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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에 계백은 남방(南方) 방성(方城)인 고산성에서 방령 윤충과 마주앉아 있다. 오늘도 배석자는 방좌 연신이다. 계백으로부터 정찰 보고를 들은 윤충이 입을 열었다.김유신이 보기당 군사 3만을 이끌고 신주(新州)로 북상하고 있어, 놈들은 우리가 당항성을 노리고 있는 것을 예상한 것 같다.윤충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대왕께서는 김유신을 북쪽에 잡아두실 계획이시다. 그러려면 동방군(東方軍)과 함께 계속 사냥을 다니셔야겠지.방령, 그러시면긴장한 계백의 표정을 본 윤충이 머리를 끄덕였다.나솔, 그대가 선봉이 되어야겠어.목표가 대야성이 되었다는 말씀입니까?김유신이 북상하고 삼천당, 귀당 군사가 대왕의 뒤에 붙었어.성동격서(聲東擊西)를 노렸는데 소리가 덜 난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는 대야성을 친다.방령께서 주력군을 이끄시게 됩니까?그렇다. 내가 중방군(中方軍) 2만을 지원받아 4만 5천으로 대야주를 공략한다.윤충이 굳어진 얼굴로 계백을 보았다.나솔, 그대에게 선봉군 3천을 맡기겠다.과분합니다.칠봉성 주변에 군사를 주둔시킬 수 있나?칠봉산성 아래로 강이 흐릅니다. 기마군이 숙영하기에 적당합니다.그럼 한달 후에 기마군 2천 5백을 보내겠다.예. 방령.허리를 편 계백이 윤충을 보았다.방령, 제가 산 종이 대야주의 삼현성주 딸이었습니다.눈만 껌벅이는 윤충과 연신에게 계백이 진궁의 편지를 받아온 이야기까지 해 주었다. 말을 마친 계백이 진궁의 편지를 윤충에게 내밀었다.이것이 삼현성주 진궁이 딸에게 보낸 편지인데 제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편지를 읽은 윤충이 연신에게 넘겨주면서 웃었다.이놈이 가택 연금 상태라니 이 편지를 쓰고 자결을 했을 것 같다.윤충이 말을 이었다.가야인들은 성골, 진골에 밀려 요직에 오르지 못했지. 김유신 하나만 기를 쓰고 있는 형편 아닌가?그때 편지를 읽은 연신이 말을 받았다.나솔, 이 편지를 딸에게 보여주지 않기를 잘 했네. 보여주었다가 종 하나만 잃을 뻔 했네.예.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하지만 뭔가?윤충이 묻자 계백이 말을 이었다.성주 진궁이 다른 방법을 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뭔가?죽지 않고 사는 방법입니다.그렇다면.윤충이 눈을 가늘게 떴다. 윤충은 45세, 대성8족은 아니지만 무왕(武王) 때부터 신임을 받아 요직에 중용되었다. 윤충의 형 성충은 병권(兵權)을 장악한 병관좌평이다.그놈, 삼현성주가 반역을 할까?이제 딸까지 버리고 홀몸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내키는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계백의 말에 윤충이 풀석 웃었다.나솔, 적과 대치했을 때 상대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해 보았는가?예, 방령.나솔이 그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신임성주가 진골 왕족으로 김품석의 친척이라고 합니다.윤충의 시선을 받은 계백이 말을 이었다.저라면 김품석을 쳐서 가야인의 기상을 보이겠습니다. 그래야 남은 가야인이 무시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편지에도 그런 기운이 보입니다.
대야성주 겸 대야군주(軍主) 김품석은 진골(眞骨) 왕족이며 벼슬도 2품 이찬(伊 )이다. 장인인 김춘추와 벼슬이 같다. 오시(12시) 무렵, 김품석이 장인 김춘추와 청 안에서 마주앉아 있다. 김춘추는 당연히 상석에 앉아 김품석을 내려다 본다.이찬, 백제왕 의자의 동향이 심상치 않아.김춘추가 입을 열었다.동방 방령 의직과 자주 만나는데 사냥을 핑계로 대규모 기병단을 이끌고 다닌다네.이쪽 남방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대감.김품석이 장인 대신으로 대감이라고 부른다. 김춘추는 갑자기 기마군 1백여기만 이끌고 달려온 것이다. 진골 왕족으로 구성된 화백회의의 구성원일 뿐인 김춘추는 아직 실세가 아니다. 다른 왕족들의 견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번 대야성 방문도 딸 소연의 병문안을 간다는 핑계를 대어야만 했다. 김품석의 시선을 받은 김춘추가 머리를 끄덕였다.의자가 제법 전략을 쓰고 있어.주위를 둘러본 김춘추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청 안에는 외인 출입을 금지시켜서 둘뿐이다.이찬, 대야주가 우리 가문의 기반이야. 잘 지켜야 돼.명심하겠습니다.비담 일족이 차기 왕위를 노리고 있지만 어떻게든 막아야 되네.김품석의 얼굴도 굳어졌다. 상대등 비담은 진골 왕족으로 유력한 차기 왕위 후계자다. 비담은 화백회의의 수장으로 김춘추보다 영향력이 강하다. 김춘추가 말을 이었다.김유신이 보기당 당주가 되어서 당항성 근처로 파견되었어.대장군이 말씀입니까?김품석이 놀란 듯 이맛살을 찌푸리고 김춘추를 보았다. 대장군 김유신이 신라의 군단(軍團) 중 하나인 보기당을 이끌고 북상(北上)한 것이다. 백제 의자왕이 동방군(東方軍)과 함께 자주 기동군을 이끌고 사냥을 다니는 것에 자극을 받은 신라 조정에서 김유신을 북상시켰다. 김품석이 말을 이었다.며칠 전에 백제 기마정찰군이 대야주를 횡단했습니다.나도 들었어.기마군 5백기 정도였는데 빠르고 정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기마대장이 연남군 출신의 계백이라고 들었어.예, 대감.화백회의에서 그 자 이야기가 나왔네. 의자가 그 자를 남방의 칠봉성주로 부른 것은 백제 기마군을 강화시키려는 목적이라는 결론이 났어.제 생각도 그렇습니다.계백이 젊지만 지용을 겸비한 놈이야. 이번 대야주 정찰에서 허점을 보이지 않았나 숙고하게.예, 대감.삼현성주를 교체했다면서?예, 대감.어깨를 편 김품석이 김춘추를 보았다.성주가 제 딸이 백제군에게 납치되었는데도 군주(軍主)인 저한테 보고도 하지 않았습니다.그 자가 가야인이지?예, 토호 가문입니다.김유신은 이미 신라 왕족 대접을 받지만 가야 토호 출신은 경계해야 돼.전(前) 성주는 가택연금 상태로 두었지만 곧 조치하겠습니다.머리를 끄덕인 김춘추가 다시 다짐하듯 말했다.이찬. 그대와 나, 김유신은 삼위일체가 되어야 하네. 대야주를 잘 지키게.
그때 상을 물린 계백이 말했다.모두 물러가고 고화만 남아라. 할 이야기가 있다.저두요?덕조가 물었다가 계백의 표정을 보더니 헛기침을 하고는 일어섰다. 아직도 얼굴을 부풀린 우덕이 상을 들고 덕조와 함께 방을 나가자 둘이 남았다. 계백이 정색하고 고화를 보았다.김품석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야. 네 아비가 잘못한 거다.고화는 방바닥만 보았고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그렇다고 네가 지금 돌아간다고 해도 의심 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겠느냐? 넌 백제 첩자라고 해도 해명할 길이 없다.방법은 있지.계백이 머리를 숙인 고화의 콧등을 향해 말을 잇는다.네 아비가 신라의, 아니, 김품석의 등을 찌르는 방법이다.그때 고화가 머리를 들고 계백을 보았다. 고화의 시선을 받은 계백이 빙그레 웃었다.왜? 반역을 떠올리느냐? 배신? 누구한테 반역이고 배신이냐?고화가 입술을 열었다가 닫았고 얼굴이 붉어졌다가 곧 희게 굳어졌다. 계백이 쓴웃음을 지었다.네 조상은 가야국 가야인이다. 신라에 병합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가야국 호족 중에서 신라국 고위직에 오른 인물은 내가 알기로 김유신뿐이다.김유신의 수단이야 능란하지. 조부, 부친이 왕족과 혼인을 한데다 김유신 본인도 김춘추의 옷자락을 일부러 밟아서 끈을 뗀 다음 제 여동생에게 바느질을 시켰다지 않느냐?그래서 진골 김춘추에게 제 여동생을 넘겨주고 나서야 안심을 했는가?네 아비는 김품석의 옷자락을 밟을만큼 수단이 없었나보다.그때 어금니를 문 고화가 눈을 치켜떴다. 눈에 물기가 고여 있었기 때문에 눈이 번들거렸다. 그것을 본 계백이 다시 쓴웃음을 짓더니 품에서 접혀진 편지를 꺼내 고화 눈앞에서 흔들었다.이건 네 아비가 너에게 쓴 편지다.고화의 시선이 편지에 빨려든 것 같았고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내가 네 아비에게 너를 데리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할말이 있으면 적어 보내라고 했더니 이걸 보냈다.주세요.고화가 겨우 말했을 때 계백이 머리를 저었다.보여주지 않겠다.보여주세요.너에게 잘 살라는 내용이야.보여주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금화 세냥이 아깝기 때문이야.고화가 숨을 들이켰고 계백이 다시 편지를 가슴에 넣었다. 그때 고화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그렇군요. 아버님은 목숨을 끊으실 작정이시군요.마음대로 생각해라.그래서 제가 따라 죽을까봐 걱정이 되시는군요.이 편지는 나중에 보여주마.저, 아버님을 빼낼 수 있어요.불쑥 고화가 말했기 때문에 계백이 심호흡을 했다. 그때 고화가 말을 이었다.그래요. 개죽음을 할 필요는 없지요. 이대로 죽기는 억울해요.
