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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붑니다. 도솔산이 까르르 웃어 젖힙니다.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이 제 몸을 뒤집는 게 아니라, 나뭇잎이 어서 와 어서 와, 손 까불어 바람이 이는지 모릅니다. 선운사 극락전 처마 끝에 풍경(風磬)이 매달려 있네요. 그 풍경에 물고기 한 마리 매여 있고요. 출처를 모르는 바람처럼 가는 곳을 모른 채 평생 헤엄치는 저 물고기, 어디서 온 어떤 바람이 어디로 밀어 대는지 알고 싶었겠지요. 티끌 한 점 없는 허공에 뜬 저를 흔들고 가는 것이 어떤 연(緣)인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싶었겠지요. 제 눈꺼풀을 잘라버렸습니다. 몸도 없고 색도 없고 향내도 없는 바람이 없는 길을 걸어와 저를 흔들 때, 그 형체도 없는 것에 제가 흔들릴 때, 물고기는 저를 흔드는 것이 곧 나뭇잎 같은 제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바람을 청하는 마음에 제가 흔들린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땡그랑 땡그랑 저 물고기, 바람을 부르고 싶어서 스스로 종메가 되었습니다. 바람 따라 어디까지라도 퍼져나가고 싶어서 아프게 제 몸 부딪힙니다.
내가 잘못 알았습니다. 세상이 동그란 줄만 알았었습니다. 화암사(花巖寺) 적묵당(寂默堂) 마루에 걸터앉아 하늘도 땅도 네모란 것을 압니다. 이응, 이응 벌린 입을 미음, 미음 닫아겁니다. 와글거리던 속내가 수굿해집니다. 우화루(雨花樓) 앞 늙은 매화나무 아래에서 주워온 시금털털한 풋 매실 하나 우물거립니다. 꽃비 이미 멎었습니다. 극락전 아미타불도 문 닫아걸고 들어앉으신 지 오래입니다. 입 꾹 다물었습니다. 세상도 시절도 나도 칸, 칸 마루에 나앉아 다뭅니다. 쑥꾹, 쑥꾹 한나절 울어대던 쑥꾹새도 불명산(佛明山) 시루봉 너머로 날아갔습니다. 적묵당 기둥에 기대어 떠가는 흰 구름을 봅니다. 빈 마당을 봅니다. 동그란 줄만 알았던 하늘이, 마당이 네모입니다. 반 평 독방에서 풀려나 한입 두부 베물 듯, 벌린 입을 미음 미음 다뭅니다. 우화루 목어 입 꾹 다물었고요. 문간채 마당귀 모란 정갈하게 꽃을 지웠습니다. 극락전 처마 끝 풍경(風磬)도 쉿, 검지를 입에 댑니다.
예나 지금이나 버스 타기가 쉽지 않습니다. 옛날엔 돈이 없어 쉽게 못 탔고, 지금은 제 차 타느라 잘 안 탑니다. 포플러 늘어선 신작로에서 하염없이, 풀풀 흙먼지 날리며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지요. 버스는 기다림이지요. 기다려 버스를 타고, 쉬이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느긋한 이에게 가는 것이지요. 버스는 앞을 보는 게 아니라 옆을 보는 것이지요. 앞을 보며 시간을 재는 게 아니라 옆을 보며 풍경을 늘이는 것이지요. 스스로 그림이 되는 것이지요. 산다는 것은 기다려 오른 버스에서, 가만 차창에 풍경 하나 들이는 거란 걸 아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무주, 진안, 장수, 무진장 먼 곳이었습니다. 한나절 버스를 타고 가야 닿을 수 있었던 땅입니다. 첩첩, 그렇게 높고 깊어서 지금은 외려 푸른 곳입니다. 기다려 버스를 타고 진안 모래재를 푸르게 넘습니다. 딱히 기다리는 이는 없어도 좋을 메타세쿼이아 길을 갑니다. 차창마다 그림이 절창입니다. 라디오에선 이석이 부른 옛노래 비둘기 집이 흐릅니다.
