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2-22 11:26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새 아침을 여는 시

[새 아침을 여는 시] 은행나무 골목-송영상

기차 정거장 대합실에 앉아 가는 사람 쳐다보고 오는 사람 쳐다보는데 가슴으로 젖어오는 바람소리 엊그제 같은 그 옛날 점심때를 알리는 소방서 오포 소리 그립다. - 저 풍남동 은행나무 골목에요 - 지금은 한옥마을 문턱입니다 아! 저기 저 집이 나 살던 옛집인데 마당 구석에서 쑥불 타는 매캐한 연기 엄니는 거적대기 깔고 앉아 기왓장 가루로 놋그릇 닦으시고 우리는 평상에 누워 강냉이를 먹었지 하늘을 덮을 듯 키 큰 은행나무 최씨 문중 청지기가 사는 세 칸 기와집 높은 토방 감싸듯 뻗은 뿌리 멀리서 온 타관 아줌씨 기린봉 굿쟁이 무당 시루떡에 촛불을 켜고 아들 며느리의 손자 점지를 빌고 가족들의 소원성취를 빈다 앞 골목 안창으로 들어가면 혼불 소설 쓴 최명희 소설가집이고 몇 발짝 걷다보면 흙돌담 안에 정원수가 꽉 차있고 기둥만 보이는 커다란 기와집이 몇 채인가 쉬엄쉬엄 걷다보면 철대문 집 벽돌담에는 오색돌 문패 나무대문집 나무기둥에는 나무문패 양철대문집 문짝에는 나무문패가 있었지 갓길 채전밭 옆길로 들어서면 가람 이병기 시조 시인의 집 양사재 위로 오목대 산기슭이 미끄러져 내려온다 한나절 걸어온 뒷길을 돌아보고 전주천 제방 밑으로 내려가 흐르는 물 한웅큼을 떠 가슴에 안았다 남부시장 할매집에 들어가 선지국 한 뚝배기 사먹고 경종배추 묵은지 서너포기 사고 모싯잎 송편도 한무데기 사들었다 초여름 한낮은 아직 한뼘이나 남았는데 마주쳐 오는 누군가 고향맛을 물어보면 그냥 웃을까 △ 일찍이 전북의 문화예술을 유달리 사랑하셨던 시적 화자의 절절함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작품이 길어 ‘몹쓸 <중략>’이 많다. 이 코너의 지면이 한정적이어서 작가와 독자의 넓은 마음에 기댈 수밖에 없다. 꼭 찾아 읽어보시라고 인터넷 전북일보에는 전면을 탑재한다. 읽는 내내 아릿한 그리움과 애틋한 사랑은 우리를 순수의 세월로 데려갈 것이다. / 김제 김영 시인

  • 오피니언
  • 기고
  • 2024.03.31 14:21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