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07 05:54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금요칼럼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장석주 시인 앙리 루소의 잠든 집시(1897)란 그림을 좋아한다. 화면 오른쪽 상단 푸르스름한 밤의 창공에 하얀 달이 떠 있다. 지평선 아래 갈색의 대지에는 집시가 악기를 옆에 둔 채로 곤하게 잠들어 있다. 잠든 집시에게 숫사자가 다가온다. 이 기이한 환각 같은 집시의 꿈을 묘사한 단순한 구도의 그림에 내 무의식은 자극을 받는다. 비가 개인 날,/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녹음이 종이가 되어/금붕어가 시를 쓴다.(김광섭, 비 개인 여름 아침) 이 맑고 깨끗한 여름 아침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꿈이 아닐까? 꽃 피고 새 울며, 못 속에 금붕어가 노니는 이 평화로운 아침에 맞는 오늘이 우리가 꾸는 긴 꿈 중 일부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빠진다. 우리가 자는 동안 최소한 다섯 번 이상의 꿈을 꾼다고 한다. 기억하는 꿈은 극히 작은 일부다. 깨어나기 직전에 꾼 꿈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수면 중 뇌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 하나인 꿈은 그림의 연쇄로 이루어진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꿈은 뇌라는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화다.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비이성이 지배하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꿈은 논리나 맥락이 없는 이야기로 무의식에 웅크려 있던 격정과 본능적 욕망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꿈의 재료는 낮 동안 활동할 때 겪은 경험들, 일화 기억들(episodic memory)이다. 때때로 영혼에 숨은 무의식적 힘들이 생생한 현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잠 들지만 뇌는 잠들지 않는다. 우리가 잠에 빠진 동안 뇌는 쉬지 않고 활동을 이어간다. 수면은 기억 중추 영역인 해마에 기억을 응고시켜 고착시키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이걸 기억 굳힘이라고 한다. 꿈은 수면 중 감각기관에서 온 각종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생리학자들에 따르면, 해마는 낮에 수용한 정보를 선별하여 신피질에 있는 장기 저장소로 옮기는데, 이 과정에서 꿈이란 현상이 파생한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꿈이 장자 제물편에 나온다. 호접지몽으로 널리 알려진 이 꿈에 따르면, 장주(莊周)는 낮잠을 자면서 꿈을 꾼다. 장주가 범나비로 변해 꽃 위를 날아다니는 꿈이다. 나비가 되어 꽃향기에 취한 장주는 즐겁고 행복했다. 장주는 불현 듯 꿈에서 깨어난다. 장주는 한동안 자신이 나비 꿈을 꾼 것인지, 혹은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주는 꿈의 순간과 생시의 경계가 희미한 몽롱함 속에 머물렀다. 장주와 나비는 엄연히 다른데, 장주는 이 제의적 꿈을 통해 자아와 외물은 본디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쓴다. 꿈의 태반은 개꿈이다. 하지만 특별한 꿈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꾸는 꿈이 태몽이다. 많은 이들이 태몽을 예지몽으로 받아들인다. 과연 꿈에 미래에 대한 예지력이 있을까? 조선 선비 정철(1536~1593)은 대동야승에 꿈의 예지력에 관한 신통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인생에서 꿈과 현실이 들어맞는 경우가 많았다. 신묘년의 꿈에 강계부사가 되더니 곧 강계로 귀양살이를 갔다. 위리안치 중에 아들이 장원 급제하는 꿈을 꾸었더니 얼마 안 되어 문과인 용방(龍榜)의 선발에 뽑혔다. 이렇듯 꿈과 현실이 부합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요즘 어린 시절 옛집과 돌아가신지 오래인 어머니가 등장하는 꿈을 자주 꾼다. 좋은 꿈도, 나쁜 꿈도 아니다. 아침에 허망하기 짝이 없는 그 요령부득의 꿈을 곱씹어본다. 왜 나이가 들면서 더 자주 꿈을 꾸는 것일까? 숙면 주기가 짧아진 탓에 더 많은 꿈을 기억하는 탓이다. 살기가 팍팍하고 괴로운 순간 이게 꿈이었으면 할 때도 있다. 그 반대로 달콤한 꿈을 꾸는 동안은 이게 생시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살다 보면 꿈이 생시 같고, 생시가 꿈같은 찰나를 겪는다. 이상의 말대로,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인 게 인생이다. 우리는 꿈으로 또 다른 생을 얻는다. 꿈은 우리가 현실에서 겪을 수 없는 이면의 삶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장석주 시인

  • 오피니언
  • 기고
  • 2021.06.10 18:14

노인학대예방의 날에 부쳐

신계숙 배화여대 교수 중년의 나이에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다 보니 중년노년을 내세운 단체에서 간혹 강연 의뢰가 들어온다. 이번에는 노인학대 예방의 날에 기념 강연을 해달라고 한다. 내가 노인 전문가도 아니고 노인에 관해 연구한 적이 없어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번 해보겠다고 했다. 그 이유는 내 어머님이 70이 되셨을 때부터 90으로 작고 하셨을 때까지 어머님을 모시고 목욕탕에 다니면서 어머님이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봤고 마지막 1년간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늙어감을 직접 봐왔기 때문에 노년에 대해서 몇 마디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늙어서 노인이 된다는 것을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나는 수분감소로 즉답할 것이다. 싱싱한 무가 수분이 빠지면서 구멍이 숭숭 뚫렸다가 결국 먹을 수 없게 되는 것과 사람의 체중이나 머리의 크기가 늙어갈수록 점점 작아지고 줄어드는 현상은 결국 수분감소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구순이 되신 어머님은 내가 육십만 됐어도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다 해보겠노라고 노래를 하셨었다. 어머님은 가시고 그의 막내딸은 그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했던 육순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내 인생에 육십이라는 글자가 있으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숫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늙는다는 것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며칠 간 내가 늙는다는 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은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기력이 없어져서 걸음도 못 걸으면 어떻게 하지 등등의 온갖 걱정과 불안이 엄습해왔다. 학문적으로는 그러한 증상을 이미 노화 불안이라 칭하고 있는 것을 보니 늙음에 대한 불안은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나 보다. 2025년에는 우리나라의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고 한다. 그 20% 안에 내가 포함된다. 국가에서 노인 문제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노인이 되어본 사람들의 조언은 신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노년을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신체적으로는 준비할 것은 무엇일까. 제일 기본적인 것은 움직임이다. 마땅히 움직일 일이 없으면 산책 등의 운동도 좋다. 과도한 음주, 과도한 흡연도 줄이라고 한다. 젊었을 때 입에 좋은 것들만 찾았다면 몸에 좋은 음식을 애써 찾아서 섭취하라고 조언한다. 경제적인 문제는 퇴임과 더불어 경제적 소득은 줄어드는데 질병이 발생 등으로 인한 의료비 증가 등에 대한 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노년이 되면 체력이 감소하고 질병이 증가하며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저하됨은 당연한 현상이다. 자녀들은 모두 짝을 찾아 떠나니 빈 둥지에 남겨진 부모님들은 공허감과 허탈함에 우울한 증상이 나타난다. 정신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날 갑자기 준비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으로 계획적으로 심도 있게 미리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육십을 앞둔 나는 늙어감에 조금 더 관대해지고 싶다. 늙는다는 것이 쇠약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한사람 한 사람이 일생을 통해 터득한 경험과 지식으로 뭉쳐진 지혜의 보고가 될 수 있다. 동양고전 중 하나인 <맹자 양혜왕> 편에서 내 노인을 노인으로 섬길 뿐만 아니라 남의 노인까지 섬기고 내 어린이를 사랑하고 남의 어린이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면 천하를 손바닥에 놓고 움직일 수 있다라고 했다. 우리가 인문학 특강을 듣기 위해 찾아다니는 내용은 모두 선인들의 지혜를 배워 온고지신하자고 한 것 아닌가. /신계숙 배화여대 교수

  • 오피니언
  • 기고
  • 2021.06.03 17:46

아스피린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아픔을 줄여주는 약은 인류가 오래 전부터 간절히 원했다. 옛사람들은 버드나무 껍질을 빻거나 즙을 내어 사용하면 통증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기원전 1500년쯤 기록된 이집트 파피루스 문서에 그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출산 고통을 줄이기 위해 버드나무 잎 차를 산모에게 마시게 했다고 하며, 히포크라테스도 버드나무 잎의 진통 효과를 알고 환자들에게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버드나무 껍질은 맛이 쓰고 위장장애가 심하며 많이 먹으면 죽을 수도 있어서 약 성분만 추출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그 결과 19세기 초, 버드나무 껍질을 갈아서 생긴 침전물에서 약효의 주성분 물질을 추출하여 버드나무의 학명 Salix에서 가져와 살리신 (Salicin)이라 하였다. 이후 더 순수하고 안정적이며 부작용 없는 약물 개발을 위한 연구 끝에 마침내 화학적으로 살리실산을 대량 합성하기에 이르렀지만 심한 위장장애와 고약한 맛 때문에 살리실산은 여전히 먹기 힘들었다. 1897년 독일 바이엘사 연구원 펠릭스 호프만은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던 아버지를 위해 부작용과 역한 맛을 대폭 줄인 아세틸살리실산(Acetylsalicylic acid) 개발에 성공하였다. 아세틸의 A와 살리실산의 별명 스필산의 spir를 합하여 아스피린(Aspirin)이라고 이름 지었고, 1899년 특허 출시된 아스피린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약이 되었고, 바이엘사는 세계적인 제약회사로 발돋움하였다.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 대유행 때 아스피린은 독감 증상을 줄이는데 탁월한 효능을 보이면서 명약의 입지를 굳혔으며, 1969년 달착륙선 아폴로 11호 비행사를 따라 우주에까지 진출하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아스피린이 왜 통증을 가라앉혀주는지도 모른 채 사용되다가 1971년 영국인 존 베인 박사가 작용 기전을 밝혀냈고 198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아스피린의 기적은 그 후에도 계속되어 해열, 진통, 소염 작용 뿐 아니라 각종 암 발병률을 줄이거나 알츠하이머성 치매 예방, 임신 중독증 예방 등 새로운 가능성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혈소판 기능을 차단함으로써 혈액 응고를 막아서 뇌경색, 협심증, 심근경색 등 심각한 병을 예방하거나 재발 방지하는 효과인데 수많은 환자들이 이를 위해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있다. 하지만 효능 못지않게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위장장애는 아스피린의 가장 흔하면서도 심각한 부작용 중 하나인데 2016년 미국 질병예방특별위원회(USPSTF) 분석에 따르면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환자에서 주요 위장관 출혈은 59%, 뇌출혈은 33% 증가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스피린을 복용한 환자에서 심근경색증은 22%, 사망률은 6% 감소시키는 등의 효과 때문에 심각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아스피린이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 코로나19가 일상을 바꾸어놓은 지 1년이 넘었지만 대유행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충분한 검증을 거칠 시간 없이 급하게 사용되다보니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알려지면서 백신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그 결과 백신 접종을 꺼리는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부작용은 다른 백신에서도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부작용이고 희귀 혈전증(혈소판감소증이 동반된 특이부위 혈전증) 등 심각한 부작용은 이름처럼 매우 희귀하여 백신의 유용성에 비해 위험성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으로서는 백신 접종 외에는 코로나19를 물리칠 방법이 전혀 없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약이나 치료는 없다. 다만 치료의 유익함이 위해성보다 훨씬 클 때 우리는 그 약과 치료를 선택하는 것이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아스피린이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여전히 널리 사용되는 것이다. 벌에 쏘일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달콤한 꿀을 얻을 수 없듯이 부작용 무서워서 백신을 기피하면 우리는 코로나19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코로나19 백신(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았다. 코로나19 없는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1.05.27 17:47

