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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보윤 소설가-황석영 ‘할매’

소설 쓰기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사이의 간극을 메워 나가는 일이라고들 한다. 소설을 쓰다 보면 분명한 문장까지는 아니지만 첫 장면과 끝 장면을 정해놓고 글을 쓰게 된다. 물론 계획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대개 마음에 품었던 결말로 매듭을 짓는다. 그러므로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황석영 작가의 『할매』를 읽었다. 첫 문장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고, 마지막 문장은 ‘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다. 긴 서사를 걷어내고 두 문장만 남겼을 때 ‘새가 날아오자 어디 갔다 인제 오냐’고 묻는 정황이 눈앞에 그려진다. 새가 어디에서, 얼마나 오랜 기간 날아왔기에 인제 오냐고 묻는 것일까. 양팔 벌려 새를 반기는 화자는 다름 아닌 할매 나무다. 작가는 수수께끼 같은 두 문장을 잇기 위해 육백 년의 시간을 장대하게 풀어놓는다. 짐작하듯 새에게서 나무가 태어났다. 팽나무 열매를 먹은 새가 갯벌에서 죽음을 맞았고, 그 몸에서 싹이 돋았다. 어린 팽나무는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점점 둥치가 굵어진다. 새와 나무는 역사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하루가 백 년이거나 육백 년이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작가는 새가 겨울철마다 날아들고 나무가 나이테를 늘려가는 자연의 시간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 세월의 주변인으로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수도승 몽각은 나무 옆에 움막집을 짓고 살다가 바다로 들어가 스스로 칠게의 먹이가 된다. 몽각이 떠난 자리에 당골네가 들어와 자식을 낳고 산다. 자식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는다. 새의 번식이나 매한가지다. 그렇게 한 집안의 가계가 몇 대를 거치는 동안 세상은 생명을 해치고 빼앗는 역사를 거듭한다. 병인박해와 동학혁명과 일제 징병으로 아까운 목숨 들이 꽃잎처럼 떨어지고, 서해안 간척사업에 의해 수많은 갯벌 생물이 폐사하고, 미군 전투기의 폭음이 할매 나무를 괴롭힌다. 작품의 후반부는 그래서 주먹을 쥐고 읽게 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으며 작가가 조국 러시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 장면이 있다. 로스토프 가족이 사냥에 나서는 장이었는데 자연과 러시아인의 정서를 묘사하는 문장들이 압권이었다. 당당함과 자랑스러움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할매』를 읽으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새와 나무, 개똥지빠귀와 갯벌, 조개와 바다, 풀과 바람과 비와 눈과 금강과 만경강과 동진강 … 새가 팽나무와 해후하고자 수없이 명멸하며 생명을 잇는 동안에 조선의 풍광이 세밀화로 펼쳐진다. 덕분에 독자는 멀리서 망원 렌즈를 통해 탐조하듯 경이로운 생명의 신비를 직관한다. 놀라운 독서의 경험이다. 사랑이 깊으면 자신이 살아가는 땅의 모든 것, 아픔과 고통마저 품어 안게 된다. 오래된 나무처럼, 작가 황석영처럼. 독서란 작가가 던진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수수께끼 같은 첫 문장과 끝 문장의 퍼즐 맞추기 또한 독자의 몫이다. 유방지거 신부가 마침내 나무를 안았을 때 할매 나무는 쉰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한다. ‘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 가슴에 돌 하나가 얹어진다. 나무람과 안도가 뒤섞인 할매의 탄식은 유신부가 아니라 독자를 향한 방백이기 때문이다. 황석영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군산에 이사 오자마자 팽나무를 지켜드릴 것을 서원했다고 밝혔다. 그 약속으로 『할매』가 탄생했다. 방대한 자료를 응축하여 조선에서 현대에 이르는 유장한 역사를 아리랑 고개로 엮어냈다.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운율에 맞춰 노래하듯 읽는다. 할 일이 하나 남았다. 새만금 생태계 복원 미사가 매주 월요일에 전북도청에서 거행된다. 염두에 두어야겠다. 황보윤 소설가는 부여에서 태어나 우석대 경영행정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전북일보와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다. 소설집 <로키의 거짓말>·<모니카, 모니카>, 장편소설<광암 이벽>·<신유년에 핀 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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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4 18:5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영주 작가- 김헌수 ‘내 귓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날’

김헌수 시인은 한마디로 아티스트다. 창의적인 표현력이 시와 그림에 여실히 드러난다. 그녀의 첫 동시집 『내 귓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날』은 제목 하나로 매우 은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왠지 동시를 읽으면 비밀을 지켜야만 할 것 같다. ‘다정한 동심 곁에 기쁨 한 그루’라고 써준 시인의 사인처럼 동심의 나무 한 그루가 드디어 흙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다. 작은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을 막 입학했을 때의 일이다. 놀이터에서 놀고 들어온 아들은 볼이 붉게 물들어 무언가 한껏 들뜬 얼굴로 말했다. “엄마, 진우랑 두 손을 맞잡고 영원한 친구를 맹세하고 왔어.” 아들은 두근거리는 가슴 위에 두 손을 모으고 숨을 몰아쉬었다. 마치 빨간 머리 앤이 다이애나를 만났을 때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함께 설렜었다. 어느덧 진우는 얼마 전 결혼을 했다. 결혼사진을 보여주는 아들은 어린 시절 홍조 띤 추억이 그대로 스며 나왔다. 김헌수 시인 안에는 BTS와 클리프 리차드를 넘나드는 애늙은이 같은 소녀가 있는 듯하다. 바라보는 시각이 독창적이다. 대학원 수업을 함께 받을 때 일이다. 사물을 낯설게 보는 시간이었는데 ‘곤포 사이러지’가 제시어로 나왔다. 잠깐의 주저도 없이 ‘공룡알’이라고 말했던 그녀다. 기껏 해 ‘두루마리 화장지, 마시멜로’가 나오는 마당에 공룡알은 단연코 돋보였다. ‘알바트로스’의 오랜 비행이 ‘삼십 년 노동자인 아버지’의 든든한 등으로 색칠되었다. ‘흰긴수염고래의 귀지’는 일기처럼 귓속에서 굴러 나온 말, 말, 말은 또 다른 서사를 궁금케 한다. 아이의 생각이나 성찰이 점점 커지고 넓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흰긴수염만큼이나 이력을 담은 귀지만큼이나 성장하는 것이다. ‘풍선덩굴 속 씨앗 세 알’은 세탁소 간판을 둘러 빈 곳을 채워주며 따뜻함을 전해준다. ‘세탁 있어, 세탁 있어!’ 외치는 아버지의 말이 허공에 공허한 소리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외침과 함께 구르는 것이다. ‘돌돌돌, 쏘로롱, 쿠르릅’ 소리는 오르골의 감은 태엽이 풀어지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쏟아낸다. 산딸나무 꽃이 가득 피어 하얀 바람개비 같은 웃음을 뿜어주는 호숫가로 이끌어주는 동시, 호수를 닦느라 물 맥질을 하는 오리는 활기차다. 물 밖을 잠망경 끼고 보는 붕어를 떠올리며 가느다랗고 긴 다리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유리창을 닦는 소금쟁이도 함께 보인다. 사물이 보여주는 풍경이 환해진다. 반짝이는 푸른 별을 장미 넝쿨에 걸어두고 쉼 없이 세상을 궁금해하는 동심이다. 돋보기처럼 세상을 작은 것도 크게 보려고 시야를 넓혀가는 아이의 마음에서 희망을 전해준다. 이 많은 것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아이의 마음으로 성찰하고 무안히 낯설게 보려는 시인의 힘이 분명하다. 바로 동시의 힘을 지니고 있다. 오랜 시간 시인이 동시에 대한 열망과 애정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알기에 소중한 마음이 든다. 빛나는 언어에 담긴 시인의 번뜩이는 동심의 나무가 또 심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영주 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됐다. 2018년 동양일보 동화부문 신인문학상 수상했으며, 2020년 장편동화 『레오와 레오 신부』 출간. 2021년 청소년 소설 『가족이 되다』출간했다. 이후 2023년 수필 오디오북 『구멍 난 영주 씨의 알바 보고서』와 『너의 여름이 되어줄게』5人앤솔러지 청소년소설 출간. 『크리스마스에 온 선물』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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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28 18:0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동화작가-이라야‘파이트’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누군가와의 관계라는 굴레에 갇힌다. 그중에서도 부모의 사랑은 사람이 성장하는데, 필수 조건이자 심리적 요새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라야’ 작가의 청소년 소설 <파이트> 속 주인공 하람이에게 부모라는 존재는 안식처가 아닌, 결코 정복할 수 없는 거대한 절벽과 같다. 열일곱 살 하람은 오빠가 왜 죽었는지, 엄마가 왜 자신을 외면하는지 모른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선교사인 아빠는 늘 다른 사람들을 챙기느라 바쁘고, 엄마는 딸의 존재 자체를 지운 듯 살아간다. 캄보디아의 낯선 땅에서 하람은 철저히 혼자였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그 상처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작가 이라야는 그 답을 격투기에서 찾는다. 하람이에게 격투기는 단순한 꿈이 아니다. 정서적으로 무너질 것 같은 순간마다 하람이를 붙들어주는 언어이자,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링 위에서 주먹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는 것, 흔들리면서도 스텝을 멈추지 않는 것. 이 행위들이 하람이의 삶 자체와 겹쳐진다. 격투기 장면들이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절박한 내면의 리듬으로 읽히는 건 그 때문이다. 맞아도 버틴다는 것, 그것이 하람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다. 하람이는 어머니로부터 철저히 거부당한 아이였다. 사랑받아야 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을 택한 하람이의 발걸음은, 마치 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부조리한 형벌과 같다. 우리는 흔히 결핍의 치유가 그 결핍의 근원(가족)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작가는 하람이의 여정을 통해 이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뜨린다. 무책임한 부모에게서 얻지 못한 사랑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땅을 밟는 순간부터 마주친 이름 모를 타자들의 ‘작은 선의’다. 한국의 계절을 의식하지 못하고 캄보디아에서 입고 왔던 얇은 옷을 입고 겨울의 차가운 기온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때 낯선 이들이 다가와 옷을 건네는 소소하지만 낯선 다정함, 그 찰나의 눈빛, 그리고 예기치 못한 손길들. 하람이는 가족이라는 좁은 울타리 밖에서 비로소 자신이 세상에 존재해도 괜찮은 사람임을 확인받는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시지프스의 굴레’라는 부조리한 현실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 끝없는 형벌의 과정을 견디게 하는 힘은 반드시 특별하고 거창한 관계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라는 혈연 공동체가 주지 못한 온기를, 생면부지의 타자가 내민 떨리는 손길이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예상치 않은 위안을 준다. 이처럼 사랑은 우리가 알 수 없는 형태로 흐르고 있으며, 그 통로는 때로 가장 뜻밖의 장소에서 열린다. 결국 하람이의 ‘파이트(Fight)’가 단순히 링 위에서의 치열한 싸움만이 아니라 자신을 거부한 세계에 맞서, 타인의 선의를 동력 삼아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려는 생존의 몸짓이다. 만약 지금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지 못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하고 싶다. 나를 구원할 사랑이 꼭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대신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타자의 눈빛과 손길을 느껴보라고. 누군가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 있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시지프스의 바위를 함께 받쳐줄 소중한 타자가 될 수 있다라는 것을. 이경옥 동화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두번 째 짝>으로 등단했다. 이후 2019년 우수출판제작지원사업과 지난해 한국예술위원회 ‘문학나눔’에 선정됐으며, 2024년 안데르센상 창작동화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달려라, 달구!>,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 <진짜 가족 맞아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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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21 19:0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오은숙 소설가-이희단 ‘청나일 쪽으로’

