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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용 플라스틱 없는 도시를 꿈꾼다

박은재 전라북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플라스틱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백 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는 철기시대를 넘어 플라스틱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쉽게 접하는 1회용 컵부터, 빨대, 비닐봉투, 식용기, 반도체, 자동차와 선박, 항공기 등의 내장재까지 플라스틱으로 만들 수 없는 제품을 찾기가 힘들다. 그런데 이 편리하고 값싼 플라스틱의 홍수가 언제부턴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지구와 생명체들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했다가 더 명확한 표현이겠다. 바다 거북의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있는 한 장의 사진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이 태평양에 플라스틱 섬을 만들고, 햇빛과 물에 의해 입자가 작아진 플라스틱은 해양 생태계 먹이사슬을 거쳐 인간의 몸으로 섭취되고 있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는 매주 신용카드 한 장 분량의 플라스틱을 음식 등을 통해 섭취하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현상을 반영한 질문에는 이대로 괜찮지 않다라는 답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듯, 전 세계 곳곳에서 플라스틱 관련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플라스틱제로 챌린지, 제로웨이스트, 플라스틱 어택 등의 운동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전라북도와 전라북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객리단길 내 카페들이 모여 제로플라스틱전북-객리단길 운동을 작년부터 시작했다. 기존의 운동들과의 차이점은 참여한 카페들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공유컵인 턴(Turn)블러를 만들어 포장 판매 시 운용하고, 상단의 뚜껑과 빨대는 옥수수전분 성분으로 제작된 생분해용기(PLA)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모든 플라스틱을 없앨 순 없지만, 1회용 플라스틱과는 자신있게 이별을 택할 수 있다는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구역을 정해 연대해서 공유컵을 이용하는 전국 첫 사례다. 작년에는 18개 카페로 출발해서 폐업과 업태 변경 등으로 최종 9개 카페가 끝까지 참가했고, 올해는 이보다 1개 카페가 늘어 19개 카페가 참가해 현재 16개 카페가 운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방문객수와 매상이 줄어든 것에도 굴하지않고 매달마다 회의를 진행하며 좀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머리를 맞대는 일명 섹시한 마인드의 소유자들이다. 성과도 분명히 있었다. 작년 한 해 1회용 플라스틱을 턴블러와 생분해용기로 대체한 것을 한 줄로 늘어놓기만 해도 약 43km에 달한다. 전주시청에서 군산시청까지의 거리와 맞먹는다. 또 수원시와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우리지역의 사례를 활용해 (제로플라스틱전북-객리단길 사업을 참고했음을 명확히 하고) 수원 화성행궁 주변 카페들과 함께 같은 사업을 진행중이다. 더 큰 규모로 진행하고 있어 부럽기도 하고 배도 아프지만 뭐 어떤가. 좋은 사례는 나눠야하고 확산이 되는 것은 기뻐해야 하는 거다. 일부 언론이 코로나 여파 객리단길 다용도 공유컵 애물단지로 전락같은 기사로 깎아내리는 어려움도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방문객과 매출은 줄어드는 상처를 입고도 좋은 일 하겠다는데 소금까지 뿌려서야 되겠는가? 언론이 더 좋은 사례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작년 10월 21일자 전북일보 불편하지만 환경이 먼저 기사가 칭찬하는 언론, 칭찬받는 언론의 좋은 예다. 코로나19로 인해 위생을 먼저 생각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가장 안전한 공유컵 소독제는 무엇일까?, 개인컵(텀블러)을 더 활성화시킬 방법이 뭘까?를 고민하는 전북도와 전북지속협, 16개 카페 업주들이 있다. 따뜻한 시선과 응원이 1회용 플라스틱 없는 도시를 꿈꾸는 이들에게 필요한 때다. /박은재 전북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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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04 15:00

현명한 의사와 우리 국민

강영석 전북도 보건의료과장 보통 현명한 사람들은 서로 등지지 않고 등에 업는 선택을 합니다. 설령 다시 안 볼 사이라 할지라도. 코로나19로 인해서 사람들의 대화 주제로 오르내리는, 원격의료비대면 진료,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는 정부의 정책에 포함되었지만, 찬반이 나뉜지라 국민과 의사 모두에게 친화적으로 준비하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 두 분께 여쭸습니다. 지혜의 임금, 솔로몬 왕이시여,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지금이라면 유전자 검사로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달리 방법이 없던 당시로선, 현명하지만 아이를 칼로 베어 둘로 나누라는 지독히도 냉혹한 분이셨기에 이번에도 객관적인 명쾌한 답을 주실까 하여 여쭸는데, 아니나 다를까 단칼에 베어 토막을 내십니다. 그냥 두 동강을 내면 되지 않나! 찬성하는 측과 사업을 진행하면 되지 뭐가 문제인가?에구머니나! 그렇게 되면 보듬지 못함에서 발생하는 사회 통합의 저해, 우리 사회는 큰 혼란을 겪게 되는데, 어쩌죠! 지금과는 맞지 않는 전제(專制)적 말씀인지라 받잡기 어려워, 우리에게 늘 따스하신 허준 선배님께 여쭙기로 했습니다. 옛날엔 어땠는지요?뭐 지금이랑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주로 환자가 찾아오고, 가끔은 환자를 찾아 나서고, 때론 환자의 상태를 가족에게 전해 듣기도 하고, 다만 분명한 기준은 있었지요. 인본주의, 사람 중심이었다는 것, 편리나 이윤 추구가 아닌 의학적 판단에서라는 것, 고관대작에 앞서 더 아픈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먼저 향했지요. 원격의료비대면 진료 시행에 걸림돌이 된다는 몇몇 법적 문제 해결은 국민을 진정한 주인으로 섬기는 국회와 정부에 잠시 잠깐 맡겨두고서 제 이야기를 마저 이어가겠습니다. 다양한 첨단기기들이 함께하겠지만 인간적인 대화가 존재하는 진료실, 예약제 정착으로 시간 허비도 없고 자연스레 거리 두기가 가능한 대기실, 병의원의 역할을 질병의 중한 정도에 따라 분명하게 나누는 의료전달체계 확립으로 도떼기시장을 벗어난 대학병원의 모습, 코로나 이후 국민에 대한 의료서비스가 이러하길 바라면서, 엉성한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일 요량으로 다소 익숙해진 출연진을 불러봅니다. 환자 (영)석이, 1차의사 허준쌤, 23차의사 한성(漢城)쌤. 『공익광고 :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속담처럼, 건강관리에는 코앞 동네 의원이 훨씬 좋습니다.』 석이는 건강 상태에 따라 동네 의원을 찾아도 가고, 악화되면 허준쌤이 찾아올 수 있으며, 상태가 안정적이면 서로의 약속으로 영상통화를 활용하기도 하며 관리를 해나갑니다. 이를 대면 진료를 전제(前提)한 보완적인 비대면 진료라고 하며, 편리 추구 아닌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바탕으로 하는 합리적 선택이기에 모두가 반기는 내일입니다. 세월과 함께 마음과는 달리 석이의 건강에도 큰 변화가 생겨 허준쌤의 안내로 큰 병원을 방문합니다. 이전의 소견서가 아닌, 석이를 앞두고 허준쌤과 한성쌤이 영상을 통해서 의견을 나누며 세운 계획과 치료로 이내 좋아지게 됩니다. 이를 의사 간 원격의료라고 표현합니다. 검사의 중복도 피하고 기록의 복사도 필요 없이 어디서든 환자의 동의 아래 안전하게 의료빅데이터가 활용됩니다. 건강을 회복한 석이는 거주지로 돌아와 허준쌤을 다시금 반갑게 대면합니다. 국민을 위해서 전문가와 손잡고 펼쳐지는 정책, 모범국가, 대한민국은 언제부턴가 세계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강영석 전북도 보건의료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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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8 16:42