길을 나섰습니다. 발길 가는 대로 걸었습니다. 걸어 걸어 삼십 분쯤, 어느 작은 마을에 들어섰습니다. 씽씽 그냥 지나치던 마을이었습니다. 컹 컹 개가 짖었지요. 개는 내가 낯설었을 테지만 나는 또 그런 풍경이 낯설었지요. 어느 집 앞에 멈춰 섰습니다. 꽃등이 환했습니다. 파란 대문집, 빨강 노랑 덩굴장미가 확 달아올랐더군요. 메꽃도 한창이었고요. 망종(芒種) 무렵 들녘보다 더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꽃은 내가 보려 가꾸는 걸까요? 다른 사람 보여주려 가꾸는 걸까요? 담장에 장미를 올리고 대문간에 메꽃을 피운 걸 보아, 그 집 주인은 지나는 이들을 위해 피운 게 확실했습니다. 내 집 앞 지나는 사람 모두 환해지라고 피워둔 게 틀림없었습니다. 마음 어두워 행여 돌부리에 걸리지 말라고 꽃등 환하게 켜둔 거였습니다. 날개 없어 울안 넘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문 활짝 열어둔 거였습니다. 마당귀 감잎이 반짝거렸지요. 포도 넝쿨도 꽃을 달고 있었고요. 나비처럼 훨훨 마당을 넘봤습니다. 그 집 앞, 자주 서성댈 듯합니다.
다섯 송이 꽃입니다. 지니꽃, 이현꽃, 서연꽃, 태훈꽃, 수인꽃. 영산홍 지자 덩굴장미가 울을 넘습니다. 울을 넘는 빨간 장미꽃을 따라 나왔을까요? 어린이집 꼬맹이들 나들이 나왔습니다. 온통 신기한 것뿐입니다. 그림책에서 보았던 참새가 짹짹 알은체합니다. 길가에 깡충깡충 토끼풀도 있고 아장아장 강아지풀도 눈에 띕니다. 개미다. 앞서가던 녀석이 무언가 끌고 가는 개미를 보았습니다. 빙 둘러앉아 녀석들 재미나게 끌려갑니다. 어른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그 작은 개미가 눈에 띄었네요. 저 다섯 송이 꽃들, 언젠가 세상에 나오겠지요. 선생님께 못 배운 것도, 책 속에 없는 것도 보고 듣고 알게 되겠지요. 부디 큰 것들만 보고 듣고 알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보았던 참새, 토끼풀, 강아지풀, 개망초, 개미가 먼저였으면 좋겠습니다. 영차영차 개미를 응원하는 화면 가득 다섯 꼬맹이, 머리에 앉은 나비를 보아 영락없이 꽃입니다. 선생님을 따라가는 아이들 발걸음에 놀란 개개비가 풀숲으로 날아듭니다.
