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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기서만, 로컬콘텐츠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오늘날 인류를 지배하는 가장 보편적인 시스템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자본주의 생산혁신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시대를 열었다. 유행은 짧고 빠르며, 물건은 넘쳐난다. 잘 키운 작은 기업을 대기업이 흡수한다. 새로운 회사가 나오면 빠르게 인수하는 능력은 대기업의 전략 중 하나다. 회사 하나 만들어서 비싸게 파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청년 사장도 있다. 물건은 노동자가 만들지만, 물건을 판 돈 대부분은 공장 주인이 가져간다. 정해진 월급을 받는 노동자는 공장주인만큼 부를 얻기 힘들다. 토지 또한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가지고만 있어도 저절로 소득이 쌓인다. 땅이 없는 사람은 부를 쌓을 수 없다. 다수가 이해하고 인정하는 자본주의 원리다. 소수에게 부(富)가 집중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가난한 사람은 늘 가난하다. 양질의 지원을 받는 자녀들은 출발선부터 앞서 나간다. 더 많은 부를 획득할 기회를 잘 사는 자녀들이 얻는다. 그렇지 않은 반대편의 사람은 가난만을 대물림한다. 다수가 이해하고 인정하는 자본주의 원리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무너지고 잃어버린 가치가 있다. 자본주의는 소득 불평등뿐만 아니라 지역 불평등도 낳았다. 도시와 농촌의 차별에서 벗어나,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확대되었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서 살고 있다. 어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는 지역감정까지 섞인다. 이 모든 것이 자본주의 탓만은 아니지만, 지역 불평등에 자본주의가 숨어있다는 것은 다수가 이해하고 인정하는 자본주의 원리다. 먹고 살려면 수도권으로 가야 한다고 다짐한 청년들의 인서울 행렬이 이어진다. 지방은 사람을 잃고, 활력도 잃는다. 국가는 지역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육성할 의무를 지닌다는 헌법 123조에 명시된 문장이 자못 섭섭하다. 다가온 미래, 다가올 미래, 우리는, 지방에 있는 우리는, 지방에 남아있는 청년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브랜드는 사람을 모으고, 소비를 일으킨다. 브랜드는 단순한 로고가 아니다, 브랜드는 문화이며, 다른 것과 다른 정체성이다. 진정한 명품은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브랜드는 뺏고 빼앗기는 자본주의의 구조로만 설명될 수 없다. 지역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지역만의 브랜드를 통해 지역의 장점과 특성을 드러내야 한다. 오직 우리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 문화적 자산. 그 고귀한 자산을 꺼내 취향과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가게는 오래된 메뉴를 그대로 유지한다. 유행에 맞춰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콘텐츠가 있기 때문이다. 지역이 지역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야 한다. 지역의 고유한 자원과 연계하여 무엇으로 지역을 알리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오직 우리 지역만이 가질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유형의 한계를 넘어, 무형의 것에서도 찾아야 한다. SNS로 관계를 맺는 온라인 시대에 오프라인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일은 지역의 특성을 살리는 로컬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다. 로컬콘텐츠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나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하여 창업한다면, 오직 우리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희소성 있고 특별한 경험이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소상공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장기적인 경쟁력은, 대기업이 쉽게 따라 할 수도, 흡수할 수도 없다.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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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25 16:31

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김유진 우석대 미디어영상 4학년 지금 우리는 어렸을 적 꿈꾸던 모습일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였다. 경찰, 제빵사, 심리상담사, 사진가, 그중 하나는 선생님이었다. 스무 살 때부터 아동센터에서 근로하며 내 이름 석 자보다 선생님으로 불렸다. 앞에는 별명, 뒤에는 선생님이 붙는다. 어찌 보면 꿈을 이룬 셈이다. 평생 선생님을 부르는 입장이었기에 처음에는 누군가가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것이 어색했다. 동시에 선생님으로 불릴 때마다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아이들에게 무수한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단어에 맞게 잘 행동하고 있는지 도움이 되는 존재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나를 찾는다는 소리를 들으면 잘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며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나 역시 아이들을 보며 배우는 것이 많다. 학교 끝나고 놀이터를 다녀와도 에너지가 남아돈다. 공부 시간을 제외하고 하염없이 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에너지가 가장 빛을 발하는 피구 시간에는 초롱초롱한 눈동자들이 하나같이 공을 향해 있다. 땀이 나도록 뛰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열정을 체육 시간에 뽐내는 아이도 있고 나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는 아이도 있고 의젓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 상상력이 풍부하고 긍정적인 아이도 있다. 그 나이에만 빛나는 마음을 보면 어린 시절이 떠올라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려 노력한다. 순수한 열정은 나한테도 전달되는데 놀 때는 아이들의 친구처럼 놀아주고 공부할 때는 공부에 흥미를 갖도록 알려준다. 아이들의 검은 눈동자를 보면 맑다 못해 내 모습이 비친다.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그 시절이 마냥 부럽다. 하지만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스물셋이어도 어른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고 아직도 부족한데 말이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이 옛날 사람이라고 놀릴 때면 어른이 되는 건가 싶다. 성인이 되면 자유로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스무 살의 나는 실수투성이고 걱정으로 덮여있었다. 어렸을 적 그려왔던 모습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어른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가 많아도 어른 같지 않은 사람이 있듯이 어른은 상대적인 것 같다. 아이들의 눈에 내가 어른처럼 보이지만, 부모님은 아직 어린 애로 보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 한 아이가 색종이로 접은 토끼를 본인 몸집만 한 쇼핑백에 한가득 접어왔다.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는데 선생님은 보라색 좋아하니까 보라색 토끼예요!라며 나에게 건넸다. 얇고 얇은 색종이 한 장이 감동을 줬다. 나눔의 기쁨을 생각하며 접었을 아이의 마음이 기특하고 귀여웠다. 아이들은 어른과 다르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선물해준다. 토끼의 감동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쓰레기통에서 구겨진 토끼를 발견했을 때다. 그리고 버린 사람은 아이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나만 쉽게 감동한 것일까. 누군가에게 토끼가 낙서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만큼은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아이에게 미안했다. 나는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다. 아이들 속에서도 슬픔과 기쁨이 공존할 것이고 세상은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단지 어른들로부터 웃음을 덜 잃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들의 꿈이 흐려지지 않도록, 세상이 다정해지도록 내가 먼저 괜찮은 어른이 되어야겠다. /김유진 우석대 미디어영상 4학년 △김유진 학생은 우석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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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18 16:22

지나고 나니 청춘이어라

옛날엔 그 시대마다 냄새가 있었다. 유명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에서 한 캐릭터가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읊조리는 대사다. 어린 나이에 들었을 때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말이다.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프로젝트 그룹 MSG워너비가 연일 화제다. 이는 과거 200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제작된 그룹인데, 이들의 제작 과정을 담은 놀면 뭐하니?가 토요일 전체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를 달성하고 데뷔곡이 발매함과 동시에 국내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그 파급력이 실로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토토가, Jtbc 예능 프로그램 슈가맨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대중들을 과거의 향수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흐름. 우리나라에 이러한 복고 열풍이 한철 지나가는 유행이 아닌 본격적으로 주류 문화 현상이 된 것은 필자를 포함한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 핵심 구성원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무렵부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밀레니얼 세대는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 사이의 과도기를 겪은 세대다. 지금이야 상대방이 어디에 있든 SNS를 통해 손쉽게 소통할 수 있지만, 시공간적 제약이 있었던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친구들과 놀기 위해 놀이터로 몇 시까지 모이자는 약속을 하거나,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편지에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거나 하는, 흑백 필터를 낀 듯 왠지 모르게 아련한 그 시절 그 기억들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우리의 몸집이 커진 만큼 많은 것들이 변했고, 이제는 같은 자리에 있어도 눈을 보고 대화하는 것이 아닌 스마트폰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이게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므로 그 시절이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과거를 그리워하고 과거에서 위안을 얻는 복고 열풍이 특히나 밀레니얼 세대에서 두드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014년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복고 트렌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명 중 1명이(49.3%) 현실이 힘들수록 복고에 집착하는 것 같다고 응답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를 겪기도 하고 현재 최악의 청년실업률을 몸소 체감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는 N포세대라 불릴 만큼 녹록지 않은 현실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다.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고 내 집 마련의 꿈과 인간관계를 포기할 정도로 가혹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우리에게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콘텐츠들이 그 어떤 것보다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가혹한 현실을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는 비상구이기 때문이 아닐까. 옛날엔 그 시대마다 냄새가 있었다. 사람 냄새 풀풀 풍기던 아날로그 시대를 추억하는 우리가 지금의 디지털 시대를 어떤 냄새로 기억할지 궁금하다. 어쩌면 무색무취의 시대라 회상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므로, 현재의 우리가 남긴 발자취 속에서 먼 훗날의 우리는 새로운 냄새를 찾게 될 것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그때 참 힘들었지. 그래도 지나고 보니 추억이고, 지나고 나니 청춘이더라. /김정환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김정환 학생은 원광대학교 학보사 원대신문 57기 정기자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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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11 16:54

