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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포스트 '게놈' 시대

세계는 지금 인간게놈지도 완성 소식에 크게 흥분하고 있다. 인류가 마침내 생로병사의 비밀을 간직한 판도라 상자를 열어 무병장수의 꿈을 실현하게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보도 대로라면 인류는 곧 암치매에이즈당뇨고혈압천식과 같은 난치병을 극복하고 의료제약농업축산환경 등 관련 산업분야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머지 않아 인공생명체도 만들어낼 전망이다. 그러나 인간게놈지도 완성이 곧바로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란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인간게놈지도 완성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인간게놈지도 완성은 인간게놈 프로젝트(HGP: Human Genome Project)의 산물이다. 인간게놈 프로젝트는 인간이 가진 모든 유전자의 염기(鹽基)서열을 파악하고 각 유전자의 역할을 규명하는 연구로 1990년 미국이 주동이 되어 착수, 30억 달러를 투입해서 2005년에 완성할 계획이었다.미국은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많은 돈과 기술 그리고 인력을 필요로 하는 대형 연구과제이어서 영국을 비롯한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선진 18개국 350여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국제 공공 컨소시엄을 만들어 이를 진행해왔다. 인간게놈지도 완성이 계획보다 앞당겨진 것은 이 계획에 동참했던 크레이그 벤터 박사가 민간기업(셀레라 제노믹스)으로 옮겨가 획기적인 염기서열 분석법(shot-gun methode)을 개발함으로써 가능했다. 게놈(genome)이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의 합성어로 생명체가 필요로 하는 단백질을 만들기 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유전자를 포함하는 모든 DNA를 의미한다. DNA는 디옥시리보핵산(deoxyribo nucleic acid)의 약어로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효소 등 각종 단백질의 생산을 지령, 제어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물질이다. DNA의 역할은 속에 간직하고 있는 네 가지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염기의 배열이 갖는 암호에 의해 결정되며 생물의 종(種)은 바로 이 염기배열 차이로 생겨난다. 사람의 DNA는 약 30억 개의 이들 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인간게놈지도의 완성은 바로 이들 염기서열을 밝혀낸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간게놈 활용 연구는 이제부터이다. 인간게놈지도를 바탕으로 30억 개의 염기서열 중 10만에서 15만개로 추산되는 유전자를 찾아내 이들의 구조와 기능을 밝혀, 이용법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게놈 프로젝트는 선진국들의 유전정보 독점과 특허권 확보를 통한 기술패권주의를 한층 심화시킬 것이다. 동식물 유전자 확보를 위한 쟁탈전이 이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로 해서 선진국과 제3세계와의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선진 각국은 포스트 게놈시대를 대비해서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있다. 우리 나라는 인간게놈지도 작성분야에서 선진국에 크게 뒤져있다. 하지만 인간게놈은 사람마다의 특성이 있기 마련이어서 우리의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 유리하다. 우리도 이런 면에서 포스트 인간게놈 연구에 국가적인 뒷받침이 있어야겠다.한편 인간게놈 연구와 활용은 종교와 윤리도덕법률 등 분야에서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인간 유전자 정보가 알려졌을 때 나타날 문제만 해도 간단치 않다. 태아가 유전자 진단을 통해 결함이 발견되었을 때 유산시킬 가능성이 높고 정보가 밖으로 유출될 때 취업과 보험가입에 불이익이 초래될 수 있다.또한 유전자조작을 통해 생물계가 급격하게 바뀌어갈 때 생태계에 큰 혼란을 일으켜 인류의 종말을 재촉할 수도 있다. 유전자변형식품이 세계 곳곳에서 말썽을 빚고 있는 것은 여기에 있다. 인간게놈연구가 인류 복지에 활용되기 위해서는 안전성 확보는 물론 오남용을 막기 위한 확실한 제재책과 함께 지속적인 과학적 평가와 감시체제를 구축하는 등 유전자 조작에 대한 조례를 마련해야한다. 그리고 인간게놈 기술의 활용에는 대다수 사람들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광영(전북대 자연대 초빙교수/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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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6.30 23:02

[전북칼럼] 시인의 땅

얼마 전 김용택 시인으로부터 책 한 권을 받았다. 「촌아 울지마」라는 산문집이었다. 김 시인은 논농사 밭농사 지어 도회의 아우에게 올려 보내주는 고향의 장형처럼 마암 분교와 진메 마을과 섬진강 주변에서 지은 글 농사로 책을 묶어 서울의 내게 한 권씩 보내주곤 한다. 특히 책의 겉 표지를 들추면 아주 짧고 간결한 계절 이야기가 적혀 있는데 이번 「촌아 울지마」라는 책에는 강가에 붓꽃이 예쁘게 피었노라는 사연이 적혀 있었다. 일찍 고향 떠나 도회지의 아스팔트에서만 맴돌았던 나는 붓꽃이 어떻게 생긴 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붓꽃이 피는 강가에서 사는 시인은 참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김 시인의 시나 산문에서는 한결같이 흙 냄새가 나고 물소리, 바람소리가 들리고 꽃향기가 번져온다. 서울의 한쪽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길에 채이지 않으려고 모질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고향 떠나온 나 같은 사람에게 김 시인의 화신(花信) 담긴 책은 반갑기 그지 없다.특히 이번 「촌아 울지마」라는 책은 받아드는 순간 그 제목에서부터 가슴이 찡해 왔다. 언젠가 읽은 김 시인이 엮어낸 「콩, 너는 죽었다.」라는 제목에도 감탄을 했는데 '촌아 울지마'라는 책 제목에는 책의 모든 것이 다 함축되어 있는 듯이 느껴졌다. 정말이지 흙을 떠나고 촌을 떠나 도회로 도회로만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온갖 어지러운 풍경들이 나무하게 되는 요즈음 우리들이 버리고 온 촌은 서럽게 눈물지을 것만 같다.가끔 속세를 떠난 수도자의 글 중에는 깊은 산 석간수처럼 시리고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글들이 있지만 생활의 애환과 흙 냄새가 나지 않는데 반해 김 시인의 글에서는 삶의 자잘한 감동과 갈등들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어 감동을 준다.김 시인이 나같이 서울에서 살게 되어도 그처럼 맑고 영롱한 그러면서도 어쩐지 뭉클한 글을 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마암 분교가 있고 진메마을이 있고 섬진강이 있어 시인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그러고 보면 전북은 시인이 잘 되는 곳이 아닌가 싶다. 김 시인 말고도 안도현이나 박남준 시인처럼 전국적으로 독자를 지닌 시인들이 전북에 유난히 많기 때문이다. 전북은 다른 도에 비해 도세(道勢)도 좀 약하고 재정 상태도 그리 튼실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글이 잘되는 시인의 땅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한 문향(文鄕)이 우리들의 고향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운가.그러니 조금쯤 약하고 조금쯤 가난하게 산다고 해서 기죽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더구나 눈물 흘릴 이유도. 속으로 가만히 되뇌어 본다. 「촌아 울지마, 전북아 울지마.」/김병종(화가, 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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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6.23 23:02

[전북칼럼] 남북정산회담과 향후 과제

2000년 6월 13일. 남북 7천만 국민이 환호하고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남북정상간의 역사적 만남이 이루어졌다. 양체제간 대결 속에서 막대한 물자 낭비와 정신적 피로감에 시달려야 했던 지난 반세기의 세월들이 이 날만은 한낱 신기루와도 같이 느껴졌다. 대통령을 최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햇볕정책 입안에 참여했던 필자로서는 형언할 수 없는 감회와 함께 회담의 성공을 염원하고 또 염원하는 마음으로 정상회담 내내 가슴 벅찬 나날들을 보냈다. 남북정상은 6월 14일 회담에서도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양 통일방안의 공통성 인정, 8.15 친척방문단 교환, 경제협력을 통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다방면 교류, 합의 실천을 위한 당국간 대화에 합의 서명하였다. 이는 양 체제의 현실적 입장을 십분 고려하면서도, 사실상 남북관계의 거의 모든 면에 걸쳐 상호대립과 분단의 55년사를 청산하는 단계에 돌입하였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성과는 그 동안 우리 정부가 대북 정책에서 보여준 냉철한 상황 판단과 이를 뒷받침하는 확고한 비전, 인내, 의지의 산물이었다. 서해교전사태 등 여러 번의 돌발적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결국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게 한 우리 정부의 끈질긴 노력이 주효했던 것이다. 사실 북한이 남북간 대화에 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명확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북한이 겪고 있는 혹심한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측의 도움이 필연적이었다. 또 북한이 국제사회의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에게도 중요한 이해관계가 걸린 것이었다. 즉 정상회담은 김정일에게 김일성 주석의 유훈(遺訓)과업을 완수했음을 대내에 과시함과 아울러 새로운 비전과 스타일의 리더십을 갖춘 '강성대국' 중흥의 유일 지도자임을 만방에 과시할 수 있는 기회이다. 바로 이 같은 요인들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정확한 판단과 유연한 대처가 마침내 북한을 화해협력통일을 향한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의 성과를 실질적인 관계개선으로 이어가는 여정에는 수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북한의 내부구조는 급격한 변화를 수용하기에 너무 많은 제약요인들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개혁을 주도할 세력이 미약하다. 당은 무기력과 타성에 젖어 있으며, 군부, 국가보위부 등 사회통제를 담당해 왔던 세력들은 그 속성상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내부의 힘은 그 사회의 모든 면에 걸쳐 막강한 카리스마를 구축하고 있는 김정일 자신에게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북한 사회의 변화는 가느다란 줄을 타고 발빠르게 움직여 나가는 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이 제약된 조건하에서 북한이 남북화해의 노선을 꾸준히 추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 쪽의 현명한 대처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첫째, 이번 정상회담이 일회성 거품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간에 신뢰를 더욱 확고히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래의 감정에 사로잡혀 모처럼 이끌어낸 대화의 장 밖으로 북한을 몰아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둘째,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이 중요하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폄하하는 식의 정쟁이 우리 정치권 내에서 계속 재현되고, 남북정상회담의 당사자인 김대중 대통령의 정국장악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할 때 그들은 또 다시 머뭇거릴 것이다. 셋째, 남북 해빙의 길은 멀고도 험할 수밖에 없다.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돌발 변수가 발생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연하고 확고한 태도이다. 지난 서해 교전 사태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하는 확고한 대처와 함께 포용력을 잃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넷째, 한미일 공조를 굳건하게 유지해야 한다. 한미일 공조는 남북간 화해 통일을 위해 국제사회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매우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틀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그에 대한 북한의 오해를 불식하고 한미일 공조가 전체 민족의 이익과 합치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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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6.16 23:02

