 와인에 취한다. 〈사이드웨이〉의 이혼한 교사 ‘마일스’가 그랬던 것처럼. 마일스가 찾아가는 와인 여정은 샛길(사이드웨이)같은 것 이었다. 이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사람이 그곳에서 새 길을 찾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마일스를, 그의 사이드웨이를 동경하는 두 사람 앞에 과연 어떤 길이 나타날까. 영화는 끝없이 펼쳐진 해안도로, 확 트인 바다, 석양의 타는 노을을 보여주며 길을 정하라고 재촉한다. 아! 검붉은 태양의 불콰함은 마일스가 햄버거와 함께 마셔버린 ‘슈발블랑’의 맛을 방불케 한다.해변을 돌아 스페인 풍 빨간 지붕이 즐비한 주택가 길을 걸을 때 정우가 비장한 어조로 말한다. “우리 아버지처럼 엉성한 사랑은 하지 않을 거야.”수경이 답한다. “다 사정이 있었을 거야.” 정우가 수경을 돌려 세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이 무슨 사랑인지 알아요?” “…” “외사랑 이라고요. 그것은 짝사랑하고 달라요. 상대방이 낌새를 알아차리고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랑 말예요.”수경이 함박웃음을 터트린다. ‘술에 곯아떨어진 날 감지했어요. 우리는 비슷한 상처로 힘들어 하잖아요.’수경의 마음이 스르르 열린다. 한편 영화는‘취하라’는 메시지도 진중하게 전한다. 일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사랑에 취하고, 인생에 취하라. 계속 취하라!시인 보들레르도 ‘취하라’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늘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거기 있다/ 이것이야말로 본질적인 문제이다/ 어깨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하는/ 시간 신의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늘 취해 있어야 한다.’후략.‘취(醉)하지 않으면 취(取)할 수 없다.’고 말하는 한양대학교 유영만 교수는 “막히는 길에서 오마이 갓!”을 연발 하면 갓길이 쫙 열린다고 하며 웃었다. 이 가을, 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이드웨이를 간다. 산타바바라든 어디든.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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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29 23:02

[⑭나의 첫 번째 장례식] 나는 지금 어떤 가면을 쓰고 살고 있는가

모 기업체 여직원 휴게실에 ‘간 걸개’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적혀 있어 뜻을 물으니 ‘간을 거는 걸이’라고 했다. 작업장에 나가면서 간을 걸어놓고 간다? 용왕님 만나러 가는 토끼도 아니고……. 눈이 휘둥그레진 나를 보고 그들은 “짓궂은 고객과 상대하려면 별수 없다” 라며 웃었다. 고객의 비위를 맞추려니 어쩔 수 없이 다른 얼굴로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애환이 가시넝쿨처럼 엉켜있는 듯 했다. 이 얼굴을 설명하는 말로 ‘페르소나’가 있다.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쓴 인격’이다. 정신분석가 ‘김상준’은 말한다.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려면 남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고 남과 자신을 맺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타협이 있어야 하는데 그 산물이 페르소나, 즉 가면이다. 이것은 자신의 진짜 모습은 아니며, 사회에서 만들어진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시대가 바뀌거나 문화가 다르면 그 모습도 달라질 수 있다’라고.‘짐 케리’가 주연한 영화 〈마스크〉는 가면을 쓰는 이유를 보다 현실적으로 풀이해 준다. ‘숨겨진 욕망인 본능적 충동은 억압받고 있어서 사회적으로 용납 받을 수 있는 형태로 표출하는 것’이라고. 여기서 영화는 ‘다 같이 쓰는 가면’이 있는가 하면 ‘나만 쓰는 가면’이 따로 있는데, 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든가 맹목적으로 쓰게 되면 큰 낭패를 볼 것이라고 경고한다.〈나의 첫 번째 장례식〉이란 영화를 이런 관점에서 봤다. 원제는 〈Vijay and I〉, 즉 ‘비제이’라는 다른 나를 진짜 나와 비교해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내용을 희화화하여 포스터를 달았다. 제목 속에 내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또 두 번째, 세 번째 장례식이 계속될 수 있음이 암시되고 있어 재미있다. 영화는 방송국에서 ‘운 나쁜 토끼’라는 이름으로 항상 녹색 토끼 인형 옷을 입고 연기하는 ‘윌 와일더’(모리츠 블라이브 트로이 분)의 삶을 조명한다. 40세 생일, 녹화 중 PD의 반복되는 지적에 흥분한 윌은 토끼 인형 복장을 한 채로 방송국을 뛰쳐나온다. 주유소에서 자동차까지 도난당하고, 단짝인 ‘라드’(대니 푸디 분)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 차가 밤에 연쇄 충돌사고로 전소하였다는 것이다. 윌은 현장에서 한줌의 재가 되었다고 방송은 대대적으로 보도한다.졸지에 죽은 사람이 되어버린 윌. 가족이 놀랠까 봐 집으로 전화하다 말고 갑자기 생각을 바꾼다. 자신의 죽음을 두고 세상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진 것이다. 전문가인 라드의 도움을 받아 인도인으로 변장한다. 은행가이면서 윌의 절친한 친구 ‘비제이’로 변신하는 것이다. 장례식에 참석한다.장례식은 그가 아끼던 유품을 매장하면서 시작된다.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데, 자신의 에이전트가 나선다. “수많은 아이의 친구이자 사랑스러운 아내의 남편, 어여쁜 딸의 아버지, 그리고 우리 모두의 친구가 영면했다.” 조금 뒤 비제이에게 마이크가 넘어온다. 사양하던 그는 “우리 시크교에서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가는 다리입니다.”라며 점잖을 떤다. 아내 ‘줄리아’(패트리시아 아퀘트 분)가 머리를 조아린다.사단은 윌의 집 추모회에서 난다. 옛 애인을 자처하는 한 여인이 비제이를 향해 쏘아 붙인다. “당신은 윌이 대단한 존재인 줄 아는 모양인데 전혀! 덩치만 컸지 완전히 유치하고 이기적이었죠. 불만투성이에 자기밖에 모르는 루저 라고요.” 다시 나타난 에이전트는 “세상사람 모두가 운 나쁜 토끼로만 기억한다.”라며 다른 배역이 적절치 않았다고 말한다. 장인 장모는 은행가인 비제이에게 딸의 비자금 운영방법을 상의한다.모란꽃을 들고 가 아내를 유혹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얼마나 됐다고 아내는 비제이에게 잠자리까지 허락한다. 심지어 침대 위에서 “그는 방송국 토끼일 뿐 아니라 잠자리에서도 토끼였어요.”라고 서슴없이 말한다.자신이 쓰고 있던 토끼 인형만 답답하게 여겼던 윌, 방송국만 벗어나면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최악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습관대로 양말을 털다가 아내에게 정체가 탄로 나고, 따지려 드는 줄리아에게 황급히 말한다. “이제 윌은 없어!” 줄리아가 말한다. “비제이는 너무 품위 있고 유혹적이었어요.”잘 나가는 식당 사장으로 변모한 인도인 비제이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씁쓸한 느낌 뒤로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윌의 정체성과 다음 장례식에 대한 우려가 그것이다. ‘죽어야 산다. 버려야 산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본질까지 버려서야 되겠는가? 그나저나 가면을 어찌해야 하나. 김상준은 말한다. 잘못된 가면을 벗는 방법은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지금 이것이 누구 것인지 확인하는 습관이라고.’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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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15 23:02

