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룡(한국은행 전북본부장)
어릴 적에 왼손으로 밥을 먹거나 밥상머리에서 형제들끼리 장난을 치다가 밥을 굶은 적이 많다. 숟가락을 뺏기고, 죄질(罪質)이 무거울 때는 두어 차례 머리까지 쥐어 박힌 후 문밖으로 내쫓기면 그 끼니는 굶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요즘 엄마들은 반찬을 장만할 때 아이들이 싫어하는 양파나 당근 같은 건 곱게 갈거나 다져서 어떻게든 먹이려고 애쓴다. 아빠들도 가급적이면 밥상 앞에서 아이들 심기를 건드릴 말은 삼간다. 자칫하다가는 말없이 숟가락 내려놓고 휑하니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지난 3, 40년 사이에 밥상머리 풍경이 크게 바뀐 것이다. 우리 자랄 때는 '먹든지 말든지'()의 공급자(供給者) 중심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어떻게든지 먹여야 하는'(letting them take it at any rate) 수요자(需要者) 중심의 시대로 바뀐 것이다.
생각건대 농경사회, 전통사회는 공급자 중심의 사회가 아니었나 싶다. 농부는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거두어들이면 그뿐 다른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집에서 먹고 남는 것이 있더라도 장에 내다 팔거나 다른 물건과 바꾸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언제나 식량 부족을 겪었던 과거에는 "공급은 그 자신의 수요를 창출한다(Supply creates its own demand.)"라는 경제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세상이었던 셈이다. 쌀은 쌀이니까 팔리고 보리는 보리라서 사는 사람이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쌀이나 보리 같은 농산품은 물론 공산품까지 종류도 많고 수량도 넘쳐 난다. 설사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제품이라도 수입품이 얼마든지 들어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소비자의 시선을 끌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농산물도 '김제지평선쌀', '고창황토쌀', '부안계화도간척지쌀', '장수메뚜기쌀'처럼 고급화, 브랜드화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직도 '쌀은 쌀'일 뿐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고 생각하고 있는 몰지각한(?) 사람이 다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철원오대쌀'이나 '서산간척지쌀', '임금님표이천쌀' 등 수많은 쌀을 제치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려면 미질(米質)을 높이는 것은 기본이고 포장도 고급화, 다양화해서 한 사람의 눈길이라도 더 사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농민들이 이렇게 안간힘을 쓰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 서비스 업종 종사사들의 서비스 의식은 여전히 한심한 수준이고, 아직까지 "take it or leave it"의 배짱이 마치 인간적인 자존심의 보루인 양 착각하고 있는 걸 종종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음식점에서 기껏 '덜 맵게', '덜 짜게' 주문했더니 정작 주문을 받은 종업원이 다 생략하고 주방에 대고는 "매운탕 3인분!"하고 외치는 걸 보고 황당해한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어러니 저러니 따지고 들었다가는 까다로운 손님으로 찍히기 쉽다. 그저 맵든, 짜든 주는 대로 먹고 음식 속에서 머리카락 따위가 나오더라도 바쁜 종업원 오라 가라 하지 않는 게 선량한 소비자의 도리인 양 통한다.
또한 대중교통의 서비스도 아직까지 만족스러운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택시의 경우 무거운 짐이 있거나 날씨가 궂거나에 관계없이 골목 안이나 아파트 현관 앞까지 갈 것을 요구했다가는 기사 분들의 노골적인 불만을 감수해야 하고 시내버스도 급출발 급제동에, 볼륨껏 틀어대는 라디오 오락 프로그램이나 특정 종교방송에… 상당한 인내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상의 예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만나는 사례들로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도 시간이 바빠서, 혹은 "말해 봤자 내 입만 아프지" 하는 생각에서 이 순간에도 많은 분들이 그냥 지나쳐 버리고 계시지나 않은지 궁금하다.
/박정룡(한국은행 전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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