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06 20:19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영웅이 된 시민들

유럽의 오랜 강대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 인접한 지리적 여건으로 영토분쟁이 유난히 잦았다. 1337년부터 116년 동안이나 지속됐던 백년전쟁 역시 영토 싸움이 원인이었다. 승리는 프랑스에 돌아갔지만, 휴전과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두 나라 도시들이 입은 폐해는 컸다. 프랑스 북부에 있는 항만도시 칼레도 그중 하나였다. 도버 해협을 끼고 있던 칼레는 광석이나 목재 등을 수입하는 항구로 발전하면서 전쟁 초기부터 영국군의 공격을 받았다. 1346년 9월 영국군이 칼레항을 포위했지만,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고 저항했다. 그러나 식량이 바닥나자 더 버티지 못하고 항복해야 했다. 정치적 보복과 수난이 시작됐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칼레시의 항복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칼레의 유지 여섯 명의 목숨을 요구했다. 칼레의 시민은 용감했다. 칼레의 가장 큰 부자 유스타슈 생 피에르가 앞장서자 여섯 명 유지들이 뒤를 따랐다. 에드워드는 여섯 명을 요구했으나 오히려 일곱 명이 칼레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 셈이었다. 이들은 교수형에 처해질 여섯 명을 결정하기 위해 가장 늦게 오는 사람을 빼기로 했다. 그런데 끝내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바뀔 것을 염려해 먼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에르였다. 그러나 나머지 여섯 명은 동요하지 않고 교수대에 섰다. 놀랍게도 이들은 교수형에 처해지지 않았다. 에드워드 3세 왕비의 간청 덕분이었다. 영국의 식민지로 수난을 겪었던 칼레는 1598년, 251년이 지나고서야 긴 식민 치하를 벗어나 다시 프랑스령이 됐다. 그리고 용감했던 ‘칼레의 시민’은 시대와 국가의 경계를 넘어 후세의 영웅이 됐다. 총선 결과가 심상치(?) 않다. 21대 국회에 이어 지속되는 여소야대의 국면에서 야권의 몸집은 더 커졌다. 되돌아보면 여소야대 상황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2월에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 때도 여소야대 국면이었다. 탄핵 역풍이 따랐지만, 한때 탄핵소추로 대통령직무가 정지됐던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역대급 ‘여소야대’다. ‘야대’의 중심(?)에는 창당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원내 3당이 된 조국혁신당이 있다. 12명, 거대 야당인 민주당 의원 수에는 비견할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수지만 이미 시작된 조국혁신당의 거센 혁신 바람이 숫자에만 갇히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든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이 소수 야당 초선 의원들의 결기와 활동이 우리나라 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바탕이 되었으면 좋겠다. 문득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버리고 나섰던 피에르와 여섯 명 유지들의 용기와 희생정신이 새삼스러워진다./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4.04.16 16:44

출산지원금 1억원 시대

‘결혼하면 1억원 주겠다.’ 지난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한 후보는 ‘결혼수당 1억원, 출산지원금 3000만원’ 공약을 내걸었다. 허황된 빈소리, 허무맹랑한 공약(空約)으로 치부돼 비웃음을 샀던 이 공약이 최근 재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에는 웃음거리로 흘려버렸지만, 지금은 현실이 되고 있다. ‘아이 낳으면 1억원 준다.’ 부영그룹에서 시작된 민간 차원의 파격적인 출산장려책에 국내 기업들이 속속 동참하면서 나비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지방소멸 위기에 처한 각 지자체에서도 기존 출산지원금의 액수를 속속 늘리고 있다. 지역에서 태어나는 아동에게 18세까지 총 1억원을 지원하는 인천시의 ‘1억 플러스 아이드림(i dream)’ 정책이 관심을 모으면서 국가와 각 지자체가 출산장려정책의 획기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나섰다. 주로 출산‧육아지원금을 늘리는 현금성 지원정책이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현금을 쏟아붓는 출산장려책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지금껏 전국 각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늘려온 출산지원금이 실제 출산율 제고로 이어졌는지는 입증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돈 준다고 과연 아이를 낳겠느냐’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하지만 그 액수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파격적인 수준이라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상황이 다급하다. 국가 재앙 수준의 저출산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2006년 이후 쏟아부은 돈이 무려 380조 원을 넘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지원금을 마냥 늘리는 일도 쉽지 않다. 재정 여건이 좋지 않은 지자체는 더욱 그렇다. 올해는 가뜩이나 긴축재정으로 예산에 여유가 없다. 그러다보니 지자체 간 출산지원금 격차가 커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전주시의회에서는 전주시의 출산지원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전주의 출산율(0.69명)이 대한민국 평균(0.72명)에 미치지 못하고, 전북에서 가장 낮은데도 첫째아이 기준 출산지원금은 30만원으로 인근 지자체보다 현저하게 적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출산율 1.37명을 기록해 인구정책의 모범사례로 전국적 관심을 모은 김제시의 출산지원금이 비교 대상으로 거론됐다. 김제시의 첫째아이 출산지원금은 800만 원이다. 첫째아이 800만원을 시작으로 최대 1천800만원(다섯째 이상)까지 현금으로 준다. 지자체별로 제각각인 출산지원금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그 격차가 더 벌어질 수도 있다. 인구절벽 시대, 생존의 위기에 처한 각 지자체가 출산율 높이기, 인구 늘리기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어서다. 국가 비상사태다. 소멸을 걱정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절박하다. 그동안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온갖 묘안을 짜내며 인구정책에 총력을 쏟았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이제는 좌고우면할 여유가 없다. 더 늦기 전에 ‘돈의 힘’이라도 제대로 작용하기를 바랄 뿐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4.04.15 18:24

존재감 회복해야 할 전북정치권

전북도민들이 20년 만에 민주당 후보들한테 10석 전석을 석권토록 한 것은 윤석열 검사독재를 종식시켜 민생을 회복시키라는 메시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에서 조국혁신당이 12석을 차지 원내 3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윤석열 검사독재 정권을 청산하겠다는 투쟁의지가 제일 강했기 때문에 도민들이 그쪽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번 총선은 윤석열 정권의 실정에 대한 심판이 강하게 작용했다. 민주당이 잘해서 175석의 1당이 된 게 아니라 지난 2년 윤석열 정권이 검찰독재국가를 만들어 민생을 파탄나게 만들었기 때문에 표로 응징한 결과였다. 도민들은 지난해 새만금 잼버리 실패에 따른 모든 책임을 전북도에다가 뒤집어씌워 국가 예산을 대거 삭감한 데 따른 분풀이로 민주당 후보들한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지금 시대정신은 민의를 왜곡해서 민생을 파탄나게 한 윤석열 정권과 싸워 이기라는 것이다. 전북 당선자 10명도 시대정신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간 숫적으로도 열세에 놓인 전북 정치권이 중앙정치 무대에서 존재감을 찾는 게 가장 급선무다. 21대 때는 정치적 리더 없이 초재선으로 구성된 탓에 일사분란하게 원팀으로 움직이지 않아 전북 몫 찾기는커녕 각자도생하기에 바빴다. 도민들이 올드보이 라는 정동영 이춘석 그리고 최단기간 내에 배지를 거머쥔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과 안양지원장을 역임한 박희승 변호사에 의외로 기대가 크다. 그 이유는 경선을 통해 공천권을 확보하면서 윤석열 검사독재 정권을 확실하게 종식시키겠다고 강한 의지를 피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간 중앙정치권에서 전북이 소외돼 전북의 현실이 피폐일로에 놓여있기 때문에 먼저 전북 몫을 확보해 나가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전략공천을 받은 한병도 김윤덕 이원택과 경선을 통해 공천권을 쥔 안호영 윤준병 신영대 의원에 대한 평가는 엇갈려 있다. 이원택 의원처럼 의정활동이 두드러져 공천을 받기보다는 여론조사 결과 경쟁자가 너무 약해 40% 차이가 나고 친명이라는 이유로 전략공천을 받았다. 비명계인 신영대 의원은 강임준 군산시장과 한 몸인 관계로 조직력이 튼튼해 김관영 지사 조직까지 가세한 김의겸 후보를 제쳤다. 윤준병 당선자는 심덕섭 고창군수와 공조관계가 돈독하고 정읍에서 김생기 전 시장 조직이 물샐틈 없이 움직여 공천권을 따냈다. 아무튼 지금은 10명 전원이 전열을 가다듬어서 윤석열 정권과 맞서 싸워야 할 때다. 그렇지 않고 3선 중진이라는 이유로 다음 지사선거를 의식해 지방의원을 중심으로 유급당원을 확대하는 등 지방정치로 회귀하면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후보까지 지낸 정동영 당선자가 5선이 되었기에 그를 중심으로 원팀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어야 전북정치가 회생되면서 중앙정치 무대에서 존재감을 복원할 수 있다. 상임위를 구성할 때 정 당선자부터 마음 비우고 상임위에 2명 이상 겹치는 일이 없도록 사전 조율토록 해야 한다. 일각에서 전주고(4명) 전북대(3명)의 합종연횡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김관영 지사를 견제하는 건 전북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4.04.14 16:58