[전북칼럼] 건강한 사이버 환경 만들기

부산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 수사반은 해킹프로그램으로 남의 인터넷 게임 아이디(ID)와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그 사람의 게임 전리품을 훔친 혐의로 중학교 3학년 권 모군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는 지난 5월 29일자 한 일간지에 게재된 기사의 일부이다.이제는 이처럼 물리적인 힘의 작용이나 지리적 공간의 이동이 없이도 물건을 훔치는 것과 같은 '이상한 유형의 사건들'이 컴퓨터 키 조작만으로 사이버 세상에서 간단하게 벌어지고 있다.사이버 테러,폭력,시스템 폭파,사기,상도의를 무시한 전자상거래 등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사이버 범죄의 심각성을 잘 일깨워 주는 통계도 많다. 지난해 우리나라 기업,정부기관,대학,개인이 사이버 테러를 당한 경우가 1천6백여건에 이르고 이는 전년의 7배에 달하는 수치라는 보고와 우리나라 학생의 17.8%는 성폭력 경험이, 77.1%는 음란정보나 포르노 정보를 경험했다는 조사결과가 그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국내 총 범죄건수는 전년도에 비해 3.4%가 감소한 반면 사이버 범죄는 오히려 4배가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인터넷 인구의 급속한 성장세를 감안한다면 그 확산 속도는 더 빠를 것이 자명하다.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나 안이하고 순진하게 사이버 세상의 도래를 바라고 있었다는 반증들이기도 하다. 인터넷이 가져다주는편익만 찬미했을 뿐 그 폐해에 대한 대책 마련에는 소홀해 왔음이다.우리는 흔히 전쟁,범죄,비윤리적 행위 등은 인간의 속성이 바뀌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그리고 인터넷의 속성이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많다는 점이다. 사이버 범죄자인 해커(Hacker)등을 오히려 영웅이나 재주꾼으로 바라봄으로써 사회적으로 죄의식을 이완시킨다든지 사이버상의 윤리성 실종을 우리 스스로 방조해 오고 있는 것이다. 'O양 비디오 사건' 등에서 우리는 그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인터넷이 개인과 기업 국가경쟁력의 관심사가 되고 이를 정책적으로 장려하는 과정에서 그 역기능은 무시되거나 필요악 정도로 치부되는 경향도 문제다.사이버상의 범죄도 강도나 절도처럼 반드시 처벌받아야 하고 윤리적 타락도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우선 이를 방지하고 단속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법제정과 정비가 시급하다.나아가 근본적인 문제의 차단과 단속을 위한 시스템 보안장치의 마련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직접나서서 투자에 앞장서는것은 물론이다.인터넷 세상에서는 국경을 넘나드는데 비자가 필요없다. 따라서 여러유형의 범죄나 윤리적 오염행위를 방지하고 단속하는 일은 더 이상 어느 한 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민간차원의 사회운동도 함께 전개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터넷상에서 존재하고 있는 여러 논란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이를 규범화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겠다. 해커들의 알권리에 대한 과도한 주장이나 최소한의 정보제한 원칙,불건전정보 단속기준 등이 이에 속할 것이다.이러한 합의는 하루 빨리 사회운동을 통하여 실천에 옮겨져야한다. 사회단체들은 기존의 활동영역을 넓히고 또학부모,주부 등을 중심으로 하는 사이버 방범대와 같은 자치조직의 결성을 통하여 일정부분의 역할을 담당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노력들보다도 중요한 것은 윤리적 인간성 회복에 대한 사명감이다. 그래서 비록 '낙원같이 아름다운 사이버 세상'은 아니더라도 그 속에 건강한 문화만이라도 살아 숨쉬게 하여야 한다.제러드 반 더 룬은 이런 소망을 '인터넷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건설된 인류 최초의 자유로운 세계공화국이다.이 공화국은 인류 모두의 것이다. 다만 그것을 지킬 수 있을 때만 그렇다.'라고 말하고 있다./정태원(한국통신 전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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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6.09 23:02

[전북칼럼] 대통령과 과학기술

통치자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지원은 국가과학기술발전을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강력한 리더십을 갖는 독재 국가에서는 물론 현대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같다. 우리는 이 같은 사례를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일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세기 중반이후 미국 역대 대통령의 상당수가 과학기술에 큰 관심을 갖고 많은 지원을 했다. 루즈벨트의 원자탄개발, 아이젠하워의 고속도로건설, 케네디의 인간 달 정복, 닉슨의 암 정복사업, 레이건의 별들의 전쟁 프로젝트는 좋은 사례로 꼽힌다. 클린턴 정부의 정보고속도로건설과 신세대차량개발계획도 그 중의 하나이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이와 같은 관심과 지원은 바로 미국 과학기술 수준을 세계 정상의 자리로 끌어올렸다. 미국은 특히 2차 세계대전이후 기초과학육성에 큰 힘을 기울였다. 미국이 1943년에서 1996년까지 53년 동안 과학부문 노벨상 수상자를 자그마치 168명이나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같은 기간 영국은 68명, 독일 55명, 프랑스 24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미국이 오늘 세계를 이끄는 슈퍼파워로 우뚝 서게된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 대통령의 공이 컸다.프랑스의 과학기술을 말할 때 드골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드골은 1958년 제5공화국 대통령이 되자 '불란서의 영광'을 내걸고 대전 중 각국에 흩어졌던 과학기술자들을 모아 국립과학연구센터(CNRS)를 설립하고 우주항공원자력해양에너지자원 등 분야에 집중 투자했다. 오늘 프랑스가 이들 과학기술 부문에서 세계 첨단수준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드골의 정책에 바탕을 두고 있다.일본의 많은 총리들도 패전 후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큰 힘을 기울였다. 역대 총리들은 과학기술청 장관에 거물급을 포진시켜 일본의 과학기술발전을 주도해갔다. 과학기술청 장관을 지낸 인사 가운데 6명이 총리가 된 것은 일본의 통치자들이 과학기술에 보인 면면을 잘 보여준다. 일본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단시일 내에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과학기술발전 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우리의 과학기술은 60,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보인 관심과 지원으로 불모상태에서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우리의 통치자가 과학기술에 보인 관심과 지원은 미미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과학기술에 대해 관심은 많은 것 같으나 실질적인 뒷받침이 아쉽다는 것이 과학기술계의 지적이다.과학기술진흥 없이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이제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세계는 지금 산업화사회에서 정보화사회, 지식기반사회로 옮겨가는 변혁기를 맞고 있다. 시대의 변혁기는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나라와 민족의 부침(浮沈)이 이 시기에 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한편 우리는 과학기술이 전국민의 의식과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리지 않고서는 경제 사회 발전을 효과적으로 이룩해 갈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21세기 정보화사회, 지식기반사회를 제대로 이룩하기 위해서는 정치논리나 경제논리로서는 어렵다. 21세기는 과학기술정신 다시 말해서 창조성과 합리성능률성정확성정직성이 바탕이 되지 않고는 지탱해 갈 수 없다. 전북대에 '과학문화연구센터'를 설치한 것은 이 같은 이유이기도 하다.오늘의 정치지도자는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이 같은 현실과 시대적 상황을 직시하고 과학기술력에 바탕을 둔 경제사회발전책은 물론 과학기술정신에 바탕을 둔 국가 경영전략을 마련해야한다. 이는 중앙정부 뿐 아니라 지방정부도 같다./이광영(전북대 초빙교수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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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6.02 23:02

[전북칼럼] 전북의 힘

나라마다 지역마다 각기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영국 같은 나라는 정치 제도에서 그리스와 같은 나라는 조각예술 분야에서 일본과 같은 나라는 경제에서 그리고 인도와 같은 나라는 종교와 철학에서 그 특장을 잘 발휘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에 내놓아 손색없고 앞설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일까를 곰곰 생각해 보는 때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술과 같은 분야가 아닐까 싶다. 한국인은 확실히 천분의 예술적 감각을 지니고 있고 그점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인정한 바이다. 특히 일본과 같은 나라에서는 한국의 이름없는 도공이 빚은 막사발 하나도 끔찍한 예술품으로 받들고 아꼈던 것이다. 그들 일본 민족이 도저히 따라 올 수 없는 그 어떤 예술적 재능을 우리 민족은 가졌던 것이다. 그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 그 중에서도 호남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전북의 문화예술적 자질을 함께 논하지 않을 수 없다.전북은 도세가 약하고 그간 정치적으로도 큰 빛을 못보아 발전이 더디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해 지나친 속도의 산업화, 공업화로 인한 후유증을 비교적 덜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지금 한반도는 산업 폐기물이나 공해 환경으로 심한 몸살을 겪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도저히 치유나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에 와 있는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이 오래오래 살아 갈 타전들이 병들게 되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지난 10여년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염이 덜한 호남쪽을 이상향처럼 찾아 들었다. 자연환경 뿐 아니라 선조들의 뛰어난 문화 유산까지 함께 있어서 호남은 한반도의 마지막 살만한 땅으로 인식되어졌고 그 중에서도 특히 전북이 그렇게 인식되어졌다.그렇다고 해서 나는 우리가 자족하고 있어서만은 안된다고 생각한다. 문화 전북의 특성화에 의해 보다 경쟁력 높은 지역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공장의 굴뚝에 연기 한 줄 내지 않고도 순전히 문화만을 수출해서 잘 사는 나라나 도시는 수없이 많다. 프랑스의 파리는 피악(FIAC)이라는 현대미술견본시장을 열어 일주일 못되는 기간 동안에 일본의 도요다 자동차가 1년내내 전 유럽에 자동차를 팔아 남기는 수익금을 웃도는 이윤을 얻고 있다. 바그너의 고향인 독일의 바이로이트만 하더라도 바이로이트 축제로 인해 전세계 애호가들로부터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선비도시이자 양반도시인 전주를 비롯, 판소리 동편제의 탯자리인 남원과 시인 매창의 땅인 부안, 선운사와 서정주의 고창 등 전북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화 자원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 문화 자원들을 적극 개발하여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그래서 문화 전북의 기상을 날려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북의 힘은 문화에 있다./김병종(화가, 서울대 미대 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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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5.26 23:02

