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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 모두 봉사가 좋다는 건 알지만, 꾸준히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여든을 앞두고도 지금도 작은 실천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전주에서 나고 자란 이영자 할머니다. 매일 복지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처럼 작은 실천이 모이면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한 사람의 하루를 따뜻하게 만든다. 그는 무려 수십 년 동안 삶의 중심에 나눔과 헌신을 두고,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살아왔다. 몇 달 동안 이어가기도 어려운 봉사를 매일같이 한다는 건 삶의 중심에 돈보다 마음, 명예보다 행복이 있었다는 말이다. 전북일보 연중 기획 '팔팔 청춘의 인생 이야기' 여덟 번째 주인공인 이영자 할머니를 만나봤다. △'봉사 중독' 이영자 할머니 “시간만 있으면 항상 나와요.” 놀랍게도 일평생 봉사활동을 이어온 이영자(79) 할머니의 말이다. 여든을 앞둔 나이지만, 매일 노인복지관에 나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 할머니는 지난해 말 전주시자원봉사센터가 선정하는 '전주시 으뜸자원봉사자' 일반인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1365 자원봉사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지역 자원 봉사자 가운데 활동 횟수와 시간을 평가해 분기별로 시상하는 제도다. 그는 노인복지관에서 식당 관리와 배식 봉사를 꾸준히 해 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의 하루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은 단연 봉사다. 주말과 월요일을 제외하고 주 4일은 완산노인복지관에서 보낸다. △오늘도 복지관으로 간다 이 할머니는 직접 요리를 하진 않지만, 매일 오전 10시 30분이면 복지관으로 향한다. 배식을 돕고, 탁자를 닦고, 식당을 청소하는 일이 그의 몫이다. 어르신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람을 느낀다. 그는 "식당에 오면 어르신들이 '어제 왜 안 왔어?', '오늘은 더 곱다!'며 말을 걸어 주신다. 남들이 들으면 별말 아닐 수 있지만, 제겐 큰 위로가 된다"며 "그래서 하루라도 더 빨리 나오고 싶다"고 말했다. 완산노인복지관은 그의 봉사 무대 중 한 곳일 뿐이다. 전에는 서원노인복지관과 양지노인복지관에서도 봉사활동을 해 왔다. 평생 완산동에서 살아온 그는 본인의 동네에서 따뜻한 손길이 전하고 싶어 완산으로 옮겼다. 이 할머니는 "예전에는 버스를 타고 걸어 다니면서까지 서원·양지노인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하고 싶다"면서 "이왕이면 내 동네에서 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완산노인복지관에 식당이 생기기 전부터 봉사하겠다고 이야기했다"고 했다. △어머니 덕분에 시작한 봉사 사실 그의 기나긴 봉사 여정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무용을 전공했던 이 할머니는 초등학생 때부터 보육원과 미군 부대 공연 무대에 서며 자연스럽게 봉사를 접했다. 결혼 후 네 남매를 키우며 잠시 쉬었지만, 이후 새마을부녀회장부터 주민자치부회장, 각종 동호회장 등 지역사회 곳곳에서 책임을 맡으며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횟수로는 어느덧 70년에 가까운 세월이다. 그가 봉사에 빠지게 된 이유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이 할머니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때 우리 집엔 종종 굶주린 사람들이 찾아왔다. 어머니는 그분들이 오지 않아도 바가지에 밥을 퍼서 마루에 놓으시곤 했다. 그런 걸 보면서 자라서인지 자연스럽게 봉사가 몸에 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나에게 봉사는 행복이다 그에게 봉사는 단순히 남을 돕는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활력을 주는 삶의 원천이다. 주 4일 꾸준히 봉사하다 보니 주변에서는 일자리로 전환하라는 제안을 받기도 하지만, 늘 고개를 저었다. 이 할머니는 "가끔 일자리로 연결해 보라는 말을 듣는다. 근데 저는 돈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다. 봉사는 제 마음이 시키는 일이다"고 단호히 밝혔다. 그러면서 "나이가 많아도 누군가에게 손길을 내밀 수 있다는 게 행복"이라며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봉사하고 싶다. 내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가고 싶다. 이거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미소 지었다. △청춘들아, 이렇게 살아라! '봉사활동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겠느냐'고 묻는 말에는 "봉사는 강요할 수 없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할 수 있다. 그래야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팔팔 청춘' 기획의 공통 질문인 청춘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인생 선배로서 따뜻한 충고를 건넸다. 전쟁도 겪고, 남편 내조에 4남매, 손자까지 키우고 봉사하면서 얻은 인생의 지혜다. 이 할머니는 “요즘 청춘들을 보면 욕심이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다.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거 보면 다 욕심 때문에 아닌가 싶다”며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고, 자기 목표를 위해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냥 내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마치 손주가 할아버지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듯했지만, 알고보면 제자와 선생님 사이다. 할아버지인 듯 할아버지 아닌 이 분의 정체는 바로 '전통나눔 할아버지'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오는 12월 12일까지 전국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 총 132개 교실에서 남성 어르신(만 56∼74세)이 참여하는 전통나눔 할아버지 시범사업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올해 처음 진행되는 전통나눔 할아버지는 남성 어르신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산가지, 윷놀이, 승경도 등 전통놀이와 예절 등을 통해 유아·아동의 인성을 교육하고 전통문화를 보급하는 사업이다. 전국에서 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할아버지 44명이 최종 선발됐다. 이중 전북에서는 2명이 포함됐다. 