2023년 가을에 출간된 이희단의 첫 소설집 『청나일 쪽으로』는 2025년 10월 17일부터 11월 11일까지 그림 전시로 확장되어 독자를 다시 만났다. 전시는 작가가 공동 대표로 있는 인천 남동구의 ‘인문예술공간 점’에서 열렸다. 노란버스로 알려진 ‘길 위의 화가’ 한생곤이 소설 속 이미지를 회화로 옮겼다. 이런 작업은 텍스트 예술이 소비되는데 걸리는 물리적 시간을 단축하고 회화의 감각을 빌어 텍스트를 재생산하는 효과가 있다. 이렇듯, 문학이 텍스트를 벗어나 문화적인 실험을 이어가는 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일인 듯하다. 텍스트로 읽은 저자의 여러 작품 중 「페트라의 돌」은 시공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서사가 압권이었다. 작품을 처음 접했을 당시, 나는 기출문제를 풀 듯 신춘 문예나 문예지의 당선작과 기성 작가들의 단편을 분석하며 읽던 시절이었다. 낯선 타국 생활을 통해 주제를 형상화한 작품 중에서 유독 「페트라의 돌」이 기억에 남는 것은 서사 공간을 완전히 고대도시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작가는 3D프린터를 이용한 돌 제작으로 능청스럽게, 문명 이전이나 이후나 인간의 감정을 돌에 새기기는 매한가지라 말했다. 작가는 인류의 손때가 묻은 돌을, 부조리의 감내를 요구하는 시지프스의 바위에 비견될 만한 고원한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그 작업의 시작에 소년이 있었다. 정확히는, 고대 유적지를 삶의 터전으로 하는 소년이 돌기둥을 쳐서 떨어트린 돌멩이에 있었다. 인류가 경험한 오랜 기억과 감정이 바스라져 모래가 될지도 모를 원 달러짜리 돌에 축적되었다. 그 돌에서 오늘날 화자의 구원 서사가 움텄고 독자는 한없는 위안을 받았다. 표제작 「청나일 쪽으로」는 상실의 시간을 푸른빛 원두라는 이미지로 응축했다. 소설 속 나는 암과 싸우는 그녀를 뒤로하고 남편과 함께 청나일로 향한다. 그녀는 친정엄마가 사는 빌라 아래층 여자로 J라는 딸과 산다. 나는 친정아빠가 죽은 뒤 홀로 남은 엄마를 돌봐준 그녀와 가깝게 지내고 J는 나를 이모라 부르며 의지한다. 청나일에서 푸른 커피콩을 보고 싶은 것은 마음뿐 용기가 나지 않는 나에게 힘을 준 것도 그녀다. 최종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그녀의 죽음을 듣게 된 나는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녀의 영혼과 함께 청나일에서 만나는 정서적 경험을 한다. 그녀의 죽음이 원초적 생명력으로 대변되는 나의 욕망이 슬픔 안에 교차되면서 나는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푸른빛 원두를 본다. 이국적인 풍경 안에 감정의 신파를 감추고 담담히, 그녀에 대한 애도를 인류의 기원인 나일강에 담근다. 개인의 욕망이 타자의 실존 앞에 무너지는 가슴 아픈 경험은 때로 고귀하다. 이렇듯, 형언할 수 없는 체험을 낳기 때문이다. 개인적 슬픔을 집단적 기억으로 확장시켜 애도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작가의 서술 방식이 품격 있게 진솔했다. 저자는 감정의 비약 없이 쓱싹쓱싹 읽기 쉬운 문체로 써 내려갔다. 서사의 추동으로 사건을 밀어붙이기보다, 기억이나 객관적 상관물이 빚어낸 이미지가 서사를 이끄는 방식으로 말이다. 더불어, 소설집 『청나일 쪽으로』의 회화적 확장은 현대소설이 이미지의 예술임을 재확인시켰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오랜 관조를 요구하며, 문학이 시각예술과 어떻게 접속할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오은숙 소설가 2020년 ‘납탄의 무게’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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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15 10:3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작가, 지연 ‘모든 날씨들아 쉬었다 가렴’

『모든 날씨들아 쉬었다 가렴』 언어 수로를 따라가면 지연 시인이 통과했던 시공간이자 시의 원천인 ‘소룡골’이 나타난다. 흘려보내며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빛을 마신 나비”거나 부석작에서 콩대를 태우며 “몇백 년 전 혈육이 식은 심장을 타닥거리며 나에게 무슨 말을 데우고 있”는 것으로 현존한다. 정합적이지 않은 불가역의 세계라고 의심하지만 시인의 감각이 예민하고 구체적이어서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 경이와 떨림이 강력하다고 해서 현재를 부정하거나 멈출 필요가 없다. 다만 급박하게 살아가는 나를 돌려세워 시인이 정성을 다해 모셔 온 ‘사라진 것’들을 반추하면 되는 것이다. 익히 그들은 벼랑 끝이든 환대와 도약이든 우리 삶 속에 잠복해 있다 살아있는 존재들을 떠받치고 있었던 것이었으니. 생명으로 존재하는 것과 죽음으로 존재하는 것은 수평 비교가 불가능하다. 그러한 관습적 사고를 깨뜨리는 지연 시인의 사유(思惟)라고 해도 좋겠고 유한 존재의 열패감을 상쇄, 무한으로 확장하는 것이라 해도 좋겠다. 그것을 가능케 한 지연 시인은 하늘과 땅을 잇는 무(巫) 일종의 샤먼이다. 전라(남)북도 방언과 토속적 시어들을 매개로 시인과 맺어진 인물들 ‘삶의 무늬와 서사’가 입증 근거로 작용한다. 따라서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결코 실패 하지 않고 전진하는 시(詩), 아름답고 따뜻한 곳에 대한 회억(回憶)을 시 독서법과 이질적일듯한 ‘연역적 사고’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모든 날씨들아 쉬었다 가렴』 전반은 단순 과거지향이나 추억의 함몰이 아니다. 시인의 고향이자 ‘설화적 무대’인 임실군 청웅면 소룡골 농촌공동체가 빚은 ‘풍습과 생활 감각’은 압권이다. 그곳에서 대지와 인간, 산 자와 죽은 자는 평면의 범주를 벗어나 신화적 환상과 은유를 방편으로 멸실을 거쳐 순환하고 재탄생한다. 시간의 이격에서 오는 상실을 극복하고 지연 시인 아이덴티티에 도달하는 과정은 눈부시다. 누구에게나 ‘내면의 풍경’ 하나쯤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원초적 풍경이 탈각되고 육화된 현재에 이르러서 그 풍경에 대한 그리움과 아련함을 품고 있다면 이 시집으로 달래볼 일이다. 필자 또한 지연 시인 덕분에 잊고 있었던 ‘소박하고 가난했던 풍경’을 떠올려보았다. 삶과 죽음이 이항 대립이 아닌 것처럼 혈육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미움과 원망, 사랑과 그리움이 범벅이 돼 핏속을 떠돌고 있음이 느껴졌다. 웅숭깊은 미덕과 사랑은 복원되었으며 AI 세상을 능가하는 삶의 방식을 일깨운 소룡골, 그곳이 골육상잔의 무대였거나 약육강식 사슬에서 어쩌지 못할지라도 기꺼이 바쳐지고 동화되고 연대하는 방식의 아름다움이라니! 극에 달한 그리움을 내면화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감각으로 발산하는 시적 형상화의 유려함은 덤. 긴장과 밀도 높은 경쟁 속, 고립된 존재로서의 외로움에 휩싸여 살고 있다면 서로 연결되고 섞인, 기꺼이 나를 바칠 수 있는 ‘소룡골’로 가 보시라. 소룡골을 찾는 방법을 모르거나 그 기억으로부터 멀리 떠나왔다면 “돌에 스미는 빗물”을 아주 천천히 바라보면 된다. 사무치게 그리운 존재들이 배격되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육친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지연 시인이 죽은 자와 기대고 얽혔기에 죽음은 단절이나 멸망이 아니라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서로를 움직이게 하는 존재들”임을 강조했던 것처럼. 기명숙 작가는 전남 목포 출신이며,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몸 밖의 안부를 묻다>가 있다. 현재 강의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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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07 18:56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진숙 수필가-하기정 ‘건너가는 마음’

