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ews
손으로는 열 수 없는 문 안으로 잠긴 문도 한 숨결로 여는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 것일까 집집마다 문밖을 나서면 철모를 쓰고, 첨단 번호표를 단 수문장이 밤낮으로 철벽을 두르는데 숯덩이 된 가마솥 심술보 들끓는 한중막 문들은 강철 빗장 가로질러 성벽이 따로 없으리 그리다 미워하다 붉어진 가슴은 밀치고 당기는 고무줄 끝 뒤돌아 서 가슴 비우니, 그들은 한낱 티끌 저 작은 볼우물에 피어나는 맑음 한 송이 그 빛 한줄기에 성벽도 철벽도 한 숨결에 다 무너져 내리고야 만다 △ 미소처럼 큰 무기는 없다. 정말 그렇다. 상대방의 미소는 “철벽”같은 사람도, “가마솥 심술보” 같은 사람도, “들끓는 한증막” 같은 사람도 일시에 무장 해제시킨다. 미소는 “안으로 잠”겨 “손으로는 열 수 없”다. “작은 볼우물에 피어나는” 미소를 보려면 우선“가슴 비우”는 일이 먼저다. 비우고 마주하는 미소는 “성벽”도 “철벽”도 “한 숨결에” 무너뜨리는 것이다. 오늘은 서운했던 사람을 찾아 마음 비우고 미소로 화해해야겠다. <김제김영>
변기 막힐 때 뚫어펑 세제 넣고 기다리면 시원하게 뚫린다 배탈 났을 때 소화제 한 알 먹고 기다리면 금방 낫는다 마음이 답답할 때 오징어 듬뿍 넣은 엄마표 김치전 한 장 먹으면 스르르 풀린다 △ 모든 병에는 반드시 병을 고치는 약이 있다. 심지어 옛날엔 ‘공갈 염소똥’도 ‘배 아플 때 먹는 약’이라는 노래도 있었다. 막히고 답답한 것들은 뚫어주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혹은 증세에 따라 적절한 약 내지는 치료요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세상에는 약으로 치료하지 못하는 병증들도 있다. 사람이나 자연이 치료할 수 있는 병증이기 때문이다. 미열엔 이마에 서늘하게 올려주는 ‘엄마 손’이고 배가 아플 땐 배를 살살 쓸어내려 주는 ‘엄마 손’이 ‘약손’이다. 그 중엔 “마음이 답답”한 병증은 “오징어 듬뿍 넣은/엄마표 김치전”이다. 식약동원, 음식과 약의 근원이 같다는 말 생각난다. <김제김영>
씨를 뿌리는 것은 양이요 씨를 받는 것은 음이지만 양, 음의 조화로 생명이 존재하듯 음은 양을 위해 섬김의 대상으로 음덕을 쌓으며 희생함으로써 헌신의 깨달음 속 지혜 뿌리 깊은 나무 되어 꽃이 피고 열매 맺듯 음의 기운이 서서히 승천할… △ 세상 모든 것은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졌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지만, 잘 살펴보면 식물과 동물 그리고 무생물까지도 음과 양이 함께여야 비로소 완성된다. 한 사람의 말에도 음과 양이 함께 들어있고, 같은 행동도 음과 양의 경우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시인이 쓰는 시 속의 단어도 음과 양이 어울려 들어있다. 더는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말을 인간 자체의 높낮이나 귀천으로 해석하지 마라. 남자 속에도 음과 양이 있고, 하늘에도 음과 양이 있고, 세상에는 음이나 양 하나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없다. 심지어 하나의 나사 속에도 음과 양이 동시에 들어있다. 음과 양은 생존이나 번식을 위해 상보하고 상극하는 시스템일 뿐이다. /김제김영>
