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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사람 사이의 거리 - 곽병창

곽벽창(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사람이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나의 우주인 사람은 결국 또 다른 우주인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람 안에 깃들인 온갖 우여곡절들에 대한 관심과 교감이 우리를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어 간다.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외로운 존재가 늘어날수록 사회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갈수록 사람 사이의 단절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아서 안타깝다.

 

'집에 문이 많아질수록 가족들 사이의 정이 사라져간다'. 어느 택시기사의 말이다. 문이 하나밖에 없던 단칸방에서 서로 아랫목을 찾아 몸을 비비며 부대끼던 시절과, 웬만큼 크면 각자 자신의 방문 하나씩을 갖게 되는 요즘의 가정을 비교하며 한 말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각자 그들 소유의 기계장치들을 지니고 있어서 보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으로의 소통을 도모하느라고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을 종종 잊기 일쑤이다. 심지어는 눈 앞의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에도 귀에 꽂힌 헤드셋을 통해서 전혀 다른 세상과, 더 깊이, 소통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현상을 첨단 미디어 기술의 일시적 그늘이라 하기도 하고, 일상에서의 소외를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라 하기도 한다. 결국 외로워서 점점 더 기계에 기대고, 기계 때문에 인간의 외로움은 깊어간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렇게 길들여진 새로운 인간들의 세상을 보는 눈, 세상을 대하는 태도, 욕구와 관계를 조절하는 능력 등이 매우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어서 더 큰 문제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자식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친절하고 자상했다는 어느 연쇄살인범의 얼굴을 보면서 가족, 친구, 이웃, 사제지간 사이에서 맺어지는 총체적인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 떠올린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비정상적인 생각이 사람을 매우 힘들게 하거나 심지어 그 사람의 정상적인 삶을 방해하고 망가뜨리는 사례는 연쇄살인 말고도 여럿 있다. 애정과 관심을 앞세워 사생활의 울타리조차 헤집고 들어가서 과도하게 간섭하고 훈수 놓고 비방하는 일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빗나간 관심이 유명인들의 잇단 자살사태로 이어지기도 하는 걸 보면 그 또한 방관할 수 없는 집단적 병리 현상 아닌가?

 

독립영화 '워낭소리' 속의 주인공 할아버지 내외가 세상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사는 곳을 옮겨갈 궁리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돌아보면 '산골소녀 영자'로부터 '워낭소리'에 이르기까지, 불특정 다수들이 영문 모르는 개인들에게 무심코 저지르는 사생활 침해의 사례는 점점 늘어만 간다. 어쩌다 공공의 영역에 들어선 죄 없는 개인들에게 뭇 사람들이 앞뒤 없이 달려들어 무차별적으로 퍼붓는 관심의 눈초리들은 그 자체가 이미 견디기 힘든 폭력이다. 이런 일에는 세대 차이도 지역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인터넷 세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특정 대상에게 집단적으로 빠져들고 마는 이런 현상의 바탕은 무엇일까? 좀처럼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하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 우리 시대의 무모한 인간관이 결국 이런 종말적 정황을 자꾸 확산시키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만 하다.

 

열광적인 환호와 갈채 속에서 공연을 끝낸 가수들이, 잔디밭에서 관중들과 함께 스스럼없이 차를 마시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남의 나라 풍경을 떠올리며, 때로는 너무 멀고, 때로는 너무 가까운, 우리 시대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다시 곱씹어본다.

 

/곽벽창(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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