한 문장, 하나의 어휘에서조차 발걸음이 쉽게 옮겨지지 않는 책이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사전을 통해 낯선 단어를 확인하고 작가의 생각을 탐색하느라 온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책을 덮는 것이 아쉬워 일부러 게으름을 피우기도 한다. 작가의 섬세함과 진지함이 고스란히 담긴 책은, 저자의 마음이 나에게 건너오고 다시 누군가에게 이어 달려가려는 충분조건을 지닌 것이다. 하기정 시인의 산문집 『건너가는 마음』이 바로 그렇다. 이 책은 단번에 읽기보다는 천천히 음미하며 읽게 된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멈추게 되고, 그 멈춤 속에서 독자는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이 산문집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싶은 이 계절에 더욱 잘 어울린다. 『건너가는 마음』의 문장들은 일상의 작은 틈에서 태어난다. 귀가 예민해지는 시간에 걷는 산책에서 얻은 삶의 단상들, 빗소리를 들으며 떠오르는 사유, 어이없는 죽음 앞에서 망자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 시간을 눈으로 보게 만드는 낯선 감각들이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 저자의 시선을 거치면서 삶의 본질로 확장되고,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의 결들이 사실은 삶을 지탱하는 중심임을 이 산문집은 잔잔하게 일깨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시인의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다. 현실과 실현, 이별과 별리, 삼삼한 삶,반절과 절반처럼 닮은 말들 사이의 미묘한 간극을 살피게 하고, ‘불현듯’을 ‘불 켠 듯’으로 감각하는 방식은 의미 이전에 느낌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숙성과 성숙의 차이를 조심스레 구분해 내는 문장들에서, 언어를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얼마나 섬세하고 정직한지 알 수 있다. 독자는 그 세심함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작가의 철학을 공유하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건너감’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이 다른 마음을 향해 가닿는 과정이며, 상처로부터 조금 멀어지는 일이고, 오래 붙잡고 있던 감정을 내려놓는 연습이다. 작가는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을 과장 없이 담아냈다. 소란스럽지 않으면서 깊이가 있으며, 삶을 정직하게 바라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의 밀도를 지녔다. 작가는 주변 사물과 자연을 향한 애정이 각별하다. 집 앞 소나무에 집을 짓는 까치 부부를 응원하면서 상량문을 지어주고, 물난리를 피해 나무 둥지로 열을 지어 오르는 개미군단을 보면서 그들의 안전을 기원한다. 이처럼 이 글에는 이해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마음,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하는 마음, 조용히 곁을 지키는 마음이 문장 사이에 스며 있다. 그래서 이 산문집을 읽고 나면 잠시 멈춰 서게 된다. 글 속에서 만난 온기가 독자의 마음으로 옮겨 오기 때문이다. 『건너가는 마음』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책이다. 그 다리를 건너며 독자는 내면과 마주하고, 삶의 방향을 조용히 점검하게 된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따뜻함을 지닌 이 책은, 마음에 그늘이 내려앉을 때 다시 펼치고 싶은 산문집이다. 책을 덮은 지금도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괜찮아, 천천히 건너가도 돼.” 이진숙 수필가는 전직 국어교사.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 최명희문학관에서 “혼불” 완독 프로그램 14년간 진행. <우리, 이제 다시 피어날 시간> 오디오북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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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17 18:51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동화작가-윤일호 ‘거의 다 왔어!’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일을 겪는다. 어떤 일이 닥쳐도 의연하게 맞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회오리처럼 갑작스럽게 몰아닥치는 운명 앞에서 허둥대며 살기 마련이다. 되돌아보면 비명을 지를 정도로 부끄러웠던 때가 떠오르고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아픈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오히려 힘을 주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 내게도 힘겹고 어려운 순간마다 나를 똑바로 서게 하고 견딜 힘을 주는 추억이 있다. 외할머니는 어린 내게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해낼 수 있는 아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 말은 선택의 순간에 설 때마다 한 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딸을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로 보낸 엄마는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처음으로 편지를 썼다. 받침도 틀린 그 편지를 읽으며 나는 많이 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불효했다는 자책으로 잠 못 이룬 날이 많았다. 그런데 내 꿈에 오신 아버지는 ‘괜찮다’라며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내 일에 집중하며 열심히 살 수 있었다. 윤일호 작가가 쓴 동화 『거의 다 왔어!』 는 평생 잊지 못할 멋진 추억을 만들어가는 행복초등학교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지호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전학 제안에 어이가 없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고 전교생이 고작 80명밖에 되지 않는 시골 학교로 가야 한다는 게 정말 싫었다. 그래도 유일하게 궁금한 것은, 엄마, 아빠가 죽고 못 사는 지리산을 종주한다는 것이다. 행복초등학교는 산악학교라는 생각이 들 만큼 산을 많이 갔다. 지호는 꼰대 어른들이 자신들이 힘들게 자랐으니 너희도 고생을 좀 하라는 것 같아 불만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가 멋있다고 느낄 만큼 변해간다. 지리산에 오니 평범한 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논어 맹자도 아니고 뜬금없이 저절로 가르침이 생각나는지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냥 힘들게 걷다 보면 저절로 깨달음이 온다. 인간에게 경험만큼 좋은 학교는 없다. 매일 매 순간 맞닥뜨리는 위기와 절망 앞에서 직접 몸과 마음으로 깨우친 지혜는 어떤 교과서도 찾을 수 없는 최고의 스승이다. 요즘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겠다는 일념으로 아이가 성장할 기회를 막아서는 부모들이 있다. 실패와 좌절의 고통을 배우지 못한 아이는 정글 같은 현실에서 쉽게 넘어진다. 킹콩샘과 같은 스승이 있고, 손잡아주는 선배와 한걸음 뒤에서 바라봐주는 부모님이 함께하는 지리산 길에서, 아이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 한 번 쉬면 자꾸 쉬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 그리고 사람마다 인사를 하게 하고 먹을거리도 나누게 하는 산이 주는 상냥함을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다. 장은영 동화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 남도의병 콘텐츠 공모전 스토리 부분 대상,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고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광대특공대>, <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전주>,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열 살 사기열전을 만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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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10 19:00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영종 시인 - 황유원 시집 ‘하얀 사슴 연못’