국회의원 드림팀

민주당 압승으로 막을 내린 22대 총선에서 지지 기반인 전북 10개 선거구도 싹쓸이했다. 그것도 압도적 득표율을 보이며 전통 텃밭임을 재확인시켜 줬다. 초재선으로 꾸려진 21대 와는 달리 신구 조화의 짜임새 있는 진용을 갖춘 이번 당선자들의 정치권 파워는 훨씬 세졌다. 5선에서 3선, 재선까지 전략적 배치가 가능함으로써 지역발전의 추진 동력도 한층 강화됐다는 평이다. 바꿔 말하면 국회 운영 전략이 다양해졌다는 의미다. 최근 역동적 움직임을 보이는 광주 전남과 대전 충남에 끼여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한 전북 입장에선 국정 현안의 소통 창구인 국회의원의 드림팀 구성은 일단 긍정적 신호로 읽힌다. 5선 정동영 당선자를 중심으로 4선 이춘석 당선자, 3선 김윤덕 안호영 한병도 의원이 주축이다. 여기에 재선 신영대 윤준병 이원택 의원과 초선 박희승 이성윤 당선자가 뒤를 받치는 모양새다. 관행적으로 5선 4선은 국회의장, 부의장 반열이며 3선은 원내대표와 사무총장, 상임위원장 급이다. 지역 현안 조율은 원내 수석 부대표와 상임위 간사가 주로 맡는데 재선의 몫이다. 이처럼 국회와 중앙당 요직을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만큼 의원간 팀웍과 정무적 연대가 절실한 입장이다. 최약체 평가를 받았던 21대 시절엔 최고위원과 원내대표 등 선출직에 전북 출신은 아예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 기본적 인맥과 존재감에서 크게 밀리면서 도전 자체를 포기한 셈이다. 우리 지역 국회의원 흑역사에서 원팀 정신이 가장 아쉬운 건 남원 공공의대 실패다. 20, 21대 국회에서 연속으로 법안이 자동 폐기되는 아픔을 겪는 드문 사례다. 2018년 폐교된 남원 서남대 의대 정원 49명을 활용한 데서 출발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2022년 3월 공공의대 개교를 추진하며 후보지로 남원을 못박기까지 했다. 이를 밀어붙이는 집권 여당이 민주당이었고, 해당 상임위엔 지역구 이용호의원, 김성주 의원이 버티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통과시킬 수 있는 의석도 충분한데 결국 해내지 못했다. 이렇게 해놓고 선거 때만 되면 정치권이 습관적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애드벌룬을 띄우는 것 자체가 '보여주기' 식 이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전북은 도약의 힘찬 날갯짓을 준비하는 요즘이다. 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른 역동적 기운이 무르익은 가운데 지역 현안 해결에 국회의원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남원 공공의대처럼 다 차려진 밥상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전철을 밟아선 안될 것이다.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꼴이다. 총선을 앞두고 현역 의원 교체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도 유권자들은 다시 기회를 줬다. 그들이 바로 3선과 재선에 성공한 6명 의원이다. 새로 출발하는 국회에서 전북 발전의 양 날개가 되어달라는 표심이 작용한 것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4.04.11 16:53

총선과 전북 홀로서기

올초 전국 200만명의 농협 조합원을 대표하는 제25대 농협중앙회장 선거가 치러지는 동안 농도 전북에서는 진풍경 하나가 펼쳐졌다. 크게 보면 백제권과 신라권 대결로 치러지던 선거과정에서 전북출신 유남영 정읍조합장은 직전 선거에서 2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완주도 못하고 중도에 낙마했다. 호남의 대표주자로 나섰으나 철썩같이 믿었던 전남광주권의 전폭지원을 얻는데 실패했고 특히 안방인 전북에서도 절대적 지지를 얻지 못했다. 중앙회장 선거 이후 자리 하나라도 차지하려고 전북의 유력한 조합장이나 전직 전북본부장 등 나름대로 득표력을 갖춘 이들이 미는 후보가 각자 다른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고 한다. 농협중앙회장 선거전은 전북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특히 10일 제22대 총선 이후 새로운 4년을 맞게될 전북정치권이 향후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가를 한번쯤 고민해봐야할 시점이다. 이번 총선 이후 전북은 확실하게 중진급 의원들이 주축을 이루게 됐다. 전북의 난맥상을 풀어줄 것이란 기대가 이들에게 쏠리고 있다. 그런데 데자뷔(=기시감)가 있지 않은가. 노무현 전 대통령 초반기의 일이다. 이때 전북 의원들은 5선의 김원기, 김태식 의원을 필두로 4선의 정균환, 이협 의원, 3선의 장영달 의원, 재선급에 정동영 의원 등이 포진해 있었다. 전국 평균 선수가 2선인데 반해 전북은 3선대를 기록했고, 특히 그 면면을 보면 10명중 5명이 최고위원, 원내총무, 사무총장을 거친 중량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중앙 정치권 갈등 과정에서 결국 이들은 사분오열됐고,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과거를 반추하는 것은 동일한 우를 다시는 범하지 말자는 거다. 축배의 노래를 부르는 시점부터 민초들은 일거수일투족을 하나하나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민심이 얼마나 냉엄한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 예전엔 전북에 잠재적 대권주자급 후보군이 가뭄에 콩나듯 한명씩 있었으나 3년후로 다가온 대선에선 전무한 실정이다. 8년후에도 케네디같이 혜성처럼 등장하는 이가 없는 한 전북 후보군을 발견하기는 쉽지않다. 유력한 대권 후보군 몇명을 중심으로 판이 전개되는 중앙정치의 속성상 활로는 결국 전북홀로서기에서 찾아야 한다. 현재 역학구도 상, 여당이든 야당이든 전북을 굳이 챙겨줄 이유는 하나도 없다. 숫자도 적고 약체인 전북의 살길은 중진급 인사를 중심으로 단합해 벌떼작전을 벌여야 한다. 그래도 중앙에선 들릴까말까할 정도다. 전북은 이미 호남의 변방이 된지 오래다. 상생을 위해 타 시도와 더 적극적인 협력은 필요하지만, 전북만의 독자적 발전방안과 나름의 정치적 자립 또한 매우 절실하다. 각 지역이 광역화를 위해 서로 힘을 합치는 것과 전북홀로서기는 서로 상충되는게 아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출세하기 위해 자기 소신을 접고 2중대, 3중대 소리를 듣는 전북 정치인이 이젠 없어야 한다. 그게 바로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드러난 전북 저변의 민심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4.04.10 20:24