하산성 성주는 7품 장덕(蔣德) 벼슬의 정욱. 30대 중반의 정욱이 계백을 청의 상석에 앉히고는 인사를 했다.방령이 보내신 전령의 전갈을 받고 지나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우리가 대야주(州)를 휘젓고 다녔기 때문에 이곳 하산성에도 신라 정찰대가 기웃거리게 될 것이오.계백이 말을 이었다.그들도 정찰대를 보내 백제령을 휘젓고 다닐 가능성이 있소.대비하겠습니다.저녁 시간이어서 곧 청안으로 저녁상이 들여져 왔다.전시(戰時)라 차린 것이 변변치 않습니다.정욱이 장수들을 접대하면서 말했다.작년에 신라군이 성 앞에서 백제군을 유인해가는 바람에 성주가 전사하고 군사 2백여명이 전사했습니다.장수들의 시선을 받은 정욱이 말을 이었다.다행히 성을 빼앗기지 않았는데 그 후부터는 방령의 지시로 하산성 군사는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오면서 보니까 성 앞 10리 지점의 골짜기가 매복하기 좋습디다. 거기에서 성주가 죽었소?바로 그곳입니다.정욱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신라군 5백이 매복하고 있었지요. 성주는 적을 쫓다가 함정에 빠진 것이오.하산성에는 보군 5백에 기마군 3백이 주둔하고 있었으니 기마군만 당했을 것이다. 국경은 모두 전장(戰場)이어서 이야깃거리가 없는 곳이 없다. 오랜만에 백제땅으로 들어온 기마대는 마음을 놓고 환담했다. 전장(戰場)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웃음소리도 가끔 들렸다. 다음날 저녁 무렵에 계백의 기마대는 칠봉성으로 들어왔다. 열이틀만의 귀환이다.주인, 포로는 잡으셨습니까?계백이 관저로 들어오자마자 덕조가 물었다. 여종 신분인 고화와 우덕이 뒤에 서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안 잡았다.마룻방으로 들어서는 계백의 등에 대고 덕조가 다시 묻는다.삼현성 앞은 지나셨습니까?시끄럽다.기마군 5백을 이끌고 온 터라 곧 소문이 날 것이다. 굳이 입막음을 할 필요도 없다. 계백이 씻고 방에 앉았을 때 곧 저녁상을 든 우덕과 물병을 든 고화, 그 뒤를 덕조까지 따라들어왔다.주인, 남방에서 전쟁이 일어납니까?방문 앞에 앉은 덕조가 불쑥 물었으므로 수저를 든 계백이 웃었다.동방에서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 않느냐? 수십 년간 사방이 다 전쟁이다.큰 전쟁 말입니다.그건 모른다.계백의 시선이 상 옆쪽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고화를 스치고 지나갔다.삼현성주가 바뀌었더구나.놀란 고화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냈고 우덕은 눈을 치켜떴다. 입안의 음식을 삼킨 계백이 외면하고 말했다.딸이 포로로 끌려갔다는 것을 대야군주한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더군. 새 성주가 왔고 전(前) 성주는 자택에 연금되었다.얼씨구.덕조가 손바닥으로 문지방을 쳤다.대야군주 김품석이가 아주 빌어먹을 놈이구나. 충신을 가두다니, 나쁜 놈.이것이 바로 웃으면서 뺨을 치는 수작이나 같다. 그때 고화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안았고 우덕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쳤다. 그것을 본 덕조가 말했다.이제 이것들이 백제 자식들을 낳겠다.
축시(오전 2시) 무렵, 계백이 산기슭의 진막 안에서 가섭이 가져온 편지를 받고는 빙그레 웃었다. 진막에는 해준과 호성 등 장수들이 둘러섰고 앞에 가섭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고생했다.계백이 가섭을 칭찬하고 나서 편지를 펼쳤다. 기둥에 매단 기름등 불꽃이 흔들렸고 진막 안이 조용해졌다. 진궁이 보낸 편지다.대신라국 대아찬 진궁이 백제국 나솔 계백에게 보낸다. 내 딸에게 편지를 전해준다니 고맙다.그리고는 조금 떼어서 썼다.고화, 전란 속에서 너를 낳은 것이 부모에게는 기쁨이었으나 자식은 지옥을 보는구나. 부모의 죄다.네가 백제땅에서 잘 살라고 기원하고 싶으나 신라 무장으로서 할 말이 아닌 것 같다.너는 가야 호족의 핏줄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라. 네 조상은 대가야의 중신(重臣)이었다.나는 이제 너를 잊는다. 너는 가야인의 후손인 것만 가슴에 담고 새 인생을 살거라.계백이 편지에서 시선을 들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다. 편지를 해준에게 넘겨준 계백이 아직도 앉아있는 가섭에게 시선을 주고 나서 호성에게 말했다.고덕, 이자에게 금화 서 냥을 주게.예. 나솔.대답은 했지만 호성이 두 눈을 꿈벅였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시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심부름 값이야. 장모에게 효도하는 상도 주는 거야.예. 나솔.호성이 가섭을 데리고 진막을 나갔을 때 편지를 다 읽은 해준이 말했다.나솔. 편지로 신라국 대아찬 하나를 죽이셨습니다.계백의 시선을 받은 해준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진궁이 자결을 할 것 같습니다.장덕도 그렇게 느꼈나?딸에게 유서를 써 보냈으니 이제 이 세상에 미련이 없을 것 아닙니까?계백은 쓴웃음만 지었고 해준이 다시 감탄했다.성문을 열라는 뻔한 수단으로 방심을 시켜놓고 기습을 한 셈이지요. 진궁은 지금 기습을 당한 줄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꿈보다 해몽이 좋군.나솔의 전략에 감복했습니다.이 사람이 도성에 있으면서 듣기 좋은 말만 배운 것 같구만.아니오. 나솔의 용명(勇名)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정색한 해준이 말하자 계백이 무장들을 둘러보았다.아침 일찍 회군이야. 준비를 하게.그러자 모두 계백에게 인사를 하고 진막을 나갔다. 오전 진시(8시)가 되었을 때 백제 기마군은 질풍처럼 신라 영토를 내달렸다. 이제는 지리에 익숙한 터라 감시 초소나 성을 피해서 내닫는 것이다. 그래서 저녁 술시(8시) 무렵에는 3백여 리를 주파, 백제령으로 들어섰다.신라 16개 성을 지났으니 지금쯤 전령들이 이쪽 저쪽으로 내닫고 있을 것이오.앞쪽에 보이는 백제 하산성으로 다가가면서 해준이 말했다. 하산성은 남방(南方) 소속의 토성으로 강가에 세워졌다. 지난 수십년 간 신라와 백제가 번갈아 차지했기 때문에 주민은 없고 군사들만 상주한다. 전령을 보낸 터라 성에서 불을 환하게 밝혀 정찰대를 맞을 준비를 한다.
