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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목사·의사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최근 우리 사회에서 주목을 끄는 몇 개의 전문 직업군이 있다. 검사와 목사, 의사가 그들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추요, 선망 받는 직업 중 하나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 목사는 영혼의 구원자, 의사는 생명의 치유자로 불린다. 이들이 제 소명을 다하면 우리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한다. 반면 이들이 부패하거나 과도하게 욕심을 내면 우리 사회는 삐걱 거린다. 불행히도 우리는 후자의 사례를 잇달아 목격했다. 우선 검사부터 보자. 문재인 정부 들어 검사들은 적폐청산에 앞장섰지만 자신들의 개혁에는 저항으로 맞섰다. 정의의 사도처럼 비춰졌던 검사들의 대표 윤석렬 검찰총장은 그런 점에서 실망을 줬다. 살아있는 권력인 청와대를 겨눈 칼은 예리한 것 같았으나 핀트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조국 민정수석에게 겨눈 칼은 우리나라 상층부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뿐 빗나갔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검언유착이 불거졌다. 채널A 이동재 기자와 윤 총장의 최측근 한동훈 검사장과의 관계는 정치검사와 기레기(쓰레기 기자)간의 유착의 고리가 얼마나 끈끈한가를 보여줬다. 나아가 자신의 장모와 부인 사건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다. 이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립 등으로 왕년의 잘 나가던 시절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될 처지다. 다음은 목사. 그동안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개신교의 확산과 목사의 위상은 코로나 19 시기를 거치며 실체가 드러났다. 존경 받는 직업이 아닌 공공의 적이 된 것이다. 심지어 기독교는 개독교, 목사는 먹사로 불리고 있다. 코로나 확진환자의 30% 이상이 기독교로 인해 감염됐는데도 대통령과 만난 대표 목사는 교회를 일반 영업장처럼 다루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더 가관인 것은 괴물 목사 전광훈의 행태다. 하나님, 까불지 마 하더니 바이러스 테러로 사기극을 펼친다며 광화문에서 외장을 쳤다. 그 틈에 바이러스는 더 퍼져 나갔다. 초기 코로나 확산의 진원지였던 신천지는 온순한 양인 편이다. 뿐만 아니라 대형교회 목사들의 세습과 횡령, 성범죄는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교회가 죄송합니다며 묵은 땅을 갈아엎자는 목사 분들이 있어 그나마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다. 끝으로 의사. 이들은 이번 의료파업을 통해 의사집단의 위력이 얼마나 막강한가를 보여줬다. 2000년 의약(醫藥)분업부터 수차례 되풀이된 파업에서 연속 승리를 쟁취했다. 영리하게도 정부가 대항할 수단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했다. 그러나 의대학생- 전공의전임의- 의대교수로 이어진 카르텔 파업은 밥그릇 지키기에 성공했을지 몰라도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잃었다. 물론 사전에 의사단체와 조율 없이 졸속으로 밀어붙인 정부여당의 조급증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176석의 힘을 너무 과신하다 큰 코 다친 것이다. 문제는 의대 증원과 공공성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OECD 회원국보다 의사수가 현저히 적은데다 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이번 의료파업은 역설적으로 의대증원이 반드시 필요하고, 의사들이 특권층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증명해줬다. 그들은 1등만 살아남는 더러운 세상을 원했다. 의대와 비견되는 로스쿨을 보라. 2009년 로스쿨이 생기면서 개업변호사가 8900명에서 2020년 2만3000명으로 2.6배 늘었다. 무변촌이 상당부분 사라지고 직역도 넓어졌다. 마찬가지로 의사수도 대폭 늘리고 의사직역도 넓혀야 한다. 이들 사태는 잘 나가는 전문직들의 사회적 공감능력이 얼마나 떨어지는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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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15 16:41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답을 준 박승 전 한은총재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을 헤쳐 나간다. 없는 길을 걷다보면 길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에서 어느 길을 선택할까 망설이기도 한다. 그러한 길이 모여 인류의 역사가 된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가시덤불 같은 험한 길이었고, 그 길에 많은 사람들이 자취를 남겼다. 그 중 선한 영향력을 미친 사람, 특히 노후가 아름다운 분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김제 백산 출신으로, 올해 84세인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그분이다. 어려서는 역경을 이기고, 젊어서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늙어서는 기부와 나눔을 실천했다. 갈수록 메말라가고, 나와 내 가족만을 챙기는 세태에서 마치 인생의 교과서를 만난 듯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어린 시절 가난한 소작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논밭일, 땔감 마련 등 온갖 농사일을 하며 자랐다. 백석초를 졸업하고 이리공고까지 6년간 새벽에 집을 나와 왕복 14km를 걸어 기차통학을 했다. 대학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난생 처음 서울에 갈 때는 점심으로 고구마를 싸들고 기차에 올랐다. 서울대 경제학과에 들어가서는 장리나 곱빼기 빚을 얻어 등록을 해놓고 고향에 내려가 농사일을 해서 빚을 갚아야 했다. 고난은 당장 고통스럽지만 큰 길과 기회를 주었다. 다행히 졸업과 함께 한국은행에 합격해 안정을 찾은 것이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해외연수생에 뽑혀 36살의 나이에 미국 뉴욕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2년 만에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송곳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듯 공부한 덕분이다. 귀국 후 중앙대 교수로 25년간 후학을 가르쳤으며 각종 공직을 맡아 국가와 사회에 헌신했다. 그는 드물게 보수와 진보정권에서 두루 발탁됐다. 박정희 정부에서 서울신문 논설위원, 전두환 정부에서 금융통화위원, 노태우 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건설부장관, 김영삼 정부에서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한국은행 총재,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자문 국민원로회의 위원으로 국정에 참여했다. 이 가운데 노태우 정부에서 분당 일산 등 5대 신도시를 중심으로 주택 200만호 건설을 진두지휘해 부동산 폭등을 잠재웠고, 한국은행 총재 시절엔 중앙은행 독립을 확고히 했다. 학문분야에서도 한국경제학회장 등을 지냈고 모교인 뉴욕주립대에서 자랑스런 동문상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화려한 경력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노후의 기부 실천이다. 2010년과 2011년 백석초에 도서관 건축비 4억원과 장학금 1억원을 기부했다. 2층으로 된 이 도서관은 98명의 재학생은 물론 지역주민의 문화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2018년 김대중평화센터에 7억원, 2019년 이리공고에 7억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이어 올해 백석초에 또 다시 10억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이 기금은 하나은행의 신탁자산으로 표면금리 3.17%의 이자가 분기별로 백석초에 영구히 지급된다. 폐교 위기에 몰렸던 이 학교는 그의 고향사랑 덕분에 살아났다. 이번 기부로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이와 함께 소외된 사람에게 연봉의 20%를 지원하는 기부의 생활화, 가족만의 검소한 자녀 결혼식, 장기기증 서약 등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해왔다. 그러면서도 그는 단독주택에서 20년 된 소형차를 직접 운전하는 등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었다.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그의 아름다운 인생에 박수를 보내며 나도 조금이나마 닮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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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18 16:38