[⑬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나쁜 기억은 행복의 홍수아래 가라앉게 하세요

G라는 중견 공무원이 있다. J대학교를 나와 20여 년을 근무했다. 직장에서 승진도 제때 했고, 맞벌이까지 하고 있어 무난해 보인다. 그런데 그의 어깨는 항상 처져 있다. 대중 앞에 서는 게 매우 어색하고, 매사에 주도적이지 못하다. 알고 보니 그는 내면에 커다란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집안은 속칭 ‘사자(士字)’ 가문이었다. 가족 중 여러 명이 의료계에서 일하고 있다. 공부를 못했던 것도 아닌데, 동네에서 그는 항상 공부 잘하는 아무개의 동생으로 불렸다. 최고가 되지 못해 또 부모님 뜻에 부응하지 못해 그는 항상 죄송한 마음이다.‘존 브래드 쇼’는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료〉라는 책을 통해 말한다. ‘아이의 감정이 억제되었을 때, 특히 화가 나거나 상처받았을 때의 감정들을 그대로 가진 채 자라서 성인이 된다면, 그 아이는 어른이 된 후에도 마음속에 자리 잡아 성인으로 행동하는 데 지장을 준다’라고.〈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란 프랑스 영화를 내면아이라는 관점에서 봤다. 영화는 33세된 총각 피아니스트‘폴’(귀욤 고익스 분)의 잃어버린 시간에 초점을 맞춘다. 폴은 두 살 때 건물 붕괴사고로 부모를 잃고 그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렸다. 열등감과 상실감으로 늘 괴로워했다.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이면서 수차례 콩쿠르에서 한 번도 입상하지 못했다. 이모들이 운영하는 댄스교습소에서 영혼 없는 반주를 하고 산다. 초점 잃은 눈동자에다 처진 어깨, 정면을 주시하며 걷는 습관…. 역동 (力動)이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마음 구조는 다분히 본능 쪽이다. 과자 ‘슈게트’를 먹을 수 있을 때 좋아하고, 먹을 수 없을 때 화를 낸다.영화는 그의 기억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시작부터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을 인용한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진정제가, 때로는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기억을 꺼내는 데 두 가지 방법을 쓴다. 첫째는 꿈이다. 그의 꿈에 나타나는 아빠는 엄마를 때리는 폭군이고, 자신에게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괴한이다. 둘째는 최면이다. 어느 날 그는 맹인 조율사를 따라 같은 아파트 4층에 있는 ‘마담 프루스트’(앤 르니 분)의 비밀정원에 가게 된다. 마담은 신비한 식물을 가꾸고 있었다. 차와 ‘마들렌’이란 과자를 만드는데, 이를 먹는 사람은 최면에 들고, 그 상태에서 오만 가지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마담은 이 방법으로 심리치료를 하는 것이었다. 재미를 붙인 폴은 수시로 정원을 드나들며 과거로 여행한다. 기억의 소용돌이 속에서 웃고 울기를 반복하던 그의 눈에서 불똥이 튄 것은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장면에서다. 반복되는 이 상황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말하려 함이지 싶다.폴은 댄스교습소를 하는 두 이모의 손에서 자란다. 질서, 논리, 이성이 지배하는 춤 그리고 음악을 강조하는 그녀들을 두고 수강생들은 “누가 클럽에서 ‘미뉴에트’를 출까요?”라며 비아냥거린다. 초자아의 화신이랄 수 있는 이모들의 욕망은 이율배반적인 데가 있다.아빠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을까? 어느 기억여행에서 폴은 아빠와 엄마가 링 위에서 치열하게 싸우다가 끝날 때 다정하게 포옹하며 하트를 날리는 모습을 본다. 영화는 차츰 폴의 아빠에 대한 생각이 고상한 이모들 때문에 왜곡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모들은 천사 같은 동생이 불한당 같은 남자(아빠를 지칭)에게 시집가서 고생하는 게 싫었을 터. 음악을 숭상하는 가문의 전통, 이를 거스르는 동생 내외의 삶이 미웠을 것이다. 아빠에 대한 미움은 폴에게 투사되고 폴은 자신의 무의식에 아빠를 나쁜 사람으로 저장한 것이다.영화는 폴의 기억에 모빌과 개구리 인형을 자주 등장시킨다. 모빌 뒤에는 항상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엄마가 등장하고, 개구리 인형들은 패거리로 나타나 악단이 된다. 신명 나게 연주하는 모습은 폴이 원하는 음악세계려니 싶다. 심리치료가 진전을 보일 즈음 폴은 콩쿠르에 나가 당당히 우승한다. 연주할 때 개구리 인형의 환영이 나타나고 이들과 함께 미친 듯이 연주한다. 지긋지긋하게 발목을 잡았던 내면의 아이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 꿈속에서 아빠와 함께 등장하던 ‘그랜드 캐니언’에 간다. 이곳은 무의식의 숲이 아닐까? 폴은 계곡을 등지고 자기 아이를 향해 다정하게 말한다. “빠, 빠!”기억. 우리는 이를 어떻게 꺼내 쓰는가. 마담 프루스트는 말한다. “나쁜 추억은 행복의 홍수아래 가라앉게 해. 기억은 물고기처럼 물속 깊숙이 숨어 있거든. 네가 낚싯줄이라면 기억들이 좋아하는 미끼를 던져야 하겠지.”정원을 찾는 고객 중에 의사선생님도 있다. 그는 직업상 불안이 있다며 동물과 일하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아빠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되기는 하였지만…. 영화를 같이 본 G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런 정원이 실제로 있었으면 좋겠다.”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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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01 23:02