“나리.”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진궁이 머리를 들었다. 오후 해시(10시) 무렵, 저녁을 마친 진궁이 기름 등불 아래에서 생각에 잠겨있던 참이었다.“나리.”다시 부르는 소리는 낮지만 절실했다. 절박감이 느껴지는 소리다. 무장(武將)으로 반평생을 보낸 진궁이다. 눈빛에서 살기(殺氣)를 느끼듯이 목소리에서도 위기(危氣)를 감지할 수가 있다. 진궁이 방문으로 다가가 반쯤 열었을 때 마루 끝에 바짝 붙어 서 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어두워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집안 종은 아니다. 진궁이 낮게 물었다.“누구냐?”“예, 서문 옆에서 그릇가게를 하는 가섭입니다.”“응, 내가 너를 알지.”진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그런데 밤늦게 무슨 일이냐? 그리고 어떻게 이곳까지 들어왔느냐?”연금 상태라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그때 가섭이 마루 앞으로 바짝 다가와 섰다.“담을 넘었지요. 편지를 가져왔습니다.”“응? 누구 편지?”“읽어 보시지요.”가섭이 품에서 헝겊에 싼 편지를 꺼내 진궁에게 건네주었다.“소인이 성 밖에 나갔다가 백제군에게 잡혔습니다.”주위를 둘러 본 가섭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다.“장모께 약을 갖다드리려는 길이었지요. 그 편지는 백제군 장수가 나리께 보낸다고 직접 썼습니다.”“네 장모가 인질로 잡혀 있느냐?”“심부름을 안 하면 제 처갓집은 도륙을 당하겠지요.”“그렇구나.”머리를 끄덕인 진궁이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방으로 들어오너라.”기름등 밑으로 다가가 앉은 진궁이 편지를 펼쳤고 가섭은 방으로 들어와 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진궁이 편지를 읽었다.“나는 대백제국 나솔 계백이다. 삼현성 성주 진궁에게 인연이 닿아서 이렇게 편지를 전하게 되었다. 그대의 딸 고화와 우덕은 내가 종으로 사서 데리고 있다. 이곳을 지나다가 그대가 딸 때문에 성주직을 잃었다는 말을 듣고 상인 하나를 잡아 서신을 보낸다. 딸과 성을 바꾸지 않겠는가? 성문을 열어주면 딸과 함께 백제땅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벼슬도 할 수가 있겠지. 가부(可否)를 상인 편에 적어 보내라.”이렇게 끊긴 줄 알았는데 그 밑에 다시 글이 이어져 있다. 작은 글씨다. 진궁이 편지를 눈에 가깝게 대고 읽는다.“그대 딸은 백제땅에서 여생을 마치게 될 것이니 출가한 것쯤으로 생각해도 될 것이다. 성을 내놓지 않으면 딸을 죽인다는 억지를 써서 넘어가는 무장이 있겠는가? 상인한테 딸에게 보내는 편지나 써주면 전해주겠다. 대백제국 나솔 계백이 전한다.”이윽고 머리를 든 진궁이 가섭을 보았다. 차분해진 표정이다.“너, 글을 아느냐?”“지렁이가 기어다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건 새가 똥을 싼 것 같구요.”“내가 편지를 써 줄테니 가져가거라.”“예. 오늘밤 다시 성을 넘어갈 겁니다.”가섭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진궁을 본다.“그, 백제 장군이 무섭게 생겼지만 위엄이 대단했습니다. 물론 성주 나리보다는 못하지만 말입니다.”
첨병이 잡아온 신라인은 삼현성 안에서 그릇 장사를 하는 가섭이라는 사내였다. 가섭은 성 밖에 사는 장모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몰래 빠져 나왔다가 잡힌 것이다. 한낮, 이곳은 삼현성에서 40여리 떨어진 강가, 계백의 정찰군(軍)은 강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성주께서 들으셔야겠소.”강가 바위에 앉아있는 계백에게 해준이 고덕(固德) 호성과 신라인 포로까지 데리고 다가왔다. 해준의 표정이 굳어져 있다. 신라인을 계백 앞에 꿇린 해준이 말을 이었다.“이놈 문초를 하다가 성안 사정을 알게 되었소. 들어보시지요.”해준의 눈짓을 받은 호성이 신라인에게 물었다.“다시 말해라, 성주가 갇혔다구?”“예, 신임성주 죽성의 지시로 사택에 감금되었습니다.”사내가 두손으로 땅바닥을 짚고 계백을 올려다 보았다. 30대쯤의 사내로 잡히다가 다쳤는지 이마가 조금 찢어져서 피가 배어나온다. 호성이 다그쳤다.“왜 감금 당한 거냐?”“예, 다퉜다고만 들었습니다.”그때 계백이 사내에게 직접 물었다.“왜 신임성주가 온 거냐?”“예, 성주 딸이 백제군에게 잡혀갔다는 소문이 났는데 그것을 군주(軍主)께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그순간 해준과 호성이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그들은 신임성주가 온 이유를 묻지 않았던 것이다. 계백이 지그시 사내를 보았다.“네 이름이 무엇이냐?”“예, 가섭입니다.”“너는 장모한테도 효자 노릇을 하는구나. 장하다.”난데없는 칭찬에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가 곧 눈이 벌겋게 되었다.“예, 장모는 제 어머니나 같습니다.”“장모가 병이 나서 성을 빠져나왔어?”“예, 장군.”“약을 가져가는 길이냐?”“예.”“약이 어디 있느냐?”“잡혀서 뺏겼습니다.”그때 호성이 말했다.“보따리에 약이 있었습니다.”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다시 물었다.“새 성주는 어떤 놈이냐?”“예, 군주의 친척이라고 합니다.”“전(前) 성주는 어떠냐?”“예?”입안의 침을 삼킨 사내가 계백을 보았다.“백성들에게 잘 해줬습니다.”“정직하게 말해라. 넌 죄가 없다. 돌려 보내줄테니 정직하게만 말해라.”“예, 전(前) 성주가 가야 사람이어서 그런지 백성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진궁이지?”“예, 장군.”“새 성주는 진골 왕족이겠구나.”“예, 장군.”“삼현성 군사들 중에 가야인들이 많지?”“열명에 일곱명은 가야인이지요.”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그릇장수 가섭에게 물었다.“네가 전(前) 성주 진궁에게 내 편지를 전해줄 수 있느냐? 물론 새 성주나 군사들이 모르게 말이다.”“전해 드리지요.”대번에 말한 가섭의 두눈이 번들거렸다.“장군, 믿으십시오.”“네 장모에게 약은 우리가 전해주마.”계백이 말을 이었다.“네 장모는 우리가 준 약을 먹고 살아날 것이다. 무슨말인지 알겠느냐?”
아찬, 지원군을 보내지 않을 바에는 첨병 30기를 내보낼 필요가 없었소.진궁이 말하자 죽성(竹盛)이 쓴웃음을 지었다.30기는 적의 의도를 탐색하기 위한 미끼 역할이었소. 적은 우리를 밖으로 끌어낼 계획이었지만 실패했소.그렇다면 아군 30기를 적의 먹이로 던져주었단 말인가?마침내 진궁이 버럭 소리쳤다.듣자 하니 가소롭다! 군사를 개 먹이 취급을 하는가? 그런 용병술을 누구한테서 배웠는가?무엇이! 말을 삼가라!죽성도 따라서 소리쳤다.내가 성주대리다! 그대는 소임이 없으니 근신하라!근신을 해? 네 이놈!그때 청안의 관리들이 나섰다. 일부는 진궁을 막고 일부는 죽성을 달랬는데 뒤숭숭 해졌다. 진궁은 40대 중반의 장년인데 죽성은 20대 후반이니 아들뻘이다. 직위도 아찬으로 진궁보다 한등급 낮지만 대야군주 김품석으로부터 삼현성주로 임명된 신분인 것이다. 진궁은 보좌역일 뿐이다. 진궁한테서 욕을 얻어먹은 죽성이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저자를 사택에 가둬놓고 문밖 출입을 통제하라! 성주의 명이다!성에서는 성주가 성안 장졸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청안의 위사들이 우물거렸으므로 죽성이 허리에 찬 칼까지 빼들었다.항명이냐?그때 위사장이 나서서 진궁에게 말했다.가시지요.진궁이 위사장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는 이를 악물었다. 몸을 돌린 진궁이 잇사이로 말했다.개뼈다귀 같은놈.그소리는 앞쪽의 몇사람만 들었다. 개뼈다귀는 골품(骨品)제를 욕한 것이다. 신라의 지도층은 성골(聖骨), 진골(眞骨) 왕족이 아니면 출신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나 같기 때문이다. 진궁은 가야의 호족 출신으로 그동안 수많은 전공을 세웠는데도 5품 대아찬으로 끝났다. 그러나 왕족 가문인 죽성은 칼 한번 휘두른 적이 없었지만 승승장구하더니 이번에 성주가 되었다. 죽성은 김품석과 친척이 된다. 그날 밤, 진궁의 사택으로 9품 급벌찬 전택이 찾아왔다. 전택도 가야국 태생으로 수백년간 토호를 지낸 가문이었지만 지금은 성(城)의 보군대장이다.뒷문 경비장이 마침 내 부족이어서요. 못 본 척하라고 했지요.쓴웃음을 지은 전택이 진궁 앞에 술병을 내놓으며 말했다. 전택은 30대 후반으로 용장(勇將)이다. 작년에 선천성 싸움에서 백제군 무장 둘을 베어 죽이고 상으로 손잡이에 금구슬이 박힌 장검을 받았다.술을 가져왔는가?술을 좋아하는 진궁이 술병을 쥐고 웃었다. 눈꼬리에 잔주름이 가득 잡혔다. 진궁은 딸 고화가 다섯살 때 병으로 아내를 잃고 혼자 산다. 고화를 아비가 키운 셈이다. 고화가 시녀 우덕과 말을 타고 성 밖에 나갔다가 백제군에게 잡혀간지가 이제 한달 가깝게 되었다. 잔을 찾아온 전택과 진궁이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신다.성주, 죽성이 기마 정탐군 30기를 보냈다가 무장 둘에 군사 17명이 죽었소.술잔을 든 전택이 말을 이었다.백제 기마군 선두에 선 장수가 활로 먼저 아선과 국진을 쏘고 나서 돌파하는 장면이 지금도 머릿속에 박혀있소. 적이지만 보기드문 용장이었소.그렇다. 성루에서 진궁도 보았다. 용장이다.