많은 날을 올라왔습니다. 굳은 의지는 보슬보슬 날아갔습니다. 통제사 벼슬이라도 할 것 같았던 통제력도 바닥을 쳤고요. 황유원의 『하얀 사슴 연못』을 듣고 싶습니다. “세상은 소음으로 가득하다”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그래서 “존재의 소음을 최대한 증폭시켜보는 길과 최대한 잠재워보는 길을 모두 가보기로” 했다고. 잠재워본 게 이 시집이라고. 음악은 소음을 줄여 적막을 늘리는 방식이겠죠. 말이 끝나는 곳에 음악이 있겠죠. 맑은 날, 땀을 벽력같이 흘려 하루에도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어야 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았지요. 이런 날은 「명동대성당」에 나오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습니다. “나는 거기 없었고/ 나는 거기 있었지만/ 내 숨소리는 아무래도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 같은” 음악입니다. “칸나가 잔뜩 피어나 노란 꽃머리로 통 통/ 드럼을 연주”(「리틀 드러머 보이」 부분)하면 음파는 어디로 갈까요. 언어와 리듬을 타고 뇌파로 올라오겠죠. 잔잔하게 물결치겠죠. 콩나무 잡고 거인의 구름성까지 가겠죠. 하프의 말이 들릴 때까지 잠에 들겠죠. “가슴속에 사슴 뛰는 소리 들려온다면/ 삶의 푸른 풀을 마구 뜯어내고 싶다는 뜻인데// 그렇게 사슴 다 뛰쳐나가버리고 나면// 마침내 홀로 남겨진/ 텅 빈 가슴속/ 고요”(「사슴 머리 여인숙에서」 부분). 풀을 들입다 먹은 사슴은 자러 갔습니다. 풀들이 오래전에 예약한 고요만 남았네요. 아무것도 하지 않네요. 잠잠히 살 뿐. “고요를 위해 굳이 입 닫을 필요 없음/ 고요가 숨 쉴 수 있는 공간만 마련해두면/ 고요는 그냥 찾아옴/ 벽돌을 하나씩 하나씩 차곡차곡 모아/ 서로 붙여주기만 해도”(「불광동성당」 부분). 잘 말린 야생 고요의 똥으로 벽을 쌓습니다. 빈 방에 햇살이 들어오듯 고요가 오겠지요. 편히 쉬라는 말까지 아낄 필요는 없겠지요. 「별들의 속삭임」을 “듣는 자는 시베리아 아닌 그 어디서라도/ 하늘의 입김이 얼어붙는 소리를 듣는다/ 추운 날 밖에서 누군가와 나눠 낀 이어폰에서도 별들이 얼어”. 별들은 우리에게 낮은 목소리로 늘 무언가를 들려줍니다. 우주가 진공 상태라 들리지 않을 뿐이죠. 그런데 그 귓속말을 들을 수 있는 길이 있죠. 이어폰으로 추위를 나눈다면, 별들의 귀엣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상대의 아픔에 귀 기울여 보세요. 서로의 슬픔에 등을 기대 보세요. 함께 눈을 맞으며 호숫가를 걸어 보세요. 그러면 별들이 큰고니 날아오는 호수에 큰 고요를 뿌려 줄 겁니다. “잠시 서로의 말이 드러낸 단단한/ 등뼈를 쓰다듬으며/ 우리가 헛것임을 잊을 수 있다”(「언중유골」 부분). 뼈가 있는 말은 쉼표와 같습니다. 그걸 가볍게 쓸어보며 우리가 이 땅에 온 작은 이유를 어루만질 수 있을 테니까요. 느렸지만 역마다 서고 정차 시간도 길었던 기차가 비둘기호였어요. 내려서 가락국수를 후후 불며 먹었어요. 속이 든든하게 차고 쉼표가 찍혔죠. 긴 4형식 문장을 끌고 온 기차에 올라 먼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얻었어요. 이영종 시인은 2012년에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되어 2023년에 첫 시집 <오늘의 눈사람이 반짝였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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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03 18:4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창영 작가- 징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가끔 아프리카 기아 문제나 우리나라에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자는 광고를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 마음 한편에는 문제 해결을 강요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묵시적인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 말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대신하며 살아왔다. 가난의 책임을 개인의 능력 부족이나 개인사로 치부하면서 그들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외면해 왔던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유엔 식량 특별조사관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이 질문에 대해 답을 들려주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가 제기한 문제는 오늘날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실제 통계 자료와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를 자기 아이에게 들려주는 식으로 편안하게 서술한다. 덕분에 독자들은 보고서나 통계자료의 딱딱함을 넘어서 사실에 기초하여 냉혹한 현실을 느긋하게 직시할 수 있다. 나아가 그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누릴 수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책에서 다룬 저자의 시각과 문제 인식은 오늘날에도 명확하다. 여전히 가난과 질병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힘들게 하며 우리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은 ‘기아’라는 사건을 둘러싸고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따라 나오는 사회, 정치, 인간의 욕망까지 한꺼번에 조망하는 것이다. 현장 전문가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 다각적으로 검토할 수 있기에 더 신뢰가 가는 책이기도 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하나의 문제는 겉으로 보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 문제가 발생하기까지는 여러 종류의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대개의 경우 이 과정에서 이권 개입과 힘의 논리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힘을 앞세운 가진 자들의 논리 앞에 인권과 정의는 유린되고 설 자리를 잃는다. 이런 구조적 어려움 속에서도 개인의 노력으로 희망을 만들어 낸 사례가 있다. 영화 <바람을 길들인 소년 (The Boy Who Harnessed the Wind>이 그 대표적 예다. 당장 한 끼도 먹을 형편이 안 되는 집안 상황에서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것은 사치였다. 당연히 아이는 수업료 때문에 쫓겨날 위기에 처하고,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도서관 책을 마중물 삼아 메마른 대지를 적실 수 있는 수차를 개발한다. 영화는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기에 더 깊은 감동을 준다. 오늘도 지구편 한쪽에서는 음식물이 넘쳐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음식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누군가는 최고급 식당을 순회하면서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에 취하고 지구의 반대편에서는 허기진 배를 채워줄 음식 한 조각과 깨끗한 물이 없어 질병에 신음해야 한다. 가을 단풍이 머지않았다. 이제 헐벗고 주린 이들에게는 길고 긴 겨울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눈앞의 문제도 처리하기 버거운 형편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지구 반절의 인구를 책임질 여력은 없다. 지금 당장 세계를 바꾼다거나 누군가를 책임질 수 없지만 아마도 얼마쯤은 할 일이 남아 있을 것이다. 장창영 작가는 전주 출신으로 2003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불교신문·서울신문 신춘문예에도 당선돼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사업과 전주도서관 출판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집으로 <동백, 몸이 열릴 때>, <우리 다시 갈 수 있을까>, <여행을 꺼내 읽다>, <나무의 속살을 읽다>가 있으며 인문서로 <나무의 문을 열다>, <디지털문화와 문학교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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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1.26 18:2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극작가-정양 ‘헛디디며 헛짚으며’

아닌 것은 아니라고 귀싸대기 올려붙일 줄 아는 시인의 눈 부라림이 생생한 시집이다. 시인은 헛딛고 헛짚으며 살아온 한국 사회의 맹점을 예전 교육 현장에서 꺼낸다. 귀싸대기를 때리고 싶지만, 맞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 시집에는 “머리통에 어깻죽지에/ 뭉치자 삼천만, 깨뜨리자 삼팔선/ 그런 종이 띠를 두르고/ 양팔간격으로 늘어선” 1940년대 국민(초등)학생들이 있고, 양팔간격 사이로 “줄 틀리는 아이들을 단속”(「깨뜨리자 삼팔선」)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수업 시간에 “출입문 드드륵 밀고 들이닥쳐/ 머리 긴 아이들 머리통에 한 줄씩/ 드르륵 드르륵 신작로를 내놓고” 나가는 1950년대 바리깡 훈육부 선생님이 있고, “그렇게 길들기가 죽어라 싫어/ 일주일 넘게 신작로를 그대로 이고 다닌”(「신작로」) 학생도 있다. 시인은 이 시절을 “황량했다”라고 표현한다. 바르지 못한 시대의 바르지 못한 일들. 철썩철썩, 학생들의 뺨을 갈기는 선생은 1990년대까지 꽤 많았다. 반세기가 지났어도 진저리 쳐지는 그 순간순간은 애잔한 그리움이자 씁쓸함이며, 여전한 통증이자 참담함이다. 시인이 기억하는 두 선생님이 있다. 정작 이름 석 자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들이 보여준 행동은 그의 귀를 번쩍 열리게 했고, 지그시 입술까지 깨물게 했다. “원래 건달이었는데 이사장 친척이라서/ 자격증도 없이 체육선생이 되었다고들’ 했던 ‘별명이 무식이었던 체육선생님”은 농구공·배구공·축구공을 던져주고 알아서 편 짜고 놀다가 끝나면 공만 체육실로 가져오라 시키고 당당하게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자신의 수업 시간에 소지품 검사를 하겠다고 들이닥친 훈육부 선생들에게 “왜정 때 배운 대로만 풀어먹을라고 저 지랄들을 해댄다.”(「잃어버린 이름」) 라고 쌍욕 하며 막아서기도 했다. 분필 하나 달랑 들고 교실에 들어오는 “왔다리갔다리 시계불알 화학선생님”은 출석도 안 부르고 차렷 경례 끝나면 곧바로 노트도 책도 없이 고개를 한 번씩 좌우로 저으며 수업 내용을 칠판에 빼곡하게 적었다.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거나 발을 구르거나 말거나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시험 답안지에 모두 ‘×’를 친 시인에게 “이 세상에는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제대로 채점하면 60점인데 기분 좋아서 100점”(「화학선생님」)이라고 말하던 선생님이었다.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아지는 세상에서 두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시인을 성장하게 한 밑거름이었을 것이다. 정양(1942∼2025) 시인은 다른 시인들과 달리 “발표한 작품이라도 고칠 데가 있으면 고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대도 사람도 변하니 지나간 것을 보면 당연히 고칠 게 많다는 것이며, “눈 감기 전까지는 자기가 쓴 시를 고치는 것이 시인의 의무”라는 믿음이다. 시집에 실린 시도 다시 고쳐 내듯 시인은 묵히고 삭힌 기억을 또렷하게 살려냈다. 그 아득한 기억은 어둡고 답답한 굴레에서 벗어나 소소한 것을 위대하게 하고, 비루한 것을 장엄하게 했다. 후배들 곁에서 시대와 ‘맞짱 뜨는 법’을 조금 더 알려주셨으면 좋았으련만. 오늘도 우리는 『헛디디며 헛짚으며』(모악·2016)를 읽으며 귀싸대기 때릴 순간을 기어이 기다린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이름을 부르는 시간』,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쿵푸 아니고 똥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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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1.19 18:5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문신 시인 - 김도수 시집 ‘진뫼 오리길’