⑫디태치먼트 - 계약교사 헨리 통해 삶의 의미 관조

세계 2차 대전 뒤에 이탈리아에서 태동한 영화 사조를 네오 리얼리즘(Neo realism)이라고 한다. 당시 감독들의 다짐은 영화에 대한 미학적 근심이 아니라 진실을 영상에 담는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토로하자는 것이었다. 스토리는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슬로건을 남긴 새로운 사실주의 영화작업은 민중의 삶을 진실한 시각으로 조명했다는 데 커다란 뜻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개(Publicity, 퍼블리티)와 시민(Citizen, 시티즌)의 영문 합성어인 퍼블리즌(publizen)은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공개하거나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다. 이 신조어를 보면서 자꾸 네오리얼리즘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들이 자신의 내밀한 삶을 자꾸 웹상에 공개하는데, 여기 올라오는 이야기가 가공되지 않은 사실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이야기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어디 있는지 궁금하다. 디태치먼트(Detachment)라는 미국영화를 이런 관점에서 봤다. 영화는 기간제 교사로 전전하는 헨리 바스(애드리안 브로디 분)의 눈에 비친 세상을 인터뷰 형식으로 조명한다. 내 마음속에 뭐가 있던 그건 진실한 나의 감정이다라고 말하는 사람. 그는 세상과의 거리 두기가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 믿고 있다. 제목도 그의 사는 방식을 반영했다. 그가 한 고등학교에 들어간다. 계약기간은 한 달. 말썽 많기로 유명한 학교다. 폭력배 수준의 아이들, 딱딱하게 굳은 표정에서 냉기가 흐른다. 선생님들은 수업보다 아이들 달래기에 바쁘다. 상담 선생님은 학과성적이 모두 F인 한 학생과 상담하다가 참았던 울분을 터트리고야 만다. 매일 너 같은 아이들을 상대하면서 내 삶이 얼마나 망가진 줄 알아? 학생은 남자친구랑 놀다가 모델이나 밴드를 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학부형 회의가 열린다. 한 시간을 기다렸지만 딱 한 명이 참석한다.헨리가 칠판에 단어 하나를 적는다. Double think(더블 싱크). 이중사고라는 뜻으로 영화는 한 학생의 입을 통해 서로 반대되는 신념을 둘 다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뚱보 여학생 매러디스(베티케이 분)는 이런 상황을 카메라에 담는다. 사진을 인화해서 수북이 쌓아놓고 그 위에 눕는다. 그 속에 헨리의 것도 있다. 얼굴에서 눈, 코, 입을 지우고, 텅 빈 교실과 나란히 배열한다. 왜냐고 물으니 선생님이 슬퍼보였어요. 라고 답한다. 헨리가 자문한다. 복도를 걷거나 수업할 때 마음의 무게를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헨리는 왜 그렇게 비쳤을까. 그는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외할아버지와 어머니, 이렇게 셋이 살았다. 어머니는 자살하고, 외할아버지는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들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영화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어머니와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신으로 처리할 뿐. 그는 문병 갔을 때 외할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했다.시내버스에서 혼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우는 헨리, 거리에서 몸 파는 소녀를 집에 데리고 와서 지극 정성으로 돌봐준다. 소녀가 차려주는 밥상을 보며 감동한다. 날 위해 요리하는 손길이 있다니. 헨리의 혼란스럽고 슬픈 일기장은 그렇게 넘어가고 있었다. 이 학교에서 계약이 끝나는 날 한 학생이 헨리에게 묻는다. 옮겨 다니는 것 힘들지 않아요? 헨리가 답한다. 이게 내 일이야. 사람의 삶이란 게 그래. 어떤 날은 좋고, 어떤 날은 나쁘지. 때로는 타인을 위한 제한된 공간을 가지기도 하지.그렇게 그는 학교를 떠난다. 정리되지 않은 많은 이야기를 가슴에 담은 채. 그리고 먼발치에서 자기의 생각을 말한다.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준비를 해야 해요. 아무나 부모가 될 수는 없죠. 또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인가 필요해요. 그런데 누구도 그 복잡함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아요. 누가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지 생각하고 싶어 하지도 않죠.영화는 애드거 엘런 포의 소설 어셔가의 몰락에 나오는 명구를 인용하며 끝난다. 나의 우울한 영혼과 썩어버린 나무를 보았다. 그것은 구역질나는 마음의 냉정함이었다. 무엇인가에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게 생이라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확인한다. 때로는 애착으로, 때로는 무심함으로. 그 속에서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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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8 23:02