전북일보 연중 기획 '팔팔 청춘의 인생 이야기'의 일곱 번째 주인공인 조명훈·김영원 할아버지를 만나봤다. △'에이스' 조명훈 할아버지 지난 16일 오전 10시 완주군에 있는 간중초등학교에서 만난 조명훈(57) 할아버지는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전에 "전국 전통나눔 할아버지 중 막내다. 아직 60도 안 됐는데, 할아버지라는 말이 조금 어색하다"며 멋쩍어했다. 평생 목회 활동을 해 온 조 할아버지는 도서관도 만들고, 늘봄학교를 운영하는 등 항상 어린 아이들과 함께했다. 그는 나를 드러내는 일보다는 시민단체나 사회에서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조 할아버지가 전통나눔 할아버지를 하게 된 이유다. 그는 "요즘 말하는 인생 이모작에 진입하게 됐다.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사느냐,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계시는 이야기 할머니들께서 너무 좋은 일이라고 해 주셔서 해 보고 싶었다"며 웃어 보였다. 조 할아버지의 진심이 닿았는지 아직 활동을 시작한 지 1개월밖에 안 됐지만, 벌써 에이스로 등극했다. 그는 "익산시에서 운영하는 전통놀이 관련 교육 과정도 들었다. 그러면서 전통 쪽으로 접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예절을 지킬 수 있도록 하고, 재미있게 노는 법을 알려 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조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건 예절과 우애다. 전통놀이는 협동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리고 배려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꿈꾸는 전통나눔 할아버지는 친구 같은 할아버지다. 조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우리와 같이 놀아 주는 할아버지, 우리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할아버지, 삶이 재미있다고 느끼게 해 주는 할아버지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면서 "세상은 나 혼자만 사는 게 아니라 같이 협력해서 살아갈 사람이 있다고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베테랑' 김영원 할아버지 지난 19일 오전 9시 정읍시에 있는 동신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만난 김영원(69) 할아버지는 본인은 '빵원 할아버지'라고 소개했다. 이름이 영원이라서, 0원, 빵원에 빗댄 것이다. 그 소리에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자연스럽게 할아버지를 반겼다. 김 할아버지는 지난 2014년 경찰관으로 정년퇴직한 뒤 수년 전부터 전통놀이 전문 강사로 활동해 왔다. 1년 뒤인 2015년 정읍시 평생학습관에서 처음 접한 전통놀이와 사랑에 빠져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이전에 정읍전통놀이전문연구회장도 했었다. 원래 전통놀이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계속해 보니까 재미있었고, 어릴 때 했던 놀이다 보니 더 즐겁게 느껴졌다. 평소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지 않다 보니 활동적인 걸 할 수 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어릴 적 꿈이 선생님이었던 김 할아버지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서야 꿈을 이루게 됐다. 전통나눔 할아버지를 하기 전부터 계속해서 아이들과 만나면서 전통놀이를 가르치는 베테랑 선생님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있어서 건강도 중요하지만, 창의적인 머리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단순히 놀이만이 아니라 역사·교육적으로 지혜가 발동될 수 있게끔 신체 균형뿐 아니라 좌뇌, 우뇌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놀이를 해 주고 싶다"고 했다. 김 할아버지가 기억되고 싶은 모습은 거창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 때라도 다가올 수 있는 할아버지, 진짜 친할아버지, 어디서 봐도 아는 척할 수 있는 할아버지로 남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면 언제든 행복하다. 아이들에게 뿜어져 나오는 그 에너지, 활력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며 오히려 아이들에게 고마워했다. △"청춘들아, 이렇게 살아라." '팔팔 청춘'의 마지막 질문은 모두 다 같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 인생 이모작을 앞둔 세대에게 하는 인생 조언 한마디다. 두 할아버지의 대답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인생은 준비하는 자에게 더 의미 있고, 마음먹기에 따라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먼저 조 할아버지는 "진짜 젊을 때는 자기의 목표와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거기에 다 만족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인생 후반전에 그동안 못해 본 의미 있는 일, 하고자 하는 일을 준비해서 노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그게 건강한 노후를 보내는 길이다"고 강조했다. 김 할아버지는 "행복은 손바닥 하나 차이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요즘 흔히 '금수저'를 찾던데, 모두 만능으로 갖춰지다 보면 뭔가를 모아보는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손을 쥐면 펼 줄도 알아야 한다"며 "골고루 사랑을 베풀고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그때뿐이지, 다 지나간다"고 조언했다.
'팔팔 청춘의 인생 이야기' 여섯 번째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찾은 전주 인후동 윤대선탁구클럽. 이른 아침 시간이지만 탁구공이 통통 튀는 소리가 가득했다. 분명 80대 어르신과 인터뷰 약속을 잡았지만 코트에는 기마자세로 빠르게 공을 받아 치는 건강한 중장년뿐이었다. 이들은 '성탁클럽'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사람들이다. 성탁클럽은 2015년 5월 전주시 생활체육협의회가 주관하는 생활 체육 탁구프로그램에서 조직된 클럽이다. 당시 회원 6명이 시작해서 지금은 28명까지 늘었다. 클럽의 뜻은 이룰 '성', 탁월하다의 '탁'을 합쳐 성탁이 됐다. 회원 연령대도 5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이중 초고령자인 이승주, 정석규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탁구와 사랑에 빠진 80대 "안녕하세요. 제가 여든네 살 이승주입니다." 사전에 듣고 온 84세 어르신을 찾느라 바쁜 취재진에 먼저 인사를 건넨 이승주(84) 씨다. 인터뷰하자마자 그의 건강 비결은 운동, 그중에서도 탁구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2015년 성탁클럽 1대 회장이었던 이 씨는 벌써 탁구를 한 지도 10년이 지났다.