[전북칼럼] 지긋지긋한 정치싸움

지난 4.13 총선을 치르면서 신물나게 많이 들은 얘기는 "국회의원들의 정치싸움이 지긋지긋해서 TV에 정치뉴스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거나 아예 꺼버린다. 국회에 들어가면 제발 싸움 좀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이러한 불만에 가득찬 요청은 모든 계층에 다 있었지만, 특히 노년층과 부녀층에 유난히 많았다. 이분들에게 국회는 싸움터이고 국회의원은 국사를 외면한 채 오로지 싸움밖에 모르는 싸움꾼으로 각인되어 있었다.필자는 정치싸움 얘기를 들을 때마다 국회의원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정치에 관여해온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또한 어떻게 하면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싸움꾼 신세를 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지금까지 우리의 정치가 싸움으로 일관해 왔으니 국회를 싸움터로, 국회의원을 싸움꾼으로 인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정치불신이 심화되어 정치에 대한 혐오로 발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정치는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구도 속에 민주화 투쟁과정이었기 때문에 싸움의 연속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50년만의 정권교체가 성취된 지금에도 정치의 양태가 싸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그 동안의 정치싸움의 타성이 체질화되고 국회의 당리당략적 운영이 관행화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우리 정치의 후진성 때문에 사회적 갈등·대립의 조정·통합이라는 정치의 본래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 정치가 국가발전을 선도하기는 커녕 정치 때문에 국가발전이 저해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원래 정치과정은 권력 획득이라는 측면과 국민을 위한 정책결정이라는 측면이 있다. 선진국에서는 권력보다는 정책이 우선하고 권력획득도 국민을 위해 올바른 정책을 제공하기 위한 수단가치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정책이 권력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권력가치 보다는 정책이 우선시될 때 국민을 위한 정치가 가능하다. 또한 선진국 정치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정책경쟁을 통해 권력을 획득하기도 하고 교체하게 된다.우리의 경우는 어떤가.우리의 정치과정에서는 권력이 중심이고 정책은 종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권의 모든 관심은 권력획득에만 쏠려 있고 국민을 위한 정책결정에는 형식적이다.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도 마찬가지 수준이다.우리의 정치현실이 이렇게 저급한 수준에 있다 보니 가장 중요한 정책산출기관인 국회도 권력획득을 위해 당리당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당리당략의 실체는 다름 아닌 권력문제이다. 야당의 경우는 국회운영의 모든 초점이 차기 대권획득을 위한 정국운영의 주도권 확보에 모아지고 여당의 경우는 이의 방어에 모아진다. 그러다 보니 첨예한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예외없이 싸움으로 비화되어 날치기와 몸싸움이 반복되어 온 것이다.이번 4.13 총선을 통해 새로 등장한 386세대와 개혁적인 초선의원들을 중심으로 크로스 보팅(교차투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크로스 보팅이 관행으로 정착된다면 권력보다는 정책을 중시하는 새로운 풍토가 조성되어 국회운영은 획기적으로 변화할 것이고, 날치기와 몸싸움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그러나 대권에만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각 당의 수뇌들은 핵심쟁점에 대해 당리당략적인 당론관철을 고수할 것이므로 이들의 주장도 결국은 되돌아 오지 않는 메아리가 될 공산이 커 암담하기만 하다.더구나 16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샅바 싸움이 한창이다. 국회내의 가장 큰 권력인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선출을 둘러싸고 여야간 협상이 난항에 부딪쳐 법정 개원일인 6월 5일에 16대 개원국회가 열리지 못할 것이 거의 확실해지고 있어서 벌써부터 또다른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이러한 정치현실이 계속되는 한 4년 후에 또다시 신물난 정치싸움 그만 하라는 유권자들의 항의와 야단을 맞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이강래(16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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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00.05.19 23:02

[전북칼럼] 사이버 세상을 살아가는 안목을 넓히자

인류의 생활상은 끊임없는 크고 작은 변화의 연속이었다. 어떤 변화는 개인에 따라 무시하거나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변화도 있었다. 요즈음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결합으로 탄생된 인터넷기술이 주축이 된 일련의 변화도 이들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그러나 국내는 물론 범세계적인 가상의 공간에서 초고속의 정보교류와 경제적 거래,문화생활,오락 등을 가능하게 만들 인터넷이 사회,경제체제와 서로 상관되어 만들어내는 사이버 세상의 도래는 누구도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을 것이라는데 이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초고속의 동시성,대량성을 자랑하는 인터넷의 활약은 그 자체가 갖는 위력으로 우리 일상과 경제활동에 밀착되어 새로운 생활수단으로써 깊고 넓게 작용하여 남녀노소 누구도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새로운 변화를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또한 이는 근래에 우리생활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화시켰던 자동차문화 등 그 어떤 변화요인들보다 빨리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디오의 대중화에 38년,TV 13년, PC 16년에 비해 인터넷 사용자가 5천만명을 돌파하는데는 불과 4년밖에 소요되지 아니하였다.이러한 인터넷의 세계적 사용인구는 99년말 2억5천900만명에서 2002년 4억9천만명,2005년 7억6천500만명 등 폭발적인 증가가 예상되고 있다. 심지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폐쇄적이라는 중국에서조차 97년 62만명에 불과하던 것이 현재 1천만명을 넘어 섰으며 매6개월마다 2배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 한다. 이런 추세는 국내도 예외가 아니어서 인터넷 인구가 매달 90만명씩 증가 이미 인터넷 사용자가 1천4백만명에 이르렀으며 세계 10대 인터넷 사용국가가 되었다. 뿐만아니라 지금까지는 타지역에 비하여 경제적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던 전북지역도 인터넷 인구비율에서만은 전국 평균치를 넘는 34.3%인 것으로 조사되어 여간 다행이 아니라 하겠다.이러한 인터넷의 인적 물적 기반확대는 새로운 가상의 현실세계를 급속하게 형성시켜 가고 있다. 벌써부터 e-비즈,T커머스,M-비즈니스,E머니 등 생소한 말이 주위에서 일상화되어 가고 있으며 e-메일주소,도메인 네임이 명함,간판,광고 등에 등장하는 등 빠르게 보편화되고 있다. 이에따라 작년도 가상공간에서의 일반적 전자상거래(B2C)가 672억,기업-기업간 거래(B2B)가 600억에 이르렀고 금년은 1,486억,1,800억에 이를 전망이며,작년 총 주식거래의 40%를 넘는 444조원이 사이버상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인터넷상에서의 통신량도 100일마다 2배씩 늘고있는 추세로 이는 휴대폰 등에 의한 무선인터넷이 활성화되면 더욱 가속화 될 전망이다.그리고 이런 현상은 비단 이들 분야에서 뿐만아니라 교육,행정,금융,진료,방송,영화감상,문화탐방,여행 등 생활전반에 깊숙히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이로 말미암아 이제는 개인,기업,지역,국가의 영위 방식,사회적 가치관,노동과 상품시장 등의 변화도 함께 초래될 것이다. 그래서 사이버 세계로의 발빠른 변신여부는 이제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근대화라는 시대조류에 뒤져 두고두고 후회스런 역사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세상의 사이버화에서만은 결코 뒤지지 않도록 노력할 일이다.그러하기 위해 정부차원에서는 금년에 마련된 지식기반 경제발전 3개년 전략에 따라 정보화 기반과 환경을 조기에 구축하여 국민 모두가가상세계와 손쉽게 접근이 이루어지게 해야하겠다.그리고 국민 각자는 새로운 가치관에 기초한 벤처정신과 이에 걸맞는 능력을 키워 이제 인터넷을 하나의 유용한 생활수단으로써 적극 받아들이고 습관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되겠다. 기업도 재래의 경영방식에서 인터넷 시대에 맞는 신개념의 경제질서속으로의 과감한 변신을 꾀해 나가야 하겠다. 사이버 세계는 우리에게 저절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탐험가 정신으로 우리가 하루 빨리 안목을 넓히고 스스로 찾아가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야 하는 신천지인 것이다./정태원(한국통신 전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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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5.12 23:02

