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북도립미술관 예산·인력 문제 시급
개인·단체 성과보다 내실 다지는 것이 중요해
도내 곳곳에서 미술 즐길 수 있는 환경 조성 예정
지난 9월 전북도립미술관 제5대 관장으로 이애선(54) 관장이 취임했다. 주로 타지에서 근무했지만, 현장 경험부터 교육·행정 업무 등 다양한 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도내 문화예술계에서는 우려와 기대의 시각이 공존한다. 취임하자마자 도내 14개 시·군 미술 현장을 돌아보고, 도내 미술단체·협회 등과 만남을 주선하는 등 도내 문화예술과 미술계에 대해 빠르게 파악해 가고 있다. 전북도립미술관을 '향유와 공유가 있는 열린 미술관'으로 만들기 위해 두 팔 걷고 나선 이애선 관장을 만나 도립미술관이 나아갈 방향과 개선해야 할 문제점 등을 들어봤다.
- 먼저 취임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많은 분들께 감사 인사 올리고 싶습니다. 14개 시·군 미술 현장도 돌아보고, 한자리에 모여 연석회의도 하고, 전북미술협회와 전북 민족미술인협회 회장단 등과 만났습니다. 매일매일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다들 따뜻하게 환대해 주셨습니다. 전북도립미술관에 많은 관심 보여 주시고, 환대해 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합니다. 보내 주신 관심과 애정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전북 미술계에 대해 이해도가 낮을 것이란 우려도 있는데.
"많은 분들이 우려하는 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지역을 잘 모른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지역에서 꾸준히 미술 활동을 하거나 미술 관련 연구를 하셨던 분들에 비하면 당연히 부족합니다. 일일이 따지면 교육·행정 업무에만 집중된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오해는 풀고 싶습니다. 취임 전 사람들이 직업을 물어보면 저는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라고 말했습니다. 국내에 많지 않습니다. 또 제 직업은 미술사학자, 미술이론가, 전시 기획자, 비평가입니다. 미술사학자와 미술이론가들이 지역 미술을 알게 되는 것은 '논문'을 통해서입니다. 전북도 미술을 연구한 논문은 많지 않습니다. 저는 국내 미술사학자 중에서 매우 드물게 지역 미술사를 8년 연구했습니다. 지역 미술사를 연구하는 새로운 방식도 제안하고, 지역 미술을 다시 보게 하는 토대가 되는 연구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기본은 갖춰 온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우려하시는 부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연구할 수 있는 굵직한 토대를 갖춰 왔으니 조금만 더 지켜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북도립미술관이 가진 장점과 단점을 꼽는다면.
"전북도립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더불어 상급 지방자치단체인 특별시, 광역시 및 도가 운영하는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경기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등과 함께 대한민국 미술계를 이끌어가는 핵심 미술관입니다. 저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예산·인력 부족입니다. 접근성이 낮은 지리적 위치에 있어 관람객이 감소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광주시립미술관과 비교해 보면 저희 예산보다 3배 가까이 많습니다. 학예 인력도 광주시립미술관은 9명, 저희는 3명입니다. 열악한 미술관으로 꼽히는 경남도립미술관 학예 인력보다도 적은 인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3명의 학예 인력이 만든 미술관 전시는 다른 미술관과 비교했을 때 의미 없는 전시도 아니고,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예산이 조금만 더 보강되면 더 빛나는 전시 열매를 보여 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 '향유와 공유가 있는 열린 미술관'으로 만들겠다고 하셨는데요.
"전북도립미술관은 완주군 구이면에 위치해 있습니다. 비교적 전주시에서는 가까운 편이지만, 14개 시·군 전체를 보면 접근하기 불편한 곳에 있습니다. 접근의 어려움을 '오세요!'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저희가 갈게요!'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향유'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또 도내 미술사 구축, 연구를 위해서는 중요한 소장품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소장품 부분에서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후원회가 없습니다. 이전에는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것을 복구해서 소장품을 기부하고 증여하는 미술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것이 '공유'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정리하자면 온전히 '나'라는 사람 혼자만 열려 있다고 해서 열린 미술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열려 있다고 느끼는 당사자들과 하나의 네트워크나 망이 형성돼야 열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실질적인 것을 주고받으면서 '향유와 공유가 있는 열린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의미입니다."