계백의 기마술은 능란했다. 말고삐를 입에 문 계백이 전통에서 화살을 2개 뽑아서 한 대는 시위에 걸고 다른 한 대는 새끼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신라군과의 거리가 이제 250보, 앞장 선 기마대장이 보인다. 신라군도 기수가 위로 물러가고 기마대장이 앞장을 섰다. 그 뒤를 기마군 4인, 그 뒤로 5인, 이렇게 한 덩어리가 되어서 달려온다. 그것이 더 위력적으로 보인다. 220보, 그때 계백이 시위를 와락 당겼고 활이 보름달처럼 둥글게 펴졌다. 말굽소리, 말의 콧숨소리, 말장식의 쇳소리, 그러나 기마군사의 소음은 없다. 모두 눈을 부릅뜨고 선두의 계백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190보, 그때 계백이 화살 끝을 놓았고 화살이 날아갔다.“팅!”활시윗줄 튕겨지는 소리, 백제 기마군이 눈을 치켜떴다. 그 순간이다.“와앗!”함성이 터졌다. 앞장 선 신라 장수가 머리를 훌떡 젖히면서 몸이 뒤로 젖혀지더니 말 위에서 떨어진 것이다. 화살이 목에 박혔다. 그때 계백이 다시 한 대의 화살을 시위에 걸고는 당기자마자 쏘았다. 시윗줄 튕기는 소리는 묻혀졌지만 뒤쪽의 투구를 쓴 신라군 장수 하나가 눈을 감싸 쥐고 말 위에서 떨어졌다.“와앗!”또 함성, 그때 계백이 활을 말안장에 걸자마자 허리에 찬 장검을 후려치듯 뽑았고 입에 물었던 고삐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소리쳤다.“쳐라!”“우왓!”함성. 거리가 40보로 좁혀지면서 신라군의 부릅뜬 눈까지 보인다. 10보, 5보, 그 순간 계백이 앞장 서 달려온 신라 기마군의 말 머리를 칼로 후려쳤다. 말이 몸을 비틀면서 넘어지는 바람에 칼을 내려쳤던 신라군이 헛칼질을 하더니 함께 땅바닥에 뒹굴었다. 길이 뚫렸다. 계백이 다시 창을 내질러온 신라군의 창 자루를 칼로 쳐 자르면서 옆으로 지나갔다. 길이 또 뚫렸다. 말은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다. 마지막 앞을 막는 신라군을 향해 계백이 들고 있던 장검을 내던졌다. 장검이 날아가 바로 앞으로 덮쳐온 신라군의 배에 박혔다.“으악!”신라군의 비명을 옆으로 듣고 지나면서 계백은 앞이 뚫린 것을 보았다. 그 순간 계백이 고삐를 채어 왼쪽으로 내달렸다. 뒤를 백제군이 따른다. 계백이 말안장에 찔러둔 단창을 꺼내 쥐면서 외쳤다.“본대로 돌아간다!”“와앗!”뒤를 따르는 백제군의 함성, 이것은 승리의 함성이다. 옆쪽으로 비스듬히 꺾어져 황야를 달리는 기마군이 저절로 화살촉 대형을 만들었다. 이제는 속보, 계백의 옆으로 맨 후미에 섰던 해준이 다가왔다. 해준은 얼굴에 피가 번져 있었는데 신라군의 피다.“나솔, 아군은 4명이 경상이요, 모두 살았습니다.”해준이 피투성이 얼굴로 웃었다.“제가 대소(大小) 수십 번 접전을 했지만 아군이 한명도 죽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오!”그때 뒤쪽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말굽소리에 섞인 웃음소리, 기마군의 웃음소리는 거칠고 밝다. 그때 계백이 말했다.“내가 바로 말머리를 틀었지만 삼현성에서 지원군 50기만 내보냈어도 우리는 절반은 잃었을 거야.”해준의 시선을 받은 계백이 말을 이었다. “삼현성주 진궁이 제 딸을 잃은 후로 넋이 나간 것 같다.”
“저곳이 삼현성이요.”척후로 나갔던 군사가 앞쪽 산비탈에 세워진 석성(石城)을 가리키며 말했다. 3리(1.5km)쯤 떨어진 석성은 산비탈에 10자쯤 높이의 성벽을 세웠는데 규모가 꽤 컸다. 더구나 동쪽으로 통하는 길목에 세워져서 요지(要地)다. 이곳은 신라 대야주의 서쪽 지역으로 대야성으로 통하는 길목인 셈이다. 계백이 옆에 선 장덕 해준을 보았다.“우리가 이틀이나 이 근처를 정찰했으니 성 안에 기별이 갔을 거네.”“당연하지요.”해준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주민들의 눈에 띈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이미 전령이 대야성으로 갔다고 봐도 될 겁니다.”“이곳에서 대야성까지는 1백리가 조금 넘는다. 머리를 든 계백이 저물어가는 해를 보았다. 정찰 나흘째가 되는 날이다. 위력정찰이어서 예비마와 군량을 실은 치중대까지 포함한 8백여필의 말떼가 휩쓸고 지나는 것이다. 거침없는 행보여서 대야주 서부는 바짝 긴장하고 있어야 정상이다.“앗, 성에서 기마군이 나옵니다!”앞에 선 척후병이 소리쳤기 때문에 계백이 시선을 들었다. 과연 성문에서 기마군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먼저 붉은색의 깃발을 창에 매단 기마군 2명이 달려 나오더니 뒤를 한무리의 기마대가 따른다. 30기 정도다.“정찰대입니다. 나솔.”해준이 말고삐를 감아쥐며 계백을 보았다. 두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살기(殺氣)다. 그것을 본 계백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전장에 익숙해지면 저절로 몸이 반응한다. 장수의 명령에 앞뒤 가리지 않고 덤비는 군사가 바로 강군(强軍)이다.해준이 바로 그렇다. 계백이 눈을 좁혀 뜨고 정찰대를 응시했다. 뒤를 따르는 후속군이 있는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성문은 열어놓은 채 30여기가 전속력으로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이쪽은 20기다. 계백이 본군(本軍)을 뒤쪽 골짜기에 둔 채 정찰대를 이끌고 온 것이다.“저놈들도 우리 뒤에 본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해준이 앞발로 땅을 긁는 말 목을 쓸어 달래면서 말했다. 싸움에 익숙한 말이어서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계백이 입술 끝을 비틀며 웃었다.“우리가 5백기로 위력정찰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 거야.”“그렇습니다. 성문을 열어놓고 있는 것도 본대가 오면 지원군을 내보내려는 의도올시다.”“그럼 우리가 저놈들을 맞지.”“소장이 먼저 나가지요.”“그럴 필요없어.”말안장 옆에 매어놓은 각궁을 빼내면서 계백이 둘러선 기마군에게 소리쳤다.“일직선으로 달려 적과 부딪친다.”계백의 목소리가 주위를 울렸다.“내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종대로 바짝 붙어 내달린다. 알았느냐!”“옛!”군사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때 해준이 소리쳤다.“소장이 맨끝을 맡겠소!”“놈들을 돌파하는 즉시 말머리를 틀어 돌아온다. 따르라!”말을 마치자마자 계백이 박차를 넣어 앞으로 내달렸다. 뒤를 기마군 20기가 따른다. 말몸 하나의 간격을 두고 한줄기 종대로 서서 달려가는 것이 화살이 날아가는 것 같다. 삼현성에서 나온 신라군과의 거리는 어느덧 5백보로 가까워졌다. 양쪽이 서로를 향해 달려오는 터라 거리는 급속도로 단축된다. 350보. 300보.