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보고 탁구가 건강에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씨는 "최근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지금 내 나이가 84세인데, 신체 나이가 62세로 나왔다. 젊었을 때 테니스, 배드민턴 등 다양한 운동을 해 왔다. 나이가 드니 탁구가 우리의 몸을 잡아 줄 수 있는 중심 운동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기 시작했다. 건강검진하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매일 오전 9시에 나와서 탁구를 치고, 오후에는 건지산을 산책하며 부지런히 운동한 시간은 건강이라는 선물로 돌아왔다. 정년퇴직 후 80대에 접어들면 쉬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겠지만 마지막 죽는 날까지 운동하는 게 이 씨의 바람이다. 그는 "나에게 탁구는 은인이고 생명줄이다. 옛날 같았으면 지금 내 나이도 죽었을 나이다. 계속 운동하고 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생각이 젊어서 아주 좋다. 나는 탁구가 나를 살렸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 뒤를 잇는 80대 함께 만난 2대 회장 정석규(80) 씨는 탁구를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정 씨는 "내 생활의 반은 탁구다. 오전은 탁구하고 오후는 개인 업무를 보는 게 나의 일과다. (탁구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운동이고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탁구를 하게되서 참 다행이다"며 "몸이 피로하거나 쉬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 운동을 해서 그런지 삶에 생기가 돈다"고 말했다. 그 역시도 탁구 친 지 벌써 10년째, 이제 탁구가 삶이 됐다. 직장 다닐 때 테니스 15년, 퇴직 후 배드민턴, 당구까지 다 해 본 정 씨는 건강상의 문제로 배드민턴은 포기하고 탁구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탁구에 욕심을 보이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정 씨는 "탁구라는 운동이 쉬워 보이지만 기술적으로 계층이 많다. 선수도 있고, 1부, 2부, 3부, 4부, 심지어 8부까지 구분돼 있다. 이게 실력 격차가 있다는 의미다. 실력을 키우는 재미가 있는 운동 같다. 10년 했으면 5, 6부는 돼야 하는데 아직 멀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80이라는 나이에 접어드니까 계속 운동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걱정이다. 아직은 건강에 문제없이 잘하고 있다. 매일 운동을 해서 그런가 몸이 피로하다거나 쉬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든다. 체력이 버텨 주는 한 계속 운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젊었을 적 모습은? 놀랍게도 이 씨와 정 씨는 농협에서 정년 퇴직을 했다. 성탁클럽 회장을 하려면 농협에서 정년 퇴직해야 한다는 농담까지 생겼다. 이 씨는 삼례에서 근무하면서 매일 테니스를, 정 씨는 정읍에서 조기 축구를 뛰었다. 그 많고 많은 운동을 다 해 봤지만 퇴직 이후 탁구와 사랑에 빠지게 된 둘이다. '팔팔 청춘의 인생 이야기'의 필수 질문 중 하나인 꿈이 궁금해졌다. 남들이 보기에는 좋은 직장, 번듯한 직장에서 퇴직한 듯하지만 이야기하다 보니 둘에게도 꿈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축구를 좋아한 이 씨는 축구선수가 꿈이었다. 그는 "그냥 꿈은 공 차는 것이었다. 축구를 너무나도 좋아해서 축구선수를 꿈꿨지만 실현하기는 어려웠다. 지금도 텔레비전을 틀면 축구만 볼 정도다"며 웃어 보였다. 반면 정 씨는 꿈이 없었다고 한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였던 터라 정 씨의 형편에는 꿈도 사치였다. 그는 "학교 다니는 것도 그렇고, 꿈도 그렇고 어떻게 하면 졸업하고 취직할지 고민이 컸다. 상고에 다니면서 금융기관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들어가서 참 다행이다"며 "그때 당시에는 어떻게 가난을 벗어날까, 그게 고민이고 걱정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먹고사는 직장을 가는 게 목표였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청년들아, 너희들만큼은⋯." 이 씨와 정 씨는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당부의 말도 남겼다. 이 씨는 "우리는 그냥 일하면 먹고사는 때였는데, 지금은 먹고사는 것보다도 어떻게 머리를 잘 써서 현세대에 부응하면서 출세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때다"면서 "끈기 있는 생활을 하며 국가 발전을 위해 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건강이 언제나 최우선이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 씨는 "직장 생활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어느 자리, 뭘 맡더라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일하면 다 좋아지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다른 것보다도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성공하는 게 세상의 이치 같다"고 강조했다.
"나와라, 뚝∼딱!" 지난 5일 오후 2시께 찾은 전주시 덕진구 아중리에 위치한 인후유치원. 유치원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헀다. 조심스럽게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옹기종기 매트 위에 앉아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읽어 주는 할머니가 있었다. 마치 어릴 적 할머니가 무릎을 베고 누운 손자에게 "옛날, 옛날에"를 속삭이는 듯했다. 이날 이야기는 <바다를 이용한 이순신>, 아이들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흐트럼 없이 집중한 아이들이었다. 오늘 이야기가 끝났다고 외치자마자 할머니, 아이들, 선생님들까지 함께 율동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잘 들었어요/우리 모두 마음이 따뜻해졌어요/귀는 쫑긋/눈은 반짝/정말 좋아요/하나, 둘, 셋, 넷/다시 만나요/빵빵!" 노래가 끝나자 아이들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할머니에게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주에 만나자면서 할머니와 인사를 나눴다. 