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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과 춘향, 봄처럼 풋풋한 '사랑의 듀엣'

'춤추는 춘향'은 널마루무용단(단장 장인숙사진)에게 각별하다. 판소리 다섯 바탕을 무대화 한 첫 공연은 언제나 '춘향'이었다. 영화부터 무용까지 장르 불문하고 '춘향'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인 사랑을 주제로 하는 데다 선과 악의 대비가 뚜렷한 구조여서 작품화하기에도 쉽기 때문이다.1997년 '춤추는 춘향'을 올린 이래 올해로 세번째 무대. 대극장에서 소극장으로 옮기면서 무대는 담백해졌지만, 젊은 무용수로 보강해 신선함을 더했다. 춘향과 몽룡의 이별 예감, 장원 급제해 돌아온 몽룡 등을 다룬 장면 장면은 일사분란한 군무로 완성도를 높였다. 춘향과 몽룡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 널마루어린이무용단 10명이 청사초롱을 들고 무대에 올라 반기는 장면 등에도 신경썼다. 그러나 압권은 몽룡과 춘향의 사랑의 듀엣이다. 몽룡이 재회의 기쁨으로 춘향을 안고 도는 장면은 아름답다. 이 절정은 이별을 더욱 애절하게 만드는 잔상이 되어 극적 효과를 부각시킨다. 아쉬운 대목은 녹음된 음악을 듣는다는 것. 작곡가 김선씨가 편곡한 곡을 토대로 전주국악실내악단의 국악관현악과 판소리합창단의 합창이 어우러지면서 눈대목에 방수미김경호 명창의 도창이 삽입된 곡이다. 춘향은 최선주씨, 몽룡은 김지훈씨가 맡아 이 시대의 춘향을 젊은 감각으로 풀어낸다. 전북도의 상주단체 육성 지원사업으로 선정돼 우진문화공간(이사장 양상희회장 김경곤)과 널마루무용단이 마련한 '춤으로 풀어내는 판소리 다섯바탕'은 '춘향'을 시작으로 '청의 눈물'(6월),'제비 제비 흥부야'(9월), '타고 남은 적벽'(10월), '수궁별가'(12월) 등을 차례로 올릴 예정이다. 1992년 창단된 널마루무용단은 한국적인 색채와 현대적인 감각이 조화를 이룬 전통과 창작 작품을 레퍼토리로 판소리 다섯 바탕을 한국춤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 널마루 무용단, '춤추는 춘향' = 15일 오후 5시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04.13 23:02

주목! 2012 전북연극제 - 작은소리와동작 '그러니까 너도 살아!'

연극하면 전북, 전북하면 연극이다. 이 등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직 많다. '주목! 2012 전북 연극제'는 전북연극협회(회장 류경호)의 '제28회 전북연극제'(17~22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 출품된 작품을 통해 전북 연극계 지형도를 새롭게 그려보는 코너다. 익산의 극단 작은소리와동작(대표 이도현)이 올리는 '그러니까 너도 살아!'는 일종의 모험작이다. 본업은 치과의사, 부업은 연극배우로 독특한 이력을 지닌 한상헌(45한상헌 치과 운영)씨가 쓴 초연작을 얼떨결에(?) 올리게 됐다. 이도현 대표(46)는 "매번 우리가 원하는 작품을 써줄 사람이 없어 고심하던 차에 상헌씨가 작품을 쓰고 있다는 말을 듣고 봤다. 괜찮다고 판단해 올리자고 합의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대표나 한씨는 이래저래 걱정이 앞선다. 이 대표는 '대체 호화 유람선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나'에 부딪치고, 한씨는 "쉽게 결정한다는 것의 함정을 제대로 짚었는지" 확신을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시도가 반가운 것은 끊임없이 실험하고자 하는 열정과 패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작품은 대형 호화 유람선에 탑승한 한국인 6명이 게임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유람선은 이내 좌초 돼 탑승객들은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선다. 이들은 가까스로 고장 난 구명선에 타지만, 식량도 떨어지고 배도 가라앉게 되자 누굴 버리고 살려야 할 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늙은 할머니를 살릴 것인가, 곧 아기가 태어날 젊은 가장에게 기회를 줄 것인가. 한씨는 "뭐든 결정을 할 때 몇 가지 기준 만으로 쉽게 결단내고 마는 상황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 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사람이 살고 죽는 다소 극단적인 설정 속에서도 서로 마음을 모으지 않는 군상은 이기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의 축소판 아니겠느냐"고 했다. 각자 보는 사람의 마음에 꽂히는 화두를 붙잡으면 될 것 같다. △ 극단 작은소리와동작'그러니까 너도 살아!' = 17~22일 오후 7시30분 익산 아르케 소극장. 문의 063) 852-0942.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04.12 23:02

