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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네 강아지가 걸으니 매화꽃이 피고 참새가 종종거리니 난 꽃이 피네 고양이가 걸으니 국화꽃이 피고 닭이 뒤를 쫓으니 대나무 잎이 피네 내가 걸으면 무슨 꽃이 필까 ※ 註: 推句 한시 일부 인용 △ ‘눈 덮인 들판 길을 걸어갈 때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훗날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서산대사의 말씀이 생각난다. 어두운 밤을 지나는 동안 흰 눈은 온 세상의 어둠을 덮어버렸다. 다시 시작하는 아침에 “강아지” “참새” 고양이“ 닭”과 같은 동물조차 각자의 발걸음에 매, 난, 국, 죽, 사군자를 새기는데 내 발자국은 후세에 어떻게 이바지할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새해 새 아침에 곰곰 새겨볼 일이다./ 김제 김영
나는 너를 작약(作約)으로 읽는다 이루지 못한 언약 얼마나 많이 괴로웠나 봄을 어긴 적 없는 꽃 혁명을 부르짖다 단두대에 목을 넣고 쓸쓸히 죄를 청하는 전사처럼 떨어진 꽃잎 진하고 아름답다 약속을 깨고 아직껏 용서받지 못한 죄 올봄도 그 부끄러움 작약밭에 심었다 예쁜 약속 하나 갖지 못한 가난한 삶 그 잘못이 실로 크니 작약꽃밭에서 피 묻은 파약(破約)을 생각한다. △ 작약꽃은 활짝 피어 ‘환호작약’한다. 꽃 중의 꽃, 봄날의 환희여서, 흔희작약’ 할 줄 안다. 비록 땅속에 뿌리가 묻힌 삶이지만, “봄을 어긴 적 없”이 약속을 지켰으므로 피어있는 시간 동안은 ‘부추작약’으로 생을 즐기리라. ‘작약’하는 “작약꽃밭에서” “作約”을 생각하고 마침내 “피 묻은 破約”에 이르는 시적 화자의 고백이 못내 쓸쓸하고도 비장하다./ 김제 김영
들녘을 노랑 물감으로 칠했던 벼이삭 농부의 마음까지 물드는 그 가을을 나는 숨 쉬듯 마음에 들여 놓는다 낙엽이 제 갈 길을 찾아가는 입동 시린 바람이 관절을 꺾어 놓아도 아래로 아래로 은행잎이 노랗게 눕는다 환경미화원 두 분 은행잎만큼 노란 조끼를 입고 빈 가슴에 온기를 불어 넣는다 마음 밭 일구는 가을에 나는 액자에 노란 그림을 담고 있다 들녘과 은행잎과 미화원 두 분을 눈 안 액자에 실어 마음 벽에 내건다 △ ‘훌륭한 예술작품은 그 안에 사람이 들어있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역량 있는 시인이 좋은 풍경을 보고 훌륭한 예술작품을 탄생시켰다. 벼 이삭이 노랗게 물든 가을 들녘이 그냥 그림이 될 리 없다. “아래로 아래로 은행잎이 노랗게 눕”는 게 그냥 그림이 될 리 없다. 그 풍경 안에 “노란 조끼를 입”은 “환경미화원 두 분” 덕분에 가을 들판이 한 점 그림이 되는 것이다. 겨울 초입에서 따뜻해지는 “마음 벽에 내”거는 그림은 “환경미화원 두 분”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김제 김영
태풍이 다녀간 뜰에 하늘이 성큼 내려선다 발자국이 희미해질수록 침묵은 빠르게 번져서 태고로 돌아가는 마당 낯선 기호들이 쏟아진다 적막에 잠겼던 나무들이 잠시 귀를 세운다 책을 보던 해당화가 그제야 바자울 너머 주인의 안부를 챙긴다 빈집은 거미가 읽던 페이지의 귀퉁이를 접어 안개 속에 넣어둔다 해거름까지 하늘을 마당을 떠나지 않았다. △ 바자울은 대, 수수깡 등을 엮어 만든 울타리다. 바람도 들락거리고 사람도 쉽게 들락거릴 수 있다. 겨우 경계를 표시한 정도의 울타리는 “태고로 돌아가는 마당”을 가진 가난한 집을 마지막까지 지키고 있다. “침묵이 빠르게 번”지는 바닷가 빈집은 “거미가 읽던 페이지의 귀퉁이를/접어 안개 속에 넣어”둔다. 바자울이, 거미가, 해당화가 바닷가 빈집을 지키고 거기 하늘은 더 오래 머물렀다. 