난 좋은 사람인데 왜 화가 날까

이은선 선이오페라앙상블 대표 얼마전 핫하게 방영되었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온 일화 중 산부인과 전공의인 곰과 여우친구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을 보면서 하아, 저 친구 억울하고 힘들겠네했던 기억이 있다. 곰친구는 잠도 못 자고 끼니도 거르면서 일하는데 여우친구는 하고 싶은 거 요령 피우면서 하는 모습을 보며 속이 답답했던 것이다. 그나마 우리의 주인공 산부인과 조교수 양석형님이 두루두루 살피는 성격이다 보니 곰친구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주는 게 어찌나 고맙던지. 쑥스러워하며 건넸던 떡볶이가 어찌나 감동이던지.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대학을 다니면서 용돈도 벌고 경험도 쌓고 싶어서 합창단을 다니던 때의 일이다. 그때는 시립합창단이 상임이 아니어서 한달에 십만원 조금 넘는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내게는 큰돈이었고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값어치를 하기 위해 주어진대로 시간 약속 잘 지키고 빠지는 일 없이 성실하게 실수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으로 열심을 냈던 거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항상 늦고 매번 요령을 피우시며 결석하는 몇 분이 있었는데 그날 역시 그 몇 분 때문에 일찍 오고 항상 출석하는 사람들이 리더의 기분 나쁜 차가운 온도를 받아들이던 순간이었다. 물론 앉아있는 그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말하는 건 아니었지만 안 온 사람들 대신 훈계를 들어야만 했고 그날의 연습 분위기는 노래를 부른다기 보단 눈치보며 주눅든 상태로 그냥 알 수 없는 비음악적인 소리를 냈던 거 같다. 그 어린 나이에도 이상했다. 왜 우리가 혼나야 하지? 안오신 분들이 혼나야 맞는 건데 왜 우리가 화풀이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걸까? 그때 만약 리더가 성실하게 온 사람들에게는 여러분에게 정말 감사합니다.안 오신 분들 항상 늦으시는 분들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만 잘 진행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안 오신 분들에게 직접 징계를 하겠습니다. 순간적으로 나빠진 기분을 애써 누르며 이렇게 대응을 했더라면?? 살다 보니 이렇게 억울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다른 형태로 많이 일어나는 걸 알 수 있었다. 성실하고 착하게, 그렇게 좋은 사람이고자 지냈는데 억울한 일들이 많은 세상. 요령 피우고 대충 윗사람들 분위기 맞추는 사람들이 오히려 잘되는 세상. 내가 겪은 상황이나 슬의생의 곰친구가 겪었던 상황은 주변에서 누구나 겪고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맘이 불편하다. 난 좋은 사람이어야 하니 불편하면 안되는데 불편하다. 이런 일들이 누적이 되면 화가 나기까지 한다. 살아보니 좋은 사람으로 살아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내가 바보구나날 바보로 아는구나라고 생각될 때가 참 많더라는 말이다. 참는 거고 이해하려 하는 건데 그게 당연히 저 친구는 괜찮아, 다 이해해 이렇게 될 때는 내 속에 있는 다른 자아가 불쑥 튀어나와 욕이라도 하고 싶은 맘들이 불끈불끈 올라오는 경우가 그만큼 많은 것이다. 우리는 서로 참아내는 것이 아닐까? 더 많이 참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착하고 성실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좋은 사람이 당연하다 생각해서 함부로 대하기보단 더욱 아끼고 보호해 줘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야 그 보호와 아낌이 내게도 돌아올 테니 말이다. 따뜻한 떡볶이로 말이다. 마치 당신은 지금 좋은 사람으로 잘 살아내고 있다며 다독여주듯이. 나도 오늘 떡볶이 몇 인분을 누군가에게 나눠야겠다. △이은선 대표는 원광대학교 음악교육과를 졸업하고 전주시립합창단 상임단원을 역임했으며 국내외 다수의 오페라와 콘서트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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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1 16:36

위기탈출비법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결혼 직후 위기가 찾아왔다. 우리는 서로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시골 남자와 도시 여자. 차분하며 내향적인 남편과 적극적인 활동가 스타일의 아내는 마치 고양이와 개처럼 갈등만 반복하고 있었다. 원래 신혼이 다 그렇다는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17세기 독일의 신학자 루퍼투스 멜데니우스(Rupertus Meldenius)의 글귀를 묵상했었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것에는 사랑을.. 남편과 나는 중요하지 않은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에 집착하고 예민하게 반응을 했었다. 30년 넘게 다르게 살아온 남녀가 흔히 느낄 수 있는 이질감. 이는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이었는데 옳고 그름의 문제로 여기며 얼마나 대치를 했었는지, 미련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공유하는 가치와 신념이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하며 비본질적인 것들로부터 진정 자유하게 됐다. 그리고 모든 것 위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며 진짜 가정을 세워갔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본질적인 가치에 일치를 찾아가고 비본질적인 것에 자유하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때론 굳어버린 머리와 생각, 그리고 행동양식들로 사회를 뻣뻣하게, 때론 불편하게 만든다. 이런 태도가 삶의 터전에서 매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문제와 갈등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우리 시대 불통의 아이콘, 꼰대의 탄생 경위도 이와 같을 것이다. 권위적인 사고에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양한 해결방법이 있음에도 자신의 것만 주장해서 문제가 생긴다. 예측 불가능한 위기와 변화 속에서 유연한 사고와 무던한 수용력이 없다면 문제해결은 요원해지고 불통의 이미지만 공고히 쌓인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주환의 저서 회복탄력성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는 마음의 힘, 즉 역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도약의 기회로 삼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행해야하는 것은 단호하게 현실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결국 어떠한 갈등의 상황을 받아드릴 수 있는 유연한 마음을 시작으로 회복도 일어날 수 있다. 더위를 피한다는 복날의 복(伏)은 머리를 숙이다. 납작 엎드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복날을 통해 우리 선조들은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정면 돌파만이 답이 아니라 때로는 어려움 앞에 엎드려 넘어갈 수도 있다는 지혜를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심지어 초복, 중복, 말복이라는 세 번의 장치를 제공하며 만회의 기회까지 주어졌다. 위기 앞에서 보이지 않는 탈출 비법을 찾아 머리를 쥐어뜯을 때, 때론 납작 엎드리는 것이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지혜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싶다. 고귀한 자태를 자랑하며 꼿꼿이 버틴 나무도 태풍 앞에선 부러지고 꺾인다. 반면, 바람을 유연하게 타고 흐름에 몸을 맡긴 연약한 갈대는 살아남듯이 말이다. 비본질적인 것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말자. 목숨 걸고 지킬 사상과 신념이 아니라면 넉넉한 수용도 멋진 해결책이다. 첫 번째 안과 두 번째 안의 갈등이라면 세 번째 안을 선택하는 플렉스(flex)는 멋지지 않은가. 알 수 없는 인생의 풍파 속에 파도가 치거든 넘실대는 물결에 몸을 그대로 맡겨 본다. 적어도 난파라는 최악의 상황은 벗어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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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14 17:08

그린뉴딜과 기후 위기, 그리고 지속가능발전

박은재 전라북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그린뉴딜 논의가 연일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형뉴딜에 그린뉴딜을 넣는 방안 검토를 지시하고 난 이후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에서 열띤 논의가 이어져오고 있다. 뉴딜이란 일반적으로 국가나 사회의 경제 체계를 재편내지는 전환하는 것을 뜻한다. 그 앞에 그린이란 단어는 탈탄소를 뜻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간단하게 탈탄소를 위한 사회경제 체제로의 전환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탈탄소의 배경은 기후위기이다.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가 협의체(IPCC)는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에서 지구환경의 파국을 막으려면 지구 온도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상승 수준으로 억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0년 대비 최소 45% 감축하고, 2050년까지 넷제로(=탄소순배출제로=탄소중립)를 달성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후 전국적으로 환경단체 등이 각 지역에서 기후위기비상선언을 진행했고 지자체와 정부가 응답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에 지난 6월 5일 환경의 날을 맞아 전국 228개 기초지자체중에 226개 지자체가 모여 대한민국 기초지방정부 기후위기비상선언을 진행했다. 전라북도에서는 14개 기초지자체 모두가 참여했다. 또 지난 7월 2일에는 109명의 국회의원이 기후위기 비상선언 결의안을 발의했다. 이 결의안에는 대한민국의 현 상황이 기후위기 비상상황임을 선언하는 내용이 담겼다. 우리 지역 국회의원인 김성주, 안호영, 윤준병, 이원택, 한병도 의원도 발의에 동참했다. 연간 약 7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세계배출량 7위 국가의 국민으로서 지방지자체와 국회의 기후위기 비상선언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새삼 우리사회와 지구가 지속가능성이 약해진 시대에 살고 있음을 되새기게 된다. 지속가능발전은 Sustanable과 Develpment가 합쳐져 만들어진 개념이다. 지구(생태계)가 지탱가능한 수준의 발전, 미래세대의 요구를 헤치지 않는 수준에서의 발전을 뜻한다. 지구는 지금까지 폭염과 한파, 예측이 더 어려워진 가뭄과 홍수, 대형 산불, 코로나19와 같은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우리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에만 몰두해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위기상황에 직면했다. 경제불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생존의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그린뉴딜을 논의하기에 앞서 지속가능발전이라는 개념과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살펴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속가능발전목표 중 7번은 모두를 위한 깨끗한 에너지, 8번은 양질의 일자리와 경제성장, 9번은 산업혁신과 인프라, 10번 불평등 감소, 11번은 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 12번은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 13번은 기후변화 대응, 16번은 정의, 평화, 효과적인 제도, 17번은 지구촌 협력(거버넌스)이다. 총 17개 목표 중 위 9개 목표는 그린뉴딜과 연관성이 매우 높고 같이 검토해야 할 과제라고 본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1번 목표인 빈곤퇴치와 3번 목표인 건강과 웰빙도 고려해야 한다. 위 목표들을 고려한 그린뉴딜 논의만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탈탄소사회, 갈등을 최소화한 재생가능에너지의 확대, 기존 탄소중심 산업체계 재편 과정에서의 일자리 창출, 불평등 감소, 정의로운 전환을 가능하게 하리라 믿는다. △박은재 사무처장은 전북환경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장, 권역별대기관리위원회 위원(중부권), 새만금재생에너지민관협의회 위원, 지역에너지전환전국네트워크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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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07 16:50

