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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Mp3 플레이어 사줘.”“이달에 집세 올려줘야 하니까 나중에 사자.”건조하기 짝이 없는 모녀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이는 그날 하늘나라로 갔다. 자기가 뜨개질한 주황색 목도리로 목을 걸었다.알고 보니 ‘은따’였다. 은근한 따돌림. 반 친구들은 단톡(단체 카카오톡의 줄임말) 하면서 ‘천지’(김향기 분)를 그룹에 넣어주지 않았다. 또 무슨 말을 하다가 천지가 지나가면 말을 바꿔 언니 어쩌고 하며 딴전을 부렸다. 그들에게 천지는 언니였다. 지시대명사 언니. 전에 엄마(김희애 분)는 배 아프다며 기대려 드는 ‘천지’(김향기 분)를 향해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 양호실도 있잖아.”라며 핀잔을 준 적이 있다. 그때 이미 천지는 말라가고 있었다. 먹다 만 자장면처럼, 달걀프라이처럼. 사실 Mp3플레이어는 누구 하나 괴롭혀야만 사는 친구 ‘화연’(김유정 분)이가 생일선물로 달라던 물건이었다. 화연이는 천지 따돌리는 주역이었다. 알고 보니 2만 원짜리도 있다던데…….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냉가슴 앓다 떠난 천지의 유서를 찾는데 카메라 앵글이 맞춰진다. “왜 그랬대?” 주위의 뒷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카메라는 쓰레그물 치듯 아이의 동선을 훑는다. 유난히 프레시백과 시점 쇼트가 많은 것은 생생하게 상황을 재현하고 천지의 시선으로 다른 인물과 배경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 카메라가 들춰낸 천지의 아픔으로 들어가 보자. 자장면을 죽도록 싫어하는 것은 화연이가 중국집 딸이기 때문이다. 〈우울증 극복하기〉라는 책을 끼고 다니는 것은 공부도 못하고, 가난하고, 얼굴도 못생겼다며 한탄하는 ‘미라’(유연미 분)에게 도움 줄 내용을 찾기 위함이다. 방탕한 미라 아빠(성동일 분)가 천지 엄마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미라는 역겨움을 천지에게 쏟아낸다. 그리고 야멸차게 돌아서 버린다. 매사에 냉정한 언니 만지(고아성 분)는 천지에게 조차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다. 풀어진 주변을 홀치기라도 하려는 듯 천지는 틈만 나면 뜨개질을 한다. 영화에서 중요한 메타포로 사진을 들 수 있다. 엄마, 만지, 천지 이렇게 셋이서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 엄마는 냇물에 천지 유골을 뿌리면서 독사진과 이 사진을 함께 띄운다. 행복했던 순간을 가져가라는 뜻 일 터. 그러나 영화는 사진이 얼마나 진실했느냐고 묻는 측면이 있다. 사진은 ‘위장된 평화’일 수 있기에. 한 김기덕 감독 영화 연구자는 〈빈집〉에 나오는 사진을 두고 말했다. 주인공 ‘태석’이 빈집에 들어갈 때마다 그 집에 비치된 사진에다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어 셀프카메라를 찍는 것은 평화의 실상을 확인 하자는 것 이라고.엄마와 만지는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가족의 연대가 부족했던데 대한 때늦은 후회다. 둘은 유서를 보며 서로 자기 잘못이라고 말한다.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그런데 그것이 자신 중심의 최선이었다면……? 엄마와 두 딸이 만든 허 스토리(Her Story)는 그래서 시리고 쓰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엄마와 만지의 노력이 페이소스를 남기는 것은 더한 아픔이다.비슷한 내용의 우리영화 〈파수꾼〉은 편부가정의 한 고등학생이 감당해야 하는 세상을 그린다. 현실에서 받아들이기 거북한 욕망, 충동, 생각 등을 무의식에 파묻고 발버둥치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폭력뿐이다. 급기야 주인공 ‘기태’는 생을 포기하고야 마는데, 충동이 지나치다 싶은 그에게 단짝친구 ‘동윤’은 이렇게 말한 적 있다.“처음부터 잘못된 것은 없어. 너만 없었으면 돼.”청소년기에 친구는 세상의 절반이라는 말이 있다. 천지에게 닥친 현실은 빈 세상 절반, 친구 없는 세상 절반이었다. 그 아이가 설 땅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쩌랴. 그런데 천지는 몰랐던 게 있다. 화연이가 우아한 거짓말로 선입견을 조장하고, 미라가 지나치게 신경질을 부리는 것이 결국 자신을 방어하기 위함이었음을……. 사람은 누구나 세상이 용납하는 방향으로 자기를 바꾸며 산다.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산다.