시적 자아는 아직도 빈집 마당에 있다./ 김제 김영 시인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두 페이지가 있어요 그날을 낭떠러지로 밀어 버렸어요 첨벙 잠기는 소리 수도 없이 들었건만 과자를 커피에 적셔 베어 문 순간, 또 솟아 올라와요 묻고 가는 백 삼십 년 동안 해와 달 수도 없이 지나갔지만 봉인된 그 페이지에 문득 촛불이 켜져요 뜯어진 악보 때 묻은 낱장을 눈물로 헹궈요 무릎 꿇고 전주가 시작되자 새가 날아요 내 몫의 눈물을 물고요 나뭇가지 흔들리고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 지나요 신기루는 보이는데 오아시스는 그 어디에도 없어요 △ “누구에게나 두 개의 페이지가 있”다는 말은 같은 페이지의 그늘과 양지를 말하는듯하다. “촛불이 켜”지는 순간은 130년 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성가곡 페이지를 모차르트가 알린 순간과 그동안 미제레레를 몰랐던 서정적 자아에게 성가곡의 감동이 겹쳐지는 순간이다. “때 묻은 낱장”을 눈물로 헹구는 일은 그간 은폐되었거나 실토하지 못했던 그늘이 “새”가 되어 날아가는 일. 신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김제 김영 시인
경사진 언덕바지 햇볕 좋은 골목이 있었다 그 언덕 왼쪽 자락에 핀 보라 제비꽃을 좋아하던 옛 소녀 누굴 찾는 걸까, 골목 어귀를 서성인다 그날 불었던 서풍이 소녀의 볼을 물들였을 석양이 뭇별 쏟아지던 밤이 어디론가 가고 없다 이미 시들어버린 제비꽃, 서성거리던 소녀 말없이 돌아선다 골목을 빠져나간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 화자는 발에 밟힐 뻔했던 보라색 제비꽃이 골목 어귀를 서성이다가 빠져나간 서풍에 양 볼에 물들었다. 보라색이 온통 골목을 물들였을 것이다. 나를 생각해 달라는 무언의 색이라고 말해도 될까. 청초한 꽃에 대한 고백이 솔직하다. 꽃바람이 소소리바람처럼 매서울 때도 있지만 뱃사람들이 갈바람이라고 부른다는 서풍이 봄에 오셨다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문은 서학동 골목에 핀 제비꽃이란다./ 이소애 시인
내가 실을 감으면 손주는 풀고 감으면 풀고 전기불빛이 감기고 어디선가 부엉이 소리 들리고 감기고 감기며 사과처럼 동그러지는 실타래 엉킨다고 천천히 감고 슬슬 하품이 감기고 펄펄 함박눈이 감기고 어느새 애호박만큼 커지는 실타래 뽀송뽀송 나를 감고 손주는 도란도란 할미 품에 잠드네. △ 맑고 고운 시여서 손주와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침내 ‘전기불빛이 감기’는 은유적인 비유는 애호박만큼 동그랗게 커져서 담장에 걸린 호박이 성큼 떠오른다. 사과처럼 감긴 실타래가 하품도 감기고 함박눈이 감긴다는 군더더기 없는 사물의 통찰력에 시의 맛을 느낀다. 나를 감는 실타래는 뽀송뽀송하다니요. 손주의 잠든 모습이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따뜻하고 보드라운 숨소리가 아닐까요. 한 편의 그림이 그려지는 아름다운 시가 박완서 작가처럼 ‘시의 가시에 찔려서’ 시가 내게로 품었다. / 이소애 시인
꽃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어느 해질녘 비가 나리고 무담시 지나가던 바람도 너를 어여삐 하였으리라 꽃만 향기로운 것은 아니다 한밤에 우레도 울고 뿌리까지 오는 뙤약볕도 너를 향기롭게 하였으리라 아름답다거나 향기롭다거나 그것만의 길은 아니다 뽑혀 던져진 풀일지언정 세상에 그의 웃음도 있으리라 △ ‘뽑혀 던져진 풀일지언정’ 내던져진 비참한 생명에 눈길을 준 화자의 마음이 고맙다. 고맙고 고마운 사람은 소외되고 멸시받는 잡풀에도 존재감을 인정해주며, 이름을 불러주고 쓰다듬어 주는 사람이다. 처절한 절망감에서 허덕이는 보잘것없는 잡풀에서 웃음소리를 듣는 건 포기하지 않고 삶을 일으켜 세우는 웃음일 것이다. 꽃의 향기는 꽃처럼 시늉하는 모든 사물에서 향기를 맡는 아름다운 마음일 것이다. ‘무담시 지나가던 바람’을 소리쳐 불러 내 곁으로 앉힐 것이다. 꽃처럼 아름다운 마음이 있을테니까./ 이소애 시인