지방 소멸의 위협, 지역학으로 돌파하자

박정민 전북연구원 부연구위원 최근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인구 유출의 신호탄으로 지역학생들이 in 서울을 외치며 탈지역을 선호하던 현상은 한 두 해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에 인구절벽 시대를 맞아 학령인구 감소가 현실로 다가와 올해부터 지역대학의 미충원 사태까지 벌어지며 위기를 체감할 수 있다. 서남대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대학의 위기는 단순히 관계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과 지역의 생활경제권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공생 관계로 학교 앞 상권 등 대학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역대학의 붕괴는 지역경제의 위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방분권의 이념에 따라 갈수록 지역 특성에 적합한 인재 양성이 요구되고 있다. 애향심과 실정에 밝은 인재는 지역의 아젠다를 제시하고, 현안을 해결하는 초석이다. 그러나 지역대학의 정원 미달이라는 미증유 사태를 겪으며 이제 연구 집단의 인력풀 자체가 감소하는 문제점에 직면했다. 이와 함께 해당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수 있는 학문후속세대의 양성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단순한 인구유출, 대학 정원의 미달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도모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지역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제시하는데, 그 중 하나가 지역학이다. 각 지역의 정체성 정립과 미래비전 설정을 위해 전국 16개 모든 광역자치단체에서 지역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물론 이런 거창한 담론이 아니더라도 지역학은 우리의 터전에서 선조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알고, 이를 통해 우리의 강점과 특수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처럼 지역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전국, 세계화로 확장하는 글로컬(Glocal)의 토대라 할 수 있다. 지역의 위기가 계속되는 이 시기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개인, 혹은 기관 등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일로 집단 지성이 요구된다. 여기에 긍정적 신호를 주는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지난 2016년부터 시작된 제주학대회와 강원학대회이다. 각각의 연구센터를 중심으로 지역의 민관학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역 정체성과 발전 방향을 자유롭게 논의하는 장으로 만들었다. 더불어 다양한 전공자들이 지역학이라는 큰 주제를 함께하는 명실상부한 대표 지역학 대회로 발돋움하였다. 전북 역시 2019년에 전북연구원 산하로 전북학연구센터를 설립하였다. 도정의 정책지원부터 연구, 대중화, 네트워크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올해 전북학연구센터에서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은 제1회 전북학 대회이다. 지역학, 역사, 문화관광, 사회, 농업 등 5개 분과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지금까지 전북에서 이루어진 연구 현황을 살펴보고 미래를 진단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매년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 전북의 현안과 관련된 담론을 만들고, 우리만의 시각이 담긴 아젠다를 선점하는 자리로 만들 수 있다. 이 같은 작은 발걸음은 지역의 민관학이 함께 모여 지역의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집단 지성의 기회를 마련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 지역에서 갖는 대학의 역할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지역대학 당위성존재감을 내세우며 자라나는 학문후속세대에게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박정민(전북연구원 부연구위원) △박정민 부연구위원은 중국 연변대학교 방문학자, 일본 규슈대학교 방문연구원, 전북대 강사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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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04 17:04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었다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총 4회 공연 대본을 위해 6월 한 달 동안 대한민국 대표 명창, 명무, 명인 10명을 인터뷰했다. 직접 만나거나, 전화 통화로 진행하는 두 가지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인터뷰 도중 사전 분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선생님에게 혼쭐나기도 했으며, 선생님의 말씀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녹음자료나 메모한 내용을 혼자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곁에서 잠시나마 살펴본 선생님들의 삶은 곧 예술이었다. 자기 예술 앞에 타협은 없었다. 예술을 더 잘하기 위해서 매일 새로워지고자 했다. 젊은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물었더니 첫째는 성품이 좋을 것이었다. 정심정음(正心正音)이라는 말처럼 바른 마음이라야 바른 소리가 나올 수 있었다. 둘째는 오직 하나만 깊고 오래 할 것을 강조했다. 하나를 제대로 잘하지 않고서 다음은 없었다. 예술가(藝術家)의 집 가(家) 자처럼, 예술로 하나의 집을 이루지 않고서는 예술가라고 말할 수 없었다. 선생님들의 예술은 죽을 때까지 운명이었다. 자신의 스승님은 악보를 정리하다 그대로 앉은 채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하며 그런 스승 밑에서 배운 자신도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예술과 함께 하고자 했다. 아픈 것도 자신이 예술을 제대로 하지 못해 큰 병이 난 거라며, 자신의 예술을 운명으로 여겼다. 예술은 처음부터 좋았고, 50년, 60년이 지난 지금도 좋다고 했다. 좋다고 말하는 선생님의 표정은 마치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와 같았으며,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 숫돌에 칼을 가는 장수와도 같았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개인적으로 느낀 점 몇 가지를 두서없이 나열한 이유가 있다. 우리 사회가 윗분들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떠받들어 모시자는 맹목적인 찬양의 의미는 아니다. 자신을 피하기만 하고 늙은이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잔소리로만 여기는 젊은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이렇게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젊어지는 것 같고, 기분이 좋다고, 더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했다. 우리는 윗사람의 말을 꼰대라는 거들먹거리는 말로 깎아내리지 않았는지 뒤돌아보게 되었다. 책으로 잘 정리되어 있고, 유튜브를 통해 따라 배우면 되며, 윗사람의 말을 녹음했다가 나중에 살펴보면 된다. 그러니 현장에서, 만남에서 윗사람에 대한 존경과 존중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연장에서 관객이 무대를 보지 않고, 공연을 찍고 있는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스치듯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창작에 대한 이야기 또한 대가(大家)들의 언어는 두루 통했다. 창작이 둥둥 떠다니면 안 된다고 말했다. 창작이 둥둥 떠다니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전통에 대한, 역사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과 역사에 대한 뿌리를 깊게 알고 나서야 비로소 창작이 나온다고 말했다. 또한, 세상의 모든 예술은 보통 사람들이 듣고 보았을 때 행복한 음악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선생님들의 삶에 스며들고자 노력하였으나, 많이 부족했다. 그래도 공연은 끝났으며, 다음 공연을 잘 준비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마무리하려다 문득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눈이 형형하게 빛났던 선생님 한 분이 떠올랐다. 그들은 배려에도 원칙이 있었고, 반대에도 관용이 있었다. 오랜 시간 켜켜이 쌓아온 예인의 삶만큼 그들의 세계는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었다.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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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27 17:00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의 파편