김용택 첫 발표詩 '섬진강' 국악 칸타타로 노래한다도

섬진강은 봄처녀가 가장 빨리 오는 꽃동네다. 꽃샘추위에 멈칫하던 섬진강 매화가 화르르 피어났다. 꽃향기에 취해, 물빛에 빠져, 섬진강의 봄날 하루는 속절없이 지나간다. 그래서 섬진강은 그리움으로 남는 강이다. 전북도립국악원(원장 신현창)이 김용택 시인의 첫 발표시'섬진강'의 그리움을 담은 국악 칸타타'그 강에 가고 싶다, 섬진강'을 올린다. 김 시인은 "이 좋은 봄날에 가난한 시집 속에 잠자고 있는 시들을 노래 가락에 실어 큰 무대에 오르게 됐다"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태어난 시들이 자기 고장 사람들을 닮은 노래가 되어 불리는 일만큼 큰 기쁨이 어디 있겠느냐"며 더없이 기뻐했다. 2007년 첫 무대를 올릴 당시 류장영 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단장, 김성국 중앙대 교수, 안태상 퓨전그룹'오감도' 대표가 그의 주옥같은 시 21편을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선율로 풀어냈다. 이번엔 조승철씨가 연출을 맡아 그의 시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음악극으로 내놓는 데 신경 썼다. 곡과 곡 사이사이 무용단(단장 문정근)의 춤과 나직이 울리는 내레이션이 깔리면서 음악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출연진만 해도 180여 명. 김용택 시인이 '새들이 조용할 때'를 낭송하며 문을 연다. 군산시립합창단전주판소리합창단의 웅장한 하모니에 '스타급 성악가' 김선식(T&B 남성솔리스트앙상블 대표테너) 고은영(호남오페라단 상근 단원소프라노)씨, '스타급 명창'김경호(중요무형문화재 적벽가 이수자)장문희(도립국악원 창극단 단원)씨까지 가세시켜 완성도를 더했다. 하이라이트는 랩퍼 우타우가 들려주는'푸른 나무 2 - 소쩍새 우는 사연'. 전자베이스 기타가 국악관현악단과 곡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우타우가 랩으로 섬진강의 그리움을 속사포처럼 풀어낸다.△ 김용택과 함께하는 국악 칸타타'그 강에 가고 싶다, 섬진강' = 19일 오후 7시30분 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문의 063)290-5539. www.kukakwon.or.kr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04.12 23:02

전주시립예술단 '돈가뭄 몸살'

전주시립예술단이 예산 부족으로 하반기 정기 연주회 등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전주시의회가 쇄신과 변화를 위해 전주시립예술단 예산을 약 3억여 원을 삭감시킨 58억8000만원(지난해 61억 여 원)으로 책정한 데다, 전주시립예술단 노조가 물가 수준을 반영한 월급 인상을 요구해 약 3% 가량 임금이 오르면서 빚어진 사태다. 김시수 전주시청 전통문화과 담당자는 "인건비가 거의 80%를 차지하는 예산이 깎인 데다, 월급 인상으로 2억여 원을 더 지출하게 되면서 하반기 공연 예산이 남지 않아 사실상 5억여 원이 삭감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더구나 '전북 방문의 해'를 맞아 전주시립예술단은 릴레이 합동 공연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임기 만료로 사임한 김인재 전주시립합창단 지휘자의 후임은 3달 째 공석이고, 충원돼야 할 10여 명 예술단 단원들 역시 6월 이후에나 보강될 것으로 보여 사실상 예술단 정상화가 방치되고 있다. 단원이 5명이나 충원돼야 하는 전주시립합창단은 상임 지휘자도 없는 상황에서 46월 정기연주회를 객원 지휘자와 함께하는 무대로 준비 중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지휘자도 없이 원칙 없는 계획으로 질 높은 연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식당에서 제공하겠다고 한 음식이 기대 이하로 나오게 되면 손님들의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우려섞인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04.11 23:02

