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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전북의 미래산업 지도

정부는 최근 지식기반 경제발전 방안에 대한 기본방향을 ①국민정보 생활화 ②과학기술 혁신능력강화 ③정보문화관광 등 지식산업발전 ④인적자원의 개발 ⑤취업 및 소득능력의 제고 등 5개 추진과제로 삼고, 발전시킨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지역의 산업정책 역시 국가의 정책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전북지역도 신중하게 미래산업지도를 그려볼 필요가 있다. 먼저 경제의 공급구조(산업구조)변화 및 수요(소비구조)변화에 대해 세계적 추세를 간략히 고찰해보기로 하자.수요의 변화는 크게 나누어 성시화(省時化),자연화(自然化) 및 개성화(個性化)라는 3가지 키워드로 조여진다. 성시화는 시간의 절약이 아니라 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의 창출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성시화는 소비자의 높은 가치를 요구하게 되고, 그것은 문화, 교양, 오락, 스포츠 등 문화산업에 새로운 욕구창출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개성화는 상품소비에 있어서 옵션선택의 확대를 의미하게 되며, 자연화는 자연과의 조화와 인간과의 자연인터페이스를 중시한 소비가 나타난다는 말이다.공급구조의 변화도 서포트(support)형 산업에서 인테그레이션(integration)형 산업그리고 소시오(socio)형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포트형 산업은 반도체, 정밀부품 등 최종재의 부품을 공급하는 산업이다. 지금까지 일본산업발전의 원동력이 된 분야로 아직도 일본수출의 7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인테그레이션형 산업은 정보시스템, 통신네트워크, 컴퓨터 소프트분야 등 각각의 제품을 짜 맞추어 시스템화되면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는 산업이다. 이 분야에는 미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소시오형 산업은 교육, 의료, 교통, 복지 등 손에 잡히는 상품보다는 느끼는 상품을 생산하는 신 지식산업으로, 유럽국가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아직은 모든 국가가 새로이 시작하는 분야이다.그렇다면 우리 전북경제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는가? 결론적으로 분야별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건설업 및 전기가스수도업과 같은 사회간접자본분야에서는 상대적인 우위를 보인 반면, 1차 산업 비중이 높은 전북경제구조하에서 농임어업분야의 성장률둔화는 전북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또한 제조업내에서도 부가가치가 낮은 소비재산업 비중이 높고, 부가가치가 높은 사무기기영상음향관련산업이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서비스업의 경우도 부가가치가 낮은 도소매 및 음숙박업의 비중이 높고, 타 산업 지원서비스산업이며 부가가치가 높은산업인 운수창고통신 및 사업서비스업분야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그렇다면 전라북도의 미래산업지도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져야 할 것인가? 공급측면에서 소시오(socio)형 산업과 수요측면에서성시화가 복합된 문화산업을 지식산업발전의 축으로 삼아 서비스업을 고도화시키고, 제조업의 구조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특성화 산업정책이 최우선으로 그려져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산업정책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정책을 건의하고자 한다.첫째, 문화산업발전에 역점을 두어 정책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물질에서 시작해서 문화로 종결지어질 수 있다. 매슬로우(Maslow)라는 심리학자는 자아실현 5단계에서 최상의 욕구는 문화에 대한 욕망이며, 여기에서 말하는 문화는 일부계층에 국한된 예술이 아니라 오락의 요소(e-요소)가 가미된 대중문화산업 임을 강조하고있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몰 오브 아메리카(Mall of America)의 방문객수는 월트디즈니디즈니랜드그랜드캐년의 방문객수 보다 많은 4천만명에 이르고 있으며, 시애틀의 메가플렉스, 일본의 조이폴리스, 영국의 세필드문화산업단지 및 호주의 크라운리조트등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특수한 기술이 필요한 지원정보(예를들면 영상S/W)도 필요하지만, 모든 소비활동에 e-요소가 가미된 대단위 문화산업단지(가칭 기가플렉스)조성이 시급하다.둘째, 제조업의 질적 고도화를 도모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한정된 지자체 재원으로 서포트형 산업을 희생하면서 미국식 인테그레이션형 산업에 집중투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21C 제조업은 나노(Nano)세계의 가능성도전, 생명현상탐구, 전자의 벽을 뛰어넘는 광(光)세계, 인간두뇌 및 전뇌(電腦)와의 조합, 환경상품 및 차세대 네트워크 개발 등 6개 분야의 기술에서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전북의 경우 상대적 우위를 지니고 있는 자동차산업 및 기계부품산업의 고도화 및 환경상품개발지원에 투자를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벤처기업에 대한 환상은 버려야 한다. 미국내에서도 벤처기업의 대두는 결국 일시적인 붐으로 끝이 났고, 오히려 전체 벤처기업의 60%이상이 저임금 직종의 창출이라는 결과를 낳았을 뿐 아니라 3%의 생존율이라는 자원낭비를 야기시켰다. 특히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생존율이 1%미만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성제환(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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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2.11 23:02