박지원 변호사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1심 소송에서 각하 판결이 선고됐다. 기존 대법원 판결로 위자료가 인정되어 강제집행까지 하는 마당에 하급심이 엇갈린 판결을 한 것이다. 이 일로 다른 근로정신대나 위안부 관련 소송도 지연되는 등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논쟁은 법원 안에 머물지 않고 정치적 파장을 일으켰다. 판사 탄핵 국민 청원에 수십만 명이 동참했고, 북한도 천 년 숙적의 손을 들어주었다며 비난했다. 기존 대법원 판결부터도 재판거래 의혹이 있었고, 일본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운운하며 경제보복까지 할 만큼 외교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한 사안이니 당연한 수순이다. 사실 모든 일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이라는 잘못 끼운 첫 단추에서 비롯되었다. 그 파편이 튀어 피해자들은 1997년부터 20년 넘게 일본과 한국의 법원을 오가는 인간 탁구공이 되었고, 협정 관련 문서 공개를 꺼리는 외교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해야 했다. 양국이 서로 책임을 면피하고 전가하기 위한 해석적 곡예(interpretative acrobatics)를 했던 것도 청구권 협정 때문이요,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이 논리를 쥐어짜 1, 2심을 파기했으나, 끝내 소수 반대의견이 남은 것도, 이번 하급심 판결도 모두 청구권 협정의 파편이다. 그럼에도 협정 체결 당시와 이후의 우리 정부 책임에 대하여는 의아하리만큼 언급이 적다. 한일회담에서 한국은 피징용 한국인의 청구권 변제를 요구했다. 이후 협정을 통해 피징용 한국인의 청구권을 포함하여 양국과 그 국민간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했다. 그 때 한국이 요구한 12억 달러에는 피징용자에 대한 보상 명목의 3억 6000만 달러가 포함돼 있었다. 생존자당 200달러, 사망자당 1650달러, 부상자당 2000달러로 산정했다. 일본은 개별 피해자에게 직접 보상하는 방법을 제안했으나, 한국 정부는 개인에 대한 보상은 국내에서 처리하겠다며 최종적으로 3억 달러 무상, 2억 달러 차관을 받았다. 당시 정권이 일본 전범 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을 제공받았다거나, 미국의 압력으로 한일 국교정상화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기에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등 문제는 넘어가자. 그저 피해자를 내세워 받아낸 돈 중에 얼마가 피해자들에게 갔는지만 따지겠다. 1970년대에 정부는 징용 피해자 중 사망자만 신고를 받아 총 25억 원 즉, 전체 5억 달러(당시 약 2500억 원)의 1% 남짓한 금액만 지급하고 입을 씻었다. 나머지 자금은 포항제철에 1억 2000만 달러 등 경제개발에 사용됐다. 정부는 2006년에 들어서야 기존 보상이 불충분했다며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고 1인당 2000만 원 이하의 위로금을 지급했지만 판결로 인정된 위자료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진상조사 위원회는 2015년 폐지되어 활동 종료되었고, 일본의 협조가 필요한 피해자 지원 방안은 외교 문제로 교착상태다. 강제노역과 체불임금, 방사능 피폭 등 산재, 귀국 후 고향에서 받은 멸시와 고통은 모두 제철소 고로의 쇳물로 녹아 우리가 누리는 번영의 기반이 되었다. 이제는 현 세대 정부가 우선 피해자들에게 충분히 보상하고 진상조사를 계속하면서, 일본 측에 돈 문제는 우리가 먼저 해결했다. 사과하고 진상규명에 협조하라고 요구할 때가 된 것 아닐까. /박지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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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20 17:40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정은실 사회활동가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나는 모른다 / 나는 매 순간 변해왔다. TV프로그램 놀면뭐하니?의 유산슬을 시작으로 부캐가 유행처럼 번져가는 모습을 보며 70개가 넘는 이명(異名)을 사용했던 페르난두 페소아가 떠오른다. 그는 필명이 아닌 각각의 이명으로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진 글과 시를 발표한 포르투갈의 시인이다. 다양한 일들을 고민하고 시도하며 여러 영역의 역할 맡고 있는 요즈음, 사람들 앞에 서서 나를 설명해야 할 때면 페소아의 시가 큰 위로가 된다. 작년 12월 끄트머리에 사회혁신센터의 계약기간을 마치고 직업이라고 할만한 무언가를 뚜렷하게 갖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설명하는 자리가 생기면 고민부터 앞섰다. 이 고민은 두 가지 관점에서 비롯했다. 첫째는 나의 주관보다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어주고픈 습성 덕분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깊은 관심과 이해를 위해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간단한 정보로 빠르게 나를 판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다. 나 또한 상대방이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한 답을 주고 싶었다. 어디서 시작된 강박인지 모르겠지만 나에 대한 설명이 간단하고 명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내가 지금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는 일들이 생계유지를 위한 또는 생계유지를 넘어서 제대로 된 수익을 만들기 위한 일이 아니었기에 직업을 염두하고 하는 질문에 직업 다운 답변이 아닌 거 같아서 위축되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 그렇다. 요즘의 내가 하는 일들은 간단하고 명료하지 않았고, 생계유지를 위해 시작한 일도 아니었기에 답변으로서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위축됐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위축감은 밖으로부터 시작해 내 안까지 들어와 어느새 나를 갉아먹곤 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간단한 답변에 대부분은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일이야?, 그래서 그게 뭔데? 이어서 나에게 허락되는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충실하게 부연 설명을 하면 대부분은 신기하다, 대단하다 정도의 피상적인 피드백을 보낸다. 결국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역할로서 설명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준)둥근숲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전주달팽이협동조합 이사장, 우깨컴퍼니 이사, 불모지장 기획자, 간람록 대표, 활동가 등이 있다. 이는 역할일 뿐 각각의 역할에 있어서 매번 새로운 관점과 시선으로 기획과 활동, 인연이 만들어져 새로운 세상을 구축해가고 있음에 대해서는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예를 들어 현재 살고 있는 전주달팽이집에서부터 시작한 전주달팽이협동조합은 함께 사는 집(사람들은 이를 쉐어하우스라고 부른다)을 통해서 청년들의 편안(편하고 걱정없이 좋음)하고 지속(어떤 상태가 오래 계속됨)적인 정주(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삶)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주거를 기반으로 한 청년활동그룹이다. 남은 역항을 다 나열하고 프로젝트까지 설명하면 글을 마치지 못한다.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각각의 일이 다 다른 방향과 형식을 갖고 있고, 함께 하는 사람들도 다 다르다면 페소아의 시 구절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 낯설게 나는 읽어나간다/ 마치 페이지처럼, 나 자신을/ 다가올 것을 예상치 못하면서/ 지나가버린 건 잊어가면서/ 읽은 것을 귀퉁이에 적으면서/ 느꼈다고 생각한 것을/ 다시 읽어보고는 말한다/ 이게 나였어? 자기 자신의 수많은 페이지를 만들어가자. 사람들은 읽고 싶은 페이지를 펼쳐보면 될 일이다. /정은실 사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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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13 17:19

갈무리 : 물건 따위를 잘 정리하거나 간수함

이주경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 대리 1976년 6월에 개최한 3인 전 어느 전시 팸플릿! (전주문화재단에서 내가 담당하고 있는 사업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자료였다.) 거의 반백년이 지난 자료이기에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 하지 않았는데, 마감 며칠 전 감사하게도 76년 1회 전시 팸플릿과 함께 2회, 3회, 18회 까지 애타게 찾고 수소문한 자료를 받았다. 76년산 전시 팸플릿은 오래 됐지만 디지털로 변환해 사용해도 손색없을 정도였고, 관련된 다른 자료들도 잘 정리되고 소중히 간직되어 있었다. 시간에 묻혀 자연히 사라질 뻔한 자료는 보관자가 그야말로 잘 갈무리 해줌으로 다시금 후대에 의미 있는 자료로 나올 수 있었다. 이 팸플릿은 오래전 해당 전시회를 개최한 화백의 아드님께서 지금까지 자료를 잘 간직해 제공해 주신 것이다. 나는 전주를 연고로 활동한 원로작고 예술인들의 예술사와 생애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전주 백인의 자화상 이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로 10년 차를 맞이하는 이 사업은 문학, 시각, 국악, 공연, 영화, 대중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재조명하여 시민과 공유한다. 나아가, 전주 문화예술의 뿌리와 맥락을 이어가고 전주 문화예술 지형도 구축의 근간이 되는 주요 사업이다. 사업담당으로 원로작고 예술인들에 대한 갖가지 자료를 접하고 관련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말할 수 없는 생각에 둘러싸이게 될 때가 많다. 올해 이 사업을 처음 맡게 되었는데, 어떤 선생님께서 나에게 원로작고 예술인의 연구 자료를(전주 백인의 자화상 채록자료) 읽고 연구하는 건 예술가 평생의 예술 활동과 삶이 나에게 들어오는 멋진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당시 나는 그 말의 깊이와 무게를 실감하지 못했다. 전주 백인의 자화상은 매해 선정된 예술가를 연구해 채록문을 만드는데, 9년간 쌓여온 자료를 쭉 읽어보며 앞서 내가 들었던 말처럼, 실로 예술가의 한 생애와 예술세계가 나에게 들어오는 감동을 경험 하였다. 그동안 나는 동시대에 활동하는 비교적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일했다. 나와 같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활동, 그들의 시각과 언어로 해석하고 창작한 예술을 시민에게 소개하는 사업을 주로 했다. 그래서 그들의 예술세계에 대해 궁금하면 바로 만나서 물어보고, 사업진행을 위한 논의가 필요 할 땐, 바로 찾아가 이야기하고 서로 의견을 조율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전주 백인의 자화상 사업은 아카이브적인 성격도 있지만, 예술가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예술사와 생애를 추적하기 위해 작고 예술가의 생전 작업했던 작업실을 방문하거나, 지인을 찾아가 자료를 수집하고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더욱 많았다. 갈무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물건을 잘 정리하거나 모아서 보관한다는 뜻도 있지만, 일을 처리하여 끝맺음을 잘한다는 뜻도 있다. 원로작고 예술인 기록 사업은 이미 한 시대를 지나간 예술가의 방대한 예술사와 생애를 재조명하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 수집된 자료를 채록이라는 어찌 보면 2차 가공을 통해 다시금 수면 밖으로 올리게 되는데, 무엇보다도 자료의 힘이 필요한 작업이다. 후대에 전달될 전주의 자랑스러운 예술가의 생애와 기록이 소실되거나 오역되지 않게 제대로 된 갈무리가 필요하다. /이주경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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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06 17:06