19. 연수전하기 - 130년전 판소리 경연 그림처럼 볼 수 있는 사료

종판소리가 이 땅에 뿌리내리기 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천민에서 시작해 대중적인 지지도를 얻었지만 초창기의 판소리는 천대받고 무시를 당했던 음악이었다. 그러나 판소리는 세계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될 만큼 한국을 넘어 세계가 인정하는 명품 음악이 됐다.판소리를 전승했던 당대 명창들의 기록은 구전에 그치고 일부 확대되거나 재생산되어 오늘날에도 많은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조선후기 연수전하기라는 명창들의 행보와 대우 등이 뚜렷하게 기록돼 있다.연수전하기는 1886년 9월 전주 감영에서 전라도 감사 윤영신의 아들이 문과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는 잔치가 열렸던 모습을 기록한 고문헌이다. 이 연희에서는 외부에서 연행자들을 초빙한 것이 나타난다. 이들은 크게 네 범부로 구분되는데, 먼저 창부 이날치와 장재백, 김세종인데 이들에게는 성명과 지불한 금액을 각기 따로 기재하였다.두 번째는 한양에서 온 경창동 2명으로 성명없이 기록하고 있다. 세 번째는 향창부 4명으로서 이들 역시 성명없이 단지 4명만 초대되어 지불한 금액만 기재해 놓았다, 마지막으로 한양에서 파견된 악공들도 소개되었는데, 이들은 고종이 관찰사인 윤영신의 아들이 문과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여 보내준 장악원의 악공들로써 문과 합격자들에 대한 일종의 관례였다.이 내용에서 악공의 수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들에게 말을 빌리는데 들어간 144량을 지급했다. 그 외에 이들에게는 특별히 '행하(行下)'라는 명목 아래 따로 1천량을 지급한 사실을 항목을 달리해 기록했다. 행하는 경사가 있을 때 주거나, 위로하기 위해 내리는 금품, 그리고 품삯 이외에 주는 금품을 일컫는데, 통상 놀이 등이 끝난 뒤 기생이나 광대에게 준 보수 등도 포함된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창부 중 이날치, 장재백, 김세종 등이 모두가 지방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지급 금액을 달리 명기한 것은 당대 최고의 명창에 대한 예우로 생각되고 이들의 명성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이날치 50냥, 장재백 50냥에 비해 김세종은 두배나 많은 100냥의 이른바 개런티를 받은 것은 지금의 한류처럼 유명가수에게 더 지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앞에서 밝힌 것처럼 명창과 동창 등 9명이 초대된 이 연희는 통상 각 읍치의 관아에서 판소리를 연행하는 것과 달리 대규모 연행모습이다. 이는 다수의 창자를 초청해 창자들의 자연스러운 경연 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대사습의 경연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실제로 창자들의 전기에는 다수가 참여하는 감영 등지의 연행에서 이들 사이의 경쟁이 주요 일화로 소개되고 있다. 여기에 고수까지 동반했다면 그 규모는 훨씬 커졌을 것이다. 130여년 전의 전라감영에서 전개되었던 판소리 경연대회를 그림처럼 볼 수 있는 사료다./전북도문화재전문위원·한별고 교사