누군가 쓰레기를 버렸습니다. 다음날 또 다음날, 검정비닐 봉투가 쌓여갔습니다. 길고양이들이 냄새를 찢어발겼습니다. 봄날 다 가도록 골목에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오랫동안 할머니 한 분이 두어 고랑 고추, 상추, 들깨 꽃을 피우시던 마음 밭에 쓰레기가 만발했습니다. 골목 어귀 꽃집 아가씨였습니다.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 노래처럼 고왔습니다. 코설주 부러뜨리는 고약한 냄새가 그니 마음을 후려쳤을까요? 어느 날 끙끙 쓰레기 더미를 치웠습니다. 호미로 파고, 키 작은 팬지는 앞쪽에 키 큰 튤립은 뒤쪽에 파랑, 노랑, 하양 색칠을 했습니다. 댓 평 공터 아니 온 동네가 환해졌습니다. 이웃들도 활짝 피어났습니다. 꽃 앞에 누군가 고양이 밥을 두고 갔습니다. 손바닥 닳도록 빌러 오는 어두운 마음이, 두엄자리 같은 육신이, 한 백 년 환할 꽃을 새겼습니다. 내소사 대웅보전 부처님 빙그레 웃으시는 것도 활짝 핀 저 꽃살문 때문이라는 것을 압니다. 한 땀 한 땀 꽃 이파리를 피웠을 목공의 손바닥도 분명, 모란처럼 피어났을 겁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노래마다 잘 어울리는 가수가 따로 있지요.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노래가 되어버리기도 하지요. 시인들이 제일 좋아한다던가요, 봄날은 간다는 서른 명도 넘는 가수가 불렀다고 합니다. 음색도 리듬도 창법도 다른, 서른 몇 개의 봄날이 갑니다. 가시가 찔러서 찔레랍니다. 백난아의 찔레꽃은 1941년에 만들어졌답니다. 양지바른 돌무더기나 개울가 무넘기에 잘 자란다는 찔레꽃, 야장미(野薔薇)라고도 하지요. 꽃잎을 따먹고 또 연한 순을 꺾어 껍질을 벗겨 먹던, 배고픔이 먼저 생각나는 꽃이지요. 그래서일까요. 모내기 철 가뭄을 찔레꽃 가뭄이라고 한다지요. 찔레꽃도 여러 버전으로 변주되었습니다. 가방끈이 짧아서 직접 쓰지는 못해도 시(詩)를 즐겨 부른다는 장사익과 이원수의 동시를 개사해 부른 이연실의 찔레꽃이 유독 따끔거립니다. 카센터 직원이었다는, 부러 다방 레지도 해봤다는, 두 사람 모두 인생을 배우고 난 후에 불러서일 겁니다. 탕약처럼 쓰다는 노래 찔레꽃이 콕콕 가슴을 찌릅니다. 찔레꽃은 희지요.
분명 새 소립니다. 비비배배 배배배,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새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이든 현악 4중주 종달새 1악장입니다. 습관처럼 켜놓은 라디오에서 종달새가 날아오릅니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 텃밭을 매고 네댓 고랑 고추 모종을 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울안 감나무에 앉은 곤줄박이 노래가 어제와 다르다며 새소리보다 맑게 지저귀었습니다. 익숙하던 것이 새로워지는 순간이 있지요. 안 보이고 안 들리던 것들이 또렷하고 맑은 그런 날이 있지요.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겨울을 나고, 없는 듯 제 자리에 있었을 보리밭에 나와 넘실거리는 바람을 봅니다. 휘파람을 불듯 필닐리리 보리 피리를 불어봅니다. 윌리엄 워즈워스가 천상의 음유시인이자 하늘의 순례자라 했던 종달새는 날아오르지 않고 논둑길을 가는 사람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모르게 숨어들어 푸른 보리밭에 뭉갰다던, 먼 전설 속 형들 누님들은 다 어디 가서 검은 머리 세었을까요? 두견같이 서럽지 않고 꾀꼬리같이 황홀하지 않다는 종달새를 오늘 증인으로 소환하겠습니다.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빨간불입니다. 앞만 보고 달리다간 자칫 큰일 날 수 있으니 잠시 뒤도 돌아보고 옆도 살피라고, 멈춰 세웁니다. 고속도로에 휴게소가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한 템포 쉬어가야 더 멀리 더 안전하게 갈 수 있다고 불러 세우는 것일 겁니다. 한 주 내내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들, 하루 쉬어가라고 일요일도 있습니다. 풍랑이 없어도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날이면 배가 출항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배에는 브레이크가 없기 때문이랍니다. 당파싸움이 치열했던 15~16세기 조선 시대, 관직에 있던 선비 중 사분의 일가량이 유배 갔다지요. 유배는 비록 어쩔 수 없는 멈춤이었지만 자신을 성찰하고 학문에 정진하여 후세에 길이 남는 작품과 저서를 남긴 이가 여럿이지요. 코로나19,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멈출 줄 모르는 세상에 대한 경고인지 모릅니다. 쾌락만 좇고 돈만 추구하는 세상에 보내는 경고인지 모릅니다. 중국이 멈춰서고 우리가 숨을 고르니 미세먼지도 없습니다. 올봄 하늘만큼은 그 어느 해보다 쾌청입니다. 빨간불, 브레이크 밟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멈출 줄 모르면 더 갈 수도 없습니다.