[⑪ 리스본행 야간열차] 내 삶은 어디에 있는가

낯선 곳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일까. 불편, 두려움, 막연함, 야릇함까지 더해져 고단할 텐데, 이를 감수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영화에게 물었다. 영화는 얻기 아니면 버리기. 일 것이라고 답한다. 일탈도 모험도 충동도 동인(動因)이 있지 않겠느냐며. 미국영화 <레인맨>은 소식도 모르고 지내던 형제가 만나 여행하면서 잃었던 우애를 되찾는다. 홍콩영화 <해피 투게더>는 슬픔을 버리는 곳으로 지구의 땅 끝이라 불리는 아르헨티나 최남단 우수아이아의 한 등대를 지목한다. 그곳에 가는 창이란 사나이는 친구 아휘의 슬픔까지 녹음해서 들고 가서 사방에 뿌린다.여기 또 한 사람이 플랫폼에 서 있다. <리스본 행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서다. 이름은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 분). 고전문헌학 교사인 그는 아침 출근길에 다리 난간에서 강으로 뛰어내리려는 한 여인을 구하는데, 그녀는 빨강 코트와 책 한 권 그리고 리스본행 열차표 한 장을 남기고 사라진다. 스위스 베른에서 포르투갈 리스본 까지, 예기치 않았던 열차여행이 시작 된다.여인은 어디로 간 것일까. 책장을 넘기며 생각에 잠겨있던 그레고리우스가 깜짝 놀라며 자세를 바꾼다. 수많은 경구로 가득한 책을 보고 순식간에 매료된 것이다. 저자의 삶이 너무 특별해서 내 인생이 의미가 없이 느껴져요. 그는 리스본에 도착하자마자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이 책의 주인공 아마데우스 프라두(잭 휴스턴 분)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거리에서 가벼운 충돌로 안경이 깨지는 사고를 당하고, 마리아나(마르티나 게덱 분)라는 안과 의사를 만나게 된다. 검안경을 끼고 두리번거리다 뻘쭘해진 그가 의사에게 묻는다. 내가 지루해 보이죠? 답이 없다. 인생은 정해진 대로 사는 것인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새로운 안경이 끼워진다. 베러(Better)! 내 삶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자문하던 그다. 자신의 앞길을 밝혀줄 새로운 눈을 얻게 되었으니 이야말로 개안(開眼) 아닌가. 삶의 모멘텀이 여기 있다.책은 1974년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을 다뤘다. 독재자 살라자르에게 항거하기 위해 봉기한 혁명 전사들의 총에 시민들이 카네이션을 달아줬다는 데서 유래한 명칭. 이때 숨어서 항거한 레지스탕스 주력 멤버 중에 아마데우스, 조지, 주앙, 그리고 여 전사 스테파니(멜라니 로랑 분)가 있다.스테파니는 레지스탕스의 비밀을 총괄하는 미모의 여성이다. 정부군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남자 대원 몇몇이 그녀를 없애자며 달려든다. 잡히면 불고, 불게 되면 모두가 희생된다는 것이 이유다. 사면초가에 빠진 그녀에게 달려간 것은 아마데우스였다. 아마데우스가 말한다. 오직 너와 나만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로 갈 거야. 나는 책을 쓰고, 너와 나만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창조할 거야. 가능한 한 멀리 강을 따라올라 갈 거야. 과거로, 미래로, 그리고 마지막의 맨 처음으로. 스테파니가 묻는다. 나는 뭘 하지? 나랑 공유하면 돼. 같은 공기, 같은 느낌, 같은 맛. 그러나 그녀는 준비가 덜 됐다며 가슴 벅찬 사랑을 포기하겠다고 말한다. 내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당신은 많은 것을 원해. 그들은 그렇게 헤어진다. 명문가에 태어나 의사로, 레지스탕스로, 저술가로 번듯하게 살아온 아마데우스는 동맥류로 요절한다. 그레고리우스는 요양원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주앙(마리아나의 삼촌임)을 만나 책 속의 궁금증을 푼다. 스테파니는 아주 기품 있게 늙어가고 있었다. 왜 아마데우스 곁을 지키지 않았는지? 그레고리우스는 책을 건네주고 마리아나와 마주 선다. 부인과는 왜 헤어졌어요?라는 질문에 거만한 아내지만. 그녀는 아마 내가 지루해서 떠난 것 같아요.라고 답한다. 기차 출발 5분 전, 마리아나가 말한다. 여기 머물지 않으시겠어요? 저는 당신이 지루하지 않아요. 남자의 눈에서 광채가 난다.책은 아마데우스의 여동생이 오빠의 일기를 원용하여 100권을 펴냈다. 그중 한 권이 베른 의 한 서점에서 팔렸다. 자살을 시도한 여인은 살라자르의 손녀였다. 책을 통해 할아버지의 만행을 알게 되자 가책으로 일을 벌인 것이었다. 책을 펴낸 여동생이 그레고리우스에게 물었다. 왜 인생에 과거를 끌어들이죠? 영화는 이 부분에 대한 답을 내레이션으로 처리한다. 마지막의 맨 처음이라고, 또 그곳으로 돌아와야만 다시 찾는 것도 있다.라고.리스본은 내 안에 있음을, 원하는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수시로 안경을 바꿔 끼워야 함을 영화가 조곤조곤 말해 준다. 과외 받듯, 책장 넘기듯 보는 영화다. 삶의 결정적인 순간은 항상 드라마틱하거나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라는 경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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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04 23:02