내 주소가 없어 뉘 방(方)으로 산 세월 대문이 있어야 내 문패를 달 게 아닌가 가난한 마음에다 대못 박아 걸 수 없는 일 내 글이란 것도 평생을 남의 방으로 썼으니 인생 심지는 타들어 가고 불은 꺼지려 깜박이는데 언제나 내 글을 만들어 문패를 달아 볼거나 △ 제목만 읽어도 정겹다. 대문에 「문패」가 걸린 집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던 옛 기억이 떠오른다. 문패는 ‘대못 박아 걸’었다. 가끔 우체부 아저씨가 문패를 보고 이름을 부르면 사랑이 담긴 편지를 불쑥 내밀던 시절, 남의 집 셋방살이는 주눅이 들었다. 문패 없는 방이었으니 말이다. ‘인생 심지는 타들어 가고/ 불은 꺼지려 깜박이는데’에서 성급한 시인의 시간 재촉이 엿보인다. 시간이 몸을 끌고 다녀도 문패처럼 시인의 시집들이 깜박이는 불을 꽉 붙잡고 있을 것이다./ 이소애 시인
이거 우리 딸이고만 곱기도 허다 망헐 년 시집가더니 한 번도 안 와 늙지도 않고 부자로 잘 산디야 아이고 곱기도 허다 망헐 년⋯⋯ 이 사진을 보고 치매 깊으셨던 할머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당신의 처녀 적 사진인데 △ 읽을수록 마음이 아린다. 흐릿한 기억에서 방황하는 눈동자에 눈물이 강물처럼 흐르는 듯 목메인다. 시인은 이 시를 완성할 때까지 얼마나 할머님을 불러보았을까. 생각만 하여도 내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하루를 산다는 것은 괴롭다. 아프다. 곱디고왔던 내가 허공을 나는 새처럼 날개를 젓다가 제집을 잃고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상상은 무섭다. 어느 누가 할머니의 기억을 훔쳐 간 걸까. 시간일까. 외로움이었을까./ 이소애 시인
달궁에 가보라. 달궁! 그 옛날 마한의 효왕*도 숨어든 그윽이 깊은 계곡, 달의 궁전 나무들 모여 끝이 먼 숲을 이루고 숲은 첩첩 삼도(三道) 아우르는 삼림대로 뻗쳐 올랐다 비탈에서조차 곧추서 나무들 하늘 향해 의젓하고 계곡 따라 있어야 할 제자리에 좌정한 묵직한 바위들 사이사이 휘감으며 유장히 흐르는 석간수 더는 비할 데 없어 느긋한 골짜기 달궁에 가보라 홍진 세상 등진 지 풍진 세상 비켜선 지 이미 오래인 거기, 달궁에 가보라 달궁! *효왕- 백제, 진한, 변한의 공격을 피해 지리산에 도성을 쌓고 천혜의 요새인 달의 궁전을 지어 살았다는 마한의 6대 임금. △ 그 옛날 효왕이 지었다는 달의 궁전인 ‘달궁’이라는 말속에는 나를 안아주는 포근함과 달달함 그리고 그윽함이 다 들어있다. “홍진 세상 등진 지/풍진 세상 비켜선 지/이미 오래인”사람들은 거기 달궁에서 ‘세상이 틀어졌어도 “곧추 서”있는 나무를 우러를 것이다. 삶에 찌든 “홍진”과 “풍진”을 깨끗이 씻어내리라. 곧 깨끗한 선비 한 분 걸어 나오시리라./ 김제 김영 시인
늙은 호박이 밭두렁에 덩그러니 앉아있다 노란 얼굴 가득 주름이 깊다 나는 호박을 따다가 보았다 그가 오래 앉아있어 움푹 파인 자리 세상 밖으로 처음 나갈 때 나처럼 그도 오래오래 망설였던 것일까 한자리에 오래 뭉그적거린 흔적 또렷하다 △ 한자리에서 오래 궁싯거리던 호박은 다 늙어서야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가 앉았던 자리는 “움푹 파”였다. 얼굴이 외꽃처럼 누렇게 뜨도록 호박을 무엇을 궁구한 것일까? ‘호박’ 대신 ‘시인’으로 대체해보자.