다투어 피어나던 꽃이 집니다. 요술 부리듯 눈가는 데마다 환하게 피어난 꽃들이 시듭니다. 그만 제빛을 잃어 갑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 없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여태껏 권세와 영화가 영원하지 않다는 말인 줄만 알았습니다. 정작 꽃이 짧다는 말인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꽃이 집니다. 꽃을 보고 어두운 사람 없습니다. 미소 짓지 않는 사람 없습니다. 꽃은 향기가 좋아 꽃일까요? 빛깔이 고와서, 모양이 예뻐서? 그래요, 꽃은 왜 꽃인 걸까요? 어쩌면 겨우 열흘을 넘기지 못해 꽃인지 모릅니다. 짧디짧아서 더 꽃인지 모릅니다. 사람의 재주가 좋아서 꽃보다 더 꽃 같은 꽃을 만들어 냅니다. 사철 피워냅니다. 우리는 꽃을 보면 습관처럼 큼큼 코를 대보고 이파리를 만져 봅니다. 진짜인지 확인합니다. 영원한 건 조화일 텐데, 절레절레 고개를 젓습니다. 세상을 밝히던 꽃이란 꽃이 집니다. 인생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은유하듯 꽃이 집니다. 다시 또 지기 위해 피어난 꽃, 열흘을 못 넘고 져야 꽃입니다.
봄은 Spring이지요. 스프링처럼 통통 튀는 햇살과 퐁퐁 솟아오르는 샘물 같은 마음 주체할 수 없습니다. 노글노글한 봄볕 아래 한나절 그대를 생각합니다. 아뿔싸! 그런데 이를 어쩌죠? 아롱거리는 아지랑이 때문인지 자꾸만 가물거릴 뿐, 얼굴 그릴 수가 없네요. 그대를 찾아 나섭니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훅, 내 안에 들어와 버린 그대에게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요. 백합 몇 송이 장만하기로 합니다. 꽃집에 가는 내내 안드레아스 숄(Andreas Scholl)의 백합처럼 하얀(White as lilies)이 입에 붙네요. 받는 사람 행복하고 주는 사람 황홀한 것이 어디 꽃다발뿐일까만, 함부로 입에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오래 두고 보라고 채 피지 않는 송이를 고릅니다. 그대, 백합은 아직이지만 내 마음은 벌써 활짝 피었답니다.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한잔 술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린 봄날이었습니다. 붉은 노을을 안고 돌아오는 길, 꽉 막힌 차 안에 갇혀있던 시간은 황홀한 감옥이었지요.
고운임 오래오래 있으라고 이슬비가 온다지요. 지게 다리 썩는다, 그만 들에 나가라고 가랑비가 내린다지요. 올봄엔 비가 참 귀하십니다. 봄비를 말하려니 지난 겨울 생각이 앞섭니다. 하 수상한 세월에 한 부조하시려 그랬을까요? 참 따뜻했지요. 겨울 다 지나서야 눈다운 눈을 구경할 수 있었지요. 겨울이 푹하면 김장김치가 시어 터져 낭패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먼 옛날이야기지요. 넘치면 빼고 모자라면 채워 주는 게 우주 만물의 이치라지요.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일까요? 지난겨울 눈 구경 힘들었건만 올봄에 비가 귀하십니다. 비는 생명이지요. 간밤 발자국도 없이 날비 다녀간 들판에 농부의 일손이 바쁩니다. 모종을 내고 씨앗을 묻어 결실을 예비합니다. 가만 이름을 외워 봅니다. 보슬비, 부슬비, 안개비, 가루비, 구슬비, 모종비, 꽃비, 는개, 실비. 김치전엔 막걸리라던가요? 차마 처마 끝 낙수 자리 같은 눈물 자국 생기지 않게, 봄비 따라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오는지 기다려집니다.