우리의 삶은 전통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모든 일에는 배경이 있다. 현재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면,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 일과 관련하여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고,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살펴보아야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미얀마 사태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왜 일어났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과거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서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 각각의 사건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공교롭게도 두 사건은 과거 20세기 초 제국주의 영국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는 현재를 넓은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그동안 몰랐던 뜻밖의 새로움도 발견할 수 있다. 지역의 콘텐츠를 만드는 일도 이와 같다.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성경 말씀처럼 창조는 새로운 반복이다. 연구를 뜻하는 Research라는 단어도 다시(re) 찾는다(search)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또한, 사람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할 뿐이라고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는 말했다. 종합하면, 이미 있었던 것에 대한 탐구가 지역의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다. 지역은 인간에 의해 가치와 의미가 부여된 물리적인 장소다. 과거로부터 이어지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가 지역에 담겨있다. 지역은 그 지역을 이루게 된 맥락을 다양한 문화유산의 형태로 간직한다. 우리는 그것을 전통이라 부른다. 로컬크리에이터는 전통을 재해석하는 존재다. 크리에이트라는 단어를 들으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만 할 것 같은 막막함이 앞선다. 결국,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할 가능성만 커진다. 의자에 앉아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해서 나오는 게 창조는 아니다. 나는 대리석 안에 들어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냈다.라는 미켈란젤로의 말처럼 그 돌 안에 감춰진 위대한 본질을 바라보아야 한다. 로컬콘텐츠의 위대한 본질은 전통에 담겨있다. 전통은 과거 유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전통은 고루한 것, 낡고 오래된 것도 아니다. 전통은 오랜 기간 빚어진 섬세함이자, 영감의 원천(源泉)이다. 전통을 박물관 안에만 가두려고 하지 말자. 그것을 꺼내야 한다. 그것을 꺼내 현재의 삶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살펴야 한다. 위대한 전통이라면 그것이 왜 위대한지 끊임없이 물어보아야 한다. 지역에 관한 연구는 많지만, 그 연구의 결과가 어떻게 콘텐츠로 구현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에는 관심이 부족하다. 전통을 보존으로만 취급하지 말고 그것이 어떻게 현재와 미래로 이어질 수 있는지 콘텐츠로 보여주어야 한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사람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담겨있다. 우리 삶을 다룬 주제라면 어떤 문화권에서도 통용될 수 있다. 세계성과 지역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음을 나타내는 글로컬(glocal)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우리의 삶을 어떻게 콘텐츠로 만들 수 있을지 그 증거를 모아야 한다. 전통에 증거가 있다. 전통에 담긴 증거를 모아 현재의 삶과 연결 지어 탐구하면 그것이 콘텐츠다. 인간의 삶은 전통 안에 있다. 우리의 삶은 전통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새로울지에 대한 답도 전통에 있다.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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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30 17:49

가상자산(암호화폐) 규제 공백

박지원 변호사 암호화폐 커뮤니티는 매년 5월 22일을 피자 데이(Pizza Day)로 기린다. 2009년 탄생한 1세대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2010년 5월 22일 처음 피자라는 실물과 거래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피자 두 판이 1만 비트코인에 거래되었는데, 현재 1 비트코인의 가격이 수 천만 원이니, 11년간 천만 배 정도 오른 셈이다. 그 사이 2세대, 3세대 암호화폐들이 속속 등장했고, 가상자산 거래액이 주식시장 거래액을 추월하는 시대가 되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006년작 부의 미래에서 분야별 변화속도를 수치로 표현했다. 기업금융의 변화속도가 100이라면, 정부관료는 25, 정치조직은 3, 법은 1로 표현되었는데, 사회 변화 최후방에서 뒤치다꺼리를 하는 법률분야 종사자로서 코인 광풍을 아연히 바라보며 다시금 그의 통찰에 공감한다. 개인적으로 가상자산 관련 입법규제가 뒤쳐져 혼란을 예상했던 분야는 게임이었다. 게임 내 효용만 있는 아이템이 현금으로 거래가 되고 심지어 사기나 성매매의 발단이 되는 등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미증유의 논점들이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게임회사 야구팀이 한국시리즈 우승 뒤 2억 원에 거래되는 아이템 검을 치켜드는 시대에 법률가나 경제학자는 고민한다. 정보코드에 불과한 게임머니나 아이템이 절도나 횡령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소득세상속세증여세는 부과될 수 있는지, 게임 내 경제에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유저들 재산은 어떻게 보호할지, 독점담합양극화 문제 등등 끝도 없는 신세계가 머릿속에 펼쳐진다. 하지만 세월이 십 수 년 흐르는 동안 게임머니 관련 입법 규제는 생각보다 정교해지지 않았다. 거래규모와 피해 수준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일까. 어쩌면 규제당국은 암호화폐 또한 일종의 게임머니 정도로 가벼이 여겼는지 모른다. 그러다 2017년 투기가 심해지자 돌연 ICO(Initial Coin Offering)를 전면 금지하여 국내 발행을 막더니, 거래소 폐쇄 방침은 발표 후 하루 만에 번복하면서 유통시장을 혼란 속에 방치해버렸다. 국내에서는 만들지 못하게 할 테니, 거래하든 말든 모르겠다는 식이었다. 그 결과 수많은 암호화폐가 규제당국의 감독 없이 우회상장처럼 해외에서 발행되어 국내에서 거래되었으며, 투자자 보호 장치는 마련될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나 작금의 거래량은 발행 금지, 유통 방치라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면피성 정책 기조를 용인할 수 없는 수준이다. 발행유통 금지나 규제 하에 발행유통 허용 중 하나를 선택할 때가 온 것이다. 탈중앙화된 디지털 화폐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할 수 없고, 블록체인 기술 발전에 암호화폐가 필요 없다면 중국이나 인도처럼 가상자산의 발행거래보유를 금지해야 한다. 반대로 암호화폐와 퍼블릭 블록체인이 불가분이고, 그 사회적 효용이 투기를 감내할 만큼 크다면 발행과 유통을 허용하는 대신 금융상품에 준하는 규제감독을 해야 한다. 주식이나 파생상품도 자금조달이나 위험 헷징 등 순기능이 크다면 일부 투기는 용인하되 규제로써 역기능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가상자산에도 같은 이치가 적용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 경우라면 자본시장의 거래소처럼 시장 진입 가능 요건을 정하고, 투자자에 대한 설명 후 일정 수준 이상의 상품만 상장유통시키며, 시세 조종 같은 불공정거래를 감시하는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관리감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박지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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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23 18:46

