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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정숙인 소설가 - 박병윤 채록시집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詩가 되다’

하늘의 별이 그대로 쏟아지는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 사봉리, 수만리, 신월리, 만경강 발원 샘으로부터 시작된 시인의 마을에는 누가 살까? 다섯 살부터 백 세까지, 어머니는 눈물이 죽죽 흘러 자운영꽃을 적시고, 곶감 박사는 야생 고욤나무에 접을 붙여 고종시를 만들고, 밤티마을 다섯 살 채언이는 강아지 미오와 딸기와 놀고. 반딧불이가 마당을 밝혀주면 시인의 이름을 낱낱이 호명하며 고향을 가슴에 담는다. 강영옥, 구만옥, 국승구, 국중하, 권구연, 길영숙, 김금석, 김기화, 김명옥, 김미애, 김영두, 김영미, 김용만, 김정환, 김종환, 故 김진갑, 김초엽, 김형순, 김호성, 나동현, 박나윤, 박문수, 박영환, 박인현, 박종린, 박지현, 박채언, 방순임, 배창렬, 배학기, 백남인, 백성례, 설유정, 송남희, 송은영, 수만댁, 심옥수, 오경표, 오영만, 오정현, 유경태, 유승정, 유재룡, 이강현, 이계옥, 이귀례, 이기성, 이기순, 이노성, 이덕범, 이보영, 이승철, 이인구, 이형순, 인정식, 장영선, 전영안, 정영천, 정정순, 조인식, 조인철, 최경자, 최귀호, 황에스더, 경로당 분들.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마을 하나가 사라진다고 한다. 노인의 토막말은, 8대 오지奧地였다는 동상면 산골이 일제 강점기를 지나고 한국전쟁을 지나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 팬데믹을 거치는 동안 자신의 이름을 내걸지 않는 동상면 시인 면장에 의해 구술시로 태어난다. 동상면 주민의 삶은 그들의 것이고, 그들의 언어는 구술채록 시인에 의해 시가 되었다. 과거와 미래가 겹쳐진 현재의 기억을 수평적으로 흐르게 두고, 안전한 회상의 방법을 통해 한 개인의 삶이 생애사적으로 기록되고 저장되는 것이다. 1부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詩가 되다 2부 호랭이 물어가네 3부 다시 호미를 들다 4부 문필봉에 뜬 달 5부 고향에 그린 수채화 6부 마을이 시詩시柿로 물들다 이렇게 6부로 이뤄진 드라마는 어떤 고향, 어느 마을, 누구의 이야기가 된다. 동상면의 다섯 손가락의 보물은 시의 모티브가 되고, 다시 동상골 삶터는 그림으로 재현된다. 동상 최고령 어르신의 삶터와 감칼/ 동상주조장과 막걸리 술항아리/ 시골살이 젊은 가족 꿈나무체험관찰학습장 이야기/ 장군봉이 지켜온 고종시 감나무/ 시인의 방이 된 어머니의 손때 묻은 옛 물건들 (동상골 삶터를 그리다, 부분) 감 깎기가 한창일 때 동상면 사람들은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아니라 東上二夢, 동상 100년 역사 찾기와 동상주민 예술가 만들기, 동상면의 두 가지 꿈을 꾼다. 완주군은 비매품인 이 시집을 동상면의 동상이몽 시인의 마을공동체 육성 프로그램 교육과 홍보 자료로 활용하고, 독자들을 위해 곧 전국 서점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윤흥길 소설가의 서평처럼 깊은 산골 작은 고장 동상면에서 왜배기 대짜 물건이 돌출했다. 별다른 존재감 없이 살아온 촌로와 촌부들 중심으로 갑자기 시인집단이 출현한 것이다. 손수 글로 옮기지 못해 구술 형식을 빌릴 수밖에 없었던 그 무명 시인들의 가슴 속 통나무 안에 당초 누가 그토록 영롱한 시심을 심어놓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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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28 18:00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작가 - 최명희 소설 ‘혼불’

소리 내 읽으면 귀에 익은 억양이 감미로우나 새삼스럽다. 잊고 지내온 아득한 말들. 우리 유전자 어딘가에 숨어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쩍쩍, 입맛이 당긴다. 전라북도 곳곳에서 너나없이 쓰는 독특한 말이 숱하게 녹아 있는 최명희(19471998)의 대하소설 「혼불」. 작가는 첫 문장을 쓸 때부터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운율을 타고 가슴에 척 안겨드는 문장이 되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우리말 고유의 리듬과 울림을 고려해 쓴 최명희의 문장. 독자들은 이것을 혼불체라고 부른다. 「혼불」은 어둡고 암울한 1930년대, 전주와 남원, 만주를 배경으로 한다. 국권을 잃었지만, 여전히 조선말의 정신구조와 문화를 지탱하던 이중적인 시대에 처참하게 부서지고, 상처받고, 뒤집히고, 고뇌하며, 한없이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삶을 그렸다. 작가가 선사한 문학의 혼은 그가 쓴 원고지 칸칸이 불꽃처럼 피어났다. 꽃심으로 전라도 정신을 되살렸고, 작품에 담긴 우리의 생활사와 풍속사, 의례와 속신 등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콘텐츠로 성장하며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다. 전라도의 역사와 삶을, 겉과 속내를 빠짐없이 담은 「혼불」이 있어 이 땅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 깊은 맛을 내는 도시가 되고 있다. 작가 최명희는 「혼불」을 통해 순결한 모국어를 다시 살리고 싶었다.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삶이 스며들고 우러난 모국어. 풍요로우나 피폐해 있는 현대인들의 정서에 본질적인 고향의 불빛 한 점을 전할 수 있다면,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근원적인 삶의 생명소가 있다면, 그것을 찾아서 한 시대의 인간과 문화와 자연을 언어로 건져 나의 모국에 한 소쿠리 모국어로 가득 바치고 싶은 간절한 소망.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이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자신을 사로잡는 명제는 전아하고, 흐드러지면서, 아름답고, 정확한 우리 모국어의 뼈와 살, 그리고 미묘한 우리말, 우리 혼의 무늬를 어떻게 하면 복원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가장 한국적인 말의 씨앗으로 「춘향전」「심청전」과 같은 우리 고유의 이야기 형태를 살리면서 서구의 것이 아닌 이 땅의 서술방식을 소설로 형상화하는 일. 기승전결의 줄거리 위주가 아니라, 낱낱의 단위로도 충분히 독립된 작품을 이룰 수 있는 장과 문장과 낱말을 쓰고 싶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그저 그런 이야기, 무심코 지나치는 이야기, 한 맺힌 이야기, 깊고 낮은 한숨, 꽃잎 피고 지는 소리, 골목 어귀 낮은 꽃들의 일렁임. 골짜기에 물이 모이듯이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작가의 가슴 저 밑바닥으로 들어와 헤아릴 수 없이 쌓였다. 그것들이 뭉치고 어우러진 것들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불덩이를 이뤄, 결국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새긴 작품이 「혼불」이다. 「혼불」의 흔전만전한 언어의 잔치를 누리면 오히려 독자 스스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게 된다. 쓸쓸하고 마음 상하는 일이 유달리 많은 지금, 최명희의 소설 「혼불」을 다시 펼쳐야 하는 이유다. 마음 닿고 싶은 이에게 먼저 전하고 싶은 문장과 따뜻한 위로가 「혼불」에 있다. △최기우 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됐다. 희곡집 『상봉』과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인문서 『전주, 느리게 걷기』와 『꽃심 전주』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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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21 18:11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문신 시인 - 최기우 희곡 ‘조선의 여자’

