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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돈이다, 시안은 돈이다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 오늘날 디자인의 시작은 산업화와 그 태생을 함께 한다. 18세기 기술 혁신과 사회구조의 변혁을 일으킨 영국의 산업혁명 직후 순수미술이 가진 고유의 심미적 요소들을 분석활용하여 대량생산과 기능주의 등이 함몰된 기계 만능주의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19세기 말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에서 잘 드러난다. 기계, 기술에 의한 대량생산품이 외형적 예술성이 결여된 채 마구 생산되는 현실을 부정하고, 중세 이후 수공예품의 심미적 아름다움을 회복시키자는 취지의 문화반성운동으로써 근대적 조형 이념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미술이 가진 심미성이 미술품으로써 내적, 정신적 가치를 벗어나 일상제품으로의 접목을 통한 외적, 효율적, 경제적 가치로써 그 역할을 확대하면서 수요자는 소유욕을 부담없이 해결할 수 있고, 생산자는 걸맞는 경제적 이윤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오늘날 디자인이란 현대 산업사회 속에 대량생산된 다양한 상품들을 각각의 아이덴티티로 구분하기 위한 목적으로 심미적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통하여 제품과 기업이 가진 마케팅을 포함한 무형적 가치를 극대화하여 시장경제와 지속저긍로 소통하는 탈장르 예술 분야로 성장하였다. 그렇다면 오늘날 디자인의 사회적 지위 상승만큼 과연 디자이너들의 직업적 지위는 성장하고 있을까 필자는 지난 10여년 간 다양한 지역 디자인 실무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의 초라한 예술가적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필자 이전의 선배 세대들은 그 느낌이 더했을 것이며,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타 학문과 별반 다르지 않는 전문학사, 학사, 석사, 박사 등의 시스템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디자인은 단순한 도구적 수단으로 머물러 있다. 시안을 먼저 받아볼 수 있을까요? 지난 업체는 모두 그렇게 했습니다. 실무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한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일부 업체들의 생존 노력은 스스로 덫을 만들어 또다른 불합리함을 낳았다. 이는 산업 시대의 아이콘인 디자인이 결국 산업화 즉, 자본주의에서 철저히 외면받는 상황으로 변질되었다. 얼마전 지역 모 센터의 무리한 업무요청을 받았다. 지나친 일정과 데이터 부족 등 많은 난제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그들의 상황을 거절할 수가 없어 업무는 진행되었다. 일주일 간의 주말과 퇴근없는 디자인 격무와 함께 반복 수정 및 협의를 거쳐, 마무리 인쇄작업 준비로 지쳐갈 쯤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하였다. 이후 일정은 다시 감안할테니 디자인을 처음부터 다시 추가진행해주세요. 죄송하게도 윗분이 주말에 어디선가 본 책자 디자인이 맘에 드셨나 봅니다. 지난 일주일 간의 시간이 무참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필자는 불합리함을 이유로 해당 업무를 중단시키고 말았다. 그들 눈에는 디자인이 얼마나 초라하고 옹색한 도구적 행위였을까. 또한 본질적인 갑질을 죄의식 없이 범하는 그들이 대중 속에서 평등과 갑질 철폐라는 공공연한 외침을 하고 있다는 점, 그 이중성에 소름이 돋는다. 디자인은 산업 시대의 산물로, 자본주의의 중심에 있다. 그들에게 시간은 돈이고, 그들에게 시안은 시간이며 돈이다. 즉, 디자인이란, 디자이너의 함축된 시간의 산물인 것이다. 누구도 의사에게 수술 이후 결과를 볼모로 비용지급을 논하지는 않는다. 그게 상식이니까.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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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04 16:46

책방에서 만난 작은 이웃들의 마음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선미촌으로 출근하는 토요일, 불 꺼진 유리방들 사이 좁은 골목길을 지나 책방 문을 연다. 아이고, 왔어? 잘 지내셨어요! 책방 옆집 할머니들과 인사를 주고받아야 비로소 책방에 도착한 같은 기분이 든다. 어떤 사이는 시간보다 마음에 비례하는 걸까. 지난 봄날엔 마당에 나가 국숫집 할머니가 끓여온 국수를 함께 먹었다. 고물상할머니가 주신 빗자루로 책방 바닥을 깨끗이 쓸었다. 할머니가 고물을 주우러 가거나 병원에 가는 날이면 할머니가 아들이라 부르는 강아지와 골목을 산책하기도 하고, 국숫집 할머니가 종종 휴대폰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들어오는 날에는 휴대폰 속 중복된 아들 이름이나 세상을 떠난 이름을 지워드리기도 했다. 이웃이라는 말과 멀리 떨어져 걷던 시간들이 점점 가까이 회복되는 책방에서 나는 조금씩 동네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깊은 잠에 빠진 낮의 선미촌 건물 사이, 골목골목 책방으로 찾아들어오는 손님들 중에는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아주머니가 있다. 골목 끝에서부터 부릉 소리가 나면 오셨나보다, 하고 기다리게 되는 손님. 책방에는 새 책을 판매하는 조금 넓은 공간과 헌책을 사거나 빌리고 기증할 수 있는 작은 공유책방이 있다. 손님들이 한권한권 기증한 책들이 모여 어느새 꽉 찬 다락같은 방이 된 이곳에 이 아주머니가 단골이 됐다. 그는 끈으로 단단히 묶은 책들을 내려놓으며 좋아하는 책만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의 목록엔 브레히트 시집도 있고 518 기록을 담은 책도 있고, 과학 이론 서적도 있다. 나는 이 범상치 않은 목록도 좋아하지만 그가 빨간 헬멧을 쓰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것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을 주고 싶은 마음, 골라두었다가 끈으로 묶어 실어오는 마음. 차곡차곡 담아 망설임 없이 한곳으로 직행하는 마음. 책끈을 풀어 한 권 한 권 진열할 때마다 문득 겸허해졌던 건 그의 마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자 그 책을 정기적으로 빌려가는 주민도 생겼다. 그냥 빌려가는 게 미안하다며 꼭 박카스 한통을 사들고 오는 동네 아저씨는 마지막장을 넘기는 게 너무 아깝다는 독서광이자 다독가다. 그는 책방에서 빌려간 책들을 주민 세 명과 돌려보며 함께 읽는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최근 알려주기도 했다. 어떤 책을 가져가면 다같이 좋아할까 궁리하며 책을 고르는 그의 모습을 보며 선미촌에 과연 어떤 공간이 있어야 이들이 기쁘게 살아갈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 고민은, 책방이 두 달에 한 번 정하는 주제와 내용으로도 연결됐다. 지난 6월 이웃은 그 자리를 지켰다를 주제로 서노송동에 사는 젊은 성악가의 데뷔콘서트를 열어 주민과 예술가들과 함께한 책방은 퍽 다정하고 행복했다. 생존에서 예술로, 예술에서 이웃으로 주제의 폭을 넓혀오는 동안, 이곳을 찾는 이웃들은 선미촌에 책방에 있어야할 이유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마음을 주고받은 사이,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것이 있다.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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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28 17:10