해 뜨듯 아침에 당신이 뜬다 초록같이 그리움 물결치는 온전한 갈망 사랑 그 후 내가 아니라 내 안에 당신이 산다. 사랑은 아침에 뜨는 태양이고, 사랑은 온종일 물결치는 초록같은 그리움이었다. 사랑하는 일이 하루를 만들고 사랑하는 일이 화자의 삶을 끌고 다니는 매혹적인 신호등이다. ‘사랑 그 후’ 화자는 내가 나를 행동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당신이’ 살고 있음을 안다. 사랑은 나를 지배하고 사랑은 나의 기쁨이며 온전한 내가 거울 속 나였다. 그 사랑의 뜨거움을 아는가. 사랑은 사랑을 해 본 사람만이 느끼는 행복이다./ 이소애 시인
감을수록 더 아른거리는 법 닿을 듯 닿을 듯 손닿지 않는 등 뒤가 더욱, 안타까운 법 잎 가버린 뒤 번쩍 피는 일주문 밖 상사화 감았던 눈 다시 뜨는 것이다 그만 잊자, 부릅뜨는 것이다 떨군 고개 들어 목젖에 걸린 낮달을 삼키는 돌탑 뒤 저 사미니 눈물 감추는 게 아니다 어룽어룽 자꾸만 따라붙는 그림자 산문 밖으로 밀어내는 거다 눈 감으면 다시 또렷해 위봉사 목어는 스스로 제 눈꺼풀 잘라버렸다 △ 슬프다. 괴롭다. ‘돌탑 뒤 저 사미니처럼’ 삶의 갈등을 경험한 시인은 처절한 외로움을 알 것이다. ‘일주문 밖 상사화’가 ‘목어’를 두드린다. 목어는 ‘사미니’의 흔들리는 마음에 혼침을 경책하는 것일까? 속을 비운 목어가 낮달을 삼킬 때 물고기가 바람을 붙잡고 소리를 낼 것이다. 사미니의 얼굴에서 눈물이 소리를 내면 목어는 막대기로 가슴을 때린다지요. 상사화 꽃잎처럼 속세와의 이별은 고요한 기쁨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소애 시인
시냇물 속에 누가 별빛 한 점 내걸었다 바람이 닦아 놨을 잔물결 소리 만지작거리며 별은 반짝반짝 빛난다 시냇물은 오래된 기억일수록 더 맑게 닦아 놓는다 지푸라기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또옥똑 떨어지는 짚시랑물을 손바닥에 받아내던 가시내 눈알 속에도 저렇게 별이 반짝였다 뒷머리 갈래 내어 참새 꽁지같이 묶어서 목선이 더 가늘어진 별 시냇물 속 깊숙한 데서 쌀알처럼 빛난다 △ ‘짚시랑물’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뒷머리 갈래 내어 참새 꽁지같이 묶’었던 친구와 담장너머 남학생을 훔쳐보는 재미로 널뛰던 생각이 손등의 잔주름처럼 잡힌다. 비가 오면 대야, 옴박지, 수대를 처마 밑에 놓고 낙숫물 받아서 빨래를 했던 어린 시절. 반짝이는 별이 너무 보고 싶어서 은하수를 건너는 고난과 시련으로 옛 동무를 불러내는 시다. ‘시냇물은 오래된 기억일수록/맑게 닦아 놓는다’고 하는데 물결만 보이고 기억이 가슴에 ‘또옥똑’ 떨어진다./ 이소애 시인