353570 프로젝트

정은실 사회활동가 2021년 5월 15일 기준으로 세는나이 35세, 만 나이 33세. 70세까지만 살고 싶다는 계획 아닌 계획의 50%를 지나는 중이다.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지나버렸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음에도 살다 보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많은 목표와 해야 할 일들이 주어졌다. 본능적인 욕구로 먹고 자고 싸며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것에서부터 꼭 하지 않아도 되지만 자연스레 가져진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크고 작은 목표들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라는 궁금함으로 삶을 돌아보면 그때의 주어진 상황마다 사는 대로 살았었다. 운이 좋게도 20대 중반에 건강한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모여서 사는 대로 살아도 후회하지 않을 공동체 안에서 머물렀기에 큰 문제의식이 없었다. 하지만 공동체에서 나와 새로운 일들을 펼쳐가는 시기에 내 삶을 어떻게 꾸려가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세는나이 35세에서 만 나이 35세로 접어드는 기간에 남은 50%를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해 천천히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인생의 반절을 지나는 지금,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거주지를 옮기고, 새로운 주거공동체에 살기 시작했다. 일을 그만두고 직장인의 타이틀을 던져버렸으며, 하고 싶은 일을 담을 수 있는 작업실과 사업들을 준비하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과 안정적으로 함께 살 수 방법들을 찾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시작과 변화를 앞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비슷한 고민이 있는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과도 함께 할 수 있어서 놀면서 하는 재미난 일을 기획할 수 있겠다. 지나온 인생을 스승으로 삼아 남은 인생의 반을 계획하는 프로젝트라면 어떨까? 예상할 수 없지만 본이 생각하는 인생이 70년이라고 한다면 프로젝트 353570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프로젝트 353570은 지나온 35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35년을 계획하는 작업이다. 각자의 중요한 것으로부터 시작하면 좋을 텐데 나라면 3가지 키워드가 있다. 첫 번째는 공간을 주제로 그동안 머물렀던 지역, 살았던 집, 일했던 곳, 자주 가던 장소 등을 살펴본다. 각각의 장소공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나의 삶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정리한다. 두 번째는 사람을 주제로 지금까지 함께 했던 사람들, 여전히 함께하는 사람들, 앞으로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가깝고 친근한 친구들, 가족들 뿐 아니라 이제는 연락하지 않는 초등학교 친구라거나 직장생활 내내 괴롭혔던 선임, 심지어 헤어졌던 연인까지 가릴 필요는 없다. 인터뷰를 통해 나에 대한 추억을 묻고 그들이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은 어떤 인간인지를 마주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기록을 주제로 내가 남겼거나 함께한 이들이 남겨준 사진, 글, 메모, 편지, 오랜 시간 곁에 함께한 물건들까지 온갖 흔적들을 모아 정리한다.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시간에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물건을 대하는 습관들도 남아 있기에 사는 방식도 돌아볼 수 있다. 어디에 어떻게 머무르고,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무엇을 남겨 추억하는지를 통해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를 계획해보는 것은 어떨까? /정은실 사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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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16 17:52

포화된 혐오

이주경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 주임) 의미 포화라는 말이 있다. 특정 대상에 과도하게 몰입할 경우 그 대상의 정의나 개념이 희박하게 느껴지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일종의 미시감처럼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말하다 보면 그 의미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 각종 매체에서 혐오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다 보니 단어 자체가 너무나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나 내가 그 단어에 노출이 많이 되었으면 이런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해졌고 그래서 나는 지난 한주 동안 혐오라는 단어가 들어간 인터넷 기사가 얼마나 되는지 검색 해보았다. 검색결과 약 3만 여개. 물론 중복되는 기사도 있고 객관적인 지표로서 활용 할 수 있는 자료는 아니지만 혐오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이 노출 되고 있는지 단편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수치였다. 혐오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우리 곁에 이렇게 존재감을 드러냈을까? 내 기억에 처음으로 혐오의 시대라는 표현을 인식한 것은 2016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당시 우리 사회는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이 분노할 수 있는 이슈가 있었고 또 그에 따른 진영 간 갈등 또한 최고조에 이르렀다. 자신이 속해있는 진영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을 끌어내리는 혐오의 양상은 당연하게 나타났으며 바로 이듬해 새롭게 선출된 미국의 대통령이 더 강한 미국을 외치며 주변국과 이민자에 대한 다소 강압적인 정책들을 꺼내 놓으며 혐오의 시대라는 표현을 매체를 통해 더 자주 접하게 되었다. 정치적인 이슈로 예를 들어 이야기 했지만, 나 또한 지난 몇 년간 여러 계층사이에서 존재하는 혐오를 목격 할 수 있었고 또 경험할 수 있었다. 과거 우리사회에서 혐오는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재단되고 폐기되어야 할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사용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수면 아래 있던 소수자인권들이 하나 둘씩 이슈가 되면서 성소수자 인권, 양성평등, 이민자들의 인권들이 논의가 되고 서로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계층 간의 갈등은 혐오라는 감정과 함께 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혐오라는 정서는 안타깝게도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장과 전염병과 같은 공통의 불안정성, 그리고 경제적인 양극화를 바탕으로 더 널리 퍼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성별, 장애, 정체성과 관련된 멸칭을 하나씩은 들으며 사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삶이 되어버렸다.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에서 바탕을 두고 있는 감정이지만 그로 말미암아 생기는 사회 전반에 스며드는 무신경한 폭력성을 어떤 식으로 마주해야 할까. 나는 개개인의 비극을 용기 있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계층 간에 혐오에 따른 폭력은 언제나 우리주변에 산재하고 그것은 상투적인 보도의 형태로 가공되어 일종의 정보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정보로서 다가오는 타인의 비극에 둔감해 질 수 밖에 없다. 개개인의 비극이 가지는 단독성을 마주하고 그들이 차별 받게 되는 이유가 온당한지 그들이 속해있는 공동체에서 개인의 존엄성이 무시되는 과정을 면밀히 살피고 평범한 정보로 추락 할 수 있는 개인의 비극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명의 개인으로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혐오의 시대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이주경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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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09 17:50

ESG가 뭐죠?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최근 뉴스에서 ESG 경영이 자주 언급된다. 뉴스에 등장하는 저명(著名)한 CEO들은 ESG가 일시적 유행이 아닌, 근본적이며 필수적인, 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 목소리를 모은다. 일단 ESG가 중요하다는 것은 눈대중으로 알았다. 하지만 필자는 ESG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맥락(脈絡)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찾아보고, 정리해보았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다. ESG가 기업에 중요하다는 것은 환경, 사회, 지배구조라는 요소를 기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과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의 목표가 오직 이윤 극대화였다면, 앞으로 펼쳐질 자본주의는 환경 및 사회문제 해결과 같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 ESG가 기업들에 중요해진 배경에는 코로나19에 있다. 코로나19의 주요 원인은 기후변화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동물의 환경이 바뀌고, 인간의 야생동물 포획과 섭취가 늘어나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생긴 것이다. 이렇게 생긴 바이러스는 인류에게 불행을 안겨주었다. 자연을 주인이라 생각했던, 인간의 오만(傲慢)이었다. 자연의 공격에, 인간은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코로나 2년 동안 인간은 크게 두 가지를 깨달았다. 자연의 공격과 인간의 방어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인간은 영원히 패배한다는 믿음이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를 요구했다. 더는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지 말 것을 말이다. 인간이 욕망을 멈추지 않는다면, 코로나보다 더 심한 재앙을 안겨준다는 자연의 경고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담겨있다. 환경 문제에 대한 고민은 코로나 이전에도 있었다. 구제역이 돌아 죄 없는 동물들이 땅에 생매장당하는 사태에도 겪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목숨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류의 삶이 파괴되고 있는 현실을 경험한 후 인간은 달라졌다. 코로나 이전의 세상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환경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전 세계가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기업이 환경과 사회문제에 책임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기업의 성장과 환경은 상충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기업에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었다. 사회적 가치 창출이 경제적 가치 창출보다 앞선다는 말도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그럴듯한 수사로 인식되었으나 이번만큼은 다르다. ESG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균형과 조화다. 균형과 조화에는 이윤을 넘어서 기업의 선한 힘이라는 철학이 담겨있다. 기업의 선한 힘은 구체적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 사회적 책임, 공유가치 등으로 파생될 수 있다. 결국, ESG의 핵심은 생태계다. 환경, 사회, 지배구조도 생태계라는 단어에 수렴한다. 기업은 생태계의 다양한 이해관계의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 앞으로 자연과 더불어 사회와 지배구조의 상생만이 기업의 수익을 보장할 것이다. 코로나를 통해 누구나 느꼈듯, 생태계가 파괴되면 기업도 인간도 무너질 것이다. 변화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떠한 불행이 다가왔는지, 길게 말하지 않아도 역사를 돌아보면 짐작할 수 있다.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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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02 17:42