청년 인구 유출 문제에서 청년 정책으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박혜령 전주시사회혁신센터 팀장 사람은 나면 한양으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라는 옛말이 있다. 여전히 옛말은 아니다. 지역을 떠나 대도시로 집중하는 청년 인구 이동 현상이 계속되고 있으며 인구감소 및 지방소멸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2019 전주시 지속 가능 지표 평가보고서에서는 지난 10년간 청년 인구의 타 시도 유출은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으며 청년 인구의 감소는 결과적으로 지역의 존립 위기를 초래한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한국의 지방소멸 2018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시군구 228곳 가운데 소멸 위험지역은 89곳이며, 전북지역 14개 시군 가운데 10곳은 지속적인 인구감소로 소멸위험에 처해있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 인구감소가 지역에 큰 위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청년 인구 유출문제를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본 나머지 청년들의 다층적인 사회경제적 조건은 무시한 채 단순히 일자리 문제로 수렴되고 있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청년들이 겪고 있는 사회문제는 일자리에서 주거, 문화, 복지 등 전반적인 분야로 확대됨에 따라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으며, 청년 세대 역시 단일하지 않은 상황에 비해 청년 정책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취업률, 창업 팀 수, 참여 인원, 수료율 등 피상적정량적 목표로 평가하고 성과를 측정하는 행정편의 중심적 정책의 실패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청년이 지역을 떠나는 것을 문제로 정의하는 것을 넘어 청년이 지역의 다양한 조건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고려를 해야 한다. 기존의 청년 정책의 주요 문제점 중 하나는 청년들이 마음껏 상상하고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았다는 것과 지역에서 청년들이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소홀하였다는 점이다. 공동체 안에서 청년들은 동료를 만나고 서로 지지하고 도움받는 사회적 지지를 경험하며 지역 사회에 애정을 가질 수 있고 이는 지역에 정착할 요인이 된다.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의 설문결과 많은 청년(72.2%)이 현재의 지역에서 머물고 싶어 하며, 절반 이상의 청년들이 사회적 관계망과 심리적 안정감을 꼽았다. 결과보다 과정, 새로운 시도 그 자체를 지원하며 공동체 안에서 개인은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경험을 만들며 자신에 대한 탐색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한다. 지역에서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공동체 단위의 작고 다양한 실험들을 지원할 필요가 있으며, 실제로 사회혁신 리빙랩프로젝트는 공동체 단위의 실험이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시작할 수 있고,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는 안전망이 필요하며, 지역 내에서 혁신적인 실험들이 계속될 수 있도록 사람 자체를 지원하고 실험의 과정이 지역 혁신으로 이어져 지역에서 살고 싶은 의지에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 더이상 다른 자치단체의 청년 정책 모델을 우리 지역에 단순 복제하여 특성 없는 정책의 무분별한 나열만 해서는 안 된다. 지역에서 살고 싶은 청년을 위한 정책 모델을 발굴하는 실천적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청년은 그저 취업하고 출산해야 하는 시대의 일꾼이 아니다. 청년이 살고 싶은 지역을 만들기 위한 현실적인 노력과 해결을 위한 청년 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박혜령 전주시사회혁신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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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21 15:51

잘 살기 위해 아이들은 놀아야 합니다

이동훈 코끼리 가는 길 대표 45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등장으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약 400만년 정도는 원시 인류의 시대였고, 산업화와 함께 지금 모습의 학교가 나타난 것은 고작 100여년 안팎에 일어난 일입니다. 추측컨대, 우리는 450만년의 세월동안 야생의 새끼동물들처럼 어린 시절 몸 안에서 마구 쏟아져 나오는 생명 에너지를 내뿜으며 친구들과 뛰고 달리고 구르며 자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회가 급격히 바뀌더니 좁은 학교에 새끼 인간들을 가두고, 가르치고, 강제하기 시작한 세월이 100년. 아직 새끼 인간들은 그렇게 빨리 진화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새끼 인간들이 갇혀 버렸습니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놀이를 통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모방하고, 싸우고, 양보하고, 뭉치고, 흩어지며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의 힘, 신체의 힘, 관계의 힘을 기릅니다. 노는 게 아니라 서로 배우고 있는 것이죠. 본능에 따른 놀이를 통해 자기도 모르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동물원의 좁은 우리에 갇힌 동물들은 정형행동이라는 것을 합니다. 드넓은 활동반경을 가지고 살던 동물들이 좁은 우리의 한쪽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반복하거나, 같은 위치의 벽을 계속 긁는 등의 이상행동을 이르는 말이지요. 사람으로 치자면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것입니다. 본능과 자유가 억압당했을 때 동물들은 그 상황을 견뎌내기 위해 이렇게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게 되는 것이죠. 그동안에는 우리에게 없었던 왕따, 청소년 자살, 중2병 등을 어린 인간의 정형행동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요? 에너지는 한 곳에 고여 있을 수 없습니다. 에너지가 모여 담긴 그릇보다 더 커지게 되면 반드시 분출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니까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새끼들은 어른들에 비해 더 많은 에너지가 작은 몸에 담기게 됩니다. 놀이를 통해 이를 건강하고 건전한 방법으로 해소해야 하는데 그 에너지를 작은 책상 앞에 가두고, 작은 교실 안에 가두니 아이들은 살기 위해 그 에너지를 나보다 약한 친구에게, 애꿎은 대상에게 폭발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학교에서 일어나는 가슴 아픈 일들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고, 배우지 못하게 하고, 자라지 못하게 한 우리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미래학자 앨빈토플러는 한국에 다녀가며 한국 학생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을 위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아침 일찍 시작해 밤늦게 끝나는 지금 한국의 교육 제도는 산업화 시대의 인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라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인 지금, 우리는 다가오는 미래를 아이들이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기본만 준비해주면 됩니다. 어린 시절의 놀이는 곧 학습이며, 놀이를 통한 즐거운 기억은 아이가 다음 세상을 살아가는 힘의 원동력이 됩니다. 드론조종사가 유망직종이 될 줄 알았던 사람은 20년 전 지구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을 우리 어른들은 다시 태어나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아이들이 잘 헤쳐갈 수 있도록 우리는 기본만 준비해주면 됩니다. 지금, 귀한 당신의 아이를 놀게 하세요! /이동훈 코끼리 가는 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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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14 16:53

쌓여가는 일상 속, 느리지만 지속가능하기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 최근 산업구조의 변화로 신산업, 신도시 위주의 집중 개발은 많아졌지만, 구도심은 그 역할과 기능을 빼앗겼다. 이에 도나 시, 군은 공공 중심의 도시재생을 통해 구도심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많은 노력을 하였다. 단, 공공 중심의 공간재생 사업은 공간별, 지역별 스토리를 찾기 위한 적극적 탐색보다는 국내외 유명 사례를 무조건적인 벤치마킹을 통해 지역 특성이 없는 획일화되고 유명무실한 사례들로 전락했고, 인프라 구축 이후에는 임대료 및 주거비용 상승, 또다른 공동화 현상 등 젠트리피케이션을 수반한 많은 사회적 이슈들만 남긴 채 책임은 온전히 지역 주민들의 몫이 되었다. 우리가 한 번 해보면 어떨까? 그들보다 느린 건 괜찮아. 필자 부부는 4년 전 지역의 젊은 사업초년병들에게 무상으로 공간을 제공하겠다며 소규모 공간재생 사업을 진행하였다. 말이 공간재생이지. 회사의 공간을 남들과 공유하겠다는 단순한 공간무상대여서비스였다. 그러나 무리한 기획, 예산 부족, 콘텐츠의 부재, 신뢰 및 커뮤니티 형성의 실패 등으로 약 1년 만에 중도포기하였다. 패인은 월세살이하는 우리가 남에게 공간을 제공한다는 거 자체가 남들 눈에는 무척이나 철없어 보인 것이다. 실패 1년 후, 필자 부부는 서신동의 건물 한 동을 매입하였고, 예산을 아끼기 위해 부부와 지인들이 직접 건물 공사에 참여하였다. 그렇게 1년 간의 처절한 준비 끝에 서신동 공간재생은 완성되었다. 그리고 온전히 우리 것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문화 전시 및 행사, 콘텐츠 교육 등의 노력에도 민간의 공간재생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들을 유입할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했다. 미디어 전공자인 필자는 지역 내 미디어아티스트의 지원 방안 부재에 주목하였고, 전북 최초의 미디어아티스트 육성지원을 위한 전문레지던시라는 공간 브랜딩에 성공했다. 2018년 (재)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의 창작공간활성화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작가들에게 창작공간 및 창작지원금 등 일부 혜택을 제공할 수 있었고, 이에 힘을 얻어 2차 공간재생 프로젝트인 팔복오길을 기획하였고, 2019년 동사업에 선정되어 지역 내 신규 미디어아티스트를 위한 새로운 창작공간 만들기를 현재 진행 중이다. 3~40년 전 가난한 공장 근로자와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살던 좁은 골목과 작고 허름한 집, 그러나 오래된 향수를 간직한 전주의 대표 낙후지역인 팔복동의 낡은 주택이 바로 그 곳이다. 지역 아이들과 가족들이 행복할 수 있는 일상공간 서신동 공간재생과 긴 시간 우리 히스토리를 간직한 친근한 일상공간 팔복동 공간재생. 비록 공공의 공간재생이 가진 사업적 안정성은 부족하지만, 민간의 공간재생은 팔복오길과 같이 정책이 닿지 못한 더 낙후된 주거지역으로 직접 들어가, 보다 진실된 스토리 발굴과 같은 향수를 공유한 주민들과의 깊은 유대감 등을 형성할 수 있어 해당지역의 지속적인 발전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여전히 관심은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기존의 다양한 예산 지원 외에도 전라북도나 시, 군 차원의 민관합동형 공간재생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역 간 행사, 전시, 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일관성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진정한 공존을 위한 공간으로써 그 역할을 다하게 되지 않을까 할머니, 시끄러울 거에요. 죄송해요. 괜찮아. 사람 소리만 들려도 좋지 머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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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07 16:23

