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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5) 1장 칠봉성주(七峯城主) ⑤

윤충과 연신이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사비도성의 후부(後部) 상항(上巷)거리를 지나고 있다. 폭이 1백자(30m)가 넘는 대로(大路)에는 행인이 가득 찼다. 행인 중에 왜인과 당인(唐人), 남만인, 인도인까지 섞여 있었는데 당시의 백제는 해상 무역의 중심이었고 인도까지 해상 무역로가 개척되었기 때문이다. 가끔 고구려 상인도 지났으므로 윤충의 얼굴에 쓴웃음이 띠어졌다.요즘은 고구려 배가 많이 들어온다고 하더군.예, 하지만 아직 뱃길이 서툴러서 우리 상선단에 끼어서 갑니다.남만을 거쳐 인도까지 가려면 항해술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도중의 길목에 자리잡은 백제령 담로에서 물과 양식을 조달받고 배도 수리해야 된다. 옆을 지나던 후부(後部) 순시군(軍)이 윤충을 향해 군례를 했다. 사비도성은 부소산성 밑의 왕궁 아래로 바둑판처럼 조성된 거대한 성안 거리로 이루어져 있다. 나성(羅城)으로 둘러쌓인 도성은 5부(部) 5항(巷)의 행정체제로 편성되었는데 상(上), 전(前), 중(中), 하(下), 후(後)의 5부에 각각 5항으로 나뉘어진 것이다. 도로는 모두 직선이며 각 부에는 5백명의 군사가 주둔하여 치안과 방어를 맡았다. 도성 안의 가구 수는 1만가(家)가 되었으니 인구 10만이 넘는 거도(巨都)다. 윤충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적의 적은 우군(友軍)이지만 언제 또 적이 될지 알 수가 없는 세상이지.백제와 고구려는 근래에 들어 동맹관계나 같다. 신라 진흥왕대에 한수유역의 거대한 영토를 빼앗긴 고구려는 절치부심하여 기회를 노렸으며 백제 또한 같은 입장이다. 신라와 연합하여 한수땅을 빼앗았지만 곧 신라의 배신으로 한수유역 6개군(郡)을 빼앗긴데다 성왕(聖王)까지 관산성에서 신라군에게 패사(敗死)했기 때문이다. 그때 윤충이 연신에게 말했다.덕솔, 아무래도 올해 안에 다시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연신은 대답 대신 말몸을 바짝 붙였고 윤충의 말이 이어졌다.이번 대야성 공격이 성공하면 신라는 극심한 내분이 일어날 거야.허나 대야성이 만만치 않습니다.주위를 둘러본 연신이 목소리를 낮췄다.김품석이 지용(知勇)을 겸비했을뿐만 아니라 보유한 군사가 2만이 넘습니다. 수성(守城)만 한다면 장기전이 될 것이오.대왕께선 기어코 김춘추 세력을 꺾으실 작정이야.연신이 길게 숨을 뱉었다. 작전은 극비로 진행되고 있다. 대왕은 방령 윤충만을 불러 명을 내리는 것이다. 연신이 윤충에게 물었다.방령께서 계백을 부르시는 이유가 기마군 장비 때문입니까?전령을 통해 기밀이 새나갈 수도 있어.그렇지요.계백에게 대야성 정찰을 시키려는 것이네. 대왕께서 계백을 기마군 선봉으로 세우실 계획이야.연신은 입을 다물었다. 의자왕은 효자다. 죽은 부친 무왕(武王)의 염원을 잊지 않고 있다. 어디, 관산성 싸움에서 패사한 성왕의 한(恨)뿐이겠는가? 무왕(武王)의 부인이며 의자왕의 모친은 진평왕의 둘째딸 선화공주인 것이다. 신라 진평왕은 딸만 셋을 두었는데 첫째가 덕만(德萬)이요, 둘째가 선화(善花), 셋째가 천명(天明)이다. 현재의 신라여왕 선덕이 바로 덕만이요. 선화는 의자왕의 모친, 천명은 곧 김춘추의 생모가 된다. 신라 성골(聖骨)왕족은 이 셋 뿐이니 선덕여왕 다음 순위가 누가 되겠는가? 김춘추? 의자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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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09 23:02