미얀마 군부와 문민통제

박지원 변호사 지난 2월 미얀마 군부가 총선 결과에 불복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여러 차례 자국민을 학살해 온 군부는 이번에도 평화 시위로 저항하는 민간인을 무력 진압했고, 지금까지 수백 명이 사망했다. 미얀마에게는 민주화를 지지해 달라고 기댈 만한 외세가 없다. 미얀마는 소수민족 학살 문제 등으로 서구세계로부터 외교경제 제재를 당해 상당 기간 고립되었다. 그 사이 중국과의 교역은 점차 늘어 현재 미얀마 수출입의 30% 이상을 중국이 차지한다. 미국이 강하게 개입하려 들면 미얀마 내 친중 세력이 커지니, 미국도 주저할 수밖에 없다. 미얀마 시민들은 국제기구 차원의 군사개입을 호소하고 있지만,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가진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과 자원수급에 지장이 없는 이상 민주세력을 돕거나 군부를 적대할 이유가 없다. 이처럼 미국이 머뭇거리고 중국이 뒷짐 진 형국에서는 국제사회가 공허한 성명 발표를 넘어 어떤 실효적 조치를 하기 어렵다. 군부가 반인륜적 범죄를 서슴지 않을 수 있는 배경이다. 결국 미얀마 내부의 힘만으로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인데, 어떤 시나리오도 녹록지 않다. 시민들이 비폭력시위를 넘어 무장 투쟁하는 것은 실현가능성도 낮거니와, 1980년 광주처럼 더 큰 유혈사태로 치닫기 십상이다. 소수민족 반군이나 정글 지역 군벌과 연합한다면 곧 끔찍한 내전을 의미한다. 한국의 1979년처럼 암살 등으로 권력 교체가 시도될 수 있지만, 우리가 1980년에 경험했듯이 쿠데타 위험은 상존한다. 미얀마도 1988년 8888항쟁의 성과를 군부 쿠데타로 고스란히 날린 경험을 갖고 있다. 미얀마 군부의 권력은 막강하다. 미얀마 헌법은 4장 입법부, 5장 행정부, 6장 사법부 외에 7장에 Defense Services라는 권력기관을 두며, 국군통수권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군부의 최고사령관이다. 군부는 상원과 하원 의석의 25%를 점유하는데, 헌법 개정에 75%를 초과하는 의석이 요구되므로, 군부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재벌과 유착하여 경제력도 틀어쥔 군부는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3권을 모두 장악한다. 유신헌법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1950년대 영국 일간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느니 쓰레기통에 장미꽃이 피기 바라는 것이 낫다고 적었다. 우리가 미얀마 군부의 작태를 보며 느끼는 마음과 같았을까. 미얀마 시민들의 헌법 화형식을 보노라면 한편으로 6월 항쟁 끝에 직선제 개헌과 하나회 숙청을 이루어 낸 우리 역사에 경이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간 출신 국방장관은 없고, 국방개혁에는 소극적인 우리 군대가 과연 충분히 민주적 통제를 받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역사적으로 무력을 장악한 전사, 무신 등은 귀족 계급이었다. 이들 군인은 상인, 현인(사제, 정치가, 관료) 집단과 더불어 통치 엘리트의 중요한 축으로서 언제나 헤게모니 다툼의 중심에 있었다. 비록 지난 30년 동안 군이 비교적 잠잠했다지만, 2017년 국군기무사령부가 촛불 정국에서 위수령과 계엄령을 검토했던 문건을 보면 방심은 금물이다. 언론 검열, 국회의원 구속을 통한 계엄해제 저지, 기계화사단기갑여단특전사 투입 계획 등을 읽어 내려가며 실감한다. 우리가 공기처럼 당연시하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나 민주주의는 하룻밤에 뒤집힐 수도 있는 취약하고 불안정한 체제라는 것을. 미얀마 사태를 우리와 무관한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될 이유이기도 하다. /박지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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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25 16:54

지금 그대로의 생각과 마음을 기록한다

정은실 사회활동가 이번에는 사람과 기록을 주제로 글을 쓸 생각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사람과 기록이라고 적은 뒤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 진행형이다. 아카이브 작업에 대해 그렇게 떠들어댔건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으니 자책하는 마음이 든다. 사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 그래서 이번에는 무엇을 적을까 고민하기보다는 지금 그대로의 생각과 마음을 적는 데 집중해본다. 그동안 기록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한 이유는 무엇일까? 새롭게 무언가를 하려는 시도는 아니었다. 기록에 관한 이야기는 습관의 연장선이다. 오랜 서울 생활을 마치고 내려와 본가에서 지내던 중 우연히 고등학생 때 쓴 다이어리를 펼쳤다. 월간 달력의 한칸 한칸마다 깨알 같은 글씨로 그날 있던 이야기들이 적혀있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내 삶의 대부분이었던 친구들, 만남들, 생각들이 제각각의 사건들로 뒤엉켜 있었다. 이런 일이 있었구나 되새기니 반가웠다가도 이런 짓도 했었나 눈을 질끈 감으며 어둠 속으로 묻어버리기도 했다. 다이어리를 눈앞까지 가지고 와야 보일 정도로 작은 글씨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에 왜인지 모를 간질간질함이 있었다. 그날그날의 이야기를 담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글자들이 마치 말을 걸고 싶어 안달하는 것 같아서였을까. 다이어리 앞면 포켓에는 알록달록하게 유치찬란한 스티커사진이 한 뭉치 들어있었다. 글씨로 읽는 과거와 사진으로 보는 과거는 다른 느낌이었다. 얼른 덮어버렸다. 이어서 대학 시절 적었던 다이어리는 매일 시간 단위로 계획한 일정표가 늘어서 있었다. 무언가를 계속 계획하고, 실행하고, 실행하지 못한 일은 다시 적어서 잊지 않도록 체크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계획과 실천에 대한 기록이나 좋았던 강의나 글귀에 관한 내용이었다. 지금은 그때처럼 월간 다이어리를 쓰거나 꾸준히 일기를 쓰는 데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더 예쁘게 더 제대로를 고민하다 어느새 손에서 놓아버렸다. 요즘 일로서 글을 쓰는 일이 잦아지면서 겪는 과정도 비슷하다. 글을 쓰기 위해 자판을 두드리는 그 순간에도 어떤 단어가 좋아 보일까? 문장은 어떻게 맺고, 어떻게 시작하면 있어 보일까? 고민하는 순간이 늘어갔다. 관련 자료를 반복적으로 찾아본다. 무수히 많은 정보를 정리하지 않은 채로 머릿속 혼돈의 바다에 집어 던진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쓰자고 하이얀 문서 화면을 바라본다. 아까 봤던 어떤 문장이 좋았는데, 저런 말이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데 하며 그 문장에 사로잡힌다.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다시 온전한 나의 이야기로 돌아와야 한다. 원래부터 내가 기록하고 싶은 것은 누가 봐도 멋지고,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날의 특별한 일, 그날의 멋진 장면, 그날의 슬펐던 문장 등 하루하루 삶이 녹아져 있는 이야기들이다. 모두에게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일상의 대화일 수도 있고, 직장에서의 일정표가 될 수도 있다. SNS에 육아일기로 올라오기도 한다. 부분으로서는 각각의 일상이자 평범함이다. 그러나 개인이 모여 사회를 구성하듯 개인의 파편이 모여 사회의 단편을 보여줄 수 있다. 꼭 모두가 동의하는 긍정을 기반으로 하지 않더라도 이런 것도 있었어., 이런 평범함이 우리의 삶이야.라고 말하는 기록에 집중하고 싶다. 지금 쓰는 글처럼 일상의 사소함을 기록하고 싶다. /정은실 사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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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8 17:06