역사는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라고 압축할 수 있지만, 기억은 한 줄의 문장으로 추려 쓸 수 없다. 역사는 과거형으로 마침표 찍어도 되지만, 기억은 쉼표를 찍어가며 거듭 살아지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삶은 역사의 문장으로 기록되지 않고 영혼의 노래로 기억된다. 이것이 극작가 최기우의 희곡집 <조선의 여자>를 읽고 난 대체의 감회다. 작가 최기우가 기억해 낸 일은 일제강점기 후반 조선 사람들의 심연이지만, 그가 기록하고 있는 것은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이 흐른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막이 시작하면 가난이야 가난이야. 웬수녀르 가난이야라고 송동심이 부르는 노래는 우리 시대에도 유효한 탄식이다. 그러나 최기우의 손끝에서 야무지게 기록되는 것들은 진부한 가난 서사가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발생하는 인간적 윤리와 역사적 성찰의 부재야말로 뼈아픈 인간적 실책이라는 것이 <조선의 여자>에 기록된 기억이다. <조선의 여자>는 1943년 봄부터 1946년 겨울까지를 담고 있다. 기본 서사는 송순자, 송동심 두 이복자매가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서사의 본질은 제국화되어 있는 남성적 폭력의 허위성을 폭로하는데 있다. 가족 서사를 바탕에 둔 <조선의 여자>는 제국주의적 폭력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폭로하기 위해 가족 내 남녀의 권력 역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 송막동은 도박중독자로 반월댁, 세내댁 두 여성을 거느린다. 이 구도는 본부인과 첩을 공공연하게 거느렸던 전근대적 관계이다. 그러나 개화된 시대에도 이 구도는 아들 송종복과 두 딸의 관계 속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카피(copy)되어 있다. 이러한 상징 권력은 폭력으로 지탱된다. 송막동이 반월댁, 세내댁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일, 위안부 징발을 피해 부랴부랴 시집 간 송순자가 남편에게 당하는 폭력, 송동심이 헌병에게 당하는 폭력은 개인에게 내면화되어 있는 제국주의의 상징이다. 그러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파멸시킨다는 작가의 관점이다. 위안부로 끌려가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송순자와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깨달고 자신의 손목을 도끼로 찍어버리는 아버지 송막동 모두 제국주의의 폭력에 희생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도 상징폭력이 건재하며, 새로운 희생자를 찾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사실을 최기우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작가는 1945년 당시 일본 천황의 항복선언문 낭독과 현재 일본 정부의 위안부 망언 관련 뉴스를 효과음으로 들려준다. 이렇게 반성할 줄 모르는 유령들이 환청처럼 떠돌아다니는 것이 역사의 현장이다. 방심하는 순간 우리 역사는 왜곡된 기억으로 떠도는 사람 가죽 뒤집어쓴 승냥이들에게 처참하게 물어뜯길 것이다. 기억은 기억하는 사람과 함께 희미해지다가 종국에는 사라지고 만다. 이것이 기억을 기록해야만 하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기억을 기록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누락되는 진실을 얼마나 간절하게 지켜내느냐이다. 기록하는 사람의 양심과 기록하고자 하는 의도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의 여자>는 작가 최기우가 기록한 우리 시대의 진심이고자 한다. 그 진심 속에 역사와 시대의 양심이 뜨겁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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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4 17:5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진숙 수필가 - 은유 ‘다가오는 말들’

새봄이 연둣빛 향기로 문을 열면 노랑턱멧새는 높은 울림으로 숲의 고요를 깨운다. 박새, 콩새, 딱새들도 봄의 노래를 부르느라 부산스럽다. 그 소리에 놀란 벚꽃은 하얀 나비 되어 날아간다. 학산, 고덕산, 경각산과 모악산, 모든 산들은 온통 산벚꽃들이 쏟아놓은 언어들로 가득하다. 그 말랑말랑한 봄 언어들을 엿듣는 이들에게 넌지시 건네고 싶은 책이 있다. 5부, 81개의 꼭지로 구성된 에세이집,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이다. 작가는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에 무지하고 자기와 서먹하기에, 글을 쓰면서 나를 알아가는 쾌감도 크다. 그렇게 마음을 다 쏟는 태도로 삶을 기록할 때라야 신체에 닿는 언어를 낳고 그런 언어만이 타자에게 전해진다(39쪽)며 최선의 나를 찾기 위해 글을 쓰라 한다. 나와 친밀해지고 앎의 작용이 일어난 후라야 타인에게 다가갈 언어가 피어날 수 있으리라. 한편 앎은 몸을 이기지 못한다(29쪽)며 관습적이고 현재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길 권한다.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서 어리석은 확신을 가질 때 초래되는 위험성도 또 하나의 폭력임을 알게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켜켜이 쌓여진 잘못된 관습과 편견에 사로잡혀서, 우물 안의 세상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허덕이는 인생의 가벼움에 대한 일침이다. 은유 작가처럼 사람들의 말들이 내게로 온다.(5쪽)고 고백하려면 먼저 내 마음의 창문을 열어놓는 밑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리라. 마음의 조리개를 열어 투명해진 눈이 되어야 당신의 삶에 밑줄(85쪽)을 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를 들여다볼 수 있을 때, 그에게 내 귀를 오롯이 심어놓을 때라야 그의 말들이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다가온 사람들의 말을 통해 이웃을, 내가 속한 세상을 읽어낼 수 있으리라.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릴 때, 마음이 뜨거워 질 때, 국가 폭력, 가정폭력 및 성폭력, 일상의 폭력, 편견과 차별의 언어폭력(50쪽)을 알아챌 수 있다고 한다. 불의에 침묵하지 말고, 관습으로 처리하지 말고, 방치하지 말라한다. 맞서 싸우라한다. 삶을 담아낼 어휘는 항상 모자라고 삶은 언제나 말보다 크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작가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아집과 낡은 신념에 사로잡혀 있지 않나? 이웃의 별이 빛날 수 있도록 스스로 어둠으로 내려앉아 배경이 되어 줄 수 있는가? 내가 속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묻고 답을 찾아갈 수 있다.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가 소개한 많은 일화를 통해 먼저 이웃에 대한 몰이해와 선입견, 편견과 차별이 있었음을 반성하게 된다. 나아가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당연한 것들을 빼앗기고 잘못한 것 없이 외면당하며 상처 받았을 아픈 영혼들, 아직도 울고 있을 그들의 삶에 나의 무관심과 무지도 한 몫 했음을 깨닫게 한다. 책임을 묻는다. 내가 먼저 옳은 방향으로 돌아서고 이웃에게 손 내밀어 함께 나아갈 수 있을 때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제보다 한 치라도 더 밝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얘기한다. 비록 어제는 연약한 어른이었으나 오늘은 진정한 어른이 되어 인생을 보는 눈이 한층 깊고 넓어지게 된다. 벚꽃 꽃말은 중간고사(293쪽)라는 중고등학생들 사이의 유행어가 아프게 다가오는 현실, 거기에서 길어 올린 겪은 일, 들은 말, 읽은 말들로 엮은 에세이 모음집,〈다가오는 말들〉. 작가는 봄 산에 충만한 새들의 소리와 난만한 봄빛 향기로 말을 건넨다. 이 이야기들이 내게 그랬듯이 다른 이들에게도 일상의 쉼, 생각의 틈을 열어주기를, 공감의 힘을 길러주는 말들로 다가오기를 바라.(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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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07 18:0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시인 - 도혜숙 ‘고요를 끓이다’

자신에게 망명하는 순간이 있다. 숨을 고를 사이도 없이 급류에 휩쓸리다가 자신을 읽은 눈동자 하나가 날개를 휘저어 구름을 찢고 등고선 밖으로 날아간다. 길이 눕는 곳을 찾아 헤매던 중 늑골에 갇혀있던 비밀이 열리면서 그이는 기꺼이 자상(自傷)을 입고 객창(客窓)에 젖는다. 나는 그이를 시인이라 부르련다. 도혜숙 시인의 발화(發話)는 고요하다. 시인의 절대음감인 침묵은 격정적이거나 격앙되지 않지만 최대의 울림통을 만들어 낸다. 그 속에 휘발되지 않은 것들의 서사가 있고 서정의 지류에서 건져 올린 진실의 실루엣 같은 것들이 보인다. 어떤 진실은 연약해서 또는 너무나 강력해서 도사리기만 할 뿐 말해지지 않는다. 시인은 고요해져야 떠오르는 진실의 방법을 터득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너와 당신의 진실이 함부로 발설되지 않고 온전하게 기거할 곳을 마련한다. 거기는 시인 자신의 공간이요 시간의 축적이기도 하다. 도혜숙 시인은 발설한 순간 훼손된 진실이라면, 내놓을 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오랜 시간 고민했을 것이다. 너무 쉽게 발설하는 진실들에는 고통의 패러독스가 없기 때문이다. 시인의 고요 속에는 이율배반적이게도 탈주하고자 하는 에너지가 소용돌이친다. 낭창한 바이올린 소리, 피아노 연주음악, 러시아 민요가수의 노래와 먹먹한 빗소리. 그 시그널을 따라가다 보면 도처에 존재와 관계에 대한 페이소스가 짙다. 따라서 소리의 이미지를 침묵의 또 다른 버전으로 표현해내는데 시집 <고요를 끓이다>는 탁월하다. 그녀를 상념에 젖게 하는 것은 늙어가는 육체가 아니라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생긴 기억들의 역류다. 정신과 육체가 교섭하는 또는 그 불일치 속에서 균열을 드러내는 육체의 시간이 한결 가벼워진 몸이 되어 춘삼월 눈발처럼 내린다. 그리고 욕망의 끝에 다다른 성자처럼 폐기처분하지 못하고 오래 품어온 이야기를 정갈하고 기품 있게 풀어놓는 것이다. 누구의 삶이든 너무 많이 말해지는 것들은 경계해야 한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사건건의 발화는 시의 길이 아니므로 시인은 침묵 사이사이 여백을 견지해야 했을 것이다. 이것이 고요를 끓이는 그녀의 방식이다. 너무 뻔하지도 야박하지도 않는 우아한 균형을 갖추고 있는 시인이 앞으로 길어 올릴 생성 값에 대해 모르지만 고요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어차피 아는 것을 쓰는 것은 시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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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31 18:13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보윤 소설가 - 이시은 소설집 ‘고래 365’