이번엔 야당 심판!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가 끝난 지 한달이 조금 지났지만 집권여당을 집어삼킨 민심의 쓰나미가 야당마저 집어 삼킬 분위기다. 지난 서울부산시장 선거 결과에 대해 대체적인 평가는 문재인 정부와 집권 민주당에 대한 심판이었다. 달리 말해 야당이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의힘도 선거 직후에는 국민의힘이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니다, 민심을 무겁게 느낀다, 변화하겠다고 했다. 그러기에 국민 중 일부는 이번 서울부산선거를 계기로 국민의힘의 변화를 기대하기도 했다. 그 변화는 국민의힘이 여의도 국회 기득권을 벗어나 야권통합이나 보수와 중도가 함께 할 수 있는 개방적 정치혁신, 수권정당으로서의 정책대안과 국민과 소통하는 시스템 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선거 후 약 1개월 동안 국민의힘은 그렇지 못했다. 개방적 정당개혁보다는 정치일정을 들어 당대표 선거로 직행했다. 그러면서 나오는 말이 개혁이 아닌 자강이다. 당의 종합적 정책대안보다는 중구난방 정부 때리기로 정치인 개개인 인지도 경쟁만 보인다. 소통도 달라진 것이 없다. 서울부산시장 선거 승리에 대해서도 자만까지 하기 시작한다. 분명 선거 직후 모두가 야당의 승리가 아닌 집권여당의 패배였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야당의 승리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그러면서 서울부산선거에서 자신들의 공을 내세우며 마치 킹메이커인양 차기 대권주자들을 얼차려까지 시킨다. 지난 4월 26일 데이터리서치의 서울부산시장 선거평가조사에서 국민의힘 승리에 가장 기여한 인물을 묻는 질문에 오세훈박형준 두 후보라는 응답은 22.1%, 안철수라는 응답은 17.0%, 김종인이라는 응답은 8.7%였다. 즉 선거에 승리했음에도 국민의힘 내부의 후보나 선거를 총괄했던 인물의 기여는 22.1%, 8.7%에 불과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국민의힘이 이러한 모습을 보이자 민심이 이번에는 여당보다는 야당을 주시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야당도 심판하려 한다. 심판의 장은 바로 국민의힘 대표경선이 될 것이다. 국민의힘 대표 경선에서 중진이 먼저 움직였다. 출마가 예상되었던 주호영, 나경원, 권영세와 일찍이 출마선언을 한 홍문표 등이다. 국민들은 비록 제대로 당 혁신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이 출마를 하지만 그래도 그야말로 중진들이기에 이들을 통해 대선승리 전략이나 이를 통한 정권교체의 비전이라도 보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정권교체와 관련해 구체적 전략보다는 내가 할 수 있다. 내가 적임자다라는 식의 주장만 하고 있다. 그러자 초선 중심으로 젊은 후보들이 등장한다. 과거 같으면 초선이나 원내 경험이 없는 원외들은 대표가 아니라 최고위원에 나갔다. 그런데 바로 당권에 도전한다. 우리 정당사상 초유의 사태다. 여론도 심상찮다. 당초 중진 강세로 예상되었던 판세였다. 그러나 5월 811일 한길리서치 조사에는 나경원이 15.9%로 1위를 했지만 이준석이 13.1%로 2위를 하면서 급부상했다. 그리고 14일 PNR조사에서는 이준석의 지지율이 20.4%로 15.5%의 나경원을 처음으로 앞섰다. 뿐만 아니라 초선의 김웅도 8.4%로 4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현상은 재보궐 선거 후 국민이 바라는 국민의힘의 당개혁혁신 대신 다선의원과 당 기득권을 강화하는 즉 자강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민심의 심판이라 할 수 있다. 모두들 민심은 천심이라 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국민의 뜻을 하늘같이 받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말들은 그냥 말뿐이다. 레토릭에 불과하다. 현재 국민의힘 상황이 레토릭으로 민심의 요구를 모면하거나 본질을 가리려 했던 과거의 정치를 그대로 하려다가 국민들에게 들통이 난 것과 같다. 이제는 국민들이 정치인들에게 과거처럼 순진하게 속거나 그냥 두고 보지도 않는다. 즉 정치의 대상인 객체로만 남아 있으려 하지 않는다. 이젠 직접 나선다. 즉 정치의 주체가 되려한다. 그래서 국민들은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지렛대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심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젊은 후보를 내세워 국민의힘을 심판하려고 한다. 그리고 국민들의 이러한 판단 주기도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1.05.20 18:00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 장석주

장석주 시인 한 소녀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서 부른 노래를 감탄하면서 들었다. 어쩜 저렇게 노래를 잘 하나! 귀에 쏙쏙 박히는 노랫말에 홀린 듯 몰입해 들었다.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오늘 이 순간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 라는 가사로 유추하자면, 이 노래는 안티 에이징을 대놓고 주창한다. 나이의 제약은 걷어치우고 오늘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을 누리자! 나이가 아무것도 아니라지만, 우리는 나이에 따라 인생은 다른 시기로 옮겨가고, 나이를 먹으며 필연적으로 다른 형태의 삶을 겪는다. 나이와 생물학적 신체, 나이와 삶의 형태와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임을 부정할 수 없다. 늙음이 한물간 퇴적층이 아니다. 하지만 다들 나이 듦을 기피한다. 젊음이 늙음에 견줘 더 가치가 있다는 사회 통념이 늙음을 기피하는 태도를 부추긴다. 늙음은 인생이란 자산을 한 푼도 남김없이 거덜 낸 노름꾼이 아니건만 늙음에 대한 반감은 꽤나 넓게 퍼져있다. 본디 젊은이가 제 아버지나 교사를 상스럽게 낮춰 부르는 꼰대가 이즈막엔 나이 듦을 싸잡아 혐오하는 용어로 바뀌었다. 나이든 자는 다 꼰대 취급을 받는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늙음을 기피하는 세태를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과연 늙음은 수치고, 하찮음이며, 쓸모없음으로의 전락인가? 안티 에이징은 현대 의학을 힘을 빌어 노화를 늦추자는 것이다. 늙음을 폄하하고 젊음을 숭상하는 세태가 안티 에이징의 유행을 낳는다. 동안(童?) 숭배도 그 유행의 한 조각이다. 나이가 들면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흑발에서 백발로 변한다. 이 자연스러움을 한사코 기피하는 세태가 우스꽝스럽다. 물론 청춘은 풋풋하고 아름다운 시절이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한 구절을 꿸 만한 지적 능력이 없더라도 젊은 생의 추동력은 눈부시다. 불의와 부조리에 반항하고, 꿈을 향해 나아갈 때 젊음은 근력과 재능이 넘치고, 생은 약동한다. 하지만 여러 모순을 품은 채 불안정을 드러내고 실수가 잦은 것도 사실이다. 제 안의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경험의 결핍과 부족 속에서 방탕에 빠질 때 젊음은 혼란의 동맹군(크리스티안 생제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청춘이 무조건 아름답다는 말만은 하지 말자. 늙는 일은 누구에게나 낯선 첫 경험이다. 노화는 인생의 과정일 뿐이다. 모든 생명체는 노화를 겪는다. 노화는 개체가 죽음에 이름으로써만 끝난다. 다들 망각하지만, 늙은이도 한때는 청춘이었다. 난자가 정자와 결합하고 수태가 이루어진 생의 첫 순간부터 인간은 늙음을 향해 달려간다. 늙음은 추락도, 불명예도 아니다. 이것은 약속된 생의 프로그램일 뿐이다. 우리는 늙으면서 상실과 쇠락을 겪는다. 늙음이 자랑스러운 훈장은 아니지만 숨기고 싶은 수치나 악덕도 아니다. 늙음이 빛나는 순간 그것은 쇠락 속에서 통찰과 지혜, 황혼의 평화와 같은 덕목을 드러내는 인생의 원숙기인 것이다. 한국계 미국 이민 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그린 영화 미나리에서 한국 할머니 연기를 한 배우 윤여정 씨가 오스카상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아시아 배우로서는 두 번째라고 한다. 한국 영화사 100년 만에 거둔 이 놀라운 성과를 낸 주인공은 배우 윤여정 씨다. 나이 74세의 배우는 오스카 수상식장에서 한 점의 주눅 듦 없이 당당했다. 윤여정 씨의 희끗희끗한 머리칼과 주름이 많은 얼굴을 보면서 늙음이 저렇게 아름답구나, 했다. 누가 늙음을 잔인한 간수이자 감옥이라 하는가?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늙음이 추하다는 소문은 유언비어이다. 그건 헛소문이고, 가짜 뉴스다. 청춘이란 영예는 거저 얻어진 것이지만 노년의 충만함과 완숙 경험을 표상하는 백발은 공짜로 얻은 게 아니다. 윤여정 씨, 당신이 한국의 배우여서 자랑스러워요! 늙음이 별처럼 빛날 때 젊음과 노년은 그 자체로 가치의 우열 관계가 성립되지 않음을, 그리고 백발이 보여주는 창조주와 같은 위엄은 숱한 시련과 수고의 결과라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장석주 시인