⑨ 레바논 감정 -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

<이퀄리 브리엄>이란 영화는 모든 감정이 통제되는 미래 도시 리브리아를 무대로 설정한다. 지배자는 전 국민에게 프로지움이란 약을 먹게 하여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하고, 감정을 느끼는 자들을 찾아 살멸한다. 상상도 못 할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정작 지배자는 약을 먹지 않고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와중에도 감정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계속 등장하는데, 그들을 보면 압력밥솥에서 수증기가 분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감정 유발 죄로 체포된 한 여성이 심문을 당한다. 당신은 왜 살지? 느끼기 위해서요. 그것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중요해요. 사랑이 없다면, 분노나 슬픔이 없다면, 숨 쉬는 것은 시곗바늘이 내는 소리와 같을 뿐이에요.이런 감정의 메카니즘은 무엇일까? <내 감정 사용법>이란 책은 감정에 대하여 (신체의) 생리학적, (정신의) 인지적, (행위의) 행동적 요소가 동반된 우리 몸 모든 기관의 갑작스러운 반응이라고 정의한다. 찰스 다윈은 기본 감정으로 기쁨, 놀라움, 슬픔, 두려움, 혐오, 분노를 꼽는다. 그렇다면 각각의 감정을 구분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은 있을까? 책은 지금도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시인 최정례가 감정의 한 부분을 터치했다. 레바논 감정이란 시를 통해서다. 그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레바논 감정이라 부르자고 제안한다. 수박은 가게에 쌓여도 익지요./ 익다 못해 늙지요/ 검은 줄무늬에 갇혀 수박은 /속은 타서 붉고 씨는 검고/ 말은 안 하지요 결국 못 하지요/ 그걸 레바논 감정이라 할까 봐요 - 후략 -이 시에서 제목을 가져왔다는 <레바논 감정>이란 영화가 있다. 영화는 어떤 상황을 레바논 감정이라 부르는지 살펴보자.헌우(최상우 분)라는 젊은이가 어머니 기일을 맞아 봉안 당을 찾는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몰라도 한참을 흐느끼다 돌아선다. 얼마 후 그는 아는 형이 잠시 묵으라며 내준 아파트에서 목을 맨다. 잘 못 묶어 실패하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지낸다. 어느 날 눈밭에서 어머니의 환영을 만난다. 어머니는 마주 잡은 손을 놓으며 손사래를 친다. 이제 네 갈 길 가라는 듯. 그러나 그는 자꾸만 어머니에게 다가가려 몸부림친다. 이때 다른 자기(자아로 해석됨)가 뒤에서 몸통을 끈으로 묶고 잡아당긴다. 하릴없는 육신이 눈밭에서 나뒹군다. 스스로 내 박친 인생이다. 눈 쌓인 들녘에 한 여인(김진욱 분)이 널브러져 있다. 막 출옥하였는데 갈 곳이 없는 가엾은 아가씨다. 지나가는 차를 무작정 얻어 타고 여기까지 왔다. 이곳에서 사내 둘이 경합한다. 운전해 준 남자와 여인을 찾아온 전(여자가 투옥되기 전) 남자. 여인은 운전해준 남자가 용변을 보는 사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 들고 산속으로 도망친다. 그 사이 전 남자가 나타난 것이다. 여인은 낯선 산속을 헤매다 노루 덫에 걸리고 비명을 들은 헌우가 달려가 구해준다. 이방인들의 동거가 시작된다. 침침하고 퀴퀴하던 아파트 창에 빛이 들고 향내가 나기 시작한다. 지리멸렬한 두 청춘이 한 침대에 든다. 시든 화초에서 꽃이 핀다. 여인이 헌우를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 겨울에 피는 흰 장미여 아직도 나를 기다리나.겨울장미 노래를 마친 여인이 헌우의 손을 감싸 쥔다. 잡아당기는 손이다. 위안의 손. 같이 가자는 손. 헌우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남녀가 사막처럼 건조하고 개흙처럼 질퍽거리는 질곡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사람은 둘, 동기는 하나다. 살면서 말로 표현 못할 상황이 얼마나 많았던가. 침보다 더 뜨거운 덩어리를 목구멍으로 넘긴 게 몇 회였는지 모른다. 시는, 영화는 이를 레바논 감정이라 합시다. 그럽시다. 그렇게 말하며 마무리 한다. 어느 날 레바논 감정 같은, 꼭 그와 같은 감정이 엄습하면 어떻게 할까. 이퀄리 브리엄은 말한다. 억제하는 힘이 없다면 감정은 단지 혼란에 불과하다라고. 내 감정 사용법의 해석은 조금 강력하다. 감정은 당신이 무엇을 하든 당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타난다. 당신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감정의 조종을 받을 것인가. 감정을 조종할 것인가. 두 가지 길뿐이다. 감정은 말 잘 듣는 하인이자 못돼먹은 주인이며, 사용법을 알아야 하는 생물학적 힘이다.성숙한 사람은 자기 성격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요. 에니어그램 하면서 들은 말이다. 얼마나 성숙해야 할까. 얼마나 모질어야 할까. 오늘도 멘붕이 지나갔다. 저잣거리에 날아다니는 모래알 같은 놈이겠지 생각하지만. 나도 모르게 익숙해진 감정을 더듬고 있는 게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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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07 23:02

[⑧'차가운 장미'로 보는 중년의 위기] "인생이 이끄는 대로 끌려온 거야"

장미의 계절이 오면 어김없이 베트 미들러의 더 로스란 곡을 꺼내 듣는다. 폭풍처럼 살다간 여성 라커 제니스 조플린의 삶을 노래로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79년에 나온 동명 영화에서 그녀는 돈밖에 모르는 매니저의 주문을 거부하지 못하고 싫어도 마이크를 잡는 여린 가수로 그려졌다. 마약에 노출되더니, 급기야 2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나는 산 채로 묻혀요〉라는 전기로 더 유명해진 그녀의 파란만장한 생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우리 영화 〈인간중독〉의 엔딩 곡으로 쓰여 많은 사람의 심금을 미묘하게 휘저었으니 나의 공명이 헛되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긴다.영화 〈향수〉는 장미꽃 1만 송이를 솥에 끓이면 한 방울의 오일이 나온다고 했다. 그루누이라는 냉혈한이 오일을 추출하면서 아름다운 아가씨만 골라 장미꽃 송이와 함께 밀어 넣는다. 미치도록 고혹적인 향이 사람을 파라다이스로 데려다 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냄새도 사람도 미쳤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인간의 하릴없는 욕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 뷰티는 장미(아메리칸 뷰티는 미국 산으로, 사계절 꽃이 피는 장미의 일종이다. 수도 워싱턴의 시화(市花)로, 새빨간 꽃이 피는 것으로 알려졌다)로, 장미는 성적 욕구로 표현된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장미는 이를 매개하는 모티프(motif)로 기능한다. 결말에서 식탁 위 장미꽃이 주인공 레스터가 총에 맞고 벽에 피를 튀기는 장면과 대비되는데 이는 인간의 탐욕을 강조하려는 듯하다.장미는 왜 여러 영화에서 때로는 치명적 아름다움으로, 때로는 천대의 대상으로 극단적 조명을 받아야 하는가. 장미의 시름이 깊어지는 6월에 찾아온 영화 〈차가운 장미〉도 다르지 않다. 영화는 장미를 매혹으로 또 위기로 표현한다. 장의자 시트, 모포, 쿠션, 목도리 등 수많은 장치에 묻어있는 장미의 향취는 특별한데,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중 미미의 테마를 삽입하여 폐결핵을 앓는 소녀 미미와 로돌포의 비련을 대치시킨 것이 그렇다.폴(다니엘 오떼유 분)은 존경받는 외과 의사로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다. 사방을 유리로 단장한 저택에서 부인 루시(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분)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느 날 평온한 이집에 의문의 장미꽃 다발이 배달된다. 폴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내동댕이친다. 꽃은 집과 병원을 번갈아 가며 매일 배달된다. 부부는 크게 당황한다. 그 무렵 폴은 한 카페에서 루(레일라 벡티 분)라는 아가씨를 만나게 된다. 거리에서, 병원에서 자꾸 마주치게 되는 루. 폴은 그녀를 장미꽃 발송인으로 지목한다. 쫓다가 놓치는 일이 반복되고, 폴은 그만 정신이 혼미해진다. 수술하면서 손이 떨리는 증상을 노출하여 휴직 하게 된다. 애증이 깊어진 루. 집요하게 행방을 추적하는데, 그녀가 낮에는 카페에서 일하고 밤에는 몸 파는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카페를 계속 찾고, 음악을 선물하고, 차 안에서 데이트도 하고. 낌새를 눈치챈 루시는 정원을 손질하면서 마음을 추슬러보지만, 폴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루시에게 돌진하는 폴의 절친한 친구이자 같은 병원 의사인 제라드(리샤드 베리 분). 설상가상으로 노골화 되는 아들 내외의 불화, 아들의 폴에 대한 반항 등 예기치 않은 사건이 잇달아 발생한다.폴의 변명을 들어보자. 그녀는 나를 움직이게 했어요. 아주 멀리 돌려놨어요. 시작 전으로. 삶으로. 덧붙여 말한다. 어느 것도 꿈꿔본 적 없어. 인생이 이끄는 대로 끌려온 거야. 어이없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부닥친 루시가 강한 어조로 반문한다. 우리가 있기나 한 거야? 사실 루시는 제라드에게 몸을 의지하고도 싶었다. 제라드의 말, 내일 당장 루시를 데리고 멀리 떠나버리고 싶어. 어느 날 루가 자기 집 목욕탕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경찰에 의하면 그녀는 돈 많은 상류층 남자들을 몸으로 유혹하여 금품을 갈취해 왔고, 이번이 폴 차례라는 것이었다. 영화 〈데미지〉가 떠올랐다. 장관 직함에다 든든한 백그라운드,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 플레밍은 아들의 약혼자와 사랑에 빠졌다가 모든 것을 다 잃고 쫓겨났다. 여자는 그에게 접근하며 말했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위험해요. 사는 방법을 터득했으니까.영화에서 차가운 장미는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된다. 하나는 싸늘하게 식어간 루요, 다른 하나는 루시의 가슴 깊은 곳에 숨어있는 장미다. 평화로운 가정에 불어 닥친 너울, 언제 잠잠해질지 모르겠다. 루가 선물한 곡 다정한 양귀비가 감미롭게 들려온다.어느 것도 꿈꿔본 적 없어, 인생이 이끄는 대로 끌려온 거야.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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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23 23:02