이시은 작가의 소설집은 핫하다. 핫하다의 사전적 의미처럼 매력이 넘치고, 섹시하고, 열정적이다. hot한 문제적 인간들이 매 작품마다 등장한다. 그래서일까, 같은 주제나 같은 인물로 작품을 잇달아 지은 연작소설처럼 읽힌다. 이시은 작가는 교도소 안 곳곳을 돋보기로 들여다본다. 미셀 푸코는 개인이 처벌받는 것은 법률 위반 때문이 아니라 전체 사회와 대립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근대 이후 교도소는 이런 개인을 처벌하거나 교정하는 공간이 되었다. 삭막한 시멘트 담장으로 둘러싸인 교도소는 세상과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작가는 굳게 닫힌 철문 안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 처벌받는 개인과 교정하는 개인의 길항을 그려 낸다. <도어>의 상습절도 전과자 산들은 모범적인 수용 생활로 사소 자리를 꿰찬다. 야무지고 눈치가 빠르고 입이 무거운 그녀는 덜렁이로 통하는 유니폼의 빈틈을 노려 문어와 쪽지로 통방한다. 문어는 그녀에게 정치범 5가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만 찌르라고 한다. 그에 대한 보상은 산들이 남의 집을 털며 평생 꿈꾸어온 집이다. <고래 365>의 나는 식품위생법 위반, 같은 방의 365번은 보건위생법 위반으로 수감된다. 나는 고래를 보러 갈 날을 앞당기기 위해 성실히 조리장으로 일한다. 그러나 출소는 요원해 보인다. 타투 일인자를 꿈꾸는 365번은 도구함 속의 칼을 양잿물 항아리에 깊이 숨겨 놓는다. 칼을 찾지 못한 담당은 문책을 당한다. 깊은 밤 나는 365번을 깨워 고래 문신을 부탁하고, 365번은 장미 가시로 땀을 뜬 자리에 칼날로 선명하게 선을 그려나간다. <층>의 유니폼 나는 교도관이다. 교정교화를 신뢰하지 않는 나와 달리 팀장은 수감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유해화학물질 흡입으로 교도소를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조진자를 두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진자의 동거남이 사망하자, 팀장은 도리를 앞세워 휴가를 건의하고, 나는 믿을 수 없는 종이라며 반대한다. 진자의 귀휴는 나의 의견으로 불허된다. 순찰을 돌던 나는 진자에게 고무장갑으로 목이 졸린다. <달팽이 행로>에는 한때 연인이었으나 사형수와 사형집행인으로 만난 두 남자가 나온다. 사형제가 국회를 통과하면서 오랫동안 집행이 미뤄진 사형수들은 사형집행장이 설치된 곳으로 이송된다. 나는 순번제에 의해 석기의 형 집행자가 된다. 나와 헤어진 뒤 나와 닮은 사람을 찾아다니다가 연쇄 살인자가 된 석기에게 나는 석기가 좋아하던 흰색 운동화를 선물한다. 석기는 내게 편지를 남긴다. 운동화는 너무 깨끗해 신을 수 없었다. 운동화를 받는 순간 놀랍게도 내 모든 얽힌 감정들이 녹아내리더구나. 그들은 왜 교도소로 갔을까? 작가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핍진한 묘사로 복원한다. 고아로 마리아집에서 태어나 소녀원과 교도소, 갱생보호소를 거쳐 시립공동묘지에 묻히는 인생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인생의 문을 잘못 연 대가로 평생 미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연민한다. 미덕이 하나 더 있다. 작가는 작품 곳곳에 나무를 식재한다. 산수유나무 감나무 장미 소철 라일락 철쭉 층층나무 엄나무 굴참나무 왕버들 사이프러스. 땅을 가리지 않는 식물들은 어디서든 뿌리를 내린다. 소설 속 인물들의 욕망은 해를 향해 가지를 뻗는 나무들처럼 담박하다. 어쩌면 그들은 문제적 인간이 아니라 문제를 해체하는 사람들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은 강렬하고 핫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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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24 17:5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길상 시인 - 코맥 매카시 ‘모두 다 예쁜 말들’

언제부터인가 교양소설 또는 성장소설을 멀리했다. 다른 말들은 술술 나오는데 이상하게 내면의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성장소설의 중요 문구가 눈에 띌 때마다 이 나이에 무슨 내면의 성장과 아름다움을 찾지라고 익살스럽게 말하면서도 괴롭지 않은 그 뻔뻔함에 괴로웠다. 성장소설 『모두 다 예쁜 말들』에서 그래디는 사물의 본질적 가치보다 교환가치를 우선시하면서도 교양인의 삶을 강조하는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의 속물적 근성에 환멸을 느낀다. 아버지와 이혼한 엄마는 수지가 안 맞는다는 이유로 목장을 팔려고 했다. 그래디는 그 세계에서 속물로 사는 것을 거부하며 방랑의 삶을 선택한다. 그런 방랑과 좌절을 통한 인간의 존엄성 회복이 바로 이 소설의 주제이면서 코맥 매카시 대부분의 소설의 핵심적 주제다. 이 작품은 함께 멕시코로 떠나는 그래디와 롤린스의 끈끈한 우정, 블레빈스의 무모한 살인으로 인한 시련, 목장주의 딸 알레한드라와의 사랑 및 그녀의 보수적인 아버지와 도덕적으로 타락한 멕시코 경찰서장의 음모와 협박 등의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인물들의 행동 이면의 심리다. 경찰서장에 의해 낭패스런 곤경에 처할 때마다 그래디는 도덕적 순결과 정신력으로 그 난관을 극복하는 반면 목장주와 그의 누나는 그래디가 왜 알레한드라를 사랑하는지, 갑자기 왜 말도둑으로 몰려 감옥에 갔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래디의 진의를 의심한다. 혹시 말썽이 생기면 묵인하거나 그때그때 타협하면 해결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삶의 진실은 황폐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만 다가오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블레빈스의 범죄를 구실 삼아 일행의 말을 뺏으려고 음모를 꾸미는 경찰서장과 그 패거리들은 권력자나 자본의 논리에 순응하며 부를 누리는 속물적인 인간들이었다. 약자에게 몰인정한 법률의 위력을 실감한 그래디는 다시 고심한다. 이곳은 나의 땅이 아니야라고 고백하며 메마른 황무지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고향에 돌아와서도 그래디의 정신적 방황은 계속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데는 사회적 원인이 크겠지만 무엇보다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가 곳곳에 잔존해 있는 사회에서 그 극복방법은 당장 주어질 수 없고 시련과 고뇌 속에서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면적으로 성장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꾸준히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흡한 점에 대해 실존적 위기감을 느끼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살아간다는 뜻일 것이다. 교양인의 길은 인격의 도달점이나 자기완성이 아니다. 자기모순을 회피하지 않고 참된 삶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런 삶이 아닐까. 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린 메말라 가는 사회에 지금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 이길상 시인은 2001년 전북일보와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으며, 시와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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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17 18: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동화작가 - 임정자 ‘물이, 길 떠나는 아이’

