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6-05-19 22:20 (화)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오목대] 소녀상 앞의 바리케이드

Second alt text서울시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싸고 있던 바리케이드가 철거됐다. 설치된 지 꼭 6년 만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12월, 서울시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놓인 조형물이 그 시작이다. 열서너 살,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로 살아야 했던 소녀들. 위안부 할머니의 꿈 많던 소녀 시절을 형상화한 소녀상은 전쟁과 폭력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했던 존재들을 기억하게 하는 상징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넘어, 전쟁과 성폭력, 여성 인권과 국가 폭력의 기억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 소녀상 건립은 이후 국내는 물론, 해외로 확산됐다. 그러나 어느 순간 소녀상은 기억의 상징을 넘어 역사 왜곡과 혐오가 충돌하는 공간이 되었다. 

극우 성향 인사들과 단체들의 위안부 피해자들을 향한 모욕과 철거 요구 시위가 거세지면서 피해자를 기억하기 위해 세운 조형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 2020년 6월, 극렬한 시위를 벌이는 극우 단체들의 위협과 훼손으로부터 소녀상을 보호하기 위한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소녀상이 차단벽 안에 놓인 풍경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사실 피해자를 기억하는 일이 공공의 공간에서조차 보호되어야 하는 현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 우리는 피해자를 기억하는 공간 앞에 차단벽까지 세워야 했을까.

역사 왜곡은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부정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 자체를 지우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피해자의 증언을 의심하고, 고통을 조롱하며, 기억의 공간을 혐오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 역시 그 연장선이다. 

문제는 소녀상을 둘러싼 왜곡과 혐오가 더이상 역사 논쟁의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해자를 향한 극단적 언행 속에는 역사에 대한 다른 해석 이전에,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의 붕괴가 드러난다. 

그렇다면 바리케이드가 철거된 지금은 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낙관하기는 어렵다. 역사를 부정하고 피해자의 기억을 조롱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은 단지 역사 해석의 차이에만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의 고통과 증언을 부정하고 피해의 기억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역사는 더이상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가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일이 된다.

바리케이드는 철거됐다. 그러나 피해자의 기억 앞에 놓였던 혐오와 냉소의 장벽까지 함께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가 걷어내야 할 것은 소녀상을 둘러싼 바리케이드만이 아니다. 역사적 고통 앞에서조차 타인의 존엄을 외면하게 하는 우리 안의 냉소와 혐오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은정 kimej@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