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문단에 나서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두려운가? 남들 다 익어가는 가을 되어서야 저도 한번 슬그머니 세상 밖으로 나선 ‘신인 시인’은 또 얼마나 떨렸으랴! 움푹 파이도록 망설였던 가을 호박을 가만히 안아준다.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서는 어린 시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제김영>
밑바닥으로 떨어진 몸을 가까스로 추스른다 혀의 경전을 마저 읽으며 몸을 곧추세워 그늘진 고리봉에 매달린다 뙤약볕에서 까칠한 옷을 벗기고 무쇠 가마솥에서 열병의 신고식을 치른 후 생의 비린내를 심방에 가두고 누각을 짓는다 뼈를 버리고 뼈의 눈물을 흘려 짓누름을 건디고 살 한점 떼어 직사각형을 이룬다 불은 자력에 대추 숯에 이끌리어 무수한 뿌리를 늘인다 질항아리 속에서 혀의 누각을 빚고 있다 △ 집집이 커다란 장 항아리가 있던 시절이 있다. 그 항아리마다 씨 간장을 소중하게 보관하던 시절이 있다. “무쇠 가마솥에서” “생의 비린내를” 벗어버린 콩은 메주가 되고 그렇게 만든 메주가 대추 숯과 함께 몸을 바꾸는 곳이 항아리 속이다. 메주가 하는 일은 “질 항아리 속에서 혀의 누각을 빚”는 일이어서 집집이 맛있는 간장이 발효되는 것이다./ 김제 김영 시인
하늘에는 샘이 있나 보다 몇 날 며칠 장대비가 내리는 걸 보니 큰 샘이 있나 보다 하늘에는 군대가 있어 싸움하나 보다 큰 소리가 나는 걸 보니 큰 포병이 포를 쏘나 보다 하늘에는 큰 발전소가 있나 보다 번쩍번쩍 비추는 걸 보니 크나큰 전지로 땅을 비추는가 보다 △긴 장마가 끝났다. 하늘은 얼마나 많은 것들로 하늘이 되었을까? “큰 샘”이 있으니까 “장대비”가 지치지도 않고 내렸을 것이다. “군대”가 있으니까 “포를 쏘는” 소리로 천둥이 울어댔을 것이고, “큰 발전소”도 있으니까 “번쩍번쩍” 번개가 내리쳤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다. 모든 걸 쏟아내서 아무것도 없고 모든 걸 다 갖추어서 아무것도 없다. 모든 걸 다 아는 노인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의 마음이 닮는 것도 같은 이치다. / 김제 김영 시인
사람은 떠나고 청춘은 눈감았듯이 바람 속 천 개의 얼굴은 분노와 저항 속에서 잠들지 않았다 흰 가시로 동여맨 몸은 그들의 탐욕과 구속을 이겨냈으며 가난한 인내와 희생으로 뿌리의 곡선을 보호했다 바람이 꽃을 문다 고개 숙인 무거운 설움은 시들은 잎사귀를 뚫고 생명으로 응집된 절체절명으로 노오란 희망꽃 피워냈다 바람도 웃는 꽃을 이기지 못한다 꽃이 웃는다. △ “사람은 떠나고 청춘은 눈 감”았어도 “바람 속 천 개의 얼굴은” “잠들지 않았다”라는 저 선언 속에는 인생의 여정이 “인내와 희생으로” 박제된다. 잠들지 않은 바람은 “희망꽃을 피워”낸다. 그렇게 바람도 결국은 “웃는 꽃을 이기지 못”하고 물러앉는다. “무거운 설움”도 “노오란 희망꽃”을 피워내는 힘이 된다. 오늘 하루라도 “웃는 꽃”을 피워 보고 싶은 마음이다. <김제김영>
허리를 휘감아 오르는 노란 줄기들 새콩 가지도 괭이싸리 다리도 노란색으로 뒤덮인다 다닥다닥 달구지풀 실새삼 열매 사람들 머리 같다 석탑으로 든 계단을 오르는 햇빛 짱짱한 초파일 아들의 취업 기원하는 논물 든 걸음 줄기처럼 휘어지고 비틀거리고 가래 끓는 주문이 구멍 난 양말보다 더 질긴 천원 지폐 한 장 복전함이 받는 땡볕 아래 고목처럼 서 있는 아버지 그 곁, 그늘 참새 한 마리 △ “고목처럼 서 있는 아버지”는 땡볕에서, “참새 한 마리”는 그늘에서 서로의 영혼이 치유되는 계단을 오른다. 초파일 복전함에 정성껏 넣은 지폐가 “아들의 취업 기원하는” 기도였다. “허리를 휘감아 오르는” 생의 궁핍에 쪼들리지만 아버지는 꼿꼿하시다. 풍요로운 열매로 복전함을 채울 꿈이 있다. 기도는 허기질 때 신의 소리가 들린다. 신의 소리는 “구멍 난 양말”에서 들려온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새가 된다. / 이소애 시인