책이 많지 않던 시기에는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할머니의 입을 통해 옛이야기를 한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옛이야기는 이처럼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개연성이 부족하기도 하고 영웅소설처럼 하늘 신이 불쑥 끼어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이야기 속에 현실을 그려내면서 소망이 얹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는 이분법적인 단순한 플롯에도 쉽게 빠져들기 일쑤다. 《물이, 길 떠나는 아이》는 2005년에 처음 출판되었던 동화이다. 그러다가 2020년에 새롭게 출간된 개정판이다. 이 작품은 옛이야기에서 소재를 가져왔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동안 마치 할머니가 옆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흡입력이 있다. 주인공 물이는 자식이 없는 부모님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맑은 물을 떠 놓고 삼신 할매한테 기도하면서 얻은 귀한 아이였다. 하지만 삼신 할매 옆에 있던 선녀의 잘못으로 아이의 옷 솔기를 터지게 하는 실수를 하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 결함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삼신 할매가 부모님의 기도와 정성에 대한 보답으로 물이를 보내주었는데도 어머니는 아들이 아닌 것에 서운함을 드러낸다. 이렇게 어머니의 말은 독이 되어 새로 태어난 아이는 영혼의 한 조각을 잃고 만다. 영혼의 한 조각은 구렁이가 되어 주인공과 삶을 같이 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물이 곁에는 늘 구렁이가 함께 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결국 부모와도 함께 살 수 없게 된다. 구렁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사람들의 편견과 허위와 욕망에 부딪친다. 그럼에도 물이는 끊임없이 자기완성을 위해 삶을 개척해 나간다. 비록 옛이야기라는 옷을 입었지만 물이를 통해 인간은 누구나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다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그 어떤 사람도 완벽하게 태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들의 결함을 통해 성찰의 기회를 얻게 되고, 서로 의지하며 삶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이 책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수많은 길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삶은 먼 길을 돌아가야 할 때도 있고, 평탄한 길을 걷듯 편안하기도 하고, 견딜 수 없는 힘겨운 날도 있다. 때론 자기완성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기여해야 할 때도 있고, 기여했음에도 이해받지 못할 때도 있다. 이렇듯 완전하지 않은 인간이 살아가며 겪게 되는 많은 어려움도 자기완성의 일부분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되새기게 하는 책이다. 우리가 맞이하는 하루하루는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준비 없이 맞이하는 시간들이 많지만, 인간만이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세상과 관계를 맺기 위한 방식을 스스로 검토하고 결정해 나간다. 어느덧 살갗에 닿는 기온이 달라지고 있다. 날씨보다 마음이 얼어붙었던 한 해가 지났다. 이제 우리에게 수시로 다가오는 변화와 시련들을 감내하는 시지프스로 하루를 열어야 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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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10 18:2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 - 정만춘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몇몇 사람들과 길거나 짧게 살다 완전한 독립을 시작한 지 6개월에 접어들었다. 혼자도 잘사는 나는 다시 친구들과 함께 살 궁리를 한다. 결혼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은 만들고 싶다. 소담스러운 주거 공동체를 꿈꾼다. 하지만 본격적인 실천으로 이어진 적은 없다. 어딘가 복잡할 것 같고, 왜인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미래는 나를 불안하게 한다. 다수의 사람이 인정하고 상상하는 방식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어진 단어 이외의 선택을 말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여기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에서도 선택지의 바깥, 동거를 말한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면, 굳이 사회가 인정하는 가족의 테두리 안에 들어있지 않아도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다. (중략) 가족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욱여넣는 대신 가족의 범위를 넓히는 게 현명한 방법이리라.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中) 제도권 밖 가족의 모습은 우산 밖으로 튀어나온 어깨와 같을지 모른다. 우산이 작아 비죽 튀어나온 어깨가 줄곧 거센 비를 맞듯, 가족이나 식구라는 일상적인 단어로 서로를 묶고 있지만 실상 아무런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이 책은 축축해진 어깨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깨를 구겨 넣는 대신에 더 큰 우산을 들자고 말한다. 선택지에 고르고 싶은 것이 없어 고민하던 내게 선택하지 않는 방법, 선택지를 만드는 방법을 상상하게 했다. 각각의 세계를 가진 두 사람이 한 집에 모여 살며 다름을 발견하는 이야기부터 제도와 서류에 관한 이야기까지.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지만, 나만의 방은 갖고 싶은 이야기. 일상을 나누지만, 명절에는 내 집에 가고 싶은 이야기. 여자 둘이 사랑하며 사는 이야기. 나의 고민과 걱정에 대한 모종의 대답을 호쾌한 작가의 목소리로 듣는다. 책의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장거리 마라톤을 함께 하는 페이스메이커가 된 기분이 든다. 이 긴 레이스의 끝이 보이지는 않지만, 왜인지 작가와 나란히 뛰는 것 같은 상상에 사로잡힌다. 레이스의 끝을 알 수 없어도 괜찮다. 내가 뛰고 싶은 트랙이 없다며 슬퍼할 필요도 없다. 대신 내가 가고 싶은 길로 방향을 틀어 뛰더라도 두려움 대신 용기를 낼 수 있을 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옆에서 함께 뛰어줄지도, 앞에서 뛰고 있던 누군가를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곁에서 새로운 길을 환영하는 기쁨의 춤을 출지도. 빈칸과 빈칸 사이에 억지로 자신을 욱여넣을 필요는 없다. 그 시간에 차라리 트로트를 틀고 막춤을 춰보자. 연자 언니의 말대로.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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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03 17:5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헌수 시인 - 경종호 디카시집 <그늘을 새긴다는 것>

자꾸만 멀어지는 기억의 흔적을 붙잡아두는 일은 매력적이다. 글로 남기고 사진으로 저장하는 일은 풍경 밖에서 마음의 정서를 기록하는 재미와 발견의 기쁨을 준다. 눈웃음이 선하고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경종호 시인의 디카시집을 펼쳐보았다. 디카시는 자연이나 사물에서 포착한 순간의 시적형상을 디지털카메라나 휴대폰카메라로 찍어 문자로 재현하는 영상과 문자예술이다. 활자와 이미지라는 두 개의 대상을 하나의 의미적 텍스트로 완성하는 표현양식이다. 사물에 닿는 눈빛의 한계를 순간적으로 받아 적은 것 일까? 스쳐 지나가는 의미를 예민한 감각으로 기억해 낸 것일까? 손닿을 듯 낚아채는 시인의 눈매가 절묘하다.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물을 시인의 깊은 사유로 담은 디카시집은, 그의 생태적인 감각이 견고하게 들어있는 기록장치이며 시인의 사진과 결합된 시는 농익은 듯 때론 낯설게 다가서기에 좋다. 그가 내어놓은 이미지에는 일관된 의미와 구체적인 원형의 구도가 들어있다. 자연과 사물이 환기시켜주는 언어를 발견하며 시인의 촉수는 더욱 밝아졌으리라 믿는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라고 프랑스 시인 랭보는 말했다. 상처받은 영혼이 정밀하게 바라보며 자연의 풍경과 삶을 구성하며 나가는 일, 티끌 같은 삶의 얼룩을 온전하게 바라보는 일, <상처>라는 시에서 여린 것들을 품은 시인의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파리 떨어진 자리는 좀 더 굵었습니다 나비가 닿지 못하는 계절엔 좀 더 딱딱하게 비틀리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도 꽃이 환장하게 피어대는 날들은 곧 올 것입니다 -상처 전문 삶의 중요한 배경이나 찰나로 번져가는 흔적, 조형물을 통해서 시인이 지향하는 풍부한 프레임이 가득하다. 관찰자적 시선으로 사물을 더듬어보고 받아 적는 일을 시인은 촘촘하게 그려내었다. 자연이 남긴 다양한 문양은 시인의 문장 속에서 친밀하게 생명력을 보여준다. 때론 사물을 통해 자신이 경험해 온 시간을 드러내고, 흐릿하고 맹숭한 기억은 머문 자리에 선명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생이 다 한 어느 날 내 안에도 커다란 구멍이 있어 그 사람 살아 있었으면 합니다 -사람 하나 전문 나무옹이를 보고서 사람 하나를 이미지와 일치시킨 시, 살아온 내력이 박혀있는 나무옹이에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과 사람 하나가 들어가 있다. 삶과 사랑의 면면을 묻고 답하며 일상이 말하는 자연의 섭리와 사람과 사람사이의 무언의 의미가 다가왔다. 안쓰럽고 작은 것, 덜 여문 것에게 시선을 돌리며, 드러내지 않고 배경이 되어주는 일, 그늘을 새긴다는 것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았다. 짧은 시편들의 행간을 드나들며 새기고 돋는 일로 시샘달을 건너가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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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24 17:3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형미 시인 - 윤석정 시집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

