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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장수 기행(紀行) - 백순상

백순상(장수경찰서장)

 

나만 그런것일까? 터진 곳이라곤 푸른 하늘밖에 없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장수에서 오히려 가슴속 저 밑바닥까지 후련함을 느낀다. 아늑함과 평안감이 엄마 품속같이 행복하다. 꽉 막혔는데 자유로운 그러한 모순감정은 인간이라서 용서된다.

 

전북에선 흔히들 장수일대를 동부산간지대라 일컫는데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여세를 몰아 장수 동쪽으로 장안산과 덕유산, 서쪽으론 팔공산, 남쪽으론 대망산, 북쪽은 장등산이 에워싸 산자수려하다. 우리나라 어디에 이처럼 명산(名山)아래 푹 잠긴 땅이 있을까? 산세가 순해 어미나 누이 품같다. 그속에서 장수는 전주보다 해발 340미터정도 높아 평균기온도 4~5도 낮다. 그래서, 여름에는 더 시원하고 겨울에는 추위가 더한다.

 

백두대간에서 흘러내린 금남호남정맥의 산줄기를 따라 장안산과 소설 남부군의 배경인 팔공산사이 수분령 위쪽 신이 춤춘다는 신무(神舞)산 8부 능선에 금강 '물뿌랭이(물뿌리의 전라도 사투리)' 뜬봉샘이 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새나라를 열어라"라는 천지신명의 계시와 함께 위 샘에서 봉황이 하늘로 날아 오르는 걸 보았다하여 '봉황이 뜬 샘' 즉, 뜬봉샘이다. 수분령은 그곳을 경계로 북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남쪽으로는 섬진강이 흘러 한자그대로 水分嶺인데, 금강과 섬진강이 갈라지는 고개이다. 뜬봉샘 물줄기는 장수를 지나 서해로 흘러들며 한강, 낙동강에 이어 세 번째로 긴 천리길 물줄기를 이룬다. 그래서 長水다. 이곳 장수는 지금이야 대진고속도로, 익산-장수간 고속도로가 관통하여 동부산간지대의 교통 요충지가 되었지만 그 옛날에는 '무진장'이라 불리는 산간오지, 유배지였다.

 

고려말 보문각 대제학을 역임한 대학자이신 수원백씨, 본인의 파조(派組), 정신제공派 백장님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부름을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不事二君의 충절로 거절, 이곳 장수로 유배되었던 바, 10여년후 황희 정승이 양녕대군 폐출을 반대하다 같은 장수로 유배당하여, 당시 76세의 할아버님과 55세의 황희 정승이 조석으로 만나 진리를 향한 말씀을 나누었다니 그 고고한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로부터 오백년후 백장님의 직계후손이고 본인의 12대 선조이신 백용성 조사님께서는 55세때인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에 민족대표 33인중 불교계 대표로써 이름을 올린다. 그분은 또한, 만해 한용운님의 스승이자 '님의 침묵'의 '님'이라는 설도 전해진다. 후대에 나라에서 백용성 할아버님을 기리기 위해 장수 번암면 생가부근에 죽림정사란 사찰을 지었으니 그곳에 들러 독립운동의 정신도 되새기고 나를 되돌아 보는 기회도 가져봄이 어떠하실런지...

 

그러고보면 논개님까지 합해 장수는 가히 절개의 고장, 지조의 고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갑술년 갑술월 갑술일 갑술시(四甲戌), 한자로 '개 戌'이라, 개해 개월 개일 개시에 태어났다 하여 "사람이 아닌 개를 낳았다"에서 '낳다'의 사투리인 '놓다', 그래서 논개라 이름지었다는데 장수에선 논개생가, 논개사당, 논개축제등 곳곳에서 논개님을 만나게 된다. 장수에선 위 분들을 포함한 열분에 대해 二德 三節 五義라고 하여 오늘날 후손들이 추앙하고 있다.

 

논개님이 태어난 1574년 10월 27일 20시, 그로부터 수백년을 지나 다시 또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그리고 나도 知天命을 넘긴 55세 나이에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며 이곳에서 이글을 쓰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님들이시여! 이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전북에서 시작해서 끝나는 금남호남정맥을 종주해보시라. 그곳에선 장안산도 만나고, 수분령도 만나고, 뜬봉샘도 만나고, 논개님도 만나고... 그리고 그림같은 청정장수도 만날 수 있다.

 

/백순상(장수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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