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8 06:59 (Sat)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새벽메아리
일반기사

[새벽메아리] 이른바 '착한 소비'를 다시 생각한다

나영삼(완주군 지역경제순환센터 센터장)

가히 신드롬에 가깝다.

 

착한 소비, 착한 가격, 착한 여행, 착한 몸매, 착한 밥상, 착한 요리, 착한 초콜릿, 심지어 착한 자본주의, 착한 자동차…, 만사형통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앞 다투어 마케팅전략으로 활용하느라 바쁘다. 얼마 전에는 한 대형마트의 피자판매가 '착하지 못한 상품' 으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왜 사람들은 썩 어울리지 않는 단어에 '착하다'는 말을 경쟁적으로 붙이고 나선 걸까? '착한'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면 마치 모든 것이 공정하고 선한 것이라는 착각마저 생길 지경이다.

 

우후죽순식 '착한 소비' 캠페인을 접할 때면 적잖이 불편하다. 현상이 본질을 지나치게 가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실타래처럼 엉킨 복잡한 현실을 바꾸는 일은 객관적 상황인식과 사회적 합의, 공동의 실천을 요구하지만 많은 이들이 착한 소비에서 얻는 일종의 위안감에 안주하려 한다.

 

착한소비의 대명사격이 '공정무역'이다. '공정무역'은 중간 상인의 개입을 줄여 개발도상국에서 생산하는 상품에서 발생한 이익을 생산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이 주는 무역 형태다. 아름다운 가게의 아름다운 커피와 초콜릿, 신발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저개발 국가 어린이에게 또 다른 신발 한 켤레를 기부하는 탐스슈즈의 신발 등이 공정무역 제품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들의 역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중반부터 선진국들은 가난한 나라에 돈을 꿔주고 엄청난 고금리로 이 돈을 갚도록 했다. 외채의 덫에 걸린 가난한 나라들은 자국의 식량공급까지 파괴하면서 선진국 시장에서 돈 되는 작물의 단일경작으로 농업구조를 바꾸게 된다. 공정무역이 취급하는 품목들이 대체로 여기에 해당한다. 근본문제 해결에는 미치지 못한다.

 

과정은 다소 다를지라도 식량자급률 25%에, 쌀을 제외하면 5%수준의 OECD최대 식량수입국이 대한민국이다. 한-미, 한-EU, 한-중간 FTA가 체결되면 총 45개국에 시장을 개방하게 되어 식량자급 기반은 그만큼 취약하게 될 전망이다. 소비자는 밥상이 늘 불안하고 생산자는 소득에 늘 목마른 시대는 끝이 없다.

 

식량자급률 72.4%(2008년 기준)를 이룬 영국의 농업정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농업을 지탱하는 원천력은 보조금이다. 대표적인 것이 1946년부터 시행된 일종의 조건불리지역 농업장려정책인 구릉지 농장보조금이다. 농가소득의 50%는 이런 보조금에서 나온다. 심지어 농가소득이 국민평균소득을 상회한다. 영국 국민의 92%는 '농촌을 보존하는데 도덕적 의무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튼튼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착한 밥상'은 어떤가?

 

기왕이면 단순한 먹을거리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농촌과 농업이 처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함께 보았으면 좋겠다. 지난 50여년 간 양보와 희생을 강요당해 온 결과 가장 홀대받는 직업이 농업이고, 재생산이 가장 어려운 계층이 농민이 되어버렸다. 생명창고지기로서의 무너진 자긍심을 어떻게 되살려 줄 것인지 온 사회가 배려하고 나서야 한다.

 

'소비자가 왕'이라는 인식은 소비자 스스로 거둘 수 있어야 한다. 공존과 상생의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마케팅전략의 잔재이기 때문이다. 주장이 배려를 만나면 마음을 움직인다고 했던가!

 

/ 나영삼(완주군 지역경제순환센터 센터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