전북의 하늘 길과 이스타항공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전북지역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하늘 길에 대한 열망이 높았다. 그 열망은 두 차례에 걸쳐 펼쳐졌다. 일제 강점기에 신용욱과 2009년 이상직에 의해서였다. 먼저 고창출신 신용욱의 경우부터 보자(남긴 뜻 천년 흘러, 2000). 1925년 고창군 신림면 평월리 공터. 이 일대에는 정읍과 고창, 부안 등에서 새벽밥을 먹고 나온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난생 처음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한낮쯤 쌍날개에 프로펠러가 달린 경비행기가 일대를 몇 바퀴 돌면서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 비행기에는 24살의 신용욱이 타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흥분했고 흥분은 곧 만세소리로 바뀌었다. 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재현이었다. 이날 사건은 일제치하에 눌려 있던 민족의 자긍심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쾌거였다. 신용욱은 안창남보다 1년 늦게 일본 오꾸리(小栗) 비행학교룰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동양인 최초로 국제조종사가 되었다. 이후 그는 서울 여의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학교를 세우고 1936년 조선항공사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어 해방되던 해, 대한민국항공사(KNA)를 설립하고 국내 최초 정기노선인 서울-부산 간을 운항했다. 그러나 잘 나가던 대한민국항공은 1958년 여객기가 북한으로 공중 납치되고 잇달아 사고가 터지면서 1962년 도산하고 말았다. 정부는 대한민국항공사를 인수, 국영기업체로 운영하다 1969년 오늘의 대한항공(KAL)을 탄생시켰다. 신용욱은 우리나라 민영항공의 문을 연 선구자였던 셈이다. 하지만 신용욱은 정치에 관여해 오점을 남겼다. 1950년과 1954년, 23대 민의원에 당선돼 자유당 전북도당 위원장을 맡았는데 이승만 대통령의 위세를 업고 권력을 너무 남용했다. 결국 사업 실패와 419 혁명으로 1962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음, 김제출신 이상직의 경우를 보자. 2009년 1월 6일 군산공항. 이상직 회장이 설립한 이스타항공 1호기가 김포-군산-제주 노선의 시범운항을 마치고 활주로에 도착했다. 이날 군산공항에는 김완주 도지사, 강봉균 국회의원, 송하진 전주시장, 문동신 군산시장 등 전북지역 각급 기관장이 참석해 이스타항공의 성공적인 취항을 축하했다. 항공 오지인 전북으로서는 실로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이날 기념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이스타항공 1호기로 제주도를 방문하고 군산으로 돌아왔다. 그날 전북일보 기사 1면 제목은 이스타항공, 새만금 하늘 길 열다였다. 본사를 군산에 둔 이스타항공은 그 뒤, 본사를 서울로 옮기고 국내선 4곳과 일본중국대만방콕 등을 운항하는 등 저가항공으로서 꽤 선전했다. 그러다 딱 10년 만에 방만한 경영과 2019년 일본상품 불매운동의 여파로 치명타를 입었다. 타개책으로 마침 아시아나 항공 인수에 나섰다 실패한 애경그룹(제주항공)이 매수의 손길을 뻗쳤다. 그러나 2020년 들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내외 항공노선이 셧다운(노선운항 전면중단)되면서 인수는 난항을 겪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 자녀들의 편법 승계 및 불법증여, 임금체불, 차명주식, 문재인대통령 사위의 취업알선 등 의혹이 불거졌다. 더욱이 지난 19대에 이어 21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전주 을)에 당선, 정치적으로 야당의 표적이 되고 있다. 미래통합당이 이스타항공과 관련된 의혹을 파헤칠 특위를 구성키로 한 것이다. 이스타항공은 전북지역의 열망을 담아 하늘 길을 개척하고 직원 1600명 중 500명 이상이 이 지역출신이라는 점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기사회생해 전북의 하늘 길을 다시 날 수 있을까?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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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1 20:04

성차별, 인종차별 그리고 노인차별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요즘 미국이 난리다. 코로나 19로 엉망인데다 인종갈등까지 겹쳤다. 또 백악관 참모였던 볼턴이 트럼프 대통령의 뒷덜미에 비수를 꽂았다. 세계 1등 국가라기에 부끄러운 얼굴이다. 이 중 인종갈등은 고질적이다. 지난달 25일 상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46)가 경찰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사망한 것이다. 8분46초 동안 숨을 쉴 수 없어요(I cant breathe)를 16번이나 애원했다. 명백한 인종차별로,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다. 2012년에는 10대 흑인이 백인 자경단원의 총에 맞아 살해되었다. 이때 항의 구호가 유명한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MLB)였다. 미국은 유색인종, 특히 흑인에겐 참 나쁜 나라다. 돈도, 집도, 법도 흑인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인과 흑인간 소득 격차는 두 배가 넘고 흑인 집단거주지는 유해폐기물로 넘쳐난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흑인이 높고 불심검문도 흑인이 더 자주 받는다. 그런데 이런 인종차별은 비단 미국만 그런 게 아니다. 이번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자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동양인을 멸시하는 차별행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인종차별 보다 더 오래된 게 성차별이다. 꽤 오랫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은 아동과 함께 남성의 예속물이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으나 우리의 경우 아직도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독박육아에서부터 채용차별, 임금격차, 승진차별, 성범죄에 이르기까지 세계기준에 한참 멀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2019 유리천장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최하위다. 교육, 경제활동 참여, 임금, 관리직 진출, 임원승진, 의회 진출, 유급 육아휴직 등을 토대로 산출했을 때 100점 만점에 20점 남짓이다. 회원국 평균 60점에 크게 미달했다. 특히 임금은 여성이 남성의 65.4%에 머물고, 여성 관리자 비율은 12.5% 수준이다. 하지만 성범죄분야는 2018년 미투(#Me Too)운동으로 혁명적 계기를 맞았다. 오거돈 부산시장 등 정치예술분야 유명인들에게 대거 철퇴가 가해졌다. 성인지 감수성과 관련, 지난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는 인상적이다. 이용호 의원(남원임실순창)이 여성 위원장에게 갈수록 아름다워져서라고 외모를 칭찬했다 경고를 받은 것이다. 이들 성차별(Sexism), 인종차별(Racism)과 함께 3대 차별이 연령차별(Ageism)이다. 1968년 버틀러(Butler)가 명명한 연령차별, 즉 노인차별은 그러나 두 차별에 비해 그늘에 가려진 편이다. 나이를 근거로 항의시위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현장에서 노인에 대한 차별은 비일비재하다. 노인 일자리의 경우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다 쉽게 잘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집에서 놀 사람을 불러서 일 시켜주면 용돈도 벌고 좋으니 감지덕지하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연령차별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이 정년문제다. 연금지급과 세대갈등이 걸려 있어, 쉬운 문제는 아니나 결국 철폐해야 할 차별이다. 미국은 1986년, 영국은 2010년에 정년제를 폐지했다. 일본은 65세 정년을 70세로 늘리려 한다. 차별은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공동체를 파괴한다. 그 중 연령차별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다. 이 세상에 나이가 줄어드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늙는다. 오늘의 청년이 내일의 노인이 아니던가.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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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23 16:49

누가 경비원을 죽였나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경비원이 죽었다. 서울 강북구 아파트의 경비원으로 일하던 최희석씨가 입주민의 갑질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직 한참 더 살아야 할 59살의 나이였다. 두 딸을 혼자 키우며 막내딸에게 용돈 30만원을 남긴 마음 여린 가장이었다. 시작은 사소했다. 지상 주차장에 평행 주차된 입주민 심씨(49)의 차량을 옮기기 위해 차를 밀다 일어난 것이다. 오래된 아파트라 주차장이 좁아 이중 주차가 예사였다. 심씨는 돈 받고 일하는 경비 주제에 왜 하지 말라는 짓을 하느냐며 폭행했다. 그리고 관리사무소로 질질 끌고 가 당장 사직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며칠 후에는 경비실 화장실로 데려가 CCTV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 10분 넘게 폭행해 코뼈를 부러뜨렸다. 이후에도 20일 동안 괴롭혔다. 최씨는 음성유서에서 공포에 시달린 심정을 밝히며 심씨를 엄중히 처벌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힘이 돼준 이웃 주민들에게 일일이 고마움을 표했다. 결국 심씨는 구속돼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이러한 사건은 비단 이 아파트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악질적 갑질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국민의 70%가 생활하는 전국 어느 아파트에서나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 주택관리공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 4년간 3000건의 갑질 폭행행위가 신고된 것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실제 우리나라 노인일자리는 많지 않다. 60살을 넘어 퇴직 후 할 수 있는 일은 경비, 청소, 운전, 주차관리, 요양보호 등이 고작이다. 고위직에 있다 전관예우를 받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450만 고령노동자의 상당수가 이러한 단순노무직에서 일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현실은 노인빈곤과 맞닿아 있다. 경비원 자리는 그나마 근무여건이나 임금 등이 가장 나은 일자리다. 그럼에도 경비원은 고용주에게 고다자(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쉬운)요,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일 뿐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6월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가 전주시내 212개 아파트단지 경비원 244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입주민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우가 20%를 넘었다. 놀라운 것은 사용자로부터의 갑질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근무 중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나 동대표, 관리소장 등으로부터 부당한 상황을 경험한 경우가 50%이상이었다. 그 중 욕설, 무시, 구타 등 인권침해도 24.5%에 달했다. 이러한 갑질이 경비원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 갑질을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법과 제도의 정비다. 경비원의 업무에 관한 법률은 경비업법과 공동주택관리법이 해당한다. 경비업법은 경비업무 외의 업무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엄격히 적용하면 청소 등 다른 업무는 별도의 전문업체와 계약을 하게 돼 대량해고가 불가피하다. 반면 경비 외에 주차관리와 택배관리, 청소, 분리수거, 잡초제거 등 다른 업무를 하게 되면 갑질이 속출할 수 있다. 어느 선에서 조절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노동부의 근로감독 강화나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제정, 아파트관리규약 개정 등도 필요하다. 또 하나는 입주민들의 관심이다. 최근 발간된 임계장 이야기(조정진)에서는 아파트 주민을 소수의 좋은 사람과 다수의 무관심한 사람, 극소수 나쁜 사람으로 분류한다. 모두가 관심을 갖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마주칠 때마다 따뜻한 인사 한마디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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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26 17:26