가을 햇살이 내려 흙담 너머로 빨간 고추가 익어가고 황금물결 출렁이는 들길 낡은 모자를 둘러쓴 허수아비 손짓에 알밤 익는 소리 추녀 끝으로 맑게 갠 하늘이 들어와 앉는 숲길을 걸으면 그대 향기에 취해 붉어진 얼굴로 들꽃만 본다. △ 가을을 부른다. 두 손 오므려 나팔을 만들고 큰 소리로 가을을 불러본다. 된더위가 놀라 뒷걸음칠 때 가을은 초록을 붉고 노란색으로 물들이는 수채화를 그리기에 바쁠 것이다. 논두렁을 오가는 아버지 발걸음이 아닌 허수아비의 늙은 모자가 새를 불러올 가을이 뛰어올지도 모른다. 허수아비를 보고 가을이라고 손짓하지 않을까. 가을이여! “빨간 고추가 익어가”기 전에 코스모스와 들국화꽃 꽃바람을 타고 오시게나./ 이소애 시인
무릎도 안 아프고 암시랑 않다 허리 택배로 보내주신 한 자루의 거짓말 껍질을 까기도 전에 매운 눈 뜰 수 없네 멀쩡하단 말씀에 생생한 줄 믿었네 물크덩 썩은 속내 도려내며 알았네 어머니 거짓 안부만 입에 달고 사셨네 △ "택배로 보내주신 한 자루의 거짓말”은 화려한 수사나 감정이입 없이 살아 있는 사물의 실체를 옮겨놓았다. 사물이 꿈틀거리며 냄새를 풍기고 "썩은 속내를 도려”낼 때 어머니의 거짓말이 뭉클 눈시울을 뜨겁게 했으리라. “암시랑 않다”라고 소리 내어 읽으면 허리 아픈 어머니의 말씀이 들린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택배로 보내면 아린 가슴이 씻겨질까? 잠 못 드실 가슴앓이 병은“썩은 속내 도려”낸 자식 걱정 잊은 지 오래다./이소애 시인
벽골제에 가면 물소리가 들린다 농부의 가슴을 흘러 김제 들녘을 적시고 마당 앞으로 지나가는 물소리 하늘을 이고 살았던 할아버지의 어깨 쑤시는 아픔이 벼포기 마다 푸르다 가장 아득하고 가장 가까운 지평선을 달려온 소년의 이야기가 새만금으로 이어지고 있다 벽골제에 가면 둑을 쌓던 백제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벽골제에 가면 백제시대의 사람들이 “둑을 쌓던” 노랫소리가 들린다. 옛 농부의 땀방울이 벽골제를 지나, 논둑을 지나, 풍요로운 밥상에서 숟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면 “마당 앞으로 지나가는 물소리”가 김제 평야 지평선이 보였다. 벽골제 둑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는 지금도 백제 사람의 노랫가락에 맞춰 꽹과리를 친다. 벽골제는 백제 사람을 기억에서 불러내는 마법을 가진 혼이 있었다./ 이소애 시인
고고한 넋이 외로움을 이겨 함초롬히 솟아난 혼이다 몸맵시 가다듬고 세월을 낚아 올곧게 자라온 선비다 그윽한 향기 봄볕에 녹아 창문을 두드리면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떠나고 난 후 란蘭의 자태를 보면 알 것 같습니다. 세속을 초월하여 고상하고 고풍스럽게 “몸맵시 가다듬고” 살아 온 사람은 더 그립습니다. “세월을 낚아”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노라면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 사람인지 깨닫습니다. 사랑은 시들고 기억으로 떠오르는 사무치도록 그리운 사람은 “란”의 향기와 같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스며듭니다./ 이소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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