선미촌 골목 한가운데 예술가 책방이 있다는 것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선미촌에 책방을 연다고? 일곱명이나 같이? 대체 어쩌려고? 지인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혼자 조용히 창작하고 살기도 버거운데 굳이 같이 모여 어려운 길로 가야겠냐, 아직 곳곳에 문 열린 업소가 있는 성매매집결지 한가운데 누가 책을 사러 찾아오겠냐 하는 의견이 대다수. 일곱 명이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책방을 본다는 말엔 운영비도 없이 그걸 왜 하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책 한 권 팔아도 남는 건 뻔한데 돈이 벌릴 리 없다는 염려와 함께, 땅값만 오르고 예술가들만 상처받는 좋지 않은 모양이 될지 모른다는 엄숙한 조언도 이어졌다. 그렇게 올해 1월, 많은 이들의 걱정을 무릅쓰고 문제의 일곱 명이 전주 선미촌에 책방을 열었다. 책방 주소명를 따라 물왕멀이라 이름 지은 팀은 미술, 음악, 사진, 영상, 문학 등 각각의 장르로 창작하는 삼사십 대로 모두 전주에 살고 있다. 대표는 책방 운영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하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내가 맡게 되었다. 우리는 창작자이기도 하지만 이를 매개로 콘텐츠를 만들고 기획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책방 이름을서사(書肆)라 지은 것은 서적방사의 줄임말인 서점이란 뜻만은 아니다. 예술가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서사(敍事)의 의미를 우리 책방의 중심에 두고 싶었다. 선미촌에서 진행된 전시를 기획하거나 참여한 경험이 있는 팀원 비율이 반 이상이라 이곳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은 옅었다. 매일 마주치는 이웃들과 오고가는 손님들이 이곳에 책방에 있어 다행이라는 말을 할 때면 마음이 쿵쾅거린다. 이제 선미촌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고민하는 지점 가운데 예술가와 책방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나 개인으로서는 아직 선미촌에 대해 하나된 의견이나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누군가 정확한 답을 요청할 때마다 나는 그 질문이 정확하지 않다고 느낀다. 다만 우리가 이곳에 거주하다시피 발 딛으면서 목격하고 알게 된 것들을 중심으로 창작한 작업물이 점점 쌓여가고 있다는 것을 좀더 이야기한다. 우리는 지난 3월부터 SNS를 통해 매주 각자 코너에 새 콘텐츠를 연재하는 무모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주제는 이곳 선미촌. 여기서 보고 느끼고 감지한 것을 토대로 음악, 사진, 드로잉, 영상, 시로 발표하고 있다. 매주 새로운 창작물을 내고 SNS에 공개까지 한다는 것이 떨리고 두렵지만 그것이 바로 이곳에 작은 책방을 낸 가장 중요한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역에 살면서 자기 작업을 지속하려는 창작자들에게 흩어짐만은 그리 뾰족한 수가 아닐 수도 있다. 더 나은 지대를 만들기 위한 고군분투는 홀로 해내기 어려운 까닭이다. 때문에 함께 느끼고 실천할 동료들과 가야할 길이 길다. 전주시가 4번째로 매입한 선미촌 4호점 건물, 오래 비어 있던 성매매업소가 작은 책방이 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과 긴 시간이 증명하듯 우리는 계속 보폭을 맞춰가야 한다. 이제 7개월째 걸음마를 떼고 있는 일곱 명의 운영자들은 이 공간을 어떤 각도로 돌려놓게 될까? 동네 이웃들과 이곳을 찾아오는 분들과 함께 하는 진솔한 방법으로, 한 번도 해보지 않을 일들이 가져다줄 단단한 마음으로. 선미촌 골목 한가운데 작은 책방은 오늘도 문을 열고 있다.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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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30 17:33

사과하는 법을 잃어버린 정치에게

김현두 여행작가 결국 청년이 사는 지방을 만들고, 청소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조화롭게 살아가는 전북을 만들어 내는 일은 정치적인 노력도 함께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청년으로서 살면서 느낀 내 고장의 정치를 이야기하고자합니다. 지방의 작은 소도읍으로 갈수록 토호세력은 더욱 깊숙이 지역의 정치와 경제 전반에 걸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 십 년 새만금을 팔아서 사는 정치인들과 선거 전에는 싹 바꾸겠습니다 아우성치던 이들이 자기가 바뀌기는 것을 더 많이 봅니다. 최근에는 다문화가정을 향해 잡종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치 않는 사람들이 우리 전북 행정을 이끄는 수장이라는 것이 정말 안타까워서요. 얼마 전 제가 사는 지역에서도 현직군수가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되었습니다. 고향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던 저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에게 사과 하는 어른들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몸담던 거대정당도 지역의 어떤 어른도 우리들에게 사과 하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불운의 정치인은 거대정당 소속입니다. 그런데 도당이나 중앙당은 그저 침묵합니다. 아직도 그들에게는 후보군들이 많기 때문일까요? 자기반성이나 군민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먼저이지 않나요. 벌써 보궐선거에만 시선이 가는 지역의 어른들을 보면서 저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답니다. 내 고향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 온 우리들에게 누구도 지금의 현실을 말해주는 이가 없습니다. 이번만이 아니었습니다. 지역의 현안과 큰 문제들이 불거 질 때 마다 진실을 밝히지도 바로 잡으려 하는 어른들이 없었습니다. 요리조리 눈치만 보던 이들이 이제는 고장의 일꾼이 되겠다. 합니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그들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그들은 선거 때만 되면 늘 세상을 바꾸겠다.말 합니다. 그 치열한 싸움을 위해서 평생 고향을 떠나 엘리트 집단에서 살아 온 이들이 고향으로 회귀하는 것을 봅니다. 마치 바다와 강을 오가며 사는 연어들처럼 말이죠.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엘리트 집단이라는 것이 그들이 누려온 오랜 부귀영화를 더 지속하려는 수단이 정치는 아닐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혐오스러운 것 또한 정치이죠. 이곳에서 태어난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중요할까요? 뭐 둘 다 중요하긴 하겠죠. 앞에서 잠시 말 한 연어는 산란기가 다가오면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고, 짝짓기를 마친 암컷과 수컷은 곧 죽고 부화한 새끼는 이듬해 바다로 내려갑니다. 정치인과 연어는 둘 다 회귀 본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회귀하기 위한 목적에는 차이가 있어 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연어는 자신의 출산을 위해 목숨을 바쳐 회귀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후대에 미래를 위한 투자인 것이죠. 권력도 정치도 할 줄 모르는 그런 연어들에게 우리들이 배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희생입니다. 미래의 세대를 위한 희생 말이죠. 누군가의 아픔과 상처 앞에서 침묵 했던 이들이 권력을 가진 이가 된다고 해서 소외되고 아픈 젊은 청년세대들이나 우리의 가족들을 위해 함께 싸워주는 것은 아닙니다. 내 고장의 그릇된 현안과 큰 문제나 사건들이 등장할 때 마다 침묵했던 정당이나 정치인들에게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진안을 맡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사과 하는 법을 잃어버린 그 어른들에게 말이죠. /김현두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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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23 16:10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소해진 사회복지사 10년 전 서울 반지하에 살 때 일이다. 룸메이트와 둘이 살았는데 휴일 낮에 tv를 보고 있자니, 창문 너머로 시커먼 눈알이 들어왔다. 너무 놀라고 경악해서 야!하고 소리치자 어떤 남자가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집은 초록색 대문을 열고 여섯 계단 아래 현관문이 있었고 세탁기는 그 옆 안쪽에 놓여있었다. 늘 세탁기 안쪽 시커먼 공간이 무서웠다. 어느 날 둘이 외출했다가 현관문을 열었는데 세탁기 안쪽 공간에 남자가 숨어 있었다. 자동 반사적으로 크게 소리치자 남자는 잽싸게 도망갔다. 해가 지지 않은 오후였고 남자를 쫓아 달렸으나 잡을 수 없었다. 대신 목청 높여 왜 남의 집에 들어오냐. 신고하겠다!고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으나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하였으나 몇 번의 순찰을 나왔을 뿐 검거되지 않았다. 연일 뉴스에 보도된 신림동 강간 미수 CCTV 사건은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이다. 그녀가 들어가자마자 1초 차이로 문을 열려는 그의 행동은 공포를 넘어선 범죄의 현장이었다. 이후에도 10분간 집을 배회하고 휴대폰 조명으로 현관문 도어록 비밀번호까지 열려는 집요한 행동 속에서 그녀는 홀로 사투했다. 경찰은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6층에 있는 피해자의 집까지 올라가지 않고 건물 입구에서만 둘러보다가 철수했다. 이 사건이 화제가 된 것은 피해자가 직접 구해 트위터에 올린 CCTV 영상에 대한 강한 여론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왜 피해자의 호소를 가볍게 여긴 것일까?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이번 사건이 현행법상 중한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경찰이 움직이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극심한 공포와 좌절은 범죄 그 자체보다 피해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사건 이후 가장 논쟁이 되었던 부분은 혐의 적용 부분이었다. 주거침입인가, 강간 미수인가? 이는 법 규정 자체보다 법 적용과 판단의 문제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성범죄로 인해 목숨을 잃고, 삶이 망가져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사실, 내가 궁금한 건 그 이후의 이야기다. 그녀는 그 집에서 살 수 있었을까? 휴식과 충전의 공간이었던 집은 위험한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집으로 귀가할 때마다 누가 쫓아오진 않는지 잔뜩 긴장하게 되고, 잠금장치는 이중 삼중으로 강화하였을 것이고, 아마도 이사를 고려할 확률이 높다. 살 떨리는 공포와 위협의 시간을 홀로 다시 겪고 싶지 않을 것이다. 어느새 그녀의 불행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 된다. 여성 1인 가구에게 안전한 집이 있을까? 성범죄는 해마다 늘어나고, 경찰은 피해 사실을 가볍게 여기고, 사법부의 처벌은 미약하다. 다시 10년 전 그 사건으로 돌아가,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경찰 신고 이후 직접적인 위험이 사라지자 폭발적인 분노가 치밀었다. A4 용지 20장에 그를 향한 분노와 저주의 언어를 주술처럼 적어 벽에 덕지덕지 붙여놓자, 공포에 눌린 에너지가 다르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주술이 통했는지 그 남성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안일한 공권력의 틈 사이에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바로 당사자의 공포와 위협을 없는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함께 싸울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힘, 우리는 그 집을 떠나지 않고 계속 살 수 있었다. /소해진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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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16 16:45