코로나19로 인해 떠올린 두 분

강영석 전북도 보건의료과장 하반기, 코로나19와 관련한 2차 대유행 예고가 있습니다만 우리 국민께서는 이미 경험을 통해 충분한 학습을 하셨기에 예측과는 다른 희망적인 결과를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편 저 자신이 방역담당자이므로 보다 나은 대처로써 우리 국민을 모셔야 하겠기에 지혜의 대명사로 알려진 솔로몬임금께 여쭸습니다. 코로나 대응, 어떤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다 알면서 굳이 왜 옛사람인 날 깨우나? 하십니다. 얻은 게 없어서 서운한 마음에 존경하는 허준 선배님께도 여쭸습니다. 역시 같은 답을 주십니다. 지금처럼 높은 문화문명의 시기에 내가 옛것으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나? 이 사람아! 하십니다.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는 분명 그분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매우 수준 높은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겨우 미생물인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이 이처럼 어렵고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의 하나 됨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 아닐까 합니다. 역지사지(남과 처지를 바꿔 이해함)라는 사자성어를 몰라도 잘 지키시는 분들과 한자로 쓰기까지 하시면서도 전혀 지키지 않는 분들로 우리 사회는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 동료들에게 묻습니다. 제가 만약 일제 강점기에 살았다면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라는 물음에 독립군광복군이라는 답을 주더군요. 제 동료들이 저를 의식하곤 정직한 답을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땡 틀렸습니다. 제가 왜 그런 고난의 길을 택하겠습니까? 저는 아주 쉬운 길, 악랄한 일제의 앞잡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제 동료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기 위해서 물었습니다. 그럼 625 사변 때라면 어땠을까요? 라는 질문에 동료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국방군? 인민군? 하며 이번엔 답이 둘로 나뉩니다. 역시 결과는 땡입니다. 제가 왜 그리 힘들게 하나만 고집하겠습니까? 당연히 양다리죠! 낮엔 국방군, 밤엔 빨갱이! 너무도 암울하고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도 이 땅을 지켜주신 선열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분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낮추고 뭉친 결과로 독립과 후대의 번영에 이바지하셨습니다. 감염병 대응에도 자기 자신을 낮춰야 가능합니다. 스스로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겐 관대한 구성원들의 사회라면 감염병으로부터도 자유로울 것입니다. 코로나19 극복, 방역수칙준수면 족합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안전한 거리로 여겨지는, 침방울이 다다르지 않는 거리, 신체접촉이 불가능한 거리, 때론 지켜지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마스크 착용과 손 소독 시행, 서로를 위한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군중 앞에 사람이 쓰러져있습니다. 심폐소생술을 펼치는 사람이 주변에 119신고를 요청해도 대부분 당황하여 서로에게 미루거나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개선코자 한 사람을 분명하게 지명토록 했습니다. 거기 파란색 셔츠를 입으신 분이 119에 신고해주세요. 이런 역할 구분으로 소중한 생명을 구하게 됩니다. 이처럼 개개인으로 구성된 공동체에서는 누군가 역할을 맡아서 이끌어주셔야 합니다. 책임감이 강한 분, 헌신봉사의 마음을 가진 영향력 있는 분, 이런 분이라면 방역관리자로서 역할에 참 잘 어울리실 것입니다. 이런 분으로 인해 공동체의 안전은 지켜집니다. 코로나 대응, 서로를 위한 염려와 배려로 가능합니다. △강영석 과장은 전북대 의대 의학과를 졸업하고 전라북도 방역관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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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30 16:38

오유지족(吾唯知足)의 교훈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나는 가끔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 뒤에서 흉을 보는 사람들, 시샘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내가 그리 잘 못 살았었나? 아니면 하는 짓들이 미워서였을까. 어찌했든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차례에 걸쳐 거울 앞에서 웃어 보이기도 하고 옷매무새를 고쳐도 보고, 이런저런 표정을 바꿔가며 만족할 때까지 자신을 속이려든다. 거울을 보며 더 나은 모습을 보이려는 것도 결국은 사람들과의 관계정립을 잘해보려는 의도일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삶을 이어가는데 스쳐가는 사람까지 헤아린다면 엄청난 숫자일 것이나, 그들 중에서도 연결고리의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에게만 관심을 갖는다. 아름다운 진실은 마음가짐을 바꾸면 자기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은 평생 끊임없는 내면의 갈등과 크고 작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언어사용의 선택, 사랑의 선택, 직업의 선택, 친구의 선택, 가치관의 선택 등 헤아릴 수 없을 지로(支路)의 순간들, 이 모든 것들은 이성적 사회적 제약과 심리적인 순간의 갈등에서 일어난다. 후회와 더불어 자신의 선택과 행동은 도덕과 사회적 기준에 맞춰 평가를 받는다. 사회생활에서는 소위 규정이라고 하는 도덕이나 규칙 등이 상식의 선을 강제 받아야하지만 우리내부에서 꿈틀대는 욕망과 쾌락, 질투와 미움이 저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어 이것들을 합리적인 이성으로 억제하기는 매우 복잡한 틈바구니에서 삶이 지속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자신에 대해 만족하라.는 의미의 오유지족(吾唯知足)은 즉 작은 것으로 만족할 줄도 알아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지극히 평범한 것들조차도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알량한 자존심과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상의 무관심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자기에게 유리한 기준만을 적용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다. 나이가 든 만큼, 지식과 지혜가 쌓인 만큼, 살아 온 세월만큼의 경륜으로 냉정하게 객관적인 잣대로 자신을 가늠해야만 품격을 높여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영국의 기업인 리처드 브랜슨의 성공을 위한 열 가지 중에 내 생각을 믿어라. 자신의 계획과 생각을 스스로 믿고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렇게 해주겠나라고 했는데 이 조언을 잘못 해석하다보면 이기주의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기가 자기를 믿지 못하거나 버렸을 때, 자괴감과 고립의 함정이 작용할 수도 있다. 지난 1월 20일경부터 오랜 시간 동안 피로에 지친 정신력과 움츠러든 경제가 우리들을 괴롭게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의 의미는 고립이 아닌 군중 속에서의 세상을 더 깊고 더 넓게 바라보는 자기성찰이 가능한 고독을 회복하는 시간이 아닐까 한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면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의존해 살고 있음을 의식하자. 혼란을 불러온 팬데믹으로 인해 주위환경의 갑작스런 변화는 추억과 질서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면서 익숙했던 생활문화가 우리들 곁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생각과 삶의 틀이 어쩔 수 없이 변화해가는 현실에서 아이러니는 필연의 가면(假面)이 되어버린 상황을 이해해가며 펼쳐진 자신의 생활에서 만족을 느껴보자.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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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23 16:44