김유신이 보낸 기마 척후군 2백기가 저쪽 백산성 앞까지 지나갔지요.안내역으로 따라온 무독(武督) 서준이 말했다. 서준이 가리키는 곳은 짙은 안개에 덮인 산맥이다. 이곳은 신라와의 국경에서 1백여리 떨어진 작은 강가, 오후 미시(2시)쯤 되었다. 기마군은 강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는데 칠봉성을 떠난지 이틀째, 4백여리를 비스듬히 전진해왔다. 계백이 해준에게 물었다.김유신의 주력군(主力軍)은 아직 북방에 있나?예, 신주(新州) 근처에 있다고 하오.해준이 개울물을 마시면서 말했다.대야성까지 내려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김유신은 이제 왕족 대우를 받는다.가야 수로왕의 12세손이며 조부가 한수유역 백제 6군을 점령하고 관산성에서 성왕(聖王)을 패사시킨 김무력(金武力)이다. 김무력은 신주군주(新州軍主)가 되었고 김유신의 부친 김서현은 갈문왕의 손녀 만명부인(萬明夫人)과 결혼하여 김유신을 낳은 것이다. 김유신은 또한 용장(勇將)이다. 강가의 바위에 앉은 계백이 문득 해준에게 물었다.장덕은 신라땅에 가보았나?예, 작년에 1백기를 이끌고 정찰을 나갔습니다. 방령의 영을 받고 나갔지요.해준이 말을 이었다.2백리까지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도중에 신라군 정찰대를 만나 20기 정도를 잃었지요.장하군.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장수인데도 위험을 피하는 부류가 많다. 해준은 해씨(解氏) 일족으로 대성(大性) 8족(族) 중의 하나다. 신라는 성골(聖骨), 진골(眞骨) 왕족이 권력을 장악한 반면에 백제는 오랫동안 대성8족(大性八族)이 요직을 차지했다. 해씨도 그 중 하나다. 대성8족은 사비와 웅진시대에 두각을 나타낸 사(沙), 목(木), 연(燕), 국(國), 해(解), 진(眞), 백( ), 협( )시 일족을 말한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장덕, 나는 8족이 아니네.나솔, 저도 8족의 덕을 본적이 없소이다.바로 말을 받은 해준이 계백의 시선을 받고는 빙그레 웃었다.그래서 이 나이에 7품으로 5년을 썩고 있지요.나는 본국에 오기 전에 나솔이 되었네.압니다.해준이 웃음 띤 얼굴로 계백을 보았다.나솔의 용명을 무장들은 다 듣고 있었습니다.그런가?쓴웃음을 지은 계백이 외면했다. 본국에 온 후로 이런 대화는 처음인 것이다. 그동안 도성에서 여럿을 만났지만 이렇게 둘이 마주앉아 마음속을 털어놓은 적이 없다. 그것은 장덕 해준의 소탈한 성품 때문인 것 같다. 해준이 말을 이었다.나솔, 이번 전쟁의 목표가 대야성입니까? 아니면 당항성입니까?장덕은 왜 묻는가?동방군(東方軍)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이상해서 그럽니다.우리는 대야성을 목표로 삼으면 되네.윤충한테서 성동격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할 필요는 없다. 신라군을 대야성 부근으로 끌어모으는 역할이라고 말한다면 사기가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법을 썼다가 곧장 소리나는 쪽으로 돌진한 적도 있지 않은가? 전쟁은 생물(生物)이다.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 아무도 모른다. 해준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날 밤, 덕조가 성안 하나밖에 없는 주막에서 군사들을 상대로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밤, 해시(10시)쯤 되었다. 초여름이어서 산중(山中)의 기온은 서늘했고 사방에서 풀벌레 소리가 울리다가 인기척이 나면 뚝 그친다. 사택 마당으로 들어선 덕조가 제 방으로 가려다가 안쪽방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는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고화와 우덕의 방이다. 안에서 도란거리던 말소리가 들렸다가 덕조의 기척을 들었는지 뚝 그쳤다. 덕조가 방문 앞 토방에 털석 앉더니 커다랗게 트림을 하고 나서 말했다.“이년들아, 내가 왔다.”방안은 조용했고 덕조가 말을 이었다.“내가 이래봬도 바다건너 연남군에서 명성을 떨치던 계씨(階氏) 가문의 집사를 지낸 분이시다.”“…….”“네년들 같은 신라 시골뜨기들은 계씨 가문을 모르겠지.”덕조가 다시 트림을 하더니 침도 뱉고 나서 말했다.“아니, 연남군이 어디 붙었는지도 모를 거다. 그럼 내가 알려주마.”“…….”“바다를 건너야겠지. 그 바다가 뱃길로 한달이다. 그것도 순풍을 만나야 해. 그럼 그 연남군이 얼마나 넓은 줄 아느냐? 사방 1천리다. 당(唐)하고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매일 척후가 부딪치지. 우리 주인께서는 기마군 대장으로 1천5백 기마군을 이끄셨다.”“…….”“주인 부친께서는 태수 보좌역으로 은솔이셨고 조부 또한 좌장군으로 은솔(恩率)이셨다. 집안에는 모친만 남아 계시지만 아직도 연남군에서는 아무도 무시하지 못한다.”“…….”“네년같은 손톱만한 성주 집안이 아니란 말이다.”지금 덕조의 과녁은 고화다. 슬슬 분이 일어난 덕조의 목소리에 열기가 솟았다.“돌아가신 아씨는 네년보다 1백배는 더 미인인데다 품위가 있으셨다. 너는 감히 옆에 설 수도 없었을 것이다.”“…….”“아느냐? 모르겠지. 우리 주인이 아씨의 복수로 당(唐)의 척산성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것을. 그놈들이 한 것처럼 주인은 당군(唐軍)처자를 다 죽였다.”다시 트림을 한 덕조가 구역질을 하더니 잠잠해졌다.“저 미친놈.”그때서야 입속말로 욕을 한 우덕이 문으로 슬그머니 다가가서는 문틈으로 밖을 보았다. 그러더니 머리를 돌려 고화에게 말했다.“저놈이 마당을 기어서 제 방으로 가네요, 아씨.”고화는 시선만 주었고 다시 문밖을 본 우덕이 말을 이었다.“제 방 앞 토방에 누워 버리는데요. 거기서 개처럼 잘 모양입니다.”“…….”“아씨를 노렸다가 엄두가 안나니깐 별 시비를 다 하는군요. 미친놈.”“…….”“그나저나 성주 처자가 당군(唐軍)한테 살해되었나봐요.”그때 고화가 말했다.“너, 나가서 집사한테 거적이라도 덮어주고 오너라.”“내가 왜요?”했다가 고화의 시선을 받은 우덕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문고리를 잡았다.“아씨, 어떻게든 이놈의 땅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내가 저놈의 노리개가 되더라도 아씨는 도망치게 할 겁니다.”
“덕조, 기마군 조련에 열흘은 걸릴테니 집안 단속을 잘 해라.”수저를 내려놓은 계백이 말하자 덕조가 혀를 찼다.“저것들만 없었다면 주인을 따라갔을 터인데 괜히 샀습니다.”저것들이란 고화, 우덕을 말한다. 마침 고화는 밥 시중을 드느라고 윗목에 앉았고 우덕은 마루 끝에 서있는 참이다.그날, 장덕 해준의 종이 고화와 우덕의 정체를 폭로한 후부터 덕조의 태도가 또 달라졌다. 둘 옆으로 다가가지 않는 것이다. 특히 고화가 나타나면 뱀을 본 것처럼 피했다. 지금도 멀찍이 마당에 서서 말대답을 한다. 계백이 물그릇을 들고 말을 이었다.“성주 딸이면 정세도 알 것이고 삼현성에서 이곳까지의 지리도 익혀 놓았을 게다. 그래서 종을 시켜 기밀을 전할 수도 있을 게야.”“그렇지요.”눈을 치켜뜬 덕조가 마당에서 마루쪽으로 다가왔다.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저, 고화라는 성주 딸년이 아주 여우같습니다. 어제 아침에는 소인한테 싱긋 웃기까지 하더만요.”“저, 미친놈.”하고 우덕이 욕을 했지만 덕조가 목소리를 높였다.“주인, 저, 성주 딸년을 묶어서 골방에 가둬 놓을까요? 소인이 어젯밤에도 잠을 못잤습니다.”“왜?”말에 끌려든 듯 계백이 묻자 덕조가 길게 숨을 뱉었다.“아, 꿈에 저년이 나타나서 제 몸 위에 앉아있더란 말입니다.”“이 미친놈, 몽정을 했구나.”마침내 계백도 미친놈 소리를 했다. 포로가 되어 종으로 팔린 신라인은 도망치기가 어렵다. 특히 성안에서는 모두 얼굴을 아는터라 성밖 출입이 금지되고 성을 빠져 나간다고 해도 통행패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윽고 물그릇을 내려놓은 계백이 고화를 보았다.“이곳이 싫다면 내가 조련에서 돌아와 너희들 둘을 다른 노예상에 넘겨주마.”자리에서 일어선 계백이 말을 이었다.“지난번 노예상이 도성의 유흥가에 팔 예정이라고 했으니 값을 잘 받을 수도 있겠다.”“아, 잘 생각하셨습니다. 주인.”반색을 한 덕조가 어깨를 폈다.“그렇게 된다면 소인이 밤에 잘 자겠습니다.”고화는 시선을 내린 채 입을 다물었고 우덕은 부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성주의 사택을 나온 계백이 청 앞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기마군 대장 장덕 해준이 다가왔다.“나솔, 준비 다 되었습니다.”뒤쪽으로 기마군 5백기가 정연하게 대기하고 있다. 말이 코를 부는 소리와 말굽으로 땅을 긁는 소음만 울릴 뿐이다. 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말에 오르고는 성주대리 진광을 내려다 보았다.“장덕, 내 집 종들을 감시해주게. 내가 종을 잘못 샀어.”“잘 사신 겁니다.”진광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들으니 성주 딸이 미색이라고 하던데 다시 팔아도 되실 것이오.”옆에 있던 해준은 소리없이 웃었고 계백의 얼굴에도 쓴웃음이 번져졌다.“전장으로 가는 자가 집안 일을 걱정하다니. 다녀와서 팔아야겠네.”말고삐를 챈 계백이 앞장을 섰고 해준이 손을 들어 신호를 했다. 그러자 기마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칠봉산성의 줄기를 타고 기마군이 내려간다.