  • 오피니언
  • 기고
  • 2021.05.13 19:13

매일 매일 새롭게 사는 방법

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내일 강원도 정선으로 스무 번째 오토바이 여행을 떠난다. 천명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오십이 되자 신체적으로 여기저기 조금씩 처지는 모습을 보이고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이 그날이 그날인 채로 지내고 있었다. 쉰일곱이라는 나이에 훅 들이닥친 갱년기는 시도 때도 없이 몸 온도를 높였다. 대중교통수단으로는 나의 열증을 식혀줄 수가 없었다. 유일한 해결책은 걷거나 자전거라도 타야 했다. 고심 끝에 작은 오토바이를 타기로 했다. 그러나 작은 오토바이는 강한 바람에는 휘청이는 등 불안한 면이 있으니 좀 더 큰 오토바이에 도전하기로 했다. 첫 번째 관문은 2종 소형면허취득이다. 8월의 뙤약볕에서 열 시간 동안 가다 서는 연습을 반복했다. 일보일배하는 심정이다. 우여곡절 끝에 면허증을 거머쥐었다. 세계 챔피언이라도 딴 그것처럼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그리곤 바로 오토바이 대리점에 가서 내 몸무게보다 네 배나 더 큰 오토바이를 덜컥 계약해버리고 말았다. 오토바이 대리점에서는 내가 오토바이를 사들인 최고령 여성 고객이었으므로 조심해서 타셔요!라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오토바이를 2,000km쯤 타고 간신히 혼자서 좌로가고 우로갈 수 있게 되었을 즈음 한 방송국으로부터 국내 여행과 음식을 주제로 하는 여행 프로그램에 출연해줄 것을 제안해왔다. 음식에 관한 프로그램이 워낙 많다 보니 타 방송국의 유사 프로그램과 차별화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작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열세 지역을 달려보았고 올봄 일곱 곳을 다녀왔다. 처음에는 무모한 도전 아닌가? 수도 없이 의심하였는데 무무한 도전은 어느새 무모한 자신감을 키워내고 있었다. 부르릉 하고 시동을 거는 순간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여행자, 탐험가가 뇌리를 시쳤다. 당나라 사람으로서 서역에 다녀와 대당서역기를 작성한 현장, 이탈리아 상인의 아들로서 중국에 다녀와 동방견문록을 남긴 마르코폴로, 신라 시대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인도까지 여행하고 돌아온 현장법사, 조선 시대 실학자로 당시의 대제국이었던 청나라를 방문하여 그 모습을 고스란히 적어낸 열하일기의 박지원, 27년간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3개국을 유람했던 이븐바투타까지 그들의 가슴도 이렇게 두근거렸을까? 인생도 여행도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거라면 내 한번 당겨보리라 마음먹고 시동을 걸었다. 부응하는 시동 소리와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려 보았다. 오십이라 안 될 줄 알았던 것들이 오십이어서 더 진하게 다가왔다. 제주 바다 저 아랫녘에서 왔을 봄은 오자마자 벚꽃을 피워냈다. 봄이 왔다고 소식을 전해오더니 금세 색이 짙어진 개나리와 진달래가 나를 반긴다. 코끝에 진하게 머무는 향은 라일락이었다가 아카시아였다가 인동초로 넘어간다. 바다는 파도를 만들어 뭍으로 바다 향을 나르고 또 나른다. 종일 쉼이 없다. 바닷물을 뚫고 올라오는 일출은 그 자체가 강한 에너지로 무엇이든 소망하면 다 이룰 것 같다. 일몰은 일몰대로 하루 열심히 산 사람들을 위로한다. 나무는 한 그루였다가 두 그루였다가 작은 산을 만들고 거대한 산맥을 만들어 돌고 도는 길을 만들어낸다. 항아리 모양으로 둘러싸인 숲에서 하루 밤을 지내려니 동이트기도 전에 시작된 새들의 노랫소리는 차라리 교향악에 가까웠다.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한 연한 나뭇잎은 빛을 받아 차라리 눈이 부셨다. 계곡을 휘돌아 흐르는 물소리도 창공의 새소리와 더불어 돌림노래를 하는 듯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내 달리다 푸른 하늘이 보이면 내려서 하늘 한번 보고 달리다 정겨운 풍경이 보이면 잠시 쉬어 심호흡도 해본다. 달리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내안의 묵은 찌꺼기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렇게 순수했을까. 컴퓨의 reset를 누르면 화면이 다시 시작되는 것처럼 나의 하루도 매일 매일이 새롭다. /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 오피니언
  • 기고
  • 2021.05.06 17:47

화양연화(花樣年華)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대중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빈센트 반 고흐 작품 몽마르트르 거리 풍경이 최근 경매에서 약 175억 원에 낙찰되었다. 엄청난 금액이지만 고흐 작품치고는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자신을 치료해준 의사에게 치료비 대신 그려준 그림 가셰 박사의 초상은 1990년에 약 880억 원에 팔렸다. 평생 900여 점가량 그림을 남겼으니 고흐 그림 자산 가치는 천문학적이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고흐는 평생 그림을 한 점도 팔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도 그 재능을 알아주지 않은 탓이다.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의 인생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15살 때 중학교 자퇴 후 화랑 점원, 교사, 보조 목사, 서점 점원, 전도사 등 여러 일을 해보았지만 불안정한 정신 상태와 과격한 성격 탓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시엔이라는 매춘부와 동거 생활은 가족과 주위 사람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그녀와 헤어진 후 평생 독신으로 살게 된다. 그림에 재능을 보여 화가의 길로 들어서지만 알아주는 이 없어 평생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 정신적으로 의존하였다. 자신의 귀를 자르는 등 불안정한 정신 상태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던 비극의 절정기에 오히려 수많은 걸작을 남기고 권총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고흐의 삶이 오죽 불행했으면 조용필은 킬로만자로의 표범에서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라고 노래했을까? 그렇게 천재는 살아서 불행했고 죽어서야 빛을 발했다. 비단 고흐뿐이랴. 타임지 선정 20세기 최고 소설 중 하나로 손꼽히며 70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30만 부가 팔리고 있는 미국 현대문학의 정수 호밀밭의 파수꾼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32세 때 쓴 소설이다. 젊은 날에 발표한 작품이 워낙 큰 성공을 거두다 보니 이를 뛰어넘을 후속작은 나오지 않고 작품 활동도 점차 뜸해지면서 작가는 대중의 관심을 피해서 은둔하다가 더는 히트작을 내지 못하고 91세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인생 절정이 너무 일찍 찾아왔다. 원 히트 원더 (one-hit wonder), 주로 대중음악에서 사용되는 말로 노래 한 곡 반짝 히트한 후 잊히는 가수를 이르는 말이다. 수많은 가수가 히트곡 하나 없이 가수 생활을 마감하는 세계에서 히트곡 한 곡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일 수 있으나 한 번 맛본 단맛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오히려 아니 맛본 것보다 더 큰 고통일지도 모른다. 2020년 영화계 최대 화제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었다면 2021년은 단연 미나리와 윤여정 배우이다. 미나리는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75세 배우 윤여정은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배우조합상 여우조연상,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상을 받는 바람에 몇 관왕 세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으며 그녀의 수상 소식을 알리는 신문 기사 제목이 또 韓 배우 최초, 윤여정 또 수상일 정도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영화인의 꿈의 무대라 할 수 있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또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었다. 윤여정은 25세에 데뷔작 화녀로 제1회 시체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을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던 주연급 배우였고 한동안 전성기를 누리는 듯했다. 하지만 많은 여배우가 나이 들어가면서 은퇴하여 젊고 아름답던 모습 그대로 대중의 기억 속에 박제되는 것과 달리 윤여정은 데뷔 후 5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주연, 조연, 악역, 할머니역 등 가리지 않고 여러 역할을 맡으며 늘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성장하였다. 그녀는 말한다. 내가 꽃이 아니라는 걸 알죠. 조연이란 게 거름이죠. 나는 꽃들이 잘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배우 윤여정은 거름이 아니라 꽃이며 조연이 아닌 주연이다.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을 뜻하는 말이다. 그녀의 화양연화는 바로 지금이 아닐까? 어쩌면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 삶의 화양연화는 언제쯤 올까?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1.04.29 17:41

2030시대의 등장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이번 서울부산 재보궐 선거에서 가장 큰 특징은 2030세대의 등장이다. 과거 선거에서 스윙보터로 중도층의 영향은 많이 봐왔지만, 2030세대의 영향은 조금 낯설다. 과거에도 2030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이 컸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1980년대와 90년대 2030세대인 386세대와 X세대다. 당시는 2030세대가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고, 유권자 구성 비율에서 50% 이상을 차지한 반면 40대는 20%가 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2030세대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줄어든다. 가장 큰 이유는 유권자 구성 비중이 줄어서다. 2000년대 들어 50%대 이하로 감소했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든다. 또 정치적으로도 무관심해 투표율이 낮았다. 반면 40대의 구성비는 20%대로 늘어난다. 그러자 40대는 40%대를 차지하는 당시 2030세대와 30%대의 50대 이상 세대의 중간 위치에서 선거판을 결정하는 캐스팅보터의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했던 40대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스윙보터로 2030세대가 부각되고 있다. 그럼 왜 다시 2030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졌는가? 2030세대의 유권자 비중이 더 늘어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줄었다. 35%선도 무너졌다. 유권자 수가 더 줄었는데도 영향력은 더 커진 것은 2030세대의 높은 정치참여율과 정치 성향에서 40대와 다른 유동성 때문이다. 그럼 왜 2030세대의 투표율이 높아졌는가? 그 이유는 2030세대가 처한 구조화된 저성장시대 때문이다. 이들은 IMF 이후 세대로 성장기부터 취업 등 사회진출을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가서도 스펙부터 쌓았다. 그리고 사회에 나오면서 정치권에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공정한 경쟁관리를 요구했다. 이러한 공정이 정치적으로 폭발한 것이 박근혜 정부에서 최순실-정유라 사건이며 이를 계기로 2030세대의 정치적 관심과 투표율이 급속히 높아졌다. 투표율뿐 아니라 투표성향도 바뀌고 있다. 과거 2030세대인 80년대 386세대 뿐 아니라 그 후배인 90년대 대학을 다닌 X세대는 선배의 영향을 받아 이념성향이 강했다. 당시 이념성의 핵심은 역사적으로는 남북한 정통성 논쟁, 경제적으로는 다국적기업에 대한 대응, 정치적으로는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즉 제국주의론으로 전개됐다. 대체로 자유주의적 경쟁을 비판적으로 봤으며 평등을 요구했다. 이런 이념성으로 인해 40대의 표심은 진보성향이 매우 강하다. 그러다 보니 표심에서 유동성이 부족해 스윙보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유권자 수도 20%가 되지 않아 캐스팅보터 역할도 못한다. 반면 IMF와 2000년대 이후 대학을 다닌 2030세대는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스펙을 쌓으며 일찍이 사회진출을 준비했다. 정치사회 의식에 있어 선배보다는 대졸인 부모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 우리나라 기업의 다국적화와 월드컵 4강 등을 경험하면서 경쟁의 수용과 남북역사의 정통성, 미국에 대한 인식 등에서 40대와 달리했다. 그러다 보니 2030세대는 탈 이념성의 특징을 갖고, 선거에서 이념적 프레임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경쟁의 공정성을 요구할 뿐 아니라 다양성과 공동체적, 개인의 행복 추구 등 다양한 가치를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정당이나 이념의 고정층이 되지 않는다. 2030세대는 한때 40대와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보였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서 그러했다. 그러나 19대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을 지지한 40대와 달리 20대는 이재명을 더 지지하면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19대 대선과 그 이후 지방선거 총선 등에서는 40대와 비슷한 투표성향을 나타냈다가 이번 재보궐선거에선 다른 모습을 보였다. 즉 2030세대는 진보의 고정층인 40대와 달리 스윙보터의 모습을 보인다. 매년 2030세대가 60만 명 이상 늘어나고, 고연령층이 40만 명 이상 사망하면서 한해에만 100만 명 전후의 유권자 변동이 진행된다. 그럴수록 2030세대의 영향력은 더 커진다. 2030세대는 더 이상 단순히 경험치가 부족하다고 이용할 수 있는 세대도, 정치적 영향력이 적어 무시할 수 있는 세대도 아니다. 2030세대의 등장은 정치적 현실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1.04.22 18:18