이 할머니의 정체는 '이야기 할머니'였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진행하는 '이야기 할머니'는 손주를 무릎에 앉히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한 사업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3000여 명의 이야기 할머니가 활동할 정도로 할머니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오늘의 주인공 이점식(77)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할머니는 10년 활동 후 연장 평가에 합격해 3년을 추가로 활동했다. 벌써 13년차, 올해를 끝으로 은퇴하게 된다. 이 할머니는 일주일에 사흘, 곱게 옷을 차려입고 아이들과 만난다. 13년 동안 반복된 일상이 지루할 만도 하지만 '이야기 할머니'는 이 할머니 삶의 원동력이었다.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아이들과 소통하는 일, 이것보다 행복한 일은 없다고 말할 정도다. 이 할머니는 "13년 동안 행복한 일이 참 많았다. 곱게 화장하고 옷을 차려입고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들이 다 행복했다. 돌이켜보면 매일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을 정도로 행복하고 좋았다"고 말했다. 하루의 시작은 항상 이야기 할머니였다. 이 할머니는 아침 6시에 눈을 뜨면 정신이 깨지도 않은 상태지만 이야기를 외우기 시작한다. 외워야 하는 분량은 책 3쪽, 문장이 비슷비슷하다 보니 이야기를 암기하는 게 어렵지만 외울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 옆에는 항상 빨강과 검정 펜을 둔다. 어려운 문장이 나오면 군데군데 줄을 긋고 필기도 한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이 일상을 반복한다.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많이 외워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 앞에서도 술술 이야기할 수 있다. 후딱 외워지지 않은 때도 많지만 계속 반복하는 게 답인 것 같다. 다 외우면 벽에다가 시연해 보고 아이들 만나러 가는 길에도 외운다. 이걸로 세월을 다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이렇게 열정적이었던 이 할머니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이야기 할머니'를 정리하게 된다. 아직 반 년이 남았지만 걱정이 크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무기력해질 테고 다른 데에서 일하기는 나이가 많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는 "내년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다. 이전에 코로나19 때 잠깐 '이야기 할머니'를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얼마나 삶이 무기력했는지 말도 못 한다. '내가 왜 이러고 살지?'라는 생각까지 했다"면서 "내가 젊은 나이면 다른 일이라도 하겠는데 나이 생각하면 정말 갈 데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 할머니가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13년 동안 일하면서 쉬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항상 행복했던 이유, 바로 살아 있음을 느껴서다. 사실 이 할머니는 평생 남매 키우고 남편 내조하며 살림만 하고 살았다. 그때는 다 그렇게 사나 보다 생각하면서 지냈던 이 할머니에게도 남몰래 품고 있던 꿈이 있었다. 입으로는 '허황된 꿈'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꿈을 하나씩 나열하는 이 할머니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폈다. 들어보니 꿈도 많았다. 결혼하기 전, 결혼한 후, 자식들 다 키운 후. 꿈이 다 달랐다.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지금 태어났다면 이렇게 이름 없는 할머니로는 안 살았을 거라고." 꿈도 많고 열정도 많았던 이 할머니는 취재진에게 수줍게 꿈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승무원, 꽃집 사장, 택시 기사. 공통점 하나 없는 직업들이지만 이 할머니의 눈에는 이 직업들이 멋있게 보였다. 이리 많은 꿈을 안고도 이루지 못한 터라 이 할머니는 지금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다. 그는 '인생 조언'을 물어보는 말에 "젊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가 정말 인생에서 최고로 좋은 때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뭐가 됐든 해 보길 바란다. 가만히 있지 말고 뭐든지 배우고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면서 "열심히 즐기고 일도 하면서 젊음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환갑, 칠순, 팔순, 구순, 백수연⋯. 백세인 축제가 열리는 지역이 있다. 맑은 물이 흐르고 산나물 약초가 풍부해 장수하기에 적합한 청정 자연환경과 건강한 식습관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 지리산권과 섬진강에 인접해 있는 우리나라 대표 장수지역, 바로 구곡순담(구례·곡성·순창·담양)이다. 장수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의미다. 구곡순담은 지난 2003년 2월 지리산장수벨트를, 같은 해 6월 장수벨트행정협의회를 구성해 학술 용역과 세미나 개최, 해외 장수 마을과의 협력 등 어르신의 장수와 건강 증진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4개 지자체가 돌아가면서 매년 '회장군(郡)'을 정하고 100세 잔치를 연다. 올해 회장군은 순창군이다. 순창군은 지난 18일 제14회 구곡순담 100세 잔치를 열었다. 장수인의 위대한 삶을 기리는 창작 마당극과 전통 퍼레이드, 꽃잔디 나들이 등을 진행했다. '구곡순담' 장수벨트 지역의 연대와 건강한 삶의 가치를 조명하는 자리로 꾸며졌다. 100세를 넘어 120세 시대, 장수혁명이 일어나는 지금을 사는 장수인의 장수 비결을 공유하기 위해 현장을 다녀왔다. 공연을 보기 전 김용식(87) 대한노인회 순창군지회장에게 '장수 비결'을 물었다. 김 회장은 "지역의 공기가 좋고, 물이 맑고, 음식 맛이 있으면 된다. 여기에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친구도 있어야 한다. 마음이 편한 게 제일이다"고 답했다. 본격적으로 이날 문화통신사협동조합이 준비한 마당 창작극을 통해 공개된 장수의 비결이 담긴 신비의 서신을 함께 풀어보자.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 더 건강하셔서 장수하실 수 있도록 여정을 떠난 삼남매. 장수 비결이 자연인지, 사람인지 찾으러 여정을 떠난다. 장수 비결, 이곳에 있소이다! △구례 <자연과 삶의 균형>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구례를 3대3미(三大三美)의 고장이라고 표현했다. 세 가지가 크고 세 가지가 아름다운 땅이라는 의미다. 여기서 삼대는 지리산, 섬진강, 들판을, 삼미는 수려한 경관, 넘치는 소출(농산물), 넉넉한 인심을 말한다. 이것이 구례의 장수 비결이다. 구례 현감 김순호의 이름으로 전한 신비의 서신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장수의 비결은 자연과의 조화입니다. 인간이 자연을 거스른다면 그것은 필히 병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자연을 벗 삼아 사는 것이야말로 건강의 근본인 것.