지난 십 년 나는 나를 걸쳐 입고 바깥을 맴돌았다. 이대로 살아야 할 것 같았고 막연히 견뎌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십 년 동안의 시를 한데 엮으며 알았다. 시가, 그리고 무궁한 당신들이 나의 바깥이었다는 것. -시인의 말 中에서 대학 동기 윤석정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걷는사람, 2021)을 냈다. 첫 시집 『오페라 미용실』(민음사, 2009) 이후 근 십 년만이다. 그리고, 응달진 곳마다 아직 흰 눈이 남아 있는 입춘 날이다. 그 십 년 동안 윤석정 시인은 간간이 시를 썼고, 누구에게도 안부를 묻지 않았다. 그의 시 ?스물?에서처럼 단순히 사랑이, 사랑이 있는 시가 뭔지 모르겠고 막막했고 죄책감이 생겼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왜냐하면 그는 어느덧휘어진 마음을 뚫고 달려오는 전철이 보이기 시작한 마흔이, 아아, 마흔이 훌쩍 넘어 있었으므로. 내가 아는 윤석정 시인은 늘 호방했다. 자유로웠고, 큰 이목구비만큼이나 거침이 없었다. 그가 나고 자란 장수 산골처럼 크고 투박한 주먹 속에는 따뜻한 마음도 쥐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시골 촌놈 같은 그 따뜻함을 나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다. 해서 시인이 자신의 바깥을 맴돌고 있을 거라고는, 그 막연하고 막막한 생 속에 자신을 밀어두고 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 했으리라. 하지만 시인은 비워도 가벼워지지 않고, 가볍게 사는 게 뭔지 모르는 채 살았다. 아무리 길을 더듬거려도 어디로 갔는지, 누가 가져갔는지 알 길이 없었던 사라진 그의 도장처럼 나를 놓치고 살았다. 그의 시『커서의 하루』,『잃어버린 도장』을 통한 그 공허하고 헛헛한 울림의 고백을 듣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그가 아주 잘 살았을 거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의 시 곳곳에 등장하는 얼굴들이 떠오른다. 내가 알 수 없는 얼굴들, 잠든 아버지 파리한 얼굴, 어둠에 가려진 얼굴등. 하나같이 어둠과 직결되어 있는 그 얼굴들이 마음을 아프게 짓누른다. 시인이 내가 잃어버린 게 도장만은 아니었구나,라고 깨닫는 순간 알게 된 것들과 같아서. 그래, 한때 나의 증거였던 내가 사라졌다고 한 시인의 말 같아서 말이다. 그렇다고 윤석정 시인은 막막히 견뎌야 할 것들을 견디면서만 산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지금의 그를 있게 한 근원인 일곱 살 어린 날로 다녀오기도 하고, 자신을 정돈하기 위해 절필도 해본다. 뒤돌아보게 하는, 뒤돌아봐도 볼 수 없는등이 그리워 지나는 길목마다 낄낄대다가 꺽꺽대기도 했다. 결국 우리의 리듬이풍진 세상의 아픈 도돌이표라는 것을 인식할 때까지, 시인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바깥 아닌 바깥을 실컷, 길고 끈질기게 헤매고 다녔다. 날이 풀리자 꽃이 핀다 날이 꽃을 시샘하자 꽃이 견디다 진다 우리의 리듬은 야생음표 우리 속에서 날마다 울울창창하다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야생음표는 피고 견디다 진다 -우리의 음악 中에서 우리 모두가 피고 견디다 지는 야생음표라는 것을 알 때까지. 그리하여 십 년, 그럭저럭 자알 살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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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17 17:06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오은숙 소설가 - 포리스트 카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흐린 날 오후, 늦은 산책을 나갔다. 안개 낀 호수 공원을 느리게 걸었다. 축 늘어져서 아무래도 힘이 나질 않아, 이럴 때 누군가 등이라도 토닥여준다면, 글쎄. 깊은 숨을 몰아쉬며 비척비척 걸을 때 청둥오리 떼가 얼어붙은 호수 위로 내려앉았다. 쉬어 가는구나. 나도 잠시 걸음을 멈췄다. 키 높은 메타세쿼이아를 올려다보았다. 안개에 잠겨 나무 끝이 보이지 않았다. 메타세쿼이아라는 이름 대신 안개에 잠긴 나무를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는데 우는 바람 소리, 주먹 쥐고 일어나, 작은 나무 같은 인디언 이름이 떠올랐다. 작은 나무는 어른이 되어도 작은 나무로 불릴 텐데 괜찮을까. 이름이 한정하는 개인의 특징을 생각하다 사이를 두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작은 나무는 어른이 되어도 영혼의 성장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자랄 테니까 작은 나무여도 괜찮아. 아빠가 세상을 뜨신 지 1년 만에 엄마도 돌아가셨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이때 내 나이 다섯 살이었다.로 시작하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아메리카 인디언 중 체로키족인 작은 나무가 조부모와 살면서 체로키족의 생활방식을 배우는 이야기다. 정부에서 지정한 인디언 보호구역이 아닌 깊은 산에 살면서 다섯 살 꼬마가 아홉 살이 될 때까지 무얼 배울 수 있을까. 그러나 아이는 너무도 많은 것을 배운다. 계곡을 흐르는 물, 새, 나무들의 언어를 배우고 일부러 걸음을 늦춰 아이가 따라올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며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던 할아버지를 통해 진짜 어른의 모습을 배운다. 할머니가 읽어주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통해 세상 이야기를 듣고 문학을 배운다. 진짜 어른처럼 보이던 할아버지도 때로는 욕을 하고 고집불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절제와 사랑 가득한 조부모가 위스키 업자들이 찾아와 분란을 일으키자 그들을 조용히 쫓아 보내는 방법도 배운다. 소수자, 약자이기에 고통받고 왜곡된 역사를 짊어질 수밖에 없는 부조리에 대한 고민은 뒤로 미룬다. 작은 나무에게 나쁜 일이라곤 없다. 매번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 조부모와 떨어져 고아원에 가게 되지만 그곳에서 늑대별을 통해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네가 어디에 있든 우린 함께 있는 것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와 신념을 배운다. 이번 생은 망했다처럼 소비되는 생이 아니라 p.657<이번 삶도 나쁘지는 않았어. 작은 나무야, 다음번에는 더 좋아질 거야. 또 만나자.>와 같이 죽어가는 이의 삶이 나쁘지 않은 것으로 재생산 되는 것도 본다. p.657<언제나 앞장서서 걷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세상이 끝장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작은 나무는 깊은 절망감에 쌓였지만 알고 있을 것이다. 한 세상이 끝장난 후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을. 너나없이 힘든 시기에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실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되니 공허할 뿐이라고 생각하거나 정작 자신은 받지 못한 위로를 건네자니 손해를 보는 것 같아 주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위로와 응원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주변에 말로 전하지 못했던 위로를 서평으로 대신하고 싶어 주인공이 처한 환경이 어두울지라도 그것을 이겨내는 위로가 담긴 책을 고르던 중이었다. 지인(소설가 권효진)에게 이런 속내를 털어놓자 그녀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책을 추천했다. 이후, 아름드리미디어에서 나온 그 책을 구매한 뒤에야 포리스트 카터라는 저자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가 오래 전에 읽은 아파치족 추장의 생애를 다룬 <제로니모>의 작가라는 사실에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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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27 16:5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근혜 동화작가 - 김영주 작가 ‘레오와 레오 신부’