갑질에 대처하는 법

장석주 (시인인문학저술가) 최근 한 야당 국회의원이 보궐선거 개표상황실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당직자의 멱살을 잡고 정강이를 걷어차 갑질 논란에 휘말렸다. 갑질은 한국 사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 중 하나다. 이른바 대한항공 086편 회항 사건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갑질 사례일 것이다. 2014년 12월 5일, 미국의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떠나는 여객기에서 대한항공 총수 가족이자 부사장인 조현아 씨가 객실승무원의 서비스를 트집 잡아 항공기 회항을 지시하고 이륙을 지연시켰다. 이 갑질 사태로 기업의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기업의 인사구조 변화까지 불러오는 파장을 낳았다. 고용주와 피고용주, 직장 상사와 하급 직원, 아파트 입주민과 경비원, 선배와 후배 같이 부나 직위, 나이의 격차로 인해 갑과 을이라는 비대칭 구도가 생긴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갑질이란 힘의 위계에서 비대칭 관계인 갑이 을에게 윽박지르며 월권적 위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갑질은 갑의 우둔함과 무신경함에서 비롯되는데, 무엇보다도 개별자의 비뚫어진 인성, 인권에 대한 인지적 감수성의 부재, 즉 인격의 막돼먹음이 가장 큰 발생 이유일 것이다. 갑이 을의 인권을 침해하고 이익을 빼앗을 때 위력을 행사는 갑질 당사자의 비루함은 그 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갑질은 피해자의 내면에 트라우마를 남기며, 삶의 의욕을 고갈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태다. 갑질 피해자의 일부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렇듯 타인의 인격을 짓누르고 파탄낸다는 점에서 갑질은 극악한 범죄 행위다. 갑질의 행태는 실로 다양하다. 부당한 강요, 협박, 막말(반말과 욕설), 폭행, 임금 떼먹기, 열정페이 따위가 다 갑질이다. 과시적인 소비문화와 함께 갑질이 활개를 치는 천민자본주의 세상은 너저분하고 미친 세상일 것이다. 몇 해 전 한 방송사 외주 프로그램 제작사의 조연출 일을 하던 한 청년은 모욕과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야긴 미친 세상이야!라고 외치고 자살했다. 그런데 갑과 을은 고정불변의 관계가 아니다. 어제의 갑이 오늘은 을이 되고, 어제의 을이 오늘은 갑이 될 수가 있다. 이렇듯 갑과 을의 관계는 유동적이다. 갑질 사건 때마다 대중의 분노가 들끓고 벌통을 쑤신 듯 소동이 벌어지는데도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없는가? 유교적 가부장제 내에서 작동하는 수직화 된 힘의 위계와 질서를 한국 사회가 관습적으로 수용하여 문화정서적 기율로 삼은 것도 원인 중 일부일 것이다. 또한 깊은 삶의 생태학이 부재하는 사회의 낮은 단계의 인권 감수성과 천박한 물질만능주의도 갑질이 창궐하는데 한몫을 했을 테다. 갑질은 구역질나는 행위다. 어떤 경우에도 갑질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갑질에 대처하는 을의 올바른 태도는 무엇인가? 즉각적으로 갑의 부당한 행위에 항의하고 바로잡고자 애써야 한다. 강자들은 내심 약자의 저항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갑질을 당하고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은 철학자 니체가 말 하는 바 우리 안에 잠재된 노예의 속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예의 속성은 힘의 위세 앞에서 저자세와 굴종을 낳는데. 이것을 약자가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처세술이라고 호도해서는 안 된다. 철학자는 부당함에 저항하지 않는 을을 두고 재빨리 영합하는 자, 개처럼 툭하면 벌렁 드러눕는 자, 비굴한 자라고 꼬집는다. 더 나아가 결코 자기 자신을 지키려 하지 않는 자, 독성 있는 침이나 사악한 눈길도 받아들이는 자, 지나치게 인내심이 강한 자, 무슨 일이든 만족하는 자를 증오하고, 그런 자들에게 구역질을 느낀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고 말한다. 그렇다. 갑질에 대한 인내심은 우둔함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노예 도덕에 대한 비겁한 굴종이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모욕과 폐해에서 자신을 지키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갑질은 또 다른 갑질을 불러온다. 갑질에 속하는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참아서는 안 된다. 즉각 분노하고, 항의하라! 그 정당한 분노와 항의가 당신의 자존감과 인격을 지켜줄 것이다. /장석주 (시인인문학저술가)

  • 오피니언
  • 기고
  • 2021.04.15 18:08

세대를 뛰어 넘는 공감

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요리를 만들고 함께 나누어 먹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다양한 연령대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내가 요리를 직업으로 택한 이후 가장 재미있는 주제의 제안이 들어왔다. 그중 한 방송국에서 어린이와 미식회를 진행하여 동영상 채널에 올리고 싶다는 것이다. 어린이와의 미식회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어린이들의 연령이 궁금했다. 어린이들은 24개월, 6세, 7세, 9세의 남, 여아라고 한다. 어린이를 가까이서 본 적이 업는 나로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다. 그동안 우리는 세대에 대한 많은 담론이 있어왔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신세대 구세대로 양분하는 것이 전부이던 것이 나보다 연배가 높은 선배들은 베이비붐시대로, 나는 386시대 아래 후배들은 X세대 IMF와 월드컵을 겪어낸 시대는 Y세대 Z세대 즉 밀레니얼세대라고 부른다. Z세대까지 다 써먹었으니 더 이상 세대를 구분할 글자도 없다. 그런데 음식을 나눌 대상이 채 열 살이 안 된 어린이라고 하니 일을 하겠다고 결정하는 순간부터 고심이 깊어졌다. 메뉴는 준비하는 내내 24개월 어린이가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내가 하는 음식은 중국음식이라서 이 어린이들이 나를 통해서 처음으로 중국음식을 접할 수도 있다는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요리의 가짓수는 열 가지로 하고 육지에서 구할 것, 바닷재료, 등 골고루 선택하고 각각의 재료에 사용할 양념은 어린이 들이 먹을 수 있을까 고심하면서 메뉴를 만들고 수정해나갔다. 매일하는 요리지만 그래도 어린이들이 잘 먹이게 하려면 신경을 쓰고 또 써야했다. 진짜 걱정은 그 다음이었다. 어린이들과 나의 나이가 50살이 넘게 차이가 난다. 이 나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까 고심하다가 뜬 눈으로 지샜다. 미식회 당일 어린이들은 힘찬 소리와 함께 계단을 올라왔다. 막상 만난 어린이 들은 의젓했고 밝았다. 24개월 된 어린이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기에 바빴다. 새우를 튀겨서 케첩에 조리는 요리를 하면서 풍미를 증진하기 위해서 조금 넣은 중국의 두반장에는 좀 매운데요? 라면서 넣은 양념을 바로 읽어냈고 매울까봐 케첩만 넣었더니 단순한 케첩 맛이 나는데요? 라면서 꼭 집어냈다. 어린이들은 절대미각을 갖고 태어난 듯 보였다. 짜장면을 먹을 때는 오늘 짜장면 먹었다고 광고를 하는 것 처음 온 얼굴이 모두 짜장면으로 물들었다. 볶음밥은 한 그릇 더 달라고 곱빼기 주문이 들어왔다. 45센티 잉어로 만든 탕수생선 앞에서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 중 9살짜리 한 어린이는 꿈이 래퍼였다. 함께 노래할까? 무슨노래를 하고 싶어? 했더니 영국 그룹 퀸의 노래를 불렀다. 9살짜리 어린이가 퀸의 노래를 하다니. 나는 서랍에서 잠자고 있던 미니 마이크도 꺼내고 컴퓨터에 꽂아서 쓰는 노래방 등도 켰다. 미식회로 시작해서 음악회가 되어간다. 이게 웬일인가? 우리는 노래 하나라 50년이라는 나이 차이를 뛰어 넘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나이도 있은 채 함께 즐거워했다. 흥 많은 한국인인 우리 식사하면 노랫가락 한 소절이라도 부르면 더 행복한 유전자를 어린이들도 공유하고 있었다. 미식회로 시작한 우리들의 시간은 그렇게 아름다운 노랫소리와 함께 막을 내렸다. 사람들은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옛날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나도 라떼는 말이야 로 시작하는 옛날이야기를 즐겨한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 할 때 나는 즐겁지만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살짝 지루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대마다 사용하는 어휘도 달라 간혹 세대 간 대화가 막히기도 하고 과도하게 줄인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이해하는 척하기도 하고 무슨 뜻이냐고 물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신세대인 밀레니얼과 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도 나와 있다. 진정한 소통은 무엇일까? 상대방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오늘 하루 그렇게 보내보면 어떨까한다. /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 오피니언
  • 기고
  • 2021.04.08 20:13