문화의 소비와 재생산 - 공동체 안에서의 역할

이주경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 주임 1995년 10살 때까지 국민학교를 다녔던 나는 이듬해인 1996년부터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해 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던 광화문 뒤에 있던 일제 강점기 건물은 당시 대통령의 버르장머리 발언과 함께 철거되었다. TV에는 흥겨운 가락과 함께 신토불이라는 노래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고 판소리 완창으로 유명한 박동진 명창의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말은 각종 매체에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경제 성장과 근대화의 과제 그리고 내전 이후의 체제 보존을 위해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국교를 서둘러 정상화하게 되었고(1965년) 문화적인 측면에서 일제강점기와 내전의 폐허위에 중국 미국 일본의 문화가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을 가졌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문화적인 부분에서의 독립을 환기시켰던 시기였기에 그만큼 다양한 나라의 문화들이 혼재했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문화의 수용과 재생산에 있어서 케이팝은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1992년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내한은 대중문화에아이돌이라는 개념을 각인시켰고, 이후 90년대 X세대 붐과 함께 해외의 음악들이 적극적으로 국내에 유입되었다. 각종 대형 기획사로 대표되는 아이돌 산업은 2000년대 201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에서 고유의 맥락을 가지게 되었으며, 지금은 세계인들이BTS에 열광하고 있다. 내가 경험하고 영향을 받은 역사적, 문화적인 환경이 가지고 있는 맥락들 살펴보며 80년대 말과 90년대 그리고 현재에 이르는 문화적인 흐름을 간략히 이야기했다. 1인 가족, 개개인의 단절과 같은 키워드가 일상인 요즘 세상과 동떨어진 듯이 사는 것 같은 느낌을 종종 받지만, 내가 하는 일 그리고 선호하는 것들을 되짚어 보면 언제나 역사적 정치적인 맥락이 작용한다. 영국의 철학자 알래스대어 맥킨타이어는 서사적 자아라는 표현을 통해 공동체가 개인의 출발점임을 명시하였으며 그의 표현을 빌리면 개인은?공동체가 지금까지 써온 이야기를 이어쓰는 서술자인 동시에 공동체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틀 안에서 연기하는 연기자이다. 자칫 전체주의적 해석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그의 말에는 공동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방향을 탐색해야 한다는 주장의 단서 또한 제시되어 있다. 서사적 자아와 공동체 그리고 앞서 서술했던 나 자신이 경험했던 문화의 흐름들을 살펴보며 내가 존재하고 있는 위치 그리고 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보았다. 앞서 언급했던 큰 범위에서의 열정적인 문화의 소비와 그에 따른 재생산의 과정은 현재 내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원로작가의 기록과 연구, 지역 교류를 통한 외부 기획자와의 협업으로 인한 지역 문화의 재해석, 이는 모두 지역기반으로 생성된 문화를 대중들에게 소비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제시하고 나아가 자생적인 재맥락화를 촉발 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세기 동안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우리사회는 지난 20여 년 동안 문화의 힘을 통해서 세계적인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지위까지 획득하게 되었다. 앞서 말한 사업을 통해 향유하는 계층에게 소비와 재생산의 계기를 제시하는 것이 우리가 가장 고민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미래를 위한 건강한 문화생태계 조성을 향한 걸음이 될 것이다. /이주경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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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1 16:43

로컬은 지방이 아니다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1960년대부터 한국사회는 산업화로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 이동이 시작된다. 2021년 현재,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살고 있다. 사람과 자원이 수도권에 집중된다.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은 자원과 기회의 낭비를 가져왔다. 고도비만 수도권은 과도한 경쟁, 부동산 폭등, 출산율 저하를 낳는다. 지방은 소득, 건강, 교육의 불평등이 커지며 청년층 유출, 일자리 부족, 인구 고령화, 상품과 서비스 수요 감소 등을 겪는다. 마스다 히로야의 책 <지방소멸>에서 바라보는 일본의 미래는 참담하다. 일본에서 인구감소는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현실의 문제다. 일본은 매년 한 개 도시 숫자의 인구가 사라진다. 2040년까지 896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소멸할 것으로 전망한다. 마스다 히로야가 분석한 인구 문제를 악화시키는 주범은 인구가 도쿄 한 곳으로만 집중하는 극점사회.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대한민국 수도권 직장인의 출퇴근 시간은 1년 중 한 달은 길바닥에서 보낸 만큼의 시간이라고 한다. 교통 혼잡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31조. 서울시 한 해 예산과 같다.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권에서의 벌어지는 총성 없는 전쟁. 그 치열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혼부부는 출산을 포기한다. 생존 본능이 생산 본능을 앞서고 있다. 2021년 대입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수험생이 대학 입학 정원보다 적었다. 벚꽃 피는 대로 망한다는 섬뜩한 소문은 본격적인 지방대 위기를 예고한다. 최근 로컬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한다. 로컬은 영어로 Local. 사전적 의미는 자신이 사는 특정 지역을 뜻한다. 로컬은 단순히 지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골목길 자본론>을 쓴 모종린 교수는 도시만의 문화가 바탕이 된 산업 형태가 도시의 미래라고 말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지역 내에서의 생활이 중요해졌다. 도시의 특색있는 골목상권. 로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일, 문화, 놀이, 소비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문화를 갖춘,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 기반은 로컬크리에이터에 있다. 로컬이라는 단어에서 이어지는 로컬크리에이터는 내가 사는 동네, 지역, 도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여, 지역의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로컬크리에이터다. 지방 도시가 가진 사회적 이슈를 그 도시에 사는 로컬크리에터가 해결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도시를 실현한다. 지역의 음식, 상품, 이야기가 담긴 도시. 사람이 도시에 머무르게 하는 힘은 로컬 콘텐츠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이 모여 로컬이 된다. 지역만이 가진 특징들을 잘 살리면, 더욱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로컬에 담겨있다. 로컬이라는 말은 기존의 의미를 탈피하고 있다. 로컬은 단순히 지정학적 위치나 행정구역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도권과 지방으로 구분되는 차별적 구조가 아니다. 생태계가 유지되는 건 다양한 종들이 어우러져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힘은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로컬에서 나온다. 글로벌(Global)과 지역(Local)의 합성어인 글로컬(Glocal)은 지역의 특성을 살린 세계화를 말한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로컬이 담긴 도시를 우리 스스로 만드는 일이다.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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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04 16:58

LH 사태와 ‘보이지 않는 발’

박지원 변호사 경제학도가 아니라도 보이지 않는 손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사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한 번밖에 언급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기득권의 정경유착을 정당화한 중상주의를 비판하면서, 자유경쟁의 효과를 소비자 대중에게 돌리자는 맥락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개념은 사익만 추구하더라도 사회 전체에 유익하므로 정부나 규제는 필요 없다는 희망 사항으로 오독되더니, 급기야는 경제학의 사상적 본령이라도 되는 것 마냥 수 세기를 유령처럼 공론장에 떠돌았다. 그러나 공익을 위한 어떠한 규제도 없는 상황에서 개인이 오직 사익만을 위해 움직인다면 무엇 때문에 힘들여 경쟁하겠는가. 공정한 시장의 규칙을 어기는 반칙에 의존하면서 자유경쟁을 회피하고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손쉬운 길을 놓아두고 말이다. 혹자는 이처럼 정치적 특권이나 특혜를 통해 인위적인 지대를 추구함으로써(rent-seeking) 사익을 극대화하려는 현상을 보이지 않는 손에 대비하여 보이지 않는 발이라고 부른다. 이는 곧 부패 문제기도 하다. 이번 LH 사태를 보며 보이지 않는 손에 비해 보이지 않는 발이 얼마나 더 영리하며 부지런한지 다시금 느낀다. 부패는 뇌물수수에 국한되지 않는다. 부패방지법은 공직자가 지위 또는 권한을 남용하여 자기 또는 남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 공공기관의 경제활동에 있어 위법하게 재산상 손해를 입하는 행위 등을 부패행위로 정하고 있다. LH 직원이 업무상 알게 된 개발 관련 정보를 이용해 차명으로 토지를 사두고, 최대의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각종 탈법수단을 활용한 이번 일이 바로 법이 정한 부패행위다. 또, 이는 정보에서 열위에 있는 거래 상대방(원주민)에게 피해를 주며, 부동산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예산이 낭비되게 함으로써 사회의 효율성과 공평성을 저해하는 부패의 부정적 양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중앙집권적 관리경제 체제를 통해 발전해 온 우리 경제사에서 부동산, 건설 분야의 부패는 수십 년 묵은 고질병이다. 이를 새삼스레 현 정권 문제로 치환시키는 공세가 의아하기는 하나, 어쨌든 이번 LH 사태가 더 나은 부패방지 시스템을 만드는 데 기폭제로 쓰이기 바란다. 특히 자유경쟁 자체에 거부감을 지닌 과거 세대와 달리, 경쟁을 당연하고 필요한 것으로 인정하면서 그 과정의 공정성만이라도 확립되기를 갈망하는 청년세대가 느낄 박탈감을 생각하면 그냥 흘려버리기에는 아까운 기회다. 다만, 최근 제시되는 해결책이 분노 여론에 편승하여 주로 처벌 강화에 집중되는 점은 못내 아쉽다. 처벌 강화가 부패방지에 효과적인지는 논란이 있기에, 예방적 접근에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부패를 일종의 거래로 보는 제도주의 경제학은 거래비용을 증가시킴으로써 부패를 막을 것을 제안한다. 거래신고제나 정기조사 및 결과공개를 통한 투명성 확대, 내부 공익제보자나 감사부서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공직자와 중개인공동투자자명의대여자 등 관련자 사이 비대칭적 처벌, 부패계약의 불이행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방법 등 관계자 간에 배신을 부추기고 부패계약의 안정성을 허무는 방법도 고민할 만하다. 부패는 한자로 썩어(腐) 무너짐(敗)을, corruption은 함께(cor) 파멸함(rupt)을 뜻한다. 반칙에 끼지 못하면 뒤처지는 사회는 구성원들과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 /박지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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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28 16:52