당신,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고개를 끄덕인다면 기억의 힘도 인정할 것이다. 우리 영혼은 기억의 힘으로 살아가고, 빛나는 기억일수록 영혼을 맑게 드러내는 법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자기 기억으로 빛나는 영혼을 여럿 만났다. 그중에는 김도수 시인도 있다. 그의 시집 <진뫼 오리길>을 읽고 더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오롯이 기억의 힘으로 빛나는 영혼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우리 영혼은 모든 기억을 한 편의 시처럼 간직한다는 사실을. 김도수 시인의 시집을 펼치면 먼저 「물수제비」라는 시가 나온다. 그 시에서 나는 “새벽까지//명치끝에//잔물결만//출렁출렁”이라는 구절을 남달리 좋아한다. 잔잔한 물결 위로 날려 보낸 납작한 돌멩이가 통통통 튀는 느낌이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명치끝”이라는 말과 “잔물결”이라는 말을 남몰래 어루만지곤 한다. 그 말에는 삶을 향한 진심이 있고, 매 순간을 간절하게 살아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잔여가 배어 있다. 잔여라는 말이 낯설다면 여운이라는 말도 좋겠다. 지나갔지만 아직 남아 있는 어떤 것. 그러니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희망 같은 것. 시는 그 실낱같은 희망을 고르고 골라 엮은 영혼의 심장 같은 거다. 이런 시도 인상적이다. “세상 올곧게 살려거든/삼시 세끼 밥 먹듯이/강물에 얼굴 비춰보며/물색 있게 살 일이다” 「물색없이」라는 시의 부분인데, 나는 이 시를 읽고 ‘물색’이라는 말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찾거나 고르는 일’이라는 심심한 대답을 읽고 실망했다. 그래서 나름으로 물색이라는 말을 이렇게 고쳐 생각해 보았다. 물색이란 사물 각각의 고유한 빛깔을 찾아주는 일이라고. 그렇게 본다면 세상 올곧게 사는 일이란 우리가 만나고 마주하는 존재의 고유한 색채를 읽어내는 일이 아닐까? 이번에는 시 한 편을 오롯이 읽어보자. 허기진 배가 쑥 들어간 달이/배고픈 지상의 뭇 생명들/홀쭉한 배 위에 올려놓고/밤새 잠이 들었다 「초승달」이라는 이 시는 초승달만큼이나 간결하고 짧다. 하지만 보름달보다 크고 환하고 풍요롭다. “허기진 배”가 품고 있는 “뭇 생명들”을 상상해 보라. 뭔가 아릿한 게 명치끝에서 꿈틀거린다면 이 시를 절반만 감상한 셈이다. 척박한 대지에서도 생명은 자란다. 초승달은 “배고픈” “생명들”을 품고 “잠이 들”지만,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면 어느새 세상 무엇보다 크고 둥근 생명이 된다. 그러므로 이 시는 부모가 자식을 기르고, 농사꾼이 모종을 키우는 일의 정확한 은유다. 그리고 이 시는 시인 김도수가 시심을 일구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내가 알기로 시는 시인이 세상 허기진 것들을 밤새 품어 생명을 부여한 것들이다. 따라서 시에는 영혼이 있고, 그 영혼마다 시인의 기억들이 물색 있게 자리한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 시구를 마저 읽어야 한다. “등 따숩게 햇볕 내리쬐는 날/그대가 업고 강을 건너온 슬픔이/세상 길 끝을 걸어갈 때”(「강을 건너온 슬픔」) 그가 남긴 잔여의 발자국을 떠올려 보라. 우리도 저마다의 슬픔을 업고 세상 길 끝으로 나서야 하는 건 아닐까? 김도수 시인의 시집 <진뫼 오리길>은 그런 물음을 던진다. 그에 응답하듯 우리 영혼의 기억들이 슬픔의 윤슬로 반짝거린다. 이것이 김도수 시인의 시집을 거듭 읽고 난 잔여다. 문신 작가는 2004년 전북일보와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죄를 짓고 싶은 저녁>, 동시집 <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 평론집 <서로의 표정이라서>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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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1.12 18:21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근혜 아동문학가, 이경옥 ‘진짜 가족 맞아요’

이경옥 아동문학가의 신간 『진짜 가족 맞아요』(보라빛소어린이)가 출간됐다.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는 어린이 문학에서 간과했던 인간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주로 다룬다. 이번 작품도 한국안데르센상 최우수상 수상작답게 가족의 다양성을 보여주면서 어린이의 내면을 다정하고 섬세하게 다루었다. 『진짜 가족 맞아요』 주인공 박다영은 엄마의 재혼으로 뜻하지 않은 사람들과 가족으로 묶인다. 자기와 엄마만 빼고 모두 문 씨인 집에서 다영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몰라 어정쩡한 모습이다. 그런 박다영과 달리 또래인 문진호는 새엄마와 다영에게 지나치게 다정하다. 문진호에게 새 가족은 삶의 활기요 돌아가신 엄마의 빈자리에 핀 소담한 꽃 무더기다. 반대로 오빠 문윤호는 어딘가 어둡다. 다영이는 오빠가 엄마와 자기를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 단정 짓는다. 새아빠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박다영은 성을 ‘문’으로 바꾸자는 엄마 제안을 거절한다. 성을 바꾸면 친아빠와 멀어질 것만 같다. 엄마는 다영의 마음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성을 바꾼다고 해서 끈끈한 가족애가 마법처럼 생기는 건 아니기에. “가족이 많아졌다는 건 사랑할 사람이 많아진 거라고 수없이 마법을 걸었다. 그래도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마음먹은 대로 잘되지 않았다. <중략> 사실은 정말 궁금하게 아니라 남의 약점을 끄집어내려고 하는 속마음을 다 아니까.” 박다영은 공개 입양을 당당하게 말하는 최강나라처럼 친구들 앞에서 재혼 가정의 아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그게 흠이 될 것만 같다. 절친인 설지혜조차 이상한 가족이라는데 남들은 오죽할까. 설지혜처럼 우리 또한 ‘평범하다’의 반대말을 ‘이상하다’로 치환할 때가 있다. 심지어 그런 판단을 타인에게 주입한다. 이는 삶의 다양성을 해치고 상호 간의 공존을 무너뜨리는 섣부른 태도가 아닐까. 다행히 박다영은 설지혜가 말한 이상한 가족의 노력으로 그들과 단단한 결속력을 갖는다. 계기는 고장 난 자전거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박다영을 일으켜 준 건 살갑지 않았던 오빠 문윤호였다. 그날 처음으로 오빠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다영은 오빠를 대한 오해를 푼다. 병적으로 수다스럽고 식탐 많은 문진호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 또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뀐다. 불편함을 무릎 쓰고 친아빠를 초대해 가영이의 달리기를 함께 응원한 새아빠 역시 다영이가 새로운 가족에게 스며들도록 만든 힘이었다. “가족이 많아진 건 사랑할 사람이 많아졌다는 엄마 말이 맞았다. 모두 내 가슴에 스며들어 각각의 무늬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들의 무늬는 점점 커지고 깊어지고 있다.” 박다영은 박다영이다. 그렇다고 문다영이 아닌 게 아니다. 박다영과 문다영 사이를 오가며 다영이는 자기 정체성을 찾아 부단히 성장해 나갈 것이다. 세상 모든 가족은 똑같은 무늬를 하지 않는다. 똑같은 빛깔일 수도 없다. 함께한 시간이 많다고 진정한 가족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모두가 각각의 이유로 특별하다는 거다. 고로 이상한 가족은 없다. 각각의 무늬와 빛깔로 자기 가족만의 특별함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오늘 우리 가족은 어떤 빛깔과 무늬를 지녔는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 보면 좋겠다. 김근혜 아동문학가는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장편동화 <제롬랜드의 비밀>, <나는 나야!>, <봉주르요리교실 실종사건>, <다짜고짜 맹탐정>, <베프 떼어 내기 프로젝트>, <들개들의 숲>, 청소년 소설<유령이 된 소년>, <너의 여름이 되어 줄게>(공저), 오디오북<날아라 자전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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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1.05 18:2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영주 작가-신시아 라일런트, '그리운 메이 아줌마'

『그리운 메이 아줌마』로 뉴베리상과 보스턴 글로브 혼북 상을 수상하고,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이 ‘올해의 최고 우수작’으로 선정된 작품성이 높은 작품이다. 잘 짜진 구성과 절제된 문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메이와 오브는 여섯 살 어린 서머를 보자마자 ‘우리 저 아이를 데려가요.’ 말할 만큼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그들은 낡은 트레일러에서 끊을 수 없는 가족이 된다. 수많은 바람개비로 가득한 그곳은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 서머를 믿게 한다. “천국에 대한 아저씨의 생각을 표현한 바람개비도 있었는데 언제라도 거기에서 천사들이 떨어져 나와 금빛으로 빛나며 유유히 트레일러 안을 날아다닐 것만 같았다. (중략) ’메이”라는 바람개비도 있었는데, 다른 바람개비보다 작은 날개들이 많고 모두 순백색이었다.’ 이 집 저 집 전전하며 다녔던 서머. 분명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빗겨주고 존슨즈 베이비 로션을 골고루 발라주며 밤새도록 안고 또 안아주었을 엄마가 있었을 것이란 믿음으로 버텼다. 메이와 오브의 사랑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메이가 밭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을 때 서머는 슬픔을 느낄 겨를조차 없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오브마저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컸다. 메이를 분명히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집중하는 오브는 서머를 더 옭아맸다. 반짝이는 과자봉지부터 온갖 것을 수집하는 클리터스의 등장은 메이를 만나리라는 오브의 믿음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클리터스가 물에 빠져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사연은 오브를 더 간절하게 했다. 급기야는 영혼을 만나게 해준다는 심령 목사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목사를 찾았을 때는 이미 죽은 뒤였다. 서머는 절망할 오브 생각에 모든 것을 멈추게 했다. 의외로 오브는 돌아가던 차 방향을 클리터스가 기대하는 주의회 의사당으로 향할 때 서머는 무기력했다. 낡은 트레일러로 돌아온 오브는 메이가 생전에 가꾸던 밭에 바람개비를 모두 걸어둔다. “큰 바람이 쏴아 불어와 모든 것을 자유롭게 날려 보내 주었다.” 는 해방을 상징했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강한 상실의 트라우마는 서머의 감정을 일찍이 제한시켰다. 메이와 오브와 가족이 된 것은 축복이기도 했지만 언제 없어질지 모를 두려움이었다. 메이의 죽음은 가족에 대한 간절함을 반 토막 냈다. 서머는 마음 놓고 메이 아줌마를 그리워할 수도, 모두 내려놓고 울 수조차 없게 만든다. 또다시 겪는 결핍은 서머를 보이지 않게 억눌렀다. 심령목사를 만나러 갔다 돌아오는 하루는 어느 시간보다 길었으며 정지되었다. 기억에도 없는 시간 속에서 엄마가 발라줬을 거라 믿는 베이비 로션은 극한 고독을 상징한다. 드리웠다 금방 사라질 연기보다 가볍다. 하지만 서머의 조였던 숨통을 트이게 한 건 밖으로 나온 바람개비다. 메이와 영원히 함께 할 거란 믿음을 상징한다. 『그리운 메이 아줌마』는 간결하지만 매 순간 극적이다. 서머의 상실과 결핍, 치유의 과정은 읽는 동안 숨죽이게 한다. 작가의 절제된 서술은 깊이를 더하게 하는 백미다. 김영주 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됐다. 2018년 동양일보 동화부문 신인문학상 수상했으며, 2020년 장편동화 『레오와 레오 신부』 출간. 2021년 청소년 소설 『가족이 되다』출간했다. 이후 2023년 수필 오디오북 『구멍 난 영주 씨의 알바 보고서』와 『너의 여름이 되어줄게』5人앤솔러지 청소년소설 출간. 『크리스마스에 온 선물』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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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0.29 18:00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정숙인 작가-'나에게 새로운 언어가 생겼습니다'

