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수 (K-water 전북본부장)
서구 사람들은 백조가 하얀 새인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수천년간 수많은 흰 백조를 보면서 축적된 믿음이었다. 그런데 몇 명의 조류학자들이 오스트레일리아의 서쪽 지방에서 검은 백조를 발견하였다. 경험론적 사고에서 다져진 이론과 신념이 무참히 무너졌다. 이것은 경험과 관찰에 근거한 지식과 학습이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이다.
2007년 '블랙스완(Black Swan)'이란 책을 발간한 월가의 이단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당시 "곧 상상할 수 없는 파국이 월가를 덮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가 예측한대로 미국 금융가에 쓰나미가 불어닥쳤다. 리먼브라더스·메릴린치 등 미국 굴지의 금융기관 12개가 무너지고 이 금융위기는 미국을 넘어 세계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한국 코스피는 반토막이 났었다.
우리는 미래의 큰 흐름(Mega Trend)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갑작스러운 사건과 사고는 예측 자체가 어렵다. 그것은 경험에 의존한 인류의 지식체계가 가진 한계성에서 비롯되지만 필자의 생각으론 인간이 가진 오만과 탐욕의 결과이기도 하다.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과거 성공방식과 관행을 답습하거나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이 최고이고 다른 의견이나 비판논리에 귀를 막는 아집을 부린다. 2008년 금융위기에도 금융시장이 언제나 호황일 것처럼 골디락스를 외치며 돈벌이에 몰두하였다.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집중할 뿐 무엇을 모르는지, 어떤 사태가 일어날 지에 대해선 관심이 부족하다. 즉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지난 3월 11일 일본에서 발생한 규모 9.0의 대지진과 쓰나미는 일본인들에게는 블랙스완이었을 것이다. 일본은 지진이 잦아 지진과 해일에 잘 대비하여 온 나라였음에도 엄청난 자연재해에 속수무책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해일이 일본 동북부를 덮쳐 원자력발전소가 파괴되고 급기야 인공 방사성 물질인 요오드와 세슘이 방출되는 등 악화일로에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이번 일본 대지진은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이 가진 경험과 지식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블랙스완이 주는 교훈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자세와 준비가 필요한가.
필자는 첫째 오만과 탐욕을 버리고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경험 이외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열린 자세를 갖는 것이다.
둘째 사소한 징조나 전조현상을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 2008년의 세계적 금융위기나 금번 일본 대지진의 결과를 보면 엄청난 대재앙이 올 수 있다는 충분한 시그널을 사전에 주었다. 이런 면에서 빈번하게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홍수와 가뭄 그리고 에너지 위기 등 발생 가능한 대재앙에 충분히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매뉴얼과 시스템에 너무 의존치 말아야 한다. 어느 조직이든 규정과 매뉴얼이 필요하지만 여기에 너무 얽매이면 문제가 발생한다. 대의를 보지 못하고 작은 규정에 집착한다. 더 큰 문제는 엄격한 매뉴얼과 시스템화는 창의성을 막는다는 것이다. 일본 대지진 후 사태해결 과정을 보면 안타깝고 시사하는 바가 많다.
마지막으로 블랙스완 현상은 우리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뜻밖의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 6·25전쟁이 벌어졌을 때 세계 2차대전 패망 후의 일본이 행운을 얻은 것처럼 전지구적 블랙스완 현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검은 백조와 공존하고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통찰력을 발휘하여야 할 것이다.
/ 이경수 (K-water 전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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