나의 담낭 절제기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강하고 담대하라.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던 유대인을 탈출시킨 지도자 모세가 죽은 후 유대 민족을 고향 가나안으로 인도할 책임에 힘겨워하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당부하신 말이다. 쓸개 담(膽) 클 대(大), 쓸개가 크다는 뜻의 담대(膽大)는 겁 없고 용감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용감한 사람을 담력(膽力)이 세다고 한다. 반대로 용기나 줏대 없는 사람을 쓸개 빠졌다고 한다. 인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던 시절 용기는 쓸개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쓸개, 즉 담낭(膽囊)은 쓰다에서 나왔다. 오월동주(吳越同舟), 고대 중국 오나라와 월나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월(越)과 전쟁에서 아버지와 형을 잃은 오나라 왕자 부차는 편한 잠자리 대신 장작 위에 누워 자고 쓰디쓴 쓸개를 씹으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는 말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다. 씹어보진 않았으나 쓸개액은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쓰다고 한다. 쓸개액 담즙(膽汁)은 이름과 달리 쓸개가 아니라 간에서 만들어진다. 쓸개는 간에서 흘러온 액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즉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소장으로 내려 보내 소화를 돕는데 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니 위치도 간 바로 밑이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쓸개가 탈나서 아팠다. 처음에는 별로 심하지도, 자주 아프지도 않고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을 때만 아프다 보니 오히려 음식 조심하라는 몸의 경고로 생각하고 참고 견뎠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자주, 심하게 아파서 급기야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없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싶어 수술하기로 했다. 시간 내기가 어려워 오전 진료 마치고 점심시간에 입원해서 오후에 수술하기로 했는데 생전 처음 하는 수술이라 살짝 긴장도 되었지만 수술대에 눕고 약물이 들어가자마자 곧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마취 회복실. 그리고 쓸개가 사라졌고 고통도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쓸개 빠진 인간이 되었고 이틀 후 퇴원, 일주일 후 업무에 복귀하였다. 지금이야 그다지 어려운 수술이 아니지만 불과 150여 년 전만 해도 담석증은 불치병이었다. 제대로 된 마취도 없고 배를 열면 공기에 노출된 내장에 염증이 생겨 죽게 된다라고 알던 시절이라 수술을 꿈도 못 꾸었다. 1867년, 미국 의사 존 스토 밥스는 4년 간 통증에 시달리던 환자가 죽어도 좋다며 매달리자 수술을 결심했다. 쓸개에 구멍을 뚫어 돌과 쓸개즙을 빼내어 고통을 덜어줬지만 쓸개는 그대로 둔, 돌과 즙이 쓸개에서 흘러나오는 길을 남겨놓은 불완전한 수술이었다. 그러나 통증이 사라진 환자는 만족했다. 1882년, 독일 의사 칼 랑겐바흐는 쓸개를 제거하는 새로운 수술법 개발을 위해 수년 간 연구 끝에 최초의 담낭절제술을 시행했다. 16년간 통증에 시달려 체중이 40kg나 감소한 43세 환자의 수술은 성공리에 끝났고 6주 후 건강하게 퇴원하였다. 랑겐바흐는 이 사례를 학회에 발표했으나 무시당했다. 의사들은 여전히 쓸개에 구멍 뜷는 수술을 고집하며 랑겐바흐를 비난했다. 하지만 랑겐바흐는 좌절하지 않고 담낭절제 수술을 계속한 끝에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인정받게 되었고 담낭절제술은 이제 충수절제술 (맹장 수술) 다음으로 많이 하는 복부 수술이 되었다. 불과 이십 년 전만 해도 담낭절제술은 오른쪽 갈비뼈 밑에 20cm 정도 긴 수술 자국을 남기고 1~2주의 입원 기간, 한 달 이상 회복기가 필요한 큰 수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1cm 정도의 작은 구멍만 내고 내시경을 넣어 쓸개를 잘라내는 복강경 수술이 보편화되면서 입원 기간과 회복 기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심지어 멀리 떨어진 환자에게 원격으로 로봇을 조종해서 수술할 정도에 이르렀다. 지금 기준으로 과거를 돌아보면 어이없듯 미래 의사들은 병든 장기를 잘라내는 현대 의료를 비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과거에도, 오늘날도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금 의학이 가장 최신 의학이다. 그리고 새로운 의술에 몸을 맡기는 환자들과 무관심 및 비난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개척한 의사들 덕분에 의학은 조금씩 발전한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1.04.01 17:49

레임덕에 다가선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임기 5년 대통령의 레임덕 패턴을 보면 임기 초 정치사회 개혁으로 지지율을 유지한 후 중?후반에 경제로 떨어지다가 임기 말에 권력형 비리로 급격한 레임덕을 맞는다. 결국 경제가 나아지길 기다리던 국민에 대한 배신의 분노가 분출되는 과정이다. 3월 들어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의 하락이 예사롭지 않다. 19일 발표된 갤럽조사의 37%에 이어 22일 리얼미터 34.1%,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 34.0%, 24일 데이터리서치 31.4%로 35%선이 무너졌다. 레임덕은 경제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경제와 정치사회 개혁에 대한 국민과 대통령간의 허니문 기간이 각각 다르다. 대체로 정치사회 문제는 임기 초반에 기대한다. 그래서 대통령은 취임 이후 12년 초기에 정치사회 개혁에 집중한다. 그만큼 정치사회 문제에 있어 국민과 새 대통령간의 허니문 기간은 짧다. 반면 경제의 허니문 기간은 길다. 국민은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경제가 단기간에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최소 2년 이상은 감내한다. 특히 코로나와 해외 경제위기 같은 외부 요인 있거나 정부가 경제 문제 해결하기 위해 진정으로 열심히 노력할 경우는 2년 보다 더 길 수 있다. 그렇다고 5년 내내 기다리지는 않는다. 5년 임기가 끝나가면서도 경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들은 차기 대권주자에게 기대를 걸게 된다. 그렇게 되면 급격한 권력누수가 발생한다. 역대 대통령 대부분은 임기 중반 경제로 지지율이 하락한다. 그러나 대통령 지지율은 국정수행의 평가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국정운영의 동력이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 지지율 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역대 정부에서 그 방법은 2가지다. 먼저 경제 부양책이다. 그러나 과거 부양책들은 효과 보다 풀린 돈으로 인해 부동산 상승 등 부작용이 더 컸다. 또한 각 경제주체의 부양책에 대한 학습효과로 부양책의 지속기간도 점점 짧아져 1,2개월로 끝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부양책을 함부로 쓰기도 힘들다. 그래서 경제적 부작용을 피하면서 대통령 지지율을 유지시키기 위한 두 번째 방법으로 정치 사회개혁으로 되돌아간다. 단 정부 초기와 달리 개혁 강도가 높아진다. 문재인 정부도 처음에는 경제였다. 소득주도?혁신?공정성장과 사회경제 개혁 등에 집중했다. 그러나 경제정책들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논쟁에만 휩싸였다. 그러자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평화와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검찰개혁을 강화한다. 이로인해 국민 시선을 경제에서 벗어나게 했다. 또한 코로나 사태는 경제 외부 요인으로 경제성과에 대한 좋은 면책사유이기도 했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는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 다른 정부보다 허니문 기간이 길었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도 경제를 벗어 날수는 없다. 정권 초기 경제성과를 내지 못한 가운데 부동산 정책의 무능, 인사에서 내로남불 논란, 검찰개혁 등 정권 의제에 대한 피로감으로 중도층에 이어 일부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도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LH가 터졌다. 내부 정보로 투기를 한 사람들 중 현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안정 등 정책 수혜자이거나 현정부에서 급격히 늘어난 공공기관의 임직원이 적잖은데, 문제는 이들이 문재인 정부의 주요 지지층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데이터리서치 24일 조사에 의하면 현정부의 코로나 대책 신뢰도는 53.2%다. 작년 코로나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 지지율은 정부의 코로나 대책 신뢰도와 동조현상을 보였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는 지금까지의 동조현상이 깨어졌다. 정부의 코로나 대처 신뢰도가 나름 높음에도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수준인 31.4%까지 하락했다. 바로 이러한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내린 것은 다름 아닌 23.8%에 불과한 부동산정책 신뢰도 때문이다. 결국 이번 LH사건이 그렇지 않아도 국민으로부터 비판을 받아오던 부동산정책 신뢰도를 파탄나게 하고 대통령 지지율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임기 1여년을 남기고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도 이전 대통령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지 대통령 친인척이나 핵심권력의 스캔들이 아니라 현정부의 기강잡기 실패로 인한 핵심 지지층의 도덕적 해이로 국민의 분노를 싼다는 것이 다른 뿐이다. 그래서 진퇴양난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1.03.25 17:58

그 많던 코미디 프로그램은 다 어디 갔을까?

