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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람] 혁신도시 건설로 이주 앞둔 남정현·안옥례씨

"250년 동안 살던 고향 떠나야하니 조상님 뵐 면목이 없어 죄스럽구먼"

혁신도시 이전으로 완주군 이서면 신풍리 고향에서 마지막 추석을 맞는 남정현,안옥례씨 부부가 마을길을 다라 걸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이강민(lgm19740@jjan.kr)

"젊은 사람은 몇 안 되고 다 60~70대 노인들이라 언젠가는 빌 동네지. 시골 어느 동네나 마찬가지지만…."

 

올해 추석이 고향에서 맞는 마지막 추석이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남정현씨(74)는 착잡해진다. 애써 스스로를 위로해 보기도 하지만 8대조 할아버지가 터를 잡은 이래 250여년을 살아 온 고향이다. 자기 대에 와서 등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죽어서 조상님 뵐 면목도 없는 노릇이다. 정든 집터 뿐 아니라 선조들을 모신 선산도 자리를 옮겨야 한다.

 

완주군 이서면 신풍리의 풍경이 쓸쓸하다. 추석이 닥쳤지만 추수를 앞둔 농촌의 포근함 보다는 이주를 앞둔 어수선함이 더 강하게 풍긴다. 생전 처음 듣는 '혁신도시'라는 것에 떠밀려 조상 대대로 살아 온 고향을 떠나야 하는 노인들은 억울하기까지 하다. 27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신풍리 주민들은 올해 말까지는 집을 비워야 한다. 500세대가 조금 못되는 혁신도시 부지에 속한 주민들 모두 같은 처지다.

 

왜정시대 풀 뜯어 먹으며 힘들게 살아온, 그래도 농사지으며 자식들 훌륭하게 키워낸 고향을 떠나야 하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남씨는 "고향을 안 떠나려고 서울까지 올라가 데모를 하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안 되는 걸 어떻게 해. 이번 농사만 끝나면 다들 제 갈 길로 떠나야 하는 거지"라고 힘없이 말했다.

 

부인 안옥례씨(71)도 서운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완주군 소양면에서 태어나, 지금은 기억도 가물거리는 스무살 무렵 신풍리로 시집온 지 50년이 넘었다.

 

"얼추 반백년을 살았지. 여기서 늙어 죽을 줄 알았는데 얼마나 서운하다고. 제일로 정든 곳인데."

 

마을회관 앞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어울려 마늘을 까던 안씨는 정든 이웃과 함께하는 이런 정경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서글픔이 커진다.

 

반평생 신풍리에서 농군으로 함께 살아 온 남씨 부부는 최근 전주시 덕진동 호반촌에 작은 집을 얻었다. 하지만 고향에서 느꼈던 정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새 집이 있지만 이번 추석은 고향의 낡은 집으로 자식 내외를 불러 지낼 계획이다.

 

"용담댐 수몰 주민들처럼 우리도 1년에 한번은 고향에서 만나려고 해. 이사가는 사람들 주소랑, 연락처를 다 적어뒀다가 나중에 만나서 덕담도 하고 옛날 얘기도 해야지."

 

앞으로 길면 30년, 신풍리 농촌마을의 얘기는 영영 사라질 것이다. 고향에서 마지막 추석을 맞는 노부부와 그 이웃들에게, 그래서 더 소중한 추석명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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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훈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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