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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소 이웃들아 산수구경 가자꾸나 답청일랑 오늘하고 욕기란 내일하세(정극인 <상춘곡> 중). 온 세상이 푸릇푸릇 돋았습니다. 살랑대는 봄바람 더불어 들풀을 밟아보고 싶은 날입니다. 삼짇날 옛사람들 답청(踏靑)을 했다지요. 앞 개울 실버들 하늘하늘 연두 생각에 저 먼저 나간 걸까요? 두 눈이 없네요. 훅 들이치는 꽃내음에 코 문드러지고, 겨우내 우물거리던 이름 하나 불쑥 튀어나올 것 같아 차마 입은 두고 왔네요. 연분홍 블라우스에 초록 머플러 두르고 사푼사푼 어디로 나들이해야 할 것만 같은 봄날, 큰맘 먹고 봄옷 한 벌 장만하러 왔던 그녀 주저앉았네요. 나들이도 가기 전 그만 제풀에 취했습니다. 마네킹처럼 주저앉지는 말고 spring인 양 통통 튀어 올라야겠습니다. 눈 한 번 감았다가 뜨면 흔적도 없을 봄, 가버린 청춘처럼 떠나간 자리 안타까움만 가득할 봄, 샘물처럼 퐁퐁 솟아야겠습니다. 반벙어리 말 더듬듯 말고 나들일랑 오늘 해야겠습니다.
볕 좋고 바람 좋은 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징검돌 놓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어선 집들, 집과 집 사이로 사람이 물처럼 흘렀습니다. 도랑물 흘러가듯 굽이굽이 골목은 모퉁이를 돌며 이어졌습니다. 골목은 주머니. 우리들은 왼쪽 모퉁이에 말뚝박기, 오른쪽 모퉁이에 고무줄놀이, 갈림길에 숨바꼭질을 넣어두었습니다. 막 거웃이 돋을 무렵이었을 겁니다. 뻐꾹 뻐꾹 시도 때도 없이 뻐꾸기를 날리던 형들이 구로동으로 날아가자, 온 동네 누님들도 따라 문래동으로 올라갔습니다. 담장 너머 빨랫줄에 팔랑거리던 정님이의 다후다 검정 치마도, 내 코피를 터뜨리던 수수꽃다리 분내도 골목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흘러가 버렸습니다. 골목 앞 우물가에서 빨래하던 젊은 어머니가 탈탈 주머니를 까뒤집었기 때문일까요? 한두 알 구슬도 서너 장 딱지도 이젠 없습니다. 약속 없이도 언제나 왁자하던 골목에 돌담 그림자 홀로 서성입니다. 돌담을 기어오른 담쟁이덩굴이 친친 한 세월 봉해 버렸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펑펑, 봄꽃이 핍니다. 계절 봄은 동사 보다(見)의 명사형이라지요. 팡팡, 보란 듯이 피어나는 꽃들. 매화 뒤에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 벚꽃이 차례를 기다립니다. 앞뒤 없이 하 수상한 세월에도 꽃 피는 순서 변하지 않습니다. 먼저 핀 꽃 먼저 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지요. 하여 자식을 앞세운 부모는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것이겠지요. 봄이 와도 꽃을 못 보는 것이겠지요. 봄기운에 뜨락의 매화가 가장 먼저 피어나고/뒤이어 앵두 살구 복사 오얏꽃이 차례로 핀다, 백낙천이 <춘풍>에서 읊었듯이 순서대로 피었다 지는 것이 만물의 이치거늘. 사나흘 뒤면 4월입니다. 유난히 아픈 달 4월. 채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꽃송이를 가슴에 묻은 부모들의 통곡이, 올해도 그 바다를 울리겠지요. 개나리가 피었으니 이제 진달래, 벚꽃 차례입니다. 꽃 사태 속 우리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춘서의 으뜸이 매화라지만, 세상 제일의 꽃은 웃음꽃입니다. 아니 사람 꽃입니다.
온통 시계네요. 벽에 걸린 시계들이 넉 잠잔 누에 뽕잎 갉는 소리로 시간을 먹어 치우네요.소싯적, 시계방 주인은 엄청난 시간 부자인 줄 알았습니다. 진열대며 벽면에 시계가 넘쳐났으니까요. 시계마다 열두 시간씩, 도대체 그 시간이 얼마였을까요. 눈가는 데마다 넘쳐납니다. 아 그런데, 처처에 시계가 넘치니 정작 시간이 없네요. 째깍째깍 시계가 시간을 죄다 갉아먹어서일까요? 나는 바쁘고 바빠서 도대체 짬이라곤 없습니다. 시계만 들여다보느라 시간이 없습니다. 세상의 시계란 시계를 모조리 창고 속에 처넣고 싶습니다. 흔적없이 사라진 시간을 되찾고 싶습니다. 아무리 해찰을 해도 한 발이나 남아있던 해걸음의 시절로 돌아가겠습니다. 제 몸의 실을 뽑아 고치를 짓는 익은 누에처럼, 시간의 고치를 짓겠습니다. 시계 부자 황금당 주인, 고장 난 시계를 고치느라 눈길 한번 주지 않네요. 우리는 다 늦은 시간에야 압니다. 시계 속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새봄, 걸음마를 뗍니다. 옆 차들이 쌩쌩 날아갑니다. 햇병아리인 나 엉금거릴밖에요. 뒤차가 번개 불을 번쩍, 간이 콩알만 해집니다. 교차로 신호등이 하늘에 뜬 솔개처럼 노려보네요. 퀵, 튀어나오는 오토바이가 족제비처럼 금방이라도 덮칠 것만 같네요. 눈앞이 깜깜, 학교 가는 길도 잊어먹었습니다.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가 자꾸 헷갈리네요. 어쩌자고 끌고 나왔는지 후회막급입니다. 저린 오금에 옴짝달싹 못 하겠습니다. 교문 안으로 겁먹은 등을 가만 떠밉니다. 두어 걸음 떼다 말고 병아리가 자꾸 뒤를 돌아봅니다. 훌쩍 큰 줄 알았더니 또래보다 한결 작은 아이, 걱정이 태산입니다. 엄마처럼 아직 왕초보입니다. 하지만 첫걸음 없는 천 리 길이 있다던가요? 두렵고 낯설어 잔뜩 겁먹은 길, 금세 익숙해질 테지요. 오래지 않아 녀석도 빵빵대며 친구들이랑 곧잘 어울릴 겁니다. 길 가다 넘어진 친구 일으켜도 줄 겁니다. 세상의 초보들을 환영하는 양, 삼일절에 게양해 놓은 가로등의 태극기가 펄럭입니다.