고무신의 추억

‘눈보라 비껴 나는 -전(全)-군(群)-가(街)-도(道)-/ 퍼뜩 차창(車窓)으로 스쳐가는 인정(人情)아!/ 외딴집 섬돌에 놓인 하나 둘 세 켤레.’ 현대시조의 개척자로 불린 장순하 시조시인의 대표작 ‘고무신’이다. 시각적 요소를 도입해 돋보인 이 시조는 고교 교과서에 실려 유명해졌다. 정읍 출신인 시인이 1960년대 중반 전주~군산 간 도로(전군가도)를 달리는 버스에서 차창 밖으로 스쳐간 어느 시골집 풍경을 붙잡아 그 정취를 표현한 작품이다. 시인은 한적한 시골집 섬돌에 놓인 세 켤레의 고무신을 통해 가족의 정, 인간미를 묘사했다. 고무신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0~70년대 널리 사랑받은 국민 신발이다. 당시 부잣집 자식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운동화가 고무신을 대체한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다. 그로부터 반세기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고무신은 일상에서 사라졌다. 물론 굳이 사용하고자 한다면 지금도 구입할 수는 있지만, 골동품 취급을 받은 지 오래다. 그렇게 시대의 흐름에 쓸려 잊혀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고무신의 생명력은 그 재질처럼 끈질겼다. ‘부정선거·금품선거의 대명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소환된다. ‘고무신 선거’ 논란이다. 모든 게 귀했던 1960~70년대, 유권자들에게 막걸리와 고무신을 돌리면서 표심을 샀던 금품선거·관권선거를 이른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했다. 하지만 선거법은 예외다. 인간의 도덕·윤리의식과 상식만으로는 선거법을 제대로 지킬 수 없다. 도덕과 상식의 잣대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선거와 관련되면 위법이 되는 행위가 적지 않다. 과거 표심을 잡기 위해 돌렸던 막걸리가 교묘한 향응으로, 고무신이 돈봉투로 진화했다. 그래서 선거법도 더 엄격하고 까다로워졌다. 그러면서 대놓고 향응과 금품으로 표를 사는 행위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도 고무신 선거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후보들이 돈봉투 대신 선심성 퍼주기 공약을 남발하면서 ‘고무신 선거의 부활’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재난지원금 등 선거 직전의 예산 퍼주기, 그리고 ‘현금 뿌리기’ 수준의 공약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도 ‘매표성 포퓰리즘’이 판을 친다. 막대한 예산이 들지만 재원확보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 시절 고무신 돌리기는 애교 수준이다. 선거판에 고무신이 등장한 지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20세기 중반을 기억하는 세대에게 고무신은 아련한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물건이다. 그런데 지금 그 고무신이 부정선거의 상징, 청산해야 할 과거의 대명사로만 회자된다. 장순하 시인이 애틋하게 묘사한 그 시절 고무신에 얽힌 삶의 애환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안타깝다. 전쟁 이후 고단했던 서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시대의 상징물이다. 선거철이면 불쑥 불려나와 부정적 이미지로 덧칠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4.04.08 15:17

지금도 민주당이 대세

전북은 민주당 경선이 끝나면서 선거가 파장 분위기로 돌아섰다. 대다수 유권자가 민주당 공천을 받은 사람이 예전처럼 당선될 걸로 믿기 때문이다. 전주을에서 현역 2명과 민주당 이성윤 후보가 3파전을 치르지만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세는 이미 민주당 이 후보로 기울었다 게 중론이다. 지난해 재선거 때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아 진보당 강성희 후보가 어부지리(漁夫之利)했지만 이번에는 이재명 대표가 인재로 영입한 고창 출신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을 공천함에 따라 다른 후보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돼 버렸다. 왜 이같은 현상이 생겼을까. 그 이유는 윤석열 정권이 서울고검장까지 지낸 이 후보를 해임시키는 등 불이익을 줘 동정여론까지 더해지면서 민주당 1차 경선 때 53%로 공천권을 따냈다. 후보 등록 10일만에 신인 가점도 받지 않고 1차 경선 때 거뜬하게 공천권을 확보하자 별로 이 후보한테 관심 없던 유권자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스타로 떠올랐다. 견고해진 민주당 지지세 속에서 윤석열 정권과 대립각을 선두에서 세워온 이성윤 후보가 출마한 게 더 전북을 고립시키는 것 아니냐며 이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 새만금 잼버리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전북도에다가 몽땅 씌워 국가예산 삭감을 자행한 정부여당이 또다시 이성윤이라는 복병을 만나 전북도를 위하고 싶어도 그 반대로 갈 수가 있을 것 이라고 경계한다. 이같은 걱정에 이성윤 후보나 정동영 후보는 지금은 싸워야 할 때 라면서 검사독재정권을 종식하면 그간 불이익을 받아왔던 전북도도 확실하게 전북몫을 챙겨올 수 있을 것 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선거가 임박한 지금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현상이 태풍의 눈으로 작용, 벌써부터 그 결과에 관심이 높다. 조국혁신당에 갑작스럽게 표심이 결집한 것은 윤석열 정권으로부터 탄압받아 온 친문계인 조국 전 장관이 확실하게 윤 정권과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 동정 여론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특히 이재명 대표가 10개 혐의로 7개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만약 유죄 판결을 받을 때 그 대안으로 조국을 떠올리기 때문에 지지세가 급등한다. 2심까지 2년을 선고받은 조국이 대법에서 유죄로 확정되어 만약 국회의원직을 잃어도 조국은 하나의 밀알역할을 충실하게 했기 때문에 밀어줘야 한다는 유권자가 많다. 여기에 조 장관의 딸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해줬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상실한 남원 출신 최강욱 전의원과 전주병 경선 때 탈락한 황현선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지지한 후 조국혁신당 사무총장으로 가 있는 것도 지지세 증가의 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아무튼 친명인 김관영 지사는 전주을 정운천 후보를 통해 정부여당인 국힘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할려고 했지만 느닷없이 이성윤 후보가 출마한 바람에 셈법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4선의 조배숙 전 의원이 국힘 위성정당에서 12번을 배정받아 당선권에 진입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전북에서 민주당 10석 전석 싹쓸이가 독이 될지 아니면 약이 될지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4.04.07 16:56