오늘을 산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화려한 20대를 보냈다. 누구나 젊음은 그러겠지만 나의 20대도 찬란했다. 큰 꿈을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멋진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새로운 삶과 맞닥뜨렸다. 무지에 의한 용기 덕분인지 국위를 선양하는 사람이 되자며 뭐든 열심을 다했다. 국제적인 기관에서 인턴십도 하고, 타향살이 외로움에 지지 않으려고 시작한 운동 덕분에 미인대회에 출전하여 한 지역 대회에서 진(眞)에 당선되는 영예도 얻었다. 열심히 달려온 삶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고, 수고한 열정을 기특하게 여겼다. 시간은 흘러 어느 사이 결혼을 하고, 20대 꿈 많던 소녀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거울 속 모습은 어느덧 내가 아닌 내가 되었다. 그래도 괜찮았던 이유는 과거의 기억과 디지털화 된 사진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화려한 과거의 기억들을 오늘을 살게 하는 자양분으로 여겼지만 현실의 위로와 우울 사이를 오가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무렵,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더니 손에 잡힌 외장형 하드를 내동댕이쳤다. 순식간이었다. 지난 십여 년의 모든 기록이 담긴 기록을 복구하려 국내 제일 유명하다는 업체까지 찾아갔으나 결국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 얻어지는 결과물은 없었다. 갓 돌 지난 아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고, 며칠이 지나서야 과거의 흔적과 증거들을 쉽사리 떠나보내지 못하던 미련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는 꼭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이제 정신 차리고, 엄마답게 좀 살아요! 그때 머리를 강타한 문구가 있었으니, Good-bye Yesterday, Hello Today! 빛나는 왕관을 쓴 모습이 현실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현재였다. 아이 덕분에 나는 과거에 집착하는 삶을 벗어나 지금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외장형 저장장치의 사망과 함께. 심리상담 전문가들은 과거에 사로잡히면 집착이 되고, 미래에 사로잡히면 망상이 되어 현재에 행복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즉, 오늘은 있는 모습 그대로의 도형(figure), 어제는 배경(background), 내일은 전경(foreground)으로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고, 미래에 꿈과 희망을 두면 실체가 없어 현실과의 괴리 속에 정신분열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만 집착하며 현실을 부정한다면 탓의 늪에 빠져버릴 것이고, 달라질 미래만 기대한다면 원망을 가져와 현재를 부정한다는 것인데, 행복의 비결은 신비롭게도 현재에 있었다. 다시 거울을 본다. 예전만큼의 상큼하고 파릇파릇함은 사라졌지만 자꾸 보니 뭔가 예뻐 보인다. 시간을 조금 더 살았다고 삶에 여유도 생기고, 조바심 내지 않는 나이가 마음에 든다. 화려한 삶은 아니어도 소소한 일상이 주는 감격에 하루하루가 채워진다. 이것이 현재가 주는 만족이다. 작년에 열렸던 제55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배우 김혜자의 수상소감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오늘을 과거에만 사로잡혀 후회한다면 내일도 역시 후회로만 가득 할 것이다. 불필요한 기억과 기대로 이젠 더 이상 오늘을 낭비하지 말자. 누군가 그러지 않던가. 현재(現在)는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Present)이라고! 우리 지금 바로 여기에서 오늘을 살자. Here and now.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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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16 19:55

의학과 의술, 코로나19의 과제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의학은 독립되고 정형화된 학문이 아니라 경험과 여러 분야의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지식을 축적해가는 통합적 실용학문이다. 아직도 감염병, 만성질환, 암 등의 많은 질환에서 의학지식의 행간이 비어 있으며 의학은 다양한 학문 분야의 도움과 함께 빈자리를 채워갈 것이다. 인류는 감염병과 부단히 싸우며 의학을 발전시켜왔다. 지금의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새로운 질환들이 의학의 능력과 한계를 계속 시험할 것이다. 수년마다 갱신 간행되는 의학 교과서들은 의사들의 평생 스승이다. 더불어 의사들은 쏟아지는 논문을 읽고 학회와 연수강좌 등을 통해 각자 전문분야 의술에 필요한 의학지식을 계속 보수한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하여 의료계도 국내외의 현장 학술교류가 급격히 줄었다. 반면 가상공간의 의학정보 교류는 활발해 의사들의 의학지식 보수 방식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웹세미나(webinar)가 현장의 대면 학술모임을 대신하고 온라인 저널이나 화상강의나 의학지식을 신속히 전달하는 중요 수단이 되고 있다. 의술은 단순한 기계적 행위가 아니라 확립된 의학지식을 복잡한 판단과정을 통해 환자에게 적용하는 예술적 행위(medical art)다. 의학과 의술은 동의어가 아니며 수준의 격차가 있을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보았듯이 우리나라 의술과 시설은 세계 최고의 수준임을 자타가 인정하고 있으나 의학적 역량은 아직도 분발이 필요하다. 의료보험제도 하에서 규격화된 진료와 임상의학의 양적 확대, 논문양산에 치우친 학술지원의 결과 질환의 기전 규명과 신약이나 백신개발 등에 필요한 의학의 기초체력이 부실해진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사태를 계기로 의사 간 진료정보의 원격공유뿐만 아니라 한시적으로 허용된 의사 환자 사이 제한적인 비대면 진료와 처방도 경험하게 되었다. 기술적으로는 현재도 인공지능이 일부 의사를 대신할 수 있으며 처방을 위한 원격진료나 로봇을 이용한 원격수술도 이미 가능한 시대다. 최근 묶여있는 원격의료의 제도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우리나라의 경우 안전성 문제와 함께 진료 결과에 대한 법적 책임의 소재가 불명확하고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차의료기관의 몰락과 국가 의료체계 붕괴를 염려하며 반대하고 있다. 보건위기의 상황에서 의료역량은 의학과 의술을 담아내는 국가보건의료체계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는 전국민의료보험이 사회보장제도로 시행되고 있으면서 공공의료보다 민간의료가 주축이 되어 있어 공공의료 확충, 공공의대 설립 등이 회자되고 있다. 민간의료와 공공의료의 장단점은 논외로 하고 이번 코로나19 세계적 확산에서 유럽 선진국들의 사회주의 공공의료제도가 보여주는 무력함이나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미국식 의료시스템에서 드러나는 허점과 한계에서 우리는 중요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국가보건의료제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료계와 정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안타깝게도 그간 국가적 우환에도 의정 간 갈등이 지속되어 왔다. 정부와 의료계는 갈등을 해소하고 진심을 담은 대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 가능성에 대비하여 방역과 진료에 필요한 인력 시설 장비 등 의료자원를 조율하고 공공의료와 민간의료의 역할, 의료와 정보통신 공학기술의 접목에 관련된 사항들을 신중히 살피고 의견을 나눠야 한다. 총론적으로 기초와 임상의학의 균형적 발전, 공공의료와 민간의료의 조화, 의료전달체계나 질병관리체계의 개선 등 보건의료제도의 적정화는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주는 과제다.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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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09 16:54

건강한 시민운동을 위한 제언

김판용 시인전주경실련 고문 권위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의식 있는 시민들이었다. 지배자가 권력을 순순히 내려놓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민주주의는 그래서 투쟁의 피로 이룬 결과물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5?18 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혁명까지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 억압의 시대를 물리치고 자유를 얻은 것이다. 시민들을 이끈 것은 시민단체였다. 다수의 시민을 하나로 모아 나갔기에 힘이 있었다. 민주주의 역사에서 시민단체가 기여한 바는 헤아릴 수 없이 크고 위대하다. 또 이런 단체들이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는 생계를 포기하고 헌신해 왔던 활동가들의 공이 전적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어려운 일을 맡아 한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이다. 최근 정의기억연대와 이용수 할머니로부터 촉발된 갈등을 접하면서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진실이 드러나면 모든 것은 가려지겠지만 이 기회에 우리 시민운동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올 것이 온 것이다. 아직도 80년대식 방식의 진영논리에 갇혀 있거나, 시민사회의 기득권이 자신들에게만 있다고 여기는 활동가들로는 안된다. 건강한 시민운동을 위해 몇 가지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조직이 건강해야 한다. 건강한 조직의 척도는 시민들의 참여에 있다. 단순히 재정적 지원이 아닌, 의사 결정까지도 구성원 중심이어야 한다. 또 임기를 채우고 나면 반드시 대표는 바뀌어야 한다. 대표도 못 바꾸는 조직은 허약하다. 우리 주위에 한 번도 대표가 바뀌지 않는 단체들이 있다. 사정이야 있겠지만 건강한 조직이 아님을 그 대표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다. 둘째, 정치 중립적이어야 한다. 억압받던 시절 시민사회는 그에 대항하는 소수 권력을 도왔다. 당연한 행보이다. 또 시민운동의 경험과 전문성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목적이 정치에 있다면 평가는 달라진다. 더구나 선거에 관여하고 기여금을 비롯한 어떤 댓가를 받는다면 썩은 정치권에 기댄 기생적 행태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부조리를 지적하고 비판할 수 있겠는가? 셋째, 이번 정의연 사태에서 드러나듯 회계가 투명해야 한다. 어렵게 살림을 꾸리던 시절이야 좋은 의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아니 재정이 열악해 활동가들이 아르바이트로 재원 마련하기도 했었다.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국민 대다수가 시민단체의 회계 감사를 원하고 있다. 물론 활동가들에게는 일한 만큼의 정당한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언제까지 그들의 희생에만 기댈 수는 없다. 넷째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단체인지 모호한 단체가 있다. 약자를 대변한다면서 약자는 보이지 않고, 활동가들만을 위한 단체는 이제 간판을 내려야 한다. 약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거나 출세를 하려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신뢰할 수 있겠는가? 지난 30여 년간 우리 사회를 민주적이고 정의롭게 하는데 시민단체의 힘은 지대했고, 앞으로도 그 힘은 필요하다. 그러나 시대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누구를 비판하기에 앞서 단체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 성찰을 통해 시민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단체로 나갈 수 있는 계기인 것이다. /김판용 시인전주경실련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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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02 17:41