[전북칼럼] 큰 정치·큰 정책·큰 전략

새 천년 오늘의 화두(話頭)는 단연 '큰 정치'이다. 그러나 큰 정치 못지 않게 '큰 정책'과 '큰 전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후 IMF사태를 아시아 국가로서 최단시간 내에 극복하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 내는 등 국내외적으로 큰 치적을 보였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에 대해 국내외 인사들은 과거 어느 대통령 못지 않게 훌륭한 치적을 쌓았으면서도 정치 8단인 김 대통령이 정작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했다. 김 대통령은 6월 13일 평양에서 갖게될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만나 [국민 대 통합]과 여야협력을 통한 [상생(相生)의 정치]를 다짐하고 남북회담의 초당적 협력 등에 합의하는가 하면 이한동 자민련 총재에 이어 민주국민당과 한국신당 의장과도 만나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초당적 협조를 다짐함으로써 모처럼 만에 우리들에게 대화와 협력이라고 하는 큰 정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국가정책과 전략 면에서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우리의 국가정책은 여러 부문에서 부처와 관련단체의 이기주의로 해서 자주 혼선을 빚어왔다. 우리의 국가정책이 종종 부처차원의 정책은 있어도 국가차원의 정책이 없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은 여기에 있다. 과학기술정책은 좋은 본보기이다. 우리 나라는 부처별 과학기술정책은 있어도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정책이 없다는 지적이 1967년 과학기술처(현 과학기술부)가 발족한 이래 줄곧 있어왔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다. 각 부처로 분산된 과학기술 관련 업무의 행정부서간 연계가 긴밀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과학기술정책이 부처간 할거주의로 독자적이면서 경쟁적으로 추진됨으로서 혼선이 일고 있었지만 종합조정 역할을 할 기구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과학기술정책이 바뀌는 일관성이 없는 정책이 이루어졌던 것은 이 때문이기도 했다.김대중 정부가 지난해 대통령이 위원장이 되고 정부 쪽에서 15명, 민간 쪽에서 3명 등 18명의 위원으로 이루어진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만든 것은 이를 시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앞으로 ①과학기술진흥 주요정책과 종합계획 수립조정 ②과학기술 관련 예산의 확대와 효율적 사용방안 강구 ③매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우선 순위 설정과 사전조정 ④과학기술계 연구회(기초기술산업기술공공기술) 및 연구기관의 평가와 발전방안모색 등을 통해 그 동안 혼선을 빚어왔던 부처별 과학기술 관련 정책을 국가차원으로 끌어올려 국가연구개발체계의 통일성과 효율성을 높여 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치 역시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국가 과학기술정책이 국가가 지향하는 근본 철학의 설정 없이 개별 목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데다 정책의 입안과 개발과정이 지나치게 전문가 집단에 의존함으로서 한계성을 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정책은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함'이라는 분명한 국가적 방향설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책의 입안과 개발과정에서 이와 같은 근본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는 일은 드물다. 소수 전문가 집단에 의해 입안되어 개발된 정책이 공청회라고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으나 이 역시 요식 행위로 그치는 일이 많다. 이는 비단 과학기술 분야만 아니고 모든 분야가 안고 있는 문제이다.우리는 국제화다양화개인의 창의가 중요시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21C의 특징은 한 영역의 문제가 그 영역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와 단체개인의 일도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학문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와 정책이 어느 한 집단에 의해 추진될 수 없는 시대를 맞았다. 정치와 정책 뿐 아니라 추진 전략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나라도 이제 NGO(비정부기구)와 국민 개개인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되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현상을 제16대 총선을 통해서 분명히 보았다. 이와 같은 현상은 날이 갈수록 더해 갈 것이다. 큰 정치 못지 않게 큰 정책과 큰 전략이 중앙정부 뿐 아니라 지방정부 나아가서 기업과 단체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 되고 있다./이광영(전북대 초빙교수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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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5.05 23:02

[전북칼럼] 유고사상과 선비정신의 부활을 주창하면서

중학교 때 신학기에 학교에 제출하는 가정환경조사서의 종교 난에 유교라고 쓰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 아버님께서 작성하시면서 유교라고 쓰시던 모습을 어깨너머로 지켜보던 영향이 아닌가 싶다. 결혼 후에 아이들 학교에 제출하던 가정환경조사에도 한동안 유교라고 적어 넣다가 집사람이 유교가 무슨 종교냐고 핀잔을 주는 바람에 그때부터 종교 난은 빈칸으로 남겨 두게 되었다. 왜 때아닌 종교논쟁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작금의 혼란스러운 정치나 어려운 경제 상황을 떠올릴 때마다 우리의 오랜 문화적 가치인 유교정신을 다시 한번 이 땅에 부활시켰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1980년대 일본을 중심으로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이른바 5 용들이 세계 경제사에서 유례가 없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보이자, 세계의 유수한 경제학자들이 경제발전론적 관점에서 그 원인을 찾아 새로운 발전모델을 제시하게 되는데 이른바 동아시아적 개발모형 또는 유교자본주의의 역할 등이 바로 그것이다. 서구의 자본주의가 청교도정신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문화가 그 이념적 기초를 이루고 있다면, 동아시아에는 가족, 교육, 윤리도덕, 근검절약정신 등을 중요시하는 유교문화가 경제발전의 주 요인으로 작용하였다는 논지이다. 마침 동남아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급속히 한국과 일본까지 확대되자 위기의 원인을 이번에는 역으로 동아시아적 성장방식, 예컨대 재벌의 집중이라든지 가부장적 정부의 역할 등 경제외적인 요인에서 찾는 학자들도 나오는 모양이지만 유교정신을 학문적으로 어떻게 정리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지만 나 스스로는 다섯 개의 덕목으로 개념화하여 나름대로 지키려고 애를 쓰곤 하는 데 바로 근(勤)검(儉)청(淸)효(孝)인(仁)이다.근면하고 검소하다는 것이야말로 말은 쉽되, 실천은 어려운 법이지만 경제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저축률 확보와 근로자 개개인의 생산성과 직결되는 덕목들이지 않는가?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금융소득종합과세와 같이 조세정책적으로 공평과세 실현부분만 지나치게 강조하여 국민들의 근검절약 정신을 약화시키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 싶다. 지방재정도 선거 기간 중에 부풀려 정쟁의 대상으로 이용당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지만, 어떻든 지방채무가 많은 것은 사실인지라 도정을 추진하는데 한푼의 예산이라도 낭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이조시대의 청백리를 본 따 한때 우리 정부에서도 '청백리상'을 제정한 바도 있지만, 깨끗하게 공직생활을 끝마치기를 바라지 않는 공직자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새 천년이 시작되었는데도 내가 공무원 햇병아리시절일 적에 서슬이 퍼렇던 서정쇄신바람이후 25 년을 한결같이 '사정당국의 강도 높은 공직비리척결 '이라는 기사가 연중행사처럼 나올 때마다, 박봉에 국리민복을 위한다는 오직 한가지 자긍심마저 깎아 내리는 것 같아 서글퍼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끼니를 굶어도 남의 재물을 탐하지 않던 선조 들의 고귀한 선비정신을 오늘에 되살릴 수만 있다면 공직의 명예와 국민의 신뢰도 자연히 따라오지 않을까 싶다.효(孝)와 인(仁)이야말로 서양문명이 유교문화를 가장 부러워하는 덕목일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희생도 기꺼이 감수하고, 성장한 자식은 늙으신 부모님을 봉양하는 우리네 전통이야말로, 노인복지비용으로 허덕이는 서구사회에 비교하면 국제경쟁력 중의 경쟁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또 사회에서, 윗사람은 아래 사람을 인(仁)으로서 대하고, 아래 사람은 윗사람을 공경으로서 대하면 가정불화니 직장폐쇄니 극한대립이니 하는 살벌한 풍경들은 적어도 우리 주위에서 사라지지 않겠는가?/이성렬(전북도 행정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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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4.28 23:02

[전북칼럼] 고마운지구 그 거대한 정수기

한줄기의 봄비가! 엊그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봄비가 산불 걱정과 뿌연 하늘을 말끔히 씻어 내렸다. 산야의 모든 것들에게 본래의 색상과 생동감을 되찾아 주어, 우리 모두가 그 가운데서 봄기운을 만끽할 수 있었다. 우리 지구에는 막대한 양의 물이 있고, 지구 시스템은 태양의 힘을 빌어 끊임없이 그 물을 정수하고 있다. 즉, 수표면에서 증발된 물 즉 증류수가 구름이 되어 떠돌다가 비가 되어 내리고, 모든 생명들에게 신선함을 나눠준 후, 다시 바다에서 만나게 되는 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 가운데 육지를 스치고 지나가는 극히 적은 양의 물로 인하여 인류의 희비가 엇갈리곤 하는 것이다. 지구 표면에는 약 13억 5천만 세제곱 킬로미터 부피의 물이 있는데, 이는 한반도를 7천여 킬로미터의 물기둥으로 덮을 수 있는 수량이 된다. 이 중 97% 이상이 소금기 많은 대양의 물이고, 빙산 빙하 등이 2% 넘어, 나머지 1%에 크게 못 미치는 양의 물이 육지와 구름 속에 있다고 한다. 게다가 육지와 구름 속의 물 가운데 지하수가 80%를 차지하여, 우리 눈에 보이는 내륙의 호수, 강수, 내해수 등을 모두 합산하더라도 이는 지구상 물 총량의 1/6000에 불과하다.지구 표면적의 2/3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대양은 증발되는 물의 대부분을 제공한다. 대양은 또한 증발되기 전의 대양 표층수를 지극히 깨끗하게 유지해주는 또 하나의 정수 작용을 담당하고 있어 실로 중요한 물 환경이다. 대양의 평균 수심은 4천여 미터로서 표층 1/4을 제외한 나머지는 섭씨 영도의 찬물 덩이여서, 뚜렷하고 항구적인 두 개의 물 층으로 되어 있다. 이는 상층에서 하층으로 가라앉은 물질은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도록 꾸며진, 기가 막힌 표층 정수 시스템인 셈이다. 수천 년간 그렇게 맑아진 대양 표층수가 증발하여, 소금기 없는 증류수만이 구름으로 변하는 것이다. 비와 눈이 내려 유지되는 지표수를 또다시 정화하는 것은 지표수 4배 규모의 지하수 체계를 통한 지하 정수 시스템이다. 그 물이 좋다하여 샘물로 또는 약수로 즐겨온 우리가 아닌가? 물론 호수와 강수와 같은 지표수에도 다양한 천연 정수시스템이 있다. 이를 호소와 하천의 자정능력이라 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태양에너지를 이용하는 수중 식물과 분해 세균 등이 저절로 작용하여 지표수가 깨끗해지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양, 구름, 지하수, 지표수의 자정능력, 이들 하나하나는 놀랍고도 거대한 정수기인 지구를 돋보이게 한다. 참 고마운 지구이다.한반도는 물에 관한 한 천혜의 자연환경을 타고났다. 우선 연 평균 강수량이 1.3미터나 된다. 이 풍부한 수량이 지표수와 지하수를 반복적으로 교체해 준다. 특히 계절적인 집중 강수는 지표의 많은 노폐물들을 연례적으로 씻어 내려 준다. 주변 바다는 어떠한가? 동해는 대양의 특성을 띠는 가까운 바다로 우리 곁에 있어, 상층의 깨끗한 해수나 저층의 부영양 해수를 언제든지 쉽게 활용할 수 있다. 국토의 2배나 되는 서해는 생물생산력이 매우 높은 대륙붕 역인데, 게다가 간만에 따른 조차가 커서 연안역을 신선한 생물 고밀도 해역으로 유지하기에 유리한 여건이다. 이토록 놀라운 혜택을 베풀어 주는 우리의 천연환경을 돌아보며,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고마운 지구 정수시스템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또 이를 어떻게 대해 왔던가? 이 지구 혹은 우리의 한반도가 충분히 광대하여, 아직 물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물에 대한 다툼의 세기가 되리라는 말 앞에서 우리는 미래에 대비하고 있는가?지구의 거대한 정수시스템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아는 바가 매우 적다.인류는 그 동안 지구시스템의 일부가 아니라, 오히려 그 운영자인 것처럼 지내왔다. 깨끗한 물을 위한 노력을 지금부터 시작하는 것이 10년 후에 시작하는 것보다 1백배는 유리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최선을 다 한다면, 금세기는 "물에 대한 다툼의 세기"로 기록되지 않을 수도 있다.비가 갠 봄 하늘을 바라보며, 떨칠 수 없는 생각을 하나 더 적어 두고 이 글을 맺는다.한반도에서 판매되는 식수 한 병 값이 현재의 1백배 되는 날이 온다면 우리 후손들은 어찌하나? 만약 우리 물이 세계 생수 시장에서 최고품으로 호평을 받는 시대가 온다면 그들은 얼마나 좋을까? /이원호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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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4.21 23:02