살다가 문득 당연한 것들에 의문을 품을 때가 있다. 의문을 품는다는 건 견고하고 빈틈없다고 생각한 삶에 균열이 생겼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잠시 멈춰 서서 삶이라는 담벼락에 기대앉아 오래전으로 돌아가 보는 건 어떨까. 운이 좋으면 균열의 뿌리를 발견해 낼지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쉬어갈 타임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김영주 작가의 첫 동화 <레오와 레오 신부 / 푸른 생각>에 주인공 레오(세례명)는 문득 익숙함에 의문을 던진다. 절대적이었고 지배적이었던 대상에 대한 의문이었다. 나는 무슨 까닭에 성당을 다니는 걸까? 사춘기가 시작된 레오는 지켜야 할 것도 많고 하지 말라는 것도 많은 종교 생활이 점점 버겁다. 친구들과 뛰어놀라치면 성당 교리 수업을 가야 했고 주말에 실컷 늦잠 자고 싶어도 그저 꿈같은 일이다. 성당 다니는 애가 왜 그 모양이야? 성당 다니면 착해야지. 하는 편견어린 시선은 레오를 더 예민하게 했다. 새로 오신 보좌 신부인 레오 신부의 까칠한 태도도 한몫했다. 융통성이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레오 신부와 레오는 사사건건 부딪친다. 급기야 레오는 성당을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태어나 지금까지 종교에 관해 자기 결정권, 자기 의지를 갖춰보지 못한 레오였다. 마치 조류가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대상을 엄마라고 여기는 것처럼 레오에게 성당은 각인 그 자체다. 응당 그럴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 보니 엄마가 가톨릭 신자였고 그러니 생존에 필요한 추종 반응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레오와 레오 신부를 읽다 보니 나의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교회에 간다고 하자 아빠는 완강히 반대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아빠가 불교 신자인데 딸이 기독교 신자인 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있을 수 없는 일이란다. 뭐 독실까지는 아니어도 계절이 바뀌면 절에 가시긴 했으니 아주 맥락 없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종교는 내 권한이었다. 나는 보란 듯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교회를 나갔다. 처음에는 오기였고 나중에는 믿음으로 굳어진 행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아빠는 더는 내가 믿는 종교를 문제 삼지 않았다. 덕분에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무사히 교회를 다닐 수 있었다. 우리 아빠와 달리 레오 아빠는 레오의 선택을 존중했다. 이러다 영영 성당을 나가지 않으면 어떡하지! 성당 안 다니면 이담에 어떡하려고 그러나?라는 조급함 대신 레오를 격려했다. 만약 아빠가 레오의 선택에 반기를 들었다면 어땠을까? 레오는 성당에 영영 발길을 끊었을지 모른다. 성당 선생님, 레오 신부, 주임 신부 모두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레오를 기다려 주었다. 덕분에 레오는 자신의 선택을 재고하고 복기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김영주 작가는 이야기 속 주인공 레오는 갈등과 위기를 겪고, 충돌 속에서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그 해답과 치유 방법을 자기 스스로 찾아낸다.며 이야기에서 강요된 신앙으로 무조건 행복할 거란 편견을 깨고 싶었다. 까칠하고 완고한 레오 신부님도 어린 레오에게 배우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 되어 살아야 한다.라고 서문에서 말했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깨지고 부서지면서 삶의 방식을 터득한다. 성당을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레오가 보인 행동은 자기 의지의 중요성과 선택에 따른 책임의 관계를 이해한 결과가 분명하다. 트루먼 쇼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탄생 순간부터 트루먼 쇼에 주인공 된 트루먼. 뒤늦게 자신의 삶이 잘 짜인 각본임을 깨달은 트루먼은 과감히 세트장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간다. 영화를 본 사람 누구나 그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가 선택한 바깥세상이 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도 어제의 나와 분명 다른 오늘의 나를 만나게 되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구나 스스로 자기 삶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어린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모두 독립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이제 <레오와 레오 신부>를 읽고 익숙함에 딴지를 걸어 보자. 운 좋으면 나다움을 발견하는 행운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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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20 17:2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영종 시인 - 김헌수 시집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

당신은 요즘 무슨 색깔로 사시나요? 함박눈의 색조를 따라가려는 폭설같이 어려운 일이겠지만, 저는 오늘 김헌수 시인의 소묘를 흉내 내 보려 해요. 점이 선이 되고, 면적이 되고, 공간이 되고, 삶이 되는 세계는 어떤 색을 띠고 있을까요. 별들이 무한하게 자랄 때까지 그들이 찬란해질 때까지 초승달로 문고리를 달아 놓고, 시인의 별빛을 눈썹에 받아내겠어요(유월 하늘에 뜨는 별은 중). 시인의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를 읽기 전까지 정체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작고 하얀 질문들을 점묘법처럼 당신 마음에 찍어보려 해요. 나는 누구야? 어디로 가고 있어?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어떻게 적응하지? 나를 바꾸는 편인가, 주위를 변화시키는 편인가, 경계가 어정쩡한가? 커튼콜이 드리워진 밤에는/ 특별한 목소리를 포박해 둘 거야(벨칸토 음악회를 보고 온 날에는 중). 내 삶이 끝난 후 나의 특이한 무늬를 다시 불러낼 환호성은 있을까? 불안은 꽃 피지 말고/ 같이 살아보자고 몸부림만 치고 있어(리모컨만 만지작거리는 하루 중). 내 멋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리모컨뿐인 날들이 있지요. 거칠어진 선이 그어진 결핍에서 멀어지고 싶(어반스케치 중)은 시절이 있지요. 우리는 모두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고유한 컬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빛을 받으면 자신만의 독특한 색상을 내뿜어요. 불안이 없을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편안의 반대편에 앉아있는 이여! 피어나지 말고 더불어 뿌리로 살아봅시다. 숲을 걷다가 씻어내지 못한 얼룩에 갇(결벽증 중)힌 사람아! 천연색 지닌 숲을 닦아 유리창에 신겨보게요. 발바닥이 튼튼해서 신발을 신지 않는(피핀과 메리와 나는 중) 모두는 휘파람을 불 때까지 살아보자요(버베나 꽃잎은 접어지고 중). 누구나 본질을 떨치어 드러내고 싶은 발달 욕구를 가지고 있어요. 저수지 속에서 반짝이는 어제를/ 서늘하게 헹구고(경천저수지에서 중) 싶어 하지요. 발달은 발이 달렸어요. 돌아보면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술래를 향해 항상 움직이는 게 참된 본디의 형체라고 해요. 어눌한 것은 바깥으로 돌아가도 좋다(도서관은 발효 중 중). 가로썰면 안도 밖이 되죠. 그러니 물 흐르듯이 유려하지 못한 저는 먼 바깥으로 돌아가도 좋으니 떠듬떠듬 가겠어요. 밖으로 가는 길은/ 원점을 돌고 돌아/ 갈피를 잡을 수 없겠지만요(토마토 중). 그러나 사람은 홀로 살 수 없기에 바라는 일들도 한곳으로 모이게 되지요. 무엇을 얻거나 하고자 하는 바람이 좁은 곳에 휘몰아쳐 세상은 늘 흔들리죠.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아야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개성을 펼칠 수 있다고 해요.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래서 절제사만큼이나 제 마음 호리는 이름을 가진 통제사가 필요한가 봅니다. 시인 김헌수가 삼도 통제사인 셈이죠. 나를 업고 가는 달에게 다시 말할 수 있다/ 물결무늬로 겹쳐질 수 있다고/ 거듭 둥글어질 수 있다고(중얼거리는 달과 물은 중). 겹쳐지고 둥글어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겠지요. 그곳에 이르면 유다른 특성을 산맥에 널어 말려 한 시절 먹을 수 있겠지요. 색감은 판독하기 어려운 중심을 따라가고/ 나는 내내 터무니없는/ 곡선을 붙잡아 두겠어요(컬러링 중). 자신의 색채로 끝없는 설원을 달리는 기차에서 컵라면 국물을 마시며, 제가 비구상의 끝을 말하면 당신은 추상의 시작을 말(미술관에서 만나요 중)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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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13 17: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작가 - 신여랑 소설 ‘범수 가라사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지겨움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건 보석처럼 빛나는 열정, 사랑, 추억들이다. 그런데 허세로 무장한 사색이야말로 삶을 버티게 하는 요소라고 말하는 소설이 있다. 『범수 가라사대』의 주인공 범수는 엄마 친구 결혼식에서 결혼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다. 어느 날, 군중 속의 고독보다 더 강한 고독을 만나게 될 때 칸트처럼 사색하라는 축사를 하는 중2 남학생이다. 운동화를 전족처럼 느껴서 쓰레빠를 신고, 선생님 책상에서 외출증을 훔쳐 점심시간에 집을 오가며 사색과 고독을 즐긴다. 하지만 친구들한테 외출증을 뺏긴 뒤 범수의 산책은 막을 내린다. 허세 없는 사색이 있을까요? 세상 모든 범수의 사색을 지지합니다.라는 작가의 말을 읽노라니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학창시절, 내 꿈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때는 꽤나 심각한 고민이었다. 그 당시 내 곁에는 팝송을 즐기고 춤을 잘 추는 친구가 있었는데 내 말을 듣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야. 니가 예수냐? 난 내 꿈을 지지하지 않는 친구에게 서운해서 한동안 거리를 두었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허세였고 생각이었지만 그것이 내 삶의 태도를 만드는데 영향을 준건 분명하다. 아니, 그 덕분에 그나마 이 만큼이라도 살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지금도 내 마음 속에, 내가 하는 말 속에 스며있는 허세 덕분에 하루하루 버텨나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허세로 무장한 사색은 내가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일의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취준생의 그것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술 취한 가장의 그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그런 허세를 받아주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쓴 신여랑 작가가 얼마 전에 전주에 둥지를 틀었다.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의 차분한 성품 속에 숨겨진 유쾌함과 재기발랄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지금보다 훨씬 마음을 터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젠 내 마음 속에 감춰둔 허세로 무장한 사색을 꺼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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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06 17:43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영주 작가 - 박수서 시인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

