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발전 남기고 하늘로 간 '문민정부 초대총리'
무주 출신으로 지난 1993년 김영삼 정부 초대 총리를 지낸 황인성 전 국무총리가 1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1926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석항마을에서 태어난 고인은 육군사관학교 4기 출신으로 군의 요직과 전북지사, 교통부장관, 농림수산부장관 등을 거친 뒤 1993년 제25대 총리를 역임했다.
1968년 예비역 소장으로 예편할 때까지 중앙경리단장, 경리학교장, 국방부 재정국장을 거치는 등 군의 살림꾼을 맡아왔다.
예편 이후 1970년에 무임소장관실 보좌관(차관급)으로 기용된 이후 총리 비서실장을 거쳐 1973년 47세에 전북지사로 부임해 관선시대 가장 오랜 전북지사(1973-1978)로 재임했으며 이후 교통부장관, 국제관광공사 사장, 제11·12·14대 국회의원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고인은 군·관, 정·재계를 두루 섭렵한 경력으로 1993년 2월 김영삼 정권에서 초대 총리로 전격 기용됐다. 영남 정권임에도 전북 출신의 그가 기용된 것은 지역화합이라는 측면 이외에도 어떤 자리에 있든 최선을 다하는 노력형인데다 매사를 합리적으로 처리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다는 장점이 평가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취임 10개월을 채우지 못한채 1993년 12월16일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우루과이 라운드 파동 속에서 쌀수입 개방에 따른 파고를 넘기지 못하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민자당 총재 상임고문을 거쳐 1996년 금호아시아나그룹 상임고문으로 취임하면서 경제계로도 발을 넓혔다.
2002년부터 안중근의사 숭모회 이사장, 2008년에는 숭모회 명예이사장직을 맡았으나 이후 건강이 악화되면서 대외활동을 삼가왔다.
고인은 고향에 대한 정이 누구보다 각별했다.
특히 전북지사 재임시절에는 전북의 탈(脫) 낙후를 위해 공업화 추진을 도정의 제1 목표로 정했다. 호남고속도로 개통에 맞춰 익산과 군산에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2차선이었던 전주~군산간 도로의 4차선 확장 사업에 착수했다.
당시 청와대에 올라가 관련 비서관에게 "정부가 전북을 도와준게 뭐냐"고 따진 뒤 "대통령께 그대로 보고하라"며 내려온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게 해서 생긴게 옛 전·군간 4차선 도로였다.
또한 전주시의 현안이었던 전주철도 이설문제 해결을 위해 초도순시차 전주에 내려온 박정희 대통령에게 "철도부지를 팔아 그 비용으로 철로를 외곽으로 이전하면 돈이 들지 않는다"고 설득해 사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새만금사업에 대한 애정도 각별해 농림수산부 장관(1985~1987년) 재임때는 당시 경제기획원의 반대로 사업이 터덕이자 농림부가 갖고 있는 농지대체자금을 활용해 추진토록 하기도 했다.
고향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고인은 지난 2005년 재경전라북도민회가 제정한 제1회 모악대상을 받기도 했다.
한편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 이애섭 여사와 아들 규선·규용·규완씨, 딸 정숙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삼성의료원 장례식장. 발인은 14일 오전 6시. (02) 3410-6917·6929·6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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