[전북칼럼] 축하만 할 수 없는 당신들

산 기슭 벼랑에 붉은 산복숭아꽃이며 동네 지붕 너머 살구꽃, 푸른 솔숲 아래 진달래 꽃들이 봄바람에 앞을 다투며 피어난다. 이 나라 산천은 참으로 눈이 부시다. 이그러질대로 이그러지고 구겨질 대로 구겨진 인간들의 삶과는 대조적이기 그지 없다. 저들은 누가 가꾸지도 않았고, 무엇을 열심히 배우지도 않았다. 돈을 벌지도 않았고, 사랑에 애걸복걸 하지도 않았고, 남을 미워하지도 않았고, 어디를 멀리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아무도 처다보지도 않는 사거리에서 비굴하게 웃으며 표를 구걸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저 나무들은 제자리에 서서 저렇듯 아름다운 꽃을 피워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저것들은 그저 저절로 아름다운 것이다.선거를 끝냈다. 생각하면 괴롭고 면면을 보면 싫었다. 누구를 믿을 수도 없었고, 믿는다한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생각 앞에서 나는 절망스러울 뿐이었다. 지도자라는 사람들, 많이 배우고, 돈이 많고, 잘난 사람들이 하는 일들을 우린 수십년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보아 왔다. 그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다짐을 하고 맹세를 했다. 그들은 늘 우리들에게 정직과 질서와 겸손과, 절약과 근면과 성실을, 그리고 애국과 애향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들에게 보여 준 것은 참으로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짓들뿐이었다. 그러나 우린 발등을 찍는 심정으로 그들을 국회로 다시 보내 주었다. 우울하고, 참담하고, 부아가 치밀어 오르지만 그래도 우리 같이 못난 사람들이 믿을 것이라고는 한표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 가서 또 무슨 짓들을 했던가. 아, 정말이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는 열 받는다. 다른 것은 다 그만 두자. 평생 동지라고 이마를 마주대고 한솥 밥을 먹다가 공천에서 탈락 되었다고, 어쩌면 그렇게 입장을 싹 바꿔 자기가 몸담았던 당을 빠져나와 얼른 당을 새로 만들어 어제의 자기 당을 그렇게나 욕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라를 이끌겠다는 어른들이 어쩌면 그렇게 아이들 소꼽장난질만도 못한 짓거리들을 까놓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정치는 거짓이고, 사기이고, 인간성을 헌신짝처럼 걷어차버려도 된단 말인가. 지난 선거 동안 그 같잖은 유세들을 들으며 사람들은 참네, 뭣 묻은개가 뭣 묻은개 나무라고 있네 사둔 남말하네, 너나 잘혀 그렇게나 좋은 대학을 나와 공부를 그렇게나 많이 했으면서도 어쩌면 하나 같이 그렇게 유치하고, 비겁하고, 짜잔하고, 째째하고, 초등학교 1학년만도 못한 말들을 그렇게나 서슴없고 뻔뻔스럽게 해대다니, 그러면서도 그렇게 죽일놈 살릴놈 욕을 하면서도 우린 선거를 했고, 그들은 다시 선량이 되어 서울로 갔다.국회의원이 된 당신들은 지금 뛸 것 같고, 날 것 같아 기고만장 하겠지만, 그러나 아니다. 절대 아니다. 우린 당신을 믿어서 당신이 좋아서 당신을 찍은 것이 아니라는 무서운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신에게 찍은 내 한표가 서늘하게 당신의 등에 박히는 야유일수도 있고, 권력욕에 찌든 당신들의 그 해 묵은 얼굴을 후려치는 채찍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당신들을 지금 축하 할 수가 없다. 당신에게 표를 던져 놓고도 안심하지도 기뻐하지도 못하는 이 나라 백성들의 저 속 깊은 분노를 당신들은 진정 두려워 해야 한다.산마다 꽃들이 우우 피어난다. 보아라. 산천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가 저 산에 들에 언덕에 표를 주었는가. 돈을 주었는가. 권력을 주었는가. 이 나라 산천은 참으로 소박하고, 그리고 아름답다. 산과 물, 그리고 나무랄 것 없이 순박한 사람들, 내가 던진 막막한 한표가, 우리들이 던진 괴로운 한표 한표가 저 산천의 꽃으로 피어나 향기가 되고 감동이 되어 이 땅 구석구석에 퍼지기를 진실로 고대하고 나는 희망한다.우리들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정치와 권력은, 그 사회의 가장 현실적인 최고 교육환경이다. 정치에서 향기가 나지 않으면 이 땅 아무곳에서도 인간의 향기는 없다. 피어라 저 들에 들꽃아. 저 산에 산꽃들아./시인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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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4.14 23:02

[전북칼럼] 대중문화는 정보화시대의 국부

최근 발표에 의하면 15년 이내에 마이크로 소프트社나 야후 닷ㆍ컴을 제치고 「타임-워너」社가 미래 정보화 사회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한다. 「타임-워너」社는 워너브라더스 영화사, 타임(Time)주간지, 워너뮤직, 케이블위성방송인 CNN, HBO, TBS 및 AOL과 전략적 제휴등을 통해 다(多)채널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이러한 채널에 공급할 수 있는 대중문화ㆍ정보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정보네트워크 구축 뿐만 아니라 콘텐츠가 우수하다는 것이다.제3의 혁명(Big-Bang)이라 일컬어지는 정보기술혁명은 1920년대에 영국의 수학자 "튜링(Turing)"에 의해서「튜링머신」이라는 보편적인 기계가 수학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이 알려져 온 이래, 진공관을 사용한 컴퓨터를 시작으로 1960년대에 이르러 컴퓨터에 트랜지스터를 사용하면서 가속화되었다. 20세기에 컴퓨터를 이용하여 정보기술을 발달시켜서 최대의 혜택을 본 국가는 미국이었다. 이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1944년에 제정된 「제대 군인원호법」일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징집한 청년에 대한 종전후 처리문제가 또 하나의 고민이었다. 이에 미국정부는 제대 군인에 대해 국가보조로 대학교육을 무료화 하였으며, 이 세대가 오늘날 미국 정보혁명의 주역이 되어 왔던 것이다.그러나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향후 정보화가 진전되면서 콘텐츠중심시대로 접어들 것이며 이 분야에서도 미국이 앞설 것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대중문화를 지배하면 세계를 지배하게 되며, 문화는 곧 부(富)를 창출하고 (culture is money), 대중문화 확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콘텐츠(contents)」이기 때문이다(contents is king). 세계 모든 국가 중에서 콘텐츠산업이 가장 발달한 국가가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이 앞설 것이라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정보화 발전은 정보기술(IT)을 이용하여 진전되어 왔고 대략 4단계를 거쳐오고 있다. 1964년1981년 동안 기업을 중심으로 「시스템변화시대」, 1981년1994년 동안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PC시대」, 1994년2005년 동안 소비자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network)시대」, 그리고 세계 전 인구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시대」가 도래하고 2015년경이 되면 그 정점에 이를 것이라 한다. 일반독자에게는 약간 생소한 용어이지만, 「콘텐츠」란 문자/영상/음악 등의 정보소재를 가공제작하여 사용자에게 정보형 상품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관련산업은 크게 영상분야, 정보분야, 음악분야 및 컴퓨터 분야로 분류된다. 영상분야는 영화제작, 에니메이션 제작 및 TV프로그램제작, 정보분야는 출판, 신문 및 인쇄, 음악분야는 레코드제작, 음악제작 그리고 컴퓨터 분야는 관련소프트웨어개발 및 게임 소프트웨어제작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콘텐츠산업」분야는 네트워크가 절정을 이루는 시기에 서로 융합하면서 정보화 발전을 완성시켜 나가게 될 것이다. 「콘텐츠산업」 이전 단계인 「네트워크시대」의 최종산물은 지상파(地上波), 케이블, 위성방송 및 인터넷으로 호칭되는 다채널시대의 도래이다. 향후 5년후에는 5백개5백50개의 이용 가능한 채널이 있을 것이라 한다. 조만간 이러한 풍부한 채널을 통해 소비자에게 공급할 상품이 부족하게 되는 시대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러한 부족이 콘텐츠라는 새로운 산업을 발달시키게 되며, 이는 네트워크시대의 정보기술과 통합될 때 그 발전속도는 매우 빨라질 수도 있다.우리는 이제 겨우 「네트워크시대」의 초기에 접어들고 있다. 영상압축기술, 전자상거래, 무료인터넷전화, 100만인을 위한 컴퓨터교육이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가 정보화혁명시대의 핵심분야 진출에 대한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분명히 「콘텐츠산업」이 그 핵을 이룰 것이고 그 기저에는 대중문화의 발전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직시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책담당자는 정보화사업지원과 더불어 대중문화 발전에 지원을 병행해야 절름발이 정보화사회를 피할 수 있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국민세금을 네트워크 구축 및 네트워크 이용방법에 투자하고서 「콘텐츠-알맹이」를 또 다시 수입하는 정보상품 수입국이 되어서는 안될것이다./성제환(원광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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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4.07 23:02