장석주 시인 언제부터인가, 티브이 방송 편성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코미디 프로그램은 찾아볼 길이 없다. 그 많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티브이 지상파 방송 편성에서 왜 사라졌는지, 나는 그 사정을 알지 못한다.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유머 1번지, 가장 최근의 개그 콘서트에 이르기까지 숱한 코미디 프로그램이 유머와 위트를 뒤섞은 콩트로,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쓴 쩨쩨한 정치에 대한 날선 풍자로 서민에게 웃음을 주며 번성기를 누렸다. 이제 코미디 프로그램은 명맥이 끊겼다. 팍팍한 나날의 삶에서 그나마 근심과 걱정을 덜어주는 노릇을 하던 코미디가 없으니 사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 티브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웃음을 주던 그 많던 코미디언들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을까? 웃음이 항상 기쁜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은 아니다. 웃음은 복잡한 프로세스 속에서 나타나는 감정의 한 표현이다. 웃음은 대상과 당위적 기대 사이에 비대칭이 형성되는 찰나에 솟구친다. 잘 차려입은 신사가 거리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질 때 사람들은 웃는다. 이때 제3자는 그 실수의 주체가 자기가 아니라는 안도감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이 웃음에는 주체의 우월감과 짓궂음이 묻어난다. 타자의 낭패에서 즐거움의 계기를 찾는 이 무의식의 행동에 깃든 짓궂음은 악취미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북동쪽에 위치한 압달라에서 살았는데, 백과사전 같은 지식을 가진 철학자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나이 아흔 살에 이르렀을 때 그는 온종일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항구로 나와서 부둣가 노동자를 바라보며 웃어대는 그를 가리키며 노망에 들었다고 수군거렸다. 유명한 의사인 히포크라테스가 이 늙은 철학자를 관찰한 뒤 그가 미친 것도, 병에 든 것도 아니라고 단정했다. 늙은 철학자가 온종일 발작하듯이 웃어댄 것은 주민들의 부조리한 상업 활동과 어리석음에 대한 경멸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생리학자들은 웃음이 인간 내부에 있는 과도한 우월의식을 드러내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코미디언들의 바보 연기가 웃음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비실이 배삼룡, 맹구 이창훈, 영구 없다의 심형래 같은 바보 연기의 달인들은 무의식중에 우리 안의 우월의식을 부추긴다. 그들이 연기한 바보스러움과 엉뚱함이 우리 안의 자만과 착란을 자극해 웃음을 터지게 한다. 광대의 익살극이 유행하던 시대의 천재시인 보들레르가 웃음을 불행의 징후라고 했다. 웃음이 제 고통에 대한 신체적 경련일 때, 혹은 제 자만의식을 분출하는 행위일 때 이것은 내면의 불순물이고, 제 안의 불행의 징후를 타인에게 되비춘 것에 지나지 않을 테다. 인간은 웃을 줄 아는 유일한 존재다. 웃음은 근심과 시름을 잊게 하는 카타르시스 역할을 하고, 억압과 고통에 맞서는 비판과 저항의 뜻을 담아낸다. 웃음은 근엄한 독재와 파시즘, 광신주의에 균열을 일으키고, 악에 항변하는 저항의 한 방식이었다. 경제 불황에 전염병의 펜데믹이 덮치면서 서민의 삶은 더욱 암울하고 팍팍해졌다. 그럴수록 유머와 웃음이 필요하다. 웃음은 현실 극복 의지를 북돋는 청량한 자극제가 되거나, 유언비어와 가짜 뉴스들에 찌든 마음의 치유제가 될 수도 있을 테다. 맘껏 웃다보면 감정을 옥죄는 불안과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테니까.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진 자리를 먹방이 꿰찬다. 하지만 상업주의에 매몰된 개인 미디어에서 방출하는 먹방이 자아내는 웃음은 상품으로 소비될 뿐이다. 코미디를 대신하는 먹방은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저항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것은 비틀린 웃음만을 낳는데, 그런 웃음은 가짜 치료제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진짜 즐거움으로 꽉 찬 유머들, 남이건 자기건 아무도 해치지 않는 무해한 웃음들이다. 그런 유머와 웃음들이 우리를 살리는 명약이다. 우리를 웃기는 코미디언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그들의 활동무대인 공중파 방송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부활하기를 기다린다. /장석주 시인

  • 오피니언
  • 기고
  • 2021.03.18 17:55

지금은 대차고 올곧은 정치가가 필요한 시대

신계숙 배화여대 교수 해마다 3월은 봄이 왔다는 설렘에 앞서 일제강점기에서 독립한 날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더욱이 올해는 서울, 부산 등 대도시의 보궐선거를 치러야 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와 정치가의 의미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선거를 치러야 하는 서울, 부산 등지에서는 당마다 대표적인 주자를 정하고 선거운동에 한창이다. 누군가에게 한 표를 찍어야 하는데 누구를 찍을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였다. 누가 우리를 코로나 19 팬데믹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을까. 누구의 부동산 및 주거정책이 좀 더 명확하고 효율적인가. 각 후보는 35층 층높이 제한을 완화하겠다. 또는 대대적 재개발과 재건축을 추진하겠다. 신혼부부용 한강 변 초고층 아파트를 짓겠다. 뉴타운 65만 가구를 공급하겠다. 65세 이상 1주택자 종부세를 면제하겠다. 주택청약 세대별 할당제를 실행하겠다.라고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부동산 문제는 완전히 해결될 것 같기도 하다. 선거는 입후보한 사람에게는 될 수 있는 한 각종 방법을 다 동원하더라도 되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드나 보다. 권력이 있는 사람들과 친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권력 있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표가 절대적일 것이다. 그래서 전직 대통령을 찾아가고 전직 대통령 부인을 찾아가고 서로 간에 나눈 대화가 신문 방송을 통해 보도되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대학 때 배운 맹자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맹자 이루하>편에 보면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에 부인과 첩을 두고 사는 한 남자가 있었다. 남편이 밖에 나가기만 하면 술과 고기를 아주 많이 대접받고 왔다고 하는 것이었다. 부인이 오늘은 누구랑 만나서 그렇게 드셨어요? 하고 물으니 오늘은 고관대작하고 마셨지. 하는 것이다. 부인이 첩에게 우리 집 남편이 집에서 나가기만 하면 저렇게 고기와 술을 대접받았다고 하면서 매일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데 그 정도면 남편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해준 손님들이 집에도 와야 하는데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없고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내일은 남편이 밖에 나가서 누구를 만나서 뭐하고 술을 누구와 마시는지 한번 미행해보겠다고 하고 따라 나가 보았다. 남편이 마을을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다른 사람을 한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마침내 동광에 이르렀을 때 한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남편은 그곳에 가서 구걸하면서 남은 음식을 얻어먹고 그곳에서 부족하면 또 다른 곳에서 얻어먹고 있었다. 그걸 본 부인이 집에 와서 첩에게 하는 말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러러보며 살아야 하는 양반이 이러고 있으니 어쩌면 좋으냐며 서로 붙잡고 울때에 남편은 이런 일도 모르고 또 밖에서 돌아와 잘난 척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진정한 정치가는 초지일관 소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존경하는 김구 선생님은 그의 한평생을 온전히 조국의 독립과 평화통일을 위해 바쳤다. 동학에 입도하였고 유가 학문을 공부하였으며 의병 활동에도 가담하였다. 옥중에서 새로운 문물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고 승려가 되기도 했다. 고향에서 농장의 관리인 생활을 하며 농민계몽 운동에 헌신하였다. 3.1운동 이후에는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으며 중국에서 항일운동의 최선봉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다. 한평생 민족 자체의 통일독립국가 건설을 주장하였고 민족통일을 위한 노력에 매진하였다.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 중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나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은 원하자 아니 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시장은 있는데 정치가는 없고 국회의원은 많은데 올곧게 철학을 갖고 정치를 하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대차고 올곧은 시장을 뽑고 싶다. /신계숙 배화여대 교수

  • 오피니언
  • 기고
  • 2021.03.11 18:20

누가 먼저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대학 시절 어느 교수님이 이런 질문을 하셨다. 배가 난파되었는데 하나뿐인 구명보트에는 2명만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배우자, 아들, 나 이렇게 네 명이 남았습니다. 누구를 구명보트에 태우겠습니까? 많은 의견이 다양한 이유와 함께 나왔다. 심지어 아무도 타지 말고 온 가족이 같이 죽자라는 주장까지. 10여 년 전 의료 수준과 장비가 극도로 열악한 나라에 국내 모 투석회사가 혈액투석기 2대와 관련 물품을 무상으로 지원한 적이 있었는데, 혈액투석이 낯선 그 나라 의사들에게 의료 기술 전수를 위해 방문한 적이 있었다. 투석기가 2대 밖에 없는 그 병원에서는 일주일에 세 번씩 평생 투석을 해야 하는 말기신장병 환자 대신 1~2주 정도만 투석으로 버텨주면 콩팥 기능이 회복되어 살아날 수 있는 급성신손상 환자에게만 투석 치료를 하고 있었다. 제한된 의료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궁여지책이었던 셈이다. 전방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대량 전상자 분류는 의무부대의 가장 중요한 훈련 중 하나였다. 전쟁으로 많은 병사가 다치거나 죽은 상황에서 군의관과 위생병은 전장을 누비며 환자들에게 빨강, 노랑, 초록, 검정 표식을 달아줬다. 빨간색은 빨리 치료하면 살 수 있지만 위중한 환자, 노란색은 위독하진 않으나 조기 치료가 필요한 상태, 초록색은 가벼운 부상, 그리고 검은색은 적극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이 어렵거나 이미 사망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 우선순위 표식을 보고 환자를 후방으로 옮겨서 치료하는데, 이 중증도에 따른 치료 우선순위 분류법을 선별을 의미하는 트리아지 (Triage)라고 부른다. 트리아지는 1797년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 군의관이던 도미니크 장 라레가 전쟁터 부상병을 치료 가능한 곳으로 빨리 수송하기 위해 날으는 앰뷸런스 (Ambulance volante)라는 이름을 가진 -비록 날 수는 없었지만 날듯이 빨리 후방으로 환자를 옮기는- 마차 형태의 운송 수단과 함께 처음 도입하여 수많은 생명을 살렸고, 현재 많은 응급실과 재난 현장에서 이 분류법에 따라 우선순위를 두고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환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의료 장비와 침상, 인력이 바닥난 나라 의사들은 끔찍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누구에게 인공호흡기와 중환자실을 우선 배분할 것인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포기할 것인가? 환자로 넘쳐나던 일부 병원에서는 실제로 나이가 많거나 아주 위중한 환자는 인공호흡기 대신 산소만 공급받기도 하였다. 인력과 장비가 충분하다면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살리는 것이 마땅하지만 중환자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자원과 인력 한계로 모든 환자에게 같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는 생존 가능성이 큰 환자에게 치료를 집중함으로써 최대한 많은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선택적 의료 배급(rationing care)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누구 생명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평소 생명 존중을 최상의 가치로 삼던 의사들이다 보니 살릴 자와 죽을 자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기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최상의 결과를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다. 회생 가망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 쏟을 시간과 인력, 장비를 살릴 수 있는 환자에게 더 집중하여 최대한 많은 생명을 구하려는 최대 다수의 최대 구명,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추구라는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주장한 공리주의의 재난 버전이라고나 할까. 지난주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누가 먼저 맞을 것인가, 어떤 백신이 내게 돌아올까 관심도 많고 말이 무성하다. 백신 접종 순서는 희생자를 최소화하면서도 빠르고 효율적으로 코로나19를 물리치는 방향으로 정해졌을 것이다. 백신 접종 순위에 빨강, 노랑, 초록 표식은 있어도 검은 표식은 없다. 전 국민에게 돌아갈 충분한 양이 확보되었다고 한다. 내 순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빠짐없이 맞는 일만 남았다.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1.03.04 18:27