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푸른 강산과 사계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하루 한 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구례군은 소박하지만 단단하고 아름다운 성품을 품고 있고 강한 의지와 기상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곡성 <음식과 건강> 곡성은 섬진강과 보성강을 품고 있다. 호남고속도로와 전라선 KTX 등 교통 접근성이 좋아 귀농·귀촌의 최적지로 꼽힌다. 심지어 블루베리부터 배, 사과, 딸기, 수박까지 많은 농산물이 생산된다. 신선한 농산물을 먹고 사니 건강까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것이 곡성의 장수 비결이다. 곡성 현감 조상래의 이름으로 전한 신비의 서신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곡성은 섬진강을 끼고 있는 수려한 자연환경 덕분에 땅이 매우 비옥합니다. 땅속에 황금이라 할 수 있는 토란이 많이 자라 토란의 왕국이라고도 합니다. 장수 마을을 상징하는 군목 느티나무는 건강과 지조, 다재다능함을 뜻하고 우리 군화인 철쭉은 풍요로움과 젊음, 그리고 번영을 상징합니다. 우리 곡성이 가지고 있는 장수의 비결은 바로 사람과 자연의 조화, 그리고 사랑일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사랑 중에서 으뜸일 것입니다." △순창 <내 삶의 터전> 순창은 청정한 자연 환경부터 전통 음식의 본고장, 훈훈한 인심을 자랑한다. 햇볕과 물, 바람 등 완벽 조화를 이뤄 만들어진 장(醬)맛은 말할 것도 없다. 실제 조사·분석 결과 순창군은 옛날부터 농사일을 통해 이웃과 교류를 활발히 해 나이 들어서도 심리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한다고. 이것이 순창의 장수 비결이다. 순창 현감 최영일의 이름으로 전한 신비의 서신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순창의 백일홍은 오랜 시간 자신의 자리에서 의연하게 붉게 피고 느티나무는 가지를 넓게 펼쳐 마을의 안녕과 재앙을 막아 주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참된 조화로움 안에 살아갑니다. 이렇게 한날 한 곳에 모여 같은 추억을 함께 쌓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조화가 아니겠습니까. 시대와 시절, 세월과 시간 속에 우리 모두가 서로를 위해 서로가 조화롭게 어울린다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장수의 삶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담양 <인문학적 삶과 여유> 담양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환경친화적인 지역이다. 일찍 교육 활동이 전개돼 품격 높은 문화와 풍부한 인문자원까지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예나 지금이나 다음 세대에게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담양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 등 지속 가능한 담양을 물려 주려고 노력한다고. 이것이 담양의 장수 비결이다. 담양 현감 정철원의 이름으로 전한 신비의 서신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담양은 못 담에, 별 양의 이름을 쓰는 고장입니다. 이름에서부터 보여 주듯이 깨끗한 물과 햇볕이 넉넉해 축복을 받은 땅입니다. 축복받은 이 땅에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군민은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누리면서 품격 높은 문화를 창조하며 살아왔습니다. 오랜 시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삶의 터전 속에서 우리는 장수를 누려왔고 이러한 건강한 삶은 담양의 미래로 이어질 것입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라떼는 말이야!" 수년 전 기성세대가 자주 쓰는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하는 신조어(?)가 생겼다. 바로 "라떼는 말이야"다. 같은 말을 들어도 누군가는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누군가는 '인생 선배'라고 칭한다. 결국 듣기 나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인생 선배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후배한테 하는 조언도 '라떼'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진짜 인생 조언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에 <팔팔 청춘의 인생 이야기>라는 기획을 구상하게 됐다. 많은 어르신 중 건강한 노후를 보내는 사람을 만나 '인생 조언'을 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면 독자는 인생 선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같은 연령대의 어르신들은 어떤 노후를 보낼지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섭외한 주인공은 평균 나이 70대 어르신들의 이야기다. 퇴직 후 노후 생활을 고민하던 어르신들은 손에 동심을 쥐었다. 대체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할 수 있어요. 나이 들어도 다 할 수 있어요." 지난주 대한노인회 전북연합회에서 만난 전북상록풍선아트봉사단과 1시간 넘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40년간 근무하다 퇴직한 기노신(78) 단장은 물론 초고령자 이창운(85) 회장도 황혼의 나이지만 정말로 이들 앞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듯했다. 취재진 앞에 나타난 기 단장, 이 회장의 손에는 알록달록 풍선으로 만든 꽃다발과 꽃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이것이 만남의 계기였다. 평균 연령 70대 초반에 달하는 봉사단은 퇴직 후 취미로 배운 풍선 아트로 건강한 노후 생활을 보내고 있다. 단순히 '나'만 좋은 일이 아닌 나도 좋고, 남에게는 더 좋은 일을 하는 중이다. "나이를 솔찬히 먹었는데 아직은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녀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고민했어요. 노후 생활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도 많았지만 모두가 행복한 일을 해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해 보니까 나도 즐겁더라고." 13년째 활동 중인 기 단장은 평생 '학교-집'만 다닌 탓에 퇴직 후 골머리를 앓았다. 마음 편히 놀아도 되지만 놀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는 게 전부였다. '어떻게 놀지?' 고민하던 찰나에 아내와 함께 전국 일주를 계획하게 됐다. 