[전북칼럼] 음식문화, 교통문화 그리고 청소년 흡연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에, 나에게 그럴만한 힘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 사회에서 꼭 줄여보고 싶은 3가지가 있다. 음식쓰레기의 양, 교통사고 사망률 그리고 청소년 흡연이 바로 그것이다.어릴 때 조부조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은 끼니때마다농부들이 어떻게 지은 곡식인데 밥알 남기지 마라란 말씀을 항상 듣고 자랐다. 나도 그렇게 잔소리를 한 덕분인지는 몰라도 우리 집 아이들은 공기에 밥은 남기지 않는다. 그런데 작년말 전주로 부임한 이후에 한정식 집에서 빽빽이 차려놓은 상을 내려다 볼때마다 음식물 쓰레기 창조에 나도 일조(一助)를 하는구나하고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행정적으로는 좋은 식단제도도 시행해 보고, 감량의무제도도 시행해 보고 여러 가지 노력은 해 본 모양이지만 별무효과(別無效果)인상 싶다. 평상시 메뉴에서 한두가지만 상에서 빠져도, 먹은 게 없는니 음식이 부실해 졌느니하고 손님들이 불평을 하니 음식 가지 수를 줄일 수 없는 식당사정도 이해는 간다. 작년에 우리 도에서 발생시킨 음식물쓰레기만도 하루에 3백90톤이 넘는다. 이 중 32%정도는 사료 등으로 재활용된다고 하지만 나머지는 천상 묻어서 처리할 수 밖에 없고 이나마 2005년도부터는 시지역의 음식물쓰레기는 직매립(直埋立)이 금지될 전망인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중국이나 일본음식처럼 자기 먹을 만큼만 접시에 담는 음식문화를 억지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고, 역시 음식물을 남겨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국민들 사이에 형성될 때까지 이렇게 글이나 쓰면서 기다릴 수 밖에 없을 것인가?몇 년 전이던가, 서해안에서 비브리오균이 든 어패류를 먹고 두어명이 식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전 국민이 해산물을 기피하여 어민들과 일 식당주인들이 여름철 내 낭패를 본 기억을 할 것이다. 그런데 식중독으로 인한 사망자 수의 몇 배, 몇 십 배의 사람들이 거의 매일 동일하면서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원인으로 죽어가는데도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는 것인지? 인간의 비합리적 사고의 극치가 아닌가 싶다. 작년도에 우리 도 관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총 1만3천7백여건이고 이로 인해 6백80명이 숨지고 2만2천여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바 있다. OECD에 가입한 선진국 29개국중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수는 8.7명으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고, 노르웨이 0.9명, 스웨덴이나 일본 1.2명 등과 비교해 보면 정말 부끄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관에서도 굴곡도로를 편다든지, 과속하는 지점은 아예 중앙선을 차단한다든지, 과속단속 카메라 설치를 대폭 확대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안전운행을 위한 시민의식의 함양이야말로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가 싶다.또 하나의 불명예스런 통계를 인용해 보자. 최근 한 단체가 고등학생 4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남자고교생의 53.4%, 여자고교생의 29.3%가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15세 이상 흡연률이 28%, 독일 21.5%, 일본 14.8%에 비하면 이것도 세계 제일이 아닌가? 담배가 폐암의 주된 원인이 된다든지, 소화기궤양이나 각종 혈관질환을 유발하여 심근경식을 일으킨다든지 하는 경고는 잠시 접어 두더라도, 우리의 자라나는 2세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는 어른들이 강력히 나서야 한다. 학교규칙에 분명히 금연규정이 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그 많은 학생들이 담배를 어떻게 피울 수 있는지 기이하기까지 하다. 수십년 피워 온 어른들이야 금연을 단행하기도 힘들고, 또 그렇게 피우다 빨리 건강을 해치겠다는데 누가 말릴까마는,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깨끗한 허파만은 숯덩이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희망이자 미래이므로/이성렬(행정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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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3.31 23:02

[전북칼럼] 아이를 유학 보내는 심정으로

올 봄 막내 딸아이가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입학식 당일에만 보호자가 동행하고, 그 후에는 자녀 혼자서 등교하게 하는 학교 방침"에 학부모님의 협조를 부탁드린다는 안내문을 받았다. 그 후 며칠 동안은 아내가 등교 하교하는 딸을 "멀리서 지켜보며" 따라 다니다가, 이제는 같은 아파트의 친구들과 같이 등교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 마음속에 다소의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처음으로 혼자서 학교에 다녀온 아이를 보고, 미래의 가능성을 보는 것 같아 크게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한다. 훗날, 딸아이가 진학하기 위해 서울이나 혹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면, 처음 떠나보내는 날, 부모된 우리의 심정은 어떠할까? 그리고 반년 또는 일년이 지나서 장학생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지난 100년 동안 우리 사회가 겪어온 급격한 역사적 변화의 와중에서, 새로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아쉬움의 흔적들을 느낀다. "군신, 반상"으로 대표되는 경직된 신분 체계의 이조 왕정 말기에서, 우리나라의 일차산업 자원을 효율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재편된 일제 강점기의 사회 구조로 넘어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놀람과 절망"이 있었을까? 1960년대 이후 2차 산업의 발전과정에서, 농사를 짓는 것보다 농기계를 생산하거나 비료를 생산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 같은 풍조가 만연하였을 때, 대대로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분들의 느낌은 어떠하였을까? 새로운 산업의 도래는 이 시대에도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자동차나 컴퓨터 등의 공산품을 외국에 대량 수출하여 무역수지를 개선하는 것이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는 길이라고 알아 왔던 우리에게, 영화 한편으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연간 총 이익을 상회하는 이익을 창출하였다거나, 야구 선수의 연봉이 수억을 넘는다든지, 혹은 미국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사업을 시작한 어떤 분이 다수 기업체의 총수가 되었다는 등의 소식은 3차 산업의 엄청난 잠재력으로 다가온다. 이와 같은 3차 산업의 잠재력에 놀란 우리를 더 몰아 세우는 일이 생기고 있다. 우리는 기존의 산업 분류체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산업시대에 이미 진입하였다. 즉 1차, 2차, 3차 산업이 주종을 이루던 체제에서 전혀 새로운 차원의 산업이 파생되어, 미래 국부의 규모와 국가의 경제적 위상을 좌우할 듯이 다가오고 있다. 일본 정보산업계의 "손정의"씨가 국제적 거부들의 서열에 들었다하고, 최근까지도 자주 들어 본적이 없는 어떤 벤처기업은 현대건설의 규모에 상응하는 "자금"을 보유한 기업으로 급성장하였다 한다. 많은 이들이 공무원들 모두가 컴퓨터를 통한 정보의 활용 및 응용에 능해야 한다고 하고, 주부들의 컴맹 탈출은 필수라고 아우성이다. 그야말로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래서야 제조업을 할 기분이 나겠느냐"는 목소리도 있고, 어떤 이들은 "위험을 안고 있는 거품 산업이 아니냐" 또는 "정보가 산더미처럼 많다고 한들 거기서 무슨 물자가 생기겠느냐"는 걱정도 하고 있어 새로운 시대에 대한 많은 이들의 당혹감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 흐름은 "다수가 놀라거나 화를 낸다고 하여" 역류하게 될 리 만무하다. 오히려 이러한 흐름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지난 역사에서 2차 산업은 1차 산업의 효율을 높여, 최근에는 1960 년대에 비해 극히 적은 수의 농민들이 "미곡생산" 기록을 갱신해 가고 있고, 3차 산업은 1차 및 2차 산업을 도와 필요한 종사인원 수를 격감시킴으로, 새로운 차원의 산업에 종사할 인력의 여유를 지속적으로 창출해 온 것이 아닌가.이제는 "머뭇거릴 시간의 여유가 더 이상 없는 급박한 시대의 흐름"에 처해 있다. 고차산업으로 진입한 이번의 변화는 우리의 국운 상승을 위한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매우 적극적이고 낙관적으로 시대의 세계적 흐름의 한 복판에 서야 한다. 막내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심정으로, 또는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까지 돌보는 심정으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다 보면 이는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그러나 우리의 기상이 "그 아이를 유학 보낼 때"의 신뢰와 기대의 경지에 이른다면 이는 쉬운 일이리라./이원호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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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3.24 23:02