[불멸의 백제] (4) 1장 칠봉성주(七峯城主) ④

방령, 대야성의 현재 병력은?청에 둘이 남았을 때 의자왕이 불쑥 물었다.사비도성의 청 안, 의자왕은 신하들의 보고를 받은 후에 윤충만을 따로 남도록 한것이다.윤충이 상반신을 조금 숙이고는 옥좌에 앉은 의자왕을 보았다.김품석이 군사 5백여명을 더 충원 받았습니다. 대야성의 병력은 7천이 조금 넘습니다.김춘추가 대권을 쥐려고 제 사위놈에 병력을 증강시켜 주는 거야.소신의 생각도 그렇습니다.김춘추만 무력화(無力化) 시키면 신라는 무너지게 돼.의자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태자 때부터 아버지 무왕(武王)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고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기 때문에 칭송을 받았던 의자다. 해동증자(海東曾子)라고 불리우기도 했다.의자는 무왕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른 후에 신라에 대한 적극적인 공세를 시작했다.즉위 2년인 작년에 의자는 직접 대군을 이끌고 신라를 공격해서 40여개의 성을 공취했지만 아직도 양에 차지 않는다.신라에게 기습적으로 빼앗긴 한성유역의 영토까지 회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때 윤충이 말했다.대왕, 신라왕 선덕이 또 당에 청병(請兵) 요청사를 보냈다고 합니다.외우내환(外憂內患)이군.밖에서는 고구려와 연합한 백제군의 공격을 받고 안에서는 상대등 비담 등이 여왕의 통치에 반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의자가 말을 이었다.세작이 많으니 장수들을 은밀하게 준비 시키도록.예, 대왕.칠봉성(七峯城)의 계백은 부임했나?예, 대왕.그곳에서 대야성까지는 몇 리나 되나?3백리 가깝게 됩니다, 대왕.계백은 대륙에서 기마군을 이끌고 하루에 5백리를 왕래한 장수야.대륙은 땅이 넓고 평탄하지만 이곳은 산이 많고 지형이 험합니다, 대왕.그래도 계백은 하루 300리 거리는 주파할 것이다.의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윤충을 보았다.그렇다. 담로 연남군 기마대장이었던 계백을 본국으로 불러들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의자와 윤충은 본국은 물론 대륙의 담로에서도 무장(武將)을 선발하여 은밀히 배치시킨 것이다.의자가 말을 이었다.방령, 그대가 계백을 불러 영(令)을 내리게.예, 대왕.허리를 굽혀보인 윤충이 청을 나왔다.내성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방좌(方佐) 연신이 윤충을 보더니 다가와 물었다.방령, 신시(오후 4시)가 다 되었으니 방성(方城)으로 가기엔 늦지 않았습니까?밤에라도 닿아야지.병사한테서 말 고삐를 받아쥔 윤충이 말에 오르면서 말했다.나선군의 칠봉성주 계백에게 전령을 보내게.칠봉성주 계백에게 말씀이오?그러네. 기마군 일로 물어볼 것이 있으니 바로 나한테 오라고 하게.연신의 시선을 받은 윤충이 말을 이었다.기마군 장비 때문이라고 하게.계백 가문이 기마군을 오래 했지요.방좌 연신이 전령을 소리쳐 부르더니 지시했다.말을 걸리면서 윤충이 눈앞에 대야성을 떠올렸다. 거성(巨城)이다.신라의 남쪽 국경 부근에 위치한 대야성 성주는 김품석, 김춘추의 사위이며 오른팔이나 같다.대왕 의자는 대야성 공취를 오래전부터 계획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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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08 23:02