◦선택하지 않은 것들 때때로, 세상의 어법이 해독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접하는 상황이나 기분 때문인지, 권력적 구조 때문인지 경계가 모호할 때 그렇다. 그럴 때면 이 세계가 너무 거대하고 무거워서 막막하다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언어가 가진 자의 것이라면, 약하고 소수인 누군가는 무엇으로 말하고 버텨야 하나. 어떻게 나를 표현하고 주장할 수 있을까. 먹고 싶은 반찬이 무엇인지 묻지 않기 때문에 선택할 수도 없다. 머리카락을 기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짧은 머리의 미소년이 되어야 했다는 깨달음도 얻는다. 삶에 선택되었을 뿐 그녀는 장애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현실을 인식하는 나날을 살아왔다. 그녀, 누구도 장애를 선택하지 않았다. 시설 안에서의 장애인은, 다수의 중증장애인을 사회복지사 1인이 지원하는 구조 때문에, 개인이 불편해야 다수가 편하다는 암묵적 수용을 한다. 그렇게 불편함을 견딘다. 억압과 해방을 주는, 몸과 맘을 이루는 나의 물질로 이루어지는 세계에서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장애는 삶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 생(生)의 전부라서 나의 모든 것을 옭아매고 만다. 몸과 마음이 불편한 상황일 때는 사람과의 관계나 일상이 모두 예민해진다. 현재의 장애가 감기처럼 지나가지 않는다면, 평생 그 예민함 속에 살 수밖에 없다. ◦‘온전한 나’라서 『나에게 새로운 언어가 생겼습니다』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남의 문제’로 여기는 ‘나의 문제’이며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와 태도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 만드는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이다. 임은주, 국화, 미숙, 차지숙, 이지숙, 정아, 최송아, 모두 일곱 명의 그녀가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나와 너의 기록으로 완성한 손바닥 에세이다. ‘가족의 선택으로 시설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오거나 할머니와 살아온 시간이 더 많던 그녀. ‘늘 남의 시선이 먼저’ 보였던, ‘민폐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그녀. ‘온전한 나’로 살고 싶은 마음이 담긴 솔직한 이야기는 ‘일곱 개의 새로운 언어’로 드러난다. 인생이란 스스로 ‘밀어야만 열리는 문’이라는 성장기를 완성해 냈다. 한때 좌절했으나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타인의 장애나 고통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의 말은 일회성 위로일 뿐일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나를 속이며 스스로 ‘나의 분석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그녀.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의 간절함이 더해져서 어떤 장애, 역경에도 정직하게, 현상을 돌파하는 지혜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는 답을 얻기까지 그녀들은, 참 얼마나 아팠을까. 거울을 보고 조심조심 발라도 지멋대로 발라지는 게 장애 때문이라던 생각을, ‘원래 내 생김새’라며 자신에게 ‘예쁘다, 귀하다’ 말을 건네는 그녀. 늘 글을 배우고 싶었지만, 손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포기하던 그녀가 남편에게 투정을 부리는,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그녀. 결혼과 이혼, ‘평화로운 하루를 좀 더 빨리 갖지 못한 것’을 꼽는 그녀의 마음을 따라갈 때 우리도 함께 안타까워지고. 그런 그녀가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활동가이자 인권 강사이며 상담가인 다니엘을 만나며 ‘누군가가 나로 인해 행복해지는’ 꿈을 다시 꿀 때는 우리도 그녀와 함께 행복해진다.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지 않을 때 그가 잃어버린 오늘은, 우리의 내일로 온다. 나와 다른 누군가의 절망이 아니라 나의 절망이고, 너의 절망인 채로 두어서는 안 된다. ‘타인의 시선이 곧 나의 시선’이므로, ‘그들의 시선을 판단하는 것은, 내 시선’이므로 ‘편견의 족쇄를 푸는 열쇠는 내 눈에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한다. 정숙인 작가는 201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백팩'으로 등단했다. 작품으로는 몇 편의 단편소설과 채록집 <아무도 오지 않을 곳이라는, 개복동에서>(201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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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0.22 18:3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 – 에이미 탄 '뒷마당 탐조클럽'

지난 겨울, 모두가 그랬겠지만 마찬가지로 고달픈 연말을 보내느라 진이 빠졌다. 목표로 한 일은 죄 실패했고, 일거리도 없었고, 좋은 뉴스도 들리지 않았다. 무기력에 몸이 처졌고, 지하로 굴을 팔 것 같았다. 이런 때를 종종 겪으면 나름의 예방책을 찾게 된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움직일 것. 겨우 신발을 고쳐 신고 무작정 도서관에 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에너지는 자주 바닥을 쳤다. 움직이기까지는 힘을 낼 수 있지만,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운 정도로. 그때쯤 새로운 즐거움을 얻었다. 옷을 아주 두껍게 껴입고서 도서관을 가다 말고 천변 벤치에 앉아서 온갖 새들이 오가는 걸 지켜봤다. 운이 좋은 날은 잠시 들른 수달을 볼 수도 있었다. 발끝이 얼고, 코가 차가워지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다시 도서관을 향해 걸었다. 가상에 살얼음이 낀 물 위를 오가면서 정신없이 먹이를 찾는 오리를 보고 있자면 나도 덩달아 마음이 바빠진 탓이었다. 그 뒤로는 생물 도감과 검색을 통해 새들의 이름을 익혔다. 그저 새라고만 불리던 조류들은 차츰 이름을 되찾았다. 백로, 청둥오리, 물까치, 까치, 왜가리, 멧비둘기. 오늘 보이는 오리 가족이 어제 있던 오리 가족인지 추측하며 들여다보는 재미로 무기력한 시간을 잘 견뎠다. 그 겨울에는 알게 모르게 나를 돌본 주변 사람들이 있었고, 관심을 끌어준 새가 있었다. 날이 풀리고, 좋은 뉴스가 들리고, 일이 바빠지면서 겨울의 탐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들른 도서관의 신간 코너에서 그냥 지나치기 힘든 책을 만났다. 이름하여 '뒷마당 탐조클럽'. 정말이지 반가운 제목이 아닐 수 없었다. 책을 열고 서문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아주 흥미로운 탐조 클럽에 가입하게 됐다. 막연한 즐거움이 새로운 취미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이 클럽을 통해 새들이 먹이를 찾고, 터전을 지키며, 짝을 찾고, 새끼를 기르는 모습을 조금 더 깊고 오래 바라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혹시 마음이 움직이신다면, 그림을 그리는 일에 도전해 보거나, 매일 한 마리의 특별한 새를 찾아보는 즐거움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중략) 결국 이 클럽이 지향하는 바는, 야생 새들과 이어진 작은 인연 속에서 인간으로서 의미를 되새기며, 삶을 더욱 깊고 충만하게 살아가는 데에 있습니다.” (7쪽) 책을 덮으며 지난 겨울을 다시 떠올렸다. 철저히 도서관을 향하는 산책과 그 길을 둘러싼 생명을 중심으로. 새들을 관찰하고 그 곁에 식물과 다른 생물들을 관찰하면서 안부를 묻던 일이 퍽 즐거웠던 것이 떠올랐다. 다 함께 아름다운 스케치가 곁들여진 이 탐조의 기록을 보자. 그리고 노트와 펜을 들고 나가자. 집 근처에, 마당에, 천변에 자주 등장하는 새를 찾아보자. 그러다가 생각나는 이가 있으면 안부를 묻자. 분주하게 자신의 생을 이어가는 새들을 보며 따라 해보자. 그러다 우리가 자연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감각해보자.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힘을 낼 수 있게 한다. 지난했던 지난겨울을 다 함께 견딘 것처럼. 최아현 소설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아침대화>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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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0.15 18:3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동화작가-김근혜'들개들의 숲'