인물론도 집어삼킨 총선 민심

국힘 정운천 후보를 바라보는 유권자 시선은 매우 복잡미묘하다. 사실 전북 입장에서 보면 그는 국회의원 한 명의 역할보다는 정부 여당의 소통 창구로 인식돼 왔다. 지난해 잼버리 사태와 새만금 보복 예산 국면에서 정부 여당에 대한 도민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전북 이익의 대변자인 야당 의원의 무능함이 노출되면서 상대적으로 그의 역할이 커진 것도 이런 연유다. 김관영 지사, 한병도 위원장과 함께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일조했다. 실제 그는 ‘용산’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백방으로 움직였다고 한다. 이처럼 여당 일꾼의 존재감을 보여줬던 정 후보 이지만 총선 민심을 뒤흔들고 있는 정권 심판론의 거센 기류 속에 고전하면서 '아픈 손가락' 처럼 동정론이 일고 있다. 민주당 텃밭인 전북에서 다른 정당의 깃발을 꽂기 위해 도전장을 내미는 것 자체가 무모해 보인다. 그만큼 특정 정당의 묻지마 투표 성향이 강한 곳이라 민주당 내부에서 조차 본선 보다는 경선을 승부처라 여기고 올인하는 추세다. 이 같이 ‘믿는 구석’ 이 있기에 출마 선언 10일 만에 정치 신인이 본선행 티켓을 거머쥘 정도로 지역 정서의 뿌리는 깊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은 여야 모두 무기력한 정치 행태에 극도의 불신감을 표출하며 대폭적인 물갈이를 갈망해왔다. 조국 혁신당의 비례대표 지지율이 높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근 위기 의식을 느낀 정 후보는 윤 대통령을 향해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국정 쇄신책을 요구하며 차가운 바닥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전북의 아픔과 분노를 모두 껴안겠다” 며 사죄 의미로 삭발 하고 함거 유세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여당 한 명이라도 전북에 꼭 필요한 사람을 선택해 달라” 며 지지를 호소했다. 정부 여당에 대한 반감 때문에 그동안 그가 전북 발전에 쏟은 열정과 성과가 묻힐 지라도 그 존재감만 큼은 부인키 어렵다. 특히 야당 일색인 지역 정치 구도에서 김관영 지사와의 협치는 민선 8기 전북 현안 해결의 지렛대 역할을 해왔다. 잼버리와 새만금 예산 투쟁, 전북특별자치도 출범 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해결사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지금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를 보면 그는 민주당 후보에게 오차 범위 밖으로 밀려나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첨예한 여야 신경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정권 심판론에 대한 지지층 결집이 가속화되며 좀처럼 반등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여당 일꾼이라는 인물론마저 맥을 못추면서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가운데 37개 시민사회단체가 정운천 지지 선언을 하고, 전북 교수 33인이 ‘묻지마 투표’ 선거 풍토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선거를 통해서만 정치를 바꿀 수 있기에 유권자의 안타까운 심정이 담겨 있는 듯 하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4.04.04 18:45

울지마 톤즈, 울지마 푸바오

족적(足跡)은 말 그대로 발이 걸어온 자취를 의미하는데 짧은 삶에 그친 사람도 뚜렷한 자취를 남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천수를 누리고도 훗날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다. 지위나 재산 여부를 떠나 그 사람에겐 따뜻한 삶의 향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흔히 에비타 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마리아 에바 두아르테 데 페론(1919∼1952). 그는 아르헨티나 페론의 두 번째 부인인데 1952년 33살때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영부인을 지냈다. 그의 이야기는 마돈나 주연의 영화에 등장한 노래 'Don't cry for me Argentina’로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에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리는데 영부인이 돼서도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잊지않고 늘 어려운 이들의 벗이 된 까닭에 별세한지 반세기가 지났으나 지금도 그에대한 추모열기는 뜨겁다. 의료대란으로 의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엄청 커졌다. 이때 떠오르는 영화 하나가 있으니 바로 ‘울지마 톤즈’(Don't cry for me Sudan)다. 이태석 신부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2010년 9월 9일에 개봉했다. 불과 48세의 나이로 영면한 그는 가히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할만했다.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의사가 돼 잘먹고 잘살수 있었으나 그는 아프리카에 뛰어들어 불꽃처럼 살다갔다. 세상과 하직한지 14년이 지났으나 이태석 신부가 남긴 메시지는 지금도 세상을 진동시킨다. 요즘 대한민국과 중국 최대의 화두는 바로 판다 푸바오. 강철원, 송영관 사육사가 푸바오를 애지중지 돌봐온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푸바오의 인기는 중국에서도 폭발 직전이다. 작년 여름 푸바오가 중국 현지 판다들을 제치고 인기 판다 순위 1위에 올랐다. 2016년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친선 도모의 상징으로 보내온 판다 사이에서 자연번식으로 2020년 7월 20일 태어났다. 국내에서 태어난 첫 자이언트 판다인 푸바오는 그간 에버랜드에서 생활하면서 '용인 푸씨'나 '푸뚠뚠' 등 애칭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협정에 따라 푸바오는 3일 수많은 팬들의 배웅을 받으며 전세기를 타고 중국 쓰촨성 자이언트판다 보전연구센터 워룽선수핑 기지로 갔다. 푸바오큰할부지 강철원 사육사와 작은할부지 송영관 사육사가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장면은 감동 그 자체였다. 동물에게도 성심을 다해 보살피는 이들 사육사들의 사랑과 열정이 울림을 준다. 갈등(葛藤)의 원래 의미는 칡과 등나무를 말한다. 칡은 왼쪽으로,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는 성질이 있기에 복잡하게 얽히는데,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이해관계 등이 맞물리면서 적대시하거나 충돌을 일으키는 것을 비유한다. 제22대 총선은 그 결과도 중요하지만 극단에 이른 갈등이 과연 어떤 식으로 봉합될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극단의 갈등 상황에 이른 요즘 톤즈와 푸바오처럼 시민들에게 가슴뭉클한 사연을 전해줄 이는 과연 없는 것인가.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4.04.03 15:20

대통령의 연설 혹은 담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정부의 연설비서관을 지냈던 강원국 씨는 청와대를 나온 뒤 ‘대통령의 글쓰기’를 책으로 펴냈다. 책 제목에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우는 사람을 움직이는 글쓰기 비법’이란 부제를 달았는데, 그 이유를 “두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과 8년 동안의 배움에 대한 감사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연설비서관은 대단한 식견과 글솜씨 재주가 빼어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 두 가지 능력을 다 갖춘 연설비서관은 오히려 좋은 연설문을 쓰지 못한단다. 대통령의 글이 아니라 자기 글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좋은 리더를 만난 덕분에 두 대통령의 분명한 생각을 옮기기만 하면 되었다’는 그는 문체까지도 그러했으니 글솜씨도 필요 없고 성실하게 말귀만 알아들으면 되었다고 했다. 사실 좋은 연설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두 대통령은 글의 수준도 빼어났다. 그러나 스타일은 달랐다. 김 대통령은 연설문 원고를 일일이 수정하고 다듬고, 고쳐서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녹음해 돌려주었다. 노 대통령은 직접 글을 쓴 사람을 만나 지적하고 수정하며, 좋은 생각이 나면 연설 직전까지도 다시 더했다. 이런 두 대통령 덕분에 강 비서관은 좋은 글쓰기의 비법을 얻게 됐다. 곧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쓰기 비법’이었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쉬운 말로, 가장 많은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비법의 중심은 배려와 공감이었다. 돌아보면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1863년>, 존 F. 케네디의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1963년>, 넬슨 만델라의 <자유를 향한 여정-1994> 등 역사 속에서 기억되고 있는 대통령들의 명연설이 적지 않다. 대부분이 시대적 상황을 직시하며 자신들의 철학을 담아 소통하고 감동을 전한 연설이다. 2008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의 첫 연설도 섬세하고 명쾌한 문장에 열정과 감동을 담아 미국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준 명연설로 평가받는다. 그 연설에 담겼던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는 이제 오바마의 상징이 되었다. 총선을 앞둔 지난 1일,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불러온 <의과대학 정원 정책>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담화가 있었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며 서로를 배려하고 공감하게 하는 연설을 기대했던 때문일까. 그 내용을 두고 여당과 야당의 다양한 해석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리더십을 연구한 미국의 정치학자 게리 윌스는 “훌륭한 지도자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효율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연설이 갖는 진정한 힘도 배려와 대화, 소통에 있음을 다시 깨닫게 된다./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4.04.02 14:51