[전북칼럼] 새학기, 우리 다솔이의 까만 눈동자

아침에 출근을 해서 창우, 창희, 다솔이와 뒷산 솔숲에 간다. 아이들은 하낫!, 둘!, 구호를 외치며 양다리, 양팔을 힘차게 내두르며 숲 속으로 난 작은 길을 간다. 창우는 1학년때 나랑 같이 이 숲을 자주 왔기 때문에 앞서 가며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아는 척을 한다. 작년 봄, 잎들이 막 피어날 때 창우는 이 솔 숲의 그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솔잎들을 보며 참, 아름답다.는 말을 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었다. 다솔이는 서울에서 금방 전학을 왔기 때문에 이 솔숲에 대해 전혀 모른다. 다솔이는 커다란 소나무들을 올려다보며 이 나무들이 다 무슨 나무냐고 한다. 내가 다 솔이다. 그러니까 다솔이는 내 말뜻을 몰라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며 예? 뭐요?.한다. 커다란 소나무 숲을 올려다보는 다솔이의 온 몸은 나무처럼 신비함으로 가득차 보인다. 이 큰 나무들이 다 소나무라고 하니, 그럼 소나무가 뭐예요?.한다. 그리고 땅에 떨어져 있는 솔방울을 줍기 시작한다. 창희도 예쁜 솔방울을 한아름 줍는다. 다솔이더러 뭐하게 솔방울을 그렇게 많이 줍냐고 하니, 언니 가져다 준단다. 창희, 올 학년초에 우리 학교 1학년은 창희 한명이었다. 1학년이 한명이어서, 창희는 학교에 오면 너무 심심해했다. 혼자 놀기도 그렇고, 늘 교실에서 내 곁에 붙어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다행히도 며칠만에 서울에서 다솔이가 왔다. 아, 창희는 신이 났다. 다솔이를 만나자마자 다솔이와 창희는 세상에 둘도 없는 하나뿐인 단짝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솔이가 우리 반에 들어올 때, 그 때 창희의 기대감에 찬 얼굴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나 천만 다행인 아름다운 다행을 나는 보지 못했다. 다솔이와 창희 둘을 내 앞에 앉혀 놓고 바라보면 나는 세상이 아름답다. 이들 둘이 호기심 가득찬 그 까만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나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든다. 이 아이들에게 내가 누구기에, 이 아이들이 나를 찾아와 이렇게 호기심 가득찬 새까만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가. 그런 다솔이와 창희의 두눈을 바라보며 나는 미소 짓고, 즐겁고, 신나고, 나는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랬구나. 가슴 서늘한 이 아름다운 사람의 눈동자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 세상을 아름답다고 노래하며 살아 왔구나.봄 햇살이 운동장에 가득하다. 아이들의 운동장 구석에 모여 놀고 있다. 며칠 전부터 아이들은 운동장 구석에 땅을 파 굽이굽이 작은 강모양의 도랑을 만든다. 처음에는 우리 반 2학년 창우와 다희가 장난 삼아 그 일을 하더니, 아이들이 하나 둘 달려들어, 지금은 전교생 18명이 모두 그 일에 달려들어 물을 긷고, 실같은 도랑을 만들어 물을 붓어 옥정호 모양을 만든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이들의 흙장난 모습은 마치 개미들이 부산하게 일을 하는 것처럼 활달해 보인다. 이따금 내가 가서 이게 뭐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입을 모아 이거, 섬진강이요.한다. 넓은 호수, 좁은 계곡, 구불구불 재미있는 물굽이를 만드느라 흙에 서투른 다솔이는 옷이 척척하게 다 젖고 흙범벅되고, 얼굴에는 흙이 튀어 붙어 뽀얀 얼굴이 말이 아니다. 손톱 속에는 흙이 들어가 금방 새까매졌다. 그래도 아이들은 자기 세상을 만들며 즐겁고 재미가 있다.아이들이 모두 돌아갔다. 아이들이 놀다 돌아 간 곳에 다 찌그러진 양동이, 자리 부러진 괭이, 물길어 나르던 빈 음료수 깡통, 호스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운동장에 며칠 째 어찌나 많이 물을 가져다 부었던지 그 근방 흙은 촉촉하게 젖어 있다. 온갖 모습으로 움직이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이들 중 서울에서 온 다솔이의 서툰 모습이 생각나서 나는 자꾸 웃음이 나온다. 다솔이는 궁금한 것도 참 많다. 뭐든지 나에게 와서 까만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끝없이 캄캄한 다솔이에게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할까. 나는 공동체를 잃어버린 이기주의가 판을치는 우리 사회의 무서운 현실과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고 아이들에게 경쟁력만을 부추기고 독려하는 교육 현실을 돌아다보며 진짜 겁나고,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아 깜깜하게 몸서리를 친다./시인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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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3.17 23:02

[전북칼럼] 인간게놈

최근 보도자료에 의하면 2000년 중반에 「인간게놈」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리라 한다. 「게놈」이란 '생물 한 종(種)이 가지고 있는 염색체의 기본 수(數)'로 독일의 "빙클러"라는 과학자에 의해 정의되었다. 학문적으로 「게놈의 도표화」란, 「게놈」의 개념을 이용하여 유전의 모든 현상을 분석(1930년대 일본의 기하라 히토시 박사에 의해서 학설이 확립됨)하는 것을 의미하며 2025년을 전후하여 유전자에 대한 신비가 벗겨질 전망이다.물론 "인간게놈"에 대한 완전한 해석은 첫째, 인간을 유전자적 질환으로부터 해방시켜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켜 줄 수 있으며, 둘째, 인류가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우생학을 실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 신체의 DNA에 미묘한 변화로 우리 생명을 한 뼘 정도 연장시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된다. 설사 아담과 이브가 인간세계에 죽음을 몰고 왔으며 이로 인하여 기독교 신화가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또한 정신이상자, 간질환자, 신체장애자 및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피임을 지지하기보다는 유전자 개량으로 이들에게 치료가 가능하고 인간다운 삶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다.그러나 「인간게놈」에 대한 완전한 해석과 현실적 응용이 실현가능해 질 때 과연 이러한 좋은 점만 우리에게 주는 것인가? 「게놈」의 조작은 인간구성 및 행태를 변하게 할 수 있고 그 변화에 대한 어떠한 조치를 취하려고 할 때 는 이미 늦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즉 「게놈」의 조작은 ①환경파괴 ②민주주의의 파괴 ③지식의 한계성을 노출하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 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환경 파괴로 인류의 종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점이다.게놈의 조작은 환경파괴로 인하여 지구와 함께 사는 이웃으로서 인간이 아니라 750억 톤이나 되는 지구생물자원의 잔인한 파괴자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있다. UN의 식량농업기구 자료에 의하면 50억 인간의 총 무게는 2.5억 톤으로 지구생물자원의 0.33%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총 무게의 4배가 넘는 물고기갑각류의 10%를 매년 인간이 포획하고 있으며 이는 인간자신과 인간이 사육하고 있는 동물의 먹이로 이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지배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이 약 100년 후에는 현재 인구의 2배가 넘는 100억이 될 것이라 한다(게놈의 조작에 의해 가능성은 높아짐). 비율로 보면 0.33%에서 0.66%로 미미한 증가이고, 몸집이 큰 야생동물은 큰 폭으로 감소하고, 나무식물해초류에서는 적은 감소가 예상된다. 그리고 유전자 변이로 가슴살이 2배 이상 증가한 닭, 젖이 너무 커서 누워지내야 하는 젖소, 그물에 걸리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진 물고기 등의 출현으로 식량문제는 해결될 것이다.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던 1790년부터 현재까지 지구상 인구는 800%나 증가해 왔지만 인간은 지구공동체에서 좋은 이웃이었다. 그러나 인류는 경솔한 장님처럼 화석연료, 다이너마이트와 불도저, 화학비료와 농약,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등으로 1년에 2만 여종의 동식물을 지구상에서 멸종시키고 있다. 인간이 총 생물자원의 0.33% 밖에 이르지 않다 하더라도 지구상 모든 오염의 99%는 인간이 저지르고 있다. 「인간게놈의 도표화」완성과 더불어 이러한 수치에 대해서 아주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지구환경은 균형인 상태에서 존재해 왔으며 이러한 현상은 지속되어야 한다. 과학적으로 대기권의 다양한 가스비율과 바다 속에 녹아있는 염분과 같은 화학물질이 수 백 만년 동안 유지되어 왔다는 "가이야(Gaia)가설"과 같은 균형개념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욕망과 절제간의 정신적 균형 또한 인간의 수명연장에 절대적인 요소라는 점이다. 풍부한 에너지와 소비재로 호화스러운 선진국가의 삶을 보아왔던 수 십억의 빈곤계층 인류가 그러한 풍요로움에 대한 욕구를 쉽게 포기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다. 과거에 굶주려 왔던 수 십억의 인류와 풍요로움에 가득 찬 인류사이에 새로운 정신적 균형이 탄생되어야 한다.인간이 지구생물체와 함께 사는 이웃, 물질적 소비욕망에 대한 계층간 균형이 유지될 때 50억 인간을 위한 자리는 있고, 「인간게놈」에 대한 완전한 이용으로 100억이 되더라도 그 이상의 여지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우리 인간은 대단한 실수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게놈의 도표화」로 인한 유전자변이는 생산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성재환(원광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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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3.10 23:02

[전북칼럼] IMF경제위기는 더 활용되어야 한다

내가 어릴 때 아버님 친구 분들이 집에 놀러 오셔서 아버님의 오래 된 구두를 볼 때마다 '그 신발 더 아껴 신어서 나중에 성열이 한테 물려 줘야지!' 하고 놀리시던 기억이 난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도 신발 한 켤레를 10년은 넘게 신으셔서 어머님이 아버님 구두 한번 바꿔 드리려면 며느리들을 두어 번은 동원해서 설득하셔야 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마산 본가에는 625전에 제작된 제네랄 일렉트릭의 시커먼 선풍기가 여름철이면 아직도 위세 좋게 잘 돌아가고 있다. 구두쇠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이를 드시면서 물자를 절약하시는 강도가 점점 더 심해지시는 연유에 모두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나는 자식들에게 근검절약정신을 심어주시려는 나름대로의 노인의 고집이라고 이해를 하고 있다.IMF사태가 벌어져 온 나라가 그야말로 한탄과 절망감에 젖어 있을 때, '지금이야말로 하늘이 대한민국을 버리지 않고 기회를 주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고 뜻 있는 일부 식자들이 주장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기업 손익구조에 대한 분석도 없이 그저 외형만 키워서 '재벌 순위 몇 대 기업'하는 허영만 채울 수 있다면 독약인지도 모르고 돈을 끌어쓰는 사업 관행도 바꾸고, 노조운동은 그저 세게만 하는 게 선(善)이 아니며 사과가 익기도 전에 따먹기보다는 노사협력하에 농사를 잘 지어서 나중에 과실을 나누는 게 근로자에게 훨씬 이득이라는 사실도 배우고, 국민소득 만 불의 허상에 가슴이 부풀어 많은 국민들이 7080년대의 서울 강남의 부동산 졸부들처럼 세계전역의 관광지역 쇼핑센터의 호구노릇 한 것이 바로 연간 수십억 불에 달하던 무역외수지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도 배우고, 자라나는 2세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여 세계화시대에 경쟁력을 배양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그저 아끼고 절약하며 좋은 물건 만들어 열심히 외국에 내다 파는 것이 유일한 IMF탈출방안이란 사실을 국민 모두가 뼈저리게 느꼈으면 하는 등등의 바램은 나 혼자만의 염원은 아닐 것으로 믿었다.경제위기 첫 해인 98년에는 그래도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보인 한 해였다. 금반지도 모으고, 해외여행도 자제하였으며, 사치성 소비도 급감하였다. 그런데 벌써 그렇지 않은 징조들이 보이고 있는 모양이다. 며칠 전 한은 통계에 따르면, 외산 담배의 수입액은 1억47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50.7% 늘었고, 외제 승용차의 경우 98년 한해 동안 1260만 달러에 불과했던 수입액이 지난해에는 5890만 달러로 늘어나 증가율이 무려 378.9%를 기록했다. 그 외에도 음향기기 111.4%, 고급TV 81.3% 등 사치성 고급소비재들의 수입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해외여행수지도 벌써 적자로 돌아섰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이래서는 안 된다. IMF위기를 통하여 우리 정부와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와 일반상인 그리고 학생들까지 모든 국민들이 뼈저리게 느껴서 교훈이 몸에 베이지 않는 한 우리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역설적인지는 모르지만 IMF 탈출이 조금은 서서히 이루어 저서,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살이에서부터 기업이나 가계의 살림살이까지 아끼고 절약하는 풍조가 정착되지 않는 한 언제 또 제2제3의 IMF사태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만석꾼 살림 3대가 못 간다' 는 격언이 있다. 아들 대에는 아버지 고생한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도 재산보전이 되지만, 재산 때문에 나태하고 사치스럽게 자란 손자 대에 와서는 대개 많던 재산이 없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아이들 앞에서 가끔 엄지에 구멍난 양말을 바늘로 깁곤 한다. 나중에 아버지가 남기는 작은 교훈이라도 될까? 하는 기대 하나로/이성열(도 행정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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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3.03 23:02