[전북칼럼] 캐나다·교차로·화장실 그리고 새 全北人

1960년 대 이후 우리 나라의 역대 정권에서 변하지 않는 국정 목표가 하나 있다면 바로 선진 조국의 창조일 것이다. 그런데 경제 발전만 이룩하여 국민소득만 만 불, 이만 불로 올라간다고 해서 과연 선진국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일인당 국민소득이 이미 수만 불에 달한 사우디나 쿠웨이트 같은 나라들은 벌써 선진국으로 분류되어야 마땅하지만 불행히도 이들 나라를 미국이나 스위스 등과 동열에 놓는 전문가는 없다.1982년 미국 미시간대학 유학시절의 여름으로 기억된다. 가족과 함께 캐나다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고 미시간으로 돌아오던 귀로에 캐나다에서 제일 큰 도시인 토론토에 들린 적이 있다. 우연히 큰 저택들로 둘러싸인 주택가에 들어갔다가 고속도로 진입로를 못 찾아 헤매었다. 마침 한집에서 잔디 깍는 주인아저씨를 발견하고 서투른 영어로 고속도로 타는 길을 물었더니, 그 분은 손짓까지 섞어가며 열심히 길을 설명해 주다가 물끄러미 내 표정을 살피더니 못 알아듣는 걸 눈치채셨는지 조금 기다리란다. 그리고는 닫혀 있던 차고를 열고 차를 몰고 나오더니 나를 고속도로 입구까지 안내하고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이 아닌가? 이후로 캐나다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나에게는 좋은 나라이고, 캐나다 사람이라면 모두 나에게는 좋은 사람이다. 친절퇴근 시간 때쯤 거리가 혼잡할 때 서울 거리에서 흔히 이런 모습을 보게 된다. 진행 차선에 차들이 많아 신호가 바뀌기 전에 교차로를 건널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큰 버스들이 가끔 앞 차 꼬리에 차를 갖다 댄다. 결과는 반대차선의 차들이 파란 불인데도 불구하고 진행을 못하게 되고 몇 분만 지나면 그 교차로는 아수라장이 된다. 그 운전기사는 분명히 일 이분 그 교차로를 빨리 건네게 되겠지만 자신과 같은 운전 버릇을 가진 다른 운전사들이 종점까지 지나갈 동안의 수많은 교차로를 미리 이런 식으로 막아 놓은 덕분에 결과적으로 얼마나 늦어지는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이런 경우 벌금이 가장 무겁다) 질서결혼하고 얼마 있지 않아 고향의 부모님께서 20년이 넘게 손을 대지 않던 집을 수리하신 적이 있다. 무슨 큰 수리인가 궁금하게 생각했더니 대문 입구에 새로이 수세식 화장실을 신축하신 공사였다. 아마도 며느리나 앞으로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 집을 찾았을 때 가장 큰 불편이 화장실일 것으로 짐작하신 끝의 배려가 아닌가 싶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도 낯선 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갈라치면 항상 화장실 걱정을 하게 된다. 장담하건 데 앞으로 천혜의 관광자원을 가진 중국의 최대 관광 장애물은 대륙에 산재하고 있는 불결한 화장실이 될 것이다. 청결세계로 뻗어 가는 전북을 캐치 프레이저로 걸고, 국내는 물론 해외자본가들에게까지 우리 고장에 많이 투자해 주십시오 산 좋고 물 좋은 우리 고장에 많이 놀러 와 주십시오 하는 부탁을 하기 이전에 이런 손쉬운 친절의식,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지킬 수 있는 질서개념, 그리고 주위를 항상 깨끗이 하는 청결정신은 우리 전북인들이 먼저 준비해 두어야 할 덕목들이지 않을까? 여기에다 남을 항상 먼저 배려하는, 주위 사람을 따뜻하게 돌볼 수 있는 선행까지 곁들일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새 천년 21세기를 맞아 도정(道政)의 중심을 새 천년 새 전북인운동에 두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도로산업입지항만 등과 같은 하드웨어 기반도 국내외 투자유치에 물론 중요하겠지만, 제도나 관습 또는 전북도민의 행태등과 같은 소프트웨어 기반이 해외 투자가들에게는 훨씬 중요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이성열(전북도 행정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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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2.04 23:02