[⑦ 인간중독] 중독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인간

‘유피놀’(Ufinol)은 Unfinished Noon Of Life의 줄임말로 ‘절정이되 흔들림의 과정이 남았으므로 미완의 절정’이란 뜻으로 쓰인다(지식백과). 여기서 사전은 40대 한국남성들을 예로 들며 크게 두 가지 특성이 있다고 부연한다. 첫째는 ‘피곤함’이다. 벗어나려는 10대, 즐기려는 20대, 더불어 살아가려는 30대, 외로운 50대 사이에 끼어 심리적 피로가 크다는 것이다. 둘째는 ‘편견과 아집의 고착화’다. 이는 어떻게든 자신이 경험했거나 받아들였던 상황을 정당화하려는 성향을 말한다. 이를 부정하게 되면 그 시간 속에 들어있던 자신의 존재가 근거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논자는 이를 위기라 말한다. 술로 해결하려는 경향까지 묶어 강한 톤으로 경고한다.불혹(不惑)이란 말(四十而不惑)을 떠오르게 한다. 공자는 일생을 회고하며 40세가 되어서는 미혹(迷惑)되지 않았다는 말을 남겼다.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를 말함이다.영화 〈인간중독〉을 보면서 이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반평생을 살고도 내세울 게 없어. 창문에 뭍은 지문 같아. 바다로 흘러 들어갈 똥 뭍은 휴지 신세지.”월남전에서 커다란 전공을 세우고 귀국하여 교육부대장 직을 수행하고 있는 ‘김진평’(송승헌 분)대령은 군(軍) 내에서 전설로 통한다. 대성할 것이라며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장인이 군단장이란 사실, 절세미인인 아내 ‘이숙진’(조여정 분)의 확실한 내조 등 조합 또한 완벽하다. 그런데 의기양양해야 할 당사자는 얼빠진 사람처럼 표정 없는 얼굴로 줄담배만 피우고 있다. 어느 날 그가 군의관과 마주앉는다. “이명현상에다 불면증, 그리고 가끔 베트콩 환영이 보인다고? 이건 섬망인데…. 절대로 술 마시지 마. 알았어?” 친구인 군의관은 차트에 ‘감기몸살’이라 적으며 당부한다. 진평은 산책, 테니스, 봉사활동 등으로 추슬러 보지만 몸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어느 날 관사 옆 동에 ‘경우진’(온주완 분)대위가 이사 온다. 예쁜 아내 ‘종가흔’(임지연 분)과 함께 둥지를 튼다. 새를 좋아한다는 종가흔. 집 주변이 새장 일색이다. 재잘거리는 새 소리가 부대 안에 향기처럼 퍼진다. 진평의 굳은 몸이 반응한다. 앙증맞은 한 마리 새를 향해 담배 연기가 길게 뿜어진다. “새가 싫어하잖아요.” 여인과 눈이 마주친다. 진평은 여인의 치명적 매력 앞에 넋을 잃고 만다. 약보다 어지럽고, 담배보다 중독 심한 사랑이 시작된다. “당신을 안 보면 숨을 쉴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진평에게 가흔은 “왜 이렇게 가슴이 뛰죠?”라는 말로 맞불을 놓는다. 진평이 가흔에게 아끼는 지프라이터를 선물한다. 꺼지지 않는 불씨의 상징 아니던가. 진평은 가흔을 만날 때면 어김없이 백옥처럼 흰 와이셔츠를 입는다. 순정을 바치겠다는 뜻일 터. 음악은 빼놓을 수 없는 중독의 은유. 진평은 틈만 나면 시내 음악 감상실에 나간다. 둘은 음악과 함께 왈츠와 함께 하늘을 난다. 멜로(Melo), 멜로디와 로맨스가 결합된 말. 뗄 수 없는 사랑, 중독된 인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모습은 감상실에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남는다.방죽에 수류탄 투척 훈련을 지휘(불을 끄는 상징적 의미로 이해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평이 준장으로 진급한다. 축하파티 장. 남편을 부관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진평의 말에 가흔이 거절한다. 전에도 가흔은 가정 가진 몸이라는 이유로 뒷걸음질을 친 적이 있다. 진평은 취할대로 취한 상태. 자신을 버리지 말라며 애원하다가 급기야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난동을 부린다. 절대로 술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수습하는 과정에서 장인은 잠시 월남에 가 있다 오라고 말한다. “저게 장인이냐?” 진평은 최악의 자충수를 두고 이렇게 자멸한다. 어쩌면 그는 미혹을 넘어 지천명을 맞고, 50대에 지독한 외로움과 맞서야 하는 삶이 두려워 이 길을 택했는지 모른다. 〈인티머시〉란 영화가 머릿속을 휘저었다. ‘제이’에게 찾아온 여인 ‘클레어’. 둘은 서로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 채 수요일 마다 섹스를 한다. 어느 날 정해진 시간에 여인이 나타나지 않자 제이가 찾아 나선다. 클레어의 정체를 안 순간, 이들은 헤어져야 했다. 감독 ‘셰로’는 ‘관계를 지속시키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얼마나 끔찍스러울 수 있는지 그려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진평이 미국영화 〈사이드 웨이〉에 나오는 이혼한 중년남자 ‘마일즈’가 하는 푸념을 들었더라면…. “반평생을 살고도 내세울 게 없어. 창문에 뭍은 지문 같아. 바다로 흘러들어갈 똥 뭍은 휴지 신세지.” 제임스는 훗날 좋은 여자 만나서 좋아하는 와인 마시며 행복하게 산다. 출세가도에 지장이 있을까봐 몸이 아파도 숨기며 가슴으로 울어야 했던 한 기계적 인간의 피곤이 온몸에 빗물처럼 흘러내리는 영화다. 에로 운운하는데, 나는 영화 속 외설이 조금도 흥미 없었음을 고백한다. ‘매뉴얼대로 하지 않는 게임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 중독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인간이다.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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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09 23:02