당신도 관종이신가요

김지윤 청춘부보상 홍보담당 관종은 흔히들 알고 있듯이 관심 종자의 줄임말이다. 타인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지나치게 높은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로, 그 욕구가 병적인 수준에 이르렀음을 뜻하는 관심 병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타인에게 관심을 받을 목적으로 인터넷에 글을 작성하거나 댓글을 달고, 이목을 끌만한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나는 관종이다. SNS를 즐겨하고 사진 공유하기를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콘텐츠가 도달하게 하기 위해 해시태그를 하기도 하고, 좋아요를 많이 받기 위해 예쁜 사진들을 올리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인스타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충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한다. 하지만 나는 관종이 결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심을 먹고 사는 사람들을 폄하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한번은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만인관종설을 주장한다. 모든 사람들은 관종이고, 단지 그 정도가 다를 뿐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타인의 관심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나는 그의 의견에 적극 동감하는 바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남에게 인정받기 위함을 추구한다고 생각한다. SNS에 올리지 않더라도 옷을 입거나,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그렇다. 모든 사람이 가진 특성은 곧 이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 사람들의 그런 관종력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정도로 관종이 대세 중의 대세가 되었다. 미디어 환경이 아무리 발전해도 모든 미디어들의 주요 수입원은 광고라고 생각한다. 관종들은 이제 광고를 통해 수익을 낸다. 팔로워가 많은 SNS이용자는 자신의 계정으로 광고를 하고, 그 광고는 그의 모든 팔로워들에게 도달한다. 또 다른 관종인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소속사 개념인 MCN사업이 급부상한 이유도 그렇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주 수익원은 역시 광고이다. 구독자의 수가 많을수록 광고가 도달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당연히 광고료는 상승한다. 따라서 채널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기위해 크리에이터들은 MCN의 도움을 받는다. 즉 구독자의 수를 늘리기 위함이다. 내가 최근 관심을 갖기 시작한 여행커뮤니티 여행에 미치다역시 그렇다. 사람들이 여행사진을 SNS에 업로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보공유의 목적도 있겠지만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여행에 미치다는 그들의 관종력을 이용해 광고수익을 창출하기도, 기업과 마케팅을 함께하기도 한다. 역시 커뮤니티를 함께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 도달범위를 높이기 위함이다. 이쯤 되면 어떤 광고든 SNS를 거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절대 관종을 얕봐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마케팅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활용하고, 그들과 협업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관종들의 콘텐츠를 보고, 그들을 연구한다. 영향력있는 관종이 되거나, 그들을 연구하거나. 그 것이 미디어를 전공하고 있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김지윤 청춘부보상 홍보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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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09 16:24

반 자급자족적인 삶을 꿈꾸며

김지연 문화기획자 어렸을 때 농부를 꿈꾸던 아빠를 따라 가족들은 전주의 시골 어느 마을에서 지냈다. 어렸을 때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농사를 지어 먹고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이후 초등학교에 입학 할 무렵 할아버지가 남겨두고 간 정원이 있는 예쁜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빠가 생각한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컸었던 것 같다. 자식들은 커가고 나가는 돈은 많고,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금전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일어났고, 급기야 엄마가 노점을 시작하며 소위 하루 벌고, 하루 쓰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래도 아주 불행하지는 않았다. 부족한 살림치고는 정원 있는 예쁜 집이 있었고, 힘들지만 밝은 엄마의 성격을 닮아서인지 엄마가 장사하는 곳에 따라다니며 같이 장사하는 일을 좋아했다. 그렇게 나의 유년시절은 어려운 경제적 현실을 받아들이는 내성이 생기고, 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도 더 커져만 갔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다 보니 돈을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부족함 없이 살아야지라는 마음보다는 빚 없이만 살아도 최고다, 돈이 뭐길래 이렇게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지 돈 많이 없이도 잘 살아봐야지!와 같은 생각들을 더 하게 되었다.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사회복지사 계약직으로 일하며 넉넉지 않은 월급을 받고 자취를 하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모님께 다달이 용돈을 드리지 못하는 것이 종종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내 인생이니 조금 이기적이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모른척했다. 직장생활 5년, 부모님한테 말도 하지 않고 직장을 때려치고 꽃집을 운영했다. 물론 지인의 카페 안에서 아주 작게 테이블 하나로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행복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한다니 내 상황을 아는 지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이 준비했고, 정말 하고 싶었기에 나만 생각했다. 그 때 만약 나만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것들을 경험하고 있었을까, 30대 초반이 된 이 시점에서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하면서도, 나의 미래를 생각한다.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앞으로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을 꿈꾸어보자면 반 자급자족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돈에 끌려가지 않는 삶, 나의 주변 사람들보다 돈이 우선시 되지 않는 삶, 돈이 나의 삶에 일부로 적용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결혼하고 애 낳고 살다보면 현실이 시작되고, 금전적인 부분이 많이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알고 있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돈이 다는 아니겠지 싶다. 살다가 이런 나의 생각이 제발 바뀌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자급자족적인 삶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지금부터 천천히 공부도 필요할 것 같다. 대체 에너지에 대한 공부도, 직접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작은 농사를 짓는 공부도, 아파트와 멀어져 할 일 많은 주택을 관리하는 방법도. 나처럼 생각하는 청년들이 많지 않을까? 언젠가 TV에서 서울 도심 속 대체에너지와 같은 주제로 청년들이 자급자족저인 삶을 위해 모여 일하는 모습을 봤다. 지역에서도 이런 주제들이 많이, 중요하게 다뤄지면 참 좋겠다. 하나의 또 다른 삶의 형태로 말이다. 나는 오늘도 먼 훗날 반 자급자족적인 삶을 꿈꾸며 차근차근 준비하겠다 다짐한다. /김지연 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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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02 20:38

