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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달력

한 때 ‘달력 국회의원’이란 말이 있었다. 순창·임실지역의 어느 국회의원을 지칭한 말이다. 그는 해마다 이맘 때 달력을 만들어 돌렸고 그것이 국회의원이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달력이 귀하던 시절, 한 장으로 된 그 달력은 일년 내내 지역구 주민의 마루고 사랑방이고 붙어 있었다. 그 달력에는 자신의 얼굴과 공약 등이 새겨져 있었고 자연스럽게 홍보효과를 본 것이다.

 

또 40대 이후는 달력 종이를 요긴하게 활용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신학기가 되어 새 교과서를 받아 오면 달력으로 교과서를 공들여 쌌었다. 지난 10월 작고한 최규하 전 대통령은 낡은 달력을 작게 잘라 메모지로 이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본인 뿐 아니라 비서진에게도 그것을 활용토록 나눠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달력의 역사는 꽤 오래 전으로 올라간다. 기원전 250년경 이집트의 한 천문학자는 지구가 태양주위를 한 바퀴 도는데 365일에 가깝고 4년마다 하루를 더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기원전 46년 이집트를 정복한 로마제국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윤년이 도입된 365일제를 채택했다. 이 달력은 1년의 평균 길이를 365.1/4일로 잡았다. 그러나 1/4일은 하루로 칠 수 없어 4년중 3년은 1년의 길이를 365일로 하고 4번째 해는 366일로 했다. 하지만 이것도 서기 325년에 이르러 4일의 오차가 생겨났다. 그래서 1582년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이를 정정했다. 종전과 같이 4년마다 윤년을 두되 400년에 3일씩 날짜를 줄이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 현재 사용하는 양력이다.

 

서양의 태양력에 비해 중국은 태음태양력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한대(漢代) 이후에는 음양력의 추산뿐 아니라 일식과 월식, 오행성의 운행을 계산하는 방법까지 포함시켰다. 지금 쓰이는 음력은 1644년 중국의 탕약망이 만든 시헌력(時憲曆)이다. 우리나라는 1652년 김육에 의해 도입되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동지에 관상감에서 달력을 올리고, 임금이 그것을 관리들에게 나눠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 초에는 약 4000부를 찍었는데 후기로 들어 1만부 이상을 인쇄했다고 한다.

 

요즘 달력을 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경기불황으로 관공서나 기업에서 제작부수를 줄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해(丁亥)년 새해에는 1년 열두달 모두 ‘희망의 씨’가 싹텄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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