[⑥ 레인보우] "나만의 카메라 드는데 누구 말도 듣지 마라"

저 언덕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항상 궁금했다. 어느 날 보니 그곳에 무지개가 떴다. 눈에 어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달려갔다. 고개를 넘어도, 넘어도 무지개는 잡히지 않았다.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다.영화 <레인보우>는 ‘지완’(박현영 분)이 영화감독의 길을 가기 위해 중학교 교사직을 그만두면서 시작된다. 머지않아 입봉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하나로 과감히 교문을 박차고 나간다. 운동하는데 동네 운동장에 고인 물에 무지개가 떴다. 서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신호였던가. 그날 이후 무지개가 보이지 않았다.시나리오 작업만 3년, 열다섯 번이나 고쳤음에도 영화사 피디는 오케이 사인을 주지 않는다. “제작자들이 계산에 얼마나 밝은지 알아? 다른 작품을 한번 써보지 그래”라며 「스타탄생」이란 시나리오를 부여잡고 다시 2년의 세월을 보낸다. 헤드 랜턴 끼고 하얗게 지샌 밤이 얼마였던가. 음식을 태워 방안이 연기로 가득해도, 빈 그릇과 빨랫감이 수북이 쌓여도 괘념하지 않았다. 어느 날 보니 노트북 모니터 안에서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 아닌가. 벌떡 일어나 에프킬라를 뿌렸지만, 없어지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괴롭혔다. 환영(幻影)이었다. “언제까지 할 거야?” 순박한 남편 ‘상우’(김재록 분)가 일어나 윽박지르기 시작한다. 하나뿐인 아들 ‘시영’(백 소명 분)은 엄마 얼굴을 벽에 붙여놓고 공 던져 맞추기 놀이를 하며 말한다. “우리 엄마는 참 한심한 것 같아.” 학교에 한번 가겠다고 하니 한마디로 일축한다. “오지 마, 쪽팔려!”‘전략적 가족치료’에 ‘가족 항상성’이란 용어가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내외의 환경에서 가족은 안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변화하고자 하는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는데, 병리적 가족일수록 변화보다 안정을 위해 가족의 엄격한 연쇄 과정을 유지하며 기존 방식에 완고하게 집착한다.’라는. 그 와중에 시영이 학교 보컬그룹에 가입한다. 지완이 묻는다. “너 무대 공포증 있잖아?” 시영은 대꾸도 안 하고 기타만 친다. 카메라는 이집 풍경을 잇달아 클로즈업 한다. 엄마는 시나리오, 아들은 기타, 아빠는 술…. 시영이 엄마에게 부탁한다. 영화 만들 때 자신을 ‘행인 3’으로 출연시켜 달라고. “왜 행인이야? 그것도 3으로?” 시영이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목적 없어도 그냥 길을 갈 뿐이야!”시영이 보컬그룹 발표회 날이다. 원하는 이펙터도 사 줬겠다, 지완 부부가 응원하러 간다. 아들은 무대에서 등을 보이고 서 있다. 연주가 시작되었는데 아들 기타가 울리지 않는다. 이때 상우가 고함을 지른다. “전기 좀 팍팍 써 이 자식아!” 시영이 슬그머니 뒤를 돌아본다. 가족의 눈이 한 곳에서 마주친다. 시영이 연주를 시작한다. 자신이 작곡한 ‘행인 3’이란 노래를 광적으로 부른다. 관객이 환호한다. 담장 너머로 무지개가 뜬다. 시영이 무지개 속으로 들어간다. 내외는 두 손을 꽉 잡는다.액자영화다. 걸개영화, 영화 속 영화. 영화가 우리 집 사진 틀 속을 비집고 다닌다. 내 꿈은 어떤 내용 일까. 적어도 클리세(드라마에서 늘 같은 이야기 또는 같은 대사 등이 반복될 때 사용 되는 말)는 아니겠지. 영화는 아빠를 조명하지 않는다. 이 집의 만년 ‘행인 3’은 상우라는 듯. 왜? 일본식 표현으로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두산백과)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뜬금없이 행인 3을 지망하는 아들을 주인공으로 만든다. 이유인즉 초지일관했다는 것. 엄마는 휘둘리다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영화는 지완이 <레인보우>시나리오를 다시 집어 들면서 끝난다. 그녀가 <레인보우>라는 시나리오에 담고 싶은 내용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다.며칠 전 심포지엄에서 만난 신수원 감독은 자전적 영화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녀는 교직에서 퇴임하고 9년 만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 세월의 고초가 배어있는 모습에서 근기(根器)가 풍겼다. “모두가 주인공 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삶에서 최고의 미덕은 자신에게 보내는 신뢰 아니겠어요? 나만의 카메라를 드는데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으면 합니다.”심영섭 영화평론가가 옆에서 거들었다. “챔피언은 더는 직구를 던지지 못할 때 직구대신 자신의 심장을 던집니다. 벤치 한구석에서 울지 않아요.”잃는 게 두려워서 커가는 불안과 의심, 불신의 벽에 바이러스처럼 기대고 살아야 하는가.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이처럼 단호하다. 어찌해야 할까. 아, 한 가지 알아둘 게 있다. 개미는 지완이 스스로 만든 것이다. 영화치료 전문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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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6 23:02