네덜란드가 낳은 불세출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37년이라는 생애 동안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며 늘 고독했다고 한다. 그나마 작품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테오’라는 동생이 후원자이자 동반자 구실을 해주었기에 가능했다. 반 고흐는 동생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네가 보내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불꽃같은 정열로 눈부신 색채를 표현하여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반 고흐의 작품 속에는 흔쾌히 자신을 희생한 동생의 숨결이 살아 숨 쉰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잘 아는 한 상담사의 닉네임이 ‘테오에게’다. 그는 내담자를 대하는 데 있어 테오와 같은 존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때로는 멘토로 때로는 파수(把守)꾼으로 기꺼이 자기 역할을 다하겠다고 했다.2014년 들어 ‘전주 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3개월이 다 되도록 장기 상영 중인 네덜란드 영화가 있는데 바로 〈마테호른〉이다. 이 영화에 ‘테오’가 나온다. 여기서도 그는 영락없이 도와주는 사람의 소임을 다한다. "외로우세요? 누군가에게 손 내밀어 보세요. 내 안의 힘만으로 극복되지 않는 게 외로움이랍니다."세상을 홀로 무미건조하게 사는 ‘프레드’(톤 카스 분)라는 남자가 있다. 갑자기 부인이 하늘나라로 떠난 데다 하나뿐인 아들마저 집을 나가버려 맥 빠진 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프레드의 일과란 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고, 기도하고, 잠자는 게 전부다. 외로움과 그리움 그리고 두려움으로 점철된 생활은 그를 판에 박힌 일상 속에 가둬버렸다. 어느 날 지적장애가 있는 남자 ‘테오’(르네 반트 호프 분)가 그 앞에 나타난다. 우여곡절 끝에 둘은 동거를 시작한다. 주변에서 ‘호모’라는 말이 나오고, 교인들이 소곤대기 시작한다. 누군가 그의 아파트 벽에 ‘소돔과 고모라’라는 글자를 써놓는다. 교회 장로님들이 심방을 와서 테오를 돌려보내라고 압박한다. 프레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테오와 함께한다. 아내 옷을 입은 테오가 춤추는 모습에 취해 아내의 환영과 만나고, 말 잘 듣는 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아들 모습을 발견하였으니 테오는 이미 가족이나 다음이 없다. 사는 재미를 찾은 프레드는 두 가지 목표를 정한다. 아내에게 청혼했던 ‘마테호른’에 가는 것, 그리고 아들을 찾는 것. 둘은 경비마련을 위해 동요공연단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한다. 아이들 속에 들어가 양(羊)춤을 추는 테오의 티 없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잃어버린 순수와 만난다. 그에게 매료되어 공연요청이 쇄도한다.마치 영화 〈레옹〉에서 킬러인 ‘레옹’이 12세 청순한 소녀 ‘마틸다’에게 반하고, 〈제8요일〉에서 성공한 강사 ‘아리’가 다운증후군 환자 ‘조지’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자신의 원래 모습을 되찾는 것과도 같이. 둘은 마테호른에 오른다. 독수리 부리를 연상케 하는 정상의 위용은 프레드의 문제를 아주 소소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 보인다. ‘높고 험하기에 신께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믿는 프레드가 기도한다. 제목은 ‘외로움을 버려달라는 것’이다. 아내의 빈자리 앞에서, 고집 센 아들의 가출 앞에서 외로움으로 치를 떨어야 했으니….영화는 아들이 게이바 에서 「이것은 나의 인생」이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며 막을 내리는데, 가사가 프레드의 마음을 대변한다. ‘우습지 외로움으로 인생이 허무해질 수 있다니, 우습지 사랑의 아픔으로 내 인생이 허무해 질 수 있다니’……. 홍콩영화 〈해피투게더〉는 외로움 버리는 곳으로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에 있는 지구 끝 등대를 추천했는데, 이 영화는 마테호른을 지목했다. 많은 영화가 외로움의 실체를 찾아 해결방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이 영화가 내미는 답은 ‘순수한 사람을 만나라는 것’, ‘신께 가까운 곳으로 가라는 것’ 두 가지다.