[불멸의 백제](3) 1장 칠봉성주(七峯城主) ③

백제는 동, 서, 남, 북, 중의 5부(部)로 구분되었으며 부(部)는 곧 방(方)이다. 5방에 37군, 200개 성을 보유했고 본국의 호구는 76만호에 주민 620만의 대국(大國)이다. 당시의 대륙에서 패권을 쥐었던 수(隋)가 대륙 전체를 통일한 전성기 때의 인구가 890만호, 4천6백만 정도였으니 대백제(大百濟)는 본국의 인구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더구나 대륙에 담로(檐魯)라고 부르는 영토를 보유한 상황이다. 5부, 즉 5방(方)에는 각각 방령(方領)을 두었으며 2등급 품위인 달솔(達率)이 맡았다. 각 방에는 10개 정도의 군(郡)이 소속되었는데 군장(郡將)은 4품 위인 덕솔(德率)이다. 또한 방에는 방좌(方佐)가 방령을 보좌했고 군에서는 도사(道使)가 군장을 보좌한다. 백제 관등은 16관등이며 중앙관서는 내관 12부와 외관 12부로 나뉘어져 있다. 계백은 지방의 남방 방령인 달솔 윤충이 지휘하고 있는 42개 성주중 하나인 것이다.주인, 연남군이 이곳보다 나았습니다.아침상을 앞에 놓으면서 덕조가 투덜거렸다. 세다리 소반에는 조밥 한그릇과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말려 놓았다가 더운 물에 불린 산채 한접시가 차려졌다. 잠자코 수저를 드는 계백에게 앞에 앉은 덕조가 말을 이었다.연남군에서는 7품 장덕이었지만 1천5백 기마군을 이끌었고 숙소에는 하녀가 셋에 하인 다섯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식사는 산해진미는 아니더라도시끄럽다.씹던 것을 삼킨 계백이 덕조를 노려보았다.이놈, 하녀는 네가 다 건드렸지 않으냐? 내가 모르고 있었는 줄 아느냐?아니, 그것은덕조의 검은 얼굴이 더 검어졌다. 덕조는 35세, 조부 때부터 계백 가문을 모신 씨종이다. 계백 가문은 대륙 우측에 위치한 백제령 담로 연남군에 뿌리를 내린 호족이다. 계백의 부친은 연남군의 태수 보좌역인 방좌를 지냈으며 조부는 3급품인 은솔(恩率)로 좌장군이었다. 덕조는 계백을 어릴적부터 보살핀 큰형같은 존재인 것이다. 정색한 덕조가 몸을 세우더니 계백을 보았다.주인, 군사들 말을 들었더니 마을에 혼자 있는 여자가 많답니다. 하녀 셋 쯤 구하는 건 어렵지 않다는데요.안된다.지난 성주는 식구가 다섯에다 데려온 종이 여덟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거기에다 가끔 마을에서 여자들을 불러 일을 시켰다는데요.그러다가 사공부(司空部) 감찰에 적발되어서 나솔에서 시덕(施德)으로 2등급이나 강등되어서 도성으로 돌아갔지 않으냐?주인께서 하녀 구하시는건 해당이 안됩니다. 오히려 먹고 살길이 막막한 여자들을 도와주는 것이 됩니다.안된다.주인께서도 여자가 필요하시오.마침내 덕조가 본색을 드러내었다.본국에 오신지 넉달이나 되셨는데 한번도 여자를 안지 않으셨소.안지 않으면 병이 나느냐?수저를 내려놓은 계백이 덕조를 보았다. 시선을 받은 덕조가 숨을 들이켰다. 계백의 눈동자가 흐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먼곳을 보는 것 같다. 어깨를 웅크린 덕조가 두손으로 방바닥을 짚었다.주인, 말을 함부로 내놓았습니다. 때려주십시오.아니다.계백이 똑바로 덕조를 보았다.나는 항상 너한테서 배운다. 그래, 마을에서 하녀를 구해오너라. 의식주를 이곳에서 해결시키는 것이 성주가 해줄 일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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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05 23:02