인간은 늘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그래서 오늘의 고단함을 딛고 이상향을 향해, 현재를 담보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보다 나은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토피아를 그리며 순간의 행복을 내일로, 모레로, 그다음으로 미룬다. 이러한 세상을 꿈꾸는 게 인간만은 아니다. 얼마 전, 출간한 김근혜 작가의 『들개들의 숲』에서는 인간의 품을 떠난 개들과 고양이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인간들에 의해 유기되었지만, 인간의 삶과 멀어지면서 그들만의 자유를 찾아 떠난다. ‘섬숲’이라는 소문 속 낙원을 향한 여정은 단순한 모험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 연대, 책임에 대한 고백이며 우리 내면의 유토피아에 대한 질문이다. 『들개들의 숲』은 유기견 ‘라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라도는 자신의 주인이 감당하지 못하고 버려지지만, 거리에서 만난 늙은 개 ‘할매’의 마지막 유언을 믿는다. 인간의 폭력도 없고, 먹이 걱정도 없는 평화로운 곳, ‘섬숲’에 대한 이야기였다. 라도는 우연히 만난 길고양이 보리, 유기견 코털과 함께 섬숲으로 향한다. 이들이 섬숲 가까이 가면서 낙원에 대한 부푼 마음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 있다. ‘섬숲에서 향긋한 냄새가 불어왔다. 텁텁했던 목과 잔뜩 엉킨 실타래 같던 머리를 상쾌하게 해주었다.’라면서 노래를 부른다. (p19) 하지만, 섬숲이 소문처럼 꿈꿔왔던 낙원이 아니라는 걸 도착하자마자 깨닫는다. 먹이가 부족하고, 생존의 위협을 받고, 개장수와 개 공장, 섬의 무차별적 개발 등 인간의 욕망이 만든 그림자들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라도 일행은 섬숲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친구들을 구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잃기도 하면서 ‘유토피아’라는 허상과 현실 사이에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된다. ‘섬숲’이라는 공간은 희망과 자유의 상징이지만, 그곳 역시 생존을 위해서는 수많은 갈등과 먹이 쟁탈전이 일어난다. 결국 낙원이라는 것도 누군가의 희생이나 상실 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작품 곳곳에서는 유기 동물에 대한 연민만이 아니라 돌봄과 책임, 인간과의 연관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시한다. 라도와 보리, 코털의 우정은 단순한 동료애를 넘어 고통을 함께 나누는 연대를 보여준다. 인간의 보호 아래 있던 존재들이 버림받고, 때로는 인간이 만든 애견 상점과 개 공장에 갇히면서도 서로를 구하고 함께 일어서는 모습은 따뜻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생명을 소유하거나 소비의 대상으로만 다루는 태도를 비판하면서 존재의 존엄성과 자율, 그리고 인간이 가져야 할 책임도 묻는다. 더불어 은유와 상징,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통해 이야기를 마치 사회 소설처럼 풀어놨다. 라도의 두려움, 친구들의 생존 투쟁, 엄마를 찾는 보리의 슬픔이 단순한 감성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의 부조리와 자기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동물들의 지상낙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토피아는 일정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관계의 방식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지금, 이곳 속에 낙원은 숨어 있다. 『들개들의 숲』에서는 인간들의 불편한 거울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내내 지상낙원이라는 ‘섬숲’보다 현실의 무게와 희망을 놓지 않는 용기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이경옥 동화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두번 째 짝>으로 등단했다. 이후 2019년 우수출판제작지원사업과 지난해 한국예술위원회 ‘문학나눔’에 선정됐으며, 2024년 안데르센상 창작동화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달려라, 달구!>,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 <진짜 가족 맞아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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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24 18:4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오은숙 소설가-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한 세상에서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겠다던,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내 고장 시인이 있었다. 그는 시의 이슬에 튄 몇 방울의 피를 훈장 삼아 문학을 길러냈다. 스물몇 해였던가. 그 마음을 닮겠다고 다짐하였으나 내가 마주한 것은 언제나 늪이었다. 이제 와 돌아보니, ‘자기 위안’만 남는 한계였다. 이럴 때 환기(喚起)의 시간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른 시기에, 내 고장을 거쳐간 수인이 있었다. 전주교도소에 머물며 “녹두장군의 농민군이 전주성을 공략할 때 넘었다던 완산칠봉”을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았다던 실천가이자 사상가. 1968년, 스물네 살에 강단에 선 신영복 선생은 어떤 이유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해 겨울, 선생은 ‘빙광’에서 희망을 찾았다. 빙광은 얼음에 비친 빛이 공중으로 반사되는 현상이다. 기온이 일정 온도 이하로 내려가야만 자기 숨결로 만들어진, 벽에 달라붙은 성에에 비친 빛을 볼 수 있다. “빙광이 날카로워지면서 파릇한 빛마저 내뿜는 때를 가장 좋아한다”고 선생은 말했다. 선생은 혹한이 주는 고통조차 진실을 마주하는 창으로 여겼다. 날이 풀려 자기 입김이 만들어낸 성에가 “느릿느릿 벽을 타고 기어내리”는 것을 보면 공포스럽다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첫 장에서 고백한다. 염치없는 ‘자기 위안’이 만연한 시대에 물리적 한계를 넘어 실천적 의지가 만들어내는 용기와 통찰을 느낀다. 진실을 마주하는 자에게 따라다니는 한없이 깊은 사유를 본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따라서 문화는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여야 하며, 문명은 이를 손상함이 없어야 한다.” ‘사랑은 경작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선생은 인간에게서 희망 찾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책을 읽다 보면, 수감자라는 이유가 학문에 대한 열정을 식게 만들 수 없음을 발견한다. 감옥 안에서 서예와 독서를 이어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쇠창살 안에 갇힌 몸이지만 부모, 형제는 물론이고 형수나 계수, 조카와의 소통을 소홀하지 않은 것 또한 페이지 마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청구회 추억」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키워 간 선생의 한없는 인본주의의 극치를 엿본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정서를 대변하는 시대에도 오롯이 느껴질 키득거림과 들뜸, 애잔함이 뒤엉킨 장면에서 느껴지는 선생의 정신은 오히려 더욱 드높다. “기쁨과 마찬가지로 슬픔도 사람을 키운다는 쉬운 이치를 생활의 골목골목마다에서 확인하면서 여름 나무처럼 언제나 크는 사람을 배우려 합니다.” 슬픔 또한 선생을 좌절시키지 못한다. 극한의 추위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 주체로 남고자 했던 선생에게 어찌해도 지지 않는 의지를 배운다. 세속적⸳물리적 공간에 매인 선생의 환기는 빙광을 통한 무한한 우주로의 사유 확장이었다.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던 내 고장 시인과 달리, 선생은 숙고의 시간을 거쳐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새로이 쓰고자 했다. ‘자기 위안’ 대신 날마다 새로운 성좌를 키웠다. 어떤 이에게 희망은 오래된 고성에서나 피어나는 작은 풀, 납작 찌그러진 채 구르는 페트병 같다. 허리를 숙여야만 겨우 닿는다. 선생이 찾은 혹한의 빙광처럼 절박한 환기다. 그것은 냉철한 예지의 날을 세워 선생의 글을 마음에 새기는 용기다. 머리맡에 두고 날마다 실천적 의지를 다지는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오은숙 소설가는 202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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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17 18:16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보윤 소설가 – 서귀옥 '우주를 따돌릴 것처럼 혼잣말'

올봄 서귀옥 시인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다. 2012년 ‘김유정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으니, 무려 13년 만에 선보인 시집이다. 소설책만큼이나 두툼한 시집을 펼쳐 들고 우선 목차부터 훑었다. 쉰여섯 편의 시가 들어있었다. 손가락을 꼽으며 수치로 환산해 보았다. 한 해에 4편씩 쓴 셈이었다. 적어도 너무 적은 과작(寡作)이었다. 한 편 한 편 음미하며 읽다 보니 ‘분홍꽃댕강’처럼 무수히 구겨진 종이의 잔해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것은 시의 탑(塔)이었고,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쓰디쓴 쇄신의 맛’(「리프레시」)이었다. 시인의 시집에서 주목한 것은 법과 시의 만남이었다. 시인은 ‘시인으로 살아보겠다고 법무사 사무장 관두고 만학을 결정’했다고 「유머」에 썼다. 이후로 시인은 법과 담을 쌓고 시와 사귀었다. 시처럼 말랑말랑하고 서정적인 장르에 도끼처럼 쇠붙이 냄새가 나는 법의 접목이 가능할까. 누가 보기에도 시와 법은 어울릴 수 없는 조합 같았다. 시인의 시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시적 화자들이 등장한다. 법과 무관하게 살고 싶어도 다양한 이유로 법망에 걸려드는 것이 인생이었다. 법 없이 시를 써 보겠다는 무구한 생각을 시인은 일찌감치 접었을지 모른다. 시인의 시는 법의 해석 안에서 웅숭깊어졌다. 「집이 날아갔다는 말을 들었다」에서 경매 법정을 빠져나오던 한 남자는 ‘집이 날아갔어!’라고 중얼거린다. 경매로 넘어간 집이 ‘지번을 가진 새’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집이 새처럼 날아서 새 번지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경매는 해체가 아니라 재생이었다. 시인은, 한 가족을 낳고 기른 집이 한때 성행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날갯짓하는 것을 본다. 또한, 갑자기 날아온 공에 맞아 집을 날려버린 남자의 처지에 공감한다. 시인은 ‘공도 진심에 닿으면 한 번쯤 좋은 곳으로 날아간다’(「공들」)는 믿음에 힘입어 집이 좋은 곳으로 날아갈 수 있도록 바람을 잡는다. 「모자는 많고 죄는 다양해요」와 「법정에 가요, 쇼핑하러」는 연작시처럼 읽힌다. 시인은 ‘죄지은 사람과 죄지을 사람은 모자를 눌러쓰는 버릇’이 있다고 말한다. 모자의 종류만큼이나 범죄가 다양한 것은 물론이다. ‘죄를 덮는 덴 모자만 한 것’이 없기에 모자를 쓴 사람들은 ‘죄를 고르기 위해’ 쇼핑하듯 법정에 간다. 그곳에는 ‘오늘만 사는 이들’이 있다. 시인은 불운을 물려받은 이들에게 법정에 즐비한 죄를 내보이며 ‘살 거야? 말 거야?’라고 다그친다. 살고 싶다는 게 ‘사치의 욕구인 이들’을 막다른 길로 몰아간다. 그러나 막다른 길에도 퇴로는 있다. 「위너」에서 시인은 ‘얼어붙지 않으려고 멍을 옮겨 달고’, ‘좀 더 유연해지려고 구겨지며’ 그저 살기만 하자고 손을 내민다. 루저와 잉여일지라도 가로등 폭죽을 터뜨리면서 자축하며 살자고 한다. ‘제 꿈의 보폭과 속도로 시차를 수련하면서’(「미래는, 내가 이름 붙여준 나의 골든레트리버」) 저마다의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그렇게. 시인은 「좋은 인상」에서 ‘내 시가 곧 죽을 사람의 마지막 한 끼라는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시인입니다’라고 썼다. 그런 마음으로 쓴 시 쉰여섯 편을 읽고 나니 며칠을 안 먹어도 될 만큼 포만감이 느껴졌다. ‘뻔하고 엽기적이어도 한 번씩 눈물 나게 웃어’ 달라는 당부대로 킥킥대기도 했다. 나도 시인처럼 우주를 따돌리고 혼자가 된 듯 가벼워졌다. 황보윤 소설가는 전북일보와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소설집 <로키의 거짓말>, <모니카, 모니카>, 장편소설 <광암 이벽>, <신유년에 핀 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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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10 18:4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작가, 박래빗'i의 예쁨'