기다리는 것은 더디 옵니다. 더디 온 것은 쉬이 가버립니다. 산 너머 어디쯤 오고 있을 봄도 그렇지요. 더디게 왔다가 한눈 한 번 파는 사이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는 봄, 그 덧없음이 노래가 되고 문학이 됩니다. 오는 듯 가고 마는 속절없음이 우리네 인생과 닮아서일 터입니다. 수목원에 길마가지꽃이 피었습니다. 노란 듯 흰 앙증맞은 꽃, 그 짙은 향이 발길을 가로막네요. 아가씨꽃이라 불리는 산당화도 꽃망울을 맺었고요. 계절에도 속도가 있지요. 제 걸음이 있지요. 제주에 핀 개나리꽃이 바다를 건너와, 목포 전주 대전 천안을 거쳐 서울로 올라갑니다. 하루에 북상하는 22km, 시속 900m가 봄의 속도랍니다. 제 걸음으로 아장아장 오는 봄, 그러니 우리 재촉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아니 기다리다 지쳤을 때 봄은 온다지 않던가요. 길마가지꽃 한 가지 꺾어 당도할 계절의 앞길을 막겠습니다. 진한 향내에 취해, 오거든 가지 마라! 봄.
우체국에 무지개가 떴습니다. 빨주노초파남보, 참 곱네요. 유년의 무지개가 피어오릅니다. 금은보화 그득하다는 그 끝에 가보고 싶었지요. 누구라서 무지개 너머를 꿈꾸지 않았을까요. 나이아가라강을 가로지르는 레인보우 브리지가 있지요. 궁리 끝에 건너편에 연을 날렸답니다. 연줄 끝에 코일을 묶어 당기고, 코일 끝에 철사를 철사 끝에 밧줄을 묶어 당기고 당겨 영원히 닿을 수 없을 성싶던 이쪽과 저쪽에 무지개다리를 띄웠다고 합니다. 빗나간 일기예보처럼, 지금 때아닌 소나기에 흠씬 젖고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영원히 퍼부을 기세지만, 소나기는 그치려고 내립니다. 다 쏟아부어야 맑고 푸른 하늘이 드러납니다. 그 소나기 지나간 뒤에 무지개는 뜨고요. 손편지 한 장 쓰고 싶은 오후네요. 한 통의 편지가 누군가에게는 연줄이 되고 철삿줄이 되고 밧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사코 싫다던 보따리 선심 쓰듯 챙겨 싣고, 우르르 자식들 떠나가버린 지 열흘 남짓. 다시 적막 절간이네요. 잠잠하던 무르팍이 또 삐거덕거리더라고요. 녹슨 관절에 기름칠이나 해 볼 요량으로 유모차 앞세우고 모래네 시장에 나왔네요. 온종일 한데 나앉았으니 으스스 떨리겠지요. 채소 장수의 외투가 무거워 보입니다.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 버섯, 오이, 모두 싱싱하네요. 자, 자 밥이 보약입니다! 외장이라도 치는 듯이 약국 앞에 전을 폈네요. 그래요, 명절 때 잠시 다녀가는 자식들은 고향 집 늙은 어미의 밥이 약일 테고, 남은 설음식 치우느라 속이 느끼한 나는 나물에 채소가 약이겠지요. 내일이 벌써, 세상을 녹여 줄 보약 같은 비가 오신다는 우수이자 정월 대보름이네요. 기러기도 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할 테지요.
세월에 쫓기고 세상에 밀리느라 현대인들은 눈코 뜰 새 없습니다. 가고 오는 계절과 변해가는 세상에 눈길 한 번 주기 쉽지 않습니다. 가끔은 하늘을 올려보고,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들과 제 몫의 세상을 밀고 끌고 가는 사람들과 이 땅에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보고, 느끼고, 생각할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풍경에 시인의 마음을 짧게 덧붙입니다. 한 컷의 사진과 몇 줄의 글이 세상과 사람을 이어주는 징검돌이 되고, 우리들의 마음속 정을 불러내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수선 작년에 입혔던 다섯 살배기 봄옷이 깡총합니다. 아이 아빠의 츄리닝 무르팍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길 건너 수선집에 갑니다. 늘이고 누벼서 한 해 더 입힐 모양이네요. 입춘 지나고 이제 며칠 있으면 우수, 다행히 올겨울은 작년처럼 춥지 않습니다. 하늘이 살펴주신 게 틀림없지요. 참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왜 늘 행복은 형편없고 행운은 토막일까요? 모두 어려운 시절입니다. 우리네 닳고 해진 행복도, 깡총한 행운도 수선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 엄마는 횡단보도 옆 포장마차에서 뜨끈뜨끈한 붕어빵 한 봉지 살 것입니다. 종종걸음을 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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