어른과 꼰대 이야기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5월은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 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이 함께한 가정의 달이다. 1958년 5월부터 스승의 날이 있었다. 스승으로 존경받는 선생님은 먼저 태어나서 더 많은 것들을 알기에 배울 점과 본받을 점이 많다는 의미의 존칭이다. 학생들로부터 진정으로 존경받으며 스승으로 기억되는 선생님들은 이 땅에 몇 분이나 계시려나? 후학들에겐 스승이나 어른은 닮고 싶은 사람이면서 미래의 표본으로 경외의 뜻이 담겨 특별한 가르침을 준 사람을 인생의 스승 또는 큰 어른이라고 부른다. 교사의 날도 선생님의 날도 아닌 스승의 날이라 이름 지어진 것은 나름의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선생님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사제 간의 정마저 거부하는 냉정하고 기계화된 사회현상이지만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들로 남아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꼰대라는 단어는 선생님에 대한 학생들의 호칭이며, 1960년경부터 아버지나 교사, 또는 직장상사에게 젊은이들 사이에서 쓰이던 늙은이의 은어(隱語)다. 자기의 경험이나 지식을 자녀 또는 직원들에게 자신들이 겪었던 낡은 사고방식을 강요하거나, 시대착오적 설교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주위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가장 극복해내기 어려운 감정 중의 하나가 주위의 시선과 자신만이 느끼는 열등감이라고 한다. 그것도 가까운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이나 패배감은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삶을 바꿀 수 있는 길로 안내하거나 자신감을 심어주는 멘-토가 되는 역할이 바로 스승이나 어른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은 선생님의 따뜻한 말씀 한 마디로 용기를 얻어 빗나가던 삶을 전환시켜 평생 동안 가슴에 안고 자기인생을 경영해간다. 그런가하면 개념 없이 뱉은 선생님답지 않은 말로 인생이 망가진(?) 학생 또한 없지 않았으리라.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습관적으로 던지는 폭언이나 빈정거림은 젊은 학생들의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가 되어 뇌리에 박힐 것이다. 너는 도대체 커서 뭐가 될래, 그 꼴 참 좋다 이게 다 네놈 때문이다 네 형 반만 닮아봐라 등 자녀나 학생들에게 버릇처럼 뱉어내는 실망하는 감정의 패턴은 그 사람을 헤어나지 못하는 구렁텅이로 몰고 간다.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했던가? 선생님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잘못하거나, 눈 밖에 난 학생이 있더라도 한 번 더 웃어주고, 등을 두드리며 칭찬해준다면 그에겐 새로운 변곡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종편 방송 Top 7 프로그램의 김호중이라는 가수는 가정사로 인해 포기에 가까운 삶을 이어가던 조손(祖孫)가정의 말썽꾸러기 학생이었다고 한다. 운명적으로 만난 선생님의 진정한 뒷바라지로 지금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불우한 과거를 씻어가는 제2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고령사회가 되면서 노인들은 늘어가지만 어른다운 어른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세상에서 제일 가까워야 할 부모와 자식 사이 스승과 제자 사이가 부적절한 언행과 이기적인 행동으로 관계의 벽이 갈수록 높아져만 간다. 선생님 그리고 어른들이여! 훌륭한 스승으로까지는 아니더라도 2세들의 미래를 가로막는 꼰대라는 호칭은 듣지 않아야겠지요?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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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26 20:21

삶으로 가르치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엄마 게와 아들 게가 길을 가고 있다. 아들아, 옆으로 가지 말고 앞으로 가라! 아들이 답을 한다. 엄마, 저는 엄마를 따라 가고 있습니다. 엄마가 가는 대로 옆으로 기는 것, 그것은 아들이 보고 배운 유일한 방법이었다. 앞으로 가지 못하는 엄마 게가 아들 게에게 너는 왜 옆으로 가냐고 타박을 한다면 누구의 잘못일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보이는 대로 배우는 것이 있다. 말하는 방식과 행동, 식성, 취향, 가치관, 서서히 알게 모르게 습득 되는 수많은 것들, 그것은 허용의 범위이며 포용 가능한 생활 습관이 된다. 때로 이는 긍정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반면 나쁜 씨앗이 되어 고질적인 버릇으로 남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고, 자녀는 그 부모의 열매라고 하는데, 체화된 가르침은 얼마나 고약한지 쉽사리 바뀌지가 않는다. 엄격한 아버지 슬하에 체벌로 눈물 흘리던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되지 않기로 다짐하면서도 어느새 동일한 모습으로 자녀를 대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는 고백을 듣는다. 상처는 기억으로 남아 행동으로 표출된다. 보고 자라는 것이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결국 삶의 교육이 인성을 사로잡는다. 두뇌교육전문가인 홍양표 박사는 현대 사회 성공하는 자녀의 덕목으로 자신의 서열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자신의 역할을 아는 것이 관계를 맺는 힘이 되고, 사회성이 좋은 아이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열은 어디에서부터 정해질까? 우리의 삶의 터전, 바로 가정이다. 가정에서부터 가장의 권위가 서고,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순서로 이어질 때, 불필요한 싸움은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모두가 마주 앉은 식탁에서 최고 권위자가 수저를 들 때까지 밥을 먹지 않는 것, 아버지가 퇴근하시면 먼저 반기고 환영해주는 것, 자녀들 앞에서 배우자 험담을 하지 않는 것, 먹는 것은 형이 동생에게 나누어주는 것, 이런 사소한 일상의 행위들이 삶을 가르치는 교육이 되어 성공하는 인품으로 성장하게 한다니 기초 인성 교육이 성화(聖化)의 핵심이었다. 비행기에서 위급 시에는 보호자가 우선 산소마스크를 쓰고 난 다음 아이들을 도우라고 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어린 아이들이 먼저 보호 받아야 마땅하다 싶어 마스크를 먼저 씌워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른들이 먼저 살아야 위급한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으로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어른이 살아야 아이도 산다는 것, 삶을 먼저 살아본 이가 본이 되어야 그것을 표본으로 삼고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네덜란드에서 500명의 아이들에게 날씨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는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아이들의 절반은 그렇다고 했고, 나머지는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아이들의 엄마도 동일하게 대답을 했다는 것인데, 결국 날이 좋아 엄마가 기분이 좋으면 아이들도 기분이 좋아졌고, 날이 흐려 엄마가 우울해지면 아이들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날씨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내 선택과 모습으로 바꿔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르침으로 받는다.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보며 배우고, 청년은 먼저 어른이 된 이들을 보며 꿈을 꾸고, 세상은 먼저 살아간 이들의 모습으로 기록에 남는다. 우리의 발자취가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걷게 하는 이정표가 된다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가정의 달을 보내며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는 진리가 우리 모두에게 책임감으로 전해지길 소망한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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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19 18:06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는 현재진행형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대구 경북의 신천지 교회 코로나19 집단 감염사태는 전화위복의 쓴 약이 되었다. 화는 대구 경북의 시민들이 입었으며 그 화로 인한 복은 전체 국민에게 돌아갔다. 지난달 대구에서 한 요양병원을 운영하던 원장님에게 힘내시라고 연락을 드렸다.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던 때 요양병원 전수조사 중 그곳은 양성 환자가 발생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부를 물었는데 편치 않은 마음이라며 우리 모두의 일이며 함께 극복해야 한다고 공동체적 답변을 들려주셨다. 먼저 대구 경북 시민들의 문명적 태도와 자발적 봉쇄, 의료진의 노고와 헌신에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지난 2월 7일로 돌아가면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중앙임상위원회 의료진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코로나19 환자 중에 인공호흡기나 에크모, 신장투석기 등 중환자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없으며 증상으로 보아 중증질환이 아니라는 취지의 발표를 하였다. 발표내용은 매우 성급한 것이었으나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충정이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책임감 있는 분들이라면 특히 대구 경북을 비롯한 전국의 코로나19 환자와 의료인을 포함한 전 국민에게 송구스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미국 시카고 근처에 거주하는 수학자 의형이 3월 중순에 전주를 방문하고 싶다고 1월말에 알려왔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19 사태가 위중하니 신중하시라 만류하였다. 그러나 회신은 함께 여행할 자제의 의견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미국 내에서 연일 보도 되는 뉴스는 독감 정도로 취급하고 있으니 예정대로 한국에 와서 전주 한옥마을의 한옥 숙박체험을 해보고 싶다는 전언이었다. 초기에 한국과 미국 모두 사태를 오판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여행을 취소하시라 권유하였으며 형님은 그 충고를 따랐다. 그런데 지금 방역에 실패한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안전한 곳이 되었다. 초기에 잘못된 정보에 따라 대책 없는 일상활동으로 코로나19가 은연중 미국 전역에 퍼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신천지교회 집단감염으로 대구 경북의 환자수가 급증하자 중앙대책본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적극적 대응, 시민들의 자발적 봉쇄, 의료진의 노력과 함께 온 국민의 걱정어린 성원이 전국적 방역에 힘이 되어 지금 통제 가능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만일 신천지 집단감염이라는 돌출상황이 없었고 일부 성급한 발표에 근거하여 자유롭게 생활했더라면 집단 활동이 활발한 우리는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이 조용히 그러면서도 급속히 전파되고 임계점을 넘어 환자가 전국적으로 폭증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의료시스템 붕괴와 통제불능의 상황이 되었을 수 있다. 초기 신천지교회 집단감염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이유다. 아직도 코로나19 원인체의 발생과 변이, 전파과정의 역학, 임상적 특징과 치료방법, 회복 후 후유증이나 면역력 획득 여부, 백신의 가능성이나 효과 등 코로나19 정체가 완전히 파악되지 않았다. 이제는 2차 유행에 대비하여 재확산의 단초가 될 무증상 환자를 관리할 방법을 찾기 위해 표본 지역사회 전체인구를 대상으로 바이러스나 항체 양성여부에 대한 전수조사 연구도 필요하다. 지금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나 코로나19는 현재진행형이다. 일상으로의 복귀, 특히 각급 학교의 개학은 재확산의 계기가 될 수 있으며 또 여름이 지난 후 더 큰 2차 유행이 염려되고 있다. 코로나19의 완전퇴치에 이를 때까지 일상생활에서 개인위생과 방역지침을 철저히 지켜야 하겠다. 코로나19를 벗어날 각국도생의 1차 결승선은 치료제와 백신의 완성시점이다. 모두 합심하여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우리나라를 다시 한번 진일보시키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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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12 16:55

