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한 편을 올리려면 몇 사람의 노력이 필요할까.
성악가, 관현악단(지휘자와 연주자), 연출, 대본작가, 작곡가, 기획, 무대디자인, 분장, 의상, 음향, 조명, 홍보·티켓·판매 등을 담당하는 기획사와 판매처… 수백, 수천?
수많은 사람들의 힘이 모아졌던 공연이 한순간 사그러진, 그것도 볼모로 잡고 있던 관객까지도 배신해버린 희귀의 오페라 공연 무산 사건. 11일 오후 8시 소리전당 모악당에서 있었던 오페라 '나비부인' (제작 21세기오페라단)이다.
공연이 취소된 원인은 제작자와 협연자들 사이의 개런티를 둘러싼 갈등. 수원·울산·대전·제주 등 지방도시를 순회하는 이 공연의 협연자들이 개런티를 받지 못하자 공연 참여 불가의 극단적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둘째날 공연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연 5분전까지도 제대로 막이 올라갈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속깊은 이 지역의 관객들은 자리를 지켰다.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지만 어찌됐든 12일 공연의 막은 올라갔다. 그러나 40여명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있어야할 자리에는 급히 섭외된 피아노 반주자로 대체됐다. 관객들은 이 어처구니 없는 황당한 상황에 다시한번 분노했고, 휴식시간이 되자 뒤돌아보지 않고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사실 오페라 제작 책임자와 협연에 나선 음악인들 사이에 이루어졌던 계약이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파기되고 갈등을 겪게 되었는가를 속속들이 알 방법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관객이 이들 사이에 놓여진 거래의 볼모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협연자측은 자신들도 희생자라고 강변했다지만 이해하지 못할 상황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더구나 뒤에 전해진 '국내 클래식음악계를 이끌어가는 당당한 오케스트라'와 일부 스탭들의 행보는 썩 유쾌하지 않다.
피날레였던 전주무대가 자신들의 권리를 찾는 최후의 보루였다는 점을 백번 감안한다해도 '당장 (개런티를)포기하고서라도' 무대에 섰던 성악가들과 다른 결정을 내려야 했던 사람들의 입장은 전혀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공연자체가 공연장 현장에서 무산되는 이런 희대의 사태가 왜 하필이면 우리지역에서 일어났는가에 대한 자괴감도 없지 않다.
"전통문화의 도시임을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전북도민을 무시했음에 분노를 느낍니다. 그런데 우리 도민들께서는 생각보다 관대하시군요”(소리전당 홈페이지에서)
명예롭지 못한 삶보다 자살이라는 치명적인 결말을 선택했던 '나비부인'을 연습하면서 그네들이 담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최기우(본사 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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