  • 문화일반
  • 김원용
  • 2012.04.11 23:02

대한명인회 '도덕적 해이' 도마위

(사)대한명인회가 선정한 명인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004년 대한명인회는 순창군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대한명인' 선정을 위한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대한명인회는 '대한명인'의 자격요건으로 △자신의 분야에 20년 이상 경력, 현재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 △덕과 인품을 갖춘 사람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있는 사람 등의 조건을 마련, 지난 2005년 1차 추대식에서 문옥례씨(순창전통장류)를 선정하는 등 현재까지 13차례에 걸쳐 240명의 명인을 추대해 왔다. 하지만 자격요건과는 거리가 멀거나 범죄에 연루된 의혹이 있는 인물들이 '대한명인'에 선정된 것으로 알려져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실제 지난 2006년 명인으로 선정된 Y씨는 최근 제주도의 한 가요제의 사업회장으로 재직하면서 후원금 등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가요제 관계자는 "Y씨가 국적을 속이고 사업회장에 당선됐다"며 "회장에 당선된 뒤로도 후원금 정산 등을 공개하지 않아 경찰에 고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미국국적인 Y씨는 대한명인에 선정될 당시에도 국적을 밝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명인회는 또 지난 2009년 H상호저축은행으로부터 100억원대의 불법 대출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영화배우 N씨의 대한명인 지위도 유지시키고 있다. 하지만 대한명인회 측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명인회 윤상호 회장은 "대한명인의 자격을 국적보다 민족의 개념으로 보면 Y씨의 국적은 문제가 될 소지가 없다"며 "단체 소속 명인들은 정당한 절차에 의해 선정된 분들이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김정엽
  • 2012.04.10 23:02

도내 신진작가 10명 'C.ART' 창립전

도내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작가들이 스스로의 작업에 돌파구를 찾고 침체된 지역 화단에 새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당찬 각오로 뭉쳤다.2009~2011년 대학을 졸업한 전북대·군산대·전주대 출신 10인이 'C.ART'(대표 김지현) 모임을 만들어 9일부터 창립전을 열고 있다(20일까지 전북도청 기획전시실). "불안정한 국내 미술시장과 경기 침체의 상황에 맞물려 대다수의 신진작가들이 작업 활동을 중도 포기하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취업률과 학교지원율로 평가되는 대학은 미술대학의 축소와 폐과로 인해 예술인재가 고갈되어 가고 있습니다."미술계 안팎의 이같은 위기감이 커지고 있지만, 막상 신진 작가들에게 대안 또한 마땅치 않은 게 현실. 신진 작가들의 활동 폭을 넓히고 현 미술계의 구조적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달리 뾰족한 대안이 없는 실정에서 작가간 교류와 주기적인 전시회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의기투합했다는 게 김지현 대표의 설명이다. 창립전 타이틀은'THE BLIND'. 남다른, 혹은 독특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특별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의 전시라는 의미다. 예술가의 입장에서 시대와 사회를 관조하고 현실과 이상의 갈등 속에 미술가를 꿈꾸며 그것에 눈이 먼 신진작가들의 전시라는 것. 일상 속에 교차되는 현실의 문제들을 담은, 자기 색깔이 분명한 신진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C.ART'창립전=9일부터 20일까지 전북도청 기획전시실.