그것도 잠시, 다른 재미를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2013년 공무원연금공단 전북지부에서 '풍선 아트' 연수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봉사단의 시작이었다. 함께 퇴직자 대상 프로그램에 참여한 7명이 봉사단을 꾸렸다. 누가 알아 주거나 안 알아 주거나 낯내기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봉사활동을 하자는 게 봉사단의 목표였다. 7명에서 출발한 봉사단은 24일 기준 20명으로 늘어났다. 10년 새 13명이 증가한 셈이다. 단순히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두가 행복한, 그런 일을 찾아 지금은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봉사단은 '풍선 아트'가 중심이지만 이외에도 노래 부르기, 치매 체조,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기, 마술 등 다양한 활동도 함께한다. 봉사단의 평균 연령대가 높은 편이지만 매번 봉사단에 도움이 될 만한 연수라면 모든 강의를 듣고 자격증도 취득하면서 전문성을 키워 간다. 봉사단 자체 연수를 통해 단원 역량 강화도 빼놓지 않고 있다. 이들은 빡빡한 스케줄에 지칠 만도 하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힘든지 모른다고 한다. 특히 요양병원·주간보호센터에 가면 더 보람을 느낀다. 이 회장은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하다. 나랑 같이 늙어가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더 마음에 와닿는다. 저 사람은 날 보고 즐겁고, 나도 저 사람한테 즐거움을 줘서 기쁘다. 하고 나면 다음 봉사활동이 기다려질 정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상 즐거운 건 아니다. 옛날에 간 요양병원에 다시 가 보면 그때 봤을 때 계셨던 분을 보면 반갑다. 그런데 안 계신 분들이 더 많다. 그런 게 가슴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내 앞날 같기도 하고 같이 나이 들어가기 때문에 마음이 쓰이지만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기 단장도 "처음 봉사단 꾸리고 봉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가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데 구석에 있는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우리가 아니라 창밖을 보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눈물을 뚝뚝 흘렸다"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이어 "그 광경을 보고 더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잠깐이라도 어떻게 하면 걱정을 다 내려놓고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내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런 것이 쌓이고 쌓여 봉사단의 원동력이 됐다. 남들은 '풍선, 그까짓게 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풍선 아트가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됐다는 의미다. 봉사단은 앞으로 더 큰 미래를 그리고 있다. 지역 축제·행사에 참여해 부스를 운영하고 행사장 무대 장식을 무료로 실시하는 등 이동 봉사활동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적극적인 SNS(사회관계망서비스) 활동도 강화해 봉사단의 홍보 활동에도 힘쓰면서 노인 봉사자 발굴과 역량 강화에도 지속적으로 노력할 방침이다.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노인상을 구현하는 것이 이들의 최종 목표다. 이 회장은 "우리가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건강 관리를 해서다. 살아 보니까 그렇다. 40대부터는 다 끊고 건강 관리를 해야 한다. 나는 지금도 테니스도 하고 탁구도 하고 배구도 하고 다 한다. 노후에도 할 수 있는 운동이 중요하다. 체력을 길러야 뭐든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조언했다. 또 기 단장은 "무슨 일을 할 때는 꼭 필요한 것들이 있다. 첫째는 관심, 둘째는 노력, 셋째는 소질이다. 관심·노력 두 개만 잘하면 최상은 못 돼도 상은 될 수 있다. 관심 가져서 열심히 노력하면 거의 다 이룰 수 있다. 소질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격려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수년 전 기성세대가 자주 쓰는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하는 신조어(?)가 생겼다. 바로 "라떼는 말이야"다. 같은 말을 들어도 누군가는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누군가는 '인생 선배'라고 칭한다. 결국 듣기 나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인생 선배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후배한테 하는 조언도 '라떼'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진짜 인생 조언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에 <팔팔 청춘의 인생 이야기>라는 기획을 구상하게 됐다. 과연 인생 선배인 기성세대는 어떤 삶을 꿈꿔 오면서 살았을까. 그 안에서 '희로애락'을 겪으며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후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무엇일까. '평균 나이 81세'지만 영화 촬영하고 사진집 낸 화정마을 멋쟁이 할머니 이야기에 이어 구순을 앞둔 조옥선 할머니를 만나봤다. 구순을 앞두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고등학교까지 바라보는 조 할머니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새장은 참 예뿌다/새장 속에 새가 있어야 참 예뿐대/새가 없음니다 날아다니는 새야/예뿐 새장이 있으니 날아다니다 힘들면/언제든지 차자와 쉬었다 가렴"(조옥선作 '새장' 전문) 글씨가 삐뚤빼뚤하고 한글 맞춤법에 맞지 않아 더 울림 있는 이 시는 조옥선(86) 할머니의 작품이다. 조 할머니의 창작 실력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다. '문해교육' 초등 과정 재학 기간 6년 중 3년 동안 익산시가 주최한 성인문해학습자 문해 백일장 대회에서 익산시장·한국문해교육협회 익산지부장상을 받기도 했다. 조 할머니는 지난주 익산행복학교 황등 2반에서 초등 과정을 마친 '늦깎이 학생'이다. 여기서 말하는 익산행복학교는 2024학년도 기준 문해교육 프로그램 학력인정 기관으로 지정된 도내 6개 지역 10개 기관 중 한 곳이다. 조 할머니는 매주 3회 연간 240시간에 달하는 수업을 받으며 꼬박 6년을 공부했다. 학업 성적이 우수한 데다 품행이 단정해 6년간 반장은 물론 익산행복학교 졸업식 당시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전하기도 했다. "제 나이 팔십에 머리는 희고,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세상살이 외롭고 힘들 때 학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6년을 배워 마침내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익산행복학교 이름처럼 학교에 오면 행복해지고 젊어집니다. 