세 손가락으로 너를 세우면 내 뜻 흘러들어 곧게 네 까만 몸짓이 된다 생각하므로 글이 되는 너의 행적은 인류의 표의와 표음 검은 심으로 붉은 사랑도 그려낸다 인류가 읊는 모든 경은 우주란 백지에 달려나간 너의 행적 신화에서 달빛까지 긴 여정을 몽당의 네 처절한 몸부림으로 가라 혀 끝 서로 닿아서 더 또렷해지는 진실 또는 사랑 △ 연필은 검은 심을 품고 있습니다. 연필이 품은 검은 심은 연필의 “몸짓”입니다. 또한 “우주라는 백지에 달려 나간” “행적”도 됩니다. 몽땅한 몸이 될 때까지 연필은 “백지”에 “신화”며 “달빛”을 “처절한 몸부림”으로 갈 것입니다. 우리가 가끔 연필심에 침을 바르는 행위는 연필의 “더 또렷해지는 진실”에 힘을 보태는 일입니다. 필통에 꽂혀있는 연필은 영락없이 무기처럼 보입니다. 연필이 칼보다 강한 이유는 연필의 이런 모습 때문일 겁니다. 제 몸 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연필은 품고 있는 심을 놓치지 않습니다./ 김제 김영
어린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남원에서도 얼마를 덜컹거리며 올라야 하는 여원재, 올라서야만 겨우 닿았던 나의 집 떠나는 이에게 잠깐 기다려줄 수 없냐고 묻지 않았고 길게도 울먹이던 편지에 한 줄 답장도 안 했고 장마로 전주천이 넘실댈 때나 겨우, 그이를 길게 생각하는 우두거니가 되었다 나이 들어 영업을 접었을 때 무너지는 담장 밑에서 뽑아버려야 했던 늙은 향나무 덩달아 고향으로 보내버린 누렁이 나 시 쓰기 잘했다 미안해 미안해 쓸 수 있어서 낮아진 산능선이 너머 고향 친구 찾아가리라. △ 삶의 굴곡에서 마음을 흔드는 양심의 파토스가 깔린 아름다운 시다. 맑은 계곡물에 단픙 든 낙엽의 가난하고 슬픈 생의 물결 소리 같다. 폭풍과 폭우를 견디어 온 사시나무가 눈물로 엮은 사연이다. 참회하는 기도였다. 시를 쓰려고 기억을 더듬어 본 화자는 ‘미안해 미안해’만 방황하는 고뇌가 뇌리를 스쳐갈 뿐이다. 사랑의 색이 미안함으로 고스란히 묻어나는 시인의 고백이다./이소애 시인
무성한 미루나무에 앉았던 참새는 벌레를 많이 잡았을까, 짹짹 우는 법은 어디서 배웠을까, 한때 목청을 높인 적 있다 먹히지 않으려고 더 먹으려고 고래고래 핏대를 세우다가 나동그라진 적 있다 왜 이리 춥냐, 잎 다 떨군 미루나무가 윙윙 운다 왜 이렇게 어둡냐, 웅얼웅얼 혼잣말하며 세상이 점점 추워진다 미루나무에 앉았던 참새 어디로 갔나 핏대 세우던 나는 또 어디로 갔나 △ 겨울의 시작이다. 동물들이 땅속에 굴을 파고 숨는다는 입동이다. 김장 담글 걱정하는 주부처럼 미루나무도 성큼 추워지는 날씨에 참새 걱정하다니. 춥고, 밤은 길고, 미루나무도 인간이 견디어 내야 할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그림처럼 그려냈다. 어울려야 산다는 생의 모습 같다. 살기 위해서 짹짹 우는 참새에게 말을 건네는 나무는 입동이 걱정을 만든다. 걱정이 나를 끌고 허공을 헤멘다. 나무의 포용력에서 인간이 본받아야 할 함께 살아가는 풍경이 보인다./ 이소애 시인
여든 할머니처럼 구부러져 있는 내 고향 8월이면 뽀얗게 분 바르고 피어나는 간지럼 나무꽃 연분홍 흐드러진 사연 구슬프다 간밤에 떨군 꽃잎마다 다홍치마 손질하고 있다 꽃등 밝히고 떠나간 것들 그리워서 대쪽 같은 우리 사랑 쳐다보고 있을지 몰라서 사랑 그 꽃, 석 달 열흘 밝혔다 누군가는 아주 차갑게 누군가는 아주 뜨겁게 피고 지는 일상에서 나는 누굴 기다리며 이 밤 꽃등 들고 있는가 어디서 왔는지 조용히 앉아 산기를 겪고 있는 그림 하나 후련하게 만나지 못한 당신과 나의 후렴구처럼 다가온다 △ 간지럼나무꽃은 배롱나무꽃이다. 