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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소재호(蘇在鎬)】화합과 상생의 원융미학

▲ 소재호 시인
거친 바람 만나도 사람은 돌 수 없지만

 

팔팔한 심장 밖으로 내걸며

 

무엇인들 돌리려는 마음이

 

바람개비가 된다

 

이러 첩첩 저리 첩첩 이뤄낸 생애

 

바람을 속속 맞아들여야

 

스스로 바람의 생명이 된다

 

각이 선 눈빛 거두고

 

모난 형상을 버리면 둥근 원 하나 된다

 

세차게 돌면

 

더욱 희미해지는 무상

 

구심점도 삭고 다만 한 개비 원형질 생물

 

그리하여 존재와 본질이 뒤범벅이 된다

 

- '바람개비' 중에서

 

이 시에서의 '바람'은 본질 혹은 순수와 맞선 세속적 시련과 역경의 이미지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역경(逆境)의 바람과 맞서지 않고 그들과 '함께' '바람개비'가 되어 '도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의 길을 택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그는 역경(逆境)을 순경(順境)으로, 분리와 대결을 소통과 통합으로 바꾸어 그것을 다시 '생명의 바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화합과 상생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모든 바람을 속속 맞아들여', 함께 돌다보면 '구심점도 삭아' 비로소 하나의 '둥근 원'이 된다는 원융무애(圓融無碍)의 세계, 그는 이처럼 역경(逆境)의 바람을 소위 '바람개비의 철학'으로 '함께 돌아' 본질과 현상이 뒤범벅이 된 세상을 둥글게 살아가고 있다.

 

산에 온갖 철새들 살았습니다

 

언젠가 먼 나라로 날아갈 새들이었습니다

 

새들은 날마다 나무 키워

 

산의 얼굴 만들기 위해

 

강에 나가 물기를 묻혀 왔습니다

 

깃털로 묻혀 온 물방울

 

안개 되고 산마루 감싸는

 

하얀 구름 되었습니다

 

새가 푸른 하늘에 긋는 포물선 따라

 

그 굽이로 산은 높아 갔습니다.

 

게절이 자주 바뀌고 분주히 새들이 오간 뒤

 

산은 하늘 높이 목을 내밀었습니다.

 

그 때야 먼 강을 보게 되었습니다

 

산과 강이 눈빛 맞추어 무지개도 세웠습니다

 

사실은 산 빛이 무지개빛으로 된 것입니다

 

- '무지개' 중에서

 

산, 새, 나무, 강, 그리고 물이 하나가 되어 숲을 만들고, 그 숲에 안개와 새가 깃들고, 또 산마루에 구름이 걸쳐 있는 무릉도원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키우고 감싸 천지만물이 조응하는 상생과 화합의 세계, 시인은 이처럼 세상이 하나의 아름다운 일원상(一圓相)이 될 수 있음을 산과 강 위에 무지개를 띄워 자연친화적 낙원을 그리고 있다.

 

배롱나무는

 

조상의 원죄(原罪)까지

 

바들바들 떨었다

 

- '어둠을 감아 내리는 우레' 전문

 

남다른 직관력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다. 배롱나무는 '간지럼 나무'라고도 하여 향교나 사당 혹은 조상의 묘소 앞에 심어져 그곳을 수호신처럼 지키며 발가벗은 몸으로 서있는 나무다. 그 모습이 마치 '원죄'를 안고 서있는 모습으로 보였나 보다. 사물에 대한 인식의 깊이도 있으려니와 그 표현 또한 감각적이다.

 

이처럼 인식의 깊이와 그것을 다시 회화적 감각으로 이미지화하는 절창은 '꿩도 붉은 울음 띄워/산이 뒤뚱뒤뚱 내려온다.', '산새는 물로 들고/물고기는 허공에 뜨고/독경(讀經)이 익어서/밤낮없이 풍경소리'와 같이 정령적 신비와 생동감으로 그의 시는 지정합일의 새로운 서정미학을 낳고 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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