서른 살, 흔들려도 좋다

김현두 여행작가 나에게도 흔들리던 서른 살이 있었다. 흔히들 서른이 되면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여러 가지 준비들을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마주한다. 여행을 떠난다거나 이직, 결혼, 공부 등 여러 이유로 삶이 다르게 흘러가기도 한다. 나는 서른 살에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그렇게 직장을 그만두고 일 년 동안 책과 여행, 커피를 만나고 공부하며 지냈었다. 타인보다는 나와의 만남을 위해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기 시작했다. 그 일 년이라는 시간은 나의 머릿속을 흔들어 놓았다. 8년 동안 회사원으로 살던 나의 20대를 내던져버렸다. 내 나이 갓 서른을 넘겼을 때였고, 주위 사람들에게 다시는 직장을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여행자가 되어 살기로 결심했고, 책 속에서 만난 이야기꺼리 하나가 나를 여행자로 살게 하고 있었다. 일 년만 놀자 했던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직장을 그만 둔지 5년 가까이를 내 멋대로 살게 될 줄은 그 때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여전히 나는 내 삶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돈이었다. 누구나 물질 앞에서 힘든 일들을 겪는다. 나도 2012년 그해 가을 너무나 힘이 들어 여행을 떠날 여유조차 잃어버렸다. 잠시 깊은 슬픔에 잠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친구의 도움으로 소금포대를 나르는 일을 몇 주 하면서 여행경비를 만들기도 했다. 소금포대를 나르는 일은 고단한 일이었다. 습기가 찬 소금에서 녹아 흐르는 짜고 쓴간수가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소금포대를 집집마다 가지고가서 쟁이는 일도 너무나 힘든 일이었는데,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직장생활 그만두고 뭐하는 거냐는 걱정 섞인 타박도 들어야 했다. 그들이 묻는 안부는 나에게 더 이상 안부가 아니게 되었다. 그 때 내 주위의 어른들은 내 청춘을 안쓰러워했고, 다시 일을 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괴로웠다. 그 괴로움을 떨쳐버릴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내게는 커피트럭을 타고 떠난 여행이었다. 길 위를 떠돌던 어느 날 하늘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저 비행기에 앉아 있었으면 할 때도 있었고, 유럽으로 떠나는 혼자만의 배낭여행을 꿈꾸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나는, 이런저런 이유와 욕심을 버리지 못하던 나는 그저 때 묻지 않은 용기만으로 살아가자 하며 나를 다독이고 있었다. 서른 살 이후 나는 내게 들리는 세상의 외침에 귀를 닫으려고 노력했었다. 좋은 직장이나 인맥, 결혼과 가정을 일궈내는 일상적인 삶에서부터 세상이 말 하는 성공이라는 그 것들에 무반응하며 살고 싶었다고 해야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늘 위로 떠다니는 비행기를 바라보던 서른 살의 그날, 푸르고 높은 저 하늘을 지붕 삼아 뙤약볕 아래 힘겹게 커피트럭을 몰며 향긋한 커피를 내리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그 서른 살의 여행 속에서 나는 제법 만족하며 지내고 있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나는 오늘 내가 내 의지와 바람대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라면, 자신의 삶에서 성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의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남이 아닌 나의 의지대로 살아갈 용기를 내보도록하자.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단코 스스로의 삶을 살자. /김현두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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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26 16:01

사는 게 뭐라고 먹방이 뭐라고

소해진 사회복지사 자기 전 하는 일이 있다. 뉴스를 읽으며 세상사 돌아가는 것을 파악하는 건 아니고, 유튜브 먹방을 본다. 이상하게 자기 전에 허기인지 헛헛함인지 모를 것들이 밀려와 먹방을 시청하곤 한다. 구독자와 조회 수가 저렇게 높은 걸 보면 나만은 아닌 것 같다. 하나같이 저 많은 걸 어떻게 질리지도 않고 먹을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인데, 한 번은 나도 먹방 유튜버 처럼 계속 먹었다가 다음 날까지 끄윽 끄윽 트림을 연발하며 소화제를 달고 살았으니, 먹방 유튜버는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먹방을 보고나면 유투버가 먹었던 걸 휘리릭 검색하고 결제하거나, 다음에는 꼭 저걸 먹으리라는 다짐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잠이 든다. 어느 새 복잡한 마음은 단순해진다. 먹방이라는 용어는 일상적으로 쓰인다. 먹방은 먹과 방송의 방이 합쳐진 신조어다. 먹방은 미국의 유튜버 The Fine Brothers가 만든 서양 사람들의 먹방을 보고 난 뒤 리액션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은 2009년 인터넷 플랫폼 아프리카TV에서 시작되었다. 이제 한국 먹방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한국어 병음 Mukbang이 그대로 전 세계 유튜버들의 콘텐츠로 재생산되면서 고유명사화 되었다. 최근에는 시각뿐만 아니라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 감각 쾌락 반응) 이라는 음식 먹는 소리를 극대화하여 들려주는 방송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실 삼시 세끼를 맛있는 것만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맛있는 걸 만들거나 먹기 위해 정보, 돈, 에너지를 상당히 써야 하는데 어떤 날은 맛있는 것만 먹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에 지치고 신경질이 나서 어떻게 만날 맛있는 것만 먹을 수가 있어!하고 스스로를 다그친 적이 있다. 그날은 결국 밥에 물을 말아 김치와 먹었다. 왜 이렇게 맛있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을까. 먹방이 내 삶에 영향을 끼쳤을까. 아니 내 삶은 왜 먹방을 찾게 되는 걸까.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먹방이 인기가 있는 이유가 장기 경제 침체로 인한 널리 깔려있는 불안감과 불행 때문이라고 분석하였다. 먹방을 보는 심리 기저에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 숨어있다. 사회적 불평등과 불신, 치열한 생존 게임과 피로로 인해 즉각적인 쾌락과 만족을 찾기 위해 먹방을 보는 것이다. 나 역시 세상과 나의 온도 차로 인해 불안할 때가 있다. 30대 중반에 가진 것도 직업도 변변찮고 삶도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특히 아침 신문을 펼쳐보면 1인당 3만 달러 GDP와 5G 통신으로 한국 사회는 날로 발전한다는데, 사회적 약자일수록 크고 작은 불의들이 활화산처럼 덮쳐와, 이들이 주검으로 발견되거나 삶의 터전이 황폐화되는 걸 접할 때마다 지독한 약육강식 사회가 무섭다. 그나마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안전한 관계 때문이다. 비혼 여성이라는 사회적 위치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밀도 있는 관계, 세상 속에서 실패하고 존재를 상실할 때마다 방어선이 되어준 관계. 한국이 헬조선이 아닌 헤븐조선이었다면 어땠을까? 각자의 방구석이 아닌 공원 잔디밭에 앉아 사람들과 즐겁게 하하 호호 거리면서, 맛있는 음식보다 더 맛깔난 농담과 일상의 이야기로 버무려져 있으려나? /소해진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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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19 18:49

내 예쁜 점

김지윤 청춘부보상 홍보담당 요즘 들어 돈을 잘 벌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한다. 월급을 많이 주는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잠을 잘 때도 돈을 버는 직업을 갖고 싶다. 근데 그런 직업을 모르겠다. 그게 쉬우면 다들 잘 벌었겠지. 싶다가도 그런 직업은 뭐가 있을지, 나는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계속 고민이 된다. 그 고민의 시작과 해결 그 중간쯤에서 든 생각은 나만의 색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딘가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취업을 앞둔 세상의 모든 학생들은 그런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길을 가야할지 한번 쯤 고민해봤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런 학생이다. 고등학교 때 제빵을 하고 싶어 하던 우등생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왜 제빵학원이 아닌 수학학원을 다니는지 물어봤다. 내가 확실히 뭐가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그래서 나중에 뭘 하고 싶어지든 공부가 그 발목을 잡지 못하게 하려고. 그 한마디가 내 인생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뭐라도 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아서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사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방향이 되었다. 그 후로 학교에서 진행하는 어떤 프로그램이든 일단 신청부터 했다. 그리고 그냥 했다. 여러 경험을 하며 흥미를 가졌던 분야를 찾았고, 진로를 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것들이 내 대학 자소서의 전부가 되었다. 며칠 전 국내 최고의 여행커뮤니티로 손꼽히는 <여행에 미치다>의 안대훈 감독님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안대훈 감독님이 지금에 있기까지는 우연의 연속이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우연히 여행을 갔고, 우연히 가이드를 하게 되었고, 우연히 영상을 만들게 되었고, 그러다 우연히 그 영상으로 입사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그런 우연들이 일어나기 전 영감을 받았던 글귀를 소개해주셨다. 스티브잡스의 말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앞을 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과거를 뒤돌아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점들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라는 모든 점이 당신의 미래와 어떻게든 이어지리라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본능, 운명, 삶, 업보 등 그게 무엇이든 간에 점들이 결국 연결되어서 하나의 길을 만들리라는 것을 믿게 된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르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 순간도 작은 점이 되어 긍정적 연결이 되길이라는 말로 강연이 끝났다. 그 강연의 끝에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제빵사를 꿈꾸던 친구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내 방향을 다시 다잡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사소하고 많은 점들이 대입 합격이라는 길이 된 것처럼.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맞는 방향인지 오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일단 하면 될 거라고 믿을 수 있는 용기를 줬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뭐가 하고 싶은지, 그리고 뭘 해야 하는지. 그래서 그냥 많은 예쁜 점들을 찍어보려 한다. 그 점들이 여러 길이 되어 나만의 방향으로 인도해줄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이 글을 보는 여러분도 지금의 점들을 겁내지 않고 조급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당신의 그 예쁜 점들이 모여 각자의 길로 안내해 줄 테니. /김지윤 청춘보부상 홍보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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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12 19:02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이 사라질 것이다