마스크의 사회복지학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지난 3월 중순께 수원에서 열리는 지인 자녀의 결혼식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일 때여서 께름칙했으나 부득이 안 갈수 없는 처지였다. 당초 혼주는 결혼식을 미루려 했으나 터무니없는 위약금으로 최소한의 인원만을 초청했다. 결혼식장에 들어서니 신랑신부와 혼주를 제외하고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 때문에 처음에는 잘 몰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나중에 마스크를 내리고 서로 파안대소하는 해프닝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가장 낯선 풍경은 식장 안에서였다. 150명가량 되는 하객들이 모두 흰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는 모습이란. 박수를 치며 축하하긴 했으나 조금 무겁고 어색한 분위기가 내내 감돌았다. 그 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더욱 기승을 부렸고 마스크 착용은 일상사가 되었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무례하거나 민폐를 끼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를 강타한지 100일이 넘었다. 큰 고비를 넘겼지만 아직 안심단계는 아니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감염자가 300만명을 훌쩍 넘었고 사망자도 20만명에 이른다. 이번 사태는 뉴욕타임즈 칼럼이 세계를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눌 만큼 역사와 사회를 확연하게 바꿔 놓았다. 코로나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아마 마스크 쓰기가 아닐까 싶다. 정부와 의료당국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3가지를 제시했다.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2m 거리두기가 그것이다.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류가 짜낸 최고의 방책이다. 이 중 마스크는 시각적 효과가 커 자신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도구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어쩌면 개인위생과 거리두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일종의 넛지(nudge 주의를 환기시킴)인 셈이다. 마스크의 어원은 마귀라는 뜻의 중세 라틴어 마스카(masca)에서 유래했다. 또 다른 용어로 가면이라는 페르소나(persona)와 맥락을 같이 한다. 얼굴의 일부 또는 전부를 가리는 마스크는 원시시대 종교의식에서부터 현대의 패션마스크에 이르기까지 형태와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돼 왔다. 연극이나 무용의 분장도구로 사용되었고 1418세기에는 유럽에서 눈과 코, 얼굴의 반을 가리는 하프 마스크(half mask)가 유행했다. 최근 들어 미세먼지나 황사 등을 차단하는 기능성 마스크가 등장했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한 장의 얇은 마스크에는 불안과 익명성, 비대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나아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사회복지적 함의도 포함돼 있다. 우선 마스크는 크고 작은 재난이 그러하듯 불평등의 상징이 되었다. 빈곤이 주는 경제적 격차, 차별과 배제가 생명권의 격차로 나타난 것이다. 코로나 발생 초기 마스크 값이 폭등해 노인, 장애인, 난민,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은 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미국의 경우 사망자 중 70% 이상이 흑인이다. 또 동양인이 마스크를 쓸 경우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반면 마스크는 타인에게 침이 튀는 것을 방지하는 배려와 동시에 공존의 상징이었다. 기초수급자인 70대 노점 할머니가 마스크 39장과 틈틈이 모은 100만원을 대구의 어려운 분에게 보내달라고 파출소에 놓고 가는 등 사마리아인들의 선행이 잇따랐다. 마스크 양보 캠페인에 대한 호응도 높았다.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이제 코로나가 고비를 넘기면서 마스크 쓰기도 조금 시들해졌다. 마스크가 단절과 차단이 아닌 소통과 연대의 상징으로 기억됐으면 한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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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28 20:32

재난기본소득을 넘어 기본소득으로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를 덮쳤다. 중국에서 발원한 바이러스는 두 달 넘게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확진자가 100만 명에 육박하고,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구 선진국이 더 취약함을 드러냈다. 콧대 높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납작 엎드렸고 일본에서 개최될 하계올림픽도 연기되었다. 앞으로 바이러스의 습격은 더 강력해질 것이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 정부들은 쩔쩔매고 있다. 국경 봉쇄에도 불구, 방역에 허둥대고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가 일상화되었다. 더 큰 문제는 경제 후폭풍이다. 음식숙박업에서 항공업에 이르기까지 경제 팬더믹이 몰고 온 파고는 실업 공포로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경제연구기관은 이번 사태로 중국 900만명, 미국 740만명이 해고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도 2명 중 1명이 감염보다 감원에 떨고 있다. 이렇게 위기에 몰리자 각국은 돈을 풀어 방어벽을 치고 있다. 미국은 2조2000억 달러(2684조원), 독일은 1조 유로(1344조원), 일본은 56조 엔(629조원)을 경기부양책으로 내놓았다. 국내 총생산(GDP) 대비 1030%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우리나라도 140조원 규모를 책정했다. 여기에는 정부가 소득하위 70%인 1400만 가구에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이에 앞서 우리나라는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나섰다. 감염병으로 죽기 전에 굶어 죽겠다는 신음이 터져 나오는 위기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다. 가장 먼저 선수를 친 곳이 전주시다. 전주형 재난기본소득으로, 중위소득 80% 이하 5만명에게 52만7000원을 선불카드로 지급키로 한 것이다. 이를 신호탄으로 전국 자치단체가 봇물 터지듯 나섰다. 재난긴급생활비(서울), 취약계층긴급지원비(경기), 긴급생활안정자금(충남), 긴급생계자금(대구) 등 이름도 다양하다. 이들 자금은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매출감소로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을 지원한다는 명목이다. 뒤늦게 전북도도 뛰어들었다. 집단감염위험시설 1만3064곳에 70만원을 지원키로 했다. 재난기본소득은 초기에 포퓰리즘이라며 부정적 의견도 있었으나 찬성의견이 압도적으로 높다. 415 총선을 앞둬서인지 야당도 찬동했다. 하지만 재난기본소득은 본래 의미의 기본소득이 아니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개인단위로, 무조건적으로, 자산조사나 노동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현금이다(A basic income is a periodic cash payment unconditionally delivered to all on an individual basis, without means-test or work requirement.) 기본소득의 역사는 꽤 오래이나 우리나라에선 2000년대 이후 논의되기 시작했다. 대중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2016년 성남시 청년배당을 시행하면서 부터다. 이후 경기도는 이재명 지사가 2019년 청년기본소득을 도입했고, 올해는 코로나 위기를 맞아 전체 도민에게 10만원씩을 지급키로 했다. 전북에서도 2017년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다. 4명을 선정해 6개월간 매월 50만원씩 지급하는 쉼표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기본소득은 재원마련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러나 누적돼온 자본주의의 모순과 복지국가의 위기, 그로 인한 빈곤과 차별배제 등을 극복하기 위한 해법으로 적극 검토할 시점이 아닐까 한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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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31 16:36