대야성은 본래 가야국의 도성(都城)이었던 것을 가야국이 신라에 병합되고 나서 대야성이 되었고 주변 가야국 영토는 대야주로 바뀌었다. 따라서 1백만 가까운 가야국 주민들은 구(舊)가야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었으니 아직 완전히 신라에 동화된 것은 아니었다. 가야왕 후손으로 김유신 일가(一家)처럼 신라에서 진골 왕족 대우를 받을만큼 출신(出身)한 가문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왕족과 토호는 17관등중 제10관등인 대나마 이하의 직위로 만족해야 했다. 대야주는 성이 42개나 되는 대주(大州)다. 김춘추는 사위인 김품석이 대야주 군주가 됨으로써 왕가(王家)에서의 지위가 격상되었다. 자식이 없는 여왕의 후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여왕의 동생인 천명(天明)공주의 아들이며 진지왕의 손자인 김춘추는 왕위 계승의 유력한 후보가 된다. 그러나 역시 진흥왕의 자손인 비담의 견제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대야주는 김유신의 뿌리임과 동시에 그와 제휴한 김춘추의 기반인 셈이다. 한낮, 오시(12시)무렵, 대야군주 김품석이 삼현성주 진궁의 인사를 받는다.“군주(軍主), 부르셨습니까?”“응, 대아찬(大阿飡), 왔는가?”김품석이 저보다 10여년 연상인 진궁에 하대를 한다. 김품석은 진골 왕족이다. 또한 벼슬이 2등품인 이찬(伊飡)으로 5품인 진궁보다 한참이나 위다. 김품석의 장인 김춘추도 이찬인 것이다. 청 안에는 김품석의 지시로 중신(重臣) 대여섯명만이 둘러 앉아있을 뿐이다. 김품석이 지그시 진궁을 보았다.“대아찬, 그대에게 내가 직접 물어보려고 불렀어.”“예. 군주.”진궁은 40대 후반으로 그동안 수십번 전공을 세웠다. 왕족도 아니면서 5급품 위에 오른 것도 그 때문이다. 김품석이 헛기침을 하고 나서 진궁에게 물었다.“대아찬, 그대의 딸이 백제군에 잡혀갔는가?”“예. 군주.”어깨를 편 진궁의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랐다.“이미 제 가슴 속에 묻어 놓았습니다.”“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바로 말을 받은 김품석의 눈빛이 강해졌다.“허나 시신은 찾지 못했지 않는가?”“예. 군주. 하오나.”“무엇인가?”“가슴에 묻어 놓은 것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군주.”“나는 대아찬을 믿는다.”“믿음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군주.”“그러나 아비는 믿지 못하겠다.”자르듯 말한 김품석이 눈을 가늘게 뜨고 진궁을 보았다.“알겠는가? 아비로서의 그대를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네.”“예. 군주.”“이해를 하는가?.”“예. 군주”“딸이 백제군에게 납치되었으면 즉시 군주인 나에게 말을 해야 옳았다.”“....”“백제군이 그대의 딸을 내세워서 성문을 은밀하게 열라고 할 수도 있다.”“군주.”“삼현성에 신임 성주로 죽성을 보내겠다. 그대는 죽성을 보좌하도록 하라.”“예. 군주.”진궁이 청 바닥에 두손을 짚고 엎드렸다. 그러나 표정은 담담하다.“명을 따르지요.”그때 김품석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 뒷모습에 대고 진궁이 다시 절을 했다.
계백이 이끈 기마군 5백기가 칠봉성에 닿은 것은 이틀 후다. 칠봉성 아랫쪽의 마을을 거쳐왔기 때문에 소문은 금세 퍼졌다. 주민들은 기마군을 반겼다. 요즘들어 자주 출몰하는 신라 기습군을 퇴거하려고 기동대를 끌어왔다고 계백이 말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오전, 오늘도 조밥에 나물로 아침을 먹던 계백이 물그릇을 들고온 고화에게 물었다.“너, 삼현성 근처에서 잡혔다고 했지?”고화가 주춤거렸을 때 덕조가 대신 대답했다.“맞습니다. 노예상이 그랬습니다.”“삼현성에서 살았느냐?”계백이 다시 고화에게 물었다.“네.”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고화가 똑바로 계백을 보았다.“부친이 미곡상을 합니다.”덕조가 토방 마루로 다가와 앉았고 부엌에 있던 우덕도 문에 붙어서서 이야기를 듣는다. 계백이 다시 물었다.“성주가 누구냐?”“대아찬 진성님입니다.”“군사는 얼마나 있어?”“그건 잘 모릅니다. 나리”“알아도 모른다고 하겠지.”덕조가 거들었지만 계백은 무시하고 다시 물었다.“성 안에 우물은 몇개냐?”“세어보지 않았어요.”“가구수는?”“1천호쯤 됩니다.”“주민은?”“그것도 모르겠어요.”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조밥을 삼키고 나서 마루에 앉아있는 덕조에게 말했다.“어제 나하고 같이 온 장덕의 숙소에 가서 종을 데려오너라. 장덕이 내가 종을 데려오라고 했다면 보내줄 게다.”“네, 나리”영문을 모르지만 덕조가 일어나 문 밖으로 사라졌다. 수저를 내려놓은 계백이 고화와 우덕을 번갈아 보았다.“이렇게 포로로 잡혀서 종이 되었다가 아이를 낳고 사는 여자가 많아.”고화는 외면했지만 우덕은 눈을 치켜떴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그때는 종을 벗어나 백제인의 부인이 되는 것이지, 자식들도 백제인이 되고.”“그렇게 못합니다!”바락 소리를 지른 것이 우덕이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우덕이 발까지 굴렀다.“차라리 죽겠습니다!”그때 계백이 똑바로 우덕을 보았다. 그순간 고화가 숨을 들이켰다. 계백의 두눈이 번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술은 조금 비틀려져 있는 것이 쓴웃음을 짓는 것 같다. 계백이 낮게 말했다.“죽음을 가볍게 말하지 말라.”그때 열린 문으로 덕조가 들어섰고 그 뒤를 사내 하나가 따른다.“나리, 데려왔습니다.”다가온 사내가 마룻방 위에 앉은 계백을 향해 굽신 절을 하더니 고화와 우덕을 차례로 보았다. 그러더니 어깨를 부풀리면서 눈을 둥그렇게 떴다. 계백은 미동도 하지 않고 사내를 주시하고 있다.그때 사내가 소리쳤다.“나리, 이 여자가 삼현성주 진궁의 무남독녀 고화입니다. 저년은 고화의 시녀이구만요!”“뭐?”놀란 덕조가 되받아 소리쳤지만 계백은 잠자코 물그릇을 들었다. 그때 고화가 사내를 유심히 보았다.“너, 마굿간 종 상기 아니냐?”“맞아요.” 우덕이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이 역적 같은 놈!”