[전북칼럼] 용담에서 고군산까지

강, 산, 호수와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삶터 전라북도!용담에서 고군산에 이르는 물줄기를 축으로 지난 세기말에 시작된 국가적 대규모 개발사업들이 현재 추진 중이며, 금세기 초반에는 그 주요 골격이 완성되리라 예측되는 시점에 우리가 살고 있다.이러한 사업의 역사적 전례는 김제 벽골제나 일제 강점기의 농지확보를 위한 간척사업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가경제를 최우선으로 알던 1960년대의 "조국 근대화 과정"에서, 유사한 사업들이 다른 지역에서 먼저 시작되어 최근의 시화호에 이르는 과정을 지나며, 우리 국민전체가 이제는 물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 결과로, 이러한 거대 사업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 견해를 자주 대하게 된다. 개발에 따른 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경제적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견해와 환경에 대한 피해가 전무하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개발사업에 착수할 수 없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우리의 삶터 곳곳에서 현재 추진 중인 이러한 사업들에 대한 우리의 심중을 가다듬어 보자.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터전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자세가 이곳에서 살아갈 후손대대의 장래를 빚어낼 것이라는 확실한 주인정신이라 생각된다. 이 주인정신은 서로 다른 견해의 차이를 합리적으로 좁혀 나가고, 구체적인 사업이 진행되는 현장에서 각자가 혼신의 노력을 다하게 해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 여겨진다. 둘째로, 물환경의 소중함을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리라. 바다의 물은 물론이고 담수환경에 대하여도 우리가 알아야 할게 적지 않다. 한 예로, 21세기는 깨끗한 물 자원이 극히 중요한 시대가 되리라 한다. 도내 여러 곳의 호수에 담겨 있는 청정수는 머지않아 식수로서의 가치를 크게 넘어서서, 고 부가가치 특수 소재산업에서 요구되는 청정도를 충족시킬만한 소중한 물 자원으로 부상할 것이다. 깨끗하고 건강한 바다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생물에 대하여 우리는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하나의 신종 해양미생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유용화학물질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최근에는 바다 미생물을 응용하여 같은 바다생물인 적조생물과 같은 유해 생물체를 제어하기 위한 연구도 시작되었다. 바다의 물환경은 이제 막 그 깊은 비밀을 인류에게 보여 주려 준비하고 있다고나 할까. 셋째로, 문명-환경-자연의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지혜와 노력을 경주하여,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이 시대를 살아, "머뭇거리다 만 조상"으로 현재의 우리들이 기억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더 나아가, 용담에서 고군산에 이르는 물줄기와 어우러져 빚어낸 "지혜로운 물줄기 문화"의 새 시대를 열어갔던 자랑스런 선조들로 남아야 하지 않을까?넷째로. 이러한 길을 걷기 위해서는 단기적 이해관계의 초월이 요구되며, 그리고 반복되는 "두 마음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할 것이다. 쉽지 않아도 선택할 것인가?땅덩이가 큰 나라들이 부럽기도 하다. 호주나 뉴질랜드와 같은 나라에서는 청정한 자연환경을 내세운 국가의 상징적 이미지 제고, 그에 따른 자연환경 관광산업 진흥 등을 국가의 전략으로 삼고, 자연과의 조화를 최우선에 둔다 한다. 오염이나 공해를 크게 유발할 만한 산업은, 그 산품을 수입해서 충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국의 영토 안에 들여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50년 뒤를 생각해 보자면서...... /이원호 (군산대학교 해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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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1.28 23:02