국민의힘 이제는 다를까?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민심은 천심이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 민심은 오늘날 주로 여론조사로 읽는다. 그리고 정치권이 민심을 얻었느냐 얻지 못하였느냐는 선거결과로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DJ 사례와 최근 보수 야권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DJ의 경우 1987년 치러진 13대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주진영에서는 김영삼?김대중 양김 단일화의 요구가 컸다. 그러나 단일화 논쟁에서 수세에 있던 김대중은 단일화를 거부했는데 그 근거로 자신이 앞서있다는 여론조사를 내세웠다. 문제의 여론조사는 친 김대중진영의 단체가 실시한 조사였으나 엄밀한 표본의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한 김대중에게 유리한 결과였다. DJ는 이러한 여론조사 수치를 근거로 자신이 앞서있기에 후보를 양보할 수가 없다고 끝내 버텨 후보단일화가 무산됐다. 결국 13대 대선에서 결국 노태우가 36.6% 역대 최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 뒤를 이어 김영삼 28%, 김대중 27%, 김종필 8.1%로 김대중은 3위를 차지했다. 선거결과는 참혹했다. 단일화를 거부한 양김 중 3위를 한 사람이 더 큰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인지라 결국 DJ는 자발적으로 정치은퇴까지 선언한다. 그후 김대중은 1992년 14대 대선에서도 13대 대선의 정치적 책임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한다. 그러나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전략을 바꾼다. 그 유명한 뉴DJ플랜이다. 이때 뉴DJ플랜은 이미지 전략이지만, 또 한편에서는 여론을 따르는 것이다. 자신의 DJ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DJ로 스스로 바뀌어 다가간 것이다. 물론 당시 재야세력의 반발은 컸다. 그럼에도 DJ는 여론에 대한 대전환을 했고 여론을 바로 읽고 따랐기에 대통령의 꿈을 이루게 된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2017년 19대 대선에서 보수진영은 홍준표를 내세워 문재인과 대결했다. 그러나 결과는 문재인 41.1%, 홍준표 24.0%로 보수진영이 역대 최대 참패를 한다. 당시 홍준표 후보는 선거기간동안 여론조사에 대해 가짜여론조사라거나 내가 이긴다는 식으로 여론조사를 무시했다. 그러다 보니 홍준표는 선거기간동안 선거전략을 바꿀 이유가 없었고 끝까지 홍준표 특유의 선거캠페인을 이어 갔으며 결국은 선거에 참패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미래통합당으로 그리고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꾸고 비대위 체제로 생존을 위한 변신을 시도했지만, 대선과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연이어 참패했다. 그리고 올 4월과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국민의힘 정당지지도, 차기대권주자 지지도, 서울시장후보 지지도 등 각종 여론지표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왜 국민의힘 관련 각종 지표가 지지부진한가? 그 이유는 여론을 대하는 보수진영의 태도 문제다. 국민의힘이나 과거 보수당의 여론관의 특징을 보면 첫째 여론을 자신의 시각으로 읽는다. 국민의 눈이나 심지어 지지층인 보수의 눈으로도 읽지 않는다. 두번째는 취사선택이다. 즉 자신의 눈으로 보면서도 다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세번째는 여론을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생각한다. 그들의 눈으로 보고싶은 것만 보니 여론은 아주 단순해 보인다. 그야말로 아전인수격이다. 여론이 무겁거나 두렵지도 않다. 그러니 따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맞서거나 바꾸려 든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대중관은 국민을 객체로 본다. 기본적으로 민심을 따르기보다는 가르치거나 맞서거나 때에 따라서는 조작 통제의 대상이다. 이렇게 되는 순간 정치인은 갑이되고 국민은 을이 된다. 즉 정치인의 갑질이다. 그것도 여당도 아닌 정권을 잃은 야당인 국민의힘이 이런 여론관을 가지면 각종 여론지표가 낮을 수밖에 없다. 곧 큰 선거가 다가온다. 선거는 여론을 정확히 읽고 시민이나 국민이 원하는 정책과 공약, 그리고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쪽이 올 4월 서울시장 선거와 내년 대통령선거의 승자가 될 것이다. 대선 3수를 한 DJ는 늦게라도 이러한 민심을 알았기에 대통령 꿈을 이루었다. 탄핵을 당하고 이어 대선?지방선거?총선 연이어 참패를 한 국민의힘이 이번엔 다를 수 있을는지 여부는 오로지 민심을 제대로 읽어내느냐에 달렸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1.02.25 16:28

쓰레기 분리수거의 날에 생각한 것들

장석주 시인 화요일은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날이다. 재활용할 종이, 박스, 비닐, 유리병,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을 분리해서 내놓는다. 여러 가구에서 나온 생활 쓰레기가 작은 동산을 이룬 것을 볼 때마다 가느다란 죄책감을 느낀다. 우리가 이용하던 신선식품 배송 업체는 식품을 제각기 다른 박스에 담아 배송한다. 박스를 줄여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을 했으나 시정되지 않아 배송업체를 바꾸었다. 새 배송업체는 주문 식품을 한 재활용 비닐박스에 넣어 배송하고 다음 배송 때 수거해간다. 따로 버릴 박스가 없으니 그만큼 분리수거의 필요를 덜어주는 것이다. 지구 인구가 늘면서 쓰레기의 배출량도 늘어난다. 자연을 가공하는 문명화 과정에서 쓰레기 발생은 피할 수 없다. 인간의 손에서 설계와 제작을 거쳐 나온 물건은 본디 쓰임을 다하고 폐기될 때 쓰레기로 돌아간다. 쓰레기란 인간의 관점에서 효용 가치가 다한 자연이다. 인간이 생산과 창조 활동을 하는 곳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생산의 이면에 가려진 비밀이고, 그 처리는 인간이 풀어야 할 영구적 난제 중 하나다. 산업 쓰레기와 생활 쓰레기가 지구의 생태학적 균형을 깨트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쓰레기가 꼭 나쁘기만 한 것일까? 누군가에겐 쓰레기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자원이다. 쓰레기는 그 용도를 미처 찾지 못한 물건일지도 모른다. 쓰레기는 매혹과 혐오라는 양면성을 다 갖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쓰레기는 모든 창조의 산파인 동시에 지극히 가공할 만한 장애물이다.라고 말한다. 지구 인구가 10억 명이 되는데 20만년이 필요했지만, 70억 명이 되는데 불과 20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구에 생육하고 번성한 인류는 자연생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서 과부하로 인한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지구 자원을 제 마음대로 퍼 쓰는 인류의 번성은 지구 생태계에는 미증유의 재앙일 테다. 인류는 육류와 동물성 제품을 얻으려고 680억 마리의 가축을 사육한다. 가축 사육에 어마어마한 곡물을 쓰고, 울창한 숲을 목초지로 바꾸며, 인간이 쓰는 담수 3분의 1을 쏟아 붓는다. 축산업이 전 지구적으로 온실가스의 18퍼센트를 발생시킨다. 이산화탄소, 메탄, 이산화질소로 이루어진 온실가스는 기후재난의 주요 원인이다. 지구는 지난 세기보다 더 자주 기상 이변을 겪는다. 초강력 태풍이 오고, 해수면은 상승하며, 잦은 가뭄과 물 부족 사태가 빚어지고, 대기와 해양은 각종 쓰레기로 뒤덮여 간다. 사하라 사막에 난데없는 폭설이 내리고, 페루 바닷가는 죽은 정어리 떼로 뒤덮이며,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가 강으로 떨어져 나와 홍수를 일으켜 인근의 수력발전소 댐을 붕괴시키고 마을을 휩쓰는 것도 기후변화의 영향이다. 기후재난은 지구 생태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있다는 전조 증상이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우리가 날씨다에서 기후변화는 재깍거리는 시한폭탄이다.라고 경고한다. 우리 안에 퍼진 무관심 편향이 기후재난이라는 시한폭탄이 재깍거리는 시작점이다. 오늘 태어난 아기에게 지구라는 초록별에 온 걸 축하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인류는 미래 세대에게 생태적 빚을 지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맑은 물과 울창한 숲, 깨끗한 대지와 공기 들은 미래 세대가 누릴 것을 빌려 쓰는 셈이다. 쓰레기는 소각되거나 땅에 묻혀 썩는다. 하지만 잉여의 쓰레기는 늘 골칫덩이다. 바다로 흘러든 플라스틱 쓰레기는 대양에서 섬을 이루고 떠돈다. 전 세계가 한 목소리로 탄소발자국을 줄이자고 한다. 그것을 줄이는 확실한 방법은 인류가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이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인간 사회는 상호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일종의 초유기체, 즉 하나의 덩어리다. 한 사람의 문제는 모두의 문제이고, 모두의 문제는 결국 한 사람의 문제다. 인류가 현재 수준의 쓰레기를 지속적으로 배출한다면 지구는 곧 쓰레기로 뒤덮일 테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우리에게 달렸다. 우리 각자가 생태적 각성과 더불어 쓰레기를 덜 배출하는 윤리적 실천에 나서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장석주 시인