다가온 미래와 포스트 코로나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들은 그 여파가 커서 구성원들의 의식은 물론 사회 시스템마저 바꿔버린다. 전쟁이나 전염병과 같은 재앙에 부딪히면 기존 질서의 민낯이 드러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 무섭던 양반과 남성들의 무기력이 드러났고, 이후 신분제의 모순과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상대적으로 활발해진 경우이다. 관성적으로 유지되던 생활습관과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고민은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이어진다. 제2차대전 이후 최악의 재앙이라는 코로나19의 파장도 그렇게 퍼져 나갈 것 같다. 우리나라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지만 세계적 확산 일로에 있다. 그리고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내년으로 연기된 동경올림픽마저 개최가 불투명하다고 하니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 대혼란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이런 가운데 한쪽에서는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주도권을 잡겠다는 야심이다. 지난주 연예기획사 SM은 세계 최초로 소속 그룹 슈퍼엠의 온라인 공연을 진행했다. 이 공연에 세계 109개국, 7만5000명의 관객이 참여했다. 관람료가 한화 3민3000원 정도니 입장료만으로도 최소 25억을 벌어들였다. 며칠 전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역시 파이팅 콘서트를 온라인으로 중계했다. 뮤지컬이나 연극 등이 시나브로 안방으로 향한다. 코로나 환경과 디지털 기술이 빚은 비대면 공연 문화이다. 코로나19 예방의 핵심은 비대면이다. 개학을 미루다 원격수업으로 전환한 학교, 그러나 이런 비대면 교육이 일시적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온라인 교육으로 급격하게 기울면서 교사들의 수업 능력을 시험하려 들 것이다. 대표적 온라인 교육기관 미네르바대학이 하버드대보다 합격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비대면이 그리 생소한 것도 아니다. 은행을 가지 않고도 금융거래를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됐다. 대면 진료에 의존하고 있는 병원 역시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모든 환자가 꼭 내원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떤 이는 대중교통의 종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교통정책 전반을 재조정해야 하는 문제라서 쉽지는 않겠지만 소형화, 자율주행 등으로 나갈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무엇보다 온라인 중심 거래가 가속화 될 것이다. 미국의 백화점 삼분의 일이 이미 문을 닫았다. 몇백억 들여 화려한 백화점 건물을 지을 이유가 없다. 배달앱의 출현으로 소위 상권의 위력이 약해져 가듯 임대료도 급격히 낮아질 것이다. 조리기구만 있으면 외곽에서도 음식을 만들어 배달앱 플랫폼에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속설이 옛말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국제 관계도 다소 폐쇄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항공산업의 그림자가 어두울 것이란 전망이다. 그 외에도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떠났던 제조업의 리쇼어링이 본격화되고, 인건비에 대응할 스마트 공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선진국의 일자리는 늘겠지만 제품의 가격도 오를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뉴노멀, 갑자기 다가온 미래에 빨리 대응해야 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망하기 때문이다. 디지털카메라를 먼저 개발하고도 내부 필름 기득권에 밀린 코닥의 몰락, 최초로 스마트폰을 내놓고도 퓨처폰 세력의 고집으로 시판을 못 하고 결국 문을 닫은 노키야의 사례를 타산지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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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05 15:50

‘벌써’라는 의미의 아쉬움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창밖을 바라보니, 라일락이 만발하는 5월이 먼발치서 화사한 미소로 다가오고 있다. 계절의 여왕으로 칭송받는 5월이라는 감정보다는 덧없는 세월의 무상에 벌써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현재의 시간이 현실에서 잘게 부서져간다. 벌써 라는 단어가 지난 세월을 아쉬움으로 몰아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누구의 인생이든 기를 써가며 살아 온 젊은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아른 거릴 것이다. 아직도 못 다한 일들이 남아있는데 이를 어찌할까하고 말이다. 우리는 각자의 이정표에 인생을 다르게 설계하며 삶의 철학을 얘기한다. 산다는 것은 사람마다의 색깔 있는 꿈을 갖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그 꿈을 이뤄내려고 치열하게 꿈틀대는 전쟁이다. 저녁놀을 바라보면서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은 노인의 길목에 들어선 증거라고 한다. 하얀 새치가 하나둘 거울 속에 나타날 때,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은 인생을 음미해가는 사람이며, 할아버지라 부를 때, 웃는 얼굴로 받아들이면 그는 성숙한(?) 사람이라고 한다. 세월의 무게에 밀려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삶의 맛을 천천히 곱씹으면서 영글어간다고 그럴듯한 포장으로 위안을 받으려 한다면 그는 분명 센스 있는 사람이다. 오랜 세월을 건너오는 동안에 당신의 마음에는 무엇들이 걸려 있었을까. 스쳐간 인연들, 지난날들에 얽힌 회한, 못다한 그리움의 감정들, 즐겁고 아파했던 청춘을 돌아보며 이제부터는 가슴속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놓아야 여생이 편안하지 않을까? 누구나 다양하고 바쁘게 이어온 과거는 현재의 나를 만드는데, 단단한 기저가 되었겠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미래가 오염되지 않도록 과거를 미련 없이 흘려보내야 한다. 우리의 조상들이 흰옷만을 입을 수밖에 없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가령 빨간색이나 노란색을 입고 싶었어도 염색하는 기술이 없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감미롭고 순결하고 깔끔한 의미의 하얀색이 때로는 두려움을 연상하는 붉은색보다 더 많은 공포를 부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시작되었을까. 인자한 모습의 성모마리아상, 로댕의 생각하는 남성조각상 등은 왜 하얀색이었을까? 하고 생각해본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우리가 누구인지를 따지지 않고 슬픈 일, 기쁜 일들은 언제나 우리들 곁에 머물고 있듯이, 하얀색과 빨간색들이 어느 곳이나 펼쳐져 있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이겨내는 것이 우리들의 오늘이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했다. 일그러진 운명이 다가왔을 때, 회피하기보다는 주어진 일에 모든 힘을 쏟아낸다는 뜻이 아니었을까하고 해석해본다. 여럿이 모이면 하나의 주제에서 의견이 다르듯, 굳이 나를 그 속에 묻어버릴 필요는 없다. 벌써라는 아쉬움이나 아직이라는 단어에 이끌려 다니는 것보다는 초조해하지 말고 나름의 철학을 믿고 자기라는 인생을 꾸준하게 일궈가는 것이다. 모든 일에 자기를 나타내려한다거나 조바심을 내는 사람은 옆에서 치켜세우는 겉치레의 칭찬에 잘 속아 넘어간다. 생각이 빗나간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혐오감도 모른 체, 자기의 존재가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받는 줄 알고 흐뭇해하는 사람이다. 라고 했다. 석양노을의 바닷가를 거니는 나그네의 가슴이 출렁거리는 것은 노년기를 맞이하고 있는 비탈진 고비길 인생일 것이다.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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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28 20:32