접근성, 오락성, 핍진성 면에서 매우 유용한 도구인 영화. 영화가 심리치료의 수단으로 활용된 것은 20여 년 전인 1990년부터다. 우리나라에는 2002년에 도입되었다. 우리지역에서는 올년 3월부터 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가 개설되어 가동을 시작 하였는데, 영화가 정말 심리적 기제로 작용하는지 궁금해 하는 분이 많다. 나는 영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다르게 보기를 권한다.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치유의 숲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본보는 영화 심리상담사 겸 수필가인 이승수 씨와 함께 영화를 통해 일상의 삶을 돌아보며 치유적 메시지를 전한다. 힐링 시네마칼럼은 격주로 연재한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모든 인간이 평생 쓰고 죽어야 할 지랄의 총량은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경북대학교 김두식 교수가 말하여 유명해졌는데, 화자는 지랄의 의미를 욕망이자 에너지라고 풀이하면서 사용하는데 때가 있다고 주장한다. 20대에 상당량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늙은 후에야 쓴다는 것이다. 영화 <수상한 그녀>를 보는데 이 법칙이 떠올랐다. 지랄을 행복으로 치환해서 말이다. 이름 하여 행복 총량의 법칙. 모든 인간이 평생 쓰고 죽어야 할 행복의 총량은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 하나뿐인 아들을 국립대학교 교수로 만들어낸 오말순(나문희 분)할머니는 잔소리, 간섭, 욕지거리, 아들자랑 등을 행복이라 여기며 산다.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계속되다 보니 주변에서는 이를 곱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며느리는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병이 도지고, 급기야 가족은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기로 한다. 할머니는 안절부절못하며 거리를 방황하는데.문제는 이 할머니가 아직 사용하지 못한 행복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데 있다. 영화는 기발하게 타임리프 방법을 쓴다. 할머니를 꿈 많았던 20세 처녀 시절로 데리고 간다. 덮어두었던 행복을 마음껏 사용하시라고.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마음만은 지금 그대로여야 한다는 것. 몸에서 피가 빠지면 세포가 늙는다는 것. △그 시절 그 노래에는 동어반복의 체념이 할머니가 오드리 햅번 을 빼닮은 가수 오두리(심은경 분)로 재탄생한다. 빼어난 미모, 뛰어난 가창력, 구성진 춤 솜씨.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가수가 저잣거리를 벌컥 뒤집어 놓는다. 복고풍 노래 부르는 신선한 가수를 물색 중이던 방송국 PD는 탄성을 지르고 만다. 순식간에 스타가 된 오두리. 공연장은 팬들로 북적대고, 구애의 손길도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오두리는 이런 호사를 반기지 않는다. 마음이 항상 아들 집에 가 있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집 근처를 배회한다. 어느 날 손자(자신의 보컬그룹 리더)를 따라 집에 들어가는 행운을 잡는데, 밥을 먹다가 그만 며느리가 끓인 생선찌개에 타박을 놓고야 만다. 벌집처럼 도사리고 있는 내면의 고갱이를 떨쳐 버리지 못하는 오두리 할머니.기다리던 특별공연 날, 손자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RH-형 혈액이 급히 필요하다. 오두리가 헌혈을 위해 병원으로 간다. 아들(성동일 분)과 마주 선다. 상황을 모두 알아버린 아들이 눈물로 호소한다. 내 자식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어머니는 명 짧은 신랑도 만나지 말고 나 같은 자식도 낳지 말고. 제발 그냥 가세요. 행복을 찾으세요.이 대목에서 관객은 울음을 빵 터트리고야 만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우는 이도 있다.피를 빼자 오두리의 마법은 풀리고 만다. 아들을 위해 찬란한 청춘을 두 번이나 포기한 욕쟁이 할머니가 제자리로 돌아와 거리를 걷는다. 모습이 초췌하다. 방송국 PD가 끼워준 머리핀을 그대로 끼고 있어 더 그렇다.영화관을 나서는 사람들이 자꾸 뒤를 돌아본다. 마음을 오두리에게 빼앗겨 버린 탓일까. 추억을 자극하는 포크송 감흥에서 깨어나지 못한 때문일까. 어쩌면 그들도 지난 날 덮어두었던 행복을 추억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는지 모른다. 아니 나는 다시 태어나도 똑같이 살란다.라고 말하는 할머니에게서 동어반복의 체념을 본다. 행복 총량의 법칙은 아무래도 접어야 할 것 같다. 이 할머니처럼 자신의 몫을 기꺼이 포기하는 경우 때문에 측정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사용하는 게 아니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수필가 겸 영화치료 전문강사인 이승수 씨(57)는 전주국제영화제 힐링시네마 강사,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원, 한국유머웃음학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시골우체국장의 영화에세이>을 냈다. 현재 완주우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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