봄에는 봄 소풍, 가을에는 체육대회, 저에게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공부했던 반 친구들도 떠오릅니다."(졸업식 답사 중 일부) 조 할머니는 10여 년 전 남편을 떠나보내고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한창 힘들 때 지인을 통해 익산행복학교를 알게 됐다. 공부를 가르쳐 준다며 같이 가보자는 지인의 말에 못 이기는 척 따라갔는데 졸업까지 하게 됐다. 항상 배움에 대한 갈증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6·25가 발발하면서 저학년 때부터 일찍이 엄마 따라 돈을 벌러 다닌 조 할머니는 평생 공부를 못 했다는 것에 대한 한이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더 열심히, 진심으로 학교에 다녔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고 배운 것은 꼭 집에 가서 몇 번이고 복습하는 게 조 할머니의 일상이었다. 그날 배운 거라도 문 앞만 나오면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탓에 남보다 한 번 더 보고 복습했다. 이제 시 쓰기는 기본 전자 제품에 써 있는 영어 또한 술술 읽을 줄도 알게 됐다. 실제로 조 할머니에게 특별한 일이 있었다. 인터폰이 고장 나서 고객센터에 전화하니 상담원이 영어로 적힌 모델 넘버를 불러 달라고 했다.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읽을 수 없었을 테지만 조금은 느려도 한 글자 한 글자 정확히 불러 준 탓에 인터폰 고장도 뚝딱 해결했다. 조 할머니는 "이 나이에 공부 안 했으면 어떻게 내가 영어를 읽고 이름을 쓰겄어. 선생님 덕분에 다 가능했지. 전에 큰 영어 말고 작은 영어(소문자)는 못 배우겄다고 했다니께? 근데 해 보니께 괜찮더라고"라고 말했다. 이렇게 평생 조 할머니의 등에 있던 짐 보따리 같았던 '배움'에 대한 한이 해결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행복해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입학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중등 과정 입학을 기다리는 학생이 됐다. 그의 도전은 끝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조 할머니는 배움에 때는 있지만 나이가 없다고 말한다. 보통 늦깎이 학생이라면 배움에는 때가 없다고 말하지만 조 할머니는 조금 다르다. 조 할머니는 "배움에는 때가 있지만 해 보고 나니까 나이는 없는 것 같어. 제때 배우는 게 중요하지. 나이 들면 아무리 가르쳐 줘도 몰라. 그래도 하니까 돼!"라며 웃어 보였다. 나이에 맞는 교육이 중요하긴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못 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할머니에게는 꿈이 있었다. 때에 맞게 교육을 받았더라면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 그 꿈, 바로 선생님이다. 초등학교도 몇 년 다니지 못했지만 선생님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던 것이다. 여느 어린 아이처럼 꿈도 있었지만 할머니가 어릴 적 꿈을 꾸는 일은 사치이고 욕심이었다. 조 할머니는 "선생님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러. 못 배웠는데 꿈꿔서 뭐 하겄어요. 그냥 꿈으로 가지고 있는 거지, 배웠다면 할 수 있었을 텐디. 꿈도 다 욕심이지, 뭐"라고 했다. 할머니는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중학교를 넘어 고등학교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한 번 도전해 보니 나 자신이 너무 뿌듯하고 할 만하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도전하기로 한 조 할머니다. 그는 "중학교 가면 초등학교 때보다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잖어. 그래서 가고 싶어. 우리 같은 할머니들은 고등학교는 함열여고로 갈 수 있어. 내가 그때까지 살겄어? 건강이 허락한다면 하고 싶지. 건강만 된다면 무조건 갈 거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가 살던 때는 이렇게 멍청하게 살았지.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세상이 밝고 좋지 않어? 못 배워도 노력만 하면 살 수 있어!"라며 "내가 공부도 하고, 도전도 해 보니께 알겄더라고. 자식들이 엄마를 자랑스러워 혀. 더 배우라고 하지. 그리고 해 보니께 그냥 나 자신이 너무 뿌듯혀. 자랑스러워"라며 지금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라떼는 말이야 4년 전 기성세대가 자주 쓰는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하는 "라떼는 말이야"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그 후 "누구나 언젠가는 라떼가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같은 말을 들어도 누군가는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인생선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단순히 인생 선배가 후배에게 하는 이야기도 '라떼'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기획을 구상했다. 더 많은 인생을 살아온 세대가 청춘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진정한 이야기, 그것 또한 "라떼는 말이야"로 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과연 기성세대는 어떤 삶을 기대하며 살았을까. 인생 선배가 후배에게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무엇이 있을까. 그동안 살면서 생활 속에서 얻은 지혜, 실패 속 발견한 인생 노하우 등을 월 1회씩 전북 팔팔청춘을 통해 들어본다. "인자(이제) 하나둘 갈 텐데 그 전에 뭐라도 해야지 않겄어? 요즘 귀에 뭐 요상한 거 꽂고 뭐 뮤지칼 비디오(뮤직 비디오) 찍더만 우리도 사진·영화는 했응게 뮤지칼이나 하나 더 찍었음 쓰겄네." 수십 년 한 마을에서 동고동락하면서 좋은 일 나쁜 일 함께 보낸 완주군 화정마을 열두 명의 할머니에게는 못다 이룬 꿈이 있다. 도전이 두렵지 않은 이들의 평균 나이는 놀랍게도 81세다. 75세 막내부터 90세 맏언니까지 주 7일을 마을회관에서 만난다. 두 다리로 걸어서 마을회관까지 나올 수 있으면 아직 팔팔하다고 말한다. 이들이 가장 해 보고 싶은 일은 '뮤직 비디오 촬영'이다.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지만 가장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다. 먹고살기 바빴던 젊은 나날을 뒤로 하고 '나'를 위한 남은 삶을 보내고 있는 이 할머니들은 함께 모여 사진 찍고 영화 촬영까지 했다. 건강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멋진 할머니들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궁금증이 생겼다. "어릴 적 하고 싶었던 일이 하나쯤은 있지 않았을까?"