‘구십춘광(九十春光)’⋯ 청년의 기준

하루하루 봄날이 가고 있다. 멋지고 화려한 날은 항상 짧다. 한창 물오른 인생의 봄도, 계절의 여왕 봄도 그래서 더 아쉽다. ‘구십춘광(九十春光)’이란 말이 있다. 구십일, 즉 석 달 동안의 화창한 봄빛을 일컫는 말로, 청나라의 시인 오석기(吳錫麒)의 시 ‘송춘(送春)’에 나오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는 아흔 살에도 봄빛처럼 활기찬 모습, 즉 노인의 마음이 청년 같음을 이르는 말로 의미가 확대됐다. 푸르른 봄을 뜻하는 ‘청춘(靑春)’은 곧 인생의 청년기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생동하는 인생의 봄, 청년은 과연 몇 살까지 일까? 최근 청년의 나이 기준을 놓고 지역사회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전북특별자치도가 공청회까지 열면서 이를 공론화했다. 사실 ‘청년’을 나이로 규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마땅한 잣대도 없다. 수명 연장의 시대, 청년의 연령 범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과거와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그런데 정부와 지자체가 다양한 청년정책을 추진하면서 법률과 조례를 통해 지원 대상을 나이로 규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래서 논란이 생겼다. 지역별, 연령대별로 상황과 입장이 크게 달라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다. 청년정책을 담은 각 법령과 자치법규마다 연령 기준이 제각각이다. 청년정책에 관한 기본사항을 규정한 ‘청년기본법’은 청년의 나이를 19세~34세로 정의해 놓고, 다른 법령과 조례에서 그 연령을 다르게 적용할 수 있도록 여지를 뒀다. 이러다보니 전국 각 지자체별로 조례에 규정된 청년의 기준 연령이 다르다. 정부와 지자체가 청년층의 지역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청년지원 정책을 강화하면서 인구위기 지역을 중심으로 조례 개정을 통해 청년의 연령 범위를 확대하는 추세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고, 수명이 늘어난 노인들로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농촌지역과 젊은층이 몰리는 대도시가 청년정책 지원 대상을 같은 잣대로 설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북지역의 경우 전주시가 청년의 연령을 18세~39세, 장수군은 15세~49세로 설정해 차이를 보인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생물학적 나이와는 거리가 있다. 100세 시대, 농어촌의 인구구조가 더 기형적으로 변화하면 조례상 청년의 나이는 지금보다 더 상향될 지도 모른다. 생애주기 구분에서 ‘신중년’이라는 용어도 새롭게 등장했다. 몇 년 전부터 사용된 이 정책용어가 이제는 낯설지 않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고, 재취업해 새로운 일을 하거나 새 일을 찾고 있는 50~60대의 과도기 세대를 지칭한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정부가 고용정책 대상을 확대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현재 65세로 정해져 있는 ‘노인’의 연령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러 측면에서 힘을 얻고 있다. 환갑잔치가 사라진 지 오래다. 정책적인 판단과 상관없이 인생의 봄인 청년의 기준을 예전처럼 20~30대로 한정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4.04.01 13:12

똑똑한 국회의원이 필요

이번 총선을 예전처럼 하나의 통과의례 정도로 여기면서 치르면 안 된다. 그 이유는 그간 지역정서에 매몰돼 민주당 일당 독주 체제를 만든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헤아려야 한다.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을 떼논 당상으로 여겨 항상 현역들은 공천권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충성을 다했다. 이런 식으로 가다 보니까 새만금사업은 30년 넘게 희망고문이 되었고 전국 꼴찌라는 낙후 꼬리표만 붙었다. 전북은 보수정권이 집권할 때는 표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재 등용은 물론 국가 예산을 배분할 때마다 지역 홀대를 가져왔고 DJ 노무현 문재인 진보 정권 때는 똑똑하고 야무진 국회의원들이 없어 자기 몫을 챙겨오지 못했다. 강원도는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KTX가 강릉까지 가는 바람에 서울 사람들의 놀이터로 뒤바뀌면서 상전벽해를 이뤘다. 여수는 엑스포 개최를 통해 관광도시로 변모, 밤마다 여수 밤바다를 읊조리며 소주를 마셔대는 바람에 돈방석에 앉았다. 청주와 청원군이 통합하면서 청주시가 청주공항을 통해 중부권 허브 역할을 톡톡하게 하면서 오송이 바이오산업의 중심지로 부각, 지역 발전을 선도한다. 전남은 신안군의 천사의섬 퍼플섬이 연륙교가 가설되면서 관광도시로 변했고 서해안 고속도로가 인천서 목포까지 뚫리면서 전남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이렇게 다른 지역이 발전한 것은 유능한 정치지도자들이 여야에 포진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부산의 경우 여야 국회의원들이 실컷 싸우다가도 지역 문제가 생기면 한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지역 발전을 가져올 수가 있었다. 전북은 그간 국회의원들이 말로만 원팀 운운했지 실제로는 각자도생하기에 급급했다. 좀 잘 나간다 싶으면 뒤에서 밀어주기는커녕 뒷다리 발목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지역 발전을 모색하기보다는 다음 공천을 받으려고 당 대표한테 충성 경쟁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지난해 정부여당이 잼버리 실패에 따른 모든 책임을 전북도에다가 똘똘 몰아쳐 씌우면서 전북도민의 자존심을 그렇게 짓밟아놨는데도 그 누구 하나 즉각 목에 방울 달고 윤석열 정권을 향해 싸운 적이 있었던가. 나중에 출향인사를 포함 애향운동본부 시민사회단체 등이 들고 일어서자 그때서야 국회의원들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궐기대회장서 삭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때도 똑같은 모습이 반복되었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국회로 넘긴 당초안에 전북 1석이 줄어든 것으로 돼 있어 도민들이 궐기하다시피 해서 현행대로 유지했던 것. 이 문제는 민주당에 말발이 제대로 선 전북 국회의원 한 명만 있어서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전북보다 인구감소가 많은 경남북과 전남은 아예 처음부터 손도 대지 않은 것에서 전북 국회의원의 무능함을 엿볼 수가 있었다. 선거 9일 남겨놓고 마치 선거가 끝난 것처럼 인식한 것은 잘못이다. 지금부터 각 당의 후보들을 꼼꼼하게 살펴서 누가 더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할 후보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여야가 공존하면서 경쟁하는 정치체제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전북 발전은 백년하청이 된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4.03.31 17:09