  • 오피니언
  • 기고
  • 2021.02.18 17:18

김치, 이제는 세계인의 음식

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입춘을 앞두고 강풍과 한파가 동시에 휘몰아치는 가운데 한국과 중국은 때 아닌 김치 종주국 논란으로 뜨겁다. 한국에서는 우리가 김치의 종주국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중국이라고 한다. 문제의 중심이 된 곳은 구독자 1400여만 명을 둔 중국인의 유튜브였다. 유튜브를 찾아들어가보니 출연자가 밭에 나가 뜯어온 배추로 김치를 담그나보다. 밀가루 풀을 쑤고 풀이 식기도 전에 고춧가루를 넣고 양념을 하여 김치를 담는다. 그리고 일주일 후 돼지고기를 썰어 넣고 김치찌개를 만들고 해쉬 태그에 chinese food라고 달아 놓았다. 이것을 본 젊은 한국인 유튜버가 김치는 한국이 종주국인데 왜 김치를 chinese food라고 하느냐고 한 것에서 논쟁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두 젊은이가 인터넷상에서 벌인 논쟁에 두 나라의 언론이 반응을 하였고 김치와 관계가 있는 유관기관에서는 대책마련에 고심하나보다. 김치는 중국에서 파오차이(泡菜)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이 논쟁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김치는 고유명사다. 중국에서도 김치를 김치라고 부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중국어 발음에는 김이라는 발음이 없다. 가장 근접한 발음을 찾아봐도 진아니면 신이다. 그렇다면 진치, 신치가 되어야 하는데 그 발음으로 김치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에서 한국의 김치를 표현할 말을 찾아야 하는데 그 발음은 없고 중국의 쓰촨성에 파오차이라는 요리가 가장 유사한 것으로 보이니 한국파오차이라고 부르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김치는 배추를 절이고 젓갈과 고춧가루 새우젓 등을 무에 버무리고 비벼서 배추의 사이사이에 속을 채우고 김칫독에 꾹꾹 눌러 담은 후 발효가 되면 먹는다. 반면 쓰촨파오차이는 산초, 계피, 팔각, 월계수잎 등의 향신료를 물에 넣고 끓여서 식힌 다음 물에 소금 파 마늘 양배추 무 당근 셀로리를 썰어 넣고 고량주를 넣는다. 가장 빠르게는 일주일에서 보름 후부터 재료만 건져서 먹고 그 국물에 또 채소를 넣고 발효되면 또 재료만 건져 먹는 음식이다. 우리의 김치가 김칫국까지 모두 먹는 반면 파오차이는 국물을 먹지 않는다. 김치와 파오차이는 이렇게 다르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므로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긴 겨울을 나기 위해서 김장을 담아 저장을 해야 했다. 고춧가루는 색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방부제 역할을 하고 젓갈은 발효를 촉진시켜 맛난 맛을 내고 있다. 쓰촨파오차이를 만들어내는 쓰촨지역은 중국의 서남부에 땅이 아래로 움푹 들어간 분지를 이루고 있다. 여름에는 무척 습하고 더우며 겨울은 속으로 스미는 음습한 추위가 스민다. 따라서 여름은 더위를 식힐 음식으로 겨울은 입맛을 돋을 수 있는 음식으로 파오차이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음식은 자연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먹기에 적합한 것으로 만들어지고 전파된다. 전파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음식문화와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융합되기도 하고 또 다름 음식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정착되기도 한다. 간혹 어떤 두 나라가 정치적으로 긴장상태가 되더라도 민간인들이 문화, 예술 방면의 교류를 통해서 두 나라 사이의 얼음을 녹이는 과정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꾸로 김치논쟁이 정치적으로 번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된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음식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한식세계화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그 결과 세계각국사람들이 한식에 대해 혹은 김치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의 종주국의 개념은 어디서 발원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발전시켜 나아갔느냐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전 세계에 김치를 어떻게 만들어 어떻게 잘 팔 것인가 각 방면으로 연구를 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는 뉴욕의 한 복판에 김치는 한국 것이라고 쓸 것이 아니고 통 크게 김치는 세계인의 것이라고 써야 할 때아닌가. /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 오피니언
  • 기고
  • 2021.02.04 16:58

100년이 지났어도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전염병이 퍼져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학교극장상점은 폐쇄되고 모임도 금지되었다. 마스크 착용은 의무화되고 마스크 없이는 외출도 대중교통 이용도 할 수 없었다. 경찰은 심지어 담배 피우려고 마스크 벗는 사람까지 체포하여 벌금을 부과하거나 구류에 처했다. 장례식은 15분 내에 끝내도록 제한되고 도시마다 관이 동나고 묘 파는 인부와 장의사가 부족한 사태가 발생했다. 도로에 화학 약품이 살포되고 일부 도시는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증명서 없이는 출입할 수 없었다. 의료 인력이 부족하자 자원봉사자, 군의관을 동원했으며 급기야 의과대학 3, 4 학년 과정을 중단하고 학생을 병원에 투입해 의료 업무를 맡겼다. 익숙해 보이는 이 장면은 코로나19 대유행을 겪고 있는 지금이 아니라 100년 전 16억 세계 인구 중 6억 명 감염에 5000만 명이 사망한 스페인 독감 당시 상황이다. 지금과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스페인 독감. 1918년 인플루엔자 범유행이 정식 명칭이지만 보통 스페인 독감으로 부르고 있다. 사실 스페인은 억울하다. 독감은 스페인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미국 캔자스에서 시작되어 인근 신병 훈련소로 확산된 독감은 1차 세계대전 중 유럽에 파견된 미군을 통해 유럽 전역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전쟁이 한창이던 참전국들은 적국에 이로운 상황이 알려지는 것을 피하고 아군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검열을 강화하는 등 독감 관련 보도를 철저히 통제하였다. 하지만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던 스페인에서는 언론이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스페인에서만 800만 명의 환자가 발생하자 독감과 그 영향에 대해 깊이 있게 보도하였다. 여기에 더해 국왕 알폰소 13세까지 감염되면서 스페인은 오명을 뒤집어썼다. 예년 독감과 달리 스페인 독감은 폐렴으로 빠르게 진행하여 걸린 지 2, 3일 만에 사망할 정도로 치사율이 높았다. 밤 늦도록 카드 게임을 같이 한 여성 4명 중 3명이 다음 날 아침에 죽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또한 특이한 점은 젊은 인구의 높은 사망률로 희생자 대부분이 65세 이하였으며 특히 20~45세가 전체 사망자의 60%를 차지하였다. 세계는 대혼란에 빠졌다.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1차 세계대전 희생자보다 3배나 많아지자 전쟁은 서둘러 매듭지어졌고 평화 조약이 맺어졌다. 수많은 희생자를 남기고 독감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2019년 12월, 중국 어느 도시에서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하였다. 처음에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았고 그저 중국의 한 도시에서 생긴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교통의 발달과 사람의 이동이 많다 보니 급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국경을 봉쇄하였지만 이미 한 발 늦었다. 100년 만에 다시 겪는 대유행! 워낙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지만 치료제도 백신도 없다 보니 100년 전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이동 제한, 모임 금지, 상점 폐쇄, 도시 봉쇄 그리고 마스크와 거리두기, 손씻기. 하지만 우리는 지난 100년을 결코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2018년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가 발표한 스페인 독감 100주년 기념 구호 우리는 기억하고 대비한다.(We remember. We prepare.)처럼 인류는 전염병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왔다. 역학 조사를 통해 환자를 조기에 발견격리하여 감염 전파를 최소화하고, 코로나19 바이러스 염기서열을 밝혀내고 신속한 진단 기술을 개발하였다. 음압 병상, 인공호흡기 등으로 중증 환자를 치료하면서 100년 전 같았으면 죽었을 환자도 이제는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축적된 의학 기술의 발달 덕분에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내에 항체 치료제와 백신 개발로 코로나19를 물리칠 날이 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음 달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고 한다. 일 년간 힘든 날을 견뎌온 우리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 손씻기, 거리두기, 그리고 마스크.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는 그날까지!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1.01.28 17:02

문 대통령 지지율과 레임덕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대통령 임기 1년 4개월을 남겨 둔 연말연초에 여러 대통령 지지율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각종 신년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도는 35% 전후 까지도 내려가는 등 대체로 3540%의 지지율을 보였다. 최근 한길리서치 1월 2주 조사에서는 40.7%, 갤럽 1월 2주 조사는 38%였다. 그럼 대통령 지지율이 얼마가 되었을 때 레임덕으로 봐야 할까? 물론 이에 대한 정확한 기준은 없다. 단지 역대 대통령의 4~5년차 무렵 레임덕 현상을 보인 시기의 지지율로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대체로 역대 대통령의 경우 30%가 무너지면 레임덕 현상을 보이고 20%가 무너지면 레임덕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단순지지율로만 판단한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레임덕 여부를 판단하려면 단순 지지율뿐만 아니라 지지율의 강도와 정치적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단순 지지율은 정량적 측면이고 지지율 강도는 정성적 측면이다. 그리고 정치적 상황은 수치와 강도의 역학이 작동되는 에너지의 장이 된다. 먼저 문 대통령의 단순 지지율로 레임덕 여부를 보면, 현재 문 대통령의 35% 전후40% 초반 지지율로는 레임덕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성적 측면 즉 지지율의 강도를 보면 달라진다. 한길리서치 1월 2주 조사의 대통령 긍정평가는 40.7%지만 아주 잘하고 있다는 20.9%, 다소 잘하고 있다는 19.8%다. 반면 부정평가는 56.9%인데 아주 잘못하고 있다는 41.3%, 다소 잘못하고 있다는 15.6%다. 이러한 문 대통령 지지율 분포 모양은 바가지를 업어놓은 모양(정규분포)이 아니라 바가지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분포다. 즉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중립적 합의형이 아니라 대립적 갈등형 분포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 지지율의 전체 긍정평가(40.7%) vs 부정평가(56.9%) 배율이 1.40이지만, 매우긍정(20.9%) vs 매우부정(41.3%) 배율은 1.98로 더 커진다. 결국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의 힘도 크지만, 레임덕 원심력인 비토층의 힘이 두 배나 더 크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통령의 레임덕에 대한 심리적 체감 현상이 나타난다. 마지막으로는 정치적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전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당선된 대통령이다. 다시 말해서 생태적으로 적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탄핵을 처음부터 반대했던 보수층의 반동적 저항은 당연히 강하다. 또한 중도층도 탄핵에 동의했기에 현 정부에 대한 잣대나 기대치는 전 정부 보다 더 높고 엄격하다. 이런 정치적 역학의 상황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전의 대통령에 비해 10%p 정도는 더 높아야 한다. 즉 정치적 역학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의 40% 지지율은 과거 대통령의 30% 정도 지지율의 국정장악력이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 문 대통령의 단순 지지율 3540% 수준으로는 레임덕이라 볼 수 없다. 그러나 비토그룹의 크기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한 체감 지지율은 레임덕 상황이다. 그래도 현시점에서 이 정도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이전 정권보다는 선방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은 4년 동안 국정수행에 대한 결과적 평가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의 국정운영의 동력이다. 그럼 문 대통령의 임기를 마무리하기 위한 지지율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앞서 말한 대로 과거 정권 말기 레임덕이 시작된 30%보다는 10%p는 더 높은 40% 수준이다. 그런데 임기 말 대통령 지지율을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임기 말은 국민들이 임기 초기 기대감으로 바라보던 허니문 기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내심으로 4년을 기다린 국민들은 구체적 성과를 보고 평가한다. 따라서 임기 말 대통령이 정쟁을 통한 비교우위나 책임전가, 현란한 언변(레토릭), 인사나 국면전환용 대증요법으로 국정운영을 하면 역효과가 나타난다. 국민의 문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진정성과 소통의 리더십으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 사회양극화가 해소되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다. 그러기에 당연히 문 대통령도 이 기대에 대한 성과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통일희망열차국민운동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1.01.21 14:43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