코끝에 스치는 바람이 아직 차가웠습니다. 겨우내 꼼짝 않고 박혀있던 막내 고모는 봄볕에 끌려 나왔을까요? 툇마루에 앉아 먼산바라기를 했지요. 습관처럼 한숨이 깊었지요. 안고 있던 고양이를 자꾸만 쓰다듬는 손이 옥양목처럼 희었지요. 나를 업어 키웠다는 막내 고모, 오 학년짜리가 알 수 없는 속병이 든 게 분명했습니다. 문틈으로 가만 내다보시던 할머니가 주먹으로 당신 가슴을 치곤 했었던 성싶고요. 생울타리 명자꽃이 유난히 붉던 봄이었지요. 고모는 세상에 없는 노래를 속으로만 불렀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는 툇마루 기대앉은 고모가 참 불쌍했습니다. 사나흘 봄비, 처마 끝 낙숫물에 마당이 패었지요. 고모 앞쪽이 왜 더 깊게 패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문득 돌아다 본 막내 고모가 폐병 든 여자처럼 고왔습니다. 이듬해, 툇마루를 내려와 고모는 꽃가마를 탔지요. 대문 앞에 엎어둔 바가지를 밟고 서럽게 떠나갔지요. 동백꽃 뚝 뚝 모가지 떨구던 날, 정읍 산외면 김명관 고택 툇마루에 한나절 앉아있었습니다.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 건넜겠지요. 꽝꽝 얼어붙은 겨울에나 왕래했겠지요. 큰비라도 내려 냇물이 불면 발을 동동 굴렀겠지요. 종아리에 알통 벤 장정들이 영차영차, 멀리서 커다란 돌을 옮겨와 다리를 만들었지요. 이편과 저편이, 그대와 내가 이어져 언제라도 건너오고 건너갈 수 있게 되었지요. 사람의 길 트려고 물길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 냇물을 아예 끊지는 않았지요. 아이들 걸음 간격으로 돌을 놓았지요. 섶다리처럼 틈새 없이 이어붙이면, 저쪽과 이쪽이 없고 나는 또 그대가 너무 환해 밤새 도란거릴 이야기가 없을 테니, 말없음표처럼만 늘어놓았지요. 어디 사람만 건넜을까요, 달을 초롱 삼아 별들도 오갔을 겁니다. 늦도록 마실 다녔을 겁니다. 동양화는 먹이 모자라서, 그만 붓이 다 닿아버려서 여백(餘白)을 남겨둔 게 아니지요. 징검돌도 이어놓되 떼어놓은, 딱 그만큼의 틈을 둔 것이지요. 벌써 춘분이 지났네요. 냇가 갯버들에 연초록이 자꾸 번져갑니다. 우리들의 봄도 콩 콩 징검다리를 건너왔습니다.
아침노을을 보면 문밖을 나서지 말라 했지요. 그러나 사람의 하루가 그리 한가하던가요? 하루쯤 문밖출입 안 해도 되던가요? 잘 다녀오겠노라, 어제와 같은 인사를 뒤로 길 나섭니다. 옛말 그르지 않은 법, 아침나절 내내 마파람이 붑니다. 비라도 묻어오면 어쩌나, 어찌어찌 피합니다. 바람에 묻어온 모래알이 자꾸 씹힙니다. 바람 앞에 생각이 다 다른 듯합니다. 엎드려 피하든, 맞서서 맞든, 각자도생이 답인가 봅니다. 그래요, 언제부턴가 아메리카노지요. 자꾸만 쓰디쓴 커피를 마셔 대니 사람도, 생각도 미국식이 되어갑니다. 오후 나절이 길고 멉니다. 퇴근길 한잔은 이미 옛일이 되었고요. 어스름 녘, 집으로 돌아가던 걸음 세웁니다. 무언가 뭉클 치고 올라옵니다. 저녁노을을 보면 천 리라도 가라 했지요. 그래요, 노을이 저리 붉으니 내일은 더 멀어도 좋겠습니다. 애쓰셨네! 하늘도 빨간 펜으로 느낌표를 써줍니다. 올감자를 캐어 지고 오는 사람은/ 서쪽 하늘을 자주 보면서 바쁜 걸음을 친다(한용운 <산촌의 여름 저녁>) 했지요.