용서하기 힘들 때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사회의 구성원으로 진짜 성인(成人)이 되었다고 인지할 때부터 인생은 왜 쉽지 않을까?를 묻고 또 물었던 기억이 있다. 살다보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가 너무 많다. 열심히 학창시절을 보내면 입시가 기다리고 있고, 입시 후에는 취업, 어렵사리 취업을 해 결혼까지 골인한다고 해도 새로운 시작일 뿐이었다. 수십 년간 따로 살던 배우자와 맞춰가는 것도 힘든데, 시댁 또는 처가 식구들이 딸려온다. 사랑 속에 태어난 자녀들이지만 인내심의 한계를 자극할 때, 내가 이러려고 결혼을 했나 싶어 복잡한 마음이 든다. 이런 저런 생채기가 깊어질 무렵 분노로 폭발하고 만다. 때로는 더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믿었던 배우자의 배신, 재정의 궁핍, 사업의 실패, 고된 질병, 사춘기 자녀의 방황, 남모르는 아픔에 눈물을 훔친다. 잔소리와 회초리로 변화될 수 있다면 해보겠건만, 닦달하는 외침에 갈등만 커지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사랑하는 이가 준 상처는 마음에 깊이 파고들어 용서 할 수 없다는 사연이 라디오에 도착한다. 별다른 해결 방도를 찾지 못해 시간만 보내고,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너무 멀리 건너왔다며 아쉬워하는 이들을 보며, 용서가 진정 어려운 일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작하는 생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유달리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았던 날, 퇴근 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데 이솝우화 해님과 바람을 오랜만에 펼치게 됐다. 해님과 바람이 누가 더 강한지 티격태격하다 힘겨루기를 한다. 지나가는 사나이의 외투를 누가 벗길 수 있는지 내기를 하며 바람이 먼저 세게, 더 세게 바람을 불어보지만 사나이는 옷깃을 여밀 뿐이었다. 이번에는 해님이 햇살을 강하게 비추자 더워진 나그네는 옷을 벗었다. 진정한 강함이 무엇인지를 오랜만에 읽은 이야기를 통해 곱씹어본다. 강한 힘, 강압적인 방법이 결코 능사는 아니라는 것. 부드러운 온기로, 따뜻함으로 포용해 줄 때, 긍휼의 자비가 임한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용서의 위대함을 절실히 보여주는 소설이다. 빵을 훔친 대가로 19년의 옥살이를 하고 나온 장발장은 은접시를 훔친 위기의 상황에서 그의 부족함을 덮어준 미리엘 신부의 따뜻한 말 한마디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길 다짐했다. 장발장이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체벌과 감금이 아니라 갚을 수 없는 감사를 느끼게 한 용서였다. 용서의 힘을 묵상한다. 용서는 먼저 내민 손이고, 새로운 기회로 이어지는 희망과 용기다. 이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아내지 못한 진심이며, 자존심을 이겨낸 용기이고, 삶의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의학 전문가들도 말하길 자발적인 용서는 심신의 안정감을 주고, 부교감신경계를 활성화하며 혈압을 낮추고 각종 질병의 위험을 감소시킨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진정한 용서는 남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한 성숙한 의례 행위이자 인격 수양의 최고봉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를 주저하게 만들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과감히 떨쳐내고, 미래를 향해 시선을 돌릴 때, 용서가 결국 홀로 쥐고 있던 내면의 상처와 부정적인 감정을 치유하는, 스스로를 위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 마하트마 간디는 용서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용서는 용기 있고, 용감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죄를 용서할 만큼 강한 사람만이 사랑하는 법을 안다. 용서하기 힘들 때, 이제는 나를 생각하자. 상처 준 그들을 위해서가 아닌, 사랑받을 만 하고 세상에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나의 존재를 위해 이제는 외쳐보자. 나는 너를 용서한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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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21 19:40

출산율 회복의 조건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10년 전 합계출산율이 1.23명이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92명이었으며 2019년11월 처음으로 사망수가 출생수를 앞서 인구감소가 현실이 되었다. 과거 적극적 산아제한 정책의 영향으로 다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지금도 집단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으며, 청년들의 가치관 변화와 함께 사회경제적 어려움으로 비혼의 증가가 더해져 인구문제는 더 절박해졌다. 그간 국가와 지자체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들도 유효한 출구를 찾지 못했으니 저출산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따져보고 방향을 다시 점검해보아야 한다. 과거에 공중부양 같은 황당한 주장으로 얘깃거리가 된 한 대선 후보의 결혼수당 1억과 출산수당 3000만원 지급이라는 공약이 기억난다. 지난 2년간 저출산문제와 관련하여 쏟아부은 재정이 58조가 넘고 올해만 37조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생각하면 그 공약을 황당한 소리로만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근래 전시회에서 그림을 출품한 모 은사님과 담소하던 중에 들려준 말씀 한 토막은 다음과 같다.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너희들 인생은 너희가 알아서 할 바니 상관하지 않겠다라고 해서는 안되며 나를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너희는 국물도 없다라고 말해야 한다. 인구문제를 비켜 생각해도 손주를 바라보며 사랑에 빠진 할머니의 말씀으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무튼 인구감소 문제를 그냥 자녀들의 독립적 인생관과 판단에만 맡겨둘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 분명하다. 지금의 추세를 반전시키지 못하면 훗날 지도 상에서 지워질 이유로 핵전쟁이나 치명적 전염병, 환경변화에 따른 재앙 등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인구문제의 열쇠는 청년세대이다라는 명제는 우리의 시대적 화두다. 현재 저출산에 대한 대책은 격려와 보상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는 필요충분조건이 요구되는데 필요만 주어지고 충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것이다. 물론 청년세대의 취업이나 육아와 교육 및 주거문제 등을 개선하고 보조하며 출산에 적절히 보상을 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정도의 문제일뿐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충분조건이 성립되지 않으면 이민자의 대량 유입이 아닌 한 인구감소를 되돌리기란 어려울 것이다. 청년세대가 인구문제의 열쇠이기 위한 충분조건은 의식의 변화다. 이는 성년 이전에 받아온 제도권의 교육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가정에서 이뤄진 학습의 결과다. 생의 가치 중 무엇이 우선 순위인가 하는 문제다. 인생에서 출산 즉 생명체로서 유전자의 세대연속을 당연한 자연의 이치로 생각했고 생의 우선 가치로 여겼던 베이비 부머 세대와 달리, 자아 실현과 행복을 위해 결혼도 출산도 미루거나 포기할 수 있는 현재와 미래의 많은 청년들에게 충분조건이 추가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결혼이나 출산과 양육은 행복을 방해하는 것이며 피하고 싶은 선택일 것이다. 비혼과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는 국가적 필요성만 내세워서는 해결할 수 없다. 생명과 인권, 생명체의 의무로서 세대의 연속성 등 삶의 가치관점으로 바라봐야 출구가 보일 것이다. 행복한 삶에 대한 개인의 가치관을 국가적 문제 해결의 충분조건으로 연결하는 것은 가임세대 개개인과 그들이 속한 가정, 학교, 사회가 합의와 협의를 통해 이뤄야야 하는 난제다. 현재 그리고 미래의 청년들이 출산이란 자신들을 통해 한 생명이 찾아오는 것이며 이를 삶에 있어 우선되는 고귀한 가치로 받아들일 때, 격려와 보상도 그 문을 여는 유효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관식 자인산부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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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14 16:22