- 전북 미술계가 풀어야 할 숙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두 달밖에 안 된 관장이 도내 미술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게 적절한가 싶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미술 이론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미술이라는 것이 1980년부터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작가가 만들었다는 사실이 중요했지만, 이후부터는 작가와 전시 기획자, 미술 이론가를 놓고 봤을 때 차지하는 비중이 동일하게 됐습니다. 14개 시·군과 각 대학의 상황을 파악한 결과 미술 이론과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도에서 미술 이론가를 자생적으로 재생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작가와 미술 이론가가 동시에 붙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는 거죠. 전시회를 열기 전 학예사가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미술 이론가입니다. 전시·작품에 대해 비평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가장 크다는 것이죠. 도내 미술계의 입장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말씀해 주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있을까요.
"우리 미술관이라도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미대 학생, 철학과나 인문학과 학생들에게 미술 이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작품, 전시, 연구(논문). 3박자가 이뤄져야 주목받게 되고, 후속 연구가 한 번 더 나오게 되고, 빛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임기 동안 어떠한 청사진을 그리고 계신지요.
"저의 빛나는 성과나 큰 사업을 통해 전북도립미술관이 주목받는 것보다는 내실을 튼튼히 하고 싶습니다. 미술관의 학예사들이 조금 더 자신의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 인력과 예산을 최대한 확보할 생각입니다. 또 14개 시·군으로 파고드는 미술을 하고 싶습니다. 특히 전북 미술사 구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북 미술 연구 논문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토대를 구축하고, 임기 후에도 연구가 이어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 임기 동안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임할 것입니다."
- 도민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주어진 조건을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주어진 일은 주어진 바탕 안에서도 최선을 다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에 집중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우려하시는 바가 큰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점이나 폐해로 나타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미술관에 보여 주는 관심, 애정 잊지 않을 것입니다. 기대가 크기 때문에 우려도 크고, 비판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다 끌어안고 갈 것입니다. 도내 곳곳에서 미술을 즐길 수 있고, 미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모악산에 오시거든 저희 미술관도 들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작품과 전시가 있는 곳이라고 자부합니다. 마음이 쓸쓸해도, 기뻐도 오셔서 그림과 함께 해 주시길 바랍니다. 편한 옷 입고 오셔도 괜찮고, 땀 흘리고 오셔도 괜찮습니다. 모든 관람객을 환영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애선 전북도립미술관장은
고창 출신으로 홍익대 경제학과,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서양미술사), 박사(한국미술사)를 졸업했다.
그는 미술 애호가이자 작품 소장가로 미술과 인연을 맺기 시작해서 자원봉사자를 거치며 고고학, 역사학 및 미술사, 동시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고조돼 대학원에서 미술사 석·박사를 마친 특이한 이력을 소유하고 있다.
이 관장은 석사 과정에서 일본 화단의 서양근대미술 변환 과정을 추적해 일본 후기 인상주의의 새로운 미술사적 의의를 제시하는가 하면, 박사 과정에서 20세기 전반기 서구와 일본 미술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한국 근대미술을 새롭고 깊이 있는 시각에서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미술 교육·전시·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체육관광부, 홍익대 교수학습지원센터,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등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홍익대 박물관 학예업무를 총괄하고 경주 솔거미술관 전시 기획을 맡기도 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해제 연구원까지 맡는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이밖에도 홍익대 미술대학, 미술대학원 강사와 서울디지털대학교 객원교수,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섭외이사,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부설 근현대미술연구소 상임연구원 등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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