코로나19, 지금은 서로 격려하고 응원할 때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모든 게 텅 비었다. 3월 새 학기를 맞아 술렁거려야 할 학교도, 성당도 법당도, 공연장도 모두 텅 비었다. 음식점도, 상가도 헤싱헤싱하다. 거리엔 오가는 사람의 수가 확연히 줄었다. 그것도 마스크를 쓴 채, 무슨 벌레 만난 것처럼 서로 거리를 둔다. 눈만 뜨면 매스컴에선 중계 방송하듯 확진, 자가격리, 감염, 폐쇄, 사망 등의 살벌한 용어를 토해낸다. 휴대폰에서도 긴급 안내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중국발(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과 한 달여 사이에 바꿔놓은 풍경이다. 개인의 일상이 위축되고 사회 전체가 마비된 듯하다. 실제로 낯선 이와의 악수도, 오랜 벗과의 식사도 두렵다. 점심식사 때 마주앉은 동료의 목소리가 커지면 비말(飛沫)이 튀지 않을까 우려할 정도다. 문고리만 만져도 화장실로 향해 손을 씻는 습성이 몸에 배어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을 설설 기게 만들고 있다. 슈퍼컴퓨터도, 인공지능(AI)도 아직은 속수무책이다. 코로나19가 중국을 넘어 여러 나라로 번지면서 전 세계가 긴장하고, 팬데믹(pandemic 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의 위험성이 고개를 든다. 우리 국민의 입국을 제한하는 나라도 80개국을 넘었다. 이러한 바이러스의 습격은 우연이 아니다. 대부분 동물에서 비롯된 인수공통전염병이다. 근대 들어 주요 사망원인이었던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같은 질병들이 모두 동물의 질병에서 진화된 감염병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전시에 사망한 사람들 중에는 전투 중 부상으로 죽은 사람보다 전쟁으로 발생한 세균에 의해 희생된 사람이 더 많았다.(총균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에이즈도 아프리카 야생원숭이가 지니고 있던 바이러스가 진화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1세기를 전염병의 시대로 규정했다. 빌 게이츠도 이미 5년 전 인류에게 가장 두려운 재난은 핵무기도, 기후변화도 아닌 전염성이 강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고 경고한 바 있다. 10억 명에 달하는 인구를 한꺼번에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게 미생물(microbes)이라는 것이다. 빈번해진 국제교류와 도시 밀집화는 바이러스가 확산하는데 좋은 숙주가 되고 있다. 이 같은 재난은 인간본성의 민낯을 드러낸다. 대다수가 침묵하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일부는 제 뱃속 채우기에 급급하다. 마스크 사재기를 하는 나쁜 상인들이 대표적이다. 또 415 총선을 기화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좀비 같은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지역감정을 소환하는 등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려댄다. 그런가 하면 선동과 욕설로 군중집회를 주도하는 수준 낮은 목사며 코로나19를 퍼뜨리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하고 있는 사교(邪敎) 집단 등은 종교의 존재이유를 묻게 한다. 일부 언론은 나라가 망해야 직성이 풀릴 듯 불안과 공포를 부추긴다. 반면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도 많다. 1시간보다 더 잔다며 한 달 보름 넘게 질병관리본부를 지키고 있는 공직자며 공황상태에 빠진 대구경북에 한달음에 달려간 의료진은 우리 곁의 작은 영웅들이다. 또 건물 임대료나 월세를 깎아주는 이들이며 각종 물품을 아낌없이 내놓는 민초들도 우리의 희망이다. 바이러스의 습격은 앞으로 더 강력해지고 일상화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비난보다는 격려와 응원이 치료약이 아닐까 싶다. 문득 밖에는 매화와 군자란의 꽃망울이 생명의 문을 열고 있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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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03 15:41

정세균과 정동영의 미래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지난달 10일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는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명 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정 대표는 총리로서 선거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우선돼야 한다. 만약 그럴 우려가 있다면 찬성할 수 없다고 답했다. 총리가 초도순시 명목으로 고향인 전북을 방문해 민주당 후보와 만나면 그게 바로 선거개입이라는 것이다. 이날 정 후보자는 더는 걱정 말라. 이번 선거가 끝나면 협치를 하려고 한다고 설득했고 정 대표도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대화가 관심을 끈 것은 두 사람의 관계 때문이다. 이들은 호남의 맹주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북정치를 양분해 왔다. 국회의원 뿐 아니라 김완주송하진 지사, 김승환 교육감 등 상당수가 이들의 도움을 받고 당선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좀 껄끄러운 관계였다. 시계 바늘을 25년 전으로 돌려보자. 이들은 1995년 제1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영입, 이듬해 치러진 15대 국회의원 선거(무주진안장수/ 전주 덕진)에서 당선돼 나란히 국회에 등원했다. 정치입문 동기인 셈이다.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 각각 산업자원부장관과 통일부장관을 지냈고 모두 열린우리당 의장을 역임했다. 이들이 악연을 맺게 된 건 2009년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부터다. 2007년 10월 대선에서 패배한 정동영은 자숙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간은 길지 않았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 을에 나와 고배를 마셨다. 때마침 전주에서 김세웅(덕진)과 이무영(완산 갑)이 선거법 위반으로 물러나자 정동영은 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이 전국 최다득표율을 자랑했던 전주 덕진 재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정세균이 대표로 있던 민주당 지도부는 정동영의 출마를 만류했다. 이유는 민주당의 전국 정당화였다. 텃밭 호남지역 보다는 6개월 뒤 치러질 수도권 재보궐선거에 나서 달라는 요청이었다. 결국 정동영은 민주당을 탈당하고 신건과 함께 무소속 연대를 꾸려 당선되었다. 그 때 나온 구호가 유명한 어머니, 정동영입니다였다. 당선 이후 정동영은 민주당 복당을 신청했고 정세균은 9개월간 받아주지 않았다. 당시 정세균은 자신도 고향에서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지역구를 서울 종로로 옮겼다. 또 2010년 103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들은 다시 격돌하게 된다. KBS TV 토론에서 정세균 후보가 먼저 자신을 키워준 모태를 부정하는 정치를 통해 성장했다. 결국은 배신의 정치 아니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대해 정동영 후보는 정후보가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되받았다. 이들은 모두 전북이 낳은 걸출한 인물이다. 오랫동안 동지요 라이벌이지만 고비마다 우리 정치를 풍요롭게 해왔다. 그렇다면 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우선 정세균은 지난달 46대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국회의장 출신이 왜 행정부 2인자로 가느냐는 반론도 있었지만 실사구시형 성격답게 총리직을 수락했다. 앞으로 정세균은 대선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전 총리를 넘어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느냐가 관심사다. 그러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지금 창궐하고 있는 중국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수습에 탁월한 역량을 보이는 게 첫 시험대다. 그리고 정동영은 21대 총선에 당선되느냐 여부가 코앞에 닥친 과제다. 10년 동안 참모노릇을 했던 김성주와의 리턴매치에서 살아남느냐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들의 미래가 자못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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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04 16:34

전북 정치판을 갈아엎자

지난 가을, 노인 100여 명을 모시고 충청권으로 역사문화 탐방을 다녀왔다. 대전에 있는 뿌리공원과 족보박물관을 들른 후, 충북 청주의 청남대를 돌아오는 코스였다. 이 가운데 인상적인 곳이 청남대였다. 청남대는 1983년부터 20년 동안 대통령의 공식별장으로 이용되다 노무현 대통령 때 일반에 공개되었다. 대청호를 낀 55만평의 부지에는 11만 그루의 조경수와 35만 본의 야생화, 각종 철새 등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돼 따뜻한 남쪽의 궁궐다웠다. 문화해설사에 따르면 1983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인근을 지나가다 이곳에 별장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장세동 경호실장이 6개월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독재자의 유물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기막힌 경치와 산책길이 너무도 환상적이었다. 때마침 국화축제까지 열려 엄청난 인파가 몰렸으나 모두를 넉넉한 품으로 안아주는 듯했다. 지금은 관리주체가 충북도여서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후세들이 관광자원으로 훌륭하게 활용하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서울에서 청주까지 곧 지하철이 연결되면 인근의 첨단과학단지와 함께 축복받은 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또 얼마 전에는 밤바다로 뜨고 있는 전남 여수와 정원박람회를 치렀던 순천 일대를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오래 전에 가본 예전의 그곳이 아니었다. 천지개벽하듯 변해있었고 관광객도 넘쳐나 활력이 돌았다. 그러고 보면 전북만 외로운 섬이 아닌가 싶어 머쓱했다. 실제로 전북은 오랫동안 축소지향의 길을 걸어왔다. 1896년 전북이라는 행정구역이 탄생한 이래 두 차례에 걸쳐 2개 군을 잃었다. 전남 구례군과 충남 금산군이 그러하다. 또 1947년부터 1953년까지 군산에 있던 한국해양대학은 부산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전북은 과거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1948년 제헌국회가 닻을 올렸을 때만해도 전국 200석 중 전북이 22석이었고, 9개의 상임위원장 자리 가운데 4개를 전북출신이 차지할 정도였다. 1949년의 경우 인구가 204만 명으로 남한 전체의 10.2%였다 그런데 이제는 전국 대비 3% 인구에, 2% 경제로 추락하고 말았다. 왜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나? 첫째는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경부축 중심의 불균형 성장정책이요, 둘째는 전북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의 잘못 때문이다. 특히 정치지도자들의 무능이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찌해야 하나? 정치지도자의 교체를 통한 전면적인 물갈이, 아니 판갈이가 필요하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경우 10명 전체를 바꾼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특히 여야를 떠나 4선의 정동영, 3선의 유성엽 조배숙 이춘석 등에게는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들은 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새로운 보수당, 대안신당, 무소속 등으로 사분오열 된데다 서발막대 휘둘러도 거미줄만 걸리는 가난한 집안에서 서로 남 탓 공방만 벌였다. 탄소소재법과 공공의료대학원법 등의 국회통과 무산이나 제3 금융중심지 지정 보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지연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썩은 고목에 또 다시 꽃을 피우겠다고 선거판을 기웃거리는 이강래 김춘진 등 올드보이들에게는 매서운 채찍이 약이다. 혹자는 중진을 키워야 한다거나 새로운 인물, 즉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새 봄에 싹을 틔우고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거두기위해서는 깊이갈이(深耕)가 절실하다. 깊이갈이를 통해 그동안 마발이 노릇을 하며 땅심만 소진시킨 정치인들을 퇴출시켜야 한다. 설령 새로운 인물이 미흡하다해도 한번 맡겨보자. 이대로 가면 전북에는 미래가 없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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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07 19:12