코로나19와 문화적 자부심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인류 사회의 발전 중의 하나는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망 확장일 것이다. 인접한 국가와의 갈등에서 벗어나 다양한 대륙의 많은 국가들과 관계를 넓혀 가면서 경제적 번영은 물론 늘 싸웠던 이웃나라와도 비교적 평화롭게 지내게 되었다. 우리 역시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지만 최근 70년이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기간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교역과 왕래가 마냥 꽃길이 아님을 이번 코로나19는 명확히 보여줬다. 중국의 우한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현재 209개국에 120만 명 이상을 감염시켰다. 계속 환자가 쏟아지고 있으니, 어느 정도 규모로 나갈 지 알 수가 없다. 벌써 사망자만 6만 명을 훌쩍 넘겼다. 과거 페스트가 유럽에 국한되었다면 지금의 코로나19는 세계적 재앙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유난히 전염력이 높은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인류의 보폭이 그만큼 넓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러자 일부 국가에서는 입국을 통제하고, 국경을 봉쇄하는가 하면, 이미 착륙한 비행기를 돌려보내는 등 전례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렇다고 서운하단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위기에 본질은 드러난다. 코로나19는 문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국제관계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위상이 분명하다.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들은 그렇지 못한 나라에 비해 우수한 자본과 기술을 문화적 우월성으로 여겼다. 최근 소위 선진국들이라 자처하는 그들의 문화적 우월감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코로나19를 미개한 동양인들에게나 옮겨 붙는 허접한 바이러스라 여기고 인종차별적 태도를 보였다. 마스크를 쓴 동양인을 바이러스 취급하고 혐오하는가하면 심지어는 테러를 자행하기도 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가장 많은 환자가 유럽과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또 선진국의 의료 시스템도 얼마나 허술한가를 보여줬다. 의료는 산업이기도 하지만 전쟁이나 전염병 창궐 시에는 국방이다. 나라를 지키는 시스템인 것이다. 단순히 산업으로만 여기고 돈이 되는 쪽으로만 발전시킨 첨단 의료 시스템이 코로나 정국에서 얼마나 무기력한가를 보여줬다. 우리가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의료인들의 태도다. 환자를 두고 병원을 떠나버리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보여준 행태일 것이다. 코로나 위기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모여서 파티를 즐기고, 정작 위험이 닥치자 생필품을 사재기했다. 나만 먹고, 나만 살자는 이기적인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과연 이게 선진국민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런가 하면 그들이 그토록 무시했던 동양, 아시아 국가에서 사재기를 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코로나19로 드러난 서구의 민낯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문화적 상대성으로 스스로 움츠려들지 않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무엇이 발전된 국가의 모습인가? 적극적이고 투명한 방역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은 국가, 환자에게 헌신적인 의료인, 또 국가적 위기에 함께 동참하는 국민들 이게 선진국이고 문화국가의 모습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임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김판용 임실 지사중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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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07 17:02

삶은 생각 따라 달라지는 것을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기발한 해프닝성의 거짓말로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게 해주는 사월의 첫날이다. 16세기 후반 무렵부터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영국과 미국을 거친 서양의 전통문화가 바다를 건너와 이제는 추억으로 묻혀가는 만우절(April Fools Day)날이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온 국민들이 가뜩이나 긴장을 풀지 못한 채로 하루하루를 넘어가고 있다. 세상인심이 일상을 외로운 삶으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닌가 하고 모두의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자연의 섭리는 수은주를 끌어올려 겨우내 움츠렸던 수줍은 생명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렇게 푸른 날개를 펴가며 생동하는 희망의 달(?)인데도 영국의 시인 토머스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왜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을까? 우리들 모두 거울에 비추이는 내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현실에서의 자신을 한 번쯤 되돌려 짚어보면 어떨까. 어떤 일이 종료된 뒤 개운치 않은 찌꺼기 같은 것들이 남아 있을 때, 그 상황을 때로는 나 자신을 돌아다보며 바로잡으려하거나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이런 때일수록 새삼스레 삶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정리해서 도전해보는 것도 틀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똑같은 상황에서 헤쳐 나가는 수단과 방법이 다른 것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정도와 그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부딪히면 누구는 걸림돌이라 투덜대고, 어떤 사람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지나칠 것이다. 눈이 떠 있는 동안에 걸림돌과 난관들을 수없이 겪어 가면서 그것들을 딛고 가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경험으로 축적이 된다. 컵에 물이 반절이 남았을 때, 반절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람과 아직도 반절이나 남았다고 여유를 갖는 사람과는 인생을 운전하는 모습이 다르듯이. 인생살이에서 정답은 없다. 저 사람은 부유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잘 생겼기 때문에, 당신은 머리가 좋기 때문에 그들 모두는 매우 행복할 것이다. 라는 논리는 그 원인이 소멸되거나 약해지면 바로 무너질 수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음에도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시험에 여러 차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끝내 시련을 견뎌내면서 보란 듯이 일어서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집념은 뭐든지 해낼 수 있는 강인한 의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실패한 핑계를 찾아내어 변명을 늘어놓지만, 하고자 한 일을 이뤄낸 사람은 어떻게든 해내야겠다는 굳은 의지로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방법의 모색과 핑계거리 찾기,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인 시각은 종이 한 장의 차이에서 오는 가치관과 생각의 차이다. 혼돈의 갈림길에서는 명확한 선을 그어야 거기에 알맞은 정답을 끌어 낼 수 있다. 현재는 과거를 바탕으로 한다. 매순간 우리들이 마주하는 것들이 쌓여가면서 탄탄한 미래가 이뤄지듯, 주어진 환경에서 자기를 보살피고 단련시켜 만들어가는 노력이 삶을 윤택하게 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가겠노라고 생각만 하고 망설이다가 첫발을 내딛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평생을 그 자리에 머물러있어야만 한다. 삶에 필요한 지혜는 모든 환경과 경험과 대인관계에서 차곡차곡 쌓여간다. 현실이 조금은 답답하더라도 목적을 향해 전력을 다하면 생각이 현실로 바꿔져 있을 것이다. /김형중 전 전북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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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31 16:40

경청.해.봄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퇴근하며 들어오는 엄마에게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서 질문으로 반겨준다. 엄마! 경청의 정의를 알아요? 어린이집을 다니며 두 달에 한 번씩 새로운 성품을 공부하는데 이번 달 배운 성품 노래를 꽤나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경청의 정의를 불러봅시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잘~ 집중하여 들어~ 상대방이 얼마나 소중한지 인정해~ 주는 것! 흔히들 경청(傾聽)을 말할 때 잘 듣는 것 정도로 생각하지만 귀를 기울여 듣기를 넘어 듣는 것으로 상대방이 소중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단계에 이르기, 이것이 경청의 핵심이다. 사실 듣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데 사람들은 어렵다 말한다. 스토리텔링이나 발표 기술(Presentation Skill)에 큰 비중을 두며 말하기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온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며, 개인의 취향과 성향에 대해 알아주기를 바라고, 오히려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는 이들을 생태 낙오자처럼 여긴다. 들리긴 하는데 공감하지 못하고, 듣긴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는 어디에서도 잘 듣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다. 정신과 전문의 윤홍균이 지은 <자존감수업>이라는 책에서 부부 생활에서 만족도가 떨어지는 남편들은 대부분 아내의 무시 속에서 자존감이 저하되어 있고, 아내는 자신의 감정을 공감 받지 못 할 때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상담 치료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헤아리는 훈련을 하며 듣기 시작할 때, 굳었던 마음은 녹는다. 그러고 보면 잘 듣는 것, 들으며 상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려주는 행위만으로도 꼬인 매듭은 풀리고, 긴장의 관계는 완화된다. 경청이 가져오는 치유의 능력이다.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WTC)가 끔찍한 테러를 당한 뒤 아픔과 혼란 속에 신음할 때, 한 비영리 단체는 뉴욕 도심에서 Free Prayer 캠페인을 펼쳤다. 이는 생명의 위협과 공포 속에서 두려워하던 시민들에게 다가가 고민을 들어주고 기도하며 위로하는 운동이었다. 인종과 종교를 뛰어넘는 많은 이들이 곳곳에 설치된 야외 상담소를 찾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상처는 조금씩 아물었다. 일본에서도 2011년 쓰나미로 일어난 대지진과 원전 사고로 인해 수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 속에서 시작된 것이 경청상담소였다. 그곳에서는 상담자가 30분씩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다. 현실적인 처방은 없었지만 그곳에서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고, 이후 후쿠시마를 중심으로 100여 개의 상담소가 생기며 사람들을 치유했다. 우리 지역에서도 경청의 위로를 나누고자 2015년 여름 당신을 위해 기도해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길가 상담텐트에서 오고가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픔을 위로하고 함께 기도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의 아픔, 2015년 메르스의 공포가 스치고 간 자리에 세워진 상담텐트에는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외로웠고, 대화가 필요했다. 잠시의 상담 시간이었지만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말씀하시던 분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의 지혜를 떠올린다. 경청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가장 진솔한 방법이다. 그리고 모든 소통과 대화의 첫 출발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요즘, 심리적 거리마저 멀어져 외로움에 아파하는 이들이 있다면 해처럼 따뜻하게, 봄처럼 싱그럽게 경청해봄은 어떨까. 영화 심야식당 마스터의 요리가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됐던 것은 그가 먼저 들어줬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강주연 전북극동방송 방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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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2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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