  • 문화일반
  • 김원용
  • 2012.04.10 23:02

밥 티

아내가 밥상을 차리기 위해 반찬들을 그릇에 담아 놓으면 나는 그 반찬들을 가져다가 밥상에 차려 놓는다. 어쩔 때는 밥을 푸라고도 하는데 밥을 푸려고 밥솥을 열 때 김이 확 솟아오르는 밥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 한다. 하얀 김이 솟아나는 것도 좋지만 김이 걷힌 후 밥솥 속을 바라보는 일이 더 즐겁다. 김이 솟아나면 밥 밖으로 나와 있던 물기가 스며드는 피시시하는 소리도 좋고 하얀 밥 티들이 이리저리 누워 있는 모습은 정말 눈부시다. 쌀이 불과 물을 만나 밥이 되는 그 신비함이라니. 지금 밥통은 웬 일인지 밥에 구멍이 송송송 뚫리지 않지만 시골에서 불을 때서 한 밥들은 밥솥을 여는 순간 밥에 송송송 뚫린 까만 구멍을 바라보는 일은 늘 즐거운 일이었다. 아무튼 주걱으로 밥을 뒤적여 흰 쌀밥을 밥그릇에 퍼 담을 때 밥그릇에 담긴 밥을 보면 그 또한 아름답고 신비롭다. 흰 그릇에 담긴 흰 쌀밥을 밥상에 올려놓고 가만히 보면 이렇게 밥이 되기까지의 밥의 여정이 생각난다. 하얀 쌀밥 속에 푸른 완두콩이라도 드문드문 섞여 있으면 "우와! 예술이다 예술!"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밥뿐이 아니다. 하얀 접시에 가지런히 썰어 살며시 얹어 놓은 붉은 김치는 또 어떤가. 콩나물 국, 상추 속에 가만히 놓여 있는 풋고추, 부글부글 끓고 있는 된장국, 가닥 채 넣고 끓인 김치찌개, 나란히 놓인 젓가락과 수저, 밥상 위에 차려진 모든 반찬과 밥을 한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렇게 사물들이(반찬들이) 조화롭게 배치된 그림이나 사진이 없을 것 같고, 마음을 풍요롭고도 아름답게 해 주는 이만한 산문 한편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저녁밥을 하기 위해 아내랑 시장에 따라갈 때가 있다. 나는 재래시장에 가는 것을 좋아 한다. 재래시장에 가면 상점 주인들이 대개 나이 드신 분들이다. 물건을 사고 팔 때 그 판을 즐겁고 재미있고 신나게 살려내는 신명을 아내는 가지고 있어서 상점 할머니는 늘 더 주려고 하고 아내는 늘 적게 받으려고 한다. 그 실강이의 몸짓 손짓 얼굴 표정, 마음 씀씀이를 읽는 게 나는 좋다. 이런 저런 반찬거리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걷는 발걸음은 늘 즐겁다. 때로는 시장 모퉁이에 있는 오뎅집에 들려 오뎅을 사먹다가 오뎅집에서 만든 호떡을 사먹는 바람에 저녁을 그 걸로 그냥 대신 할 때도 있다. 그 일도 아내와 나에게 하루를 홀가분하게 해 주는 일이어서 하루가 가뿐할 때가 있다. 재래시장은 내게 늘 큰 그림이다. 나는 늘 그 그림 속을 돌아다닌다. 그렇게 사 온 반찬거리로 반찬을 만들고 밥을 하는 아내는 늘 신바람이 나 있다. 부엌을 오가는 몸짓이 늘 가뿐해 보인다. 어쩔 때는 흥얼거리는 콧소리가 들린다. 밥을 하는 게 그렇게 즐거운가 보다. 아니 즐거워한다. 밥을 하는 일이야 말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 하는 예술이라는 것을 아내는 알고 있는 것이다. 아니, 밥을 하는 일을 스스로 예술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얀 쌀이 밥이 되고, 푸른 배추가 국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고, 할머니들에게서 신나고 재미있게 사 온 콩나물 한 주먹이, 콩나물무침이 되어 접시위에 차려진 그 모양들이 예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밥 하는 일과 시 쓰는 일이 뭐가 다른가. 밥 하는 일이 그림 그리는 일과 무슨 차이가 나는가. 밥 하는 일과 영화감독을 하는 일이 다르다고 생각하며 차려진 밥상은 그 맛이 다르다. 예술의 가장 기본은 죽어가는 것들을 살려내는 생명력이다. 밥 티 한 알 놓여 있는 모양에서 전 우주의 이치와 질서, 그리고 그 엄연한 존재들의 팽팽한 기운과 긴장, 그들의 아름다운 조화를 읽는다. 하루 삼시 세끼 밥상은 장엄하다. 그러니 밥을 때운다고 하지 말라.

  • 문화일반
  • 김원용
  • 2012.04.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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