오래 살고, 오래 일하자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오래 살고, 오래 일하자(Live Longer, Work Longer). 이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5년 개최한 고령화와 고용에 관한 정책포럼의 보고서 제목이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의 고령화 현상과 고용정책을 검토해 고령화 현상을 과제가 아닌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도쿄도 고령사회 교과서) 이에 동의하나?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평생현역으로 사는 게 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100세 시대라는 말을 귀찮을 만큼 들어왔다. 실제로 이것은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이다.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8년 평균수명은 83.1세(남자 80.5, 여자 85.7)다. 정부가 수립되던 1948년 46.8세에 비해, 70년 사이에 36.3세가 늘었다. 2년마다 1살이 늘어난 셈이다. 앞으로도 인간의 수명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미 모나코 여성의 평균수명은 93세를 넘겼다. 그렇다면 평생현역은 무엇인가. 세계 최고령 장수국가 일본에서는 생애현역(Age Free)이라는 말이 20여 년 전부터 사용되었다. 최근 들어 부쩍 더 거론된다. 올해 일본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28.4%(우리나라 15%), 70세 이상은 21.5%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일본사회가 느끼는 위기감은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우리에게 밉상인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9월 초고령사회에 대비한 평생현역시대 정책을 발표했다. 정년을 연장해 70세까지 일하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에 대해 국가에서 연금을 주기 어려우니까 전 국민이 죽을 때까지 일하라고 한다며 냉소적인 시각이 없지 않다. 반면 더 오래 일하는 것을 희망하는 사람도 많다. 일본 내각부 여론조사에서 6569세 고령자의 65%가 일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정리하자면 이제 100세 시대는 좋든 싫든 필연이고, 고령에도 일을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왕 이럴 바엔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이와 관련, 고령자에 관한 오해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999년 발표한 반드시 없애야 할 6가지 인식이 그것이다. △대부분 고령자는 선진국에 산다 △고령자는 모두 같다 △남성과 여성 모두 같은 방식으로 나이가 든다 △고령자는 허약하다 △고령자는 아무런 공헌도 할 수 없다 △고령자는 사회에 경제적 부담이 된다 등이다. WHO는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없애고 고령자가 사회에 유용한 자원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일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노년의 일은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까지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다. 가능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파트타임(가령 하루 34시간씩)으로 하는 것이다. 100세 철학자인 김형석 교수(1920년생)가 롤모델이다. 100세인데도 해마다 150회 이상의 강연을 다니고 한 해 23권의 책을 내고 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건강과 젊음의 비결은 일이라고 확언했다. 건강해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하니 건강하다는 것이다. 일자리가 없다고 하지 말고 내가 일을 찾고 만들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또 하나는 봉사도 일이라는 점이다. 특히 일과 봉사가 결합된 사회공헌 활동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길어진 인생, 이제 오래 살면서 오래 일하자. 개인도 사회도 이러한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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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26 17:29

나는 내 집에서 살다 죽고 싶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90살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마지막을 요양병원에 계셨다. 서울에서 1년, 정읍에서 5년 가까이 지내셨다. 정읍에서는 고향 분 몇몇이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어 그리 심심치 않은 듯 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면서 그분들이 하나 둘 떠나고, 말년에는 아는 사람 없이 어머니만 남으셨다. 몸이 수척해지고 나중에는 거동도 거의 하지 못하셨다. 나는 병원에 자주 들르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주말마다 찾았다. 그런데 점점 늘어져 갔다. 몇 년이 지나서는 한 달에 한 번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돌아가실 무렵 집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몇 년째 비어 놓은 농촌 집에 가봐야 반길 사람 하나 없는데도. 몇 번은 동생이 차로 모시고 가려다 다시 돌아오곤 했다. 침대에 오랫동안 누워 계셔서 차가 흔들리면 온 몸이 아프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식사는 물론 대소변도 처리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었다. 나 역시 당신이 평생 지내시던 집이 아닌 병원에서 돌아가신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하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점점 나이 들면서 나도 노후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할 때가 있다. 최근 장모님마저 잃어 더욱 그러하다. 나도 결국은 어머니처럼 요양병원에서 삶을 마감해야 할까?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정신이 멀쩡할 때 자청해서 안락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식들에게 괴로움을 끼치지 않고, 고통 없이 갔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아마 죽음을 맞는 많은 이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세상은 탈(脫)시대다. 사회복지에서는 탈시설화탈가족화가, 철학에서는 탈인간화가 큰 흐름이다. 탈시설화는 말 그대로 시설에 수용하는 것에서 탈피해 자신의 집이나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필요한 서비스를 받는 것이다. 탈시설화의 세계적인 움직임은 1950년대부터 일기 시작해 1980년대에 활발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90년대까지도 노인이건 장애인이건 시설 보호방식이 대세였다. 이번 정부 들어 지역사회통합돌봄(Community Care)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반세기 넘게 이어져온 시설복지 패러다임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노인복지분야에서는 AIP(Aging In Place 살던 곳에서 나이 들기)가 핵심개념이다. 노인들이 아프고 불편하더라도 병원이나 시설보다 평소 살던 곳에서 지내다 삶을 마치는 것이다. 실제로 2017 노인 실태조사에서도 노인들의 절반 이상인 57.6%가 거동이 불편해도 살던 곳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자녀들은 부모와 같이 살려고 하지 않는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2008년 도입돼 가족과 자녀의 부양 부담이 줄어들었으나 아직은 공급자 중심인데다 혜택도 일부에 그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6월부터 전국 최초로 서비스를 시작한 전주시 통합돌봄 선도사업은 노인들에게 반가운 소식 중 하나다. 지역 실정에 맞는 돌봄모델을 발굴하기 위해 행정과 의사 약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 등 관련단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긴 하나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을 직접 찾아가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승수 시장은 지난 7일 민관협의체 회의에서 전주에 143층 랜드마크 건물도 종합경기장 개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편안하게 살다 삶을 마치는 것이라고 했다. 꽤 인상적인 말이다. 나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보다 내 집에서 살다 눈을 감았으면 한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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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29 17:51

장모님의 죽음과 지역병원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지난주 절에서 장모님의 49재를 지냈다. 극락왕생을 빌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곳에 태어나길 기원했다. 스님의 염불에 맞춰 두 시간 넘게 천수경 등을 따라 하고, 법문(法文)을 외웠다. 장모님이 평소 입던 옷가지도 태웠다. 하늘 높이 훨훨 타올라가는 불길을 보며 천상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안하길 마음 속 깊이 빌었다. 올해 84세인 장모님은 너무나 갑자기 돌아가셨다. 대학병원에서 심장혈관 스텐트시술 중 심정지(心停止)가 와서 돌아가신 것이다. 시술 받으러 들어간 지 3시간이 못돼 그렇게 되었다. 기가 막히고 허망했다. 발을 허공에 디딘 것처럼 한동안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장모님은 우리 가족에겐 특별한 분이셨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모두 키워주셨다. 큰 아이가 유치원 들어갈 때 일이다. 당시 유치원은 경쟁률이 높아 원생을 선착순으로 뽑았다. 2월이던가, 꽤 춥던 날 새벽부터 10시간 넘게 밖에서 줄을 서 계셨다. 손자들 일이라면 지극 정성이었다. 당초 장모님은 수술이나 시술은 생각지도 않았다. 얼마 전부터 숨이 차긴 했으나 감기정도로 여겼다. 유일한 혈육인 딸이 병원에 가자고 하니 익산에서 치료 받아도 되는데 왜 전주까지 가느냐고 못마땅해 하셨다. 의료진은 혈관이 좁아져 있고 판막도 좋지 않아 이대로 두면 1년밖에 못 사신다며 수술보다 안전한 시술을 권했다. 시술을 하고 나면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너무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았으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세 번째 혈관을 뚫다 혈액 부스러기가 혈관을 막아버린 것이다. 중환자실로 옮긴지 30분이 안 돼 또다시 심정지가 왔고,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셨다. 전후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쉬움이 너무 컸다. 우선 환자의 건강상태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설사 등으로 체력이 최악인 상태에서 혈관 3개를 한꺼번에 시술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또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무심했다. 심장 쇼크 후 보인 의료진의 태도는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아마 그들에게 환자의 죽음은 늘 대하는 일상사여서 너무 익숙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환자는 본인이나 가족에게 전 세계요 우주다. 환자의 죽음과 함께 가족의 상당부분도 함께 죽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의료진이 일부러 사고를 냈으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장모님의 죽음을 보며 지역에 좋은 의료진과 의료시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히 느꼈다. 주변에서 병이 나면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때마다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느 병원이나 오진이 있고 의료사고가 있게 마련인데 너무 호들갑을 떤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지방에 산다는 것이 우수한 보건의료 혜택에서 소외된다는 걸 의미해선 안 된다. 지금 전주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사업(Community Care) 역시 마찬가지다. 나이 들어 자신이 살던 곳에서 돌봄을 받다 생은 마치는 것이 기본개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양질의 의료진과 의료시설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믿을 만한 의료시설이 없다면 출발부터 도로아미타불이다. 8월의 무더위에 휴일까지 겹쳤는데도 많은 분들이 위로해 주셨다. 그분들 중 고인(故人)이 딸과 사위를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서둘러 가신 것 같다는 말에 목이 더 멘다. 중국 시인 두보는 관을 덮고서 일이 정해진다.고 했다. 가신 뒤 고마움의 그림자가 더 긴듯하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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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01 18:19