종종 제목이나 겉표지에 낚여 덜컥 사버릴 때가 있다. 책 펼치자마다 아뿔사! 낚였군.해도 이미 내 손에 책이 온 후. 후회막급해도 소용없고, 책표지 뒷장 바코드 아래 책값을 두고두고 째려본 들 어쩌겠는가! 그 충동에 구입한 시집이 있었다.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은 한 치의 주저도 없이 사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집을 펴고 한 일은 목차를 보고 시를 찾았다. 목차 어디에도 없었다. 책을 잡으면 끝장을 보기도 전에 잠이 몰려오는 나를 단 한번에 온읽기를 시켜버렸다. 아주 고단수가 따로 없다. 처음에는 안 보이는 게 약이 올라 읽다, 나중에는 오기로 읽었다. 어쩜 그 말이 그 말인 셈이지만. 콩나물 국밥에 다진 청양고추 넣어 말아버린 것을 어쨌든 찾았다. 나중에 들은 후문이지만, 출판사 대표가 제안해 나온 제목이란다. 박수서 시는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처럼 기막힌 시어들이 숨어있다. 시인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어느 날 하루는 박 시인이 철 한 수저를 먹었는지 뜬금없이 내게 물었다. 형, 나하고 친해서 사람들한테 욕먹지? 난 망설임 없이 냅다 대답했다. 그래! 박수서는 별종 중에 별종이다. 나는 곁에 별종 하나 있는 게 좋다. 뽕작시의 선두주자, 자칭 삼류시인, 고독한 미식가를 사랑하는 고독한 미식가다. 어찌 보면 시인이 만든 한 장르이다. 사뭇 기괴한 물건이 따로 없지만 이 별종이 나는 좋다. 서문에 일출을 보러갔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라면 한 그릇 먹었더니 해가 중천에 떴더라 하면서 그렇게 한눈팔다 시를 잃었다고 말한다. 박수서는 어쩌면 인생에 서 먹을 라면 한 그릇이 너무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매일 삶이란 무엇이냐?하며 징징거린다. 그런 식으로 시를 갈급하고 있다는 속마음을 둘러대는지 모른다. 『빈집』을 보면 박수서 자신을 보는 것 같다. 시를 못 쓰고 막걸리를 마실까, 소주를 마실까 고민할 때면 빈집처럼 부산해진다. 정신을 빼놓는다. 박수서 시인은 시 쓸 때는 세상 진중하다. 나는 가끔 몸살 난 박수서를 보면 쌍화탕 한 병 주듯 시 써라! 한다. 시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익어갈지 감나무에게 감히 물을 수 있었을까! 자신이 덜 익었음을 진정으로 깨닫고 가기 쉽겠는가? 『거미』시를 읽고 누군가 말했다. 기죽고 힘들어하지 마시게나. 다 보기 나름이라네. 요즘은 매일 위기와 동거하는 세상 같다. 다들 힘내자는 말 대신『거미』의 시구로 마무리 하련다. 죽지 못하고 끝까지 줄 위에서 버티는 것은 스스로 거미줄을 먹어치울망정 세상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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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0 18:1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문신 시인 - 김영 시집 <파이디아>

시 한 편 읽는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다면 우리 사는 일이 왜 지지부진하겠는가! 세상의 철벽 앞에 시는 무기력하고 시인의 시 쓰기는 무모한 도전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시를 읽는 일은 우리가 세상의 벽만은 되지 않겠다는 버둥거림이 아닐까? 젖은 서사는 아무리 구겨도/날개를 펴지 않는다라는 시구를 읽다가 시집을 잠시 덮었다. 점심 무렵 우편물을 찾아왔으니 오후 서너 시쯤이었을 것이다. 9월이었고 맑았고 아무 일 없는 날이었다. 심심하기 그지없었던 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무방비였던 나는 젖은 서사라는 말을 흠뻑 뒤집어써버렸다. 바야흐로 그날 오후가 온통 흥건해져버렸던 것이다. 이것이 김영 시인의 시 사물들의 본적을 만나게 된 정황이다. 새벽마다 반송되는 나의 미래는/언제나 부러진 기억 쪽으로 수납된다라는 시구는 저녁 어스름이 슬금할 무렵에 읽었다. 낮밤의 기수역에서 마음이 산란했는지도 모르겠다. 무턱대는 성격도 아닌데 그 구절을 덥석 잡아채고 말았다. 묵음은 모든 불안의 본적이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한번 더 마음이 삐끗했다. 시를 읽다보면 주춤거리며 말려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 시를 읽는 일이 그랬다. 이것이 김영 시인의 시 일어서는 묵음을 읽고 난 소회다. 김영 시인의 시집 <파이디아>에서 두 편의 시를 먼저 풀어놓는 것은 공교롭게도 두 시가 존재의 본적을 다루고 있어서다. 본적은 존재의 근원을 확인하고자 하는 제도화된 형식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응되는 형식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김영 시인은 파이디아(paidia)를 전면에 내세웠다. 소개하자면 파이디아는 무질서한 상황을 즐기는 아이들의 놀이 형식을 어원으로 삼고 있다. 제도화된 존재와 질서 없는 존재 사이에 어떤 연관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것을 해명하기 위해 시집을 꼼꼼 읽었고 곰곰 생각했다. 삶은 규칙 없는 놀이(파이디아1-흐르거나 머물거나)에 닿았다가 기원이 다른 사유가 한 페이지에 머무르는 것은, 갈등을 부르는 존재 방식이었나 봐요(파이디아2-숲이 되는)를 짚은 후 세상은 같은 문장을 다른 의미로 읽어주지요(파이디아3-대성당)에 다다라서야 간신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질서와 무질서, 규칙과 변칙이 사실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세상이 인간 존재의 기원이라고 한다면, 그 세상은 질서 있고 규칙적인 같은 문장으로부터 무질서와 변칙으로 이루어진 다른 의미가 탄생하는 곳이었다. 하나의 뿌리(본적)에서 여러 갈래의 가지를 뻗어 탄생하는 것이 우리의 삶(존재)이라는 생각으로 시집 읽기를 갈무리했을 때는 밤이 깊어 있었다. 밤은 모든 존재의 본적처럼 살아 있는 것들을 흠뻑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렇게 시를 읽는 일은 자주 나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삶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겨냥해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시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견고한 세상의 벽과 맞선다. 김영 시인의 시집 <파이디아>를 읽고 우리 인간의 본적이 인간 자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면 소박한 것일까? 사소할지라도 새겨둘 만한 일이다. 시 읽는 일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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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23 18:5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창영 시인 - 황경택 <숲 읽어주는 남자>