경칩(驚蟄)이 지났습니다. 삼천, 징검돌을 빠져나가는 물소리가 사뭇 소란합니다. 냇가 왕버들에도 슬며시 연초록이 묻어있고요. 멀리 흐릿하던 모악산이 손에 잡힐 듯합니다. 아버지 옛 말씀처럼 담배 한 대 참이면 가닿을 성싶네요. 중인리 논둑길을 걷습니다. 나물 캐는 이들이 여럿입니다. 저녁 식탁엔 상큼한 봄 내음 넘치겠지요. 미나리꽝 못미처 개울을 건넙니다. 밥풀떼기만 한 봄까치꽃이 한창이네요. 짝짓는 개구리도 보이고요. 두어 배미 건너 보리밭도 푸름입니다. 종다리는 아직이지만, 작년 보리피리 소리 귓전을 맴돕니다. 봄 춘(春) 자는 풀 초(艸) 밑에 싹 나올 둔(芚)을 놓고 해 일(日)을 받친 글자입니다. 봄이 오니 햇볕이 따뜻해져 초목에 싹이 움트는 것이지요. 꽃을 피우고 알을 품는 것이지요. 조붓한 논둑길을 봄 봄 갑니다. 움트는 버들 사이로 징검다리를 건넙니다. 두꺼운 외투는 못 벗었지만 걸음 한결 가볍습니다. 봄은 볼 게 많아서 봄/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봄(박노해, <내 인생의 모든 계절>) 이라지요.
마을회관 마당에 개장수 트럭이 왔을 때, 삼 년도 넘은 한식구를 내다 팔 때, 눈치를 챘나 그 영리한 놈이 죽어도 저울에 올라서지 않으려 뻐댈 때, 앉은뱅이저울에 안고 앉을 때, 안심한 누렁이를 밀어내고 가만 주인 혼자 앉을 때, 어떤 시인처럼 그렇게 근수를 달 때, 대문간에 마중 나와 꼬리치던 놈을 팔아먹는 마음 저울추보다 더 무거울 때, 고개를 갸웃 암만 확인해봐도 저울눈 틀림없을 때, 하여 누렁이가 어림보다 댓 근은 더 가벼울 때, 달아볼수록 개장수만 이득일 때, 트럭에 실린 놈이 먼산바라기를 할 때, 개와 눈 못 맞추는 주인의 마음 그렁할 때, 어둑어둑 골목에 들어서는 구두 소리가 어제와 다를 때, 주머니 깊숙이 두 손을 찌른 가장의 발걸음이 질질 끌릴 때, 마시다 버린 음료수 깡통을 걷어찬 듯 그 소리 단조일 때, 목이 쉰 듯 초인종이 갈라져 울릴 때, 식구들 마음 철렁할 때, 중2 딸내미가 군소리 없이 제 방으로 들어갈 때, 텔레비전이 뚝 일일연속극을 꺼버릴 때, 안갯속을 서성인 듯 받아드는 외투가 한없이 축축할 때,
군고구마 리어카네요. 배수진을 친 듯 건물 앞입니다. 유리 벽에 세상이 환하게 비칩니다. 사라져가는 풍경이지요. 행여 식을세라 가슴에 품고 종종걸음치던 발걸음도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자귀로 장작개비를 쪼개 드럼통에 넣던 아저씨의 볼이 먼저 발갛게 익었지요. 노란 고구마 속살이 백열전등처럼 환했었지요. 세상 입맛이 변한 걸까요? 사 가는 이 드뭅니다. 아저씨가 마스크를 하고 있네요. 다행히 상심한 낯빛 들킬 염려 없겠습니다. 건물을 뒤로하고 전을 벌였으니 더는 물러설 곳도 없겠습니다.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풍경이 참 많습니다. 찹쌀떡 메밀묵 사려! 외침, 새벽 두부 장수 종소리 잃어버렸습니다. 튀밥 기계도 재래시장 상가 안에 들어앉았습니다. 포장마차, 신문 가판대, 엿장수, 붕어빵 리어카, 구두 수선방, 사라져가는 이름들입니다. 입춘 지난 지 한참이니 봄인가요? 중앙성당 담벼락 밑, 봄나물 좌판에 낡은 손길이 가지런합니다. 언젠가 나물 다듬는 어머니를 거든답시고 다 뭉개버리던 형편없는 내 손, 가만 들여다봅니다.