아파트 노동자의 눈물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아파트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거주하는 가장 보편적인 공간이다. 통계청의 2017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0.6%가 아파트에 산다. 도시만을 놓고 보면 거의 80%에 육박한다. 또 이곳에서 일하는 경비청소직은 가장 대표적인 노인 일자리다. 사실 경비청소직은 고된 노동강도와 불안한 고용계약으로 만족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진입경쟁이 치열한 다른 노동시장과 달리 그나마 수요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노인일자리 중 하나다. 우리는 아파트의 그늘에서 묵묵히 일하며 눈물 흘리는 고령노동자의 삶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 지난 28일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에서 2019 아파트 경비원청소원의 근로환경, 길을 찾는다!는 심포지엄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이날 심포지엄은 전주시 소재 의무관리대상 아파트(150가구 이상) 318개 단지 중 212개 단지에 근무하는 경비원(관리원) 244명과 청소원 140명 등 384명을 상대로 면접조사를 벌인 것을 바탕으로 했다. 특히 법학교수 등 전문가 뿐 아니라 입주자대표회의, 용역업체, 경비원과 청소원 등이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전북에서는 물론 전국에서 처음 시도하는 일이다. 설문조사 결과, 경비원과 청소원들이 얼마나 열악한 근무환경에 처해 있는지 여실히 밝혀졌다. 이들의 90%가 60대 이상이었으며 70대 이상도 18.4%와 23.6%를 차지했다. 또 이들의 90%가 계약직임시직이고 경비는 24시간 맞교대, 청소는 46시간 근무가 일반적이었다. 월평균 임금은 184만7천원과 130만8천원이었다. 경비원의 경우 근로기준법 예외 직종으로 구분돼 평균 8.1 시간의 휴게시간을 제하고 임금을 받는다. 또 휴게공간이 따로 없어 72.8%가 경비실에서 새우잠을 잔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 청소원은 땀을 흘리는데도 85.5%가 샤워실이 없다. 가장 어려운 점으로 경비원은 고용불안을, 청소원은 낮은 임금을 꼽았다. 사용자로부터 욕설 무시 구타 등 부당한 상황을 경험한 경우가 50% 이상이었으며 입주민의 인권 침해도 20%에 달했다. 이날 현장의 목소리를 토대로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경비원의 경우 24시간 맞교대에서 평일 23교대 근무로 유도해야 한다. 고령노동자가 24시간을 꼬박 근무하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또 90%에 이르는 비정규직을 점차 정규직화 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면 한다. 둘째, 정년(고용기간)을 연장하든지 없앴으면 한다. 아파트 경비원의 정년은 65세로, 대개 1년 단위로 계약한다. 하지만 정년을 넘긴 후는 6개월 또는 3개월 단위로 쪼개기 계약을 한다. 셋째,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고용불안을 해소했으면 한다. 위탁관리가 80% 안팎인데 용역업체가 바뀌면 승계의무가 없어 사실상 해고 위험에 놓이게 된다. 또 가능하면 위탁보다는 직접고용(자치관리)을 장려했으면 한다. 넷째,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사용자의 갑질이나 최저임금 위반, 임금체불 등을 못하도록 상시감독이 필요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청소원을 줄이고 이 일을 경비원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다. 또 휴게시간을 늘려 임금을 적게 주는 편법이 횡행한다. 다섯째, 아파트 관리 업무를 준공영제로 운영하는 방안이다. 대다수가 거주하는 생활공간을 사적영역에만 맡길 게 아니라 자치단체가 준공영제로 운영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날 행사에서 한 분리수거 청소원은 365일 쉬는 날이 없다 면서 장모님이 돌아가신 날도 얼굴만 비추고 근무했다고 밝혔다. 민과 관, 지역사회가 지혜를 모아 아파트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줬으면 한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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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02 17:04

100세 시대, 노인 나이를 세분화하자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국립공원 속리산으로 유명한 충북 보은군에는 80세 이상 노인만 이용할 수 있는 경로당이 있다. 이름하여 산수(傘壽) 어르신 쉼터 상수(上壽) 사랑방. 80세를 뜻하는 산수와 100세를 뜻하는 상수에서 따왔다. 2011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지만, 위아래가 엄격한 시골마을에서 자식뻘 되는 새까만 후배와 함께 경로당을 이용하기가 불편한 고령 노인을 위해 개설한 것이다. 이 경로당은 큰 호응을 얻어 2013년 탄부면에 2호, 2019년 1월 마로면에 3호를 개설했다. 3호의 경우 문을 열자마자 8093세의 노인 50여 명이 회원으로 등록했다. 이제 경로당도 젊은 노인과 늙은 노인으로 구분하는 시대가 되었다. 실제로 일반 경로당에도 70세 정도는 어린애 취급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면 노인나이 기준을 어떻게 봐야 할까. 올해 1월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노인나이 기준을 변경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워크숍에서 (우리나라가) 사회적 인식보다 노인연령이 너무 낮게 설정된 상태라면서 노인연령 기준을 적극적으로 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현행 65세를 올려 달라고 주문한 셈이다. 이러한 요구는 몇 년 전에도 있었다. 2015년 대한노인회가 노인기준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높이자고 제안했다. 정부가 옆구리를 찔러 나온 것이긴 하지만 이후 노인연령 기준 상향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노인연령 기준이 65세가 된 것은 130년 전이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1889년 세계 최초로 연금보험을 도입하면서 지급대상 연령을 65세 이상으로 잡았다. 유엔도 1950년 고령지표를 내면서 비스마르크 연금을 참고해 노인 기준을 65세로 정했다. 우리나라 역시 1981년 노인복지법을 제정하면서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지금과 당시의 수명을 비교하면 맞지 않는 옷이다. 1889년 당시 독일인 평균수명은 49세, 1981년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66.1세였다. 올해 기대수명은 82.6세다. 지난해 서울시노인실태조사에서도 65세 이상 노인이 생각하는 노인 기준 연령은 평균 72.5세였다. 다른 나라의 기준을 어떨까. 노인대국 일본은 노인을 전기고령자(6574세)와 후기고령자(75세 이상)로 나눈다. 75세가 기준인 것은 1987년부터 20여 년간 조사한 결과 약 80%가 70대 후반부터 서서히 쇠약해지기 시작해 도움이 필요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의료 등 복지 정책이 다르게 적용된다. 미국 또한 노인을 구분한다. 젊은 노인(young old 6574세), 중간노인(middle old 7584), 늙은 노인(very old 또는 old old 85세 이상)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고령화가 급격히 이루어지자 유엔은 2015년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다. 미성년자(017세), 청년(1865세), 중년(6679세), 노년(8099세), 장수노인(100세 이상)으로 구분한 것이다. 문제는 노인 연령 기준이 복지혜택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정부 복지포털 복지로에 따르면 노인 연령과 관련된 복지서비스는 199종에 이른다. 기초연금, 장기요양보험,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 독감백신 무료접종, 지하철 무료 이용 등 대부분이 65세가 기준이다. 가뜩이나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세계 1위인데 노인연령을 올려 혜택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100세 시대의 급행열차를 타고 있는데 손을 놓을 수도 없다. 보은의 경로당처럼 노인 나이를 세분화하고, 복지서비스 종류에 따라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안을 모색했으면 싶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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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21 16:52