김현두 여행작가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가 자라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 속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부모가 함께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주위에서 만나는 사람들 예를 들어, 또래나 형 누나 무엇보다 어른(할머니할아버지)들을 통하여 보고 배우는 여러 가지의 학습들을 통해 한 아이가 인격체로 성장하는데 까지 필요한 여러 것들을 마을을 통하여 만나고 이뤄진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인구감소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도시보다 더 절박한 인구절벽의 늪에 빠진 시골에서는 아이가 사라지면 학교에 학생들이 사라지고 어느 날 학교가 사라지고 난다면, 마을이 사라지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도 있고, 실제 그런 사례를 이제는 심심치 않게 마주할 때 가 있다. 필자가 오늘 이렇게 학교를 화두로 삼는 것은 며칠 전에 있었던 지역사회에 진안(남)중, 진안여중에 관한 남녀공학 전환여부에 관한 설명회의 기사를 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어서이다. 전라북도교육청은 중학교 남녀공학 전환여부에 관한 설명회를 추진하는 중이라고 한다. 특히 진안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정의 진행방식 도교육청이 준 문서 그대로를 옮겨 내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나눠 준 유인물을 보면서 과연 현 시점에서 미래세대를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 남녀공학 전환문제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안읍에는 남녀중학교를 두 곳을 합쳐228명의 학생이 있다고 한다. 사실 면단위로 가면 전교생이 7-8명에 이르는 학교도 존재한다. 필자가 중학교를 다니던 1995년에는 진안남중학교의 전교생이 현재 두 학교를 합친 것과 비슷하거나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만큼 학생의 숫자가 급감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나고 자란 진안군은 현재 인구소멸 위기에 처한 많은 지자체 중에 대표적인 지역이다. 2019년 진안군 지역에 어느 학교는 신입생이 한명도 없는 곳도 있다. 전교생이 10명 미만인데 선생님과 교직원 학생 수 보다 많은 곳들도 이제는 심심치 않게 생겨난다. 이러다가 학교가 사라지면 어쩌지? 정말 그렇게 된다면 나와 어른들의 추억과 기억들도 같이 사라질 텐데 말이다. 이제는 대안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청년과 청소년 아동들에게 쓰는 예산과 vs 노인과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의 비중을 비교해 보면 우리는 더 극명하게 인구감소나 지방 소멸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저 출산과 청년백수 결혼하지 않는 청년세대에게 수많은 예산을 쏟아 부었다고 연일 뉴스와 매체에서 이야기 하지만, 여전히 청년은 시골을 떠나고 다시 지방 떠나 서울로 향한다. 예산이 허튼 곳에 쓰이는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마을을 지켜내려면 보다 본질 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얼마 전 접한 기사에서 폐교위기의 시골 학교 인근 주민과 지자체가 전학을 오는 학생가족들에게 집을 제공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실제로 아이들을 가진 젊은 세대의 부모들은 주거의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집값은 부모의 경제적 도움이 아니면 내 집 마련을 하기 란 하늘에 별 따기가 된지 오래다. 임금의 수준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지속적으로 오른다. 한 아이를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한 가정을 위해 온 사회가 나서고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그 것은 우리의 마을을 지켜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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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28 19:47

천하제일 호갱이의 혼여기!

소해진 사회복지사 안녕. 라오스에 온 지 3주 지났어. 동남아도, 혼자 여행도 모든 게 처음이야. 회사는 어떻게 했냐고? 한국사회에서 1달 해외 여행하려면 견적이 딱 나오지 않니? 당연히 퇴사했지! 고생한 당신, 관절이 성할 때 떠나라! 겉으로 센 척했지만 출국 날이 하루, 이틀 다가올수록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려졌어. 객사한 한국인 발견 한국인 모씨 성폭력 피해와 같은 여자 혼자 여행할 때의 위험 비용 때문에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야. 막상 40리터 배낭을 메고 출국하자 아무것도 아니더라. 나보다 더 큰 배낭 멘 전 세계 여자들도 많아. 물론 나름의 안전 규칙은 있어. 밤늦게 다니지 않기, 지갑과 휴대폰은 꼭 품 안에, 구글 맵스미 켜기,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도움받기! 라오스는 꽃보다 청춘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한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고 비방루(비엔티안, 방비엥, 루앙프라방-도시 이름)라는 보편적인 루트도 있어. 나는 다른 루트를 계획했어(사실 계획 따윈 없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근데 웬걸! 나의 위험 비용은 여자라는 정체성보다 소비자로서 정체성에서 핵 망했어. 여행 시작한지 4일째 되던 날부터 천하제일 호구로 등극! 여행사에서 바가지요금과 뚝뚝이(현지 택시)한테 돈을 2배로 뜯긴 거야! 여기는 많은 것들이 정찰제가 아니라 부르는 게 값이라 계속 협상해야 해. 이때부터 호기롭던 포부와 낙관은 땅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회복탄력성 제로가 됐어. 덕분에 나의 상태를 점검했지. 객관적으로 첫 여행, 영알못, 라알못, 돈 계산 어리바리인 내가 판타스틱 한 모험을 계속 할 수 없겠다고 판단하고, 보편적인 루트로 가즈아자! 혼자 여행 할 때 자기 욕망을 관찰하고 조절하는 게 중요해! 아~ 무지 덥다. 라오스의 날씨는 510월의 우기와 11~4월까지 건기로 나뉘는데, 지금은 한낮이 38도야. 사람들의 일상은 오후의 더위를 피해 새벽부터 시작되고, 모든 게 느려! 버스도 손님 다 탈 때까지 1시간 기다리는 게 보통이야. 인내심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지! 내가 방비엥이라는 도시에서 충격 받은 이야기했던가! 이곳은 카약킹, 짚라인, 동굴체험이 가능한 액티비티 천국이야. 여행자 거리 중심에 팡팡 노래방이라는 한국 가게가 있는데, 유리창문에 얼짱 몸짱 도우미 항시 대기라고 버젓이 한글로 쓰여 있는 거야! 한국인이라는 게 부끄럽고 해외에서 성매매 업소를 차리는 한국 남자들한테 분노했어! 그냥 노래만 못 부르냐고! 현타 오짐! 지금은 루앙프라방이라는 도시에 있어.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문화재와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어. 이곳에서 4월 13~17일까지 삐마이라고 새해 축제를 했어! 한국의 설날이랑 완전히 딴판이야! 애 어른 할 것 없이 흥겨운 음악을 틀고 트럭이나 오토바이에 탄 채 서로에게 미친듯이 물을 뿌려대. 도시 전체가 밤이 깊도록 쿵쾅대는 거대한 클럽이야! 삐마이 기간에 오지 않았다면 라오스에 대한 인상은 180도 달랐을 거야! 느림보에서 지구 최대 흥부자! 혹시 너도 혼자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일렁인다면, 완전 강추야! 뭐 사기 당하고 무섭고 짜증날 때도 있고 외롭기도 한데! 그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야!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도 삶도 평온보다 시련에 더 끌리는 법이라고 하던걸, 백퍼 공감! 내가 또 많이 당해본 자산으로 꿀팁도 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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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21 19:42