빛바랜 공로연수

퇴직을 앞둔 지방 공무원에게 사회적응 준비를 위해 도입된 공로연수제가 당초 취지를 무색하게 할 만큼 궤도이탈 함으로써 폐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주로 인사 적체 해소용으로 악용됨에 따라 ‘유통 기한’ 이 이미 지났다고 시선이 곱지 않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수십 억원의 세금 낭비, 다른 공무원과의 형평성 시비는 물론 ‘무노동 무임금’ 의 시대 흐름에도 역행한다는 것이다. 지난 1993년 첫 도입 당시와는 급격하게 달라진 사회 변화만큼 이 제도 운영도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초고령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상황에서 공무원의 정년 연장과 맞물려 존폐 여부도 도마에 올라 있다. 최근 우범기 전주시장이 이와 관련해 밝힌 개선 방향이 다시 쟁점을 소환했다. 그는 일단 월급을 받고도 무보직 쉬는 형태의 공로연수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우선 하반기 현행 1년 기간을 6개월로 단축하는 방안을 놓고 의견 수렴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만 60세 정정한 나이 일터를 떠나야한다는 당사자들의 마뜩찮은 반응과 함께 인사 적체가 심각한 상황에서 후배 길을 터 줘야 한다는 현실론도 무시 못한다. 이를 둘러싼 조직내 갈등은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한때는 공로 연수자를 위한 사무실이 별도로 마련돼 해외연수에 가족 동반 허용은 물론 경비 지원까지 서슴지 않아 ‘놀고 먹는’ 공직사회 부정 이미지를 덧칠하기도 했다. 사실 오래전부터 공로연수의 업그레이드 작업은 자치단체의 지속적인 노력를 통해 계속돼왔다. 비교적 변화 속도가 더딘 공직사회에 디지털 시대의 빠른 사회 흐름을 접목하기 위한 일환이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중앙정부 각 부처도 2000년대 중반 이후 공로연수를 폐지해왔다. 지방에선 처음으로 2022년 충남도청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내세워 전면 폐지 방침을 밝혔으나 공무원노조의 반발로 잠정 보류됐다. 그 대안으로 60세 정년은 지키되, 공로연수 희망자에 한해 연수를 실시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행자부도 2016년 본인의 동의를 받도록 인사 지침을 내린 바 있다. 공로연수는 별다른 법적 지위가 없는 만큼 자치단체장의 판단과 결정에 달려 있다. 최근 고령 인구가 급속히 늘면서 사회문제화 되자 노인 연령도 현행 65세에서 70세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이런 기류를 감안하면 무엇보다 공로연수 대상자와의 공감대가 먼저다. 실효성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사회적응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게 관건이다. 20년 이상 쌓아온 행정 경험을 통해 사회공헌 활동의 의미를 배가시키자는 뜻이다. 실제로 요즘 우리 주변에서 은퇴자들이 금융기관이나 공익단체에서 하루 3-4시간씩 파트타임 근무를 통해 민원 처리 도우미 역할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4.03.28 17:46

국회이전과 지역균형발전

중국 7대 고도는 난징, 뤄양, 베이징, 시안, 안양, 카이펑, 항저우를 꼽는데 흥미로운 것은 중국 역사 100년을 알고 싶으면 상하이에 가고, 1000년을 이해하려면 베이징에 가고, 3000년을 이해하려면 시안에 가라고 한다. 진시황릉으로 유명한 시안(장안), 현재 수도인 베이징, 국제금융상업도시인 상하이가 갖는 의미를 짐작케 한다. 일본의 경우 토쿄, 오사카, 교토 등이 명실공히 역사적 의미를 갖는 3대 도시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경주와 개경, 서울, 평양 등이 수도였는데 오늘날 수도 서울이 갖는 의미는 거의 절대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때 수도 이전이 거의 성사 단계에 이르렀으나 기득권층의 저항으로 인해 상상도 하지 못했던 ‘관습헌법’ 이라는 해괴한 논리가 등장,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세종시는 행정수도로서의 기능을 거의 갖춰가고 있는데 청와대나 국회, 정부 주요 부처가 아직도 서울에 있기 때문에 반쪽짜리 행정수도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공식 선거운동 개시를 하루 앞둔 27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를 세종으로 이전하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 여의도를 중심으로 한 서울의 개발 제한을 풀고, 세종을 정치행정도시로 완성하겠다는 거다. 서울의 개발욕구와 지역 균형발전에 목마른 충청권 표심을 얻기 위한 카드인데 파급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민주당은 대놓고 찬성도 반대도 하기 어려운 입장인데, 특이한 것은 조국 대표가 한동훈 위원장의 제안에 대해 찬성 입장을 피력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수도 이전도 진행해야 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조 대표는 "국회의사당 세종시 이전에 대해 찬성하고 여야가 합의해서 노 전 대통령 때 추진하다가 관습헌법으로 무산된 수도 이전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 각종 사법, 사정기관도 이전해야 한다고 한발 더 나갔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남아공은 여러 종족들이 합쳐 나라를 세운 관계로 입법, 사법, 행정 등 수도가 3개 있다"며 "세종시를 입법 수도로 하고 국회를 모두 이전하는 게 맞는 결정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참에 사법 수도도 대법원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게 국토균형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입법 수도, 사법 수도, 행정 수도를 각각 다른 곳에 두는 것은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검토해 볼만 하다"고 말했다. 정권심판과 야당심판이라는 정치적 구호만 있을뿐 정작 지역민들에게 필요한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대안제시가 전무했는데 선거 막바지 국회와 대법원 이전 문제 등이 어느 정도 휘발성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지역균형발전을 도외시한채 국가전체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한계에 와 있다는 거다. 식물의 생산량은 가장 소량으로 존재하는 무기성분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게 바로 리비히의 법칙(Liebig’s law)이다. 비단 식물의 생장에서 뿐 아니라 국가발전도 가장 취약하고 소량으로 존재하고 있는 임계 원소에 의해 달라진다. 전북이 바로 리비히가 말한 임계 원소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4.03.27 14:55

목욕탕과 빨래방

1990년대 후반,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으는 프로젝트가 무주에서 시작됐다. 10년여 동안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건축가 고 정기용(1945~2011)이 무주 일원에 30여 개의 공공건축물을 들여놓는 대장정 프로젝트였다. 새롭게 변신한 군청사를 비롯해 무주공설운동장의 등나무 관중석, 세상에서 가장 밝은 납골당이 자리한 추모의집, 천 원짜리 목욕탕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안성면사무소 등 각자의 역할이 빛나는 건축물이 무주 곳곳에 들어섰다. 공공건축물의 가치와 쓰임을 새롭게 보여주는 이 프로젝트 덕분에 무주는 한동안 전국 각 도시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찾아오는 도시가 되었다. 그중 가장 화제를 모았던 공간은 면사무소에 들어선 천 원짜리 목욕탕이었다. 면사무소에 공중목욕탕이 만들어진 뒷이야기가 있다. 무주군 읍면 사무소를 개선(?)하는 프로젝트의 첫 사업이었던 안성면사무소를 설계하면서 건축가 정기용은 주민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심드렁한 답이 돌아왔다. “면사무소는 뭐하러 새로 지어? 우리 필요한 것 해주려면 목욕탕이나 하나 지어줘” 당시 안성면에는 대중목욕탕이 없어 주민들은 대전까지 나가야 했다. 주민들을 위한 공간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정기용은 면사무소에 대중목욕탕 시설을 함께 설계했다. 천 원짜리 목욕탕, 하나의 공간으로 짝숫날에는 여탕, 홀숫날에는 남탕이 되는 단 하나밖에 없는 목욕탕은 그렇게 탄생했다. 2004년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20년, 지금도 주민들이 애용하는 이 목욕탕의 고객 대부분은 어김없이 노인들이다.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절반 이상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는 통계가 있다. 놀랍게도 2023년 10월 기준 자료에 따르면 광역시·도 중에서도 8곳이나 초고령사회로 진입해있다. 노인복지 대책이 더 절박해진 이유다. 그 때문인지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어진다. 눈에 띄는 소식이 있다. 농어촌 마을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들어서는 편의점과 빨래방의 행렬이다. 빨래방 사업은 2020년 강원도가 ‘공공 이불 빨래방’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뒤 확산된 사업이다. 최근에는 면장 관사에 빨래방과 편의점을 들여 화제가 된 곳이 있다. 충북 괴산군 감물면사무소다. <감물커뮤니티 편의점, 빨래방>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이 공간은 대형 코인 세탁기 1대와 건조기 1대, 운동화 세탁·건조기가 설치된 빨래방과 생필품을 파는 구멍가게가 주민들을 맞는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45%를 넘는 감물면 주민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물일터다. 전북의 자치단체도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직 우리 지역에서는 목욕탕과 빨래방 같은 실질적인 복지 대책이 들려오지 않는다. 과문한(?) 탓이면 좋겠다.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4.03.26 15:34