최명재·홍성대·정문술 〉 김승환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요즘 전북교육계는 상산고의 자사고(자율형사립고) 재평가를 앞두고 논란이 뜨겁다. 전북교육청만 기준점을 다른 곳보다 10점 높은 80점으로 올린 게 불씨가 됐다. 이에 대해 상산고는 자사고 폐지 수순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러한 논란을 보면서 교육의 본질과 교육에 바친 전북출신 인물들의 헌신과 희생을 떠올려 본다. 정치 경제적인 역량이 계속 쪼그라드는 현실에서 얼마 전까지 전북은 교육입국(敎育立國)을 위해 온 몸을 던진 인물들이 많았다. 그들 중 현재 살아있는 대표적 인물 3명만 소개할까 한다. 먼저 강원도 횡성에 민족사관고를 세운 최명재 회장(92). 김제출신인 최 회장은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전주고와 서울 상대를 졸업하고 1953년부터 은행원으로 일하다 택시운전사로 전업했다. 1974년 이란에 진출, 운송업으로 큰돈을 번 후 강원도에 목장을 차리고 1987년 파스퇴르유업을 세웠다. 여기서 번 돈 1000억 원을 1996년 민사고를 세우는데 쏟아 부었다. 민사고의 젖줄인 파스퇴르 유업은 학교에 대한 과도한 투자로 2004년 한국야쿠르트에 매각됐다. 영재교육과 민족주체성교육, 지도자 양성을 내세운 이 학교는 세계 명문 20대 고교에 들어갈 정도로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최 회장은 회고록에서 내가 번 돈은 사회가 잠깐 내게 맡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둘째는 상산고를 세운 홍성대 이사장(82). 수학의 정석으로 널리 알려진 홍 이사장은 남성고와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올해 발행 53주년을 맞는 이 책은 한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 정읍이 고향으로 어린시절 14번 이사를 다닐 정도로 어려웠다고 한다. 이후 학원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홍 이사장은 1981년 전주에 상산고를 세우고 2002년 자사고로 전환했다. 책에서 번 돈 1000억 원을 투자했으며 학교 명칭은 고향 태인의 상두산(象頭山)에서 따왔다. 또 이 학교 부지에는 전북의 정치거목 이철승 신민당 대표의 뜻도 담겨 있다. 이 대표는 살아생전 학교를 설립하려다 홍 이사장이 상산고를 세우겠다고 하자 선뜻 1만평을 내놓고 자신의 뜻을 접었다. 홍 이사장은 고향에 명봉도서관, 서울대에 상산수리과학관을 지어 기증했다. 그는 상산고는 25% 이상을 전북지역 인재로 선발한다면서 내 고민은 교육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살리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셋째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전 재산을 기부해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을 세운 정문술 회장(81). 임실에서 태어난 정 회장은 원광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정보부에 특채돼 18년을 근무하다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쫓겨났다. 1983년 미래산업을 창업,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반도체산업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두었다. 2001년과 2014년 515억 원을 쾌척, 바이오와 뇌과학, 인공지능 등을 연구토록 했다. 그는 정의로운 기업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겼다. 자사고 문제는 교육의 수월성과 평등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김승환 교육감은 평등에 방점을 찍고 상산고는 수월성을 중시한다. 평등은 중요한 가치이나 다양성을 무시한 획일로 흘러서는 안 된다. 특히 모든 게 빠져나가는 전북에 인재를 유입시키는 상산고는 이미 전북의 자랑으로 자리 잡았다. 김 교육감은 전북교육청을 청렴하게 만든 공이 크다. 하지만 불통과 독불장군이라는 평이 따른다. 임기가 3년 남은 교육감이 교육철학이 다르다 해서, 앞으로도 영원해야 할 학교의 명줄을 끊어서야 되겠는가. 인재 양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이들의 숭고한 뜻을 저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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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02 20:25

노인일자리, 어떻게 만들 것인가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얼마 전 흥미로운 통계가 발표되었다. 통계청이 국민이전계정(National Transfer Accounts)이라는 국가통계를 개발해 발표한 것이다. 이것은 민간소득과 정부재정 등이 085세 이상 각 연령대 사이에서 어떻게 이전 및 배분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정책을 개발할 때 근거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올해 처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태어나서 28세까지 적자인생으로 살다가 29세부터 흑자인생으로 돌아선다. 이어 43세 때 정점을 찍고 58세부터 다시 적자인생으로 돌아간다. 즉 2957세의 29년 동안 뼈 빠지게 벌어서 유년과 노년을 먹고 사는 구조다. 크게 보면 부모가 교육비를 대주는 초반 30년을 빼고 중반 30년을 벌어서 중후반 60년을 사는 셈이다. 100세 시대의 라이프 사이클과 거의 일치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주된 일자리의 평균퇴직 연령이 53세라는 점이다. 그 이후를 어떻게 할 것인가. 대다수는 생계를 위해서든 건강을 위해서든 일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주민등록상 인구는 2018년 12월 말 현재 76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4.8%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2018년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5579세 사이의 64.1%가 일자리 갖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고용률은 40%를 밑돌고 있고 그나마도 건물청소원, 아파트 경비원, 주차관리, 운전, 요양원 등 단순노무직이 대부분이다. 올해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일자리는 61만개다. 지난해보다 10만 개가 늘었다. 이 중 취약계층 지원, 꽃밭가꾸기 등 공공시설봉사, 노노(老老)케어, 청소년 선도 등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에게 제공하는 공익형 일자리가 72.1%인 44만개로 가장 많다. 한 달에 30시간 일하고 27만원을 받는다. 이 같은 공익활동은 취업이라 하지 않고 사회활동지원사업이라 부른다. 취업에 해당하는 노인일자리는 시장형, 인력파견형, 시니어인턴십, 고령자친화기업, 기업연계형 등으로 정부 보조금이 지원된다. 올해 특기할만한 것은 사회서비스형 2만 자리가 신설된 것이다. 지역아동센터나 청소년장애인노인시설, 방과후 학교 안전돌봄 등에서 한 달 60시간을 일하면 70만원 안팎(주휴수당 등 포함)이 주어진다. 이들 민간일자리는 모두 합해 17만 자리에 불과하다. 일자리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나라 노인일자리의 문제점과 맞닿아 있다. 노인일자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자리 개발과 상담 및 컨설팅, 데이터베이스 관리, 교육훈련, 수행기관, 사후관리가 각각 분절(分節)돼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따로 따로 놀고 있어 원스톱(one-stop) 서비스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일자리 자체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긴 하나, 현재 있거나 나눌 수 있는 자리의 미스매치도 아주 심하다. 구직자와 구인처, 교육훈련과 취창업간의 연계가 원활치 않고 구직자의 경력관리 등 DB도 엉성하다. 한 마디로 콘트롤타워를 중심으로 수요와 공급이 물 흐르듯 연결되는 방향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통합형 노인일자리센터가 광역자치단체별로 들어서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더불어 복지와 고용의 중간 성격 일자리, 직업 중심보다는 직무 중심의 일자리로의 전환도 필요하다. 100세 시대를 맞아 노인일자리도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이 시급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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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12 19:34

꼰대-노인-어르신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얼마 전, 2박3일 간의 워크숍에 다녀왔다. 전국에서 노인 일자리 종사자 40여 명이 모인 전문과정 프로그램이었다. 모처럼 쉴 겸 편한 마음으로 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몇 개 조로 나눠 조장을 뽑고 조별 발표과제가 주어졌다. 3040대 중간관리자가 대부분인지라 60대인 내게 조장이 맡겨졌다. 마지막 날에는 조별로 PT발표를 해야 했다. 모두가 서로 눈치를 보며 뒤로 빠지려 했다. 자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몇몇 조원들이 (사무실에서) 나이 든 관장이나 센터장들은 밑에 있는 사람만 시키려 한다는 말이 귀에 꽂혔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10분가량의 발표가 끝나고 평가를 하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메모지에 장단점을 써서 제출한 뒤 그것을 강사가 읽어주었다.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중후하다 경험이 많은 것 같다는 평에 이어 전형적인 아저씨 모습(꼰대)라고 하지 않은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꼰대라니? 면전에서 처음 듣는 얘기였다. 웃고 넘어갔지만 내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 후 그 말은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었다. 또 올해 들어 노인에 관한 글을 쓸 기회가 있었다. 우리사회에서 노인 또는 지역관련 단체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분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리액션을 보면서 어른답지 못한 노인이 많구나!하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특히 내가 (중책을) 맡고 싶어서 맡은 게 아니라 할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봉사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15년 동안 감투를 쓰면서 단체를 지리멸렬하게 만들어 놓고도 아직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노인을 이르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다. 꼰대, 영감(令監), 늙은이, 노인, 어르신 등이 그것이다. 이 중 꼰대는 청소년들이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키는 은어였다. 지금은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직장 상사나 노인을 이른다. 영감은 당초 높은 관직에 오른 남자를 가리켰다. 후세에 내려오면서 사회적인 명사나 나이 많은 노인의 존칭 또는 부인이 자기 남편을 존대하는 말로 쓰였다. 그리고 어른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4) 한 집안이나 마을 따위의 집단에서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 이 가운데 3)을 제외하면 동의할 만하다. 하지만 1970년대 전까지만 해도 늙은이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현실언어에서 이 말은 비하의 뜻으로 인식되었다. 대신 노인이 가치중립적인 말로 쓰이게 된 것이다. 그러다 1997년 노인의 날 제정을 계기로 어르신으로 부르자는 제안이 있었다. 어른의 높임말로 노인공경의 분위기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원래 어르신은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한자로는 춘부장(春府丈) 춘당(春堂)이다. 요즘에는 노인(늙은이)과 어르신(어른)을 구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는 것 없이 받기만 좋아하면 노인이고, 대가없이 베풀기를 좋아하면 어르신이다. 더 이상 배울게 없다고 생각하면 노인, 그 반대면 어르신이다. 또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면 어르신이다.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귀와 주머니를 열어야 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결론은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에서 주름살과 함께 품위가 갖추어지면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고 한 말이 딱 맞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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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1 19:58