[불멸의 백제] (2) 1장 칠봉성주(七峯城主) ②

강이 산줄기를 따라 흐르고 있어서 방어에 아주 적당합니다.장덕 진광이 성을 안내하면서 말했다.10명으로 능히 1백여명의 적을 막을 수가 있지요.석성(石城)은 높이 15자(4.5m) 정도인데다 틈이 많아서 넘기에 어렵지가 않다. 그러나 산 아래쪽 강이 막힌데다 숲이 짙어서 칠봉성(七峯城)은 지금까지 한번도 함락된 적이 없다고 했다. 계백이 성루에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왼쪽은 넓은 평야였고 바다에 닿는다. 그리고 오른쪽은 산맥이 펼쳐져 있다. 마치 칠봉성을 뒤에서 막아주는 것 같다. 평야쪽으로 군데군데 마을이 보였는데 이곳저곳에서 밥짓는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성주께선 연남군에서 기마대장을 지내셨다고 들었습니다.문득 진광이 말해서 계백이 시선을 주었다. 진광은 30대 초반쯤으로 계백보다 10년쯤 연상같다. 진광이 웃음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열흘쯤 전에 군(郡)의 도사(道使)가 다녀갔거든요. 공을 많이 세우셨다고 하더군요.싸울 기회가 많았으니 죽기 아니면 살아서 승진하는 것 외에 다른 수가 있겠나? 덕솔이 그곳에 있었다면 지금은 군장(郡將)쯤 되어 있을 거네.과분한 말씀.젊은 상관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 가셔진 진광의 어깨가 늘어졌다. 성주로 부임한 계백은 장신의 호남이다. 눈매가 날카롭고 입은 꾹 닫쳐져서 위압감이 느껴졌지만 웃을 때 보면 얼굴이 환해진다. 진광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계백은 지금까지 바다건너 대륙의 백제령인 담로(檐魯) 연남군에서 기마대장을 지냈다. 가족은 없고 시종 하나만 데리고 다닌다고 했다. 그때 발을 뗀 계백이 말했다.대륙에서는 당과 싸우고 귀국해서는 신라와 싸우게 되는구려.전시(戰時)지요.옆을 따르면서 진광이 말을 이었다.이곳 칠봉성은 내지여서 가끔 신라군의 기습군에게 피해를 입을 뿐입니다.성루를 내려간 계백이 이제는 전력 점검을 했다. 칠봉성의 보유 병력은 기마군 125인, 보군 236인이며, 말은 220필, 보유 양곡은 110일분이다. 성(城) 지휘부는 나솔 관등의 성주 계백과 보좌역인 장덕 진광, 그리고 소장급 10품 계덕 2명과 11품 대덕 3명, 조장 보좌역격인 12품 문독 3명, 13품 무독 4명이 있다. 전력 점검을 마친 계백이 성안의 마룻방에 진광과 계덕, 대덕급의 조장들을 불러 둘러앉았다. 진광이 먼저 보고했다.칠봉성에서는 근처 50리 안의 9개 마을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가구수 5백호 정도에 3천명쯤 되는데 각 마을에 연락병과 정탐병을 배치시켰습니다.작년에 신라군이 기습해왔나?계백이 오면서 들었던 말을 물었더니 진광이 대답했다.예. 원산(元山) 마을이 기습을 당했지요. 밤에 갑자기 기습을 해서 성에서 출동했을 때는 사라진 후였습니다.신라 별동군인가?아닙니다.나선 사내는 계덕(季德) 왕수, 30대 후반쯤으로 수염이 잡초처럼 무성한 사내다. 어깨를 핀 왕수가 말을 이었다.국경 근처의 고선성에서 나온 기마군입니다. 그때 잡아간 마을 사람들이 지금 그곳에서 종이 되어 있습니다. 일부는 팔려갔구요.그러자 진광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왕수는 세작을 관리합니다. 성을 지키려면 세작도 관리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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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04 23:02