지방의 위기, 휘청이는 ‘서민의 발’

인구절벽 시대, 지방 도시의 대중교통 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지자체의 보조금으로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데 승객이 급감하니 더는 버틸 재간이 없을 것이다. 긴축재정 속에 허리띠를 졸라맨 지자체에서도 보조금 예산을 마냥 늘릴 수 없는 실정이다. ‘서민의 발’인 시내버스와 시외버스가 휘청이고 있는데 마땅한 대책이 없다. 최근 노사 임금협상이 결렬되면서 전주 시내버스가 또 멈춰섰다. 전주지역 버스파업은 지난 2010년 이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됐다. 지난해에는 전주시와 시의회, 노동조합, 5개 운수회사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주 시내버스 서비스 향상을 위한 노·사·정 공동협력’을 결의했다. 시민들의 기대가 컸다. 하지만 올해 또다시 부분파업이 발생하면서 그 기대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또 시내버스 노선개편과 지·간선제 확대, 마을버스 도입 등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한 전주시의 노력과 성과도 모두 의미를 잃게 됐다. 시내버스도 문제지만 사실 더 심각한 것은 시외버스다. 인구감소로 승객이 줄어든 판에 코로나19로 인해 주민의 활동반경이 좁아지면서 농어촌 지역 시외버스의 감축 운행과 노선 폐지가 이어졌다. 여기에 경영악화로 인해 아예 문을 닫는 시외버스 터미널도 속출했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때 속절없이 사라진 시외버스 노선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또다시 감축 운행과 노선 폐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전북지역 5개 시외버스 업체는 경영난을 감당할 수 없다며 적자 노선의 버스 운행을 대폭 줄이겠다는 내용의 휴업계획서를 전북특별자치도에 제출했다. 적자가 심한 152개 노선 170대의 버스를 5월 1일부터 운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중 코로나19로 인해 이미 116개 노선 108대는 운행이 중단된 상태다. 경영난에 시달린 지방 운수업체가 속속 노선을 감축하고, 이로 인해 대중교통 이용 환경이 더 열악해지면 주민들이 지역을 떠나고, 이 같은 현상이 다시 버스 감축 운행 및 노선 폐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농어촌 등 지방 소도시 주민들의 이동권은 갈수록 더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자체가 적자 노선을 유지하기 위해 투입하는 재정지원금도 한계가 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지방의 대중교통 체계가 무너질 판이다. 이런 판국에 정부는 얼마 전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노선 연장·신설 계획을 밝혔다. 또 최근에는 수도권의 총선 후보들이 GTX 노선 연장과 정차역 추가를 골자로 한 교통공약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이중 삼중으로 촘촘하게 구축되는 수도권 광역교통망은 결국 ‘수도권 1극 체제’ 강화로 이어질 게 뻔하다. 대한민국 소멸을 부를 수 있는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수도권이 아닌 지방 도시의 대중교통 인프라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국민의 이동권은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의 영역이다. 당연히 국가가 직접 챙겨야 하는 일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4.03.25 13:07

민주당 독주 언제 깨질까

다른 지역은 지금부터 본격선거전에 들어가는데 전북은 파장분위기다.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떼논 당상이나 다름 없어 본선거가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돼버렸기 때문이다. 유권자들 스스로가 후보들의 정책이나 공약을 비교해서 후보를 선택하기 보다는 당 보고 찍기 때문에 본선거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왜 이 같은 현상이 생겼을까. 지난 1988년 DJ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전북은 묻지도 따져보지도 않고 그를 일방적으로 지지했다. 각종 선거 때마다 지역주의가 대세를 이루면서 여야경쟁의 정치는 오간데 없고 민주당 일당독주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권이 집권하면서 인재등용과 국가예산 확보 때마다 차별이 심해졌다고 인식하면서 예전보다 더 민주당 색채가 강해졌다. 특히 지난해 잼버리대회 실패 책임을 전북도에다가 똘똘 몰아 씌운 후 국가예산을 대폭 삭감하자 더 집권여당에 반발이 커졌다. 이같은 정치적 요인 때문에 그 누구 할 것 없이 국민의힘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민주당 지지층이 두터워졌다. 그간 국힘 정운천 재선 비례대표의원이 전방위로 뛰어서 전라북도특자도를 출범시키는 등 나름대로 지역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불과 10일 선거운동해서 전주완산을 1차경선때 53%를 얻어 민주당 공천장을 쥔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이 나타나면서 표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인가점도 받지 않고 1차경선 때 당원과 시민들로부터 과반 득표를 올린 사실이 현재의 지지성향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이 후보의 고향이 고창이고 전주고 출신으로 잠깐 부장검사 때 전주지검에서 근무한 적은 있지만 지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가 그를 반 윤석열 정권의 선두에 서서 검사독재와 싸운 것을 높이 평가, 민주당 인재로 영입하면서 전국적인 인물로 급작스럽게 부각해 인지도가 직상승했다. 또 검사직에서 해임되면서 동정여론이 생겨 전주을 선거구에서도 입에서 입으로 순식간에 전파,경선승리를 가져왔던 것. 중앙일보가 지난 11∼12일 한국갤럽을 통해 전주을 18세 이상 남녀 유권자 5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힘 정운천 22% 민주 이성윤 47% 진보 강성희 12%로 나왔다. (조사방법 : 무선전화면접조사 100%, 그밖의 사항은 중앙여심위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 현역 2명이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정동영 이춘석 전의원을 포함 현역6명이 모두 친명으로 개딸들의 지지는 물론 일반시민들까지 가세해 더 지지세가 견고해졌다. 민주당 경선이 시작되기 전만해도 현재 전북정치권이 중앙정치무대에서 무기력하고 존재감이 약하다는 이유로 전체를 판갈이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셌지만 결국은 2명 물갈이로 그쳤다. 그 이유는 권리당원 50%를 포함시키는 경선에서 현직의원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현직들은 유급당원이 누구인지를 다 알고 도전자는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경선이 치러지기 때문에 오히려 경선탈락이 이상할 정도다. 모든 유권자가 전북발전을 염원하지만 민주당 한쪽날개로 날아가야할 기형적인 정치현상이 또 만들어 지게 되었다. 여야가 경쟁하는 정치가 언제나 만들어질지 걱정스럽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4.03.24 18:01