“아니, 이년들이.”그날 아침 이후로 덕조의 태도는 돌변했다. 고화와 우덕을 제 여동생처럼 사근사근 대하더니 아침상을 물린 후부터 원수 만난 것처럼 굴었다. 지금도 그렇다. 마당이 깨끗한데도 청소한 흔적이 없다고 시비를 한다. 눈을 부릅뜬 덕조가 우덕을 보았다.“왜 비질을 한 흔적이 없느냐?”“꼭 비질을 한 흔적이 있어야 되나?”맞받은 우덕이 목소리를 높였다.“깨끗하면 되었지. 왜 사사건건 시비야?”“시비? 이년 좀 보게.”어깨를 부풀린 덕조가 한걸음 다가섰다. “사지(死地)에서 구해준 은인한테 이렇게 대들 것이냐?”“잠자리 상대가 필요해서 골랐겠지.”“이년, 내가 집사다.”“같은 종 신세에 위아래가 어디 있어?”말대꾸를 했다가 갑자기 서러워진 우덕이 왈칵 눈물을 쏟았다.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당 복판에 선 우덕에게 고화가 다가갔다.“덕아, 참아라.”우덕의 어깨를 쥔 고화가 덕조를 보았다.“내가 마당 청소를 다시 하지요.”“아, 글쎄…”고화의 시선을 받은 덕조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외면했다. 고화와 우덕이 주종관계인 것이 밝혀진 후부터 덕조는 고화한테 한풀 꺾이고 지낸다. 그날 밤 겁탈하려고 덤볐다가 우덕의 방해로 실패한 것이 멋쩍기도 했다. 몸을 돌린 덕조가 투덜거렸다.“젠장, 잘못 데려왔어. 그냥 도성의 기방에다 팔라고 할 걸 그랬어.”덕조가 대문 밖으로 사라지자 우덕이 충혈된 눈으로 고화를 보았다.“아씨, 도망가요.”“너, 그러다가 죽는다.”고화의 눈빛이 강해졌다. 엷은 입술이 죽 다물어져서 차가운 표정이 되었다.“서두르지마. 우선 저놈의 비위를 맞추자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느냐? 저놈부터 믿게 만들어야 된다.”싸릿대로 만든 비를 집어든 고화가 말을 이었다.“성주는 안목이 깊지만 집안일에 상관하지 않으니까 말이다.”“성주의 처자가 있겠지요?”우덕이 비를 뺏어 들며 물었다.“있겠지.”“우물가에서 장덕의 종 이야기를 들었더니 성주가 부임한지 열흘도 안되었다고 합니다.”오전 진시(8시) 무렵이다. 오늘 우덕은 처음 우물가로 나가 종들을 만난 것이다. 우덕이 마당에 비질 흔적을 내면서 말을 이었다. “대륙의 백제령인 연남군에서 기마대장으로 명성을 떨치다가 본국으로 소환되었다네요.”“….”“그래서 종들도 성주에 대해서는 잘 모르더군요.”우덕이 비질을 멈추고는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고화에게 바짝 다가섰다.“아씨, 제가 빠져나가 나리께 알릴 수는 없고 이곳의 종 하나를 꾀어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 낫겠습니다.”“글쎄, 서두르지 말라니까.”“나리께서 군사 10여명만 보내주시면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지 않겠어요?”그때 고화가 허리를 펴더니 긴 숨을 뱉고 나서 말했다. “이곳에서 삼현성까지는 350리야. 내가 계산을 했어.”고화는 삼현성주인 대아찬 진궁의 무남독녀인 것이다.
장덕 해준입니다.기마군 대장이 계백에게 허리를 굽혀 군례를 했다. 가죽 갑옷에 비색(緋色) 띠를 매었고 허리에 장검을 찼다. 백제 관등은 16관등으로 구분이 엄격하다. 1품(品)은 좌평(佐平), 2품은 달솔(達率), 3품은 은솔(恩率), 4품은 덕솔(德率), 5품은 간솔(刊率), 6품은 나솔(奈率)이며, 1품에서 6품까지는 자색(紫色) 관복에 띠를 맨다. 7품은 장덕(蔣德), 8품은 시덕(施德), 9품은 고덕(固德), 10품은 계덕(季德), 11품은 대덕(對德)인데 7품에서 11품까지는 비색(緋色) 복장에 띠를 두른다. 12품은 문독(文督), 13품은 무독(武督), 14품은 좌군(佐軍), 15품은 진무(振武), 16품은 극우(剋虞)인데 12품부터 16품까지는 청색(靑色) 관복에 띠를 매는 것이다. 해준은 3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계백보다 키는 작았지만 몸이 둥글고 팔이 길었다.나솔, 모시게 되어서 영광이오.해준이 말했을 때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장덕, 나는 몇 번 운이 좋았을 뿐이네.겸손하신 말씀이시오.출발 준비는 되었나?계백이 화제를 돌리자 해준도 정색했다.바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그럼 가면서 무장들의 인사를 받기로 하지.계백이 말고삐를 당기면서 말했다. 방성안 마장(馬場)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마군 5백기가 곧 해준의 지휘하에 따라 나왔다. 예비마와 군량을 실은 마차까지 늘어서서 대열이 길게 늘어섰다. 이미 햇살이 강한 초여름의 사시(10시) 무렵이다. 5백기의 기마군은 남방(南方)의 정예군이다. 훈련이 잘된 말은 무장들의 외침소리에 흥분해서 살을 떨었고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나솔, 대륙의 기마군은 하루에 얼마나 갑니까?성문을 나와 국도에 들어섰을 때 해준이 말몸을 붙여오면서 물었다. 해준은 붙임성이 있는 성격같다. 계백이 대답했다.하루에 5백여리를 주파한 적이 있어.여기서는 평지가 좁고 지형이 험해서 2백리가 고작이요.내가 남방 아래쪽으로 가보니까 하루에 3백리는 가겠던데.남쪽의 평지가 넓지요.해준이 머리를 들고 계백을 보았다.나솔, 연무군에서 당군을 연파하셨을 때 어떤 전법을 쓰셨습니까?임기응변이지.바로 대답한 계백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떠올랐다.돌고 돌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법이더군. 그래서 두 번 세 번 꾀를 부리지 않고 정공법을 썼네.그렇습니까?병법을 연구한 당(唐)의 장수가 많아. 손자나 제갈량의 후손들 아닌가?꾸민 이야기가 많지요.백제 기마군의 이야기가 후세에 남게 되려면 승자가 되어야 하네.나솔은 나이에 비해 경험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대륙의 백제군은 거의 매일 전쟁이었네. 그래서 이 나이에 나솔이 된 것이지.계백은 백제군 무장들이 공인하는 용장(勇將)이며 지장(知將)인 것이다. 해준 또한 여러번 공을 세웠지만 계백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것이 어린 나이에도 계백을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때 계백의 옆으로 기마군의 무장들이 차례로 다가와 인사를 했다. 장덕 해준이 선임이며 부장(副將)으로 고덕 2명, 1백인장으로 무독 5명, 그 휘하에 좌군, 진무 등 10여명이 포함되었다. 모두 여러번 전쟁을 겪은 숙련자들이다.