공간과 기록

정은실 사회활동가 완산칠봉 아래 자리한 셰어하우스 달팽이집을 나와 청년몰의 약속장소까지 가는 길에서 지나치는 골목과 골목에는 그 공간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흔적이 담겨 있다. 이 마을에 오래 살지 않았지만, 그 흔적의 기억을 어렴풋이 가늠해 볼 때면 애틋함이 가득해진다. 100살이 훌쩍 넘은 완산초등학교에 다녔던 수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 뛰어놀던 학교 운동장, 친구들과 오가던 길. 가족들과 산책하며 계절의 변화를 느꼈던 곳, 때로는 연인과의 이별에 아파하며 가로등 불빛도 슬펐던 그 골목. 곳곳에서 마을 사람들의 시간을 가득 품고 있다. 원도심의 골목은 사람들이 떠나고 다시 찾아오고에 상관없이 마을 입구의 오래된 나무처럼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기억을 품고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오래된 나무가 긴 시간을 살아내며 마주했던 햇볕과 바람, 빗방울이 나무를 자라게 하듯이 골목의 집들과 가게, 빈터들이 서로의 햇볕이 되어주고, 그들이 만드는 풍경이 바람이 되어 골목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또한, 골목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주변 환경과 분위기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골목은 완성되어 가면서도 최종적인 완성형이라는 정의 없이 끝없이 변하고 있다. 전주로 돌아와 완산동 살이 1년의 세월 동안 매일같이 마주하는 동네의 풍경이 기억의 단편으로만 스쳐 가는 것이 못내 아쉽다. 내가 사는 동네의 변화를 원도심의 정책적이거나 경제적인 변화 혹은 예고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마주한 이별에 앞서 사라질 수 있는 것과 연계된 안타까운 감정으로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죽기 전까지 항상 어느 공간에 머물며, 시간을 경험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살아낸다. 우리의 삶의 전 과정이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며 다양한 행위를 통해 공간에 많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 공간에 남은 흔적은 우리의 시간이자 기억이고 삶이다. 개개인의 삶에서 공간은 집, 학교, 회사, 가게와 같이 특정한 건축물일 수도 있고, 골목, 동네, 마을처럼 전체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작은 건축물부터 넓은 풍경까지 짧은 순간 안에서 공간은 그대로이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공간은 끝없이 변화하고 있다. 공간의 변화는 물리적인 변화뿐 아니라 기억의 상호작용을 통한 변화를 품고 있다. 우리 삶의 모든 행위는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은 자연스레 사람의 흔적을 갖게 되고, 사람도 공간의 흔적으로 기억을 갖게 된다. 이때 생기는 서로에게 생기는 기억의 상호작용이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이다. 몇 해 동안 살았던 집, 매일 출근하는 사무실, 자주 가는 가게처럼 지속해서 머무는 곳은 반복적으로 보는 풍경으로 익숙해져서 새롭게 보지 못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삶의 경험이 모두 다르기에 같은 공간이라도 사용자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하고, 쓰임이 달라질 수 있다. 익숙한 공간의 새로운 발견을 통한 낯섦이 우리의 기억을 자극해 새로운 감정과 자극을 만들기도 하며, 공간 안의 사물 또는 사용자인 나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새로운 가치는 공간과 사물과 사람을 다시 보게 하고, 다시 봄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애정을 갖게 마련이고, 이 애정은 애틋함을 넘어 아낌을 실천하게 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 공간의 기록은 공간의 흐름, 공간의 시간, 공간의 기억을 기록함에 따라 이미 익숙해 매일 스치기만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공간의 새로운 쓰임과 아낌을 만들어줄 수 있다. /정은실 사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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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21 17:56

타인의 눈

이주경 전북문화재단 창작기획팀원 코로나로 인해 영화관을 마음 놓고 찾지 못했던 최근, 그만큼 영화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 같아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미루고 미루다 보게 되었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2018)는 평범한 14살 소녀 은희(박지후扮)가 그 나이 즈음에 경험하게 될 풀리지 않는 주변 상황(가부장적인 가정, 남자친구와의 이별, 적당한 비행 같은) 속에서 아픔을 겪고 또 조금씩 성장해 가는 이야기였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한 은희는 새로 온 한문 학원 선생님 영지(김새벽扮)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고 항상 자신을 다그치기만 하는 어른들과 달리 자신에게 훈계가 아닌 공감을 해주는 영지에게 의지하게 된다. 비록 안타깝게 그들의 관계는 끊어지게 되지만 영지가 은희에게 써준 마지막 편지는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남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그렇게 닮고 싶은 사람의 시선을 자기 안에 담으면서 은희는 성장하게 되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그것이 나에게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개인의 내면에서 생겨나는 변화의 구조와도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우리는 예술작품을 접하면서 예술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간접 경험하게 된다. 아름답고 섬세하게 묘사된 풍경화의 한 장면을 보면서 예술가가 삶속에서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기억들을 느끼고 우리 개개인의 삶에서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상기할 수도 있으며 쉽게 지나쳤던 일상을 포착한 작업을 감상하며 삶을 바라보는 좁은 시야를 자각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짧은 예시에 불과하지만 위와 같이 관람자의 마음속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성향의 작품이 있는 반면에 상대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도 존재한다. 사회화의 과정에서 밖으로 꺼내지 않음을 미덕으로 배웠던 터부시 되는 소재들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또한 동시대 예술의 매체적인 실험들은 우리가 집단 안에서 습득하여 고착화된 인식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 과정 속에서 쉽게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심리적 방어체계를 내려놓고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는 힌트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심리적인 경계를 넘어 들어온다고 해서 회피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것은 어떨까? 실제로 예술의 역할이 종교적, 정치적인 선전의 도구를 지나 개인적인 영역으로 전환되면서 많은 예술가들이 사회 안에서 개인의 소외 그리고 당연히 마주하게 되는 부조리함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작품들 중에서 마음속에 미약하지만 계속 남아있는 작품 또한 우리는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약한 연결고리가 자신의 삶에 겹쳐졌을 때 선뜻 공감하기 어렵게 느껴지는 예술가의 언어는 진실성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게 된다. 영화 속의 소녀가 자신이 동일시했던 대상의 생각을 쫒아 가며 성장 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예술가의 시선을 감상하면서 자신이 잊고 있었던 가치를 찾고 또한 멈추지 않고 다가오는 삶의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마련했으면 한다. /이주경 전북문화재단 창작기획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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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1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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