신어보고 또 신어보고, 머리맡에 두고 잠자리에 들었지요. 살며시 일어나 새 신발을 신고 이불 속에 들었지요. 놀림이 다 커서까지 따라다녔네요. 명절 때나 사주시던 신발, 그땐 너나없이 검정 고무신이었지요. 어른들도 장에 갈 때나 흰 고무신이었고요. 짚수세미로 말갛게 씻어 툇마루에 기대 놓던 할머니 아버지의 흰 고무신이 눈에 선합니다. 부잣집 사람들이나 두어 켤레 번갈아 신던 신발이 신발장에 그득합니다. 기차표나 만월표였는데, 나이키 르까프 아디다스 반스 케이스위스. 상표도 참 어렵습니다. 꼬마가 길을 갑니다. 세 살쯤, 엄마 손을 놓고 앞장섭니다. 리본 달린 꽃신이네요. 우수 앞에 새봄맞이로 장만해 준 듯합니다. 저 아이도 새 신발을 신고 잠들었을까요? 그 옛날 나처럼 쓰다듬고 신어보느라 쉬이 잠 못 들었을지 모릅니다. 길 턱도 가뿐히 올라서는 걸 보니 발에 꼭 맞는 성싶습니다. 뒤꿈치 물리지 말고 넘어지지 말고 고슬고슬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심! 젊은 엄마도 가뿐합니다. 내 부모님도 그러셨겠지요.
구불구불 걸어갔습니다. 물을 만나 돌고 산자락을 끼고 한 번 더 돌았습니다. 물을 가르지 않았고 산을 뚫지 않았습니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고 어느 시인이 말했지요. 그래요, 애초에 길이 있어 걸어간 게 아니라 걸어가 길이 생긴 겁니다. 미끄러지고 고꾸라지고 잘못 든 사람들 애가 탔겠지요. 저 구불길, 때론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일 수도 있는 법이지요. 더 넓고 더 밝은 세상으로 가고 싶었을 사람들의 길입니다. 저 길을 걸어간 사람들, 더 큰 세상에 나가서 수많은 길을 만났겠지요. 놓칠 염려 없는 구불구불 외길이 생각나기도 했겠지요. 길을 잃거든 한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어머니의 당부가 그립기도 했겠지요. 묵은해가 가고 또 새해가 왔습니다. 돌고 돌아 걸어온 게 아니라 질러왔습니다. 진달래 꽃구경도 하고, 강물에 부르튼 발목도 담그고, 불타는 단풍도 끄고, 눈길에 미끄럼도 타며 오지 않고 저 먼저 당도했습니다. 세월은 더디게 가라면서 길을 재촉한 내 탓입니다. 길은 할인도 없고 덤도 없다고 카프카가 말했지요. 인생도 그렇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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