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룡(한국은행 전북본부장)
금년도 쌀 생산량이 지난해 수준을 훨씬 넘어서 풍작을 기록하였으나 산지 쌀값이 많이 떨어져 농민들의 시름이 깊다.
쌀을 비롯한 농산물은 공산품과 달리 그때그때의 수요 전망에 따라 생산량을 신축적으로 조절할 수 없고 생산된 제품을 장기간 저장할 수 없으며 해마다 반복적으로 거의 같은 양을 생산해 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비자에 비해 생산자인 농민들이 불리한 입장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쌀의 경우 최근 들어 재고가 누적되면서 앞으로도 가격 하락압력이 지속될 우려가 있다.
이러한 걱정을 덜기 위해서는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을 아우르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쌀을 사용한 면류나 과자, 주류의 개발과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현재 국내 생산량의 6%에 불과한 가공식품용 쌀 소비를 일본(14%)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최근 급격한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는 1인당 쌀 소비량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쌀 10kg은 2만원인데, 이 쌀로 즉석밥을 만들면 10만원, 떡을 만들면 12만5000원, 증류주로 만들면 21만3000원으로 부가가치가 높아진다'는 농림수산식품부의 분석(동아일보 2009년 10월 12일자 「기고」, 권오란의 '한식 세계화, 연구개발 인프라 쌓아야'에서 재인용)에 비추어 쌀의 가공식품화는 쌀 소비 확대는 물론 농가소득 증대에도 기여할 수 있다.
둘째, 정부에서는 국내에서 남아도는 쌀을 아시아·아프리카 빈곤국에 원조하는 등의 방안을 적극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과거 1960년대 미국이 우리나라에 잉여농산물(밀가루, 옥수수가루, 분유 등)을 원조해 줬던 것처럼 우리도 정부에서 쌀을 사서 가난한 나라에 원조를 해 준다면 쌀 재고부담을 덜면서 국가의 이미지도 높이고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수출이나 투자 진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전북 쌀의 소비를 촉진하고 제 값을 받기 위한 노력 또한 필요하다. 현재 도내에서는 '김제지평선쌀', '부안계화도간척지쌀'처럼 고급화, 브랜드화를 통한 수요 확대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시군별로 각기 다른 브랜드를 사용(다품종 소량화)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전북 쌀의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실정이다.
이와 관련하여 '청정원'의 성공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대상'이라는 기업은 몰라도 이 기업 식품사업 통합 브랜드인 '청정원'은 잘 알고 있다. 이는 소비자들이 실제 식품 구매 과정이나 신문·방송 광고를 통하여 '청정원'이라는 브랜드를 자주 접하게 된 결과이다. 마찬가지로 전북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도 브랜드를 하나로 통합하고 각 시군이 힘을 합쳐 적극적인 홍보에 나선다면 빠른 시일 안에 전북 쌀의 성가(聲價)를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공급 측면에서 경작면적의 점진적 축소가 필요하다. 과거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자가 소비용 일부 채소나 현금작물을 제외하고 밭에는 하곡(夏穀)으로 보리나 밀, 추곡(秋穀)으로는 콩을 재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밭에 보리나 밀, 콩보다는 각종 채소나 과일, 원예작물을 더 많이 재배하고 있다. 이는 논농사에 있어서도 벼 이외의 작물로의 전환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이 경우 정부나 농업 관련단체에서 대체작물의 개발·보급과 재배기술의 전파를 담당하도록 하여 농민들의 시행착오와 위험부담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다양한 노력들이 성과를 거두어 우리 농민들이 벼 논을 갈아엎거나 머리에 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서는 사태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박정룡(한국은행 전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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