시적 화자의 고향에 피는 배롱나무꽃은 “떠나간 것들 그리워서” “대쪽 같은 우리 사랑 쳐다보고 있을지 몰라서” “여든 할머니처럼 구부러”진 몸뚱이에 “뽀얗게 분 바르고” 꽃 피워낸다. “석 달 열흘” 피어나는 저 꽃을 백일홍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백일’이라는 말은 ‘끝없다’라는 말, ‘백일’이라는 말은 ‘영원하다’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당신과 나의 후렴구”라는 말은 몇 절을 불러도 다시 돌아오는 곡조다. “배롱나무 전설”은 그래서 끝없고 영원한 기다림의 노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제김영>
훈훈한 땀 냄새 손녀의 미소가 가벼워진 볼에 안긴다 이마에 매달린 촉촉한 땀방울 매서운 꾸지람으로 찔끔거리는 눈물도 있다 나목의 숲 깊숙이 안긴 햇살의 온기 바람은 나뭇가지를 비벼대며 그리움을 흔들고 주름을 포개 논 나이테의 종알거리는 소리 의연한 그 자리에 기운찬 숨소리 운장산 서봉에서 구봉산에 남긴 흔적 하늘과 땅의 경계를 그으며 산 새소리 부스럭거리는 생명의 고요함을 보듬고 환상의 꿈을 기억하는 모반의 산그리메 아련히 찾아오는 신선의 기운 살랑대는 내 그림자를 밟을 수 있었다 △ 열심히 달려온 나를 위로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산에 오르는 일, 손녀의 미소를 보는 일, 머릿결을 씻어주는 바람, 나무가 하는 말을 듣는 일, “내 그림자를 밟”으며 하산하는 일, 산그늘에 조용히 앉아있으면“아련히 찾아오는 신선의” 느낌, 이런 것들이 쉬지 않고 달려온 나를 조용히 위로해주는 것들이다. 더는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 더는 애쓰지 않아도 충분하다. 지나온 삶의 모든 순간이 치열했으니 이젠 산그늘 아래 앉아 나무의 “나이테 종알거리는 소리”에 위로받을 시간이다. /김제김영
이끼서린 기왓골은 말씀이 없어도 숱한 세월 잉태를 하고 있는 언어들 켜켜이 쌓이고 쌓인 그 내력이 속 깊다 드높은 용마루를 마주하고 섰노니 어디서 나는지 밭은기침 호령소리 앗 뜨거, 제물에 놀라 주눅 든 듯 뒷걸음 △ 오래된 기와집을 보는 시적 자아는 “말씀이 없”는 기왓골에서 한 말씀 듣는다. 오래된 기와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말씀은 없어도” “어디서 나는지 밭은기침 호령소리”가 들린다. 시적 화자는 “제물에 놀라 주눅 든 듯 뒷걸음”을 놓는다. 유유자적하며 사는 산촌 생활은 자칫하면 겉멋이나 나태가 스며들 수도 있다. 아무리 잡아매도 마음의 끈은 성글어질 수도 있다. 이런 시적 화자의 마음 상태를 다잡는 도구는 가르치려는 스승도 아니고 쏟아져나오는 종교적 사설도 아니다. 동네의 고택이 용마루를 높이하고 떠받들고 있는 낡은 기와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 힘이 세다.<김제김영>