[전북칼럼] 시인과 정치

나는 텔레비전 프로 중에서 뉴스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집에 있으면 나는 그 어떤 프로보다도 뉴스 시간을 기다린다. 5시 뉴스시간이면 KBS 5시 뉴스를 보고 MBC 6시30분 뉴스를 보고, KBS 7시 뉴스를 본다. 그리고 8시 SBS 뉴스를 보고, 9시 뉴스를 본다. 그러다 보면 5시부터 9시까지 쭉 뉴스만 보게되는 셈이다. 아이들이 집에 있으면, 이 뉴스를 찾아보는 나와 아이들과의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어쩔 때는 집 식구들과 나와 3대 1의 격렬한 다툼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뉴스를 보아도 나는 정치적인 뉴스만 보면 끝이다. 특별한 새소식이 없는 한 나는 정치적인 뉴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뉴스에 나는 관심이 없다. 신문을 보아도 나는 정치면을 맨 처음 꼼꼼하게 보고, 그 다음 사회면을 대충대충 보고, 그 다음 문화면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경제면을 본다.문학과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과 만나 놀다보면 흔히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어, 시인이 정치 이야길 하네?어, 시인이 별 것에 관심을 다 가지고 있네?시인이 그런 것도 알아? 그러면서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나는 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쩌고 저쩌고 운운시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런 모욕적(?)인 말들이 어떻게 해서 이 사회의 시와 시인에 대한 통념처럼 되어버렸는가는 여기서 누누이 이야기하진 않겠다. 시와 시인에 대한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이 누추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해봤자 시만 초라하게 되니까.시와 시인이 정치와 사회로부터 아니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홀로 존재 할 수 있다는, 정치사회와 역사로부터의 문학의 분리 작업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지금도 그 음모가 끊이지 않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치권력과 긴장을 잃어버린 시가 과연 시로써 그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다시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 시인은 누구인가.시인은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이 인류가 걸어온 과거와 현실과 미래에 대해 모든 관심을 갖는 사람이 시인이다. 정치는 물론이고, 모든 종교, 교육, 철학, 역사, 경제, 문화사, 미술사 하였튼 모든 우리 인류의 문화유산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가 어느날 그림을 그리는 친구에게 전시에 대해 알리지 않았음을 서운해 했더니, 시인이 뭘 그림까지 알려고 합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었다. 시인이 미술을 모르고 어떻게 시를 쓴다는 말인가. 화가가 어떻게 시를 보지 않고도 그림을 그린다는 말인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시인은 세상에 대한 모든 관심을 갖는 것이다. 시인은 죽어 가는 세상을 살리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들, 하찮은 것들, 길가에 피어 있는 풀꽃 한 송이로 세상을 읽어내는 사람이다. 시인은 그래서 세상을 종합하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가 살아왔던 세상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이 어떻게 인간을 지켜내는 시를 쓸 수 있다는 말인가. 시는 이 세상의 일이 아니란 말인가. 시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시인들을 우리 사는 세상 사람이 아닌 별난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든 장본인들은 바로 시인들이다. 시인과 시가 세상과 거리를 두라는 말은 시와 정치권력과의 추잡한 유착을 말리는 말이지, 시와 정치를 분리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시를 쓰는 사람과 시와 멀리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른 이야기가 더 보충이 되어야 하겠지만, 시인이 정치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독야청청 하는 것이나, 나는 시를 잘 모른다는 사람들의 말이 아주 부끄럽고 창피한 말이지 결코 자랑스러운 말이 아니다. 시와 정치는 당대 사회현실의 가장 민감한 부분에 서로 긴장하고 맞선다. 왜냐하면 시는 죽어 가는 것들을 사랑하니까. 그리고 사랑은 부활이니까. 사랑은 세상의 가장 아픈 곳에서 빛나는 법이니까./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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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1.21 23:02