전주을 선거의 선택 기준

전북의 총선 열기는 다소 맥 빠진 느낌이다. 민주당 초강세 기류가 여전한 가운데 사실상 경선 통과가 당선 보증수표로 굳어진 인식 때문이다. 그런데 애초 전주을 선거구 만큼은 경선 못지않게 본선 대결에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현역 의원 2명이 버티는 3자 대진표가 일찌감치 예상되면서 일방적 승리를 장담키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성윤 민주당 후보가 뛰어들면서 국민의힘 정운천, 진보당 강성희 후보와의 빅매치가 성사됐다. 무엇보다 경선을 불과 10일 앞두고 출마 선언한 이 후보가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정치 신인이란 점이 본선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물론 경선 후폭풍이 예상된 지역에서 이 후보가 전국적 지명도를 앞세워 단시일내 혼란 상황을 수습함에 따라 일단 연착륙엔 성공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바닥 민심에 공들였다가 하루아침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본’ 낙천자들의 속내가 궁금하다. 그동안 전개된 경선 양상이 치열한 데다 여기에 뛰어든 후보 또한 후일 도모가 쉽지 않아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관심사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구가 지난 2020년 총선 후유증으로 계파색이 나뉘고 사고지구당으로 온갖 악순환에 시달려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총선 이전부터 본선 전망이 만만치 않다는 관측이 많아 결국은 이 후보를 끌어들인 배경이 됐다. 돌이켜 보면 정치권에서도 10개 선거구 중 이곳을 제외한 지역은 민주당 후보의 강세를 점쳐왔다. 중앙당 공관위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본선 인물 경쟁력이 승부의 관건이란 판단 아래 막바지 전략 경선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한때 전략 지역구로 지정돼 전략 공천설이 무성했던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부정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자칫 역풍을 불러 악재로 작용할 것을 우려해 급선회했다. 처음엔 예비후보 등록도 안 된 이성윤, 김윤태 등 5인 경선을 발표했다가 뒤늦게 고종윤 후보를 대신 끼워 넣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고검장 출신 이 후보에게 신인 가점 20%를 부여하자 “명백한 특혜” 라고 반발했지만, 지방 의원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그에게 과반 넘는 득표를 허용함으로써 논란은 가라앉았다. 이제 공은 유권자에게 넘어왔다. 그동안 뇌관으로 꼽힌 민주당 경선이 끝나고 후보 등록이 시작되면서 본선 무대가 열렸다. 유권자 입장에서도 과거 민주당 일색의 선거 판도와는 달리 정당이 다른 현역 의원 2명이 출사표를 던진 상황에서 선택의 결과가 주목을 끈다. 뿌리 깊은 지역 정서에 얽매이지 않는 문자 그대로 여야 인물 대결이라 더욱 그렇다. 지난해 잼버리 사태와 새만금 예산 투쟁을 통해 지켜본 국회의원 역할과 무게를 인지한 터라 표심 변화가 궁금해진다. 정권 심판론을 강조하는 야당에 힘을 실어주느냐, 지역 발전의 실리 면에서 여당 일꾼을 뽑느냐도 초미 관심사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4.03.21 18:55

오홍근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2022년 3월 9일. 서울대병원에서 79세를 일기로 한사람이 별세했다. 개인에게는 삶을 마감하는 순간이었으나 어느 누구도 고인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의 묘비에는 “한으로,불꽃으로 살았다”는 문구가 새겨졌다. 으레 그렇듯 그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져갔다. 한세대는 가고 또 한세대는 오는게 세상의 이치 아니던가. 세상과 하직한지 약 2년 뒤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은 김제 출신 언론인 오홍근을 다시 불러냈다. 황 수석은 지난 14일 기자들과 오찬 도중 "MBC는 잘 들어"라면서 정보사 테러사건을 언급했다. 1988년 8월 어느날 아침,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이었던 오홍근 기자가 자신의 집 앞에서 괴한들로부터 습격을 당한 일을 말한다. 회칼을 사용한 공격에 오 기자는 허벅지가 깊이 4㎝, 길이 30㎝ 이상 찢길 정도로 크게 다쳤다. 괴한들은 군 정보사령부 소속 현역 군인들로, 군을 비판하는 오 기자의 칼럼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에 불만을 품은 이들의 준동이었다. 황 수석의 발언이 보도되자 여론이 들끓었고, 집권여당내에서도 초대형 총선 악재라는데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자진사퇴 형식으로 봉합했다. 오홍근씨는 1942년 김제시에서 태어나 전주고, 고려대를 졸업했다. 1968년 TBC 보도국 기자로 입사했으나 1980년 언론통폐합때 TBC가 강제 통폐합되자 중앙일보로 이적해 사회부장, 부국장, 판매본부장 등을 거쳤다. 발행 부수를 기준으로 '조동중'으로 불리던 상황에서 지금처럼 '조중동'으로 정착된 것이 오홍근의 중앙일보 판매 담당자 시절 업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1999년 5월 국민의 정부 초대 국정홍보처장으로 임명되며 공직에 입문한 그는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 겸 대변인,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등도 지냈다. 필자가 오홍근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무렵이었다. 직선적이면서도 솔직담백한 이미지가 강했던 그는 회식자리 등에서 자신의 언론인 시절 에피소드 등을 자주 언급하곤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때 전주 출마를 준비했으나, 우여곡절끝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김제시·완주군 지역구에 출마했다. 정치운이 없었는지 생각지도 않았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터졌고, 그는 열린우리당 최규성, 무소속 이건식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했다. 절치부심하다 2009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이무영 의원의 선거법 위반으로 공석이 된 전주시 완산구 갑에 무소속 출마했으나, 막판에 역시 무소속으로 나온 신건 후보를 지지하면서 사퇴했다. 묘하게도 필화사건을 겪었던 오홍근을 소환한 황상무는 설화사건으로 낙마했다. 중국 오대십국 시대 후당에서 재상을 지낸 풍도는 처세술을 묻자 설시(舌詩)에서 이렇게 답했다. “입은 재앙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처해 있는 곳마다 몸이 편하다” 정말 어려운 게 바로 설(舌)인 모양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4.03.20 13:32

갈 길 먼 '배리어프리'

‘손으로 보는 졸업앨범(?)’을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쯤이다. 서울의 디자인플라자가 개관 1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 <함께 36.5 디자인>이라 이름 붙인 전시에서였다. ‘공존’과 ‘공생’, ‘공진’을 주제로 한 전시회는 ‘달라서 아름답고, 함께 해서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화이부동의 장’이라 내세운 취지를 다양한 기획으로 살려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빛났던 전시는 국립서울맹아학교 학생들을 위해 기획한 ‘손으로 보는 졸업앨범’이었다. 앨범은 졸업하는 아이들의 사진을 3D 프린터로 제작한 것이었다. 3D 프린터는 2D 프린터가 활자나 그림을 인쇄하듯이 입력한 도면을 3차원의 입체물로 만들어내는 기계다. 기획자들은 3D 프린터로 맹아학교 졸업생들의 사진을 입체물로 만들어 전시했다. 아이들은 처음 만져보는 친구들의 얼굴을 신기해하며 ‘내 친구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놀라고 즐거워했단다. 다름을 존중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세상을 향한 특별한 졸업앨범이 관객들에게 전한 감동과 깨우침은 컸다. ‘배리어프리(barrier-free)’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배리어프리는 장애인과 고령자, 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생활에 지장이 되는 물리적인 장애물이나 심리적인 장벽을 없앤다는 뜻이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베리어프리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이어지고 있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누릴 수 있는 무장애 공연과 전시가 그 결실이다. 지난해에는 전주국제영화제와 전주세계소리축제도 배리어프리 행렬에 참여했다. 전주영화제는 수상작 세 편을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제작해 주목을 끌었고, 소리축제는 <오셀로와 이아고>로 배리어프리 프로그램을 처음 선보였다. 무장애 무용극, 무경계 락페스티벌, 손과 귀로 감상하는 미술관 등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문화예술 무대도 넓어지고 있다.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지난 2003년에 시작해 올해로 22회를 맞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위기에 처했다. 영화제를 지원해왔던 서울시가 지원금을 전액 삭감하면서 영화제 개최가 어려워진 탓이다. 장애인들의 축제로 자리 잡은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4년 전부터 서울시의 예산을 받아 영화제 상영작 전체를 배리어프리로 제작해 상영해왔다. 그러나 서울시의 예산지원이 끊기면서 올해 영화제는 배리어프리 제작을 비롯해 전반적인 프로그램을 축소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영화제를 유지할 계획이라지만 영화제의 위축은 불가피해 보인다. 장애인들의 축제로 자리 잡고서도 자치단체의 외면으로 위기에 처한 장애인인권영화제의 현실. 배리어프리가 확산되고 있다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러준다./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4.03.19 19:32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