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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김용택 (金龍澤) 편】'섬진강 지키며 살아온 '섬진강 시인'

▲ 김용택 시인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같은 토끼풀들

 

숯불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 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 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어둔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 김용택, '섬진강·1', 전문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대표작이다. 그는 언젠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내 문학은 그 강가 거기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자랐고, 거기 그 강에 있을 것이다. 섬진강은 나의 전부이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운 김용택 시인은 1982년 '창작과 비평'에서 '섬진강' 외 8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고향과 고향의 자연을 꿋꿋하게 지키며 살아온 전라도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이 시에서도 지리산과 무등산을 배경으로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과 그 주변인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저항성을 장중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고장 민중의 정서를 반복적 내재율과 고밀도의 직유 그리고 역동적 의활법(擬活法)으로 부드러우면서도 도도한 강물의 흐름과 같은 리듬으로 읊고 있다.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 김용택, '섬진강·15' 일부

 

살아오면서 나는 내 이웃들의 농사에

 

내 손이 희어서 부끄러웠고

 

뙤약볕 아래 그을린 농사군들의

 

억울한 일생이

 

보리꺼시락처럼 목에 걸려

 

때로 못밥이 넘어가지 않아

 

못 드는 술잔을 들곤 했다.

 

-김용택, '길에서' 일부

 

투박하고 정감어린 전라도 방언으로 고향 마을과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잔잔하게 그려주고 있다. 이재기 시인도 "툭 터놓고 말하는 그의 시는 맑고 정직하다. 그럼으로써 그는 '아직도 두 눈 시퍼렇게 부릅뜨고/ 땅을 파는/ 농군'('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의 편에 섰다. 살 아프고 맘 아픈 그들의 편에 서서 환장할 것 같은, 기가 차고 어안이 벙벙한 농촌의 현실을 다 발언했다. 그의 시에서는 포슬포슬한 흙냄새가 난다. 그의 시를 통해 은어 떼가 헤엄치는 푸른 강과 넓디넓은 평야를 본다. 가슴이 넓어지고 따뜻하다."고 평한 바 있다.

 

가난하지만, 가난한 논과 밭을 떠나지 못하고 자연에 순종하고 세상에 순종하며 고향을 지키고 있는 순박한 사람들. 그들은 그에게 언제나 시적 영감을 떠올리게 하는 영혼의 샘이요 시적 뮤즈(Muse)였다. 그러기에 그의 시들은 온 몸을 다해 고향에 바치는 그의 헌사(獻辭)요 증언이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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