신문을 본다 '20. 3 입원하면서 끊었던 전북일보 오늘 아침 5년 만에 받아본다 캄캄하던 사회, 문화에 눈을 떴다 지역 신문은 지역 곳곳을 바라보는 눈 지역 구석구석을 흐르는 물결 모처럼 보는 눈도 생각하는 마음도 떠오르는 아침 햇살처럼 환하다. △ 음악방송을 틀어놓고 아침 신문을 펼치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번번이 행복하다.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나 필자도 아침에 배달된 종이 신문을 읽는 일로 시작하는 하루를 끝까지 고집하려고 한다. 신문의 잉크 냄새만큼 아침의 뇌를 자극하는 기제가 있을까? 지역 신문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는다. “지역 곳곳을 바라보고", “지역 구석구석을 흐르는 물결”이다. 곰곰 생각하고 되짚어보며 신문의 활자를 읽는 일, 나를 위한 일이고 지역을 위한 일이고 인류를 위한 일이다. 병마와 싸워 이긴 김기화 시인도 아프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확신을 아침마다 전북일보를 펼쳐 들면서 날마다 새롭게 받을 것이다./ 김영 시인
온종일 생각해 봐도 내가 누군지 거울 속, 너 낯설다 △ 생각 속의 “나”는 곧 자신의 마음을 향해 소리 없는 침묵의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나” 아닌 나로 변화 되어간다는 의구심이 자꾸만 괴롭힐 때가 있다. 나의 영혼까지 훔쳐 가는 생각이 나와 충돌하는 순간 나의 존재는 그리다 만 인물화 같다. 어깨는 반듯하게, 등 구부린 등허리를 곧추세우면 2족 보행이 힘들어질 때, 깡충깡충 뛰는 비둘기가 부럽다. “거울 속”의 나는 샘솟듯 솟아오르는 청춘이 생각에서 말을 건네는 “나”임에 분명하다./ 이소애 시인
파란 무대 위 갈매기들 하늘의 음계에 따라 춤춘다 날개로 바다를 짚고 물 머금어 하늘에 뿌리는 무지개 춤 바다와 하늘 사이에 선, 선을 곱게 이어주는 무변의 춤, 춘다 주머니가 없어도 좋은 생의 춤 속세를 벗는 맑은 춤 보고 있다 △ “선유도 갈매기 춤”은 그냥 허공을 나르는 이동 행위가 아니다. 바닷바람이 허공에 줄을 긋고 음표를 올려놓으면 갈매기는 음표의 높낮이에 날개를 저으며 파도 소리를 만들었다. 갈매기가 파도에 춤을 추는 “선”은 바다와 하늘의 공간적 의미를 준다. 시적인 소리의 의미는 춤을, 춤은 파도를, 파도는 갈매기의 날개를 오선에 올려 놓는 힘을 가져서 무변의 춤을 춘다. 춤은 인간이 가장 기쁨을 표현하는 자유의 묘사처럼 갈매기도 그렇다./ 이소애 시인
우리 동네 울타리에 장미 일곱 송이 피었다 꼭 우리 가족 같다 나는 무슨 꽃일까 잔잔하게 피어있는 수선화처럼 마음 넉넉한 이쁜 꽃이고 싶다 봄 소풍날 튀지 않아도 목청 돋구어 노래 부르지 않아도 뒷좌석에 앉아 손뼉만 쳐도 우리 반 꽃으로 피어나 교실마다 피는 꽃으로 채울 수 있는 꽃이 되고 싶다. △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꽃은 사랑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두운 곳에서 빛을 내어주며 우리 모두의 가슴에 꽃향기가 스며드는 꽃이 사랑꽃이다. 꽃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꽃은 눈물을 닦아주고 외로운 텃밭에 아무렇게나, 밟혀도 다시 고개 드는 생명력으로 꽃으로 불러주기를 감사하는 꽃, 그런 꽃이 사랑꽃이다. 시인은 스스로 자화상을 꽃밭에 심고 있다. 조용히 그러나 바삐 봉사하는 옷자락이 꽃으로 피어나는 시적 묘사가 아름다운 동시를 엮었다./ 이소애 시인