[⑤ 영화 '어웨이 프롬 허'] 호수는 인생, 하릴없는…

드넓은 설원 저편에 검은 산줄기가 가로서 있고, 그 속에 외딴집 한 채가 점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 노부부는 스키를 탄다. 11자 형태로 스키를 고정한 채 주로를 따라가는 클래식 주법이다. 뒤로 두 사람이 각각 남기는 자국이 선명하다. 집이다. 발단의 장소, 목표 또는 목적지. 남편 그랜트(고든 핀센트 분)가 부인 피오나(줄리 크리스티 분)에게 책을 읽어준다. 그만해요. 어차피 금방 잊어버려. 둘은 브랜트 자연보호 구역으로 산책하러 나간다. 꽃을 보며 피오나가 말한다. 정신이 없을 때는 꽃이 안 보이는데, 이렇게 정신이 말짱하면 꽃이 보여. 망각에는 뭔가 달콤한 유혹이 있는 것인가 봐. 카메라가 밖에서 집을 응시한다. 창에 불이 하나씩 켜지더니 조금 있다가 하나씩 꺼진다. 피오나가 말문을 연다. 생각 하나가 사라지면 모두 사라지고 말아요. 피오나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요양병원에 입원한다. 그랜트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홀로 집에 가는 길, 자동차를 탄다. 영화 〈어웨이 프롬 허〉는 그녀에게서 떨어져서 그녀를 본다는 이야기다. 떨어짐은 몸뿐 아니고 심리적 위치를 포함한다. 그랜트는 이제 44년 동안 알았던, 아니 그동안 전혀 보지 못했던 피오나의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병원 규칙에 따라 한 달이 지나 요양병원으로 달려간 그랜트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피오나가 그새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그녀는 어느새 오브리(마이클 머피 분)라는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다. 아니 이럴 수가? 그랜트는 대처방법을 몰라 안절부절못한다. 더군다나 아내와 사귀는 남자의 부인 메리언(올림피아 듀카키스 분)은 왜 그렇게 부인에게 집착하느냐고 묻기까지 한다. 답답한 나머지 한 간호사에게 하소연한다. 아내와의 기억이 너무 소중했는데. 너무 허무해요. 지나간 모든 게 사실이었나 싶구려. 간호사의 말이 이어진다. 선생님은 헌신적인 남편은 아니었죠? 어쩌면 부인께서 선생님을 벌주고 계신지 몰라요.정말 그랬나? 가슴이 먹먹하기만 할 뿐. 급기야 그랜트는 피오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주기로 한다. 그리고 오브리와 피오나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본다. 우리 영화 〈인디언 썸머〉의 내레이션이 떠오른다. 겨울이 오기 전, 가을의 끝자락에 찾아오는 여름같이 뜨거운 날.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지만, 그 모두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다만 겨울 앞에서 다시 한 번 뜨거운 여름이 찾아와 주기를 소망하는 사람만이 신이 선물한 짧은 기적 인디언 썸머를 기억한다. 기억한다는 것.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까닭이다.어쩌면 피오나는 인디언 썸머를 맞고 있는지 모른다. 영화 〈의사 지바고〉에서 비운의 여인 라라를 연기했던 줄리 크리스티가 분한 피오나의 모습은 연민이 깊어 더 아름답다. 얼음 궁전, 그 명장면을 잊지 못하는 나는 그녀가 지금 치매 연기가 어울리는 나이가 되어 있음에도 전의 매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가 세상의 그랜트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대한 치매학회장을 역임한 삼성의료원 나덕렬박사의 말을 통해 정리해 본다. 3차원 생물인 인간은 스스로 벽을 만들며 산다. 막혀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4차원에서 보면 벽은 아무 의미가 없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에 답해보자. 첫째, 내가 만든 벽은 투명한가? 나는 모두 안다는 착각에 대하여. 둘째, 나는 무엇인가에 주시당하고 있는가? 공연히 남의 눈치를 보며 사는 이유에 대하여.치매 환자로 살면서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진 호주의 크리스틴 브라이든은 말한다. 현명한 사람은 놓아줄 줄 안다고. 놓아준다는 것은 한없는 행복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치매 환자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녀와 흔쾌히 결혼해서 치매퇴치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폴이란 사람의 세계 또한 누군가가 놓아줬기에 가능했으리란 짐작을 하게 한다. 엔딩에서 피오나는 그랜트를 알아본다. 처음 하는 말이 당신은 항상 내 기분을 배려해 주었지. 감사해!다. 둘이 힘찬 포옹을 하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화면은 11자 자국이 선명한 설원을 다시 보여준다. 자세히 보니 그곳은 꽁꽁 얼어붙은 커다란 호수다. 그러니까 노부부는 호수 위에서 스키를 탄 것이다. 호수는 인생, 하릴없는. 그런가? 영화의 장치가 아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설원, 산줄기에 막혀 더는 진행할 수 없는 곳에 있는 집, 창에서 꺼지던 불빛, 스키 자국 등. 삶의 기억과 관련된 은유 아닌 게 없다. 어떤 기억을 만들고 있는가. 또 놓아주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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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1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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