[전북칼럼] 지식의 거품과 생산적 복지

작년 8.15 경축사에 즈음하여 생산적 복지에 대한 기본구상이 발표되었고, 김 대통령의 신년사에서도 소득불평등 해소문제가 주요정책과제로 언급되었다. 이렇게 생산적 복지문제가 중요한 사회경제문제로 부상되는 이면에는 소득 불평등의 심화빈곤계층의 확대라는 사회적 문제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구해온 신 자유주의 경제정책간의 갈등심화가 저변에 깔려있다. 이 시점에서 생산적 복지 그 자체를 비난하기보다는 소득불평등 심화빈곤계층의 확대의 근본원인을 직시하고, 정책초기부터 올바른 방향으로 후속정책이 실현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빈부격차 심화의 근본원인은 지식격차(Knowlege-Gap)의 확대이고,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생산적 복지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시행되는 초석이 될 것이다. 즉 정보화네트워크화 되어가고 있는 경제구조하에서는 지식의 거품이 필연적으로 야기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땅투기, 아파트 투기, 자본투기 등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겪어왔지만, 향후에는 지식수준 격차에 의한 소득 격차는 점점 확대될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그렇다면 생산적 복지 기본방향은 자명하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생산적 복지의 내용을 보면 겉치레에 현혹되기 쉬운, 즉 속빈 강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많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싶다.첫째, 기초적 복지가 미비한 상황하에서 생산성을 강조하는 생산적 복지에 얼마나 투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의 복지수준은 OECD국가에서 최하위이고, 올해 10월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복지가 시행된다고 해도 아직은 복지혜택을 못받는 계층이 많다. 즉 한정된 재원으로 생산성과 복지의 양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기형아를 출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둘째, 생산적 복지는 이상적이긴 하지만 실천력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없다는 점이다. 생산적 복지는 앤서니 기든스가 제3의 길에서 주장하고 있는 적극적 복지와 유사하다. 제 3의 길은 사회복지국가모형(제1의길)과 신 자유주의국가모형(제2의길)의 장점만을 취하여 선택한 모형이며, 이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권의 기본정책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영국에서 성공했다는 소식은 못 들어봤고, 역사적으로 세계 어느 국가도 성공했다는 기록은 없다.셋째, 재원확보 대책이 무엇인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생산적 복지를 위한 예산만도 올해에 10조 내외가 필요하다. 또한 소득분배개선을 위해 근로소득세 경감, 금융소득 종합과세(2001년 시행), 상속증여세 강화 등으로 재원을 조달할 계획이라며 중산층근로자 부담이 증가되리라는 점은 자명할 것이다. 대안으로 한계에 도달한 재정적자를 또다시 확대시킨다면 우리경제는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넷째, 모든 근로능력이 있는 계층에게 직업교육 확대를 통해 고용가능성을 증대시키는데 현행 직업교육시스템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현재 직업교육 대상자들과 교과과정들이 학습능력이 있는 학력수준저년령 계층에 집중되어 있음을 감안할 때, 40대 후반 및 저학력이 대부분인 장기 실업자저소득계층에게는 한계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결론적으로국민생활기초보장, 노동고용정책분야, 환경정책분야 및 복지재정조세정의 분야로 구분되는 생산적 복지는 그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국민적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정책의 우선 순위는 무엇보다도 복지정책의 근본에 충실해야 하고 다음으로 생산성을 고려해야 한다. 저소득층, 노인계층, 장애인, 아동보육모부에 대해서 내실 있는 지원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으로 근로능력이 있는 실직자 전체로 교육기회를 확산시키기보다는 저소득층중에서 학습능력이 있는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지원을 통해 교육기회의 균등을 도모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소득층자녀에 대한 고용할당제를 실시하여, 빈곤에서 탈피하는 유일한 수단인 고용을 보장해줘야 한다. 왜냐하면 저소득층에게 자녀의 성공은 그들에게 실현 가능한 꿈이고 빈곤이 대물림 되지 않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책시행의 전달체계가 투명해야되며, 실업정책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지자체 하부 단계별 구조도 통일된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구축되어야 한다./성제환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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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1.14 23:02