라는 궁금증이다. 발 빠르게 화정마을 열두 명 할머니와 만났다. 아니나 다를까 한평생 남몰래 가슴속에 꿈을 품고 살아왔다. "꿈이 뭐데요? 기자 양반, 우리는 가는 세월 못 잡고 나이만 많이 먹어버렸네요." 어릴 적 꿈이 뭐였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가장 먼저 돌아온 대답이다. 지금은 어릴 때부터 꿈이 있는 게 당연한 일이 됐지만 옛날에는 꿈을 가질 여유조차 없었다는 것을 짐작게 했다. 꿈이 뭔지도 모르고 바삐 살아온 할머니들은 일평생 간직하고 있던 꿈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세상에 처음 꺼내는 이야기가 부끄러운지 대답을 주저하는 것도 잠시, 다들 '꿈 보따리'를 풀었다. "지금은 너무 늦었고 다시 태어나면 여군이 되고 싶어. 그렇게 예뻐 보이드라고." 신옥리(83) 할머니는 경찰·군인이 되고 싶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경찰과 군인을 보면 건강하고 멋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할머니는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공부를 해서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다. 꿈은 있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학교 다니기도 어려워지면서 가슴속에 고이 간직했다. "연필 들고 뭐 적으려고 하는 것도 두렵고 무서워. 죽을 때까정 아마 꿈은 더 못 이루겄지. 그냥 딱 5년만 더 살라고" 최은주(79) 할머니의 꿈은 '공부'였다. 공부도 다 못 했던 할머니에게 꿈은 사치가 됐다. 한글을 다 익혀서 교회에 가서 성경 구절만 찾으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였지만 이루지 못했다. 늦게나마 꿈을 이루고 싶어 주부학교에 다녔지만 금방 그만뒀다. 한 학기 배우고 다음 학기로 올라가던 찰나에 남편이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끝내 꿈을 포기하게 됐다. "그냥 부자가 돼서 쌀밥 한 그릇 가득 먹어 보는 게 소원이었지." 8남매인 조북현(81) 할머니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꿈을 가지는 일은 과분했다. 어머니 혼자 8남매를 키우는 탓에 먹고사는 게 우선이었다. 어머니를 도와 고구마 심어 살고 다른 가족 집에 가서 밥 먹는 게 일상이었다. 공부도 해 보고 싶었지만 쌀밥 한 번 배불리 먹어본 적 없는 할머니는 부자가 되고 싶었다. "시집만 잘 가고 싶었어. 꿈도 없어, 그냥 좋은 남편 만나고 싶었어." 이칠월(89) 할머니는 큰 욕심 없이 살았다. 주변 친구들이 시집을 잘 간 터라 본인도 시집 잘 가서 행복하게 잘사는 게 꿈이었다. 할머니는 꿈은 이뤘다. 좋은 남편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공부도 할 줄 모르고 그냥 살어. 이 나이 먹드라 그렇게 살았어." 이장순(90) 할머니의 꿈은 경찰이었다. 학교를 못 다니게 하는 부모님 때문에 공부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텔레비전을 보면서 남몰래 경찰을 꿈꿨다. 잘 배워서 경찰이 되고 싶었지만 가슴속의 꿈으로 남았다. "양장점에서 일하고 싶었지. 엄마가 죽어도 나 못 갈친다고 그러는데 어쩌겄어." 최장금(78) 할머니는 양장점에서 일하는 게 소원이었다. 학교 문 앞은 가 본 적도 없어 공부에 대한 욕심보다는 할머니의 눈에 가장 좋아 보이는 양장점 일을 배우고 싶었다. 오빠·남동생 가르쳐야 해서 공부는 물론 꿈까지 일찍이 포기했다. "인자 늙어서 암 것도 못 혀. 하려고 해도 못 허고 이제는 뭐 하고 싶지도 않어." 박복순(89) 할머니의 꿈은 무용가였다. 어릴 적 동네에서 학교 다니는 사람은 겨우 3명이었다. 그래서 학교 안 가고 공부 안 하는 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무용가가 예뻐 보였던 할머니는 무용이 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안 돼서 꿈을 놔 줬다. "미싱자수, 나 진짜 그걸로 성공하고 싶었다니께. 근데 생각처럼 안 됐지. 이제 꿈도 없어." 이덕순(81) 할머니는 어릴 적 미싱자수를 배웠다. 미싱자수를 가르쳐 준 선생님과 잘 지냈지만 중간에 선생님이 서울로 올라가면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미싱자수로 성공했으면 좋았겠지만 여러 여건상 그냥 그 길로 꿈을 접었다는 게 할머니의 설명이다. "공부도 못 허고 상황도 안 되니께 그냥 꿈 접었지. 그렇게 늙어버렸네." 오율례(75) 할머니는 여검사가 되고 싶었다. 13살에 본 영화 <검사와 여선생> 속에 나온 배우들처럼 검사가 돼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꿈뿐이었다. 형편이 어렵고 여건이 안 돼서 꿈을 접었다. "할 말 없어. 나는 그냥 남자 못지않은 여장부가 되고 싶었는디. 못 했지, 뭐." 이복순(76) 할머니는 꿈이 없다고 말했다. 남편이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하고 싶은 것도 했겠지만 일찍이 세상을 떠난 남편 없이 먹고살다 보니 꿈꿀 시간조차 없었던 것이다. 원하는 것은 여장부다. 말만 여자지 남자처럼 살고 싶다고 전했다. "나는 잘 먹고 잘사니께 자식들만 잘 살면 돼." 김정자(87) 할머니는 학교 가려면 10리를 걸어야 해서 학교 안 갔다고 고백했다. 학교 가라는 부모님의 권유에도 10리 걷는 게 걱정돼서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커서 남편을 만나 장사를 하면서 자식들을 키웠다. 숨 돌릴 만하니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에게 남은 것은 자식뿐이다. 할머니는 잘 먹고 잘사니까 이제 자식들 잘 먹고 잘사는 게 꿈이다. "중학교 못 들어가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러. 그게 내 한이여. 선생이 되고 싶었는디." 큰딸인 권복순(75) 할머니는 남동생을 가르쳐야 한다는 부모님 말에 중학교를 가지 못했다. 배웠다면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꿈만 컸을 뿐 중학교도 못 들어가 가슴속에 품고 살았다. 그게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처음에 꿈이 없다는 할머니들은 온데간데없고 한바탕 꿈을 풀어 놓았다.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도 있었다. 한두 마디뿐이지만 남편·자식 등 가족을 위해 살아온 할머니들의 힘든 인생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꿈도 포기하고 '나'라는 사람보다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온 할머니들은 지금을 살고 있는 청춘들이 '나'라는 사람을 위해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길 바라고 있었다. 마치 인생 선배가 후배에게 하는 따뜻하지만 따끔한 조언 같았다. "젊은이들이 앞으로 큰 꿈 가지고 거짓 없이 진실했으면 좋겄어. 요즘 결혼도 안 한담서. 가정 꾸려서 좋은 일 나쁜 일 다 하고 살았으면 좋겄네. 한 번 사는 인생 희로애락은 다 겪어 봐야지 않겄어? 내 몫은 내가 챙기고. 살아 보니께 그게 최고더라고."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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