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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선(禪)

“선(禪)은 마음을 닦는, 즉 정신수양의 대명사다” 만해(萬海) 한용운은 ‘선과 인생’에서 이같이 말했다. 선은 종교적 신앙도 아니요, 학술적 연구도 아니며, 고원한 명상도 아니요, 침적한 회심(灰心)도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덧붙인다.

 

최근 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스님들이 동안거나 하안거에서 하는 전문적 수행 말고도 일반인이 선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템플 스테이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세상 살기가 번잡해지면서 조용히 ‘참 나(眞我)’를 찾기 위함일 것이다.

 

선은 흔히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 선사(禪師)들의 기행이나 선문답 등이 너무 크게 부각되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한 예로 운문(雲文)스님의 ‘마른 똥막대기(乾屎궐)’를 들 수 있다.

 

어느 날 운문스님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바지춤을 올리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때 성급한 스님 한 사람이 화장실 문앞에 다가와서 이렇게 물었다. “스님, 부처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운문스님은 지체없이 이렇게 말했다. “마른 똥막대기니라.” 운문스님은 질문을 받았던 그 순간 , 단지 볕 아래 긴 똥막대기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이것은 동산(洞山)스님의 ‘삼베 서근’이나 조주(趙州)스님의 ‘뜰 앞의 잣나무’의 예와 맥락이 같다. 스님들은 그 순간 그것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의 거울에 오직 그것만 비추었을 따름이다.

 

선은 마음공부라 말한다. 그것을 통해 내가 누구인가를 찾는 기나긴 여정(旅程)이라 할 것이다. 앉아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잡념을 떨쳐내어 마음을 집중하는 좌선이나 돌아 다니며 하는 행선 등 방법은 다양하다.

 

황벽선사는 ‘전심법요(傳心法要)’에서 마음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마음이란 바로 무심(無心)을 말하는 것이니, 무심이라는 것은 일체의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그 걸림없는 모습이란 안으로는 나무와 돌 같아 동요함이 없으며 밖으로는 허공과 같아 막힘이나 장애됨이 없다.”

 

어쩌면 말과 글로 표현한 것 자체가 선의 세계와는 거리가 먼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직 마음을 비우는 무심과 무욕(無慾)이 아닐까 한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가 시끄럽다. 정치인들에게 선과 같은 자세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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