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국립대 교수
자산의 실제가치
존재여부와 무관하게
시장의 가격은
터무니 없이
높게 유지될 수 있다
지금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올라 있는데 사도 될까요? 주식은 더 오를까요? 지금 혹시 버블 아닙니까? 경제학을 전공하다 보니 자주 받는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이 당혹스러운 이유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탓도 있지만, 아무리 주식 등의 자산가격이 올랐다 해도 이를 버블이라고 쉽게 단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케인즈는 1930년대에 그의 저서 '일반이론'에서, 당시 영국에서 유행했던 미인 컨테스트의 예를 들어 주식시장의 투자심리를 설명한 적이 있다. 신문에 여성 100명의 얼굴사진을 싣고 독자들로 하여금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여성들을 선택하여 응모하게 한 후, 자신이 선택한 여성이 컨테스트에서 우승하게 된 응모자들에게 추첨을 통해 상금을 주는 이벤트이다.
"이 컨테스트는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여성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할 것 같은 여성을 선택하는 것이 핵심이다"라고 케인즈는 갈파하면서, 자산시장에서의 투자행태가 이와 같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의 시가총액이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기업의 실제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걸 알면서도 이 주식을 사는 사람이 바보가 아닌 이유는 그의 주식을 더 비싼 가격에 사는 사람 즉 더 큰 바보가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 믿음이 맞아떨어질 경우 주가는 더 오르고 자신은 바보가 아닌 게 된다. 경제학에는 '바보이론 (greater-fool theory)'으로 더 잘 알려진 이야기인데, 자산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개인의 판단 여부를 떠나서 다른 사람이 그 주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기준한 투자행태를 일컬음이다.
혹자는 이를 버블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산의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그렇게 기대하는 투자자들의 심리 때문이고, 대다수의 투자자가 그렇게 생각하면 가격은 반드시 오른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희귀한 튜울립 한 뿌리가 몇 달 치 월급에 달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고, 현재 싱가포르에서는 바닷가 인근의 고급아파트 한 채가 백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러나, 가격이론을 가르치는 경제학자는 이를 버블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다. 특정 자산의 '진정한 가치'라는 개념이 항상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중에 가격이 폭락하게 되는 버블의 붕괴가 존재할 수는 있어도 버블의 실체 자체는 명확하지 않단 얘기다.
재미있는 것은 자산의 '진정한 가치'가 명확히 규정되는 경우에도 투자자들의 행태는 미인 컨테스트의 예를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행태경제학자 캐머런 (Cameron)은 만기의 가치가 정해져 있는 가상적인 채권거래실험을 통해서 이를 증명한 바 있다. 액면가가 100원이고 매 10분당 5원씩 정액배당이 지급되며 한 시간 후에 만기가 도래하는 가상채권의 거래실험을 가정해보자. 이 때 합리적 채권가격 즉 채권의 실제가치는 첫 10분 동안의 130(=100+5x6)원에서 시작하여 매 10분마다 5원씩 하락하고 마지막 10분 동안은 105원이어야 한다. 실험결과는 어땠을까.
실험결과에서는, 125원 정도에서 시작한 가격이 놀랍게도 거의 만기 직전까지 유지되면서 오랫동안 거래가격이 자산의 실제가치를 높게 상회하고 있었다. 실험대상자들에게 물었을 때 대답은 '바보이론'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는데, '비싸게 사더라도 배당금을 챙긴 후 나중에 같은 가격에 팔면 이익'이라는 바로 그 믿음이었다.
자산의 실제가치 존재여부와 무관하게 시장의 가격은 터무니 없이 높게 유지될 수 있음이 행태경제학의 가르침이다. 버블의 붕괴만이 명확한 현실일 뿐 버블의 존재는 오직 심리의 문제일 뿐인 것이다. 경제학이 여전히 암울한 학문이라 불린다 해도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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