박래빗 시인 건강하게 잘 있지요? 살다 보면 불현듯 폭우가 쏟아지고 사방이 캄캄할 때가 있습니다. 와이퍼로 물방울 밀어내듯 가볍게 두려움을 털어내고 자신에게 와줄 문장을 기다리는 박래빗 시인, 그에 대한 기록 『i의 예쁨』을 읽고 덩달아 나는 환해집니다. 글에 자신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지요. 타자의 삶이나 상황맥락을 빌려 시침 떼 보지만 그 배면은 자신일 것이어서 쑥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래빗은 내포하고 있는 자신을 낱낱이 공개함으로써 타자의 억측을 무너뜨리고 순수함은 오히려 정밀해졌습니다. 형식은 신선했으며 나 또한 내용이 닿는 그곳을 가본 적도 있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자신’을 도구이자 수단으로 사용하는 재기발랄한 책 『i의 예쁨』은 박래빗 시인의 유년에서부터 현재까지 거의 모든 시절이 날것으로 가득하더군요. 장르의 경직성을 털고 시와 수필, 경험과 환상, 유쾌한 수다와 진중한 철학적 성찰로 가득했습니다. 무엇보다 래빗의 문학을 사랑하고 예뻐하는 마음이 울울창창했습니다. 책에서 밝혔듯 “다음날이 오면 또 무슨 문장과 글이 나에게 올지 행복해하며 궁금해하는 날들”로 책의 모든 성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꾸밈없이 써 내려간 글, 때론 나를 거침없이 보여주는 것 같아 혼자 웃음을 짓곤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늘 나이며, 나,인 것이 좋”은 박래빗 시인의 솔직함과 다소 과잉된 자의식마저 신선해 보여서 좋았습니다. 집요한 목적성이 오히려 목적을 훼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유인 박래빗 시인은 목적을 획득한 거지요.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주지하다시피 욕망하는 ‘목적성’ 없이 문학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유소년기 감수성 도처엔 천진함이, 굳이 세공 하려 들지 않은 원석의 묘미로 가득했지요. 래빗은 체력적 한계와 병약함으로 유년기를 보냈더군요.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엔 물리화학적 처방이 아닌 종교적인 포용과 엉뚱함과 재기발랄함과 세상 한복판에서 살짝 벗어난 비정형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짐작해 볼밖에요. 고백하건대 래빗의 사생활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사실 박래빗 시인과 나는 운명의 실타래 한 올쯤 얽혀있지요. 래빗의 사생활에 개입된 적 있으며 공유한 시절을 추억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니 더욱 좋았습니다. 박래빗 시인의 사적인 경험과 감각들이 궁극에는 보편적인 삶의 진리에 다다르게 된다는 점도 밝혀두고 싶군요. 래빗은 글을 맺으며 벌써 글을 쓰는 시간이 그리워진다고 썼더군요. 래빗의 그 ‘시간’을 응원합니다. 최근 고도의 해석 기술을 장착해야 풀리는 난해한 책들 속에서 모처럼 쉽고 천진한 성장 시 혹은 소설을 보는 것 같았어요. 소녀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한 지금까지의 일대기를 과감하게 보여주는 근원이 무얼까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시 산문집에서 일관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긍정의 언어들, 위태로울 만큼 천진하나 균형감각을 잃지 않은 래빗의 내면이 상처받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인간관계가 절대적이지 않는 부박한 시대, ‘오롯한 나’가 존재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지요. 래빗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로고테라피 대명사 빅터 프랭클처럼 앞으로도 세상이 캄캄해지거나 고통스러울 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라요. 선결과제는 우리는 모두 ‘나약한 인간’이고 ‘패잔병’이고 필멸로 향하는 ‘환자’임을 인정해야 하는 거지요. 특히 이 말은 꼭 전하고 싶어요. 래빗 덕분에 글을 쓸 때는 뭐든 써도 된다는 것, 자신을 보여주든 그 반대 값이든 ‘무엇’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써간다는 것을 새삼 알았어요. 개인에서 시작되는 기본값을 자신 감각대로 쓰다 보면 사회병리, 금기, 고통 등은 휘발되고 평화가 찾아온다는 메시지, 잘 받았어요. 박래빗 시인이 표출하는 에너지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 때가 오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잘 지내요. 답장이 늦어서 미안해요. 기명숙 작가는 전남 목포 출신이며,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몸 밖의 안부를 묻다>가 있다. 현재 강의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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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03 17:3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작가, '사춘기, 우리들은 변신 중'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아들은 방문을 잠갔다. 꼬박꼬박 인사하던 아이가 ‘잘 다녀와’라는 말에 ‘네’라는 대답조차 인색했다. 함께 외출하자고 하면 고개를 젓기 일쑤였고 속 얘기는커녕 일상 속 대화조차 멀어졌다. 꽁꽁 잠긴 방에서 뭘 하는지, 달라진 이유를 몰라서 속이 터졌다. 심각하게 고민하는 내게 친구가 던지듯이 말했다. “드디어 시작이다. 사춘기.”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전주에서 동화를 쓰고 있는 다섯 명의 작가가 『사춘기, 우리들은 변신 중』이라는 책을 펴냈다. 책을 읽으며 그때 아들이 왜 방문을 잠갔는지, 닫힌 방 안에서 어떤 생각 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작품 속 아이들은 다양한 문제와 고민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가슴이 나오고 생리가 시작된 데다가 또래 여자애들과 못 어울리면 자꾸 불안한 이나, 여드름과 털, 이상한 냄새가 나 스스로 낯설고 못난 아이로 변해가는 것 같아 걱정인 주홍이는 성적인 변화가, 요동치는 감정이 혼란스럽다. 귀엽기만 하던 볼살이 부푼 찐빵처럼 느껴지고 튼튼한 허벅지가 통나무처럼 거대해 보여 고민하는 윤서, 반면에 거식증에 걸린 자신과 다르게 잘 먹고 건강한 윤서가 부러운 소희, 전학 온 친구를 질투하다 나중엔 열등감에 빠진 영서는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며 힘겨워한다. 여자친구 윤지가 아끼는 강아지를 질투할 정도로 사랑에 빠진 종범이, 아토피로 고통받는 덕준이, 필리핀 사람인 엄마를 무시하는 말을 참지 못하는 재현이 역시 어쩔 수 없이 일렁이는 감정, 상황 속에서 무기력하다. 사춘기는, 그 길을 걸어가는 아이들, 그 모든 걸 지켜보며 감내해야 하는 가족, 주변 사람들까지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아이들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감정, 행동이 버겁고,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낯선 외계인처럼 변해버린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나 역시 변해가는 아이를 보면서, 수시로 솟구치는 화와 울컥 쏟아지는 눈물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 내가 겪었던 사춘기가 떠올랐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방문 걸어 잠그고 많이 울었던 그때, 친구가 너무 좋아서, 친구 집까지 데려다주고, 깜깜해져서야 집에 들어와 야단맞곤 했었다. 매사에 서툴러 실수가 잦았고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빨개지는 부끄러운 행동도 떠오른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이 모든 게 결국엔 다 지나간다’라는 사실이었다. 아들 역시 묵묵히 지켜보면서 기다려주면 분명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었다. 이제 성인이 된 아들은 전자기기에 낯선 엄마를 가르치고 돌봐야 할 존재로 생각하는 듯하다. 나는 그저 순한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들어 올리고 있다. 장은영 동화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 남도의병 콘텐츠 공모전 스토리 부분 대상,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고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광대특공대』, 『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전주』,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열 살 사기열전을 만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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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2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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