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장은 없어서는 안될 봉사자랑께.”
익산시 황등면 죽촌리 화농마을 주민들은 최사식 이장(50)을 일컬어 해결사라 부른다.
크고 작은 대소사나 마을 현안 사업 해결에 그가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이니 이러한 별명은 안성맞춤이다. 마을 숙원사업은 물론 주민들의 커다란 생활불편에서부터 농지형질변경 등 각종 민원서류 발급에 이르기까지 모두 최이장의 몫이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영농철 나이든 마을 어른들의 모내기는 물론 추수에 이르는 각종 허드렛일 역시 그에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과이다.
익산시 황등면 소재지에서 함라면 방향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넓다란 농경지 덕분에 오래전부터 이곳은 부농마을로 통한다.
소재지를 돌아 서쪽으로 자리잡은 이 마을은 55세대 2백여명이 옹기종기 모여 한가족 같이 지내는 황씨 집성촌이기도 하다. 최이장은 이곳에서 무려 10여년째 이장직을 맡아오고 있다.
친인척이 대부분인 이 마을을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곳으로 만든 최이장은 그의 온화한 성품만큼이나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참봉사자의 마음으로 주민들을 돌보고 있다.
바쁜 일손을 이유로 한때 이장직을 내놓기도 했지만 2백여명의 주민중 절반가량이 60세 이상의 노인이 차지하면서 젊은 일손이 부족한데다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 어른들의 권유에 떠밀려 또다시 마을일을 챙기고 있다는 것.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지난 70년대 후반 고향인 이곳에 내려와 줄곧 마을을 지켜온 파수꾼이다. 지금은 마을에서 내로라는 부자로 통하지만 한때는 그에게도 적지않은 시련이 있었다는 것.
고향에 내려올 당시만해도 6천여평에 불과한 농지가 이젠 몇배가 부풀려진 대농으로 성장했지만 이러한 부를 축적하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땀이 서려있다. 최이장은 어려운 이웃들을 마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쉴틈이 없다.
남을 도와주고 주민들과 희노애락을 함께할때 자신에게 있어 가장 뜻깊은 시간이다는 최이장은 자신의 이러한 생활들이 마냥 기쁘기만 하다고. 지난 92년 동네 어른들의 권유로 이장직을 맡은 최이장은 지난해 총 사업비 5천여만원을 들여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모정을 짓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휴식공간이 없어 애태우던 주민들은 이제 최이장의 땀의 결실로 지어진 모정에서 오늘도 무더위를 피하고 있다. 이어 지난 99년 노인들의 여가선용을 도모하기 위해 경로당을 신축했다. 경로당 신축 이후 마을 부녀자들도 십시일반 쌀을 모아 밥을 지어주며 노인공경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최이장에게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는 지난 98년 대형관정을 뚫어 주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1백50m의 깊은 곳에서 뿜어내는 이 물은 땡볏 더위를 떨쳐 버리기에 충분한 시원함을 더해주고 있다.
마을안길 개통시 여느 마을과 달리 넓이 5m의 넓은 도로를 개설한 것도 이젠 그의 공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애사시 최이장은 자기몸이 아니다. 장례용품 구입에서부터 호상에 이르기까지 다 그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웃 주민이 상을 당할경우 묘자리 만드는 것도 최이장의 몫인 것이다.
최이장이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것은 주민간 화합이다. 이에 최이장은 매년 봄과 가을 노인들을 모시고 관광지를 찾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곤 한다. 믿음과 신뢰로 똘똘 뭉친 화농마을 주민들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중요한 일에 이르기 까지 최이장에게 맡기곤 한다.
각종 민원서류 발급도 그의 발빠른 손에의해 이뤄진다.
황등면 이장단 대표와 새마을 지도자대표·황등농협 이사직을 맡고 있는 최이장은 남을 먼저 배려하는 씀씀이 때문에 잠시 쉴 틈이 없단다.
자신의 일보다는 나이든 어른들의 영농을 돌보는 것 역시 그에겐 더 중요한 시간들이다.
트랙터와 콤바인 등 웬만한 농기계는 직접 다룰줄 아는 최이장은 지난 80년부터 20여년이 넘는 긴 세월을 새마을지도자로 일하고 있다.
최이장은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 도우며 지금까지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것은 무엇보다 아량이 넓고도 포근한 아내의 내조 때문이다”고 말한다. 가난과 넉넉함을 넘나들며 50평생을 살아온 최이장은 이웃 주민들에게 따뜻한 사랑애를 펼치며 마을에 없어서는 안될 해결사 역할을 다하고 있다.
▣ 마을유래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 소재지를 돌아 함라면으로 펼쳐진 넓다란 뜰 모퉁이에 자리잡은 화농마을. 넓다란 농경지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이곳은 55세대 2백여명의 주민들이 따뜻한 사랑애를 만끽하며 살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이다.
1914년 도촌과 마전리·창평리 지역과 죽촌·화농리 두곳으로 나뉘어 마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화농마을은 오래전부터 수롱고지 또는 수렁골이라 불리었다.
이두에서 말의 나이를 말할때 쓰여지던 말나이 숫자의 화(禾)자로 논농사를 많이 짓는다고 하여 화농이라 칭했다고 한다. 특히 이곳은 유난히도 물이 많이 고이는 곳이 많다고 하여 수렁골이라 칭한다.
마을이 형성된 지난 1914년 우주 황씨가 이주하면서 넓다랗게 펼쳐진 농경지를 찾아 일부 외지들마저 가세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곡창지대 호남평야의 입구로 널리 알려진 이곳은 오래전부터 주민들이 풍족함을 느끼며 살아온 마을로 정평이 나있다.
이러한 넉넉함 때문이지 이젠 상당수 주민들이 외지로 떠났으나 여타 지역과 달리 사회적 출세를 달리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마을 주민들의 크고 작은 애환을 같이하며 고향을 빛낸 이춘석변호사를 꼽을 수 있다.
학계 출신으로는 황형수씨가 원광대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으며 최사식이장의 형 삼식씨가 철도청 용산공작창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부자들이 많이 살았던 마을만큼이나 사업에 성공한 사람도 있다.
이기상씨가 익산 시내에서 대지철재를 운영하고 있으며 박남식씨도 서울 용산전자시장 대표로 사업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이밖에도 황호길씨가 김제중학교 교사로 재직중이다.
풍족함이 물씬 풍기는 이마을의 전통은 지난해 신축된 모정준공식때 단적으로 나타났다.
마을 주민들마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하나된 장을 마련하기 위한 기금이 쏱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마을을 떠난 외지 인사들도 노인들을 위해 써달라며 기금을 보내오는 등 엄청난 단결력을 과시했다.
여름철 더위를 피해 주민들의 유일한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는 이곳은 이제 마을 대소사를 논의하는 자리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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