어느 완벽한 휴일

김지윤 청춘부보상 홍보담당 4월의 어느 일주일을 쉴 틈 없이 보냈다. 일도, 공부도, 놀기도 욕심이 많아 잠도 줄여가며 열심히 달렸다. 뿌듯한 일주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 주의 마지막 날,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온몸이 아프고 열이 났다. 병원을 다녀왔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음날 학교를 갔다가 참지 못하고 다시 병원을 갔다. 독감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 입원을 권했지만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 채로 병원에 누워만 있는 일은 결코 할 수 없었다. 버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새벽까지 일을 했다. 그리고 겨우 잠에 들었을 때에는 이미 늦었었다. 증상이 악화되어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시 응급실 신세가 되었다. 눈물이 났다. 아픔의 눈물이었는지, 안도의 눈물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눈물엔 걱정과 연민이 있었다. 해야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했다는 걱정, 그리고 이렇게 아픈데 그런 걱정을 해야 하는 나에 대한 연민. 분명 아픔보다 더 컸다. 처음 내가 입원을 거절했을 때 엄마가 그러셨다.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라고. 분명 방법이 있을 거라고. 다 끝내지 못한 일들보다 내 몸을 우선으로 여길 방법이 있을 거라고. 그래서 입원을 했다. 그리고 그 일들을 더 이상 어떻게든 끝내려 하지 않았다. 이상한 책임감을 버렸다. 아파서 못했다고, 그저 사실대로 말했다. 감사하게도 질타를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제 한결 마음이 편해지나 싶었다. 격리병실을 사용했기 때문에 항상 혼자였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모든 것을 혼자 했다. 부모님도 오래 계시지 못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 있어본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무서웠던 밤도 잠시, 혼자라는 생각이 점점 행복했다. 영화도 보고, 낮잠도 잤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건 자유도, 해방감도 아닌 미처 끝내지 못하고 미뤄버린 일들과 지금부터 해야 할 일들이었다. 독감은 기본적으로 5일 입원을 권장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입원 4일차인 금요일엔 면접이 있었고 주말까지 쌓인 일들이 나를 옥죄었다. 결국 노트북을 가져와 병원에서 면접 준비를 했다. 3일차에 퇴원하기라는 목표가 생겼다. 드디어 3일차가 되었고 퇴원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끈질기게 설명한 후에야 동의를 받을 수 있었다. 마스크 절대 착용과 뜨거운 물 자주 마시기, 약 꼭 챙겨먹기 등 수많은 조건하에 퇴원을 했다. 무려 독감에 걸렸는데, 책임감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물론 영화를 보거나 낮잠을 자기도 했지만 진정한 휴식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에 퇴원하고 해야 할 일들생각으로 가득했고, 심지어 면접을 위해 일찍 퇴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요가 자세 중에는 완전 휴식 자세라는 것이 있다. 일명 송장 자세라고도 불리며 요가의 마무리 자세로 주로 이용된다. 방법은 간단하다. 누운 상태에서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팔은 편하게 바닥에 내려두며 손바닥은 하늘을 향하게 한다.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온 몸의 힘을 빼고 편하게 호흡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잠이 오지만 피로를 풀어주고 마음에 휴식을 준다. 이렇게 간단한 완전 휴식 자세는 쉬워 보이면서도 체득하기 가장 어려운 자세라고 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 완전 휴식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 휴식,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상상해보면 그렇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여유로운 아침을 먹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길을 걷는 것.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가보고 싶었던 곳을 가고, 저녁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하루를 마무리 짓는 것. 물론 거기엔 반드시 있어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 해야 할 일과 미뤄둔 일, 끝내지 못한 일등의 것들을 잠시 잊는 것이다. 가능한 일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런 날이 하루쯤은 찾아왔으면 좋겠다. 그런 어느 완벽한 휴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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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14 20:15

꽃집 주인의 정체성 혼란

김지연 문화기획자 군산에서 꽃집을 운영한 지 4년이 되어간다. 갑자기 꽃의 다양한 매력에 빠지게 되면서 직접 꽃집을 운영하고 싶어졌고, 꽃을 배우기 시작했다.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꽃집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차근차근 배우면서 나만의 목적을 설정했고, 감사하게도 작은 카페 안에서 꿈에 그리던 꽃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달이 나오는 월급을 포기하고 퇴직금을 써가며 준비했기 때문에 생계의 위협을 느꼈지만 나를 믿고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라는 말을 되새기며 나름 창업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자연스럽고 예쁜 꽃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었고, 소소하고 작은 꽃을 선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집에 가끔 꽃을 들여놓으며 기분전환을 하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 꽃 한송이를 선물하며 선물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한 기억에 나의 꽃이 함께 한다는 그 기쁨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컸다. 그래서인지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있었다. 일부러 나의 꽃을 선택하고 구석진 동네까지 찾아와주시는 분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으려고, 좋은 날 쓰이는 꽃이기에 더더욱. 그렇게 나는 어느새 꽃집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3년 정도 지났을 때 정체성의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지역 청소년들도 만나고, 지역 청년들과 함께 다양한 것들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점점 꽃집을 비우는 시간은 늘어났다. 꽃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꽃과 관련된 나의 이야기를 통해 지역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비슷한 일을 하는 청년들과 팀을 꾸려 고되지만 재미난 일들을 작당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종종 생각했다. 나는 꽃의 전문가가 맞을까?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반성하게 되고 뒤처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기도 했다. 자체 합리화든 뭐든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정체성의 결단이 필요했다. 결국 나는 꽃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꽃이라는 수단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면서 지역사회에 일원으로 조금이나마 함께 참여하고, 나와 같은 청년들의 시작을 돕고 싶은 꽃집 주인. 참으로 복잡하고 길지만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물론 꽃에 대한 공부와 노력은 지속하면서 말이다. 이런 정체성의 혼란이 복잡하고 괴로울 때도 있지만, 새로운 것을 접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내 삶의 기회이기에 쉽게 떨쳐낼 수가 없다. 요즘은 평생직업이라는 개념이 많이 사라지고 있으니, 나의 다음 직업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런 시기를 보내면서 정확하게 느낀 것이 있다면, 고민하면서 선택한 만큼 경험치도 크다는 것과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 내 주변에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나의 삶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고 싶다. 머릿속은 복잡하고 혼란스럽더라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고민을 할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 아마도 해마다 꽃집 주인의 정체성 혼란이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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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07 20:27

산티아고 길

김현두 여행작가 2014년 어느 날 오후 친구 녀석이 선물해 준 배낭 하나가 집에 도착했다. 늘 정서적으로 큰 힘을 주던 친구였던 그가 전해 준 그 배낭으로 인해 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지금은 TV에서 심심치 않게 다뤄지는 곳이지만 그때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곳을 친구가 선물해 준 배낭 하나 때문에 떠났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 배낭을 받자마자 생각했다. 산티아고에 가야겠는데 싶게 생겼었다. 정말 딱 그랬다. 나는 며칠 후 인터넷으로 스페인 행 티켓을 끊었고, 무작정 떠났으며 그 길을 걸었다. 나는 그런 내 마음의 여유가 좋다.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무모한 용기를 고맙게도 간직한 채 살 수 있는 그런 내가 좋았다. 누구에게는 그냥 배낭하나였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산티아고순례길(Camino de Santiago)은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이라는 스페인어이다. 그 거리가 약 800km에 이르는 멀고도 아름다운 길이다. 보통은 마지막 종착지인 산티아고대성당까지의 길을 일컫는데, 실제로 성야고보가 지나간 도보순례의 길을 연결해 놓은 것이다. 이 곳을 걷는 이들은 수많은 마을과 유적, 종교적 유산 등을 만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은 끝없는 자연의 신비로움이 아닐까?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밀밭이 펼쳐지고 길가에는 새빨간 양귀비꽃들이 바람결에 몸을 비틀며 늘 내 곁을 지켜주었다. 아름다운 길 위에서 걸음을 재촉하며 며칠이 흘렀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아니 그 이상으로 힘이 들었다. 큰 의미를 두고 떠나지 않으려 했던 여행의 시작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복잡한 내 생각의 잡념들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치고 고된 매일의 걸음이 반복되자 이내 생각을 옮기고 정리하는 것조차 사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저 가이드북만을 보며 걷고 있는 나를 보았다. 사실 마을은 어디에나 있었고, 나는 오늘 단 하나의 마을 만나고 걸어도 무방했다. 단지 내 생각의 쉼이 그 곳에 있지 못함이 문제였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서야 작은 손 글씨 노트에 잠시 펜을 들고서 이러한 생각의 흩어짐을 한 곳에 모아보았다. 강한 줄 알았던 나는 까미노 위에서 나약한 존재였다는 것 을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 때 부터였다. 내 속도와 내가 가는 길을 가야지하고 마음을 먹었다. 비단 길 위에서 뿐만이 아니라 삶에서도 그렇게 하자 다짐하였다. 돌아가면 마주 할 일상까지도 복잡한 세상사도 다 저만치 버려두고 내 길을 걸어가는 것, 그러기로 내 마음에 다짐을 하던 날이었다. 모든 것은 길 위의 풍경에서부터였을 것이다. 벤치와 쓰레기통의 숫자도 달랐고, 피부색도 먹는 것들도 달랐다. 그렇게 내가 살 던 곳으로부터 모든 것을 비교하며 다르다는 것을 알고서는, 모든 골목과 마을을 사진기에 담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에 돌아와 약속이 있어 서울에 다녀온 적이 있다. 신사역에서 나와 가로수 길을 걷는 중이었는데,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잠시 앉아 쉼을 가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길이었다. 가게 앞 화려한 사람들의 옷차림과 비싸보이는 자동차들의 풍경보다는 쉼이 있는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지도 듣지도 만난 적도 없는 나에게 부엔까미노(Buen Camino)번역하면 좋은길되세요를 외치는 그 곳의 사람들이 그리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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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31 19:59