나무의 심장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세상에 나무의 심장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있으려나. 아마도 거의 없겠지만, 이 책은 나무의 심장소리를 사랑해 온 한 남자의 숲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인 안도현도 보일러 공장 아저씨는/살구나무에 귀를 갖다대고/몸을 비벼본다(<시인>)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숲 읽어주는 남자라니 제목부터 매력적이다. 우선 표지부터 고즈넉한 숲을 만나러 가고픈 마음이 저절로 들게 한다. 이 책은 숲과 더불어 살면서 삶의 지평을 넓혀온 저자의 진솔한 생활기록이자 친절한 숲 해설 안내서이다. 책 군데군데 있는 세밀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자가 직접 그린 세밀화는 그가 얼마나 숲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필요하다면 사진으로 쉽게 처리할 수도 있었겠지만 구태여 손과 정성이 많이 가는 세밀화를 택한 마음이 정겹다. 올해 우연한 기회에 생태해설사 수업을 들으면서 꽃과 나무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계절꽃 이름이야 그렇다 해도 초살도나 결각과 같은 단어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어휘였다. 토종민들레와 서양민들레를 구분하는 법도, 계수나무 잎이 익어가면서 달달한 솜사탕 냄새를 풍긴다는 것도 올해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무심히 스치며 이름으로만 알던 꽃과 나무들이 얼마나 많던가. 이 책은 숲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이나 숲과 친해질 준비를 마친 이에게는 안성맞춤인 해설서이다. 책에는 우리 사는 동네의 공원과 가로수, 남산과 북한산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숲을 읽어주는 남자답게 여러 나무와 숲이 머금고 있는 내밀한 이야기를 정결하게 풀어놓는다. 이 책은 때로 숲에 관한 백과사전을 읽는 느낌이 들다가도 맛깔스러운 수필을 읽는 느낌이 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는 나무와 숲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숲에 깃들어 사는 다양한 생물에 대한 살뜰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토끼풀 이야기며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였던 손기정 선수와 얽혀 있는 대왕참나무 이야기도 흥미롭다. 책 곳곳에는 알아두면 요긴한 꽃과 나무 이야기가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만약 당신이 이 책을 만난다면 내년 봄을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 어쩌면 서둘러 들판에 나가 민들레와 냉이를 구분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겨울을 이긴 봄꽃이나 새순을 토해내는 나무를 만나면 당신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가슴은 거칠게 뛸 것이다. 저자는 본문만으로는 아쉬웠는지 나무와 친해지는 7단계를 부록으로 남겨 두었다. 조금은 어색할 수도 있지만 나무와 좀 더 친해지기 위해서 꼭 필요한 단계이다. 그의 표현으로 하자면 나무 식별하는 법이지만 내게는 나무와 친해지는 법으로 읽힌다. 이 책 한 권으로 세상을 더 풍성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당신의 인생이 더 따뜻하고 풍요로워질 것만큼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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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09 18:3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작가, 조정래 소설 <아리랑>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에서 벼가 싹을 틔운다. 하늘의 숨결을 느끼고, 땅의 속삭임을 들으며 생명이 자란다. 인간이 공손히 손을 모으면 그 마음이 스미어 천지감동의 순간이 인다. 그때 벼가 여문다. 모든 생명의 처음과 끝인 쌀의 기원. 부르는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게 이어가는 아리랑 가락처럼 쌀 한 톨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은 걸어도 걸어도 끝도 한정도 없이 펼쳐진 들판, 징게 맹갱 외에밋들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왜놈 돈 20원 받아먹고 팔려 갈 신세에 처한 방영근과 그 어미가 김제에서 군산으로 가는 풍경을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라고 적었다. 소설은 이곳을 배경으로 일제의 수탈과 착취로 고초를 겪는 민중과 애국지사의 삶, 반민족적 행위를 일삼은 친일파의 실상을 그린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땅마저 빼앗긴 채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국내외로 떠돌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눈물 나는 역사. 그 역사가 미처 기록하지 못한 민초의 숱한 고난과 끝없는 좌절과 눈물겨운 투쟁의 여정이다. 책장을 넘기면 하늘과 땅과 사람을 연결하는 행과 간이 지평선처럼 아슴아슴하다. 광활 갯벌과 동진농장은 일제강점기 한민족의 시린 역사를 단적으로 일러준다. 1924년 일제는 김제 동진농장 간척지 개간을 위해 방조제 공사를 시작한다. 간척지의 염기를 제거하고 물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섬진강을 막아 운암저수지를 만들고, 간척지까지 길고 긴 수로를 연결했다. 이듬해 그 벌판에 전국의 이주민을 쏟아냈다. 정읍, 여산, 백구, 태인, 옥구, 익산 이 땅 구석구석에서 땀과 눈물로 키운 쌀들은 가마니 채 징용되듯 끌려와 군산항에서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그 쌀을 싣고 일본으로 떠나는 배들은 눈물 꽤나 흘리며 뱃고동을 울렸을 것이고, 군산 앞바다 물결은 운반선을 가로막으며 철썩철썩 가슴을 쳐댔을 것이다. 떠나가던 쌀들은 농부들이 부르던 아리랑 가락이 목에 걸려 가슴이 아리고 저렸을 것이다. 그 가락은 태산이고 파도이면서 애간장 타는 속울음이고 천 리 밖의 넋을 부르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천지간에 다 아는 노래다. 때와 기분에 따라 얼마든지 가락을 달리하며 부를 수 있는 신통한 노래이며, 제각기 가사를 엮어가며 새록새록 신명을 돋울 수 있는 가상한 노래다. 차례로 가사를 엮을 때면 논마지기가 더 있고 없고, 집칸이 더 크고 작고, 인물이 더 잘나고 못나고 하는 따위가 없다. 아리랑 가락은 누가 시작하든 곧 합창이 된다. 서러움이 깊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픔도 달래고 힘겨운 것도 이겨낼 수 있게 한다. 광복 75주년, 쌀은 여전히 이 땅 곳곳을 떠돈다. 쌀에 얽히고설킨 분하고 억울하고 야속한 일들은 농심을 성나게 하고, 벼 가마니를 방패 삼은 야적시위로 이어졌다. 절로 어깨가 들썩거리고 엉덩이가 씰룩거리도록 아리랑을 더 크고 재미지게 불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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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02 18:2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정숙인 소설가

한적한 시골길에 혼자 켜 있는 고독한 가로등처럼 존재하는 것, 이렇게 존재하는 자가 어법이 서툴거나 표현이 약하거나 인기가 없다고 해서 이 자의 입을 통해 명명되는 어둠 속의 것들의 가치가 작아질까요? 사실 이것들이 인간의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이것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문학입니다. 이렇게 혼자 제자리에서 빛날 줄 알면 이제 그 삶의 생을 통해서 문학이 흘러나오기 시작할 겁니다. ―김형수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에서 도대체 우리는 왜 문학을 하려고 마음먹게 되었을까, 혹은 인간은 언제 문학에 욕심을 내기 시작할까. 김형수 시인은 세계의 무엇을 명명하는 자가 작가라고 말한다.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는 창작법에 대해 고민하는 문우에게 고마운 벗이 되는 책이다. 문학을 통해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삶의 이야기가 어떻게 문학이 되는지를 함께 고민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글이 시작되었던 지점은 언제 어디였을 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나와 같은 마음이 될 것이다. 글을 시작하려는 사람과 독자로서 작가의 고독한 삶과 그의 세계관을 알아차리고 싶거나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의 문학적 자아가 태어난 곳을 찾아야한다면 이 책은 고독하고 위대한 개인인 그에게 글의 기준을 잡아줄 것이다. 그 지점에 문학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게 될 것이다. 김형수 시인에게 최초의 문학적 자의식, 표현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던 것은 편지였다. 중학교 수학여행을 가고 싶어서, 산골소년이 세계로 향한 간절함으로 썼던 편지. 매형이 될 두 형님에게 부쳤던 편지가 용돈이 되어 왔을 때 그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행복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에겐 세 곳의 지점이 있다. 처음은 그의 소설 <나의 트로트 시대>의 서문에서 내 말(言)의 고향 밀래미장터에 바친다라고 밝혔듯이 그의 문학적 자아가 태어난 곳은 밀래미장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는 광주고 시절, 문예부에 간다는 말만으로도 발길을 막을 교사가 없었다고 했던 문예부였고, 그곳이 삶의 문학적 체계가 잡힌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80년 5월 18일 광주 계림동 헌책방 골목이 그의 문학적 경향의 진원지이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아버지 때문이었을까, 그는 말이 꼭 필요한 지점에서 말더듬이가 되는 일이 잦았다. 김형수 시인은 어느 강좌에서 인간의 사유는 언어를 매개로 진행되고 언어가 없다는 건 사유가 없다는 것이며 문자로만 가능한 것이 사상이라고 했다. 하늘이 자신을 가엾게 여겨서 시골 장터 한복판에 떨어뜨렸기에 천지가 온통 글자로 넘쳐나는 것을 보았던 그는 1959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1980년대 민족문학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시인이자 논객이며 신동엽 문학관 관장이다. 언젠가 신동엽 문학관의 초입에서 대면했던 신동엽 시인의 흉상과 참 많이 닮아서 놀랐던 적이 있다. 말 대신 글을 얻은 그는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모두를 가졌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 시인이라 불리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작가수업2.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와 함께『조드』도 추천한다. / 글. 정숙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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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2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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