[전북칼럼] 한민족이여! 21세기에는

지금으로부터 꼭 1백년전인 1900년의 한반도를 생각해 보자. 영미 등 서구제국,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남하하던 러시아, 일찍이 산업혁명을 받아 들여 선진화의 물꼬를 튼 일본, 그리고 오랜 동맹관계를 바탕으로 한반도에 영향력을 유지코자 노심초사하던 청나라 등, 뭇 열강들이 한반도를 집어삼키고자 눈을 번득이던 시절, 조선의 정객(政客)들은 자고 나면 정쟁만 벌일 뿐 세계 환경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 있을까? 36년간의 일제하의 긴 질곡 그리고 815해방과 625동족상잔의비극, 419와 516의 격동을 거쳐 비록 2년간의 IMF 위기는 있었지만 다행히 이만큼의 발전과 희망을 갖게 되는 21세기를 우리는 맞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주변은 새로운 세기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오늘을 사는 정치인들은 1백년 전 정객들과 달리 당리당략보다는 민족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을 하는가? 우리 국민 한 분 한 분은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의 병폐를 버리고 주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자라나는 우리의 2세들은 일본과 중국과 유럽의 젊은이들과 충분히 겨룰 수 있는 실력을 열심히 연마하고 있는가?21세기는 지금까지는 지구가 경험하지 못했던 경제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급격히 겪게 될 것이다. 이미 우리 앞에 성큼 다가 온 정보화의 물결속에 인터넷을 통한 정보와 자원의 이동이 대세가 되고, 세계 경제의 중심축은 중국과 일본과 한국이 위치하고 있는 극동으로 조만간 옮겨지며, 한반도에도 머잖아 우리가 그토록 기원하던 남북통일의 기운이 싹트게 되는 등,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러한 변화가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세계는 이미 뛰고 있다. 일본이 미야자와 구상등을 통해 구미(歐美)추월의 의지를 보이고 있고, 중국은 20세기의 팍스아메리카나에 대응하는 팍스시니카(Pax Cinica)의 도래를 내다보며 정치지도자들이 선두에 서서 열심히 뛰고 있다. 심지어 똑같이 외환위기를 겪었으면서도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는, 우리가 청문회에서 과거의 잘잘못에 구애받고 있을 때 이미 Vision 2020구상을 발표하여 국민들에게 20년 뒤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한민족만이 뒤 처지면 안된다. 이미 1백년 전에 우리의 선조들이 범했던 잘못을 또 저질러 우리의 후손들에게 고통을 물려줘서는 안된다. 이제는 지역주의, 집단주의, 정파주의 따위는 버려야 한다. 소(小)를 버리고 대(大)를 취하며, 집단이기주의에 따른 갈등은 과감히 던져 버리자.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천한 상업주의도, 남이야 어떻든 나만 좋으면 된다는 염치없는 이기주의도 20세기에 다 버리고 가자. 그래서 21세기에는 항상 나보다 남을 배려하는 사회, 물질문명보다는 정신문명의 가치를 더 존중하는 사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잘 어울려서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행복하고 자랑스럽게 생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민족의 웅비가 활짝 나래를 펼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우리 모두 만들어 나가자. 저 먼 중앙아시아의 한민족에서부터 만주의 1백만 조선족, 한반도의 7천만과 일본열도의 60만, 그리고 태평앙 건너 아메리카대륙에 굳건히 터전을 마련한 1백40만동포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지구화 시대 21세기에는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국가로 우뚝 솟아나기를 기원해 본다. 한민족이여! 21세기에는/이성열(전북도 행정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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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01.0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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