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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로의 시작

▲ 박철곤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우리 사회에 얼마전부터 고졸채용 바람이 일고 있다. 학벌이나, 돈과 시간을 들여 쌓은 스펙보다는, 현장경험과 실무능력을 중시하는 채용관행을 만들어가자는 취지다. 대졸자 중심으로 편중되었던 기업의 채용구조가 변화됨에 따라, 고교 졸업생의 80%이상이 지원하고 있는 대학 진학의 과도한 경쟁구조도 또한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학력 인플레가 해소되고 사교육비를 절감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고졸사원들이 공공기관에서 4년 이상 근무하면 대졸자와 동등한 대우를 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이제는 실력과 관계없는 학력(學歷)중심사회에서 진정한 능력중심의 사회로 발전되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필자는 지난 6월 현재 몸담고 있는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에 취임하면서, 고졸 채용 30% 할당제를 공표하였다. 이미 신규채용에 학력기준은 없어졌지만 대졸출신 인재들이 몰리면서 고졸채용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 할당제를 도입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실시된 2012년도 신입사원 공개채용에서 총95명의 합격자 중, 고졸채용 할당제를 통해 26명의 고졸 사원이 합격했다. 그 가운데 3명은 장애인이다. 소수자지만 능력만 놓고 볼 때 여느 신입사원 못지않게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합격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의 취업률이 50%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 고졸 출신도 충분히 해내던 일자리를 대졸 출신들이 대체하게 되면서, 환경미화원 채용에 대졸자들이 몰리고, 심지어 석·박사학위 소지자들까지 지원하는 상황이 보도되기도 했다. 고졸채용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가 마련된다면, 우리 청년들이 반값등록금을 요구하기 보다는, 대학을 안 가도 사회적 차별이 없이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직업교육 훈련제도를 갖춘 독일은 60% 이상의 청소년이 우리나라 중학교에 해당하는 중등 1과정을 졸업한 뒤 기업에 취직한다. 이들은 주3~4일은 사내 직업훈련을 통해 현장실습교육을 받고, 주1~2일은 현장교육을 이론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직업학교에서 별도로 교육을 받는다.

 

재미있는 점은 직업학교 학생이 실습을 위해 기업에 가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 취업한 훈련생이 의무교육법에 따라 학교에 간다는 점이다. 기업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적 자원을 개발하는데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물론 독일과 우리나라는 문화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기업관이나 직업관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기준점으로 손색이 없다.

 

고졸 채용이 한때의 바람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우선 이들을 육성하는 교육기관에서 실제 직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로 길러내도록 적합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취업 후에도 이들에게 적합한 직무를 발굴하고, 선 취업, 후 면학의 기회를 제공하여 유능한 젊은이들이 스스로 실력을 쌓아 성장할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난해 한국사회에서 100만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우리 사회에 정의에 대한 갈증이 폭넓게 존재함을 반증하였다. 정의가 무엇이고 공정한 사회가 무엇인지 해답을 찾고 있는 것이다. 학력(學歷)에 관계없이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 가능성을 마음껏 살릴 수 있는 사회, 조건보다 능력과 실력이 존중받는 사회. 공정사회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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