[불멸의 백제] (1) 1장 칠봉성주(七峯城主) ①

백제 의자왕 3년(643년) 8월, 백제 남방(南方) 소속의 산성을 향해 2명의 기마인이 다가가고 있다. 오후 미시(2시) 무렵, 초가을의 햇살이 강하게 쪼이는 맑은 날씨, 기마인의 옷은 땀과 먼지로 얼룩졌고 말은 피로한듯 자꾸 머리를 떨군다.주인, 산성이 보이지 않소.마신(馬身)쯤 앞서가던 사내가 앞을 향한채 말했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사내는 건장한 체격으로 손에 창을 쥐었다. 그 창으로 앞을 가로막는 나뭇가지를 후려쳐 길을 내거나 풀숲을 휘젓는다. 그때 뒤를 따르던 사내가 머리를 들고 앞쪽을 바라보았다.군사 셋이 내려온다.놀란 듯 앞장 선 사내가 말을 세웠을때 과연 잔나무를 헤치면서 군사 셋이 내려왔다. 둘을 발견한 군사들이 주춤거리더니 앞장 선 군사가 물었다.뉘시오?칠봉산에서 오는 길이냐?뒷쪽 기마인이 되묻자 군사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예, 그렇습니다만내가 신임 성주 계백이다.놀란 군사들이 제각기 허리를 꺾어 절을 했지만 앞장 선 군사가 또 물었다.그러시다면 군성(郡城)에 들렸다 오시는 길이십니까?그렇다. 군장(郡將)께서 안내역을 붙이신다고 했지만 내가 지리도 익힐겸 찾아오는 길이다.그럼 저희들이 성주를 모시지요.앞장 선 군사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저희들이 7봉 좌측 순시를 나가는 길이었으니 성주를 모셔도 됩니다.이제 기마인 둘은 군사들의 안내를 받으며 길도 없는 산을 오른다. 산은 높지는 않지만 굵은 나무가 빽빽했다.그때 기마인이 앞장선 군사에게 물었다.7봉성이라고 했으니 봉우리가 7개란 말이냐?예. 그러나 주봉(主峯)의 남쪽과 서쪽으로 각각 봉우리가 6개씩 있어서 7봉이 2개인 셈이지요.숲속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말대답하는 군사는 셋중 선임인 모양이다. 군사가 말을 이었다.산성은 주봉에 있습니다.오면서 보았더니 아랫쪽 고을이 제법 풍족했다. 아이들이 잘 먹어서 몸에 살이 붙었고 어른들은 깨끗했다. 근래에 우환이 없었느냐?그때 군사가 머리를 돌려 기마인을 보았다.제가 듣기로 성주께서는 바다건너 내륙의 담로(檐魯)에서 오셨다지요.그렇다. 연남군(郡)에서 왔다.그래서 잘 모르시는군요. 작년에 신라군이 기습해와서 아녀자 20여명을 잡아갔습니다.여기까지 기습을 해왔단 말인가?예. 기마군 1백기 정도였지만 산성에서 나갔을 때는 이미 도망친 후였습니다.산성에 기마군이 2백여기가 있는 건 맞느냐?지금은 1백여기에 보군 2백 정도입니다. 나리.그때 앞쪽 시야가 트이더니 돌로 만든 낮은 석성(石城)이 드러났다. 앞장선 군사가 먼저 성 안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곧 갑옷차림의 무장이 달려나왔다.성주가 오십니까?사내가 두손을 모으고 다가와 묻는다.제가 성주대리를 맡고 있던 장덕(將德) 진광입니다.나솔(奈率) 계백이요.신임 성주 계급은 6급품(品)이었고 진광은 7급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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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0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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