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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자연재해와 호남 푸대접 - 이규일

이규일(미술평론가)

지난 12월 중순, 꾀벽쟁이 친구의 고명딸 결혼식이 있어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엘 다녀왔다.

 

일가 친척들을 만나 인사도 드릴겸 결혼식 하루전에 갔다가 친구집에 들렀다. 하도 오랜 만에 온 고향 이어서 인지 어려서 늘상 다니던 길이 었지만 새집이 들어서고 큰길이 나서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마을 사람에게 내일 혼사를 치르는 아무개 댁이 어디냐고 물었다. 젊은이는 “아저씨 어디서 오셨어요”하고 집앞까지 안내했다. 친구집에 들어서니 반갑게 맞아 주었다.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 옛이야기를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몇잔술에 취기가 돌았다. 친구가 뜬금없이 고향에 온 소감을 물었다. 나는 옛 사람의 <향음(鄕音)> 이란 시를 빌어 내 생각을 말했다.

 

“어려서 집을 떠나 늙어 돌아와 보니(少小離家 老大廻)

 

고향은 변함이 없는데 귀밑머리만 희였구나(鄕音無改 ?毛衰)

 

어린이들은 나를 보고 알아보지 못하는데(兒童相見 不相識)

 

졸졸따라다니며 아저씨 어디서 오셨오하고 묻네(笑問客從 何處來)”

 

솔직히 말하면 현대인은 고향을 버리고 사는지도 모른다.

 

‘촌놈 서울에 와서 출세했다’는 추임새에 취해서 말이다. 하지만 뉘라서 어머니 품처럼 따뜻한 고향의 정을 쉽게 잊겠는가….

 

해마다 설날·추석 명절에 이어지는 귀향 행렬이 우리들의 ‘고향유정’을 대변하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튿날은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새삼 고향의 정을 듬뿍 느꼈다. 창밖에는 흰눈이 내리고 있었다. ‘겨울 경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구나!’쾌재를 부르면서 집에 왔다. TV를 켰더니 “폭설로 호남 고속도로가 봉쇄되었다”는 뉴스가 불과 몇시간전 상쾌한 기분을 잡치게 만들었다. 광주·정읍·고창·부안등지의 폭설 피해가 집중 보도 되었다. “왜또 호남 지방만” 나도 모르게 원사(怨辭)가 터져 나왔다.

 

1976년에는 7월 한달내내 가믐이 계속되다가 8월1일 전국에 단비가 내렸다.그런데 호남지역에만 비한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이지역 농민들의 애타는 심정을 중앙일보 <역광선(逆光線)> 은 8월2일자 신문에 “중부·영남·영동은 해갈, 호남은 빼고, 천심의 푸대접을 어찌할꼬…”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평소 정부의 푸대접에 불만이 높았던 주민들은 “호남을 하늘 조차 푸대접하는 버림받은 땅”이라고 했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청년회의소등이 주동, 지역 시민 단체들까지 합세해 해명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고"중앙일보 안보기와 삼성제품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이 사건 때문에 호남출신 중앙일보기자들이 총동원, 전북도민 민심 잡기에 나선일이 있다.

 

필자도 후에 전북도지사를 지낸 조남조(趙南照)등과 함께 전주에 내려와 <역광선> 의 본뜻은 “하늘도 야속하다”는걸 강조한 것이라고 관계요로에 해명하느라 진땀을 뺀일이 있다. 당시 중앙일보는 주필이 목포분이었고, 편집국장이 전주고 출신이었으며, 사회부장이 남원 사람이어서 호남푸대접을 부추길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입장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와 ‘어’는 다른법. ‘천심(天心)의 푸대접’이 문제였다. 언론의 표현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이때부터 알고 있었던 터지만 ‘호남폭설’과 ‘역광선’사건이 오버랩되어 왠지 뒷맛이 씁슬했다. 그렇다고 정말 하늘탓만 할 수는 없는 일. 지금부터라도 정확하게 피해현황을 파악하고 원인을 규명, 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비닐 하우스가 부실하게 지어졌다면 튼튼하게 짓고, 무거운 눈 무게도 넉근히 견딜수 있도록 버팀목을 받치고, 둥그스름한 지붕이 문제였다면 가파른 세모지붕도 설계할 수 있는 일이다. 자연 재해라고 속수무책으로 당해서는 안된다. 똑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철저한 준비만이 ‘호남 푸대접’을 물리치는 길이다. 쉘리는 <서풍부(西風賦)> 에서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고 노래했다.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면 산너머 남쪽에서 불어오는 훈풍이 ‘폭설피해’를 녹여줄 것이다.

 

/이규일(미술평론가)

 

◇이규일씨는 군산 임피출신으로 중앙일보 주간부·문화부차장, 『월간미술』부장·주간등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 시립미술관 운영자문위원, 전북도립미술관 운영자문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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