[전북칼럼] 발상의 대전환을 위하여

새 천년이 시작되었다고 많은 말을 하고 듣고 한지가 벌써 두 달이 되었다. 새로운 착상, 신개념, 신세계 질서, 사이버 천년, Y2K 문화 등에 대한 말과 글의 홍수 속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지난 세기를 돌이켜 보면, 백여 년 전에는 외세의 간섭으로 인해 국가의 실질적인 주권이 유명무실해 졌고, 오십여 년 전에는 주변국의 상황변화로 회복받은 주권을 행사한 지 오년 만에 또다시 내전에 휩싸였다. 이 때문에 이차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일본보다 10여 년 늦게 국가의 운영을 재개한 셈이며, 그때의 일본은 이미 한국전쟁의 국제경제적 특수를 누린 핵심 국가의 하나였다. 양분된 한반도의 절반을 추슬러 노력한지, 오십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새 밀레니엄이라 한다.창의성이 자본과 인력 그리고 하드웨어를 지배하는 새시대가 도래하여, 우리 민족의 장점을 맘껏 발휘해 볼 수 있는 희망의 세기라고들 한다. 실제로 최근에는 고졸 학력의 "컴퓨터 게임광"이었던 분이 어느 벤처기업의 사장으로 성장하고, 젊은 나이에 많은 부를 축적했다는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다. 과거에도 이러한 우수성에 대해 간간이 들어왔다. 테이프 없는 녹음기, 성냥 없이 불붙이는 담배, 니코틴 흡착층을 삽입한 담배 휠터, 자전식 방향전환 자동차 등의 발명 안들이 외국기업에 판매되어 국제적 특허상품으로 개발된다는 등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 이전에는 우리 속에서 김치와 한글과 한복과 같은 세계적인 문화가 우러나왔다.이제 우리는 발상의 대전환이 너무도 절실한 역사의 문턱에 도달하였다.바다와 대륙에 관한 과학적 발상의 전환의 한 예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한다.지구의 탄생 이후 대륙과 해양의 생성에 대한 오늘날의 정설은 언뜻 듣기에는 대단한 것 같으나, 실은 작은 발상의 전환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처음 불덩이였던 지구가 식어가면서 껍질부터 고화되어 지각으로 변해 가는데, 속에 있는 뜨거운 것들이 계속 유동하면서 가벼운 성분은 밖으로 밀려나 바다 물과 대륙의 기원이 되고, 무거운 성분은 점점 더 지구 내부로 모인다는 것이다. 45억 년 간 뿜어낸 수증기가 모여 바다가 되었으며, 분출된 용암덩이가 쌓여 오늘날의 대륙이 되었고, 가끔씩 지구 내부의 뜨겁고 무거운 덩이가 꿈틀거리면 지구 껍질이 깨어지고 틈이 생겨, 거기서 새로운 대양의 바닥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대륙도 이리저리 움직인다는 것이고, 아프리카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은 한때 한 덩이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학계에 최초로 발표한 독일인인 알프레드 뵈게너는 1915년에 최초로 책을 내고, 기존 개념에 집착하던 당시의 학자들에게서 혹평을 받다가, 사후 20년 만인 1950대에 그의 발상이 재조명을 받게 되어, 오늘날은 그의 발상이 오히려 정설의 자리에 우뚝 서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한 일본인 과학자가 유명한 과학잡지인 "네이쳐"에 대륙의 기원에 관한 전혀 다른 생각을 발표하였는데, 과학적인 자료보다도 그 발상이 특이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는 오늘날의 대륙은 외계에서 날아든 천체의 파편이 지구표면과 충돌하여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면서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 생각은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나 실제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그러나 위대한 발상의 대전환은 평소 몇 가지의 평범하고 상식적인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첫째로,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변함없이 성실하게 매일을 지낸 사람들 중에서 그런 발상이 나온다. 어디 뿌리지도 않은 것을 거두는 그런 일이 있으랴!둘째로, 이미 알려진 것은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자신감이 새로운 발상을 낳는다. 수년 전 마이애미대학교 해양학부에 방문연구 기간 중 함께 지내던 노 교수 한 분의 말씀을 잊을 수 없다. 우리가 배워서 알고 있는 생물의 종류가 존재하는 종류 전체의 극히 일부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10여 년간 카리브해 연안을 찾아다닌 끝에 "수소기체"를 발생시키는 미생물인 해양남세균을 찾아내었다.셋째로, 현재의 내 위치에 만족하지 않더라도, 충실하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마음의 평정과 여유가 새로운 생각을 낳게 된다. 비록 내일 지위가 달라진다 해도, 오늘 해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프로 정신이라 할까. 아! 나는 이러한 가능성을 가진 계층이 오늘 우리와 함께 살고 있음을 보고 즐거워한다.소위 신세대들, 우리의 청소년들 가운데서 그 서광을 본다. 그들의 비범한 철학과 행동을 위험하다고 걱정하기보다는 새 시대를 앞질러 가는 위대함으로 읽고 싶다./이원호 (군산대학교 해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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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2.25 23:02

[전북칼럼] 선거, 그리고 아름다운 그 길

그 길은 아름다운 길이다. 강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작은 논을 지나 산아래 밭가로 그 길은 나 있다. 조금 더 가다보면 작은 마을이 나오고, 그 길은 마을 앞을 지나 들 가운데로 나간다. 그리고 세상의 어디로든 나갈 수 있는 도로가 나온다. 버스가 다니는 길에서 동네까지 걸어 30분쯤 걸리는 이 길을 나는 50여년쯤 걸어다녔다. 나는 그길을 내길로 알고 살았다.그 길에 봄이 오면 길가에 서리를 하얗게 둘러 쓴 쑥들이 돋아나고, 작은 나물 꽃들이 피어난다. 논과 밭에서는 보리들이 파란색을 찾아가고 사람들이 논밭으로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면 길가에 있는 느티나무에 잎이 피어나고, 소쩍새가 찾아와 울고,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나면 사람들은 모내기를 했다. 모내기 철 학교에서 집에 가다보면 어디서든 하얀 쌀로 지은 못밥을 배가 터지게 먹고 갈 수 있었던 그 길, 여름밤이면 밤물을 대느라고 빤닥이는 담뱃불이 반딧불이와 함께 그 길을 아름답게 했다. 비가 오면 산에서 흘러내리는 생수가 길 가득 넘치고 우리들은 그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며 학교에 가고 집에 왔다. 가을이 되면 누렇게 익은 벼들을 척척 베어 넘기는 기운찬 농부들의 몸놀림들은 내게 지금도 삶의 경이이다. 길가에 빨갛게 익어 가는 늙은 감나무의 감이며, 길 가 밭에 고구마들은 우리들의 헛천난 배를 채워 주는 간식거리였다. 벼들이 다 떠나버린 늦가을 산밭에 파랗게 자라는 무도 늘 우리들의 표적이었다. 무를 뽑아 밭두렁 풀에 쓱쓱 문질러 이빨로 껍질을 대충 벗겨 한입 베어 물면 흰 무에 빨갛게 묻어나던 잇몸의 피.아, 그런 일들로 우리들은 동네 사람들과 선생님들에게 그 얼마나 많은 잔소리를 들어야 했던가. 지금도 그 길에 들어서면 나는 그 때의 그 수많은 일들이 하나하나 꼬물꼬물 살아나곤 한다.내가 어른이 되면서 나는 그 길에서 외로움을 배웠다. 어디 갔다 밤늦게 막차에서 내리면 막막해지던 작은 들판의 어둠과 검은 산자락 아래 반짝이는 불빛들, 그리고 달이라도 떠 있는 겨울밤이면 길에 패여 있는 작은 웅덩이 얼음을 파싹파싹 깨뜨리며 걷던 그 적막함, 그리고 나는 그 길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시를 쓰고 세상을 사랑하는 이치를 하나하나 터득해 갔다.그 길이 새마을 사업으로 이리저리 변해갔다. 길은 넓혀지고 길가에 있던 우물은 사라지고, 오랜 세월 우리들의 간식을 제공해주었던 다정한 감나무는 베어지고, 좁은 논들이 길로 변했다. 그리고 차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길은 선거 공약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선거 때만 되면 입후보자들이나 선거 운동원들은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우리 후보가, 내가,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이 되면 이 길을 말끔하게 포장하겠노라고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그들을 늘 대통령으로, 국회의원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당선과 함께 그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리고 선거 철이 되면 그들은 또 나타났다. 면장을 대동하고, 군수를 대동하고, 그리고 또 똑같은 소리들을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해댔다. 드디어 지방자치시대가 시작되었다. 이제 선거가 더욱 많아졌으므로 그 길을 포장하겠다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만 갔다. 그러고도 끄떡 없던 그 길이 장장 30여년만인 1999년 세기말 무렵에야 역사적인 시멘트 포장을 하게 되었다. 실로 엄청난 일이요 필설로 다 하지 못하는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 선거가 또 있어야 함으로 그 길은 아직 몇백 미터 비포장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 그 길을 다니던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몇 명 남지 않았다. 그 길이 포장되는 꼴을 보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뜬것이다. 길은 포장이 되었으되 그길을 다니는 사람들은 우리 동네 사람들보다 차 타고 다니는 외지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동네에 인물이 없어서 그 길포장이 되지 않는다며 순박한 동네 어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그 길, 이제 또 몇 명이 나타나서, 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남은 저 길을 포장하겠다며 착하고 선한 농부들의 표를 사정사정 달라고 할 것인가./시인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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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2.1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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