그날 낮, 오시(12시) 무렵이 되었을 때 방령 윤충이 보낸 전령이 칠봉성에 닿았다.방령께서 기마군 장비 때문에 방성(方城)으로 오시랍니다.전령의 말을 들은 계백이 즉시로 떠날 차비를 했다. 성주대리 장덕 진광에게 다시 성을 맡긴 계백이 방성인 고산성에 도착했을 때는 다음날 오후 미시(2시) 무렵이다. 기마군 10여기만 이끈 단촐한 행차였지만 방성까지는 2백여리 길인데다가 하룻밤을 길가 객사에서 묵어야 했기 때문이다.나솔, 빨리 왔군.계백을 본 윤충이 그렇게 반겼다. 윤충은 백제의 명문가인 대성8족은 아니지만 의자대왕의 신임을 받는 측근이다. 방령 윤충이 계백과 내청의 밀실에서 마주 앉았다. 배석자는 방좌인 덕솔 연신 뿐이다. 윤충이 입을 열었다.나솔, 칠봉성의 군량은 얼마나 비축되어 있나?예, 성의 군사가 석달 먹을 만큼은 됩니다.기마군이 1백여기지?예, 방령.말은?220필입니다.내가 방성(方城) 소속의 기마군 5백기에 말을 8백필 내놓겠네.계백이 숨을 죽였을 때 연신이 말을 이었다.군량도 석달분을 지급 해줄테니까 싣고 가도록 하게.방령, 무슨일입니까?칠봉성은 국경과 3백여리 떨어져 있어서 신라군 세작이 기마군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지 않을 거네.윤충이 말을 이었다.기마군 5백기를 이끌고 대야성 주위를 정탐하게, 이른바 위력정찰이지.대야성주 김품석이 바짝 긴장해서 전군(全軍)을 모으고 신라의 삼천당, 귀당의 군사가 응원을 나오도록 하면 더 좋지.윤충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김유신이 대야성 근처로 내려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고.방령.계백이 윤충을 바라보았다.소인이 미끼 역할을 하는 것입니까?그렇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지.목표는 무엇입니까?당항성이야.순간 숨을 들이켠 계백이 윤충을 보았다. 당항성은 이제 신라 신주(新州)의 도성(都城)이 되어 있다. 당항성은 신라가 대륙으로 통하는 관문인 것이다. 바다만 건너면 당(唐)이다. 그러나 원래 당항성은 백제의 영토였는데 장수왕 63년에 침공을 받아 개로왕이 죽고 땅마저 빼앗겼다가 성왕 때 신라와 함께 그 영지 대부분을 되찾았다. 그러나 곧 신라의 배신으로 성왕이 패사(敗死)하고 신라의 신주(新州)가 설치된 것이다. 신주는 백제의 북쪽을 가로지르는 땅으로 서쪽끝이 당항성이다. 다시 계백의 시선을 받은 윤충이 말을 이었다.그래, 성동격서(聲東擊西)야, 대야성을 치는 것처럼 해놓고 동방 방령 의직이 대왕과 함께 신주를 친다.그렇다면 저는 신라군을 대야성 부근으로 끌어 모으는 역할이 되겠습니다.그렇지, 그러나 대놓고 덤비면 신라가 눈치를 챈다. 은밀하게 움직여야 믿을 것이다.지원군은 없습니까?상황을 봐서 내가 지원한다.윤충과 연신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것을 본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다음 날 아침, 계백이 아침 밥상을 들고 오는 여자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 뒤를 물병을 받쳐 든 여자가 따른다. 어젯밤에 덕조가 산 여종 둘이다. 나중에 들어선 덕조가 헛기침을 하더니 멀찍이 앉았다. 마룻방 안에 넷이 둘러앉은 셈이다. 작은 세다리 밥상을 앞에 두고 계백이 앉았고 좌우에는 여종이, 문 앞에는 덕조가 자리잡은 것이다. 그때 덕조가 말했다.“밥상을 들고 온 년이 우덕이라는 언니고, 물병을 가져온 년이 고화라는 동생입니다. 주인.”계백이 우덕부터 보았다. 튼튼한 몸에 둥근 얼굴, 계백의 시선을 받더니 머리를 굽신 해보였는데 서글서글한 인상이다. 다음은 고화, 언니와는 대조적으로 갸냘프고 갸름한 얼굴, 시선도 마주치지 않는다. 치맛자락을 움켜쥔 손가락이 가늘고 길다. 계백의 시선을 쫓던 덕조가 다시 헛기침을 했다.“노예상 말을 들었더니 이것들이 말을 타고 나왔다가 백제 정탐군에게 잡혔답니다. 신라 삼현성에서 행세깨나 하는 집안이었던 모양이요.”계백이 밥상으로 시선을 옮기고는 조밥을 한수저 떠서 입에 넣었다. 상 위에는 조밥 한그릇과 나물 2종류, 군량으로도 쓰이는 소금에 절여 말린 돼지고기 서너조각과 더운물이 전부다. 덕조가 말을 이었다.“노예상은 동생되는 고화를 도성의 유흥가에 팔 작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금화 네냥을 부르길래 제가 엄포를 놓았지요. 객사에 잡아놓고 칠봉산성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만든다고 했더니 금화 세냥에 언니까지 얹어서 산 겁니다.”“………”“잘 샀지요?”“너, 어젯밤에 아무일 없었느냐?”입안의 음식을 삼킨 계백이 묻자 덕조가 숨을 들이켰다. 계백을 쳐다보는 눈동자가 흔들렸다.“주인, 무슨 말씀이시오?”“내가 여자들한테 물어보랴?”“주인.”어깨를 편 덕조가 입안의 침부터 삼키고 나서 말했다.“저는 단지, 그러니까…”그때 계백이 여자들을 둘러보았다.“어젯밤에 저 사내가 방에 들어왔느냐?”“네.”대답을 언니 우덕이 했다. 우덕이 똑바로 계백을 보았다.“하지만 제가 막았습니다.”“어떻게?”“동생을 겁탈하려고 하길래 제가 죽겠다고 했지요. 칼을 목에 붙였습니다.”“그랬더니?”“순순히 물러갔습니다.”계백의 시선이 고화에게로 옮겨졌다. 고화는 지금까지 한번도 계백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넌 벙어리냐?”그때 고화가 머리를 들었다.“아닙니다.”목소리가 맑아서 여운이 일어난 것 같다. 계백에 고화의 검은 눈동자에 박힌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계백의 시선이 다시 고화의 몸을 훑었다.“너희들 주종간이지?”순간 둘의 몸이 굳어졌다가 먼저 우덕이 흔들렸다.“나리 아닙니다. 저 분은, 아니, 쟤는 제 동생입니다.”그때 계백이 머리를 끄덕이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덕조에게 말했다. “한번만 더 여자 방에 들어간다면 네 물건을 뽑아버릴테니까 명심해라.”이것으로 첫 대면이 끝났다.
“멈춰라!”앞장선 기마군사가 소리치자 대열이 멈춰섰다. 20여인으로 구성된 대열이다. 그 중 7,8명은 말을 탔고 10여명은 말 2필이 끄는 수레에 탔다. 말을 탄 사내들은 제각기 칼을 찼거나 창을 들었는데 관리는 아니다. 그때 계백의 옆에 선 덕조가 말했다.“노예상입니다. 주인.”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계백이 시선만 주었다. 백제에서도 신라군의 기습을 받아 아녀자를 빼앗기듯이 신라도 마찬가지다. 백제군이 기습을 해서 신라인을 납치, 종으로 파는 것이다.“어디서 오는 길이냐?”기마대 조장인 좌군(佐軍)이 나서서 호통치듯 물었다. 칠봉산성에서 동북쪽 30여리 지점의 황야다. 계백은 좌군 지휘 하의 기마군 50기를 이끌고 영지를 순시하는 중이었다. 오후 미시(2시) 무렵, 햇살이 밝은 청명한 날씨, 그때 대열 앞으로 가죽 조끼를 걸친 30대쯤의 사내가 나섰다.“예. 아남성에서 나와 사비도성으로 가는 노예상이올시다.”아남성은 남방의 동쪽 산라와의 국경에 위치한 성이다. 사내가 말을 이었다.“아남성에서 노예 12인을 사오는 길인데 오늘은 칠봉성에서 머물 작정이었소.”“도시부(都市部)의 증표는 있는가?”“물론이지요.”사내가 저고리 품 안에서 가죽으로 감싼 증표를 꺼냈는데 역시 돼지가죽에 도시부의 허가서가 적혀 있다. 좌군이 건네준 증표를 읽은 계백이 수레에 실린 포로를 훑어보았다. 건장한 사내가 넷, 여자가 다섯, 열 살 미만의 아이가 셋이다. 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증표를 건네주면서 말했다.“내가 칠봉성주다. 성 안의 객사가 비었으니 이 길로 곧장 가도록 해라.”“성주를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사내가 넉살 좋게 웃으면서 말했다.“노예는 아남성에서 열흘 전에 잡아온 년놈들이라 아직 손도 타지 않았습니다. 성주께서도 골라 보시지요.”그때 덕조가 앞으로 나섰다.“이봐. 내가 저녁때 객사로 갈 테니까 그 때 보자구.”“장사는 뉘시오?”“난 성주 나리 집사다.”덕조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마침 내가 종을 구하는 중이었는데 잘 되었어.”“내가 값을 잘 쳐 드리지요.”둘의 수작을 듣던 계백이 말고삐를 당기며 말했다.“자, 가자.”문독이 정지한 기마대에 출발 신호를 보냈고 기마대가 움직였다. 백제는 상업이 발달하여 상업교육을 맡은 도시부(都市部)를 따로 두었는데 외관 10부(部) 중의 하나로 부장(部長)은 달솔이 맡았다. 그날 밤, 객사에 다녀온 덕조가 계백에게 말했다.“주인, 여종 둘을 샀소. 신라 삼현성 근처에서 잡았다는 년들인데 둘이 자매간이랍니다.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같이 샀습니다.”덕조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값은 금 3냥을 줬는데 연남군보다는 비싸지만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주인께서도 출정하실 때 꼭 포로를 챙겨 오시지요. 전리품으로는 포로가 가장 낫습니다.”“시끄럽다.”계백이 꾸짖자 덕조는 순순히 물러났다. 덕조는 대를 이은 종이어서 계백이 어렸을 때는 업어 키웠다. 계백에게는 형 같은 종이다. 종으로 생각한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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