올해도 가녀린 몸 계절 내내 거기 서서 벌 나비 구름 길 바쁜 가맛바람까지 동그란 노란 방석에 불러 앉혀 작디작은 도리 뱅뱅이 하얀 꽃을 별 무리처럼 촘촘 그리워 그 시절이 그리워라 이 꽃 한 움큼 따다 이 꽃 한 움큼 따다가 두 눈 감고 기억 언저리에 두면 잊히려나. △ 마음이 너그러울 땐 지상의 별처럼 보이는 꽃이다. 상처를 받아 섭섭함에 젖어 있을 때 망초꽃은 단숨에 꺾어버리고 싶어진다. 발에 밟혀도 꿈쩍없이 죽어버리는 꽃이다. 흔하디흔한 기찻길 철로 변에 핀 꽃은 기차 바퀴 소리에 춤을 추기도 한다. 과거를 슬퍼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얗다. 그러니까 별처럼 햇볕에 반짝인다. 망초꽃은 불러만 주어도 잊지 않고 또 그 자리에서 피어난다. 울타리 밖 그늘에서도 피는 꽃이다./ 이소애 시인
펄펄 끓는 물에 투척된다 금세 몸이 녹아 유들유들해진 순간 사정없이 엉겨 붙어 속살을 부빈다 터져버릴 것 같은 뜨거운 열정의 시간도 잠시 전라全裸로 깨워진 나는 붉은 옷을 입는다 △ 시인의 용감하고 유혹적인 마음이 따뜻하고 다감하게 다가와 감동을 준다. “투척”되는 국수의 절묘한 시적 진술이 잠잠했던 생각에 충격을 준다. 배가 고파서 먹고 싶은 “비빔국수”가 “전라로 깨워진” 여인으로 형상화 되다니 두근거리며 국수를 맞이해야겠다. 뭉클했던 찰나의 감정을 가다듬고 “터져버릴” 불꽃 같은 열정을 한 대접 담아두어야 하지 않을까. 애초에 “투척된다”는 국수의 “끓는 물”은 사랑과 미움이 엉켜있는 뜨거운 심장과 같지 않을까. 섣부른 독백을 해본다./ 이소애 시인
그것은 그러니까 어제의 일 시를 써 놓은 쪽지를 잃어버렸네 옛사랑이 다시 올 것 같은 그런 밤에 그래, 그렇지, 죽은 나무에 말이지 새 떼가 잠시 앉았다 간, 조문한 자리에 모래 위에 진흙 위에 파피루스에 암호처럼 쓴 시 혀끝에 쓰다만 시 시는 시에 대해 시를, 이야기하네 이제, 그만 악수를 하는 게 어떤가 하고 악수 끝에 무슨 협상이라도 할 것처럼 녹이 슨 무기처럼 한 발의 총탄도 쏘지 못할 거면서 쓰다가 버려진 시에 대해 △ 삶과 사유, 관계, 모든 것들은 과정일 뿐, 완성이 없다. “무슨 협상이라도 할 것처럼” 적당한 선에서 악수를 한다해도 완성은 없다. “쓰다가 버려진 시”도 “녹이 슨 무기처럼” 누구에게도 정의나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 “쓰다 버린 시”로는 새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 그러니 고목이 전 생애를 거쳐 완성한 한 편의 시를 우리는 정독할 의무가 있다. 생의 모든 과정을 거친 나무가 마침내 내리긋는 필생의 한 획을 우리는 우러러야 한다./ 김제 김영
[사설] 전북은행장, 지역이해도 높은 내부 발탁을
[오목대] 우물안 개구리(井底之蛙)
[전북칼럼] 인재가 나오지 않는 전라북도
ESG시대, 대학의 길을 묻다
[사설] 새만금 활성화, 복합리조트 유치 적극 나서야
[열린광장] 집행부와 치열한 논쟁과 협력이 군민을 위한 길
[딱따구리] 불법을 감내하라는 익산시의회
사람과 자연이 조화 이루는 삶을 꿈꾸며
[오목대] 노인일자리 사업의 방향
[사설] PC방 가장한 불법 게임장 뿌리뽑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