전북애향운동본부, 발전적으로 해체하라

애향(愛鄕), 얼마나 정겨운 말인가. 굳이 수구초심을 들먹이지 않아도 고향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다. 그 애향이라는 깃발을 들고 태어난 단체가 전북애향운동본부다. 1977년 일어난 익산역 폭발사고를 계기로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전북지부장과 언론인, 상공인, 학계 등이 뜻을 모아 발족한 것이다. 당시 전북대 심종섭 총장을 초대 총재로, 이듬해 4월 사회단체로 등록함으로써 출범의 닻을 올렸다. 슬로건은 내 고장 사랑으로 낙후의 때를 벗자였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일이다. 하지만 내심은 호남 푸대접에 대해 자조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침체된 전북을 일깨우자는 뜻이 숨어 있었다. 비록 관변단체로 출발했으나 뜻은 가상했고 활동은 창대(?)했다. 전북과 관련된 큰 이슈가 있을 때마다 구심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북애향운동본부가 초창기 벌인 활동은 크게 3가지였다. 지역개발촉진사업과 인재육성, 향토문화예술진흥이 그것이다. 그 중 인재육성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핵심사업이다. 낙후를 벗기 위해 도민 1인 1구좌(5000원)갖기 운동을 통해 성금을 모으고 전북도와 시군의 지원으로 1981년 전북애향장학재단을 설립한 것이다. 여기에 1992년부터 전북은행이 매년 5천만 원씩 보태 지금은 기금이 30억 원에 이른다. 이후에도 전북애향운동본부는 IMF 환란극복, 향토기업 육성, 새만금 개발, LH유치 등 고비마다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도민을 대변하는 소리는 사라지고 노쇠한 경로당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러는 사이 전북의 형편은 창립 당시보다 더 어려워졌다. 전북 몫을 찾자는 진짜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럼 전북의 형편을 살펴보자. 전북은 지금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해 있다. 밖으로는 역점사업들에 브레이크가 걸려있다. 새만금신공항이 그렇고, 혁신도시 제3 금융중심지사업이 그러하다. 새만금신공항은 지역구를 의식한 여당 실세인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청주공항)와 이낙연 국무총리(무안공항)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2023년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를 공항 없이 치를 판이다. 세계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제3 금융중심지는 부산상공회의소의 반대 성명에 이어 야당 정치권의 공세가 거세다. 자칫 타당성 검토 용역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물 건너갈 소지가 크다. 또 안으로 전북은 소멸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초저출산과 인구절벽으로 전북 자체가 존립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전북의 인구는 1966년 252만명에서 올해 184만명으로 주저앉았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지방소멸 2018 보고서에 따르면 14개 시군 중 전주 군산 익산 완주를 제외한 10개 시군이 소멸위험지역이다. 그렇지 않아도 전북은 오래 전부터 전주의 구심력 약화로 상당수 시군이 광주권과 대전권으로 빨려 들어간 형세였다. 자, 그렇다면 전북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럴 때일수록 원로들이 나서 솔선수범하며 응집력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 전북애향운동본부는? 김삼룡 총재 15년, 현 임병찬 총재 15년의 장기집권으로 피로감이 만만치 않다. 존재감 자체가 희미해졌다. 일부에서는 애향이 아니라 해향(害鄕)운동본부라고 할 정도다. 김 총재 시대에는 그래도 언로라도 틔었으나 지금은 그마저도 힘들다고 한다. 헤진 갓끈을 부여잡고 놓으려 하지 않는 것은 노욕이요, 노추(老醜)다. 나이 들수록 베풀면서 귀를 열어야 한다지 않던가. 전북애향운동본부가 발전적 해체를 통해 이 지역 어른들의 단체로 거듭 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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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23 19:20

기금운용본부를 서울로 옮기자고?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요즘 국민연금이 동네북이다. 너도 나도 한마디씩 걸친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한때 폐지론까지 올라왔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모든 국민이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5월말 현재 2183만 명이 가입해 있고 매달 수급자만 450만 명에 달한다. 더구나 피 같은 돈 문제이니 예민한 것은 당연하다. 지난 17일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와 제도발전위원회가 장기재정 전망과 개선방향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백화쟁명에 접어든 느낌이다. 정부는 개선안을 토대로 정부안을 만들고, 최종적으로 국회에서 3번째 개편안이 확정될 예정이다. 국민연금은 두 가지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연금안 개편문제요, 또 하나는 기금운용본부 이전 문제다. 먼저 국민연금 개편안을 보자. 많은 국민들은 국민연금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 미덥지 못하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가 기금의 고갈 문제다. 이번 재정추계위가 발표한 것처럼 현재 635조원에 이르는 기금이 2042년에 적자로 돌아섰다 2057년이면 바닥이 난다. 그러다 보면 지금 젊은 세대는 실컷 돈만 내고 나중에 못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가뜩이나 취업도 안돼 서러운데 낸 돈도 못 받아? 젊은 세대가 발끈할만하다. 사실 국민연금이 고갈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1988년 도입 당시 가입자는 평균소득의 3%(보험료율)를 내고, 소득의 70%(소득대체율)를 가져가도록 설계했다. 가입자가 무조건 이득을 보는 구조다. 지금은 9%를 내고 45%, 즉 한 달에 9만8천원을 내고 39만6천원을 받는다. 그것도 12.6년(평균 납부기간)을 내고 22년(60세 한국남성 기대여명) 동안 받는다. 엄청나게 남는 장사다. 반면 영국은 25.8%, 독일 18.7%, 일본 18.3%, 미국 13.0%를 낸다. 그러니 기금 고갈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젊은 세대가 연금을 못 받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바꿔 그때그때 걷은 돈에 세금을 보태 지급하게 된다. 독일을 비롯해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하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저출산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가 지게 될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연금은 덜 내고 더 받는 구조를 깨뜨려야 한다. 특히 그 동안 혜택 받은 세대는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내가 좀 편하자고 우리 아들딸들의 돈을 당겨 써야 되겠는가. 그것은 심하게 말하면 도둑질이나 다름없다. 그 악역을 누가 맡아야 할까. 가혹할지 몰라도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이 작업은 인기 없고 극히 위험한 일이다.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연금개혁을 단행한 지도자는 다음 선거에서 모조리 패배했다. 지금 러시아 연금개혁을 밀어붙이는 부틴에게 시위대는 푸틴은 도둑놈이라고 외친다. 무척 상징적이다. 다음은 기금운용본부의 서울 이전문제다. 보수언론과 일부 야당의원들이 집요하게 주장하고 있다. 마치 전주를 먼 아프리카 오지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기금운용본부 소재지가 있는 전북인으로서 참기 힘든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본부 이전이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서울사무소 개설을 요구한다.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9년 전 이전한 부산의 한국거래소를 보라. 지금 부산사람들은 한국거래소 본사가 부산인지 서울인지 모르겠다고 푸념한다. 이러한 주장이 나온 것은 전북에 힘과 응집력이 없어서다, 국민연금공단이 광주나 대구로 갔어도 그런 말이 나오겠는가. 전북출신 10명의 국회의원과 도지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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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2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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