야동을 끊고 있는 중입니다

소해진 사회복지사 너희 집에 아무도 없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방과 후에 여자 친구들 5~6명이 모여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내 친구 미영이는 성 박사로 유명했는데, 성적 호기심이 왕성하였던 우리는 미영이의 알 수 없는 농담에 웃어 젖혔다. 그 친구가 거실 비디오 위에 올려진 테이프 하나를 틀었다.(고 생각 하지만 나였을 확률이 높다.) 가족 중 누가 빌려놨는지 알 수 없지만 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약간 호들갑스럽게 낄낄 거리다가 얼마 후 숨죽이며 관람하였다. 내 야동의 첫 시작이었다. 나중에서야 남성들의 세계에서는 이것은 야동 축에도 못 낀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야동을 본다. 볼 때마다 복잡한 기분이다. 심지어 내 손목을 자르고 싶다. 포르노 산업에서 소비되는 야동은 흔히 말하는 야한 영화 수준이 아니다. 집단 강간, 몰카(불법촬영동영상), 성매매, 아동 성폭력 등으로 얼룩져있다. 반인권적인 내용을 필터링하고 나름 안전한(?) 영상을 찾지만 촬영, 유통, 판매, 소비라는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최근 문화계에서 피해자의 용기 있는 미투로 알 수 있듯, 실상은 전혀 다르다. 성적 흥분의 주요 메커니즘은 여성이 재현되는 방식이다. 야동을 보면 그 나라의 성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의 포르노에서 여성들은 극도로 수동적이고 처음에 관계를 거부하다가, 모두 적극적으로 즐기는 설정이다. 한국은 포르노 제작이 불법이지만, 제작된 콘텐츠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본과 유사한 패턴이다. 성적 욕망은 사회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이 재현되는 방식은 평소 현실 관계의 반영이다. 영상 속 재현되는 방식이 폭력적이고 차별적이라면, 그런 모습을 통해서만 성적으로 자극받는다면, 이것을 표현의 자유와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쁜 페미니스트 저자 록산 게이는 우리는 억압이나 처벌의 공포 없이 자신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표현할 자유는 없다.고 하였다. 한국 사회는 남성의 성적 욕망을 본성이라 간주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에 관대하다. 웹하드 업체 대표 양진호에 대한 분노의 시발점은 직원 갑질 때문이지, 불법 촬영 동영상이라는 여성에 대한 성범죄 때문은 아니었다. 승리 버닝썬 게이트, 장자연 씨의 죽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폭력 사건 또한 매한가지다. 하지만 몰카가 불법촬영동영상으로, 성접대가 성폭력으로 언어화되고 범죄로 인식하게 된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이는 전적으로 피해 당사자의 폭로와 저항하는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여성가족부에서 해외불법음란사이트 접속을 차단하였다. 속으로 안도했다. 못된 습관을 정부에서 시스템으로 견제해주니 감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라고, 정부의 방침을 비웃는 우회 접속 방법이 성행하고 있다. 내가 그들과 다른가? 나 또한 소비를 통해 공모했기 때문에 면죄부를 얻을 수 없다. 지금도 웹하드 사이트 성인 카테고리를 완전히 지나치지 못하고 있다. 남성 중심 시선으로 여성을 몸으로 환원하고 성애화하는 게 자연스러워서 탈피하려고 노력 중이다. 다만 당사자들의 삶을 건, 발화에 어떤 식으로든지 수신해야 하지 않을까? 분명한 점은 성범죄자는 엄정히 처벌받아야 하고,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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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24 19:09

‘데모’를 강요하지 마세요

김지윤 청춘부보상 홍보담당 얼마 전 강원도로 내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내일로 여행은 기차를 이용하여 전국 곳곳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무궁화호, 새마을호를 포함한 ITX-청춘 등 KTX와 관광전용열차를 제외한 거의 모든 노선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전국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었다. 내일로 티켓은 지정석이 없어 빈자리에 앉더라도 누군가 그 자리를 예매했다면 얼른 일어나 비켜줘야 하고, 카페칸에는 사람이 가득해 앉을 수 없을 때도 많다. 하지만 그마저도 경험이라고 여길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긴 강원도의 낭만은 더 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내일로 특성상 기차 외에도 버스나 택시를 많이 이용하게 된다. 묵호에서 저녁 식사 후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경상도 출신이셨던 택시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기사님께서 대학생들이 문제가 많다.며 현 시대의 대학생들에게 일침을 날리셨다. 기사님은 방학만 되면 놀러 다닐 생각을 하고 정치에 무관심한 청춘들을 안타까워하셨다. 우리에게 더 힘들어져서 위기를 느껴야한다고 하셨다. 예를 들어 반값 등록금을 하고 싶으면 한 달만 데모하면 된다고 하셨다. 정치인들이 서로 해주고 싶어 하지만 명분이 없어서 못해주고 있는 거란다. 한 번 해보면 그 다음엔 일자리를 만들어주려고 난리일 것이라며 이 나라는 대학생들이 이끌고 나가야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에 들려주신 본인의 대학시절 데모 이야기를 듣는 중 친구가 요즘은 그러다가 잡히면 취업 못하잖아요.라며 입을 뗐다. 그러나 기사님은 사람은 다 쓸모가 있다.며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꼴이라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그 기사님의 말씀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나를 포함한 현시대의 대학생들은 정말 권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밥상을 차려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된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들을 하다가 문득 그 시절의 데모와 반값 등록금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님이 대학생이셨던 시절의 데모는 불합리한 정부에 대한 시위였다면, 반값 등록금시위는 더 많은 혜택을 바라는 시위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혜택이 필요 없어서 데모를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 이화여대 학생들은 최순실 게이트에 기름을 부었다. 우리도 불합리한 공권력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낼 줄 안다는 것이다. 뉴스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무관심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어른들이 청년들을 값어치 있다고 여기지 않고 그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작년부터 내일로 여행 중 코레일 앱이 실행되지 않아 큰 불편함을 겪었다. App Store에 들어가 보니 나와 같은 사람들의 이용후기가 정말 많았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부분이 고쳐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었다. 그러나 역마다 여행자센터에서는 서로의 QR코드를 찍게 하고,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를 추가하게 하는 등 이익을 챙기는 데에만 급급했다. 이렇게 데모를 겪어 왔다는 어른들이 대학생들의 이런 사소한 목소리에도 귀기울여주기는커녕 대학생들을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만 하는데 어떤 값어치를 느끼고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단 말인가. 그 시절의 대학은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대학생들의 시위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무나 마음만 먹으면 대학에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시대가 변했다. 그 시절의 대학생들이 변화시킨 대한민국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 힘들었던 시절 본인들의 대학생활을 우리가 반복하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꼰대같은 말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어떤 열정도 느끼게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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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1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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